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KIST
백영희 신앙노선의 오늘을 고민하는
목회 연구소
총공회 목회연구소
0
총공회
백영희
보관자료
연구실
행정실
활용자료
참고자료
총공회
총공회 소개
인물/사건
소사/일지
역사자료
목회 연구소
역사
참고
백영희
보관자료
추가자료
출간 설교록
미출간 (준비)
설교록 발췌집
연구서적
출간목록
연구실
행정실
행정
보관
정정
회원/후원
활용자료
교리 정리
성경신학
[설교류]
원본설교(확정)
원본설교(검토)
성경단어사전
주교공과
[사전류]
교리성구사전
주해사전
용어사전
예화사전
메모사전
각주사전
참고자료
메인
총공회
백영희
보관자료
연구실
행정실
활용자료
참고자료
0
발언/주제연구 글답변
작성자
필수
비밀번호
필수
분류
HTML
비밀글
비밀번호
제목
필수
내용
웹에디터 시작
> > > <p></p><p></p><br/><br><br>공회교인님이 쓰신 글을 시간을 내어 다시 읽어볼 때 ‘신언’에 대한 성경근거 제시 등 제가 추가적으로 답변 내지는 해명을 해야 할 부분이 있는 것을 알았습니다. 서로를 더 알아가는 교제의 차원에서 적으신 내용 중에서 일부 필요한 부분을 조금 더 해명해 보겠습니다.<br/><br/>1.교회의 하나<br/><br/>“교회가 하나라야 한다는 것을 부인하는 교회가 도대체 있을까요? 천주교도 교회는 하나라 하지 않을까요? 교파마다 자기만 옳다고 하고 지방교회도 자기만 옳다고 하지 않나요? 그런데 모두가 교회는 하나라고 말하고 있으니 이런 문제가 생기는 것이 아닐까요? 교회가 하나라는 말을 지방교회만 알고 있다고 생각하면 너무 착각일 것 같습니다. 한지방의 지방을 가로세로 몇키로라고 지방교회가 재놓은 것이 혹시 있을까요? “<br/><br/>해명) 말씀하신 대로 ‘교회가 하나라야 한다.’ 라는 것은 천주교를 포함하여 모든 이들이 알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현실적으로는 주님의 몸은 약 4만 개의 교단들로 나뉘어 있습니다. 이것을 원래의 성경적인 모습으로 되돌리려는 ‘실행’적인 노력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즉 그것이 하나되는 전적인 길은 아니지만, 그 교단 명칭 이외의 단체로 분류되는 믿는 이들은 배제시키는 특정 명칭만은 일단 내려 놓고 성경에서 볼수 있는 것처럼 <거듭난 자들-그리스도의 영을 받은 자들>(롬8:9)+ <지역 범위를 딴 명칭>(행14:23, 딛1:5, 행8:1)라는 단순한 진리로 교회와 교회들을 보자는 것입니다. 만일 여러가지 사정으로 당장은 그리할 수 없다면, 그 길을 본 저희들 만이라도 먼저 그 길을 가보겠다는 것입니다.<br/><br/><br/>2. 만인 제사장<br/><br/>“목사제도의 잘못을 말씀하신 것은 만인제사장제를 부정하는 교회가 거의 없으니 예를 잘못 든 것같습니다. 만인제사장제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교회 잘못이 아니고 그 교회 운영이 잘못된 것이겠지요. 지방교회도 교회 운영에 문제는 없을리가 없지 않습니까?”<br/><br/>해명) 이 역시 위와 같은 원칙입니다. 누가 잘하고 못하고는 둘째 문제이고, 만인제사장이 성경의 가르침이라면 그것을 본 저희라도 그 길을 실제로 가보자는 것입니다. 아는 것에서만 그치지 말고, 그 아는 것을 실제로 실행에 옮기는 것이지요. 물론 세세한 운영 면에서 이런 저런 시행착오가 있을 수 있지만, 큰 틀에서는 처음에 본 그것이 나중에 바뀐 적은 아직 없습니다. 그것은 성경을 바꾸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br/><br/>3. ‘신언’이라는 말의 성경근거<br/><br/>“지방교회는 매주 안식 후 첫 날에 성만찬을 하기 위하여 모였고, 또한 각 성도들이 주 중에 주님을 누린 것들을 가지고 이 집 저 집에서 모여서 모두가 상호적으로 지체의 분량껏 서로 그리스도를 공급했던 것이 개 교회 예배였습니다. 