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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희 신앙노선의 오늘을 고민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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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br> > <br/>공회교회의 부흥에 대하여 (글1) - 우선 공회 내부 역사를 참고했으면 <br> > 이 글은 '발언/주제연구'게시판에서 '공회노선 교회부흥'을 위해 일반 교계 부흥법을 사용할 수 있는가 라는 다음 글에 대한 답변형식의 요약정리입니다.<br> > /초기화면/연구실/발언.주제연구/게시판<br> > ------------------------------------------------------------------<br> > 1153번, 총공회가 부흥되지 않는 이유는? 서부교인 04/11/04 <br> > ------------------------------------------------------------------<br> > <br/><br/><br/><br/><br/><br/>제목: 이전 공회의 부흥기를 먼저 연구한 다음, 오늘을 살펴보는 순서로 (yilee 글 1)<br/><br/><br/><br/>1.우선 양해 말씀과 안내 말씀<br/><br/>이번 글은, 일단 누구든 이해할 수 있는 객관적 방법론을 주제로 했다고 생각합니다.<br/>일단 우리 과거 부흥의 시기에 있었던 부흥 요소를 한번 정리해 볼 필요를 느낍니다.<br/>물론 오늘 우리 상황은 그때와 다릅니다. 달리진 면을 계속 대입하며 생각했으면 합니다.<br/>한번에 적고 싶은 내용을 다 올렸으면 좋겠는데, 사정상 몇 번으로 나누겠습니다.<br/><br/><br/>2.총공회가 부흥되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그때를 한번 돌아보겠습니다.<br/><br/>지금 한국교계 전체가 교회의 침체기가 닥쳤다며 걱정을 하고 있습니다. 다른 교회들, 한국교계가 침체기를 맞았다 해서 우리의 부흥 못하는 것이 묻혀질 일은 아닙니다. 또 과거 다른 교단들이 급속하게 발전할 때 우리도 함께 발전하던 때가 있었는데 그때는 일반 교계도 발전을 하고 있었다는 말로 그 당시의 우리 발전을 저평가한다는 것도 반대합니다. 일단 우리가 외부적으로도 발전하던 때의 상황과 오늘 침체되고 있는 시기를 비교하는 것이 제가 이 주제와 관련해서 살펴야 할 첫 순서라고 생각했습니다.<br/><br/><br/>3.총공회의 발전사는 분명히 특별한 점이 있었습니다. <br/><br/>앞에서 여러 분들께서 공통적으로 인정하시듯 일단 말씀의 가치와 노선의 소중함은 분명히 우리의 장점입니다. 모두들 의견을 달리하시는 부분은 현 침체 상황에 대한 이해라고 생각합니다. 외부적 침체와 부흥은 크게 고려할 바가 아니며 참고 정도할 사안이라는 분들이 계시고, 교회의 침체는 그렇게 쉽게 넘어갈 사안이 아님을 깊이 우려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br/><br/>일단, 우리의 과거를 돌아본다면 이 노선의 외부적 발전은 그 어떤 교단과 비교해도 특별한 점이 있었습니다. 순복음교회처럼 세계사적으로 기록될 정도는 아니었으나 주일학교라는 한 분야에 있어서는 그런 면도 가졌습니다. 일단 전반적인 면으로 살핀다면 공회는 부흥에 가장 어려운 조건만을 가지고도 일반 교계만큼 발전했기 때문에 양측의 발전 내면을 살펴볼 수 있는 정도의 시력을 가진 분들이라면 공회의 과거 발전은 정말 타 교단의 모범이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br/><br/><br/>4.예를 들자면<br/><br/>①주변 교회 교단 교계 전체가 이렇게까지 가로막고 견제하는 속에서 발전을 이룬 예는 없습니다. <br/><br/>②성경의 교회 운영법과 전도원칙에 이렇게까지 철저하게 충실하고도 발전한 경우는 없습니다.<br/><br/>③말하자면, 부흥을 위해서는 가장 불리하고 불가능하다는 조건만 가진 속에서 발전했습니다. <br/><br/>④총공회 부흥의 가장 큰 특징 중에 하나는, 불신자 전도가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이었습니다.<br/><br/>⑤다른 교회와 교단 교계가 이런 길을 걸었다면 생존 자체가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br/><br/>⑥물론, 가장 중요한 상황은 백영희목사님이라는 시대적인 점L 있었기 때문입니다. <br/><br/>⑦그렇다면, 총공회 과거 부흥사는 백영희 부흥사(史)이지 총공회 부흥사가 아니었습니다.<br/><br/><br/>5.오늘 우리의 논의는 과거사 연구에 있지 않고 현 상황에 대한 해결 방안 제시에 있습니다. <br/><br/>과거 부흥 시기에 있었던 여러 여건과 요인을 살펴보았는데 역시 그 핵심 내용은 백영희목사님이라는 시대적인 점L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과거사를 연구하는 자리가 아니고 오늘 현재 우리의 문제점을 찾고 우리가 나아갈 방향을 잡아야겠다는 회의에 참석해서 주제 발언을 하고 있습니다. <br/><br/>그렇다면 백목사님이라는 분이 빠져버린 상황에서 공회의 부흥을 논하게 된다면, 백목사님이라는 분이 없는 공회는 부흥이 어렵다는 결론에 쉽게 도달할 수 있습니다. 적어도 과거 걸어온 그대로 앞으로도 걸어가겠다고 한다면 부흥은 정말 어렵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떤 면으로도 과거와 다른 생각과 행동이 없다면, 그런데도 만일 과거에 비하여 교인의 숫자가 떨어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일면 부흥이라고까지 말을 해야 할 것 같고, 만일 과거보다 조금씩 떨어진다면 과거 정도로 힘을 쓰고 있으며 적어도 현상 유지는 하고 있다고 오히려 격려를 해야 할 정도일 것입니다. <br/><br/>그런데, 우리는 그런 내면적 공치사보다, 일단 현 우리 여건에서도 우리 공회는 일단 발전해야 하며, 발전이라는 것은 생명을 가진 존재에게는 필연이며 본질적인 문제라는 점을 부인할 분들은 없을 것입니다. 다만 그 발전의 의미가 무엇이냐고 다시 묻는다면 강조하는 부분과 관심있는 분야가 서로 다를 수 있습니다. 이번 주제는 일단 교회의 외형, 교인의 참석숫자를 중심으로 말씀들을 나누고 있습니다. <br/><br/><br/>6.그렇다면 총공회의 '부흥'은 내면의 질적인 면을 말하는가? <br/><br/>그렇다면 현 상황만 가지고도 공회의 입장을 변명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공회는 '외적인' 부흥, '숫적인' 부흥을 무시해 본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외적인 부흥을 늘 신앙의 내면을 살펴볼 수 있는 가장 정확하고 가장 간편한 측정방법임을 강조해 온 것이 공회입니다. 물론, 외적인 성과가 내면을 읽을 수 있는 100% 진단법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예를 들면, 한국사람은 단일민족이라고 늘 표현하는데 이 표현에 대하여 귀화한 일본인 중국인들도 많지 않느냐고 한다면 할 말은 없습니다만 '일반적으로 간단하게 표현'할 때는 그렇다는 것입니다. <br/><br/>종합적으로 말하면, 우리는 내면이 문제고 내면에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내면이 중심이며 내면을 손해보는 외면은 아예 타협할 것도 없이 거부합니다. 그러나 만일 내면에 손해를 보지 않고 외면도 잘 될 수 있다면 우리는 외면을 가볍게 보지 않습니다. 비록 영생의 양식을 가르쳤지만 그렇다고 해서 먹고도 죽는 썩을 양식이라도 할 수 있다면 그 부스러기조차 다 줏어담아 12바구니를 만든 면을 분명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br/><br/>마지막 한 가지 덧붙이면, 외부적 부흥에 대하여 무엇보다 이 노선이 가장 크게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내부가 바로 되면 특별한... 정말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외부가 부흥되는 것이 보통인데, 혹 외부의 부흥 지체 원인이 혹시 내부에 감추어진 문제점 때문일 수 있습니다. 앞에서 여러 의견을 주신 분들께서 비록 이런 표현은 사용하지 않았다 해도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내용일 것입니다. 다만 다 알고 계시는데도 중요한 사안이어서 또 이곳을 찾는 공회 외부 일반분들께 소개하고 싶어 부러 말씀을 드리고 있습니다.<br/><br/>내부에 큰 속병이 있어 외부 얼굴색과 성장에 문제가 있다면 이는 성과가 문제가 아니라 내부의 문제가 문제입니다. 제가 이번 주제에 대하여, 실력없는 목회자임에도 불구하고 이제 답변식 의견을 적어나가는 이유는 내부를 희생하고라도 외부의 성장을 고려하자는 분이 있다면 말려야 할 것 같고, 내부에 문제점을 두고도 외부 성장 중단에 대하여 별 문제 없이 생각하는 분이 계신다면, 과연 우리 내부에 큰 문제가 없는데도 이미 20세에 달한 성년이기 때문에 성장이 과거 어릴 때처럼 그렇게 많이 나타나지 않거나 아니면 앞으로 더 큰 성장을 주시기 전에 잠깐 준비기를 주셨는지 다시 한번 우리를 살펴보자고 말씀을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br/><br/>앞서 여러 글에서 간단하게 결론만 말씀하신 분들도 이런 면을 다 아시겠지만 굳이 재론하는 이유는 이곳을 들르는 분 중에 주로 공회 외부에 계셨던 분들에게 공회의 당연한 상식을 소개하기 위해서입니다. 이 주제의 글을 읽으실 때 발언하시는 분들의 표현 된 글 뒤에는 거의 다 이런 전제가 있음을 참고해 주시기를 요청합니다. <br/><br/><br/>7.이 주제에 대하여 제가 드리는 첫번째 글에서는<br/><br/>과거 부흥시기가 있었던 공회의 당시 상황을 살펴보고, <br/>그 중에서 오늘 변화된 우리 현실에서도 여전히 외부 부흥을 위해 소중하게 사용해야 할 보배가 있는지, <br/>과거 걸어온 길이 정말 진리 노선이라면 오늘 변화된 상황까지 고려하여 오늘 우리가 새롭게 걸어가야 할 길을 소개할 터인데 과거 부흥법에서 오늘의 부흥법을 새로 개발하고 개척하여 '오늘날'로 이어지는 구체적인 행동지침들이 나올 수 있는지.<br/><br/>이번 주제를 첫 발언자께 질문 형식으로 받은 뒤 잠깐 살펴보면서도 공회 노선에서 그동안 잊고 있던 몇 가지를 한번 더 주목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진리를 보수하지 모양을 보수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모양이라 해도 꼭같으면 과거 것을 선호합니다. 만일 같은 진리노선인데 꼭 외부 모습을 바꾸어야 더욱 진리가 진리로 적용될 수 있는 경우가 있으면 그 외부 모습을 바꾸는데에는 아마 기독교사에서 이렇게 단칼에 개혁한 교회도 거의 없었다 할 만큼 입장을 확고하게 가지고 있습니다. 일단 이런 모든 면을 고려하면서 다음 내용으로 과거 공회의 부흥 시기의 여러 환경들을 살펴보고 그 과정에서 오늘 우리가 눈여겨 볼 사안들을 살펴보았으면 합니다. <br/><br/>제 글은 몇 번으로 나누어 올려야 할 것 같은데 글과 글 사이의 시간이 며칠 또는 그 이상이 될 수도 있습니다. 다른 분들께서 이 글에 대하여 뒷 부분을 보지 않고도 발언하실 내용이 계신다면 이번 주제에 관하여는 그렇게 하셔도 상관하지 않겠습니다. 이번 내용은 답을 정해놓고 질문자께 전달하는 형식이 아니라 글의 내용은 그런 식처럼 보일지라도 제 중심은 저도 이곳 발언자 중의 한 사람으로 자신을 스스로 정리해 보고 싶어 답안을 찾아나가는 심정으로 적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글과 상관없이 어떤 발언이라도 진행하실 수 있다는 점을 말씀드립니다. <br/>--------------------------------------------------------------------------------- <br/><br/><br/><br/>공회교회의 부흥에 대하여 (글2) - 부흥 수치의 진정한 모습과 기준들 <br/><br/><br/>지난날 공회 부흥기를 분석하고 일반 교회의 부흥과 비교한다면 (yilee 글 2)<br/><br/><br/><br/>1.이번 주제는, 일단 교인의 출석수를 중심으로 살펴보고 있음을 양해해 주셨으면<br/><br/>교훈의 가치와 교회의 질적인 성장은 공회의 존재 이유면서 또한 이 홈의 존재 이유 정도입니다. 그것을 강조하는 것을 두고 비판할 분은 없을 것 같습니다. 따라서 이번 주제에 대하여는 숫적인 부흥만을 논해도 앞서 말한 교훈의 가치와 질적인 성장의 연장선상일 것이고, 혹시 숫적 부흥에 좋은 의견이 나와도 그것이 신앙에 손해를 보일 때는 일단 주저해야 할 것이고, 만일 그런 문제가 없는 부흥법이면 주저할 것 없이 시행할 수 있을 것입니다.<br/><br/><br/>2.교회의 교인 출석수 문제<br/><br/>(1)공회 내부에서 살펴 본 교회의 부흥<br/><br/>①다수교회의 침체와 소수교회의 부흥<br/><br/>공회 노선에 속한 교회를 전체적으로 볼 때, 출석수에 있어 다른 교단 소속 교회들보다 훨씬 떨어진다는 통계에 대하여는 모두들 인정하실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의미 있는 발전을 계속 하고 있는 교회들도 있다는 점을 동시에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외부 교단도 참고해야 하지만 우선 공회 내에서 성장하는 교회들을 참고했으면 합니다. <br/><br/>타 교단에서 들어오는 수입품 중에서는 공회 내부에 적용할 때 우선은 즉효가 있는 듯 해도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발견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입니다. 반면 공회 내의 전통적 부흥법은 오랜 세월 모든 면으로 검증이 되었기 때문에 우선 안심하고 사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 우리는 교인의 숫적 부흥을 논하고 있기 때문에 공회 내부 것이라도 좋으면 꺼내 들어야 할 것이고, 혹 위험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비록 외국에서는 좋게 사용되고 있다 해도 국내로 수입하는 과정에서는 보다 신중해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br/><br/>과거 합동측 충현교회에서 사용하던 연보봉투는 오늘 우리 공회 연보봉투의 표준이 되었습니다. 이 연보봉투 사용으로 공회 교인들과 교회들의 경제 부흥과 복은 실로 컸습니다. 순복음교회의 간증집은 1980년대 말부터 출간되기 시작한 공회의 집회 병나은 분들의 간증집 출간의 모델이 되었습니다. 이 역시 어린 신앙과 고난 중에 있던 성도들에게 큰 힘을 보태어 우리 공회가 능력의 교인들을 만들어 내는데 좋은 모델이 되었습니다. 좋으면 외부 것이라도 수입하고 나쁘면 내부 것이라도 단칼에 베어 없애는 것이 공회 노선입니다. 다만 많은 면으로 살펴보고 따져보고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br/><br/><br/>②구체적으로 교회 이름들을 밝히는 것은 문제가 있어 익명으로 예를 들겠습니다. <br/><br/>공회 교회 중에서 서울 중심에 있는 대표적 교회가 백목사님 사후 일반 교회의 부흥법을 통관절차 없이 수입했다가 지금은 예배당이라는 말도 붙이기 어려울 정도의 교회가 된 예가 있습니다. 심지어 합동측에 있는 분들까지 그렇게 그 교회가 탈선을 했느냐고 탄식하는 정도입니다. 