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KIST
백영희 신앙노선의 오늘을 고민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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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p></p><p></p><br/><br><br><br/>제가 이곳에 글을 쓰는 기본 자세는 이 홈이 토론의 공간을 열어 놓으실 때의 의도와 진행계획을 최대한 존중하고 따르려는 것입니다. 그러나 ‘형제’분이 저를 지칭하여 구체적인 질문에 대한 답변을 요청하셔서 부득이함으로 이 글을 씁니다. 이미 이곳 저곳에서 답변을 드린 부분도 있으나, 설명이 충분치 못한 것같아 조금 자세히 쓰더라도 양해를 해 주시기 바랍니다. 편의상 질문 내용을 아래 셋으로 요약해 보았습니다.<br/><br/><br/>1. 개인자격입니다.<br/><br/>이 점은 이미 이곳 어디에선가 밝혀드린 것으로 기억됩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개인 자격으로 글을 쓰고 있습니다. 그러나 가볍게 쓰는 것은 아닙니다. 처음에 이곳 총공회측과의 대화의 시작도 주님의 주권적인 안배에 따라 시작되었다고 믿지만, 제가 어떤 의도를 관철시키려고 주도적으로 시작한 것이 아님을 주님은 아십니다. 단지 소위 지방교회들에 대해서 평소에 궁금하여 질문하시는 분(들)께 제가 알고 있는 것들을 최대한 성실하게 답변드리는 식으로 지금 까지 대화가 진행되어 왔습니다. 이 곳 홈에 올려진 그동안의 글들이 그 증거입니다.<br/><br/> 참고로 소위 주의 회복을 대표하여 어떤 일이 발생하고 추진될 경우는 이런 경우들입니다. <br/><br/>예전에 구 소련에 이 사역이 진출할 때 그렇게 하기로 한 결정은 주의 회복을 대표한 결정이요 실행이었습니다. 그 당시 구 소련이 무너지기 약 10여년 전부터 미국 시애틀 교회 몇 분 형제님들은 소련(러시아)아에 대한 부담을 가지고 매일 모여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당시는 소련이 무너질 것이라는 어떤 암시도 없던 때입니다. 그러나 그분들은 직장을 가기 전에 매일 집회소에 모여서 소련의 복음화를 위하여 한 시간씩 기도했습니다. 그러기를 거의 10여년째 되던 어느날 신문에 코르바초프를 중심으로 한 소련이 해체된다는 기사가 났습니다. 아마 그 때가 1990년대 초반으로 기억됩니다. 그 때 위트니스 리는 기도가운데 성령님의 인도와 몸 안에서 지체들의 부담과 원함을 따라 러시아에 복음을 전하는 일을 시작할 것을 결정했습니다. 이런 것이 바로 주의 회복을 대표하는 것입니다.<br/><br/>그후 주축 봉사자들의 상당수가 러시아를 방문하여 복음을 전했고 수 많은 무료 서적들이 뿌려졌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현지 선교사가 러시아어로 번역된 문서를 원하면 한 두 박스 정도가 아니라 톤(ton) 으로 달아서 전달하기도 했습니다. 그 사이에 회복역 성경이 러시아어로 번역되었습니다. 러시아는 헬라어에 능통한 정교회 신학자들이 많은 곳입니다. 개신교에 대해서 매우 배타적입니다. 그들이 회복역 성경을 원문과 대조하여 검토한 후 헬라어 원문에 매우 충실한 번역임을 인정하게 된 것이 주의 회복이 러시아에 진출하여 확산되는데 큰 힘이 되었습니다. 지금은 약 4천 여명의 러시아 현지인들이 얻어져 주요 지방마다 주님의 간증을 든든히 지키고 있습니다.<br/><br/>또 다른 예는 주의 회복을 대표하는 성격의 두 장 분량의 어떤 문서를 외부에 발표하기 전에 관련된 봉사자 형제님들이 20번 정도 모여서 기도하고 교통하고 또 기도하고 교통하며 최종안을 만들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러다 보면 처음에 초안을 잡은 사람이 틀은 잡겠지만 교통가운데 내용은 얼마든지 수정될 수 있고 심지어는 틀이 바뀌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수 차례 공들여 만든 것이 무기한 보류되기도 합니다. 