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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희 신앙노선의 오늘을 고민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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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p></p><p></p><br/><br><br><개인 글인가, 지방교회 공식 입장인가?><br/>'주님사랑'께서 3335번의 글을 적으실 때 10년 전에 적은 글을 다시 적었다는 말을 굳이 하신 것은 지방교회의 공식적인 교리 입장이라고 소개한 것입니다. '주님사랑'께서 지방교회 입장을 잘못 전달하셨으면 개인적으로 회개할 일이고 지방교회 입장을 정확히 전하셨다면 개인 입장으로 돌려 말씀하시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br/><br/>생각이 없는 돌과 흙으로 된 강산도 10년이면 바뀌는데 매순간 생각과 행동이 달라지는 우리가 10년이 지나도 같은 말을 한다면 불신자는 사상이라 할 것이고 교회라면 교리라고 할 것입니다. 3335번 첫 글에서 '주님사랑'은 '복음'과 '주일'을 아주 명확하게 설명하셨습니다. 제가 3337번으로 질문을 드린 뒤에 3342번 둘째 글을 적으면서 '주님사랑'께서는 갑자기 '한 두 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다'고 말을 바꾸십니다. <br/><br/><br/><지방교회의 입장이 너무 가볍습니다.><br/>지방교회 관련 글들을 읽으면서 일반 교회들이 지방교회를 이단이라고 무조건 비판하는 것도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이단이라고 비판하는 글을 읽으면서 비판하는 사람들이 우습습니다. 그런데 지방교회가 타 교단들이 지방교회를 이단으로 정죄하는 공격에 대해 대응을 할 때의 자세와 이 곳에서 지방교회가 다른 교회를 '다른 복음'으로 비판하는 것도 어떻게 다른지를 모르겠습니다. 일반교회들이 지방교회를 정죄한 글을 보면 과연 그들 스스로 저 많은 내용을 제대로 알기나 하면서 저렇게 적고 있을까? 제가 아는 주변 교회 목회자나 교인들이 아무리 잘 믿는다 해도 그 내용을 그렇게 자세히 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지방교회를 그렇게 파헤치면 지방교회도 이단이 될 것같고 비판하는 자기들도 이단이 될 것같습니다.<br/><br/>이번에는 지방교회가 자신들은 참 복음이고 자신들과 다르게 가르치면 이단이라며 다른 복음이라는 말씀을 들고 나오셨습니다. 먼저 아쉬운 것은 '죄사함'과 '예수님'을 가지고 참 복음과 다른 복음을 나누셨습니다. 아무리 교회가 제정신이 아닐 정도로 나간다 해도 죄사함이라는 것이 예수님이 주셨고 죄사함을 통해 예수님을 붙들고 그 예수님을 붙들고 하나님께로 나간다는 이 상식을 말하지 않는 곳이 있습니까? 성경을 부인하는 기장 교단이 요즘 보수교회들을 비판할 때 예수가 없다고 비판을 하여 불신 사회도 예사로 아는 표현이 되었습니다. 학교를 다닐 때 CCC에서 사영리라는 것을 많이 소개하여 저희 공회 사람들 외에는 사영리 모르는 교인을 보지 못했는데 사영리에도 죄사함과 예수님을 중보로 삼아 하나님께 나가는 내용이 있습니다. <br/><br/>지방교인께서는 자신들을 이단으로 정죄하고 있다는 지방교회 외의 교회를 너무 모르시는 듯합니다. 저는 공회교인이어서 외부 접촉을 거의 하지 않습니다만 이제 설명 드린 내용은 정상적으로 사회생활을 하면서 피할 수가 없고 모를 수 없는 내용만 가지고 소개했습니다. 그런데 3335번 글을 그렇게 적으면 지방교회 외의 교회는 아예 접촉을 해보지 않았다는 말인데 그렇다면 먼저 일반 교회의 입장을 질문하는 것이 옳지 정죄부터 하는 것은 너무 가벼운 일이라 생각합니다. 만일 일반 교회와 접촉을 해보고 일반 교회를 그렇게 파악하셨다면 상대를 너무 주관적으로만 상대하셨다는 비판을 벗기 어려워 보입니다. <br/><br/><br/><침소봉대><br/>하나로 열을 만들고, 바늘을 가지고 몽둥이을 만든다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를 보아 열을 아는 것이 아니라 하나를 가지고 열을 잘못 알고 비판한다는 뜻입니다. 구원파 교인이나 신천지에 활동하는 분들의 언사를 보면 공통적으로 사용하는 표현법이 있습니다. 내 친구가 장로교회를 다니는데 이렇다, 그래서 장로교회는 다 그렇고 오늘 기독교는 다 그렇다는 식입니다. 한국에 장로교가 수백개도 넘는다고 합니다. 매년 선거를 합니다. 