그런데 그렇게까지 내부를 다 내어주고 외부를 수입한 그 교회의 출석수 결산은 별로 남은 것이 없습니다. 제가 볼 때는 세상 기준에서 결과만 놓고 봐도 장사를 잘못했습니다. <br/><br/>현재 공회 교회 중에서 전혀 외부 방법을 사용치 않고도 제가 가장 부럽고 지켜보고 있는 2개 교회의 모델이 주변에 있습니다. 초등학교 졸업하고 시골에서 농사만 짓다가 50세 안팎에 시골교회에서 목회를 출발하여 오늘까지 20여년 한 교회만 근무하고 있는데도, 그 주변 교회와 비교할 때 전무후무한 부흥을 이루고 있는 분입니다. 참고로 제가 속한 공회가 아닙니다. 이 교회는 교회 부흥에 가장 불리한 여건만을 다 가지고 있습니다. 저로서는 공회 부흥법의 대표사례로 실명 거론하고 싶지만 아까운 보배가 외부로 노출되면 그들의 진실되고 복된 현황에 변동이 있을까 하여 늘 지켜만 보고 있습니다. 또 한 교회는 도시에 있으며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br/><br/>이 2개 교회가 전부는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교회가 많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소개를 드리는 것은, 이 2개 교회의 부흥은 우리 공회 노선의 내부면을 간직하면서도 얼마든지 부흥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들 교회의 부흥은 공회 소속 거의 대부분 목회자들이 그 정도의 실력과 그 정도의 걸음은 그렇게 어렵지 않게 걸어갈 수 있는 정도입니다. 차로 말하자면 200만원짜리 정도 승합차량이기 때문에 그마저도 구입못 할 사람도 있겠으나, 현 경제라면 그 정도 차량을 보유하는 것은 모두들 할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br/><br/><br/>③이 교회들의 사례가 일단 우리 공회 부흥의 기본 모델이 되었으면 합니다.<br/><br/>소개한 2개 교회와 같은 경우들이 공회 내에 좀더 있겠지만 목회자와 현 교회 내부의 여러 상황을 샅샅이 알면서 소개할 수 있는 사례로는 이곳이 가장 좋기 때문에 우선 소개했습니다. 또 특수한 입장에서 부흥된 것이 아니라 어느 교회든지 참고할 만한 평범한 여건이거나 아니면 다른 교회보다 모든 면에서 훨。 불리한 입장에서 나온 결과이기 때문에 예를 들었습니다. 기록으로 남지 않는 사석에서는 그 교회의 사례를 자세하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br/><br/>분명한 것은, 공회 내의 대부분 교회들은 부흥이 왜 되지 않는지를 두고 연구 대상이 될 교회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 내부에 있고 우리가 가장 가깝게 바로 참고할 수 있는 부흥 사례를 우리가 노력해야 할 1차 목표로 삼았으면 합니다. <br/><br/><br/>④물론, 공회 교회들의 침체에 대하여 그 원인도 '부흥연구' 차원에서 살펴보겠습니다. <br/><br/>공회 내부에서 우리의 부흥법을 연구하려면 공회 내부에서 부흥이 되지 않는 교회들과 오히려 교인이 줄어들고 있는 교회들을 함께 연구해야 할 것 같습니다. 내부에 대한 안팎의 연구, 부흥과 침체의 동시 연구를 통해, 오늘 우리 목회자들과 각 교회의 주력 교인들이 자신들을 돌아볼 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내부 검토가 확실하게 진행되고 나면 외부에서 수입해야 할 품목과 그 수입과정을 살피게 될 것입니다.<br/><br/><br/><br/>(2)출석 기준의 부흥문제를 논할 때, 이런 면들을 꼭 고려했으면<br/><br/>우리가 가장 먼저 살펴봐야 할 공회 내의 부흥 사례는 다음 세번째 글에서 자세하게 연구하겠습니다만 우선 이번 두번째 글에서는 우리가 부흥이라고 말할 때 출석숫자를 단순하게만 비교하지 말고 그 출석숫자에 숨어 있는 몇 가지 중요한 점들을 살펴보시기를 권합니다. 이번 주제에서 모처럼 교회의 부흥을 숫적인 면에서 살펴보기로 했으니 이왕이면 정말 교인다운 교인, 진정 부흥다운 부흥, 참으로 욕심을 낼 만하고 복음에도 유익한 부흥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br/><br/><br/>①전도로 인한 부흥과 타 교인의 유입으로 인한 부흥의 구성 비율<br/><br/>현재 불신 사회는 크게 느끼지를 못하는 것 같지만 이미 교계 내부에서는 가장 뜨거운 문제점으로 지적되는 사항입니다. 100명 교회 11곳이 있는 지역에 어느 한 교회가 600명으로 급격하게 부흥을 했는데 만일 이 교회의 500명 교인 증가가 주변 10개 교회의 교인 절반씩을 그 교회로 모아서 만들어진 대부흥이라면, 우리는 이 부흥의 내면을 살펴보지 않을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br/><br/>이곳은 일반 교계나 사회의 시각과 다른 기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경우에 무조건 비판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부흥하는 고신측 교회로 주변 타 교단 교회들이 옮긴 이유가 만일 신사참배에 대한 입장을 두고 현 소속 교회가 잘못 되었고 이를 회개하기 위해서는 고신측 교회로 가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어 그렇게 갔다면 이곳은 비판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배고픈 서민 동네에 돈많은 집에서 잔치를 한번 하자 온 동네 아이들이 그 부자집 부부를 아빠 엄마로 부르며 그 집에서 살기로 한다면, 이곳은 문제를 삼겠습니다. <br/><br/><br/>부부가 결혼해서 자기 배가 아프고 나서 아이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보리밥만 먹는 동네에 쌀밥만 먹여 준다니까 모두들 자기 집과 부모를 버리고 그 집에 가서 자녀가 된다면. <br/>가는 아이들은 철없는 죄가 있겠고 <br/>원래 부모들은 무능한 죄가 있겠습니다. <br/>그러나 동네 아이들을 한꺼번에 몰아간 그 집은 많은 죄목을 가져야 할 것 같습니다.<br/><br/>물론 보리밥 먹던 아이들을 쌀밥으로 먹여주었다고 할 터인데 그것을 부인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선은 그 아이들이 좋아할 것이고 또 그 부자집은 이웃을 위해 희생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훗날 넓은 범위로 냉정하게 손익계산을 해 본다면, 아마 생각하지 못했던 엄청난 폐해를 발견하게 될 것 같습니다. <br/><br/>과거 우리 사회는 모두가 좋아서 길을 닦았고 공장을 세웠습니다. 우리가 좋아 우리가 발버둥을 치며 그렇게 했습니다. 그리고 현재 우리 사회의 지식층부터 이런 과거의 개발이 가지고 오는 환경변화를 보며 아연 실색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환경운동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곳은 환경운동가들을 아주 싫어합니다. 그러나 환경운동이 지적하고 있는 문제점은 넓은 시야로 볼 때, 작은 일이 아닙니다. 아마 세상나라의 최우선 과제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br/><br/><br/>자기 부모가 폭행을 해서 도망 나온 아이가 오갈 데 없어 그 집에 신세를 진다면, 또 자기 집에서는 배불리 먹어보지 못하다가 이 교회에 와서 한끼 잘 먹고 갔다면, 또 부자집에서는 남의 집 아이에 대하여 전혀 욕심이 없는데 그 집에 양자가 되고 싶어 기어코 그 집에 머슴살이라도 하겠다고 찾아오는 그런 경우라면, 서로가 그럴 수 있다고 봅니다. 또 그런 저런 과정을 통해 결국 교계가 전체적으로 상호 보충이 되며 오히려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br/><br/>그런데, 동네 가운데 어느 한 가정이 온 동네 아이를 누구든지 자기 집 아이로 삼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면 그냥 쉽게 생각할 문제가 아닐 것 같습니다. 경제면으로만 말했지만 어떤 가정은 자녀 교육을 위해 회초리를 들고 엄하게 10여년 공부를 시키는 도중인데 옆의 가정에서 그 아이가 욕심나서 그를 데려오려고 우리 집에 오면 컴퓨터 게임이나 하고 극장에나 다닐 수 있도록 마음껏 해주겠다고 제의한다면, 이는 실로 엄청난 범죄라고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br/><br/><br/>살다보면 서로가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어렵고 아무리 욕심이 난다 해도 도저히 그래서는 안 되는 선이라는 것이 있을 것입니다. 별별 사람이 다 모인 곳이 교회이기 때문에 말린다고 해서 안 오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끌고 오려 한다고 끌려 오는 것도 아니지만, 예배당을 목회자가 혼자 팔아서 돈으로 챙기려고 교인들을 고의로 시험들게 해서 타 교회로 보내는 경우도 가끔 들리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웃 교회 다니는 교인들을 자기 교회로 데려다 놓기 위해 교리도 바꾸고 교회의 운영 기본 방향도 바꾸고 교회의 안팎 전부를 다 바꾸고 투자해서 전력을 한다면, 예배당 재산을 챙긴 목회자와 서로 그 죄가 그렇게 크게 차이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br/><br/>교회의 숫적 부흥은 우리도 부럽습니다. 그러나 만일 이런 식 부흥이라면 공회 노선은 죽는 것이 쉽지 그렇게 할 수는 없다는 편입니다. 이런 식이 아니라 자기 교회가 마땅히 자기 교인들을 바로 지도하고 바로 길러가는데 자연스럽게 옆 교회 교인이 그 교회가 부러워 꼭 오겠다면 올 수 있는 문제입니다. 그러나, 교회가 교회라는 이름을 가지려고 한다면, 안 믿는 사람을 전도해서 믿는 사람으로 길러가는 것이 부흥의 기본이고 교회 출석수를 놓고 부흥이 되지 않아서 고통을 느끼는 것도 지옥갈 형제를 구원한 실적이 부족해서 그러 해야 옳을 것입니다. <br/><br/>감리교에서 인본주의 구원관을 배워 도저히 건설구원이 바로 되지 않겠다고 느낀 목회자가 감리교인들을 장로교인으로 만드려고 마음을 먹고 감리교인들을 자기 교회로 데려 오기 위해 적극적으로 소개하는 경우가 있다면, 그런 정도의 이유가 진정 그 목회자의 진심이라면 반대하지 않겠습니다. 그렇다 해도 감리교인에게 장로교 목회자가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은 양 교파의 신앙노선을 비교하여 잘 파악하게 하는 정도의 방법에 그쳐야 할 것입니다. 감리교 예배당 앞에 플래카드를 붙이는 정도라면? 곤란하다고 생각합니다. 감리교인들 집집마다 심방을 다닌다면?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침례교에서 장로교의 유아세례가 잘못 되었다고 지적을 하되 장로교회 주일 예배 보는 예배당 안에 들어와서 휴대용 스피커로 고함을 지른다면, 저는 막겠습니다. <br/><br/>지금 우리는 교회의 숫적 부흥 문제를 두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부흥이 되어야 하는데 우리가 어떤 면으로 힘쓸 것인지를 놓고 살펴보기 이전에 현 교계 전체 분위기에서 가장 큰 문제로 지적하고 싶은 것 중에 하나가 이 교회가 저 교회 교인을 데려다 놓고 전도했다고 말하거나, 한 교회가 주변 교회 교인들을 자기 교회로 옮겨놓기 위해 요즘 교인들이 좋아하는 이벤트나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말리고 싶습니다. <br/><br/><br/>혹시 어떻게 하든 서로가 그냥 차갑게 가라앉아 있는 것보다는 뜨겁게 경쟁하며 노력하는 것이 좋지 않느냐고 할지 모르나, 차갑게 가라앉으면 가라앉아서 침몰하는데 몇 시간 걸릴 배가 잘못된 방법으로 구조하려다가 보면 순간적으로 침몰을 한다는 점이 걱정입니다. 한 교회가 다른 교인들을 데려 오는데 필요한 조처를 무리하게 시행하고 그 결과 일단 교인 확보에 성공을 하게 된다면 그다음부터는 그 지역 교회들이 서로 상대방 방법을 흉내내고 또 새방법을 도입하며 어떻게 해야 저 가게를 가지 않고 내 가게로 오게 하겠는가 하는 약육강식의 생존쟁탈전이 벌어지게 됩니다. <br/><br/>교회들을 책임진 목회자들의 머리 속이 이런 식으로 움직이게 되면, 그 순간 그 교회들과 그 지역 전체 신앙의 분위기는 다시 회복할 수 없는 바람 난 상태가 되어 버립니다. 공산주의가 자본주의 맛을 한번 들인 후 다시 공산주의로 돌아가지는 못하는 것처럼, 교인들의 세상 취향을 맞추어 교인들을 데려 오겠다는 쪽으로 목회자와 교회가 방향을 잡고 서로 경쟁에 돌입하게 되면, 단정하고 말씀드리지만 다시는 이전과 같은 교회가 가지고 있어야 할 내면은 되찾을 수 없게 됩니다. 쉰밥처럼 다시는 처음 밥맛으로 돌려놓을 수가 없습니다. <br/><br/>그래서 교회의 숫적 부흥이 분명히 우리가 걱정할 과제는 큰 과제이고 시간적으로도 미루어놓을 수 없는 응급한 문제인데, 다만 신중해야 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런 면이 있어 그렇습니다. 한 교회의 부흥 뒤에는 교인을 뺏긴 교회와 목회자의 호소가 만유주 하나님의 귀에 들리고 그 사연을 살핀 하나님께서 양도적의 심보로 그 부흥된 교회를 보실런지? 아니면 네가 그렇게 양떼를 굶기고 잘못 된 길로 데려가는데 다행히 너에게 있다 말라 죽기 직전에 옆에 있는 목장으로 가서라 배불리 먹고 살이 찌고 있으니 너는 그 양을 옆 목장으로 뺏겨야 내 마음에 만족이고 네 양을 먹여주고 있는 그 목자와 그 교회에게 주린 주님을 먹여드린 상을 내려야겠다고 하실찌? 살펴봐야 할 일입니다. <br/><br/><br/>일단 공회 소속 교회들은 이런 면에 있어서는 일반 교회와 비교할 때 단연 탁월한 장점을 가졌습니다. 적어도 타 교회 교인들을 목표로 그들을 전도하기 위해 사냥에 나서는 교회들은 거의 없을 것이고 혹 타 교회를 다니던 분들이 공회 소속 교회로 왔다면 세상 모든 다른 이유를 배제하고 꼭 이렇게 믿어야 옳기 때문에 살 길을 찾아 왔다는 식일 것입니다. 현재 공회 교회 중에 일반 교회처럼 급격하게 부흥하고 있다는 교회들이 몇 곳 있는데 그런 곳의 부흥법은 이런 면으로 생각한다면, 한번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br/><br/><br/>②안에서 길러낸 교인과 외부에서 들어온 교인으로 비교한 구성 비율<br/><br/>한 교회의 현 교인 구성, 한 교회가 부흥될 때 부흥된 교인의 구성, 그 구성 비율을 볼 때 교회가 내부에서 주일학교 중간간 장년반을 거쳐 생산해 낸 교인의 숫자와 외부에서 들어온 교인이 어느 정도로 구성이 되어 있느냐는 문제는 한 교회의 숫적 부흥을 볼 때, 단순한 숫자 증감의 비율을 능가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br/><br/>말하자면 80% 교인은 교회 내에서 생산되고 자라나온 교인이고 20% 교인은 외부에서 유입되어 온 경우와 자기 안에서 자란 교인은 20%고 외부에서 들어온 교인이 80%라고 한다면, 단기적으로는 후자가 눈부신 부흥으로 주변의 주목을 받지만 그 교회는 지금 얼음 위에서 묘기를 부리는 것과 같고 심지어 현 상태를 모래 위에 지은 집이라고까지 말해야 할 만큼 문제가 많습니다. 어느날 그 교회 내에서 잡음 한번만 일어나면 그 교회 자체가 금방 없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br/><br/>자연계시를 통해 우리는 성장에 대한 여러 모습을 참고할 수 있습니다. 열 달을 채우고 나오는 아이가 2개월 일찍 나온 아이에 비하여 세상을 늦게 출발하지만 결국 앞서게 됩니다. 