이것은 총공회측의 만장 일치 원칙과 유사합니다. 관련된 어떤 지체라도 속에서 평강이 없을 때 그 일을 밀어부치지 않습니다. 모두가 평강이 있을 때까지 게속 기도하고 교제한 후 모두가 ‘happy Amen’ 할 때 비로소 실행합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이 우리 마음을 주장하시게 하는 것입니다. 물론 주의 회복 안의 모든 지역 교회들의 '상황'이 그렇다는 말이 아닙니다. 저희가 배운 원칙이 그렇고, 앞서서 본을 보이는 대표적인 형제님들의 일처리 방식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만일 이곳에 올리는 글들 하나 하나를 그런 원칙대로 한다면 하나의 글을 올리려면 수 주일 또는 수 개월 걸릴 수 있습니다. <br/><br/>또 다른 예입니다. 약 20년 전인가 1970년대에 성도들이 달겨들어 직접지은 애너하임에 <br/>위치한 사역 센타가 시간이 흐르면서 좁아지고 좀 더 큰 공간이 필요할 때 쯤 이에 대한 기도와 교통이 있었습니다. 그 때 마침 인근에 용도에 합당한 위치와 규모에 맞는 매물이 나왔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짧은 시간 내에 전액 현금으로 구매를 해야한다는 조건이 붙은 것이었습니다. 인근의 한 대형 한인 교회가 계약을 진행하다가 조건을 충족치 못해서 포기한 상태였습니다. 동역자 그룹 형제님들이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를 주님 앞에서 숙고한 후, 마침 년 2회씩 있던 일주일 간의 한 특별집회(총공회의 년 2회 산집회와 유사한) 때 그 당시 전세계에서 왔던 수 천명의 성도들에게 이 사실을 광고하여 알렸습니다. 참석했던 모든 성도들이 ‘해피 아멘’했고 그 현장에서 1차로 물질을 내어 놓고 그 뒤 각지 교회들로 돌아가서 추가 광고와 물질을 내어 놓음으로 제 기억으로 한 달만인가에 삼천 만불 상당의 건물단지를 현금으로 매입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시작, 이런 과정, 이런 결과에 대하여 전 세계 모든 성도들 안에 평강이 있었습니다. 그때 구입한 건물단지는 늘어난 수요에 맞게 지금도 매우 유용하게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주의 회복을 대표하여 진행되는 예들입니다. 저는 작은 한 형제일 뿐이며 제 분량만큼 이곳에 참여하고 있을 뿐입니다.<br/><br/><br/>2. 지방교회 개념정리부터<br/><br/> 이 역시 이미 말씀드린 내용입니다. 소위 지방 교회는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를 따르는 무리들이 아니라, 주님의 몸이 그 지방에 표현된 것입니다. 또한 주님의 몸의 지체가 되는 조건은 그가 현재 어느 단체에 속해 있든지 참되게 주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와 생명으로 믿고 영접하여 거듭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들은 지방(city) 단위로 개 교회의 간증을 세우는 사례가 성경에 수도 없이 나옵니다. 이런 교회는 거듭남으로 들어가고, 육신이 죽을 때나 ‘나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개 교회들이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를 최종 결정하는 것은 복수의 장로들의 손에 위임된 사항입니다. 이것이 저희가 본 빛이고 이 길이 성경적인 길이라고 믿기에 이 길을 가는 것 뿐입니다. <br/><br/>만일 개인 혹은 단체가 이 길이 맞다고 여겨 저희가 가는 길을 함께 가기로 결정하면 먼저 그 길을 가고 있던 저희는 당연히 기쁜 일입니다. 