몇천명이 총회장인지 모르겠습니다. 총회장 아들이 이렇다, 그래서 저렇다, 그러므로 결론은 이렇다는 식입니다. <br/><br/>그런데 지방교회를 이단으로 정죄하는 일반교회의 정죄 논거를 읽다보면 지방교회를 이탈한 교인들이 이러더라, 그러니 지방교회는 저렇다, 그래서 지방교회는 이단이다는 논법입니다. 여기에 대해 지방교회의 반론 방법은 한결같습니다. 성경이 기준이지 왜 특정 교회의 교리가 기준이 되어야 하느냐는 식입니다. 지방교회의 공식 입장이 있는데 왜 어느 한 사람의 경험을 가지고 마치 전체의 입장처럼 말하느냐 그런 식의 논거들입니다. <br/><br/>다른 문제는 몰라도 주일문제는 저희들이 잘 압니다. 현재 교단 전체를 통해 주일을 옛날 방식 그대로 지키는 곳은 총공회뿐입니다. 일반교회들은 3342번에서 '주님사랑'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모두가 그런 식으로 가르치고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보수교단의 어느 총회장님 가정 한 곳에서만 아마 그렇게 주일을 엄수하신 모양입니다. 그 집 아들 하나를 가지고 주일을 지키지도 않는 교단을 상대로 일괄 정죄했다면, 일반 교회들이 지방교회 교인 한 명을 두고 지방교회를 일괄 정죄해도 변명을 하면 안 될 터라 생각합니다. 설사 그 한 교단은 그렇다 쳐도 지방교회는 교계의 어느 한 교단과 투쟁하는 것이 아니라 지방교회 외 모든 교회를 일괄적으로 상대하며 비교를 하고 비판을 하는 입장입니다. 지방교회의 주일관과 모든 교회의 주일관이 제가 볼 때는 같습니다. 그런데 자신들의 주일관은 옳고 타 교단의 주일관을 정죄하고 나선 것은 너무 섣불리 규정한 것 같습니다.<br/><br/>타교단은 지방교회를 침소봉대했다, 지방교회는 타교단을 침소봉대할 수 있다는 이런 식은 아닐 터인데 글을 읽다보니 지방교회의 글이 그렇게 나가고 있습니다. 아마 이런 공석에서도 이런 정도이니 지방교인들끼리 모인 자리에서는 어느 소수파라 해도 그런 현상이 있듯이 자신들의 우월성을 강조하고 주변 모든 교회를 문제가 있다고 말할 때는 얼마나 심각한 정죄가 나올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크든 적든 그런 현상은 어느 교회든 단체든 다 있는 것이라고 보지만 최소한 외부에 발표하는 글에 '참 복음'과 '다른 복음'이라는 정말 엄청난 표현을 설명하시면서 그 기준과 내용을 이렇게 전개하는 것을 두고는 망연자실할 따름입니다. 저로서는 아직 지방교회 문제를 이제 처음 접하며 살피는 단계지만 지방교회가 이런 표현을 외부에 했다면 외부의 이단 비판은 외부 비판자들도 책임이 있겠지만 지방교회 내부도 비판을 피하거나 벗기는 어렵다고 보입니다. <br/><br/>원래 복음 문제는 설명을 들어 본 뒤에 우리가 보통 아는 상식으로 대화를 하고 싶었고, 주일 문제는 저희 입장을 설명 드리려 했는데 3342번 글에서 지방교회의 주일 문제는 일반 모든 교단들과 입장이 같다 하시니 이런 자리에서 굳이 더 설명을 드릴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여 줄입니다. 3335번 글의 진의를 3342번에서 설명한 것이 맞다면 지방교회는 따로 모일 필요도 없을 것이고 지방교회가 일반 교회의 문제점을 따로 논할 필요도 없었다고 봅니다. 3335번 글은 지방교회가 일반교회와 함께 할 수 없는 가장 심각한 문제점을 대표적으로 제시한 것으로 봅니다. 그런데 3342번 글을 통해 3335번 글에 이의가 제기되지 않도록 방어는 하셨는데 3342번 글을 통해 지방교회는 스스로 일반교회와 다를 바가 없다는 설명을 한 것입니다. 다를 바가 없는데 다르다고 강조를 했으니 교회의 분리 책임은 지방교회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일반교회가 지방교회를 비판하는 데 대해서 만은 일단 유보를 하며 지켜보겠습니다. <br/><br/>제 글에 대해서는 2가지 논점만 제가 직접 대하겠습니다. 지방교회가 말하는 '복음'과 '주일' 문제는 일반 교계와 무엇이 다른가? 저는 3342번 글을 통해 같다고 읽었습니다. 3335번을 통해서는 지방교회가 일반 교계를 대단히 오해하고 있으며 잘못 비판하고 있으며 일반 교회를 대거 이단으로 정죄하고 있는데 이는 중대한 실수라고 생각합니다. 바로 이런 실수가 있었다면 일반 교회로부터 이단으로 비판을 받는다 해도 지방교회로서는 할 말이 없겠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br/><br/><br/><br/><br/><br/><br/><br/><br/><br/><br/>(3342번 글) <br/><br/>>> 주님사랑 님이 쓰신 내용 <<<br/>:<br/>: <br/>: 제 글에 관한 질문을 주셨기에 저의 개인입장을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br/>: <br/>: 1. 