밑으로 뿌리를 많이 뻗고 올라가는 바위산의 나무들은 어떤 태풍에도 뿌리가 뽑히지 않지만 거름기 많고 바람 없는 좋은 곳에서 쭉쭉 뻗고 자란 나무들은 모처럼 닥친 큰 바람 딱 한번 앞에 그냥 뿌리채 뽑혀 옆으로 드러눕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br/><br/>목회자가 교회의 내실이 중요하다 하여 내부 교인을 길러내는 일에 주력한다며 전도하지 않는 것도 우습지만, 그렇다고 내부에서 자라나오는 교인 하나의 출석 숫자가 가지는 의미를 모르고 외부에서 데려오는 교인의 숫자만 관심을 가지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br/><br/><br/>③신앙으로 발전하면서 부흥되는 교회와 신앙을 포기하고 부흥되는 경우<br/><br/>교회의 숫적 부흥을 위해 노력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교회이기 위해서 유지해야 하는 것까지 다 내어주고 부흥이 된다면 이런 부흥은 부흥이 아니므로 아예 논의에서 제외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군인이야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이겨놓고 봐야 하고, 장사는 벌고 봐야 하지만, 교회는 부흥을 위해서라 해도 내놓을 수 없는 선이 있습니다. 이 면은 각 교회가 소속에 따라 다 다르겠지만 이 홈에서 드릴 수 있는 말씀은 공회 교회가 공회 교회의 최소한 지켜야 할 선을 부흥에 걸림이 되어 포기를 하려 한다면, 일단 공회를 탈퇴하여 합동측으로 가입한 여러 교회들처럼 그렇게 하는 것이 옳습니다. <br/><br/>순복음교회는 순복음교회니까 순복음교회로서 할 수 있는 일이 대단히 많습니다. 고신은 개혁주의 신앙노선만 지켜진다면 상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공회 교회는 백영희신앙노선의 근본을 지키면서 그다음 부흥이 된다면 부흥이지만 만일 부흥을 위해 이 신앙노선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다른 홈에서 다른 교단의 부흥법을 두고 논할 문제이지, 공회 교회의 부흥법을 논하는 이 자리에서 논할 일은 아닐 것입니다.<br/><br/><br/>④그 교회 노선에 붙들린 교인과 현재 교회 상황에 붙들린 교인의 구성 비율<br/><br/>설명이 길어질 것 같아서 앞에서 설명한 내용으로 대신했으면 합니다. 한 교회의 부흥에 있어 무조건 주일오전 출석의 숫자만 가지고 숫적부흥이라 하지 말고 그 교회를 다니는 교인들 중에 그 교회가 속한 노선이 좋아서 그 교회 노선 때문에 속한 교인의 증감과 단순히 현재 그 교회의 모습과 운영이 자기에게 맞아서 다니는 교인의 구성 비율은 반드시 살펴봐야 할 것입니다. <br/><br/>이 홈은 백목사님 생전의 서부교회를 한국 최대교회로 소개한 적이 많습니다. 1980년대 말 순복음교회가 60만명 재적을 헤아릴 때 서부교회는 불과 수만 명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6.25 전쟁 때 부산지역으로 전쟁 난민이 수도없이 쏟아져 들어와서 부산이 전쟁 기간 한반도의 최대도시가 되었는데 이런 현상은 전쟁이 끝나자 즉시 사라졌습니다. 바람으로 잠깐 모아지게 된 숫자와 그 신앙노선에 한 사람 한 사람이 투사가 되다시피 소속한 교인의 숫자는 차이가 있습니다. 말하자면 특전사 요원 1명과 방위병 1개 중대는, 아마 머리 숫자로 전력을 비교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br/><br/>그렇다면 공회 교회의 부흥을 현재 출석 숫자로 평가할 때는 일반 교회에 비하여 공회 교회 소속 교인은 적어도 2배 이상의 소속감이나 신앙노선에 의하여 교회를 소속하고 있는 면들이 2배 이상 강하다고 표현해도 그렇게 무리는 없을 듯 합니다. 그렇다면 공회의 50명 교회는 일반 교회의 100여명과 맞먹고, 공회 교회 200명 교회는 일반 교회 500명 교인 교회 등으로 계산해야 할 면이 있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있습니다. <br/><br/><br/>⑤말씀에 붙들린 교인과 찬송이나 활동에 붙들린 교인의 구성 비율<br/><br/>꼭 같이 교회를 다녀도 그 교인이 그 교회의 설교에 붙들린 경우와 말씀 외 찬송이나 전도회 모임이나 찬양대 활동 또는 외부 봉사 활동 등으로 그 교회에 붙들린 경우는 다른 평가를 받게 됩니다. 외부로는 안 믿는 사람을 전도하고 또 밖에서 들어오는 타교회 교인도 자기 교인으로 바로 길러가야겠지만 한편으로 교인의 숫자를 볼 때 말씀에 붙들린 숫자와 그냥 출석 교인 전체 숫자는 따로 눈여겨 보고 계셔야 할 것입니다. <br/><br/><br/>⑥교인의 교회 출석 평균 기간으로 본 교인의 구성 비율<br/><br/>교회를 1년 다닌 교인 100명으로 된 교회의 교인수와 10년 다닌 교인 100명 교회는 교회의 출석숫자 면에서 후자가 10배 많은 교회일 것입니다. 전자의 기준으로 본다면 후자 교회는 1000명 교인이 됩니다. 교회의 부흥을 두고 볼 때, 해마다 조금씩 증가를 해도 기존 전도된 교인이 유지되면서 새로 교인이 추가되는 교회는, 교회를 그만 두는 교인들을 새로운 교인들이 메꾸어가며 전체적으로 더 많이 증가하는 교회보다 낫습니다. <br/><br/>과거 서부교회 주일학교로 예를 들면 늘 100명 이상 출석하는 반이 있는데 2년 이상 교회를 출석한 학생은 거의 없고 늘 물갈이가 되면서 외부적으로는 100여명이 유지되는 경우가 있었고, 반면에 올해 10명, 다음해에는 20명, 그 다음해에는 30명으로 조금씩 늘면서 앞서 교회 나온 학생들이 교회를 다닌 지 벌써 2년 되고 3년 되는 학생들이 계속해서 증가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교회의 일반 부흥도 그러합니다. 신도시 교회들은 한번 바람에 따라 쏠려왔다가 그다음에 상가의 경기나 회사의 감원에 따라 다시 소속 교인이 뒤바뀌며 유지되거나 또 부흥된다는 교회들이 있습니다. 물론 그런 지역에서 그런 종류의 일반인을 대상으로도 목회를 해야 하고 그런 상황에서는 그렇게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어렵겠지만, 교회의 숫적인 면을 굳이 따지려고 한다면 한 교인의 출석지속기간에 가산점을 부여한 형태로 교인의 숫자를 따지는 것도 큰 의미가 있을 듯 합니다. <br/><br/>이런 점에서도 공회의 교인 숫자는 사실 일반 교회의 교인 숫자와 단순히 머리숫자로만 비교하기에는 너무 감추어져 있는 숫자가 많습니다. 말씀에 붙들려 교회를 다니는 교인의 숫자가 월등히 많고, 노선에 확정을 짓고 소속한 교인의 숫자도 그러하며, 한 교회에 지속적으로 출석한 가산점을 고려하고 교인의 숫자를 계산한다면 공회 교회의 출석숫자는 단순 출석 수치 이상의 숨어있는 숫자를 읽어야 타교회와 실제 출석수를 비교할 수 있습니다. <br/><br/><br/>⑦1주 평균 예배 참석 횟수로 본 교인의 구성 비율 <br/><br/>매주 한번 교회를 출석하는 교인의 숫자가 1천명인 교회와 매주 주일 오전 오후 수요일 금요일 밤예배까지 4번을 출석하는 교인 250명 교회를 출석숫자에 있어 비슷하게 본다면, 너무 지나친 표현일까요? 과거 백목사님 생전 서부교회의 주일오전 장년반 출석이 4500명일 때, 오후예배는 3800명, 밤예배는 3000명, 새벽예배는 1000명 정도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런 교회의 교인 숫자를 주일날 10부 예배를 보면서 아무 시간에나 편리하게 한번 왔다 간 교인의 총합이 5만명 되고, 밤예배는 2-3천명밖에 안 되고 새벽예배는 2-300명 보는 국내 최대급 교회와 비교한다면 어느 교회를 숫적 부흥에 있어 더 부럽게 더 모델로 놓고 연구를 해야 할까요? <br/><br/><br/>2.공회 교회의 출석교인 숫자를 일반 교회와 비교할 때는 이런 면도 고려해야 합니다.<br/><br/>첫번째 글에서는 제목만 말씀드렸지만, 공회 교회의 출석 교인숫자는 일반 교회의 출석숫자와 비교할 때 1:1로 환율계산하듯 해야 할지, 1:2로 해야 할지, 심지어 1:10으로 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고부가가치화 된 교인임을 기억했으면 합니다. 지금 1달러면 우리돈 1000원 이상을 맞먹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특전사 100명 군인과 방위병 100명은 총병력을 가지고 말할 때는 같은 1명이지만, 전력으로 볼 때는 1:100 이상일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일본이 비록 군인의 숫자로는 형편없지만 군사력에서는 세계 2-3위에 올려져 있는 것을 참고했으면 합니다. <br/><br/>우리는 교회 부흥을 위해 타 교단에서 100명 교회가 200명으로 부흥되는 예가 많은데 왜 우리 진영은 100명 교회가 1-2명 더 전도하는 문제를 두고 그렇게 세월을 보내고 있느냐고 탄식을 하는 것이 옳습니다. 그러나 이번 주제처럼 보다 객관적으로 교회의 부흥문제를 살펴보자는 주제가 주어진다면 이런 경우는 차분하게 외부 교단의 부흥 내면과 공회 교회의 교인 구성과 그 내면을 비교하며 환율계산까지 고려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br/><br/><br/>①주변 교회 교단 교계 전체가 이렇게까지 가로막고 견제하는 속에서 발전을 이룬 예는 없습니다. <br/><br/>이단에 속한 교단이 아니고는 총공회처럼 이렇게 주변 교회와 교단의 집중 방해를 받으며 존재해 온 교회는 거의 없습니다. 특히 정통교회의 중심에 있는 몇몇 교회의 경우는 주변의 견제에 의하여 이름만 남고 전부 고사해버렸다고 할 정도입니다. 그러나 극단적으로 모든 교계의 집중 훼방을 마치 사라호 태풍에 강타를 당하듯 그렇게 당하고도 오히려 오늘까지 조금씩이라도 발전해 왔다는 점에서 공회 교회와 그 교인들의 외부적 숫자의 1명의 의미는 일반 교회의 교인 1명과는 같을 수가 없습니다. <br/><br/>부모 없이 대학을 졸업하고 중소기업에 취직하여 20평 아파트에서 가정을 마련한 가장과 명문 대가 귀한 집 아이로 과목별로 개인교사를 두고 대기업에 취직하여 36평 아파트에 살고 있는 가장과 얼른 보면 후자가 더 큰 복을 받은 듯 보이지만 제 생각에는 전자가 아마 여러 배, 아마 수십 배 더 큰 복을 받았다고 보일 것 같습니다. <br/><br/>우리 사회에, 그것도 장로교 일색으로 되어 있는 상황에서 '대한예수교장로회'라는 간판없이 이단으로 공인을 받은 상태에서도 이 정도로 자라와서 오늘을 이루고 있다면, 이 공회의 저력과 전도력과 교인 흡수력은 아마 한국교회의 전도학 사례로 집중 조명을 받아야 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지금 그런 내실은 훗날의 평가에 맡겨두고 머리 숫자에서조차 일반 교계에 뒤떨어지지 않을 방법을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부흥법 연구의 차원과 일반 교계가 이미 이루었다는 실적은 처음부터 비교의 대상이 되지 않을 수준일 것입니다. 말하자면 특목고에서 반에서 중간을 하지 못해서 애타는 학생과 야간 공고 반에서 1-2등을 다투는 학생의 고민은 사실 비교하는 것 자체가 무리입니다만, 특목고 중간 실력 학생이 야간 공고 1등을 하기 위해 노력하는 학생의 그 1등이라는 수치를 자기도 가지고 싶어 더욱 매진한다면 더욱 좋을 일일 것입니다. <br/><br/><br/>②성경의 교회 운영법과 전도원칙에 이렇게까지 철저하게 충실하고도 발전한 경우는 없습니다.<br/><br/>공회 소속 교회들의 부흥은 비록 그 수치의 편차가 다른 교단 중 대표적으로 부흥에 앞서가는 곳들과 비교할 많이 부족하지만 그래도 공회의 부흥은 성경의 교회 운영법에 엄격했고 폭발력이 있는 몇 가지 좋은 기회들조차도 성경의 전도원칙에 어긋나는 것은 사양하고 이루어온 부흥입니다. 따라서 공회의 부흥은 일반 교회의 부흥과는 그 내용이 아주 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br/><br/>이번 주제에서는 일반 교단에 대한 비판을 모두들 조심하고 있지만, 분명한 것은 지금까지 한국교회 어느 교단이든지 교회의 숫자가 많아지고 교인의 숫자가 증가할 수 있는 방법과 길을 알고도 그것을 포기한 곳은 없다는 것입니다. 신학교로 말하자면 신학생을 받는데 주저해 본 곳이 없고 목회자로 말하자면 교인을 받는데 주저해 본 곳을 보지 못했습니다. <br/><br/>안 믿는 사람을 전도하는 일에 제사 문제 같은 것을 현재 모두들 추도식으로 비껴 가고 있지만 공회는 이를 엄하게 구분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고도 안 믿는 사람 전도 위주로 부흥이 되었다는 것은 일반 교계가 볼 때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을 한 것입니다. <br/><br/>예배를 교인들의 편리를 봐서 몇 부로 나누는 일도 하지 않고 있는데 이런 것도 교회 부흥에 있어서는 아주 손해를 보는 일이며 집사나 장로를 무차별로 세워서 교인을 붙들고 확보하는 교계 속에서 그런 면을 초월한 것도 공회의 부흥은 다른 교회의 부흥과는 아주 구별되는 것 중에 하나입니다.<br/><br/><br/>③말하자면, 부흥을 위해서는 가장 불리하고 불가능하다는 조건만 가진 속에서 발전했습니다. <br/><br/>이단이라는 주변의 방해, 혹 이사를 통해서라도 주변의 공회 교회를 다니려고 하면 일반 교회 다니는 친척들이 총력으로 말려서 다른 교파 아무 곳이나 가게 하는 일, 교인들이 교회에 정을 붙일 수 있도록 배려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전무한 교회, 설교만 길게 이어지던 교회, 재미라고는 어느 구석 하나도 찾아 볼 수 없는 환경이 공회 교회들의 안팎 환경이었습니다. <br/><br/>이런 현상은 갈수록 심화되어 간판에서부터 찬송가에 이르기까지 또 예배당 치장에서부터 학생회 금지, 청년회 활동이나 찬양대까지도 광범위하게 금지되어 정상적인 공회 교인은 타 교회 전도사 이상의 절제된 생활과 여러 가지 지켜야 할 면이 많았습니다. <br/><br/><br/>④총공회 부흥의 가장 큰 특징 중에 하나는, 불신자 전도가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이었습니다.<br/><br/>이런 중에도 공회 교회들의 부흥은, 일반 교회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불신자 전도의 비율이 월등하게 높습니다. 그렇게 전도를 받아 공회 교인이 된 초신자들이 공회 교회를 조금 다니다 보면 자기 수준에서 다른 교회로 옮길 때 집사가 될 수 있고 세례를 당장 받을 수 있으며 또 여러 재미있고 좋아보이는 프로그램들이 많은데, 특히 공회 교회는 타 교회를 다니는 이들을 우리 공회 교회로 오라고 하지 않지만 일반 교회들은 펴놓고 공회 교인들에게 전도를 하는 정도입니다. <br/><br/>안 믿던 사람이 공회를 거쳐 일반 교회로 간 교인의 숫자와 타 진영에서 믿어 공회로 들어온 교인의 숫자를 조사한다면 아마 타 교회로 넘어간 숫자가 몇 배는 넘을 것입니다. 이는 공회가 불신자 전도에 아주 열심이고 일반 교회는 다른 교회 교인들을 끌어오는 일에 열심이다 보니까 일어나는 자연스런 현상인데, 그런 면을 감안하고도 공회가 조금이라도 부흥이 되었다면, 공회 부흥의 수치는 일반 교회와 같을 수 없다고 하겠습니다. <br/><br/><br/>⑤다른 교회와 교단 교계가 이런 길을 걸었다면 생존 자체가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br/><br/>아마 다른 교회가 이런 원칙과 이런 면으로 일관되게 교회를 운영했다면 교회의 존립 자체가 어려웠을 것 같습니다. 물론 각 교단은 자신들의 생존법칙이 따로 있고 부흥기법 역시 교단의 본질과 이어지는 면으로 개발되고 있을 것입니다. 