그러나 그외에 더 '성경적인' 길이 있다고 여겨 자신의 신앙 양심을 따라 그 길을 가더라도 막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가는 길을 남에게 권유할 때는 최소한 어떻게 그 길이 ‘성경적’인지를 말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합당 합니다. 어떤 사람은 성경대로 실행하고, 또 어떤 사람은 성경에는 근거가 희박하지만 자기 소견에 옳다고 여겨 그것을 실행할 자유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어떤 경우에도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설 날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의 삶의 자세였습니다. 사실은 훗날까지 갈 것도 없이 현재에도 우리가 바른 길을 가는지에 대해서는 깊은 곳에 내주하시는 그영 혹은 우리 양심이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질문하신 이 문제는 각자가 신앙양심을 따라 몸의 머리의 지시에 순종하고 평강이 있는 길을 가면 될 것입니다.<br/><br/>이해를 돕도록 한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어떤 자매님이 이웃에 사는 새댁에게 복음을 증거하여 주님을 영접케 한후, 매주 그 집에 목양차 갔습니다. 그 집에는 이북에서 월남한 분들이 많이 가는 모 장로 교회 권사로 계시는 시어머니가 계셨습니다. 어느날 이 자매님이 새신자 자매님께 침례를 받게 할 요량으로 침례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을 시어머니도 들으시라고 크게 말했고, 그 시어머님도 침례를 받으시라고 권유했습니다. 그분은 본인이 권사이고 신앙생활이 몇년인데 새신자에게나 권하는 침례를 자기에게 권유했다고 화를 내며 거부했습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세월이 흐른 후 그 시어머니가 불치병이 걸려 시한부 인생이 되셨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교회생활을 하던 아들 편에 자신이 죽기 전에 그 침례를 받고 싶으니 자기를 침례받게 해 달라는 부탁을 해 왔습니다. 마침 그 목양하던 자매님 댁에서 소그룹을 하던 날이라 아드님이 어머니를 그 집에 모셔왔고 저와 그 아드님이 욕조에서 침례를 베풀었습니다. 저는 침례받고 나오시는 그 어머님의 환한 얼굴에서 평강을 보았습니다. 나중 고백이 예전에 물찍어 바르는 세례를 받았지만, 죽을 날이 가까오니까 예전에 그 자매가 말한 대로 침례를 받지 않은 것이 마음에 걸렸는데 이제 말씀대로 순종하니 마음에 평강이 넘친다고 했습니다.<br/><br/>저는 세례는 틀렸고 침례를 받아야 한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의 음성 혹은 성경이 말하는 바로 그것을 순종하고 실행할 때 가장 담대해지고 가장 평강이 있다는 점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지방 입장의 길을 갈 것인지 여부는 각자가 머리 되신 주님 앞에서 이 문제를 진지하게 숙고해 보고 평강을 따라 결정할 일이지, 누가 강요하거나 설득해서 가는 길은 아닙니다. <br/><br/><br/><br/>3. 독립적 개인적-몸 의식<br/><br/>이 부분은 먼저 거듭난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이며 각 사람은 그 지체들’(고전12:27)이라고 말씀한 그 몸에 대한 인식이 분명하다면 스스로 답을 얻을 수 있는 질문이라고 생각됩니다. 몸 의식 안에서 행하지 않은 것이 독립적이고 개인적인 것입니다. 한 몸의 일부가 ‘몸의 의식’(Body consciousness) 안에서 행하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를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어떤 사람이 식당에 가서 염소탕을 먹는데 입맛이 당겨서 밥 한그릇을 뚝딱 해치웠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밥을 비벼주는 것도 한 공기를 다 먹었습니다. 