복음 <br/>: 복음을 어느 한 두 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다고 봅니다. 죄사함의 복음도 복음이고, 거듭남을 전해도 복음입니다. 하나가 다른 하나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고, 성경이 계시하는 복음의 완전한 그림에 부합하도록 더해지는 것이라고 할수 있습니다.<br/>: <br/>: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사도 바울은 이미 거듭난 성도들인 로마에 있는 교회의 지체들에게도 복음을 전하고자 했다는 점입니다. 롬1:15는 '그러므로 나는 할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너희는 문맥을 따라 올라가보면 7절에서 그 실체가 드러납니다. 곧 "로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입고 성도로 부르심을 입은 모든 자들"이 바울이 복음을 전하고자 했던 대상입니다.<br/>: <br/>: 복음을 불신자가 이단들에게 나 전하는 것으로 알고 있던 많은 분들에게 이 바울의 '복음'<br/>: 개념은 다소 생소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로마서 전체로 지칭될 수 있는 바울의 복음은 죄사함, 거듭남뿐아니라 거듭남 이후 맏아들의 형상을 본받음까지 심지어 영광에 이르는 것꺼지, 더 나아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까지를 포함한 개념입니다. 이런 점은 골1:27-29 본문에서도 확인됩니다. <br/>: <br/>: 2. 주일<br/>: 주일은 행20:7에서 보듯이 안식후 첫날을 가리킵니다. 즉 안식교인들이 말하는 제칠일 안식일 그 다음날입니다. 전통적으로 이 날에 그리스도인들은 모였고 주님을 경배했습니다. 따라서 지방교회측 성도들도 이날 성만찬을 하기 위하여 모입니다. 또한 집회를 빠지지 않고 참석하도록 권고합니다. 이 점에 있어서는 여느 다른 기독교 단체들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부득이 한 사정으로 빠질 경우, 또는 주일날 할 것과 하지 못할 것에 대해서는 각 성도들 안에 계신 주님의 인도를 존중합니다. 몸의 머리되신 그분이 이 문제에 있어서 최종권위를 가지십니다. 물론 새신자들에게는 집회의 중요성에 대해서 교육을 시킵니다. <br/>: <br/>: 장로교 모 교단 총회장을 역임하셨던 어느 분의 아드님에게 직접 들은 이야기입니다. 자신이 의대 다닐 때 그 다음 주 월요일부터 중요한 시험이 있어도 주일 밤 12시가 지나기 전까지는 시험공부를 하지 못하게 해서 밤 12시가 지나서 시험공부를 했다고 합니다. 이것은 그 교단과 무관하고 일부의 실행일 수 있습니다. 어찌하든 이런 실행은 신약의 주일 개념보다는 구약의 안식일 개념이 더 가미된 실행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런 실행은 바울이 율법준수로 의롭게 되려는 사람들을 책망했을 때 기초했던 신약의 원리와는 다른 실행입니다. <br/><br/><br/><br/><br/><br/><br/><br/><br/><br/><br/>(3335번 글)<br/><br/>아래 글은 약 10여년 전에 어떤 싸이트에 썼던 글입니다. 신학생님의 질문에 대한 직접적인 답변은 아니지만, 참고는 되실 것같습니다.<br/><br/><br/>참복음, 다른 복음<br/><br/>'다른 복음'이란 말은 소위 이단감별사들이 다른 단체나 개인을 이단으로 만들 때 즐겨 인용하는 단어입니다. 그러나 엄격히 말해서 갈 1: 6 이 말하는 문맥에서의 그것은 '유대교 율법을 준수함' 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서는 이것을 ‘성도들로 하여금 그리스도에게서 떨어지게 하는 모든 것을 총괄하는 의미’로 확대하여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br/><br/>이제 본문을 인용 소개한 후 ‘참된 복음’을 간략히 설명하고 다른 복음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 본 후 왜 그들이 다른 복음에 빠졌는지를 살펴 보겠습니다. 