신앙없는 사람이라고 전도를 적게 하는 것이 아니며 신앙있는 분이라고 해서 전도를 많이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교회의 본질을 조금이라도 깊이 이해하고 생각하는 분들이라고 한다면 공회의 부흥은 일반 교회와는 그 내용이 아주 다르며, 교파에 상관없이 교회가 교회로 유지 존립하려면 공회식으로 전도하고 운영되는 것이 옳다고 인정할 것 같습니다. <br/><br/>예를 들면 고신은 교계에서도 원칙노선에 충실하기 유명한 곳이지만 1970년대 순복음교회가 박수치고 안수하고 방언하는 것으로 전도에 효력을 볼 때 처음에는 이단이라고 비판을 했지만 결국은 자신들도 오늘은 그렇게 하고 있는 정도입니다. 다수의 고신은 그렇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나 자신들의 교리와 자신들 교단의 효력있다고 하는 전도법 중에서 택일을 하라고 한다면 부흥과 성장을 택하지 교리와 노선을 택하지는 않습니다. <br/><br/><br/>⑥물론, 가장 중요한 상황은 백영희목사님이라는 시대적인 점L 있었기 때문입니다. <br/><br/>이 모든 논리를 두고, 만일 어느 분께서 그 모든 것이 가능한 것은 백목사님의 생전이었고 그분이 시대적인 점L었기 때문이니 현재 우리가 택할 길은 어느 길이겠냐고 반문할 듯 합니다. <br/><br/>그렇습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으로 끝낼 것 같으면 지난 과거에 집착하여 지난 날을 써먹을 뿐입니다. 그런데 그때 그 공회의 부흥이 그렇게 어려운데도 그렇게 의미있는 결과가 있었다면 오늘은 어떠한지를 살펴봐야 할 것입니다. 오늘도 초두에 말씀드린 것처럼 그때처럼 의미있는 부흥을 이어가는 교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때와 지금의 달라진 환경 때문에 고통을 받는 교회들은 거의 다 그때의 부흥법이 지금에 적용이 될 수 없어서가 아니라 여러가지 개별적으로 다른 이유들이 있어 그러하다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br/><br/>쉽게 말하면, 공회가 원래 공회의 부흥법에 철저하면 우선은 고객 확보에 어려움이 많고 효율이 없는 듯해도 결국은 알짜배기 진짜 고객들을 확보하게 될 것인데, 다른 곳에서 즐겨 사용하는 당일 매출 위주의 장사법을 흉내내다가 오랜 투자로 확보하는 고객도 또 당일 한번 오는 손님도 받지 못해서 죽도 밥도 아닌 그런 상황에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br/><br/><br/>⑦총공회 과거 부흥사는 백영희 부흥사(史)이지 총공회 부흥사가 아니었습니다.<br/><br/>여러 어려움이 많은 중에서 가장 부흥에 불리한 조건만을 골라가면서도 신앙노선에 바로 서서 교회를 지키려고 노력했고 또 나아가 교회를 부흥시키려고 노력한 공회 교회들은, 비록 일반 교회들 중에서 앞서 가는 부흥 교회들만큼 부흥의 실적을 올리지는 못했으나 그래도 의미 있는 부흥이 있었고, 또 그 부흥의 내용을 두고 가산점을 부여하려 한다면 정말 대단한 부흥을 우리는 이루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br/><br/>그런데 그 모든 부흥법은 백목사님이라는 지도자가 있었을 때 그분의 지도 아래에서 가능했다고 말할 수 있으므로 공회의 부흥역사는 백목사님의 목회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미 그가 세상을 떠난 상태이므로 우리는 백목사님 사후, 그분이 없는 상태에서 우리가 교회 부흥을 위해 노력할 분야가 무엇이며 어떤 면을 과거 경험에서 참고하고 어떤 면은 오늘 우리가 걸어가야 할 새로운 환경에서 새롭게 대처하여 마치 그가 자기 시대를 감당했듯이 우리는 우리 시대를 감당해야 하겠는가? <br/><br/>이런 면들을 다음 세번째 글에서 살펴보겠습니다. <br/>------------------------------------------------------------------------------<br/><br/><br/>공회교회의 부흥에 대하여 (글3) - 공회식의 우수성과 내분의 아쉬움 <br/><br/><br/>공회 내분만 넘어서면, 서부주교식 부흥법으로 충분히 부흥 가능 (yilee 글 3)<br/><br/><br/><br/>1.공회의 지난날, 그리고 오늘까지를 생각해도, 일단 공회 교회라면 부흥법에 먼저 생각할 요소는<br/><br/>①서부교회 주일학교식 심방과 전도가 가장 좋은 교회의 부흥법입니다.<br/><br/>전도지를 들고, 꾸준하게 주변과 이웃을 찾아 기회되는 대로 전하되 이미 교회를 다니는 가정에는 매주 한번씩 심방을 하고, 조금 어려운 가정은 기간을 더하거나 덜하면 됩니다. 듣던지 아니 듣던지, 하루 몇 집을 정하든, 한 주에 몇 집을 정해놓고 목회자와 핵심 교인들이 앞서 전도하는 이 일을 중단하지 않고 계속하게 된다면 교회의 부흥은 그 증가율이 문제이지 부흥이 되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br/><br/>단기간에 보다 많은 부흥숫자를 생각하고 조금이라도 특별한 방법을 사용하는 것은, 특효약을 투입하는 것과 같아서 얼마나 조심해야 할지 모릅니다. 산삼도 녹용도 좋지만 일단은 하루 3끼 정확하게 평소 균형 잡힌 식사에 충실한 것이 훗날 계산하면 가장 좋은 성장법이었을 것입니다. 지금 세상의 모든 통계들이 무슨 특효약을 강조했다가 돌고 돌아서 마지막에는 가장 기초적이고 근본적인 자연법이 최상의 법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br/><br/>이번 주제가 올려진 /문의답변/에서 답변자 위치에서 제가 제일 먼저 올린 답글은 목회자들이 게을러서 그렇다고 했습니다. 당시 첫 질문자께서 제가 드리는 말씀을 그렇게 심각하게 대하시는 느낌을 갖지 못했습니다. 성경의 전도법 첫째는 때를 얻든지 못얻든지 복음을 전하는 자들은 오직 열심히 전하는 그 이상의 방법이 없습니다. 죽도록 충성하라는 말씀과도 통합니다. 사람의 말과 지혜로 하지 않고 오직 우리의 충성을 보시고 성령이 상대방을 감동시킬 때만이 가능한 것이 교인 전도방법입니다. 그외에 다른 전도 방법이 있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지금 계산을 아주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br/><br/>다른 교회 교인들을 이곳으로 돌려놓는 차원에서 노력하는 것을 전도라고 생각하지는 않을런지!<br/>불신자에게 예수님을 믿도록 만드는 것이 인간 기술로 하면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br/><br/>다른 교회 교인들이 나의 교회가 좋아서 오도록 하는 문제는 정말 하나님 앞에 몇 번을 생각해도 조심할 문제이고 양도적이라는 단어를 되새겨 봐야 할 사안입니다. 꼭 우리 교회 교인들을 위해서 하는 일인데 결과적으로 옆에서 알게 되어 관심을 갖게 된 것과 그 행사나 기획을 처음 할 때부터 다른 교회 교인들을 움직이게 하려는 고려를 한 것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br/><br/>특히 안 믿는 사람이 교회를 오게 되는 것은, 정말 오로지 기도하고 항상 전도에 힘쓰는 것 외에는 도저히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공회 교회의 부흥은 항상 불신자 전도가 차지하는 비율이 타 교회 교인들이 교회를 옮기는 비율에 비하여 확실하게 많은 이유가 공회 교회는 전도의 방법을 늘 그렇게 하기 때문입니다. <br/><br/>지금 전국적으로 부흥에 관하여 유명하게 눈에 띄는 교회들이 있습니다. 그 교회들의 부흥 간증에서 거의 빠짐없이 눈에 띄는 것은 주변 다른 교회 교인들을 흡수했다는 것입니다. 일반 중소 교회의 청년부에 다니던 이들이 별로 교회 출석의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가 어느 교회의 프로그램과 교회 운영이 너무 좋아서 그쪽으로 몰리게 되었다는 식의 이야기입니다. 그쪽으로 옮겨간 그 교회의 그 프로그램이 천국을 더 잘 소개했다거나 천국을 준비하는 일에 어떻게 더 도움이 되었다는 내용을 본 기억은 없습니다. <br/><br/>한 교회의 부흥법이 갈릴리 바다로 배를 타고 나가서 그물을 던져 고기를 잡은 것인지, 타 교회 수족관에서 그냥 퍼올려버린 것인지? 자기 배로 하나씩 낳아서 기르며 거느린 아이들인지, 다른 부모들에게 자식 잃은 슬픔을 남기는 몰아온 남의 가정 사람들인지. <br/><br/><br/>②우리는 전도할 때, 다른 교회를 다닌다고 하면 그 교회를 잘 다니라고 합니다.<br/><br/>진리가 좋아서 온다는 것은 말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입으로 다른 교회를 다닌다고 하면 꼭 다니는 그 교회에 잘 다니도록 격려를 합니다. 못난 부모 밑에 잘난 자녀가 있다고 해도 그 아이에게는 그 부모가 가장 좋은 부모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거의 모든 외부 교회들은 분명히 다니는 교회가 있다고 해도 자기 교회로 가자고 합니다. 가자고 하는 이유는 자기 교회가 더 재미있기 때문이며 사랑이 더 많기 때문이며 ..... 이런 이유입니다. <br/><br/>교회의 본질을 부모와 가정으로 보지 않고 지리적으로 구역을 나누는 일반 교회의 인식부터가 그런 행동이 나오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습니다. 심하게 말하자면 구조적으로 그럴 수밖에 없는 교훈이기 때문입니다. 이에 비하여 공회 교회는 자기 식구는 자기 육의 자녀보다 더 아끼지만 동시에 남의 아이는 그 가정에 그렇게 잘 길러지기를 소원하고 있습니다. <br/><br/>이렇게 하기 때문에 공회 교회들의 부흥이 다른 교회들에 비하여 현저하게 떨어지는데 그대신 그렇게 해서 단기간에 크게 부흥하는 일반 교회와 공회의 원칙에 충실하여 부흥이 느린 공회 교회의 교인의 구성은 단순히 교인의 숫자를 교인의 숫자로만 비교하는데 무리가 있을 만큼 전혀 다른 차원의 교인들로 채워지고 양성되고 있다는 점을 두번째 글에서 집중적으로 살펴보았습니다. <br/><br/>공회 교회 교인들에게 우리 교회에 오면 추도식을 해도 되고 교회식 제사를 지내도 되니까 우리 교회로 다니자고 하면서 그 교회는 추도식도 교회식 제사도 지내지 못하게 하는 아주 나쁜 이단 교회라고 주변에서 집중적으로 공회 교회의 교인을 끌어가려고 한다면, 이번 주제처럼 교인의 출석 숫자 중심으로 살피는 경우 이런 요인은 아주 엄청나게 현장에서 크게 작용하게 됩니다. <br/><br/>공회 교회와 일반 교회가 나란히 한 가정을 전도하기 위해 노력할 때는 공회 교회의 노력이 훨。 뜨거워서 공회 교인 때문에 안 믿는 사람이 교회를 나갈 분위기로 돌아서게 되었는데 그런 순간이 오게 되면 주변 다른 교인들도 가깝게 사는 이들이 이를 알게 됩니다. 바로 그 순간에 공회 교회를 가게 되면 제사를 지내지 못한다고 해서 자기 교회로 돌려 세운 교인의 숫자가 만일 현재 공회 교회를 출석하는 그 교회 교인 전체 숫자만큼 된다면. 그래서 옆의 교회가 공회 교회보다 절반 밖에 되지 않아야 하고 공회 교회가 그 교회보다 두 배나 많아야 하는데도 오히려 출석의 숫자가 반대가 되어있는 교회들이 실제 있다면. 우리는 이런 교회들의 경우를 두고 일반 교회들의 부흥법을 도입해야 하겠는지 아니면 조용히 자신을 돌아보며 그 교회에 필요해서 하나님께서 보냈다고 생각하고 또 오늘 전도해야 할 가정을 열심히 찾는 것이 공회 교회가 할 일인지. <br/><br/><br/>③백목사님 설교록을 잘 참고하여 설교자의 설교에 비교 우위까지 가진다면 금상첨화일 것입니다. <br/><br/>주일학교 반사가 주일학생들을 전도하고 심방하듯 그렇게 하는 것으로 다른 교회의 여러 전도 기술이나 전도 아이디어를 대신하고, 그리고 교회 내부의 운영은 설교 시간에 백목사님 설교 내용을 잘 참고하여 강단에서 은혜되는 말씀을 전한다면 아마 일반 교회의 어떤 전도법이나 교회 내부의 탈선에 가까운 프로그램과 경쟁해도 충분히 공회 교회의 부흥을 담보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br/><br/>저는 아직 노장측에 들어갈 수 없는 40대 목회자입니다. 또 공회 내에서는 현재 외부 선진 기법을 도입한 어떤 목회자들보다도 일반 교회의 현란한 기술들을 많이 접해 보았습니다. 아직은 목회자들이 주일학교 반사들의 자세로 전도하고 심방하고 그리고 목회설교록 내용으로 설교하게 된다면 어떤 교회 어떤 교단과도 교인 확보력에 있어 뒤질 수가 없다고 자신합니다. 그렇게 하는데도 불리한 경우가 있다면 그것은 간판 때문이며 찬송가 때문에 영향을 느낄 것입니다. 그리고 추도식 등의 문제가 더 큰 문제인 교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문제는 상대 교회들이 양도둑질을 하겠다며 공회 교회를 표적으로 삼는데 함께 맹수처럼 싸우지 않음으로 당하는 것이니 응당 당하는 것이 정상이고 그것으로 인하여 뺏긴 교인이 있다면 하나님만 아시는 뒷계산이 계실 것이니 전혀 문제될 것이 없을 것입니다.<br/><br/>실제로 그 지역사회의 교회 부흥에 가장 노력한 것을 하나님은 아실 것이고 이렇게 노력한 그 교회로 출석해야 할 교인들을 주변에서 양도적이 되어 훔쳐 간 숫자는 하나님은 속셈하고 계실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 눈에서 숫적으로 뒤쳐지는 것만 문제인데 우리가 적어도 종교계라는 범위에서 활동하면서 매출의 액수 하나만으로 전부를 삼고 이런 여러 숨어있는 요인을 완전히 배제한다면 이미 종교계라는 단어조차 사용해서 안 될 정도가 아닌겠는가 생각해 봤으면 합니다. <br/><br/><br/>④정작 공회 교회들의 현 침체 원인 중 하나는 내부의 투쟁이었습니다. <br/><br/>공연히 공회 내의 수정측에서 공회 소속 전체 교회를 한 손에 틀어쥐겠다고 불장난을 한 것. 그것이 1989년에서 1990년 사이 1년 정도의 투쟁이었고, 그후 서부교회 내에서 죽든 살든 강단은 틀어쥐겠다며 먹고 보자는 식의 투쟁으로 나간 세월 10여년. 이 내부 분열이야 말로 공회의 오늘 침체를 가져온 제일 원인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br/><br/>혹 이곳을 향해 그때 수정노선에서 다 먹으려고 할 때 이곳이 조용히 먹혔으면 아무 일도 없고 평안한 가운데 발전이 있었을 것이라고 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6.25남침에 남한의 저항과 역공이 없었더라면 그렇게 많은 사람이 죽지 않았을 것이고 또 50년 전에 이미 우리나라는 통일 조국을 갖게 되었을 것입니다. 남한에서는 김구선생님과 같은 분들의 생각이 그럴 것이고 북한에서야 전부가 그럴 것입니다. 그런데 이승만이라는 아주 나쁜 인간이 그런 쉬운 길을 버리고 미국을 끌어들여 오늘의 한반도 정세가 되도록 만들었다는 세상 집권층의 논리가 요즘 자주 들리고 있습니다. <br/><br/>교회 내의 알기 어려운 신령한 세계를 가끔 하나님께서 이렇게 주변 세상 이야기를 통해 짐작할 수 있도록 표시를 하고 계십니다. 그렇습니까? 아닐 것 같습니다. 마찬가지로, 공회의 지난 날이 틀렸으면 지난 날을 회개하자고 해야 했습니다. 공회의 지난 날이 옳았다면 백목사님 사망을 계기로 일반 교회화 하자고 주장한 이들이 백목사님을 우상화 한 사람들입니다. 백목사님이 우상이 아니라면 그가 있든 없든 옳으면 가는 것이고 틀리면 못 가는 것입니다. 백목사님이 없는 시대이므로 이제 과거 그의 생전처럼 걸어서는 안 되겠다고 논리를 펴는 것은 아주 잘못된 논리입니다. 잠깐 공회 내부 투쟁의 원인을 두고 반대측을 비판해 보았습니다. 지금 이번 주제는 그쪽이 아닙니다. <br/><br/>어쨌든 공회는 1989년 이후 10여년을 한국교계 전체가 구경거리로 볼 수 있도록 갖은 싸움을 했습니다. 저는 서부교회 마당에 발을 들여놓지 않은 지가 벌써 10년이 넘습니다만, 부산의 여러 곳은 여러 기회에 다닐 일이 있습니다. 