이미 배는 잔뜩 불러있는 상태인데 옆에 있던 아내가 자기가 다 못 먹겠다며 먹던 밥을 해결해 달라고 들이 밉니다. 뱃속에서 위는 더 이상을 안 된다고 자꾸 신호를 보내지만, 입맛은 여전히 당기는 상태입니다. 잠시 생각하다가 그 밥을 마저 먹어버립니다. 그날 저녁 과식으로 인해 속이 부대껴서 밤새도록 고생합니다. 이것이 독립적이고 개인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위가 신호를 보내올 때 그 입과 그 손은 자신들이 원하고 또 할수 있는 일이지만 위의 상태를 고려하여 절제했어야 했습니다. 이것이 몸 의식이 있는 것입니다. <br/><br/>어떤 사람은 복음에 불타고 헌신적이어서 늘 입만 열면 복음을 말합니다. 속한 교회가 총동원하여 복음을 전하기로 결정하고 그를 인도자로 세우자 물을 만난 고기가 되어 열심을 냅니다. 그러나 새 신자가 너무 많아 당분간 더 이상 새로운 사람 접촉은 자제하고 모두 목양하는 일에 전념하기로 결정하며 목양에 은사가 있는 다른 형제를 세우자 그 복음에 은사가 있는 형제는 성경에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말씀)을 전하라고 했는데 왜 목양만 하라고 하느냐며 자기는 복음을 전하겠다고 고집한다면 ‘독립적, 개인적’입니다. 그렇지 않더라도 목양에 혹은 다른 형제가 인도하는 것에 대해 겉으로는 표를 안 내지만 속으로 수동적이고 비판적이라면 그것도 ‘독립적, 개인적’ 입니다. 그런 사람의 특징은 우선 마음이 평강을 잃는 것입니다. 그러나 몸 의식이 있는 사람은 늘 평강을 유지합니다. <br/><br/>독립적이고 개인적인 사람은 심지어 기도집회에서도 자기가 관심있는 것은 적극적으로 기도하고 관심이 없으면 뒤로 물러납니다. ‘한 영 안에 기도하면 내 뜻대로 안 되도 주의 기름부음 있어 온전한 뜻 이루네’라는 찬송가 가사가 그에게는 체험된 적이 거의 없습니다.<br/>독립적이고 개인적인 사람은 몸의 상태가 좋으면 붙어 있고, 나쁘거나 병들면 그 몸을 언제든지 버릴 사람입니다. 각지 지방 교회들은 다 같지 않으며 상태가 다 다를 수 있습니다. 상태가 좋아도 지방교회이고 상태가 나빠도 지방교회입니다. 위치가 중요하며 상태는 늘 변하는 것입니다. 계시록 2-3장에 있는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들은 예표론적인 의미도 있지만, 그영께서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으라고 하셨기에 그들은 그 당시의 실존하는 지방 교회들이었습니다. 주님은 각 교회들에서 이기는 자들을 말씀하셨습니다. 이 이기는 자들은 그 지방 안에 머물면서 교회의 간증을 짊어지는 방식으로 이기는 것이지, 이기는 자들만 따로 모임을 만들어 나감으로 이기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 점 또한 몸을 보았는지 여부 즉 개인적이고 독립적인지 여부와 관련이 있습니다. ‘형제’님은 위트니스 리는 반대해도 워치만 니는 존중하시니, 그분이 쓴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교회생활, 구제목 사역의 재고> 199쪽부터 다루고 있는 ‘지방교회들’ 부분을 읽어보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워치만 니는 거기서 ‘지방’으로 나누는 것외에 ‘일곱가지 금지된 나뉨’을 말하면서 221쪽에서 그 일곱 가지 안에 ‘이기는 자들’끼리 나가서 나뉘는 것을 포함시킵니다. <br/><br/>해당 부분을 일부 인용하면 다음과 같습니다.<br/><br/>“교회의 범위는 지방적인 것이므로 사람은 어떤 이유로도 교회를 나눌 수 없다. 그러나 만일 한 교회 안에 있는 형제 자매들의 영적 상태가 죽어가고 매우 일반적이라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비교적 상태가 좋은 몇 사람들이 서너 명을 모아 따로 집회를 갖고 따로 단체를 세울 수 있는가? 