그런 다음 이것을 오늘날 우리에게 적용 하는 문제를 검토해 보겠습니다. <br/><br/><br/>바울은 갈1:6에서 갈라디아 교회들 안의 성도들에게 '그리스도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 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을 좇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고 말합니다. <br/><br/><br/>1. 참 복음 (또는 기준이 되는 복음) <br/><br/>무엇이 ‘다르다’ 라고 할 때는 어떤 것과 다르다는 것인지 그 기준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통상 알고 있는 복음은 무엇일까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들을 위하여 십자가에서 달려 피흘려 죽으심으로 주 예수님을 믿으면 죄사함 받고 지옥 안 가는 것입니다. 즉 복음 =죄사함으로 인식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br/><br/>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복음은 그분이 이루신 <죄사함>일 뿐 아니라 사실은 <주 예수님 자신>이 복음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할 수만 있으면 로마에 있는 '너희'-이미 죄사함 받고 거듭난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도 복음을 전하기를 원한다'고 말했던 것입니다(롬1:15). 또한 바울은 로마서 말미에서는 '이 복음으로 너희를 능히 견고케 하실...하나님'이라고도 하였습니다. <br/><br/>바울은 주 예수님의 대속의 죽음과 부활뿐 아니라, 그분이 우리의 생명이심(골3:4), 장차는 우리의 영광의 소망이심 (골1:27), 그리고 그분이 우리 안에서 맏아들의 형상을 이루심(갈4:19) 까지도 복음으로 증거했습니다. <br/><br/>즉 사도 바울이 전한 복음의 핵심은 주 예수님 자신입니다. 다른 복음은 다음 항목에서 보겠지만 그럴듯하고 심지어 성경에 기록된 것일찌라도 '주 예수님 자신은 아닌 어떤 것' 입니다. <br/><br/>참 복음은 예수의 피로 씻겨진 질그릇인 우리 안에 생명이신 주 예수님이 담기고 또 담겨져 우리의 영과 혼과 몸까지 생명으로 충만되고 성숙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주 예수님 자신만이 이루실 수 있는 것입니다. <br/><br/><br/>2. 다른 복음(a different gospel) <br/><br/>문맥에 의하면 '다른 복음'은 성도들을 참 복음인 '그리스도 은혜로 우리를 부르신 자'로부터 '떠나게'하는 그 무엇입니다. <br/><br/>여기서 떠난다는 말은 '메타티데이'(3346 a)로서 한 주석가는 이것을 'deserting'이란 단어로 설명했습니다. 이 말은 '병역, 군무 따위를 버리고 탈영하다 또는 탈주하다'라는 의미가 있는 단어입니다. 즉 갈라디아 교회들 안의 유대교인 출신 도들이 원래 있어야 할 장소인 주 예수님 자신인 그리스도의 은혜로부터 무단 탈영하여 다른 복음을 따라 가는 것이 바울이 볼 때는 어이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유대인이었다가 주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고 복음을 받은 하나님의 교회 구성원들을 주님의 은혜로부터 떨어지게(탈영) 할 수 있었을까요? <br/><br/>그것은 요즘같이 물질이나 세상적인 쾌락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세상에서 출세를 하는 것도 그들을 주님의 은혜로부터 떠나게 할 힘은 없었습니다. 그들은 적어도 유대교 율법을 통해 무엇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고 무엇이 하나님이 하지 말라고 한 것인지를 구약 성경을 통해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의지를 사용해서라도 그런 율법이 금하는 것을 하지 않으려고 했을 것입니다. 오히려 이미 효력이 상실된 율법을 준수하려고 한 것이 문제가 된 것입니다. <br/><br/><br/>여기서 다른 복음인 율법의 준수라는 문제가 왜 초대 교회 성도들에게 혼란스러운 일이었는지를 '할례 행'을 통해 설명해 보겠습니다. <br/><br/><br/>사도행전 15장을 보면, 유대로부터 내려 온 어떤 사람들이 교회 성도들을 모아 놓고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않으면 능히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다'라는 소위 다른 복음을 전했습니다 (1절). <br/><br/>물론 그 당시 이 말을 들었던 바울과 바나바는 이런 가르침을 결사 반대했습니다. 