[] 그 다음은 벧술 지방 절반을 다스리는 자 아스북의 아들 느헤미야가 중수하여 다윗의 묘실과 마주 대한 곳에 이르고 또 파서 만든…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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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2.21 05:28
'아스북의 아들 느헤미야가 중수하여'
느헤이먀 성경을 기록한 느헤미야는 느1:1에서 '하가랴의 아들'이라고 했다. 여기는 '아스북의 아들'이다. 이름은 같으나 다른 사람이다. 좋은 이름, 좋은 표시, 좋은 소망은 함께 나누고 함께 사용할 줄도 알아야 한다. 비록 좋은 것이나 오로지 나만 갖고 싶은 것은 자칫 자기 중심의 악이 될 수 있다.
'다윗의 묘실과 마주 대한 곳에 이르고'
다윗의 묘실은 다윗이 살고 남은 결산이다. 계3:7에서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주님을 말씀했다. 다윗은 적은 능력, 보잘 것 없는 사람으로 시작했으나 옳고 바른 하나를 찾기 위해 늘 구별을 했으니 이 것이 '거룩'이다. 그리고 하나뿐인 참을 찾았을 때 '진실'이니 다윗의 생애는 늘 적은 능력으로도 옳고 바른 하나에 매진했고, 그 노력과 그 걸음은 주님이 앞을 열어 주셔서 막힌 적이 없다. 이렇게 승리의 왕이 되었다. 따라서 다윗의 묘실은 진실의 생, 진실의 충성, 진실의 신앙이 천국으로 향한 마지막 표시다. 이런 죄악의 엄청난 시대에 우리의 적은 믿음으로 어떻게 맞서고 상대할 수 있을까? 그렇다 해도 적은 나의 믿음으로 이 시대 내가 할 수 있는 내게 요구하는 참된 길을 걷다 보면 우리가 할 일은 다 하는 것이 된다. 그리고 그런 기회 그런 시간이 지나 가고 나면 그 충성 그 진실을 향한 노력은 하늘에 쌓게 되는데 이 것을 이 땅 위에서는 묘실이라 한다. 하루를 살고 남은 것이 일당이면 세상으로 흩어져 땅의 일부가 되고 영원히 지옥으로 가는 일반 묘실에 수납하는 것이 된다. 하루를 살고 일당을 벌었지만 그 일당 속에는 주님이 자기에게 맡긴 가족을 위해 하루를 충성한 신앙이 있고 진실이 있다면 그 하루의 시간과 충성은 다윗의 묘실에 들어 간다. 그런 묘실을 지켜 내는 것이 '다윗의 묘실과 마주 대한 곳'에 성벽을 쌓는 일이 된다.
'또 파서 만든 못을 지나'
장사꾼과 금을 만지는 귀한 인물들이 '못'이 있는 성곽도 건축했다. 이것은 파서 물을 담는 곳이다. 위에서 흘려 내려 주시는 은혜는 시냇물이 될 것이고, 틈 사이에서 비집고 나오는 새로운 깨달음은 샘이 될 것이며, 깨달은 말씀들을 기억하고 모아 두면 '파서 만든 못'이 될 것이다. 이런 곳을 보호하고 지켜내는 노력이다.
'용사의 집까지 이르렀고'
신앙의 용사, 신앙으로 싸워야 할 때는 내가 나를 꺾기도 하고 유혹도 이겨 내며 천하가 다 죄를 짓는다 해도 나는 그런 죄를 담대히 맞설 수 있다면 신앙의 '용사'가 된다. '용사의 집'이라고 했으니 용사들이 모이는 곳이며 용사들이 함께 하는 곳이며 용사들이 쉬기도 하는 용사들의 본부가 된다. 반사회가 되기도 하고 교역자회일 수도 있다. 다윗을 따르는 그들이기도 하다.