모든 지체들이 분량껏 신언(신언) 하여 교회를 건축하라고 격려하는 것이 성경입니다(고전14:4)라고 하셨는데 우선 '신언'이 성경에 나오는 단어일까요? “<br/><br/><br/>해명) 사실은 주로 이 부분을 해명드릴 마음이 있어서 추가 글을 쓰고 있습니다. ‘신언’(申言)이라는 단어는 위 원문에서 제시된 것처럼 고전 14장 4절에 있는 개역성경의 ‘예언’이라는 말에 대한 다른 번역적 표현 입니다. 이 신언은 그럼에도 원래의 일반적인 이해인 ‘장래일을 미리 말한다’라는 의미를 배제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고전 14장에서 이 신언이라는 단어의 주된 의미는, ‘(이미 기록된) 말씀을 받아서 편다’ 또는 ‘(생명되신) 그리스도를 사람들에게 말해 낸다’ 라는 뜻이라는 것입니다. 이 말은 출애굽기에서 아론이 모세의 말을 받아 그대로 전달한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목사님들의 설교(신언)가 ‘장래의 일을 말하는 것’만 있는 것이 아님은 분명합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펴거나’(신언)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모세의 말을 아론이 대언하는 것이 바른 설교의 내용인 것입니다. 다만 주의 회복은 목사님 혼자하던 이런 ‘대언’ 또는 ‘신언’을 인도자의 위치에 있는 지체는 물론 영의 인도를 받는 모든 일반 성도들도 할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허용하는 것입니다. 민수기에서 진중에 머물던 “엘닷과 메닷”도 예언(신언)했을 때 여호수아는 이것을 금하라고 모세에게 청했지만, 모세는 ‘여호와께서 그분의 영을 모든 백성에게 주사 다 선지자 (prophets)되게 하시기를 원한다’ 고 말한 바로 그 태도입니다. 이것이 저희가 이해하고 실행하는 고전 14장에서의 ‘신언’(prophecy)의 의미입니다(1절).<br/><br/>기왕 말이 나온 김에 조금만 더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저도 오랫동안 개역성경으로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그 당시 고전 14:4를 여러번 읽고 지나갔지만, 이 구절이 제게 밝은 빛으로 다가온 것은 다음 두 가지 너울들이 벗겨진 후였습니다. 하나는 개역성경이 쓴 ‘예언’이라는 말이 주는 선입관입니다. 즉 예언은 보통 ‘장래 일을 미리 말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물론 국어사전에는 그외에 다른 의미도 있습니다만). 그런데 해당 본문의 전후 문맥은 예언이 듣는 이들에게 권면과 위로를 준다고 말합니다. 뭔가 석연치 않았지만 예전에는 이 일을 깊이 묵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둘째는 개역성경에는 원문에는 없는 ‘덕’(을 세운다)이라는 말이 삽입되어 있음을 본 것입니다. 그러나 어느날 ‘덕’이라는 말을 빼고, 원문대로 ‘예언 하는 자는 교회를 세운다’ 라고 읽으니까,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운다’라는 말씀과 함께 강렬한 빛으로 다가왔습니다. 즉 주님의 몸인 교회건축은 신언의 말로 세우는 것이구나 하는 것입니다. 즉 몸의 각 지체들 안에서 내주하시는 주님께서 지체들의 분량만큼 신언하는 그 말을 통해서 듣는 이들 안으로 생명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교회건축임을 본 것입니다. 이 빛은 주님의 몸은 <머리>되신 주님을 근원으로 하여 <공급하는 마디들>을 통해 흘러온 공급(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을 받아 <각 지체들>의 분량만큼의 기능을 발휘함을 통해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워져 가는 것임을 보게 했습니다. 