성경의 답변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만일 영적인 상태의 수준으로 나누는 이유를 삼는다면 결국 당신의 상태가 좋지 않으면 내가 따로 나가 단체를 세우게 되고, 내일 나의 상태가 좋지 않으면 당신은 또 나가서 다른 단체를 세울 것이다. 이럴 때 얼마 안 가서 당을 짓는 단체들이 얼마나 많이 있게 될지 모른다.”<br/><br/>‘형제’ 님이 교회생활을 잠시 하실 때 세계 여러 교회들 특히 대만에 있는 교회들을 방문하고 함께 섞이는 기회를 가지셨다면 참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지방 교회들마다 다 상태가 다릅니다. 신언의 수준, 고난을 견디는 정도, 장로들의 영적 상태, 이런 저런 실행, 다 조그씩 다릅니다. 어느 일부가 전체를, 또는 실행이 그 본 진리의 이상을 다 좌우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이 부분은 앞으로 좀 더 시간을 가지고 더 교제하기로 하지요. <br/><br/>끝으로 ‘형제’님은 아침부흥 책자에서 워치만니 책자를 의도적으로 밀어내고 있고 최근에는 전혀 찾아보기가 어렵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그럴 의도고 필요도 없고 사실도 그와 다릅니다. 예를 들어서 저희가 지금 하고 있는 아침부흥책자는 2012년 가을 책임형제들 집회의 메시지 <주님의 회복 안의 유일한 일>입니다. 그 책 5주는 제목이 ‘성소에 대한 죄악 대 금과 은과 보석들로 건축함’인데 민18:1, 고전3:6-7, 9, 11-12, 16-17을 근거로 합니다. 또한 이메시지의 출처로 <워치만니 전집> 제 42권, 45장 193쪽 이후를 주축 메시지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물론 위트니스 리의 고전 라이프 스터디도 함께 소개했습니다. 또한 7주째 메시지는 출애굽기 44장과 사도행전 13장을 근거로 한 것인데, 역시 워치만니 전집 2권 부흥보 35기를 추가로 읽어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또 워치만 니의 <권위와 순복> 15장도 읽어보도록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다루는 주제에 따라 어떤 곳은 워치만 니 책을 또 어떤 곳은 위트니스 리 책을 좀더 소개할 수는 있어도 두분 중 어느 한 분을 제외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br/><br/>삼성은 르노를 지워야 할 이유가 있을지 모르나, 주의 회복은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 두분 다 필요합니다. 바울이나 아볼로나 게바나 워치만 니나 위트니스 리나 다 '우리들의 것'(고전3:22)입니다. 배척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니 읽는 분들에게 사실과 다르게 전달될 수 있는 부분들은 너무 단정적이고 일반화시켜 말씀하시기 보다는 한번 더 생각해 보시고 말씀해 주시기를 부탁드려 봅니다.<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주님사랑 님께서 쓰신 글 잘 읽어 보았습니다.<br/>제가 주님사랑님의 글을 읽으면서 솔직한 주님사랑님의 마음의 의도를 묻고 싶어졌습니다. 주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하나 되기 위해 그럼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것을 솔직히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총공회 및 모든 교파가 모든 것을 내려놓고 지방교회로 가야 한다는 것입니까? 지방교회에 가서 현재의 집회 방식을 그대로 따라야 하는 것입니까? 