그러나 구약을 알고 있던 성도들은 마음에서 이 문제가 정리가 안 되었습니다. <br/><br/>왜냐하면 다른 복음을 전한 사람들의 말도 엄연히 성경에 기초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즉 레위기 12:1-3을 보면 주님이 직접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 8일 째되는 날에 아이의 표피를 잘라 할례를 하라고 명령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또 출 4장에 보면 하나님이 갑자기 태도가 변하여 모세를 죽이려 하자 십보라가 자기 아들의 표피를 잘랐고 피 남편이란 말을 한 이야기가 나와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br/><br/>다른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의 말을 받아들여 할례를 하고, 부정한 음식을 먹지 말고, 안식일을 준수 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에 대해서 상당수의 사람들은 혼란스러웠습니다. <br/><br/>그래서 그들 중에 분별력이 없는 사람은 그런 율법의 요구를 지키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지키다 안 지키다 했습니다. 그러자 교회 안에는 이로 인한 혼란이 왔습니다(갈2:11-12). <br/><br/>심지어 이런 혼란은 초대교회 당시뿐 아니라 지금까지 어느 단체 내에서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즉 바울의 말에 의하면 저주를 받을 '다른 복음'을 붙들고 있는 것입니다. <br/><br/>학교 교사가 안식일 날(혹은 주일)에 학교 당직을 설 수 있는가 없는가? 예수 믿는 사람은 돼지 고기를 먹을 수 없는가? 그렇다면 예수 믿는 사람은 종교적 의식으로 할례를 해야 하는가? 안 해도 된다면 왜 그러한가? 왜 요즘은 유월절 양을 잡아 문설주에 피를 바르는 의식을 하지 않는가? 그러면서도 왜 목사들은 구약의 제사장 냄새가 나는 거룩한 가운을 입고 있는가? 일부의 사례처럼 십일조를 하지 않으면 교적부에서 제명 당해야 한다는 성경적인 근거가 있는가? 그렇다면 십일조를 하지 말아야 하는가? 왜 십자가를 종탑 위에 걸어야 정통 교회이고 그렇지 않으면 이단인가? 왜 사도신경을 외우면 정통이고 안 하면 이단인가? <br/><br/>이런 것들은 크게 볼 때(광의의 범주에서) '다른 복음'과 직 간접적으로 연관이 있는 이슈들 입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도덕적인 율법이 아닌 의식적인 율법을 준수하지 않으면 이단이라거나 제명의 대상이라거나 구원 받지 못한다고 주장하거나 생각하는 사람들은 다른 복음을 전하거나 다른 복음에 오염된 사람들입니다. <br/><br/><br/>3. 하나님의 경륜에 대한 무지에서 오는 혼동임 <br/><br/>같은 주님의 사도였지만 베드로나 아고보와는 달리, 사도 바울은 이 점에 있어서 너무나 분명한 이해가 있었습니다. <br/><br/>즉 모세를 통해 주어진 율법은 율법의 참 실제이신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실 때가지만 유효한 소위 말해 '한시법'이라는 것을 바울는 선명히 본 것입니다. 즉 시대가 바뀐 것입니다. 달리 말해 부모가 주신 머리(신체발부수지부모)를 치렁 치렁 땋아 내리고 다녀야 효자였던 시대에서 이젠 머리를 땋아 내렸냐 아니면 상고머리로 짧게 깎았느냐가 효자 여부를 규정짓는 것은 아니다 라는 시대로 바뀐 것입니다. <br/><br/>이 점에서 바울에겐 구약과 신약은 넘나들 수 없는 명확한 선이 있었습니다. 즉 그가 보기에 율법은 그리스도에게 인도하는 몽학선생이라는 것입니다. <br/><br/>보모는 엄마가 없는 낮 시간동안만 아이를 돌보는 권한이 있을 뿐이고 엄마가 직장에서 퇴근 하고 돌아온 다음에는 참 부모인 엄마에게 아이를 인계하고 자기는 퇴근하면 되는 것입니다. 만일 친 엄마가 온 다음에도 주변에서 얼쩡거리면서 아이에게 이래라 저래라 간섭하고 어떤 때는 엄마를 밀치고 자기가 아이를 주관하는 것은 어이없는 일인 것입니다. 율법과 주님 자신은 그런 관계였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 갈라디아 교회들을 이루는 성도들은 이 점에 대한 계시가 크게 부족했던 것입니다. <br/><br/><br/>4. 