안 믿는 분이든 타 진영 분이든, 서부교회의 피터지는 10여년 투쟁 내면은 모르는 분들이 없습니다. 다른 교회들이 그 정도가 되었다면 존립 자체도 어려웠을 것인데 서부교회의 생존력과 교인 흡수력이 얼마나 강한지 그렇게까지 일을 벌이고도 현재 숨을 쉬고 있다는 것이 기적입니다. <br/><br/><br/>⑤이번 주제의 첫 발제자는 '서부교인'입니다. <br/><br/>서부교회로 예를 들 수 밖에 없습니다. 지금 서부교회 핵심 교인으로서 첫 발제 때 말씀하신 내용을 볼 때 서부교회의 내면을 잘 알면서도 현재 누구 못지 않게 교회 부흥에 대하여 사력을 다해 그 길을 찾고자 한다는 중심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또 그런 중심을 이해하기 때문에 보기 드문 장문으로 제 입장을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br/><br/>현재 공회 교회 전체가 다 그러하지만, 분명히 서부교회의 부흥 문제를 두고는 우리가 짚을 가장 특별하고도 큰 요인이 있습니다. 한 예배당 안에서 2층과 4층으로 교회가 나뉘어서 따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목회자가 두 분이고 교인이 둘로 나뉘어 두 교회가 되었는데 여전히 한 교회 대문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연보를 따로 모으고 있습니다. 집회도 따로 하고 있습니다. 중간반 모임도 예배도 행사도 심방도 직원채용도 전부 각자 따로 하고 있습니다. <br/><br/>지나가다가 한번 들러보는 교인은 모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조금 교회에 관심을 갖고 회원급이 되려는 마음을 가질 때는 반드시 이 문제를 남몰래 눈치를 채게 되며 과연 이 교회에 다녀야 할지 혼자 시험에 들게 됩니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외부에서 교인을 전도해서 안으로 데려와야 하는 핵심 교인들이 교회 내부의 이런 분열 시험거리를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전도에 힘을 낼래야 낼 수가 없다는 것이 더 큰 문제입니다. <br/><br/>그리고 전도가 될 수 없는 더 크고 원인적인 문제는, 현재 서부교회의 목회자부터 어지간한 교인들까지는 전부 두 쪽으로 나뉘어 싸우고 있기 때문에 상대편 목회자를 볼 때마다 상대편 교인들을 예배당 안으로 들어가고 나올 때마다 상대방에 대한 미움과 그가 조속히 망했으면 하는 마음을 가지지 않을 리가 없는데, 이런 생각이 현재 진행형으로 계속되고 있는 서부교회가 분열의 현 상황을 해결하지 않고 현 상태로 부흥을 논한다는 것은 아주 잘못이라고 생각합니다. <br/><br/>부부가 별거를 하면서 자녀들의 정서교육이 정상적으로 되리라고 기대하고 있다면 오해라는 말입니다. 교회 예배당 안에 2개로 나뉘어 10년이 넘도록 투쟁이 계속 되는데, 2층과 4층이 서로가 상대방에게 조속히 망하라고 기도하고 교회 밖으로 몰려 나가고 자신들이 교회 전체를 차지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을 터인데 이 마음 상태와 외부적 분열을 그냥 두고 교회의 부흥을 논한다면 이는 너무도 교회의 부흥을 몰랐습니다. 서부교회의 생존력과 교인 흡수력이 너무 위대하기 때문에 아직도 그런대로 버티고 있는 것입니다. <br/><br/><br/>⑥공회 내에 한 예배당 안에서 두 개의 교회로 나뉜 투쟁은 더러 있었습니다. <br/><br/>서울의 잠실동교회도 해를 넘기면서 상당 기간 그런 시절이 있었습니다. 대구의 달산교회가 만 6년을 채워가며 1층과 2층으로 나누어 예배를 보다가 지난 9월 경부터 양측 합동을 위한 단일 예배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물론 목회자는 2명의 담임목사님이 번갈아가며 강단을 맡고 있다고 합니다. 곧 한 분으로 확정짓고 다른 한분은 개척하겠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습니다. <br/><br/>이렇게 내부 문제가 종결된다고 해도 그 교회를 다닐 수 있는 인근 주변 관련인들은 너무 어랜 세월 그 교회의 내부 문제를 듣고 보았기 때문에 이미 부흥에 대하여는 많은 세월 포기를 해야 할 것입니다. 유지만 되더라도 큰 부흥이라고 생각해야 할 것이고, 만일 조금이라도 부흥이 있었다면 대 부흥이라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혹시 교계에서 이렇게 한 예배당에서 2개 교회로 분열되어 지속적으로 싸우던 교회치고 공회 교회들처럼 교인들이 이렇게 유지된 경우를 들어보셨는지요? <br/><br/><br/>⑦말하자면 공회 교회들은 목사님 사후 삼각파도에 침몰하는 배와 같다고 하겠습니다. <br/><br/>공회 노선을 유지하는 조건에서는 일반 교계에 비하여 공회 교회의 부흥이라는 것은 1명의 부흥이 타 교단 10명의 부흥만큼이나 어렵고 그대신 내실이 있는 의미 있는 부흥입니다. 그래도 백목사님 생전에는 뚜렷한 지도자에 의하여 여러 어려운 여건에서도 조금씩이라도 부흥을 했고 크게 말하면 한국교계 평균 부흥을 이루었으니 그 정도라면 공회교회의 당시 부흥은 한국교회에 부흥사례로 소개가 되어야 할 정도였습니다. <br/><br/>백목사님의 1989년 사망은 공회 교회의 부흥에 아주 불리한 첫번째 요소가 되었습니다. 바로 같은 기간에 시작된 공회 내부의 극단적인 분리 투쟁은 공회 내부에 부흥에 사용될 모든 신앙과 노력과 기회와 최소한의 여지를 완전히 박멸하게 되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공회 부흥의 두번째 난관입니다. 특히 공회 전체의 이미지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되는 서부교회의 10여년 계속 투쟁은 공회교회들이 만일 과거 이름과 노선을 유지하고자 한다면 부흥이 아니라 생존 자체가 가능한지를 살펴봐야 할 상황을 만들었습니다. 서부교회로 봐서는 제일 큰 부흥 장애요인이고 공회 전체로 봐서는 분명히 세번째 요인으로 고려할 사안입니다. <br/><br/><br/>말하자면, 공회는 삼각파도를 만난 배처럼 어떤 선택도 할 수 없이 그냥 표류하다가 침몰 당하는 것을 지켜 볼 뿐입니다. 침몰하는 배 안에서 배와 함께 끝까지 죽겠다는 사람들을 이곳에서는 용감하고 의리가 있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달리 살아날 길을 찾는다며 교단을 변경하거나 아니면 아예 소속 공회를 일반 교단으로 만들어 버리는 경우를 이곳은 노선 이탈로 보고 있습니다. 문제는 용감한 것처럼 보이는데 실은 무지몽매한 경우도 있고, 실은 구원의 불타는 마음 뿐인데 우리가 변절자로 잘못 비판하는 경우도 많을 것입니다. <br/><br/><br/>2.이제 공회 소속 교회의 부흥법을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br/><br/>①공회의 외부적 협력만 있다 해도 부흥의 계기를 당장에 마련할 수 있을 것입니다. <br/><br/>과거 우리가 가졌던 놀라운 부흥기록과 부흥의 내용을 살펴볼 때 그 첫 요소가 백목사님이라는 지도력인데 이런 지도력은 우리가 노력해서 당장에 마련해서 되는 것이 아니므로 다시 주실 때까지 기다릴 뿐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노력하면 당장에 가능한 것만을 가지고 말한다면, 공회 분열의 중단입니다. <br/><br/>각 공회의 각자 노선은 그대로 두고 서로 자기 갈길만 조용히 가면 아무 문제가 일어날 필요가 없습니다. 공연히 힘이 있다고 생각하는 측에서 심심풀이로 몽둥이를 휘둘러서 분란이 생겼던 것이 지금까지 공회 내의 모든 분란이었습니다. 정말로 싸워야 할 문제로 싸운 교회는 없었습니다. 공연히 성질을 참지 못해서 싸웠고 한 잔 먹고 내친 김에 악을 쓰다가 여기까지 온 것입니다. 서로가 달리 생각하는 것은 조용히 그리고 심각하게 토론으로 충분히 살펴볼 연구과제로 돌리면 될 일입니다. <br/><br/>그래서 서부교회의 나뉜 2곳 중에 한 곳이 나가서 개척하게 되면 제 생각으로는 즉시 부흥이 일어날 것입니다. 누가 나가든 나가는 측의 부흥이 더 빠를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리고 의인이 될 것입니다. 누구든 부흥과 교인 마음 상처에 상관없이 재산을 확보하겠다면 그는 롯이 될 것입니다. 우선은 예배당 재산을 가지게 되겠지만 결국 롯의 걸음을 걷게 될 것입니다. 일단 2층은 백목사님 생전노선을 수정하자는 측이므로 객관적으로 말하면 2층이 나가는 것이 옳습니다. 그렇게 나가는 것이 2층이 배우고 아는 대로 또 자신들의 교인과 학생들에게 가르친 대로 아브라함의 복받는 길입니다. <br/><br/>이렇게 쉽고 간단한 부흥법이 있는데도 굳이 울타리 안에서 박이 깨지도록 싸우면서 왜 공회노선은 부흥이 되지 않느냐고 한다면 제가 드릴 수 있는 솔직한 대답은 이렇게 안내할 수밖에 없을 것같습니다. 물론 교회를 양보하고 개척해서 나간다고 부흥의 모든 방법이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다른 교단에서 부흥법을 수입해서 사용해야 할 정도는 아닐 것입니다. 개척해서 나가는 즉시 이 주제의 첫 발제자께서 토로하신 그 모든 안타까운 심정은 일시에 다 해결이 될 것입니다. 그런 연후에 조금 더 아쉽다면 또 외부의 부흥법을 조심스럽게 참고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확실한 것은, 현재 서부교회의 분열상황이 지속되는 이상, 서부교회의 부흥은 단언하고 어려울 것입니다. <br/><br/>공회 전체의 부흥 문제를 두고 공회 전체의 갈등을 논하지 않고 서부교회의 내분을 설명하는 이유는 그곳이 공회 전체 해결의 중심이기 때문입니다. 서부교회의 갈등이 해결되지 않는 이상 공회 일부 지방 교회의 갈등이 해결된다 해도 그것은 그 일개 교회의 내부 일이고 그 교회에게만 해당되는 좋은 여건일 뿐입니다. <br/><br/><br/>②공회 교회처럼 노선에 특색이 있는 교회는 내부 교인의 이동에서 승부를 걸어야 합니다. <br/><br/>이유는 과거 공회의 부흥은 공회 내부 교인들이 교회 밖으로 이사나 이동을 하는 경우 일반 교단과는 도저히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공회 소속 교회들을 찾아가기 때문에 공회 교인의 외부 이탈률이 거의 없었는데 공회의 내분으로 공회 내부 교인이 현재 다니는 교회에서 이동을 하게 되면 거의 일반 교회로 빠져 나가는 이탈률이 엄청나게 많다는 점을 살펴야 합니다. <br/><br/>공회의 부흥이 다른 교단에 비하여 비록 수치적으로 적다 해도 의미있는 발전을 하게 된 이유는 한번 공회 교인으로 소속되면 어느 곳을 가든지 기어코 공회 교회를 찾기 때문에 불신자들을 전도하게 되면 공회 교회 안에서 돌지 밖으로 나가지 않았던 것이 큰 이유인데, 지금은 최대한 공회 교회를 피해서 일반 교회로 이동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합니다. 지금도 공회 내부 교인들을 일단 공회 내부 교회끼리 움직일 수 있도록 한다면 공회의 부흥은 과거와 크게 차이가 없으리라고 생각하는데, 이렇게 공회 내부 교회끼리 이동이 불가능하게 된 이유는 바로 공회 내분 때문입니다. <br/><br/><br/>말하자면 잠실동교회가 개척으로 잠실동에서 시작했다고 하지만 잠실동교인의 거의 전부는 공회 내부 전국의 교회 교인들이 서울로 진학 취직 이사를 할 때 이왕이면 우리 공회 교회라 해서 찾아들었던 것입니다. 또 낯선 서울에서 잠실동교회를 출석하면 마치 서울에 오래 살면서 익힌 이웃이 있는 사람처럼 바로 적응을 할 수 있었고 그래서 그곳에서 교회생활을 하게 되면서는 서울에서 아는 곳이 교회가 먼저고 교회가 중심이 되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서울로 이사한 후에 더욱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는 분들이 생깁니다. 그들이 후에 명절에 고향에 오게 되면 자기 식구들을 또 자기 다니던 교회에 붙여서 자기로 인하여 빈자리를 메꾸기도 합니다.<br/><br/>또한 공회 식구들 중에서 공회 교회가 전혀 없는 청주로 수원으로 포항으로 이사를 가는 이들이 몇 명 생기면 그 몇 명을 가지고 순수 공회 교회가 개척이 되고 또 이후 이어지는 이주 교인들도 꼭 그 교회에 속하게 되고 그들이 원래 다니던 교회보다 객지에서 교회를 먼저 알게 되어 교회 중심의 생활이 되면서 그 교회에서는 더욱 노력하게 되면 그 교회는 이주온 공회 교인들 뿐 아니라 주변 불신자를 전도하는 일에 더욱 노력하게 됩니다. 이런 부흥의 패턴이 공회의 부흥사의 근간입니다. 공회처럼 외적 부흥의 숫자보다 신앙노선에 생명을 거는 노선이 부흥할 때는 공회 내부의 이런 유대가 타 교단의 부흥법에 비하여 월등히 효과가 있고 실제 공회 교회들에게는 맞춤 부흥법인데, 이 모든 공식이 공회의 분열 하나가 들어가서 여지없이 박살을 내버렸습니다. <br/><br/>공회 내부의 수정노선에 있는 이들이 과연 1989년 8월 27일 이후에 공회 내부를 남북대결로 몰아가며 6.25 전면전을 시작할 때, 오늘 공회 소속 교회가 탈선하지 않고는 부흥할 수 없다거나 공회를 이탈하지 않고는 부흥이라는 것을 꿈도 꿀 수 없는 단계가 바로 눈 앞에 닥칠 줄 알면서 그러했는지! 또한 보수측인 부산공회의 서부교회와 전국 여러 교회들이 자기 교회 내분을 시작할 때 내분이 시작되면 그 이후에 파생될 문제를 얼마나 고려했는지! <br/><br/><br/>③이미 좋은 기회를 다 놓친 파장 분위기입니다. 아쉬운 면이 너무 많습니다.<br/><br/>지금이라도, 공회간의 차이는 연구 주제로 돌려서 내부 토론으로 끝내고 그대신 외부적으로는 공회 간 교인들의 이동은 꼭 공회 내부로 움직이도록 서로 돕고 밀어주게 된다면 외부의 별별 부흥 수단 방법을 동원하는 것보다 당장에 큰 효과가 있을 것입니다. 이미 저는 이 문제를 양측의 내분이 냉각기로 접어드는 순간부터 시급히 해결하자고 제의했으나, 어느 공회든 그 공회가 총공회 내부에서 타 공회에 비하여 조금이라도 형편이 낫다 싶으면 갑자기 대국의 외무부처럼 발언하던 것이 기억에 선명합니다. <br/><br/>기도해 봅시다! <br/>의견을 공식 문서로 제출하시면 위원회에 넘겨서 연례 검토시 살펴보겠습니다!<br/>나뉜 것을 다시 합하려 하면 문제가 더 많으니 그대로 갑시다!<br/>그쪽에서 나갔으니 들어오기만 하면 됩니다!<br/><br/>참으로 기가막힌 많은 말씀들을 들었습니다. 양측 공회들끼리의 갈등을 두고는 주로 1990년대 초반의 일입니다. 그리고 교회 내분 문제 등을 두고는 1990년대 말에 있었던 일입니다. 그런데 이런 일은 조금이라도 더 냉각이 되기 전에 서둘렀어야 했을 일입니다. 목회자들이 방심하고 현 상황에 만족하여 교만해서 그런 말을 했더라도 밑에 있는 교인들이 들어 일어났어야 할 일입니다. 그러나 교인된 분들의 입장은 감히 목회자가 계시는데! 이 한 마디에서 전부 아합에게라도 순종할 자세이니 더 이상 말을 한다는 것도 무례한 일로 느껴야 할 정도였습니다. <br/><br/><br/>④지금 공회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br/><br/>신앙의 생명인 노선 문제를 전당포에 맡기고 외부에서 부흥법을 무작정 끌어들인다는 것은 진정한 공회 교회라면 가장 조심할 일입니다. 이 말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 차라리 공회 간판과 소속과 노선을 일반 교계의 유리한 교단으로 바꾸는 것이 훨。 효율적일 것입니다. <br/><br/>이제는 화해하고 서로 밀어주려고 해도 이미 가장 아까운 교인들 아쉬운 교인들 너무 귀한 교인들이 일반 교회로 빠져 나가서 그곳에서 안착을 해버렸기 때문에 새로 회귀시키는 것이 불가능하다 할 정도입니다. 물론 더 늦으면 더 손해일 것입니다. 