지방교회에 가서 현재의 위트니스리의 가르침 만을 그분의 녹음기가 그대로 말해내야 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누구든지 자유롭게 성경안의 진리의 말씀을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말해 내도 되는 것입니까?<br/><br/>주님사랑님은 이런 부분을 솔직하게 답을 해주셔야 합니다. 이런 부분에 솔직한 대화가 오고가지 않는다면 주님의 사랑님의 글들은 아무리 좋은 글이라도 주님사랑님께서 말씀하시는 현재의 지방교회로 모이는 그리스도의 몸의 하나됨은 있을 수 없을 것입니다.<br/><br/><br/>아래 글중 워치만니의 글이 있습니다.. 어떤 형제의 말을 통해 그가 몸을 아는지 모르는지 하는 부분입니다. 몸을 아는 형제는 결코 독립적이며, 개인적일 수 없다고 하는 부분입니다.. 여기서 독립적이며 개인적인 것은 무엇입니까? 어떻게 하는 것이 독립적이지 않고 개인적이지 않을 수 있는 것입니까? 지방교회처럼 한 곳에 모여 한 메세지만 가지고 그것을 말하면 독립적이지 않고 단체적으로 그리스도의 몸이 되는 것입니까? <br/><br/>제가 이런 글을 쓰는 것은 이제 우리들은 마음에 있는 것들을 솔직히 내어 놓아야 한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다른 곳에서 제가 주님사랑 님과 대화하면서 제가 주님사랑님께 지방교회를 대표하는 사람이냐고 물었을때 형제님은 크게 노하시면서 자신은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하신 것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곳에 올리는 글은 지방교회를 대표해서 올리시는 것인지 아니면 개인적인 의견이신지도 말씀하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br/><br/><br/>저는 지방교회를 생활하면서 많은 것을 보고 느꼈던 사람입니다. 무저건 저라는 사람을 몸을 모르는 사람으로 정죄하지 마시고 저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지방교회의 여러 실행 등을 충분히 납득이 가도록 사실적이고 합당하며 솔직한 말씀등이 이곳에서 다루어 져야 할것이라 보고 있습니다. "진정지방교회가 옳다고 여기시고 현재의 지방교회의 실행 등이 그리스도의 몸의 하나됨을 위한 참된 진리다. 라는 강한 확신이 있으시다면 그것을 솔직하고 담대하게 주장을 하셔야 합니다! 어디서든 크게 목소리를 높이셔서 지방교회로 오라고 하셔야 합니다 .위트니스 리 형제님의 사역을 말씀들을 따라야 한다고 강하게 말씀하는 것이 솔직하고 좋을 것입니다.그렇게 하는 것이 오히려 주님께서 기뻐하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 형제 님이 쓰신 내용 <<<br/>:<br/>: 주님사랑 님께서 쓰신 글 잘 읽어 보았습니다.<br/>: 제가 주님사랑님의 글을 읽으면서 솔직한 주님사랑님의 마음의 의도를 묻고 싶어졌습니다. 주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하나 되기 위해 그럼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것을 솔직히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총공회 및 모든 교파가 모든 것을 내려놓고 지방교회로 가야 한다는 것입니까? 지방교회에 가서 현재의 집회 방식을 그대로 따라야 하는 것입니까? 지방교회에 가서 현재의 위트니스리의 가르침 만을 그분의 녹음기가 그대로 말해내야 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누구든지 자유롭게 성경안의 진리의 말씀을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말해 내도 되는 것입니까?<br/>: <br/>: 주님사랑님은 이런 부분을 솔직하게 답을 해주셔야 합니다. 이런 부분에 솔직한 대화가 오고가지 않는다면 주님의 사랑님의 글들은 아무리 좋은 글이라도 주님사랑님께서 말씀하시는 현재의 지방교회로 모이는 그리스도의 몸의 하나됨은 있을 수 없을 것입니다.