즉 ‘각 지체가 분량에 따라 기능을 발휘하는 것을 통하여’ 라는 말씀이 많은 경우에 제도적으로 눌려 있었고 제한되어 있음을 본 것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본다면 아무리 그 설교가 훌륭하고 풍성해도 목사님 혼자 말하는 것은 다른 지체들이 기능을 발휘할 기회를 제한할 수 밖에 없음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모두가 한 사람씩 신언할 수 있다’ (고전 14:31)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신언은 모든 사람이 배우고 모든 사람이 격려를 받게 한다고도 말합니다. <br/><br/><br/>4. 신언의 방향과 목표<br/><br/>“30년전부터 신언을 해 오셨다... 그전에는 하지 않으셨다... 그렇다면 현재 다른 교회가 신언을 하지 않아도 틀렸다 그래 말씀하는 것보다 우리보다 속도가 좀 늦은가보다 그렇게 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지방교인들은 신언을 하지 않으면 교회도 아니다 목사 혼자 말을 하라는 성경이 있는가? 라고 합니다. ..(중략) 지방교회도 시행착오가 있었다면 앞으로도 또 세월이 지나가다보면 오늘을 돌아보면서 그 때는 시행착오라고 할 가능성은 있겠지요. 제눈에는 많이 보입니다. 운영자가 막지만 않으시면 지방교회의 성구 인용을 무척 많이 반증하고 싶은데 한번 시작하면 분량이 너무 많아질 것같아서 그냥 몇 말씀만 드립니다.”<br/><br/>해명) 신언을 하고 안 하고가 교회인지 아닌지를 구분하는 절대기준은 아닙니다. 만일 누가 그런 것을 가지고 ‘교회도 아니다’ 라고 했다면 제가 대신 용서를 구합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몸을 건축하는 길을 감에 있어서 이런 저런 시행착오와 과정 상에서의 부족은 늘 있어 왔습니다. 그러나 그 가는 ‘방향’과 그 마지막 ‘목적지’는 그런 이상을 성경에서 발견한 이후 한번도 바뀐 적이 없습니다. 즉 혼자 또는 소수가 독점하는 설교단을 모든 교회 구성원들에게 돌림으로 각 지체들이 분량껏 기능을 발휘하게 하는 ‘방향’ (엡4:16) 그런 실행을 하는 유일한 목적은 새예루살렘으로 완결될 주님의 몸을 건축하기 위함이다 (고전14:4) 라는 것은 갈수록 더 확신으로 다가올 뿐, 후회되거나 수정이 필요한 잘못된 길이라고 생각된 적은 없습니다. <br/><br/>5. 계명을 지킴<br/><br/>“4계명은 6계명과 묶어 놓으면 더듬을 것도 없이 명확하다고 생각합니다. 십계명은 신약인 마19:17에서 지키라 했으니 별론이 필요없을 듯하고 4계명은 골2:16과 히4:8에 의해 주일로 날자만 바꾸어 그대로 지키고 있습니다. 성구로 갈 것도 없이 신언을 실제 해봤을 때 지방교인들이 은혜를 받는 면이 특별하다면 할 수 있다고 봅니다. 십계명과 주일은 지켜본 사람들이 지킴으로 받는 복이 있고 특별한 은혜의 세계가 있어 이제 설명한 성구 근거와 함께 그 근거제시가 옳다는 증거로 삼고 있습니다. 끝으로 워치만 니의 경우 주일에 바쁘면 평일처럼 그렇게 사셨을까요? 오랜 된 분이어서 기록이 잘 남아 있지 않다면 위트니스 리의 주일도 궁금합니다. 저희는 저희 신앙체험상 상대방의 신앙을 가장 잘 파악할 수 있는 바로미터를 주일로 보통 생각합니다. 주일 문제가 없으면 제 경험상 세상을 살면서 복음 때문에 좁은길이나 고난을 겪을 일은 없다고 생각합니다.”<br/><br/>해명) 구약에서는 안식일에 나무를 했다고 해서 돌로 쳐죽인 장면이 나옵니다(민15:35). 그러므로 오늘날도 동일하게 주일성수 안 하면 돌로 쳐죽이자 라는 율법적인 의미만 아니라면, ‘이 날을 저 날보다 낫게 여김’은 성경이 허용하는 바 입니다. 충분히 이런 면에서는 자유함을 갖되, 이런 주일성수 문제가 나와 다른 어떤 이들을 판단하거나, 나와 남을 나누어 분열시키는 어떤 기준이 되는 것은 신약경륜에 따른 가르침이 말하는 바는 아니라는 것만 알면 족할 것입니다. 워치만 니나 위트니스 리는 처음에 복음을 받은 십대 후반 그 순간부터 일생이 주님께 드려진 분들입니다. 따라서 한 주중 어떤 날에 특별히 무엇을 더 하고 안 하고의 차원은 아닙니다. 매 순간 내주하시는 생명의 법의 인도를 따르고자 했고, 또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설 날을 늘 염두에 두었습니다. 