25
우새의 아들 발랄은 성 굽이 맞은편과 왕의 윗 궁에서 내어민 망대 맞은편 곧 시위청에서 가까운 부분을 중수하였고 그 다음은 바로스의 아들 브다야가 중수하였고
느헤이먀 성경을 기록한 느헤미야는 느1:1에서 '하가랴의 아들'이라고 했다. 여기는 '아스북의 아들'이다. 이름은 같으나 다른 사람이다. 좋은 이름, 좋은 표시, 좋은 소망은 함께 나누고 함께 사용할 줄도 알아야 한다. 비록 좋은 것이나 오로지 나만 갖고 싶은 것은 자칫 자기 중심의 악이 될 수 있다.
'다윗의 묘실과 마주 대한 곳에 이르고'
다윗의 묘실은 다윗이 살고 남은 결산이다. 계3:7에서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주님을 말씀했다. 다윗은 적은 능력, 보잘 것 없는 사람으로 시작했으나 옳고 바른 하나를 찾기 위해 늘 구별을 했으니 이 것이 '거룩'이다. 그리고 하나뿐인 참을 찾았을 때 '진실'이니 다윗의 생애는 늘 적은 능력으로도 옳고 바른 하나에 매진했고, 그 노력과 그 걸음은 주님이 앞을 열어 주셔서 막힌 적이 없다. 이렇게 승리의 왕이 되었다. 따라서 다윗의 묘실은 진실의 생, 진실의 충성, 진실의 신앙이 천국으로 향한 마지막 표시다. 이런 죄악의 엄청난 시대에 우리의 적은 믿음으로 어떻게 맞서고 상대할 수 있을까? 그렇다 해도 적은 나의 믿음으로 이 시대 내가 할 수 있는 내게 요구하는 참된 길을 걷다 보면 우리가 할 일은 다 하는 것이 된다. 그리고 그런 기회 그런 시간이 지나 가고 나면 그 충성 그 진실을 향한 노력은 하늘에 쌓게 되는데 이 것을 이 땅 위에서는 묘실이라 한다. 하루를 살고 남은 것이 일당이면 세상으로 흩어져 땅의 일부가 되고 영원히 지옥으로 가는 일반 묘실에 수납하는 것이 된다. 하루를 살고 일당을 벌었지만 그 일당 속에는 주님이 자기에게 맡긴 가족을 위해 하루를 충성한 신앙이 있고 진실이 있다면 그 하루의 시간과 충성은 다윗의 묘실에 들어 간다. 그런 묘실을 지켜 내는 것이 '다윗의 묘실과 마주 대한 곳'에 성벽을 쌓는 일이 된다.
'또 파서 만든 못을 지나'
장사꾼과 금을 만지는 귀한 인물들이 '못'이 있는 성곽도 건축했다. 이것은 파서 물을 담는 곳이다. 위에서 흘려 내려 주시는 은혜는 시냇물이 될 것이고, 틈 사이에서 비집고 나오는 새로운 깨달음은 샘이 될 것이며, 깨달은 말씀들을 기억하고 모아 두면 '파서 만든 못'이 될 것이다. 이런 곳을 보호하고 지켜내는 노력이다.
'용사의 집까지 이르렀고'
신앙의 용사, 신앙으로 싸워야 할 때는 내가 나를 꺾기도 하고 유혹도 이겨 내며 천하가 다 죄를 짓는다 해도 나는 그런 죄를 담대히 맞설 수 있다면 신앙의 '용사'가 된다. '용사의 집'이라고 했으니 용사들이 모이는 곳이며 용사들이 함께 하는 곳이며 용사들이 쉬기도 하는 용사들의 본부가 된다. 반사회가 되기도 하고 교역자회일 수도 있다. 다윗을 따르는 그들이기도 하다.
25
우새의 아들 발랄은 성 굽이 맞은편과 왕의 윗 궁에서 내어민 망대 맞은편 곧 시위청에서 가까운 부분을 중수하였고 그 다음은 바로스의 아들 브다야가 중수하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