<br/>: <br/>: <br/>: 아래 글중 워치만니의 글이 있습니다.. 어떤 형제의 말을 통해 그가 몸을 아는지 모르는지 하는 부분입니다. 몸을 아는 형제는 결코 독립적이며, 개인적일 수 없다고 하는 부분입니다.. 여기서 독립적이며 개인적인 것은 무엇입니까? 어떻게 하는 것이 독립적이지 않고 개인적이지 않을 수 있는 것입니까? 지방교회처럼 한 곳에 모여 한 메세지만 가지고 그것을 말하면 독립적이지 않고 단체적으로 그리스도의 몸이 되는 것입니까? <br/>: <br/>: 제가 이런 글을 쓰는 것은 이제 우리들은 마음에 있는 것들을 솔직히 내어 놓아야 한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다른 곳에서 제가 주님사랑 님과 대화하면서 제가 주님사랑님께 지방교회를 대표하는 사람이냐고 물었을때 형제님은 크게 노하시면서 자신은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하신 것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곳에 올리는 글은 지방교회를 대표해서 올리시는 것인지 아니면 개인적인 의견이신지도 말씀하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br/>: <br/>: <br/>: 저는 지방교회를 생활하면서 많은 것을 보고 느꼈던 사람입니다. 무저건 저라는 사람을 몸을 모르는 사람으로 정죄하지 마시고 저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지방교회의 여러 실행 등을 충분히 납득이 가도록 사실적이고 합당하며 솔직한 말씀등이 이곳에서 다루어 져야 할것이라 보고 있습니다. "진정지방교회가 옳다고 여기시고 현재의 지방교회의 실행 등이 그리스도의 몸의 하나됨을 위한 참된 진리다. 라는 강한 확신이 있으시다면 그것을 솔직하고 담대하게 주장을 하셔야 합니다! 어디서든 크게 목소리를 높이셔서 지방교회로 오라고 하셔야 합니다 .위트니스 리 형제님의 사역을 말씀들을 따라야 한다고 강하게 말씀하는 것이 솔직하고 좋을 것입니다.그렇게 하는 것이 오히려 주님께서 기뻐하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br/>: <br/>: <br/>: <br/>: >> 주님사랑 님이 쓰신 내용 <<<br/>: :<br/>: : <br/>: : <br/>: : <br/>: : 사람의 영을 알고 거듭난 이후 장차 저 천국에 가기 전에 이 땅에서 믿는 이들이 힘써서 해야 할 일이 있음을 가르치는 면에서 주의 회복과 총공회측은 큰 공통분모를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서로를 존중하는 대화는 언제나 유쾌하고 기쁩니다.<br/>: : <br/>: : <br/>: : <br/>: : 지금까지 논의된 내용<br/>: : <br/>: : 소위 지방교회 내부인의 시각으로 본다면 지금까지 이곳에서 논의된 범주는 1. 성경에 한 지방 한 교회를 실행할 만한 근거가 있는가? 2. 이들은 일부 항간의 일부의 주장처럼 이단인가, 아니면 같은 생명을 받은 한 몸 안의 참된 지체들인가? 하는 정도였습니다. 따라서 이 두 가지에 대해 어떤 결론을 내릴 정도의 대화가 오고간 상태라고 느낍니다. <br/>: : <br/>: : 그런데 만일 <한지방 한 교회>를 좀더 심도있게 다루고자 했다면, 1. ‘그들이 다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라고 간절히 기도하신 주님의 마지막 간구 내용을 어떻게 반응하는 것이 합당한가 (요17:21)? 2. 성경이 ‘그영의 하나를 힘써 지키라’ 라고 할 때, 그 하나의 실상은 무엇이며 그 하나를 '지킨다'는 말의 의미와 구체적인 방법론은 무엇인가 (엡 4:2-3)? 3. 지역교회의 성경적인 범위는 무엇인가 (계1:11)? 4. 지역교회 내에서의 분열과 분쟁은 왜 생기며 어떻게 평가하고 대처해야 하는가 (롬16:17.고전3:3)? 하는 문제들을 주님의 얼굴 빛 아래에서 충분히 논의해야 할 것입니다. 현재는 위 4 항목 중 3번 하나를 다뤘을 뿐입니다. 