두 분 다 몸 안의 지체들이자 귀한 형제님들이셨습니다. <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 공회교인 님이 쓰신 내용 <<<br/>:<br/>: 교회가 하나라야 한다는 것을 부인하는 교회가 도대체 있을까요? 천주교도 교회는 하나라 하지 않을까요? 교파마다 자기만 옳다고 하고 지방교회도 자기만 옳다고 하지 않나요? 그런데 모두가 교회는 하나라고 말하고 있으니 이런 문제가 생기는 것이 아닐까요? 교회가 하나라는 말을 지방교회만 알고 있다고 생각하면 너무 착각일 것 같습니다. 한지방의 지방을 가로세로 몇키로라고 지방교회가 재놓은 것이 혹시 있을까요? <br/>: <br/>: 목사제도의 잘못을 말씀하신 것은 만인제사장제를 부정하는 교회가 거의 없으니 예를 잘못 든 것같습니다. 만인제사장제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교회 잘못이 아니고 그 교회 운영이 잘못된 것이겠지요. 지방교회도 교회 운영에 문제는 없을리가 없지 않습니까?<br/>: <br/>: 지방교회는 매주 안식 후 첫 날에 성만찬을 하기 위하여 모였고, 또한 각 성도들이 주 중에 주님을 누린 것들을 가지고 이 집 저 집에서 모여서 모두가 상호적으로 지체의 분량껏 서로 그리스도를 공급했던 것이 개 교회 예배였습니다. 모든 지체들이 분량껏 신언(신언) 하여 교회를 건축하라고 격려하는 것이 성경입니다(고전14:4)라고 하셨는데 우선 '신언'이 성경에 나오는 단어일까요? 성경에 이런저런 뜻을 모으면 신언이라고 할 수 있다고 설명하시겠지요? 다른 교회에게는 성구를 딱 들이대 봐라 하고 지방교회가 사용하는 단어나 제도는 장황하게 설명을 하려한다면 양심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내게 적용한 배려와 배경은 남에게도 적용해야 하지 않을까요? 주일에는 성찬을 그리고 주 중에는 이 집 저 집에서라고 하셨는데 행2:46은 날마다 성전에서 모입니다. 어느 성구는 꼭 그대로 하고, 어느 성구는 그 말씀의 뜻을 따르고 다르게 적용을 하실까요? <br/>: <br/>: 30년전부터 신언을 해 오셨다... 그전에는 하지 않으셨다... 그렇다면 현재 다른 교회가 신언을 하지 않아도 틀렸다 그래 말씀하는 것보다 우리보다 속도가 좀 늦은가보다 그렇게 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지방교인들은 신언을 하지 않으면 교회도 아니다 목사 혼자 말을 하라는 성경이 있는가? 라고 합니다. 또 반문합니다. 위트니스 글만 인쇄해서 나눠보고 그 글만 가지고 신언해라는 말은 성경에 나옵니까? 설명을 할수는 있겠지요. 설명을 많이 하셔야 하겠지요. 타 교회들도 할말은 많지 않겠습니까? 남 말은 들을 것도 없고 내 말만 들으라... 그런 식은 지방교회를 정죄한 최모 목사님과 같은 분들의 논리입니다. 최 목사님도 가혹한 분이라 보이는데 여기서 지방교회 글을 읽으면서 너무 가혹하다 너무 극심하다 남말은 들을 것도 없고 지방교회 말만 장황하게 들으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습니다. 지방교회에는 '목' '사'라는 두 글자를 합해 놓은 직책은 인정하지 않으나 '형제'라는 이름을 가진 분의 입으로 나온 것만 세계 모든 교인들이 항상 반복해야 한다면 천주교 교황이라고 비판을 받을 듯합니다. 그런 은혜의 세계를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타 교회의 목사제도를 비판하기 때문에 같은 논리로 지방교회에 적용해 봤습니다. 글이 길어지다 보니까 마치 일반교회 입장에서 지방교회를 비판하는 것처럼 되었는데 이 점은 대단히 죄송합니다. 저희 교단은 '목'과 '사'라는 글자를 붙여서 사용은 해도 일반 목사와 아주 다릅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다른 것이 아니라 일반교회도 원래 목사제도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더군요. <br/>: <br/>: 지방교회도 시행착오가 있었다면 앞으로도 또 세월이 지나가다보면 오늘을 돌아보면서 그 때는 시행착오라고 할 가능성은 있겠지요. 제눈에는 많이 보입니다. 