참 복음은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어야 함 <br/><br/>갈4:4-5는 하나님의 뜻이 우리를 율법의 저주로 부터 우리를 속량하시고 영적 생명이 장성한 분량에 이른 하나님의 아들의 명분에 이르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옛 율법에 속한 어떤 것을 지킴으로는 도저히 이룰 수 없습니다. 오직 우리의 참 양식으로 오신 주 예수님을 생명의 떡으로 먹음으로(받아들임으로) 우리 안에서 하나님이 증가되실 때만 가능합니다 (골2:19원문). <br/><br/>그럼에도 밖의 이런 저런 형식과 사람이 만든 전통과 실행(사도신경 암송 등) 을 준수하지 않으면 이단이니 하는 분들, 아직도 안식일(주일)을 준수해야 하고, 돼지 고기를 먹으면 큰일 난다는 사람들, 자신의 옛사람의 행위를 율법에 근접시킨 후 자신은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착각하는 사람들... 절대로 주 예수님 자신은 사람 안에 들어오실 수 없다(골1:27) 만일 그렇게 말하면 이단이라는 분들, 아버지 하나님은 가까이 하지 못할 빛에 거하심으로 아버지는 절대로 사람 안에 안 계신다는 분들(고후5:19)은 지금 다른 복음을 전하거나 또는 다른 복음에 오염된 사람들 이라고 보아도 큰 무리가 없을 것입니다. 이런 것들은 구약과 신약을 혼동하고, 율법과 그리스도를 섞어 놓았으며, 율법의 행위로 의로워지려는 불가능한 노력일 뿐입니다. <br/><br/>이와 반대로 참된 복음을 받은 사람은 사도 바울처럼 심지어 자기에게 유익하던 것까지도 다 배설물로 여깁니다. 그리고 오직 그리스도 한 분만을 얻기 위해 달려갑니다(빌3:8). 오늘날에도 다른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을 심각하게 방해함으로 갈1:8이 경고한 내용이 그들에게 응할 수 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할 것입니다. <br/><br/>우리는 간교한 다른 복음에서 구원되고, 매 순간 참 복음인 주님 자신에게로 돌아가야 합니다.<br/><br/><br/><br/><br/><br/><br/><br/><br/><br/><br/><br/></br></b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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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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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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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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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2
여호와께서 그 터를 바다 위에 세우심이여 강들 위에 건설하셨도다
03.02
땅과 거기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중에 거하는 자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
02.27
저로 영영토록 지극한 복을 받게 하시며 주의 앞에서 기쁘고 즐겁게 하시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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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1.02
12.21
이 노선의 우리가 지켜 볼 이유와 사연이 있는 볼리비아 선교회 고광문 목사님이 보내 온 소식입니다. '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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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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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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