그러나 조금만 더 일찍 눈을 뜨고 서로 협조했더라도 이렇게까지 통째로 안집을 내주는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이 교인들이 어떤 과정을 통해 전도되고 공회 진리를 깨닫고 공회 내부 귀한 교인들이 된 교인들인데!<br/><br/>이 순간 우리가 가장 조심할 것은, 공회의 마지막 남은 비상금을 다 털어먹을 수 있는 유혹입니다. 현재까지 15년 넘게 공회를 흩어버렸던 귀신이 온갖 풍상 속에서도 끝까지 공회 소속 교인으로 남아 있는 이들을 향해 교회 부흥의 기치를 앞세우고 공회 간판 아래에서 일반 교계로 이탈해 간 것과 꼭 같은 교회를 만들어 버린다면, 그야말로 귀신은 완전 성공을 할 판입니다. 이런 면을 염려하여 이번 발제를 주신 분은 공회의 노선이 훼손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부흥법을 생각해 보자고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br/><br/>그런데 이런 발제를 듣고 나면 대개 교인들은 일반 교회들이 자기들의 노선에서 나올 수 밖에 없는 그런 여러 탈선의 방법을 그냥 평범한 부흥법으로 생각해서 공회 내 교회에 적용해 봤으면 하고 발언을 할 수 있습니다. 이번 주제에 대하여 발언을 하게 된 이유는 바로 이것 때문입니다. 우리의 부흥법은 이미 주일학교식 목회에서 나타난 것처럼 이전이나 지금이나 언제든지 이 부흥법 이상으로 더 좋은 방법을 구경해 본 적이 없습니다. 이 외에 다른 방법을 사용하면 일시 효과가 있는 듯 해도 결국 교회의 본질을 적에게 맡겨야 하는 문제가 생깁니다. 또 이 방법 이상으로 불신자를 전도할 방법이 없다는 것은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그리고 이미 전도한 교인을 살려 길러내는 방법은 우선 공회 교회들끼리 교인을 공회 내부에서 움직이도록 하는 것인데 이는 세상말로 신사적인 의리와 신의가 있어야 하는데 우리 공회 목회자들의 전반적인 수준은 이런 면에서는 아예 말도 끄내지 못할 지경입니다. 또 이제부터 그렇게 한다고 해도 분열 당시 시급하게 그리 했을 때 얻을 수 있는 효과와 비교한다면 불나고 외양간 고치기 수준입니다. <br/><br/>그렇다면, 각 교회가 자기 입장에서 주일학교 반사가 맡은 학생 전도하고 심방하고 출석하도록 챙기고 이 일을 위해 평소 자기를 잘 관리하고 기도하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별로 없다고 생각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렇게 시시하게 보이는 이 방법이 전도에 있어서는 최상의 방법입니다. 그리고 분열의 영향을 받지 않은 곳을 중심으로 그렇게 하는 교회들은 지금도 과거보다는 아쉽지만 그래도 괄목할 만한 성장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 정도의 성장만 공회 교회들이 가진다고 하면 요즘 같이 교계 전체적으로 침체기라는 분위기에서 또 한번 공회노선의 우수성을 외부에 소개할 수 있을 듯 합니다. <br/><br/><br/>그리고 난 뒤에, 외부 부흥법에 대하여는 한 가지씩 조심스럽게 살펴보고 연구하면서 도입하거나 참고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방법의 본질이 무엇이며 그 방법의 훗날 역효과가 무엇인지를 우선 면밀하게 검토해야 할 것입니다. <br/><br/><br/>3.마지막으로<br/><br/>이번 주제를 앞서 내신 '서부교인'께 드리고 싶은 말씀은 회 내부의 분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부흥에 대한 논의는 삼가하시는 것이 현재 서부교회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현실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일 서부교회의 부흥을 논하려면 우선 교회내의 분열 문제를 먼저 논하는 것이 순서일 것입니다. <br/><br/>그리고 이곳을 찾는 공회 노선을 좋아하는 분들, 또 참고하기를 좋아하는 분들께 드리고 싶은 말씀은, 공회의 교훈 노선은 좋으나 교회 부흥에 관련해서 문제가 많다고 생각하신다면, 섣불리 일반인들의 발언만으로 단정하지 마셨으면 합니다. 교훈이 좋고 노선이 좋은데 부흥이 되지 않는 경우는 없습니다. 다만 무엇이 부흥이며 어떤 과정을 통해 어떤 부흥을 이루었느냐는 문제를 먼저 살펴보셨으면 합니다. <br/><br/>관련 개인들이 반대할 것이어서 사례를 구체적으로 들지는 못했으나, 공회 내에서 그냥 단순하고 무미건조하게 보이는 공회 부흥법을 통해 굉장히 부흥을 이룬 곳은 여전히 우리 주변에 있습니다. 이제 다른 분들의 지적이나 반론 등을 들어가며 앞으로 발언할 내용은 비교적 짧은 단답식 위주로 진행하겠습니다. <br/>----------------------------------------------------------------------------- <br/><br/><br/>공회교회의 부흥에 대하여 (글 5) - 일반교계 부흥법의 문제점 <br/><br/><br/>앞서 올린 글 중에서 외부 교계의 부흥방법론 대표 사례 2 교회에 대한 평가와 우리의 결론<br/><br/><br/><br/>1.윗글에서 소개한 2명의 부흥법 사례의 성격<br/><br/>이번 '공회 교회의 부흥'에 대한 주제에서 공회 교회 부흥을 위해서 무엇인가 특별한 조처를 해야 한다고 말씀하신 분들의 의견은 아마 바로 윗글 '고신대 개최 교회 부흥의 방법'에서 강사로 초빙받은 2명의 목사님들의 입장에 대하여 전폭적이든 부분적이든 긍정적으로 생각할 것 같습니다. 아마 현 교계의 입장을 가장 잘 대변하고 있을 것으로 생각하여 2명의 강사 강의를 인용했습니다. <br/><br/>현재 공회 소속 교회 중에서 부흥에 관심을 두고 교계의 동향을 참고했다는 교회치고 아마 이 분들의 방법을 참고하거나 마음에 두지 않은 경우는 없을 것입니다. 포장을 조금 바꾼 정도이거나 인용한 분량의 차이일 것입니다. 따라서 이번 주제에 대하여 공회 외부에서 도입했으면 하는 부흥법에 대하여 윗글 2명의 강의 내용을 두고 평가하므로 이번 주제를 두고 교계의 부흥법에 대한 이곳의 생각을 설명하겠습니다. <br/><br/><br/>2.'오정현목사님의 교회 부흥법에 대한 강의'를 평가한다면<br/><br/>><br/>>1.지성과 감성의 균형이 잡힌 예배로 나가야 한다. <br/>><br/>>예배의 균형이 아주 중요하다. 즉 지성과 감성을 동시에 두들기는 예배, <br/>>그리고 이런 두 측면을 충분히 고려하여 준비된 예배가 필요하다. 한때는 <br/>>열린 예배라 해서 너무 감성에만 호소하는 분위기를 걱정했고, 물론 염려<br/>>대로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 그러므로 이 두 가지 내용이 잘 균형 잡히고 <br/>>조화된 상태로 준비되어야 한다. <br/>><br/>><br/><br/><br/>열린예배를 구체적으로 감성을 강조해서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고 아쉬워 하고있습니다. 과거 교회들의 예배는 천편일률적으로 이성을 강조해서 교회가 가라앉았다고 보고 있습니다. 들을 내용이 있는 설교와 젊은이들이 흥분을 느낄 수 있는 율동 등을 균형있게 섞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br/><br/>대학 강사가 약간의 춤과 노래를 곁들여서 대학 강의의 내용도 학생들에게 전하면서 또 학생들이 재미있게 들었다고 생각하게 만들면 그 강사에게 수강생들이 몰리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br/><br/>목회와 교회 부흥을 이런 시각으로 봤다면, 일반 교계의 표상은 될 수 있을지 몰라도 이 홈에서 소개하는 공회 노선과는 아예 참고할 내용이 전혀 없습니다. 교육심리학적인 측면과 경영논리를 배합한 기술은 교회 밖에서 의논할 일이기 때문입니다. 병낫기를 원하는 이들은 순복음교회로, 지성과 감성을 함께 충족시킬 분들은 사랑의교회로, 이런 공식이 형성되는 것은 교회에 대하여는 가장 모독입니다. <br/><br/>이런 쪽으로 부흥을 원한다면 이벤트 기획상품으로 현대 시장 경제를 휘어잡는 이들을 신학교 교수들로 모시고 그들 밑에서 훈련을 받는다면 더 좋을 것입니다. 아마 연보의 증가액을 기업의 이윤으로 인정해주겠다고 한다고 가정하고 삼성그룹이 기독교계에 진입하면 사랑의교회를 능가하는 것은 1년 이상이 걸리지 않을 것입니다. 순복음교회를 능가하는 것도 아마 시간 문제일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세계를 세상이라고 하지 기독교라고 하지 않는 시각을 가진 것이 문제입니다. 우선 이런 시각 자체가 과연 기독교의 범위 안에 넣고 이야기를 해야 하느냐는 문제로 먼저 토론을 해야 할 것입니다. <br/><br/><br/><br/><br/>>2. 축제적인 성격이 강한 예배를 지향해야 한다 <br/>><br/>>신약의 예배는 구원의 감격과 찬양 그리고 어린양 예수께 대한 찬미와 <br/>>영광을 돌리는 축제의 예배라고 할 수 있다. 신약의 예배는 항상 감사와 <br/>>찬양 그리고 십자가와 부활의 영광이 높이 올려지는 승리의 제사인 것이다. <br/>><br/>><br/><br/>'구원'의 의미를 모르고 '감격'의 의미를 월드컵 4강에 올라갈 때의 '감격'과 같은 정도로 보고 있으며 '어린양에 대한 찬미'가 어떤 차원의 어떤 것인지를 도저히 알지 못하고 있으므로 '축제의 예배'라는 단어가 함부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사랑의교회가 사용하는 단어는 대학생 써클 활동하는 기독교단체 외의 단체들과도 함께 사용할 수 있는 단어들입니다. <br/><br/>그냥 불신자들이 이제 막 예수님을 믿어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에서는 도움을 받을 수 있겠으나 한 걸음이라도 신앙으로 발을 움직이기 시작한 교회나 교인들에게는 큰 훼방이 되는 노선이라고 생각합니다. <br/><br/><br/><br/><br/>>3. 보다 질 높은 예배를 드려야 한다 <br/>><br/>>우리는 매주 예배의 차별화를 선언하고 있다. ‘똑 같은 예배를 두 번 다시<br/>>드리지 않고, 구태의연한 사역은 반복하지 않는다’는 사역 원칙 아래 우리<br/>> 교회의 예배는 창조성이 가미된 예배로 준비된다. 찬양 곡 선정에서부터 <br/>>영상자막 그리고 음향 및 필요한 인쇄물에 이르기까지 매주 토요일은 그야말로 <br/>>주일 예배를 위한 전쟁을 치른다. <br/>><br/>><br/><br/>상품 판매와 회원 모집의 이벤트 회사에서 고민하고 그들이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이루어낸 경험담일 뿐입니다. '예배'가 무엇인지조차를 알지 못하니 무슨 예배를 통한 부흥의 모델이 될 수 있겠습니까? 부흥은 커녕 예배와 교회라는 단어부터 새로 정립해야 할 수준의 교회에 교회 첫 출석 교인들을 상대로 일시 해당될 행사 차원입니다. 그러나 안 믿는 사람이 교회를 나오는 것은 그런 이벤트행사 진행이 아니라도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성경입니다. 너무 심하게 교회가 세상화 되었고 너무 세상화 된 교회가 교회 안으로 들어와서는 부끄러운 줄을 알아야 하는데 성공사례로 소개를 하고 있다면 이는 교회라는 이름도 붙일 수 없는 정도입니다.<br/><br/>적어오 이 홈의 공회 부흥법에 대한 연구는, 이런 식의 부흥과 이런 식의 부흥을 위한 방법은 아예 제쳐놓고 부흥에 조금이라도 참고가 될 수 있는 부흥법을 연구하는 자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br/><br/><br/>>4. 교인들과 친밀감을 통해 재능과 예술성이 가미된 예배를 준비해야 한다. <br/>><br/>>교인들은 이제 듣는 복음에서 보는 복음을 경험하기를 원한다. 그리고 그것을 <br/><통해서 자신들이 예배에 대한 감격에 참여하기를 원한다. 교인들이 그들이 가진 <br/>>재능으로, 하나님께 자신의 재능을 마음껏 드릴 수 있는 예배를 제공해야 한다. <br/>><br/>><br/>><br/><br/>예술성이 가미된 예배를 준비하라? 발레를 좋아하는 이들은 발레로 주님의 높으심을 찬양하고, 전위음악에 심취한 사람은 솥단지와 냄비를 망치를 뚜드리며 주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 최신 세상 음악에 빠져 있는 이들은 그런 자신들의 재능을 강단 위에서 발휘하고. ...<br/><br/>부산에도 수영동교회라 해서 전국적으로 부흥으로 지명도 높은 교회가 있습니다. 그 교회의 1980년대 부흥 초기 방법들을 당시에 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백목사님이 서부교회 주요 직원들에게 한꺼번에 견학을 보낸 적이 있었습니다. 방법은 아주 간단했습니다. 10여 명의 대학생으로 보이는 율동팀이 넓은 강단을 무대로 삼아 율동과 함께 최신식 복음성가를 부르고 한쪽에서는 악단들이 장단을 맞추고 있었습니다.<br/><br/>말씀은 그 교단의 주일학교 공과 수준을 넘지 못했고 계속해서 율동밖에 없었습니다. 교회의 부흥 뿐 아니라 교회의 어떤 것이라 해도 방법론으로 흘러가고 그쪽으로 중심이 움직이면 교회는 본질적인 요소들이 모조리 거들나게 됩니다. 그래서 외부 교단은 그 교단들의 수준과 생존 존재 형식이 우리와 차원이 다르기 때문에 그렇게 해도 공회 이름을 붙인 교회들은 적어도 그런 방법은 여름성경학교 특별행사 한번 정도에 그치든지 아니면 교회의 소속을 일반 교단으로 바꾸는 것이 옳을 듯 했습니다.<br/><br/><br/><br/><br/>-------------------------------------------------------------------------------<br/>><br/>><br/>><br/>>2.갈보리교회, 최홍준목사님의 발제 요지<br/>><br/>>교회가 어떻게 복음전도와 영적성장을 함께 이루어낼 수 있을 것인가? <br/>>교회가 어떻게 건강을 유지하면서도 원리를 놓치지 않고 한 시대의 변화를 <br/>>품으며 변혁적이 될 수 있는가?’<br/>><br/><br/><br/>표현 자체는 전적 동감입니다. 문제는 방법론입니다. 남북한이 민족을 배불리 먹이고 행복하게 살도록 하는 목표는 꼭 같았습니다. 문제는 공산노선을 택한 결과는 수백만명이 굶어죽고 수천만명이 굶주리는 결과로 나타났고, 자본주의를 택한 결과는 개들도 다이어트 하느라고 노력하는 결과가 나왔습니다.<br/><br/><br/><br/>><br/>>제자훈련이다. 전도와 양육이라는 두 기둥을 부여잡고 목회하는 현장에 <br/>>하나님의 축복하심이 넘치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제자훈련은 한 <br/>>교회의 토양을 바꾸고 분위기를 쇄신하고 성경적으로 교회내의 기능과 <br/>>역할이 건강해지기 위한 하나님의 명령이다.<br/>><br/>><br/><br/><br/>'제자훈련'이라는 말이 왜 지금 이 시대에 나타나는지가 금시초문입니다. 성경이 제자를 삼으라 했고 그래서 신약 2천년 교회가 제자를 삼아 내려왔기 때문에 오늘 우리 한국교계가 존재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선교사들이 100여년 전 조선에 건너와서 제자를 만들어서 오늘 우리가 겉으로는 그들의 제자가 되었고 내적으로는 주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일이 지금까지 반복되어 왔습니다.<br/><br/>'제자훈련'! 그 단어에 관한 한 가장 모범적이며 가장 폭발적이며 가장 어려운 여건에서 세계적인 성과를 만들어 낸 것이 백목사님의 서부교회 주일학교였습니다. 이 운동은 백목사님이 최초가 아니라 신약 2천년 교회의 일상사였고 교회치고 이 운동을 모르는 곳은 없었습니다. 