운영자가 막지만 않으시면 지방교회의 성구 인용을 무척 많이 반증하고 싶은데 한번 시작하면 분량이 너무 많아질 것같아서 그냥 몇 말씀만 드립니다. <br/>: <br/>: 4계명은 6계명과 묶어 놓으면 더듬을 것도 없이 명확하다고 생각합니다. 십계명은 신약인 마19:17에서 지키라 했으니 별론이 필요없을 듯하고 4계명은 골2:16과 히4:8에 의해 주일로 날자만 바꾸어 그대로 지키고 있습니다. 성구로 갈 것도 없이 신언을 실제 해봤을 때 지방교인들이 은혜를 받는 면이 특별하다면 할 수 있다고 봅니다. 십계명과 주일은 지켜본 사람들이 지킴으로 받는 복이 있고 특별한 은혜의 세계가 있어 이제 설명한 성구 근거와 함께 그 근거제시가 옳다는 증거로 삼고 있습니다. 끝으로 워치만 니의 경우 주일에 바쁘면 평일처럼 그렇게 사셨을까요? 오랜 된 분이어서 기록이 잘 남아 있지 않다면 위트니스 리의 주일도 궁금합니다. 저희는 저희 신앙체험상 상대방의 신앙을 가장 잘 파악할 수 있는 바로미터를 주일로 보통 생각합니다. 주일 문제가 없으면 제 경험상 세상을 살면서 복음 때문에 좁은길이나 고난을 겪을 일은 없다고 생각합니다.<br/>: <br/>: <br/>: <br/>: <br/>: <br/>: <br/>: <br/>: <br/>: <br/>: <br/>: <br/>: <br/>: >> 주님사랑 님이 쓰신 내용 <<<br/>: :<br/>: : 1.비판하고 비판받는 문제<br/>: : <br/>: : 사람이 비판을 받을 때는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잘못된 일을 하여 비판을 받으면, 회개하고 용서를 구하며 재발하는 일이 없도록 시정을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때는 둘 다 일리가 있지만, 단지 생각이 조금 다르고, 선호가 다르고, 관행이 달라서 오는 이견과 비판도 있습니다. 이 때는 서로 상대방의 다름을 견디든지 아니면 화합을 위해 상대에게 맞춰주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때는 믿는 진리에 대한 인식이 달라서 오는 비판도 있습니다. 양보 할 수 없는 진리를 진리로 선포함으로 오는 비판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타협하기가 어렵습니다. 주 예수님도 성전을 사흘만에 짓는다고 말했다고 해서 비판을 받으셨고,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셔서 비판을 받으셨습니다. 또한 안식일에 손 마른 자를 고쳐주셨다 고 비판을 받으셨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참으로 성전을 사흘만에 재건하셨고, 참으로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안식일에도 의식적인 율법의 규례를 깰지언정 손 마른자를 회복시킴이 그분의 본성에 부합했습니다. 유대인들은 그들의 길을 갔고, 주님도 그분의 길을 가셨습니다.<br/>: : <br/>: : ‘몸인 교회는 하나이어야 한다’(한교회주의)는 말은 지방교회의 주장이 아니라 주님의 마지막 기도내용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최대한 성경이 말하는 그것을 실행하려는 것 뿐입니다. ‘목사님은 성직자이고, 신학을 하지 않으면 평신도이다’(목사제도)라는 사상을 신약 교회 실행을 언급하는 성경 구절들 안에서는 찾아보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이 말하는 바 대로 ‘복수의 장로들’이 개 교회의 행정을 책임지되, 한 몸 안에서 각 지체들이 머리의 공급과 통제아래서 자신들의 기능을 최대한 발휘하도록 존중하는 길을 가고자 했습니다. 외부인이 가끔씩 들러서 특별한 공급을 하는 사역적 차원의 예배 외에, 매주 주일 예배에서 특정한 한 사람이 설교하는 예를 성경에서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대신에 매주 안식 후 첫 날에 성만찬을 하기 위하여 모였고, 또한 각 성도들이 주 중에 주님을 누린 것들을 가지고 이 집 저 집에서 모여서 모두가 상호적으로 지체의 분량껏 서로 그리스도를 공급했던 것이 개 교회 예배였습니다. 모든 지체들이 분량껏 신언(신언) 하여 교회를 건축하라고 격려하는 것이 성경입니다(고전14:4). <br/>: : <br/>: : 이것을 보았음으로 지방교회들 내부에서 조차도 어려웠고 지금도 어렵지만 한 두 사람이 설교하던 과거의 기존의 틀을 깨고 모두가 분량껏 설교하도록(신언하도록) 틀을 바꾸어 가지 않는 길을 간지가 30여년 째 입니다. 여러 시행착오가 있었고, 교계 실행과 많이 다르지만, 이런 실행을 통해 성도들 이전보다는 더 온전케 되었고, 또 앞으로 더 온전케 될 것이라는 소망이 보입니다. <br/>: : <br/>: : 이와 달리 오히려 기존의 교계실행이 더 성경적이고 소망이 있는 길이다 라는 것을 특정교단 교리나 신학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저희들을 설득시켜 주실 분이계시면 언제든지 그 길을 따를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매우 유감스럽게도 교계의 대다수는 이대로 는 안 되고 뭔가 개혁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대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유불문 하고 너희들은 다수인 우리의 실행과 다르니 이단이다 라고 하시면 그런 비판은 감수할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br/>: : <br/>: : 다행히 거듭남 이후 “공자나 석가처럼 착하다고 성화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되는 것이 되고 하나님의 속성을 닮은 온전한 형상이 된 것”을 말씀하시는 총공회 귀한 신앙고백을 듣습니다. ‘하나님이 된다’는 이유로 비판을 받아오던 중 일부에서나마 같은 목소리를 들음으로 위안이 됩니다. 때가 되면 우리 모두가 다 같은 목소리로 고백할 내용입니다.<br/>: : <br/>: : 다만, 진리를 좀 더 깊이 알거나 자신들의 신앙생활이 더 성경적이다 라고 해서 우월감을 보이지 않고, 다른 하나님의 자녀들의 사정도 헤아리며 겸손하고 또 지혜롭게 말하는 자세는 총공회측의 좋은 본으로부터 배울 점이라고 생각됩니다.<br/>: : <br/>: : <br/>: : 2.이 날보더 저 날을 낫겨 여김도 몸을 위하여<br/>: : <br/>: : 의식적 계명과 도덕적 계명<br/>: : <br/>: : 구약이나 신약이나 죄인들은여전히 넘쳐납니다. 그럼에도 오늘날 어디를 가 보아도 구약의 규례를 따라 양 잡고 소 잡는 신약 교회들을 보지 못합니다. 그것은 그림자가 폐해지고 실재가 오셨기 때문입니다. 율법은 장차 올 좋은 것들의 그림자일 뿐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한시법인 의식적인 율법이 폐해졌다고 해서 살인하고 거짓말을 하고 우상을 섬겨도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밖의 어떤 제한이 있어서가아니라 신약 백성의 새로워진 본성이 금하는 죄악입니다. 오히려 형제를 향하여 ‘라가’라 하는 것도 구약의 살인에 해당되는 금지된 행동일 뿐입니다. 양 잡고, 소 잡고, 안식을 지키는 구약의 <의식적 계명>의 요구는 십자가에서 끝났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명과 본성의 요구를 거스리는 것을 금지하는 <br/>: : <도덕적 계명>은 신약시대에서 더 강화되었습니다. 둘을 구분하는 것이 좋습니다.<br/>: : <br/>: : <br/>: :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또 몸을 위하여<br/>: : <br/>: : 주님은 십자가 상에서 규례들로 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 안에서 페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유대인과 그들이 개라고 부르던 이방인들이 그분 자신 안에서 한 새사람이 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율법도 성경이고, 한 새사람도 성경이지만 후자가 참으로 하나님 마음 속 깊은 곳 안에 있던 갈망입니다. 