단 하나 다른 것이 있다면 주일학생들에게까지 교회가 해야 할 가장 원칙적인 활동, 즉 전도와 심방과 예배와 말씀 전함을 해 봤다는 것입니다. <br/><br/>지금 '제자훈련'이라는 단어가 젊은이들의 심리와 활동패턴을 읽고 이런 저런 아이디어와 함께 단어 선정 이벤트 행사 등을 통해 그들의 마음에 와 닿도록 하고 있는데, 다른 사업은 손님의 취향을 읽어 그들에게 호응을 받아야 사업을 성공하지만, 교회는 그 젊은이들 속에 그들이 좋아하는 그 취향이 바로 교회가 없애버리려고 노력해야 할 옛사람의 취향이니 그 취향은 악령과 악성과 악습으로 된 것이므로 교회는 그런 옛사람의 취향을 끊어버리기 위해서 나오는 곳이고 그런 것을 많이 끊고 죽였으면 좋은 교회이고, 만일 교회가 그런 각자의 개성과 취향을 살려 그들 속의 그런 옛사람의 취향이 살아나게 되어 어느 교회로 쏠렸으면, 그 교회는 혹시 시신안치소일지 모릅니다. <br/><br/><br/><br/>>우리 목회자들이 교회 성장에 혈안이 되어 있는 동안 성도들은 얼마나 <br/>>외롭고 상처를 받는지 모른다. 성도의 숫자가 불어나는 데만 과민 하는 것 <br/>>보다 성도들이 건강하게 성장하는데 더 큰 관심을 가져보라.<br/>><br/>>'목회자들에게 제자훈련을 권면했다.' <br/>><br/>><br/>><br/><br/>별로 평가할 만한 내용이 없습니다. 당연한 말이고 조심해야 할 말입니다. 그런데 현 교계의 부흥이 얼마나 비정상적으로 진행되는지를 읽어낼 수 있는 표현이 숨어 있습니다. '목회자들이 교회 성장에 혈안이 되어 있는 동안 성도들은 얼마나 외롭고 상처를 받는지 모른다.'라는 표현이 그것입니다. 회원몰이식 부흥이 교회 부흥인 줄 알고 그렇게 하고 있기 때문에 기존 교인들의 정상적인 신앙생활의 양식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br/><br/><br/>>======================= <br/>>제자훈련과 교회활성화 <br/>>최홍준 목사(호산나교회) <br/>>----------------------- <br/>><br/>>호산나교회의 제자훈련과 전도활성화 <br/>><br/>>1. 목회자 자신의 제자훈련 철학 정립 <br/>><br/>>제자훈련의 시작은 교역자 자신의 목회철학을 비롯하여 자기 점검에서부터 <br/>>시작된다. 신학적인 입장을 정리하고 자신의 은사를 정확하게 점검하고 <br/>>경험의 축적이 필요하다. <br/>><br/>><br/><br/>지금 이 나라 목회자들이 교인만 많이 온다면 그것이 순복음 것이든 이단의 것이든 통일교의 것이든 출처를 가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모르고 하는 말인지, 혹 발언자 자신조차 자신이 사용하는 방법이 세상의 교육심리학 청년심리학 등 불신자의 방법론을 중심으로 치중한 것이 아닌지를 살펴보았는지 의심스럽습니다.<br/><br/>부흥을 생각하기 이전 자신의 신학과 은사를 바로 점검했다면, 우선 자신의 소속 교단과 교회가 지난날 무엇을 가치로 무엇을 생명 걸고 지키려 했는지를 살펴야 합니다. 현재 이 강의가 고신 주최의 '한상동기념강좌'로 진행되는 것이니, 단 1명만 남고 그마저도 감옥에 가고 교회가 문을 닫아서 교인이 단 1명도 남아나지 않아도 성경의 가르침에는 양보하지 않겠다는 것을 먼저 새기라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고신이 그렇게 생명걸고 지키려는 개혁주의 근본원리에 입각하되 교회 부흥을 위해서 고신의 그런 진리노선원칙이 조금이라도 손해보는 일이 없어야 하는데, 이 강좌와 강의 내용 그리고 그 방향은 고신의 진리 노선을 이제는 벗어버리고 교회의 숫적 부흥에 매달리자는 것입니다. 지금 강의자도 수강자도 어느 자리에 서 있는지, 그리고 그들이 타고 있는 열차가 어디를 향하는지조차도 모르고 강의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대전에서 서울가는 열차에 올라타고서 부산 관광할 꿈에 부푼 그런 착각이라고 여겨집니다.<br/><br/><br/><br/><br/>>2. 기존의 토양분석과 준비작업 <br/>><br/>>교회가 가지고 있는 전통, 인적구성, 체질은 쉽게 변화되지 않는다. <br/>>그러므로 교인들을 향한 정확한 영적진단은 무엇보다 교회의 건강을 위해 <br/>>좋은 준비작업이 될 수 있다. 한번에 모든 것을 바꾸는 목회가 아니라, <br/>>체질개선을 위해 원리에 충실하게 준비해나가는 목회를 하는 것이다. <br/>><br/>><br/><br/>고신의 진리노선이라는 캐캐묵은 것이 고신교회가 부흥하기 위해 먼저 버려야 할 '전통'이며 '인적구성'이며 '체질'입니다. 한꺼번에 바꾸려하지 말고 천천히 바꿀 수 있도록 지혜롭게 하라는 것인데, 고신은 '체질개선'을 해야할 교단이 아니고 원래 체질이 순교정신의 고신정신이므로 체질을 총신처럼 바꾸는 개선은 개선이 아니라 탈선이 됩니다. 탈색된 원래 체질로 회복하여 돌아가는 운동을 하는 것이 고신 부흥의 첫발이어야 합니다.<br/><br/>박형룡목사님이 고신을 버리고 서울로 돌아간 이유도 교계의 대다수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였고 고신은 그것을 비판했습니다. 진리는 많음에 있지 않다고. 그런데 이제 와서 '한상동기념강좌'를 통해서 고신의 교인 부흥을 위해서는 고신의 체질이라는 순교정신의 진리노선을 과감하게 탈피하고 신세대 다수 청년들의 취향을 따르라고 하는데, 그리 되면 지금까지 고신이 걸어온 길을 먼저 회개를 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제가 볼 때는 고신의 초창기와 전통은 오히려 오늘에 더욱 살려야 하므로 체질을 원상태로 복구하여 회귀하는 것이 옳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것이 고신의 존재 의미입니다. 고신이 지금까지 주장한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br/><br/>등소평의 말대로 자본주의든 공산주의든 인민들 먹이고 입히는 것만이 최고의 가치라고 한다면, 박형룡박사는 고신의 초창기에 잠깐 고신을 들렀다가 서울로 올라갔는데 그의 결정은 현명했고 고신은 그때 죄를 지은 것입니다. <br/><br/><br/><br/><br/>>3. 제자훈련의 시작과 운영 <br/>><br/>>호산나교회 제자훈련은 첫째, 선택의 원리에 의해 운영된다. 선택은 신중히<br/>>공정하게 그리고 핵심그룹부터 선택해서 기준을 설정해 주었다. 둘째, <br/>>변화의 원리에 의해 운영된다. 일보다 사람을 중심으로 삼으며, 강요보다는<br/>>동기가 부여됐을 때 변화가 생기고 급격한 변화보다는 단계적인 변화를 <br/>>시행해 갔다. 셋째, 집중의 원리에 의해 운영되었다. 소수의 사람과 <br/>>전교인을 동일하게 중요성을 두고, 소수의 사람에게 생명을 걸었다. <br/>><br/>><br/><br/><br/>세상 어떤 조직원리에도 또 역사의 어떤 단체에서도 해당되는 상식입니다. 특별한 방법도 아니며 당연한 이치입니다. 다만 다른 교회들은 아는 것도 행하지 않았고 모르는 것은 알려고 하지도 않았고 하루 3끼 먹는 밥에 만족을 했고, 부흥한 교회들의 성공은 그 성공이 성공인지 여부는 따로 가려야 하지만 일단 교인 출석수에 있어서는 성공을 했는데 그 성공의 원인은 다른 교회보다 분명히 많이 움직인 결과입니다. 많이 움직인 것이 겉으로는 인간의 노력인데 실은 하나님 앞에 자기 나름대로 있는 힘을 다해서 순종하려고 노력했고 그 노력이 하나님 앞에 충성이라는 단어로 받아들여졌다면, 그리고 부흥이 되었다면 그것은 신앙이 어리든 장성하든 상관없이 충성의 종들에게는 그 보상이 가게 되어 있습니다. <br/><br/><br/><br/><br/>3.결론적으로 윗글 2명의 목회자들에게서 본을 받고 배울 것이 있다면<br/><br/>그들은 분명히 다른 동료 목회자들에 비하여 늘 주어진 현실에서 자기 있는 힘을 다하려고 충성을 했을 것입니다. 그 충성을 보시고 그들을 하나님깨서 한국교회의 젊은이들의 결석률을 줄이시고 출석률을 올려 보답해 주셨습니다. 분명한 것은 그 출석률이 초등학교 1학년의 출석률인지 대학원생의 출석률인지 문제는 다시 살펴야 할 일입니다. <br/><br/>일단은 모여야 힘이 나는 법이고 모이는 이들이 있어야 연보가 쌓이게 되는 법입니다. 그래야 예배당이 높이 올라가고 많이 모이면 앞서 모인 숫자가 인력을 발생하여 추가로 다른 사람들을 모아오게 되는 원리가 적용됩니다. 이래서 한번 성장에 탄력이 붙으면 가속이 붙기 시작하는데, 교회가 껍데기 신앙으로 탈선을 하게 되면 그 속의 내용과 신앙단계와 수준은 모조리 묻어버리고 오직 외부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평가하고 그것으로 전부를 삼게 됩니다. <br/><br/>어쨌든 이번 주제는 숫적 부흥을 논하는 자리로 진행하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렇다면 이들에게서 참고하면서 우리가 우리 자신을 돌아본다면, 우리는 가장 어려운 여건에서 가장 많이 충성을 했고 그 결과 한국교회 일반 상식으로는 생각도 못하는 과거 성장을 우리의 자랑스런 과거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현재 우리의 침체는 우리의 과거 부흥법에 고장이 있거나 그 부흥법이 이 시대에 맞지 않아서가 아니고, 또 외부 교계의 대표적인 부흥법이 우리 부흥법보다 나은 것이거나 진리적이어서가 아니라, 우리는 내부 분열로 전혀 움직이지 않고 있고 그들은 속이 이렇든 저렇든 열심히 자기 수준에서 움직였기 때문에 숫적 부흥에 있어서는 분명한 결과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br/><br/>그들의 부흥이 그들의 진리성을 나타내는 줄로 안다면 오산입니다. 그들의 숫적 부흥은 그들의 충성의 정도를 말할 뿐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숫적 부흥은 우리의 주어진 환경에서 노력하지 않은 것이 문제이니 우리 가진 우리 노선의 우리가 해야 할 우리 일을 열심히 하면 우리 식의 부흥은 틀림없습니다. <br/><br/>우리 노선의 우리 충성은,<br/><br/>열심히 기도하고 <br/>주어진 대로 전도하는 것입니다. <br/>다만 과거보다 덜했던 것을 과거만큼 또는 더 이상 하게 된다면 됩니다. <br/>------------------------------------------------------------------------------ <br/><br/><br/>공회교회의 부흥에 대하여 (글 6) - 공회의 원래 부흥법의 탁월성 <br/><br/><br/>윗글 예배갱신과 제자훈련 등의 외부 부흥법이 공회에서 사용된 사례<br/><br/><br/><br/><br/>1.공회 내에서 외부 부흥법을 도입하자는 분들의 구체적 요구<br/><br/>공회의 부흥방안을 두고 지금까지 많은 분들과 오랜 세월 대화를 해 본 기억이 많습니다. 간단하게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찬송을 더 많이 하자는 것이고, 찬송은 좀더 밝은 내용과 빠른 속도로 하자는 것이고, 악기를 다양하게 사용하자는 것입니다. 또 여러 모임들을 운영하자는 것입니다. 여러 표현과 여러 설명이 많지만 윗글에서 소개한 '사랑의교회'나 '호산나교회'의 예배갱신과 제자훈련 등으로 요약될 수 있을 것입니다.<br/><br/><br/>2.이곳 'yilee'이름은, 역시 예상하셨겠지만 반대 의견으로만 읽으셨을 듯 합니다.<br/><br/>평소 이 홈의 글을 통해 'yilee' 이름은 외부 부흥법에 대하여 늘 반대만 한다고 선입감을 가진 분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사실이 그렇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양해를 구하고 싶은 것은 공회 내부인이라 해서 공회 내부의 것은 일단 긍정하고 외부 것은 일단 색안경을 끼고 본 일은 없습니다. 이곳은 실력이 미치지 못할지라도 소위 '연구'라는 이름으로 홈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연구에 관한한 이곳만큼 원칙을 지키는 연구방이나 연구소를 거의 보지 못했다고 할 만큼 연구는 연구답게 접근하고 있습니다.<br/><br/><br/>3.이번 글에서 한 가지 더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외부 부흥법의 공회 내부적용의 사례입니다.<br/><br/>①우선, 외부 부흥법에 대한 환상을 버렸으면 합니다.<br/><br/>공회 교회들 중에서 우리도 외부에서 교회 부흥법을 도입해야 부흥에 도움이 된다고 주장할 때마다 크나큰 오류를 늘 발견할 수 있는 것 중에 하나는 외부 부흥법이 일반 교계 전체를 부흥시켰고 그 방법을 사용하지 않은 공회 교회는 전체적으로 침체가 되었다고 단순 이분법으로 판단하는 선입관입니다. <br/><br/>외부 교계 중에서 '제자훈련'이나 '예배갱신'을 하지 않은 곳은 사실 거의 없습니다. 고신도 이미 1970년대를 통과하면서 그렇게 하지 않은 교회를 찾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합동측의 '사랑의교회'나 '호산나교회' 담임목회자를 초빙해서 고신차원에서 교회 부흥법을 문의하고 배우겠다는 것은 고신이 제자훈련이라는 단어를 모르거나 예배갱신에 대한 인식과 노력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이미 한국교회에서는 누가 시작해서 누가 전파했는지 알 수도 없을 만큼 상식이 되었고 오랜 역사가 된 방법들입니다.<br/><br/>그런데 같은 방법들을 사용해도 초빙받은 교회들은 부흥을 크게 했는데 왜 고신 내에서는 그런 부흥 사례들이 없느냐는 것이 그들을 초청한 내심입니다. 예배를 갱신해서 이미 고신도 과거 예배로 진행하는 곳은 없다 할 정도입니다. 제자훈련도 힘껏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을 초빙한 것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그 방법 내에서 또 어떤 색다른 기술이나 기법을 가지고 있는지를 알려고 한 것입니다. 함께 공산주의를 하던 나라들이 다같이 개방으로 다 나아갔는데 왜 어떤 나라는 자본주의로 성공을 하고 어떤 나라는 왜 자본주의로 바꾼 뒤에도 별 나아진 것이 없느냐는 그런 차이입니다. 그래서 성과가 좋은 나라의 경우를 배우기 위해 성과가 나지 않는 곳에서 초빙을 하는 차원입니다. <br/><br/>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외부의 부흥법만 도입하면 교회가 성장을 하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환상이라는 것입니다. 그 부흥법을 원도 한도 없이 사용해 본 일반 외부 교계 교회들도 지금 모두들 교회 부흥이 중단되고 교회 침체기가 닥쳤다고 아우성들입니다. 그리고 지금 그 부흥법으로 성공한 몇 교회들을 초빙해서 그들에게 아무리 배워봐야 그 강의 때문에 고신 내에 더 부흥될 교회가 있을 가능성은 없습니다. 초빙 강사들의 내용을 모르는 이들은 없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교계 신문에 늘 오르내리는 성공한 목회자의 얼굴과 그들의 목소리를 직접 들어보는 것에 오히려 의의가 있을 것이고, 또 유명 강사를 초빙해서 한 시간 강의를 했다는 것으로 고신대 학술강좌의 구색을 맞추는 정도에 지나지 않습니다. <br/><br/><br/>②우리의 주교식 목회 부흥법은 진정한 부흥법이며, 외부에서 개발된 부흥법은 탈선타락법인데...<br/><br/>과거 서부교회 부흥법의 경우는 일반 교계가 모르던 것이었고 해보지 않았던 것이고 생각하지도 못했던 것이며, 이런 방법이 부흥에는 유익하나 성경이나 신앙에 문제를 일으키는 외부 교계의 부흥법들과 달리, 공회의 부흥법은 어떤 부작용이 없는 완벽한 성경적 초대교회식 부흥법이었습니다. 지금 외부 교계의 부흥법은 교인 숫자의 단순 출석률 몇 명을 올리는 대신에 교회의 생명을 통째로 내놓아야 하거나 그 교단의 노선을 손해봐야 하는 등 수도없는 손해와 후유증 또는 부작용이 수도없이 지적되고 있습니다. <br/><br/>그런데도 불구하고 그 부흥법이 과연 부흥법으로 효과가 있고 그 부흥법이 과연 일반 교회들에게 다 적용이 되는 것이냐고 구체적으로 따져보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부흥법을 쉽게 요약해서 '과거 일반 교회의 주일학교식 운영법의 장년반 추가 적용'이라고 보셨으면 합니다. 과거는 철없는 아이들에게 말씀을 가르치기가 어려워 데리고 노는 것을 90%나 하고 가르치는 것은 물을 타서 묽은 수프 상태로 먹이는데 그 비중은 주일학교 노력의 10%나 되었는데, 그런 유아식 운영법을 학생부에 적용하고 청년부에 적용하다가 급기야 말세 교회가 얼마나 타락을 했는지 이제는 장년반까지 유아식 주일학교 운영으로 교인의 흥미를 자극해서 교회 출석률을 높이자는 것이 최근 외부 교계에서 시도된 부흥법들입니다. <br/><br/>평생 기도만 하고 성경만 읽고 주님으로 모든 것을 바치고 살아왔던 70세 장로님이 유아원 주일학교 학생들이나 하면 어울릴 듯한 율동과 가사로 손뼉을 쳐야 하나님께 경배가 된다고 방향을 잡고 있습니다. 이는 교회의 마지막 남은 신앙핵심들까지 무장해제를 시켜 교회의 속화가 마침내 완성되는 순간이 아닌가 하고 근심하게 합니다. 지금 남한 내의 좌파 사상이 마침내 남한 내의 우파 거점을 거의 다 점령하고 이제 남은 잔당을 토벌하는 일만 남아 있는 듯한 형국이 마치 교회 내에서 예배와 신앙과 말씀의 흔적을 마지막 대청소를 해버리는 듯합니다. <br/><br/><br/>③이번 주제에 집중한다면, 외부 부흥법은 이미 공회내에서는 증명된 실패법입니다.<br/><br/>백목사님 생전 마지막 순간인 1980년대 중반 이후 공회 내에서는 급격하게 개혁과 변화의 호소 또는 충언들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1980년대가 한국교회로서는 마지막 절호의 부흥기였고 그때는 누구든 개척을 시작만 하면 거의 다 성공한다는 공식이 교단에 상관없이 적용되던 환경이었습니다. 그때 공회 교회들의 부흥이 타 교단보다 늦어진다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여 일단 출석률을 높이고 보자는 공회 내의 열심있는 분들이 백목사님에게 공회 내에도 외부 교회들이 사용하는 여러 가지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도입하자고 주장하게 됩니다. <br/><br/>그 당시 나온 내용도 오늘과 꼭 같은 내용입니다. 해 아래 새 것이 없다고 이미 구약 전도서를 통해 하나님께서 단정을 해 두셨는데 만일 오늘이라도 해 아래 새로운 부흥법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성경의 기본을 버렸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말씀대로 엄격히 살고 하나님 앞에 충성하므로 하나님께서 때가 되어 더해주는 부흥법이 하나 있고, 하나님과 말씀을 상관하지 않고 인간 방법으로 인간의 힘으로만 수단방법 가리지 않는 타락 탈선의 부흥법이 하나 있습니다. 이 둘 외에는 없다고 가르치는 것이 성경이라는 것을 우리 공회 식구들은 모르는 분들이 없을 것입니다. <br/><br/>그런데, 백목사님 생전 마지막 순간 공회 내에서 외부 부흥법을 도입하자고 했던 분들이 목사님 사후에는 거의 다 수정노선으로 옮겨서게 됩니다. 그리고 대구공회나 서울공회라는 이름으로 지금까지 개별 공회를 운영해 오는데 현재 이 공회 소속 교회가 1백여 개가 넘고 그들 교회는 지금까지지 해 보지 않은 것이 없도록 외부 교계의 부흥법을 다 해본 교회들입니다. <br/><br/>예배갱신을 철저하게 해서, 대구공회 교회들의 예배는 과거 공회 예배와는 전혀 다른 예배가 되었음을 이곳에 들어오는 분들 중에 백목사님 생전과 사후를 아는 분들은 다른 말씀을 하시기 어려울 것입니다. 남녀를 섞어 앉혔고 남녀 성가대를 운영했고 학생회를 일반 교회식으로 바꾸었고 복음성가를 마음껏 부르게 했고 교회 내에서 어떤 악기든지 가리지 않게 되었고 예배 때 사용해 보지 않은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있는 힘껏 해 본 결과 오늘 대구공회의 부흥이 과거 그렇게 하기 이전과 비교할 때 과연 얼마나 나아졌는지요?<br/><br/>대구공회가 통계를 발표하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1980년대 마지막과 2000년대 초반과 약 15년 이상을 전혀 눈치 보지 않고 마음껏 외부 교계의 부흥법, 즉 윗글에서 소개한 '사랑의교회'식이나 '호산나교회'식으로 원없이 해 본 결과 어느 정도의 부흥이 가능했는지요? <br/><br/>처음 예배 모습을 완전히 바꾸었을 때는 젊은 청년과 학생들은 환호했을 것입니다. 성령의 감격에 눈물로 기타를 친다는 분의 간증도 들어보았고 외부 교계의 유명한 간증인들을 차례로 모신 교회들 소식도 보았고 사영리전도법도 들어보았습니다. 지금 그런 방법들 중에서도 최신식으로 나가는 사랑의교회나 호산나교회만큼 신기법을 덜 개발해서 부흥이 그들만큼 하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계신가요?<br/><br/>그런 부흥법들이 그들은 일반 교계요 과거 신사참배를 자유롭게 하고도 아무 뒷탈도 없이 걸어왔던 소위 성전밖마당에 해당되는 교회들인데 그들의 탈선은 하나님께서 이미 오래 전부터 간섭하지 않기 때문에 별로 탈이 생기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분들은 신앙의 내면은 허무할지라도 그래도 부흥의 외부 숫자는 챙겼을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공회 내부 교회들은 외부 숫자조차 챙겼다는 교회를 듣지 못했고 오히려 공회의 그 귀한 신앙내면을 전부 다 쏟아버렸습니다. 죽도 밥도 아니라는 말입니다. <br/><br/>일반 교회의 부흥법으로 공회 내에 부흥에 성공한 교회들 중에 가장 대표적인 교회가 잠실동교회입니다. 지금 일반 교계에서도 셀목회 등으로 모일 때는 잠실동교회 예배당이 거의 고정적으로 중심에 있는 소식을 듣고 있습니다. 그러나 1980년대 말의 1천명 대 잠실동교회 교인들과 지금 열린예배를 화끈하게 시행해서 앞에서 말한 성공사례를 따라 가려고 노력한 잠실동교회의 현재 교인 숫자가 어느정도로 부흥이 되었는지요? 아마 지금쯤 본전생각이 너무 간절하지 않을까 합니다. <br/><br/>과거 1000명은 1명 교인이 타 교회 10명보다 더 신앙과 교회에 대하여 집중력을 가졌을 것이고, 지금 열린 예배로 나간 이후의 교인들은 어느날 썰물처럼 빠져나갈 철새와 같은 관람객 수준의 교인들이 아니겠는가 짐작을 합니다. 겉보기에는 약간의 숫적 부흥이 있을지 모르겠으나, 목회자나 교회 핵심 교인들은 교인 전체의 집중력과 신앙내면과 출석교인들의 구성성격을 파악하고 있을 터인데, 단언하고 본전생각이 간절할 것입니다. 아마 다시 1980년대 말로 돌아갈 수 있다면, 열린 예배라는 외부 부흥법을 재도입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한번 그쪽으로 길을 택하고 나면 돌아오는 것은 하나님께서 회개의 기회를 허락해 주셔야 하는데, 나갈 때는 자기 마음이지만 돌아올 때는 자기 마음대로 그렇게 되지 않는다는 점까지 참고하셨으면 합니다.<br/><br/><br/>④지금 대구공회나 서울공회에서는 외부 부흥법의 내막을 간파했을 것 같은데 이제는 서부교회인가요?<br/><br/>1980년대 말 백목사님 생전에 이미 몇 교회들이 담너머 외도하듯 외부 부흥법의 문제점을 알면서도 우선 교인 확보에 가능성이 있다 해서 그렇게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방법들이 지속적인 부흥법은 아니었고 또 목회자의 양심으로서는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기면서 이루어진 방법인데, 백목사님 사후에는 누구 눈치 볼 것 없이 마음껏 교회 운영을 해 볼 수 있게 되자 앞다투어 대구공회와 서울공회에서는 외부 부흥법을 도입했습니다. 모두들 바꾼 처음에는 신선했고 호응도가 아주 높았다고 듣고 있습니다. 그러나 불과 1-2년 또는 5-6년 지나가면서 그 부흥법은 부흥법이기 때문에 사용하는 것이 아니고 그냥 재미있으니까 계속 사용하는 차원이 되었고 아니면 이제는 이전으로 되돌릴 수가 없어 그대로 시행하고 있는 상태가 되었습니다.<br/><br/>이미 대구공회와 서울공회 내에서는 열린예배와 제자훈련과 예배갱신을 하면 교회가 확실하게 부흥된다고 말하는 주장이 벌써 사라졌습니다. 지금도 그런 주장을 하는 몇 분들은 과거 말한 원칙을 지금도 고수하는 것이 아니고, 또 무슨 새로운 자극제를 사용해서 남들이 생각 못한 성공을 해 볼까 하는 사업가의 신구상 차원이지, 그것이 성경이 안내하는 길이어서 그렇게 순종하므로 따라가다가 나타나는 차원은 아닐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부흥법을 사용했든지 그 부흥법이 신앙의 내면을 손해봐도 일단 교인들을 붙들고 보자는 식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그 부흥법과 함께 교회의 탈석과 타락이 가속화 된 것은 공회의 과거를 아는 분들은 부인하지 못할 것입니다. <br/><br/><br/>그런데, 이번 공회교회의 부흥법이라는 주제를 처음 내셨던 분은 '서부교인'입니다. 서부교회는 비록 대부분 교인들이 수정노선에 섰지만 그래도 교회 내 소수의 보수노선의 교인들 때문에 눈치를 보느라고 그동안 수정노선의 방법론을 거의 사용해 보지 않았을 것입니다.그렇지만 이제 서부교회 내에도 이렇게 그냥 있다가는 교회가 완전히 가라앉지 않겠느냐는 위기감을 가진 분들이 교회의 부흥법을 찾게 되었다고 봅니다.<br/><br/>그런데 하필이면 서부교회가 그 부흥의 방법을 만일 교계에서 흔히 알려진 예배갱신이나 열린예배 또는 제자훈련 등의 이름에 현혹되어 만일 그런 방법을 사용하게 된다면 서부교회 내에 남아있는 신앙의 마지막 생명까지도 다 거덜내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서부교회는 이미 제자훈련법을 일반 교계보다 아득히 옛날부터 사용해서, 일반 교계가 서부교회의 앞서 믿는 이들이 목회자도 아닌데 뒤에 믿는 교인들을 제자로 훈련했던 방법을 본 따서 흉내를 내되 이름만 바꾸어 표절 사용했음을 알고 있습니다. 예배갱신도 서부교회의 예배갱신이야말로 교계가 놀랐고 신학자들이 입을 다물지 못했던 것이었습니다. <br/><br/>박윤선목사님이 세상을 뜨기 바로 직전에 백목사님을 만나 그렇게 부러워하고 존경해마지 않았던 방법들입니다. 부흥 중에 최고의 부흥법이며, 성경적인 방법 중에 역사에 이런 기록이 없었다 할 만한 정통 성경법이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서부교회가 내분 때문에 부흥의 기회를 잃어놓고 그 침체의 원인을 외부 부흥법을 도입하지 않아서 그렇다고 나간다면, 정말 큰일도 이보다 더 큰 일이 없을 것 같습니다. <br/><br/><br/>4.결론적으로 윗글에서 소개한 그런 부흥법을 두고 말한다면<br/><br/>이미 공회 교회의 3분의 2 이상이 그런 부흥법에 몰두해 보았고 그렇게 해 본 세월이 이미 15년을 넘기고 있으며, 그 결과는 그 방법을 도입하는 초반에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약간 부흥이 보이는 듯 하다가 결국 제자리로 내려 앉게 되고, 그대신 교회가 하나님 앞에 간직하던 소중한 신앙생명은 완전히 쓰레기통에 다 내어버렸다고 표현하는 결과만이 남았습니다.<br/><br/>과거 서부교회 주일학교부흥법의 제일의 대표라고 할 수 있고 전국교회가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고 할 만큼 교계 최고의 부흥법 강사로 알려진 서부교회주일학교 총무 조사님, 지금은 예배갱신에 열린예배에 제자훈련 등 외부 교단이 하는 방법을 근 10여년 다 돌아다니며 배우고 따라해보고 마지막 결론은 예배당을 유지도 못하고 감리교에 넘겨주고 지금은 무임목회자로 있습니다. <br/><br/>또 이 홈의 원 활동주소지였던 '백영희목회연구소'의 설립초기부터 최고 간부로 또 설교록 발행 책임자로서 백목사님 설교록에 명기된 이름으로는 제일 유명했던 분 역시, 예배갱신과 열린예배 그리고 제자훈련 등으로 1990년대 말부터 자기 목회하는 교회를 일대 개혁을 하여 지금은 과거 총공회 모습은 깨끗하게 없애고 일반 진영에서 좋다는 것은 다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br/><br/>아직까지 공회 내부 교회로서 공회 이전 예배원칙과 교회 운영원칙을 지키고 있는 교회들이 있다면, 외부 부흥법으로 바꾸는 것은 언제든지 마음먹으면 가능하지만 앞서 그렇게 했던 분들을 조금 살펴보고 연구한 다음 결정했으면 합니다. 비록 절에 가서 머리를 깎고 중이 되더라도 이곳이 말릴 수 없고 또 누구도 그 신앙자유성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하물며 외부 교계 부흥법을 참고하겠다는데 어느 누가 간섭하겠습니까만, 일단 한번 더 신중하시고 한번 더 살펴보셨으면 합니다. 좁아지는 길은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가 한 걸음 다시 이전으로 내려올 수 있으나, 넓어지는 걸은 한 걸음 넓어진 분이 다시 이전처럼 좁아진 경우를 저는 거의 본 일이 없습니다. <br/><br/>어떻게 해서 지금까지 간직해 온 진리 노선이며 이 말세 최고 청정지역으로 하나님을 직접 대면하는 이 노선의 깊은 신앙들인데, 한 순간 욱하는 심정에, 한 순간 술에 취해 풀어제친 행동에, 다시는 깨끗한 몸으로 돌아올 수 없는 탈선과 타락에 교회를 내던지는 일을 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또 한번 신중하게, 또 한번 더 생각했으면 합니다. 만일 꼭 그 길을 가겠다면, 우선 이곳의 논리를 이기고 넘어가 보셨으면 합니다. 아무 것도 아닌 이곳의 목회자 한 사람의 지적과 반론에 대하여도 아무 할 말을 하지 못한다면, 꼭 옳기 때문에 간다는 주장을 할 수 있겠습니까? </br></br></br></br></br></br></br></br></br></b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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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백영희신앙노선'총괄(요약)
②'백영희신앙노선'총괄(전체)
③교리정리
④성경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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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6
주의 백성을 구원하시며 주의 산업에 복을 주시고 또 저희의 목자가 되사 영원토록 드십소서
03.06
여호와는 저희의 힘이시요 그 기름 부음 받은 자의 구원의 산성이시로다
03.06
여호와는 나의 힘과 나의 방패시니 내 마음이 저를 의지하여 도움을 얻었도다 그러므로 내 마음이 크게 기뻐하며 내 노래로 저를 찬송하리로다
03.06
여호와를 찬송함이여 내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심이로다
03.06
저희는 여호와의 행하신 일과 손으로 지으신 것을 생각지 아니하므로 여호와께서 저희를 파괴하고 건설치 아니하시리로다
03.06
저희의 행사와 그 행위의 악한대로 갚으시며 저희 손의 지은대로 갚아 그 마땅히 받을 것으로 보응하소서
03.06
악인과 행악하는 자와 함께 나를 끌지 마옵소서 저희는 그 이웃에게 화평을 말하나 그 마음에는 악독이 있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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