한 새사람 또는 주님의 몸이 우선 순위입니다. 모든 것들은 이 우선 순위에 저촉을 받습니다.<br/>: : <br/>: : 주일을 철저하게 지킬 수 있으면 그것은 우리의 자랑이 아니라 주님의 은혜입니다. 부득이 한 사정으로 주일을 철저히 지키지 못해도 여전히 주님의 몸의 지체들입니다. 나와 남이 아니라 모두 나의 일부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이 자랑이 될수 없고, 또 정죄의 대상이 될수 없습니다. 다 몸을 위한 것입니다. 좋은 실행과 좋은 본이 있으면 감사할 일입니다. 우리는 그런 좋은 본들을 사모하며 최선을 다하여 따를 것입니다. 그러나 주일 준수 여부가 나와 남을 구분하는 이유가 된다면 그렇게 극단으로 간 것이 안식교입니다. 침례를 너무 강조하면 침례교가 되고, 성결을 너무 강조하면 성결교가 됩니다. 새예루살렘 안에는 안식과 침례와 성결의 실재는 차고 넘칠 것이나 ‘안식교’, ‘침례교’ ‘성결교’는 볼수 없을 것입니다. 새예루살렘이 최종입니다. 이 안에 있을 것을 최대한 강조하고 사랑으로 서로 좋은 것을 나누며, 이 안에 없을 것은 점점 사라지게 하자는 것이 주님의 회복입니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라고 하신 이 위대한 예언은 반드시 이뤄질 것입니다. 다른 어떤 이물질(흠과 점과 주름)도 없이 그분 자신만의 충만인 그분의 몸(교회), 그리고 그 몸의 머리이신 주님자신이 온 우주 안에서 하나님을 충만히 표현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신부와 신랑이 서로 안에 거주하는 새예루살렘의 모습입니다.<br/>: : </br></br> > >
웹 에디터 끝
비밀
날짜
링크 #1
유튜브, 비메오 등 동영상 공유주소 등록시 해당 동영상은 본문 자동실행
링크 #2
날짜수정
자동(선택)
추가태그
첨부파일
파일추가
파일삭제
첨부사진
상단출력
하단출력
본문삽입
본문삽입시 {이미지:0}, {이미지:1} 형태로 글내용 입력시 지정 첨부사진이 출력됨
자동등록방지
숫자음성듣기
새로고침
자동등록방지 숫자를 순서대로 입력하세요.
작성완료
취소
정리
(세부)▶
①'백영희신앙노선'총괄(요약)
②'백영희신앙노선'총괄(전체)
③교리정리
④성경신학
⑤문답방정리
⑥기타정리
자료
분류자료
●
문의답변
쉬운문답
발언/주제연구
연경교재
참고연경
일반자료
남단에서2
+
새글..
03.04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려니와 무고히 속이는 자는 수치를 당하리이다
03.04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의지하였사오니 나로 부끄럽지 않게 하시고 나의 원수로 나를 이기어 개가를 부르지 못하게 하소서
03.04
여호와여 나의 영혼이 주를 우러러 보나이다
03.03
내 나이 이제 팔십세라 어떻게 좋고 흉한 것을 분간할 수 있사오며 음식의 맛을 알 수 있사오리이까 어떻게 다시 노래하는 남자나 여인의 소리를 알아 들을 수 있사오리이까 어찌하여 종이 내 ?
03.02
여호와께서 그 터를 바다 위에 세우심이여 강들 위에 건설하셨도다
03.02
땅과 거기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중에 거하는 자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
02.27
저로 영영토록 지극한 복을 받게 하시며 주의 앞에서 기쁘고 즐겁게 하시나이다
+
새댓글
13.11.02
12.21
이 노선의 우리가 지켜 볼 이유와 사연이 있는 볼리비아 선교회 고광문 목사님이 보내 온 소식입니다. '선교'…
서기
03.18
공개 완료
성도A
03.16
31절에서34절말씀주해요망
State
현재 접속자
179 명
오늘 방문자
4,569 명
어제 방문자
7,170 명
최대 방문자
7,646 명
전체 방문자
3,295,297 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