그리고 그 외에도 교회론에 포함되어야 할 본질적인 부분들은 더 많습니다.<br/>: : <br/>: : <br/>: : <br/>: : 주의 회복이 추구하는 교회론의 방향 <br/>: : <br/>: : 지금부터 말씀드리는 것은 이미 총공회 측에서 익히 알고 계시는 내용들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저희는 이런 다 아는 진리들을 수도 없이 반복적으로 다룹니다. 그 이유는 머리로 아는 것이 다가 아니라는 교훈때문이고, 참으로 빛가운데 알기 위해서는 믿음의 들음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두서 없이 그러나 ‘교회론’이라는 범주에 해당될 말들을 몇 가지 소개드려보겠습니다. <br/>: : <br/>: : <br/>: : 건물주와 건축업자<br/>: : <br/>: : 어떤 신혼 부부가 앞으로 자녀들을 낳으면 함께 살 집을 짓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수 많은 고려와 자문 끝에 지을 집에 대한 구상을 마친 후 건축업자를 불러서 자신이 짓고자 하는 집의 자세한 내용을 상세하게 알려주었습니다. 그후 그 건축업자는 주인이 주는 땅과 건축자재, 그리고 일에 대한 수고비를 넉넉히 받아가면서 각 분야의 일꾼들을 부려서 마침내 그 집을 완공했습니다. 그 이후에는 이 건축업자는 자기가 직접 진두지휘하여 지은 집이지만, 사실은 그 집에 대한 어떤 권리도 갖지 않습니다. 바울과 아볼로,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 그리고 백영희는 일종의 건축업자입니다. 그들이 어떤 부분을 맡아 수고하였지만, 그 집 주인은 주님 자신 이십니다. 그 분이 집을 짓는데 필요한 일체를 다 대셨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그 집을 '내 교회'라고 하실만 합니다(마16:18, 딤전 3:15). <br/>: : <br/>: : 그런데 그 집의 특정 부분을 짓는데 참여했던 일꾼들이 자신들이 작업한 그 벽에, 그 굴뚝에, 그 툇마루에 자기 이름을 새겨 넣고, 더구나 그 부분의 소유권까지 주장하려 한다면 그 집 주인을 너무 무시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이런 작은 예가 왜 우리가 교회 앞에 특정 명칭을 붙일 수 없는지를, 그리고 교회는 그냥 교회이고 정 구별이 필요하면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정도로 바울이 말할 수 밖에 없었는지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명칭이 중요한 것이 아니니 그것을 너무 강조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그 집 소유주의 마음을 너무 헤아리지 않은 것입니다. 그분은 자신의 전부를 팔아 그 교회를 샀습니다.<br/>: : <br/>: : <br/>: : 소제<br/>: : <br/>: : 교회인 주님의 몸은 또한 '소제'로 예표됩니다(레2:4). 즉 그분의 몸인 교회는 소제물의 실재이신 그리스도의 확장과 증가입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소제는 고운 가루와 기름과 소금과 유향은 있으되, 꿀과 누룩은 없습니다. 이처럼 교회는 변화된 고운 인성과 성령(the Spirit) 그리고 그분의 죽음의 효능과 그분의 부활의 능력을 그 구성 성분으로 합니다. 또한 어떤 죄된 것이나 옛사람에 속한 천연적인 애정과 선함은 소제 안에 있어서도 안 되고 있을 수도 없습니다. 구약에는 이 소제가 예표로 제시되고, 신약 서신서에서는 이 소제가 그 순도를 점점 더해 가는 과정에 있고, 요한 계시록의 새예루살렘은 이 소제의 떡이 온전히 완성된 모습입니다. <br/>: : <br/>: : 오늘을 사는 우리의 눈은 완성된 소제인 새예루살렘의 모습을 바라보며, 현재의 불순물들을 버릴 것으로 대할지, 아니면 끌어 안고 갈 대상으로 대할지를 매 순간 결정해야 합니다. 이런 과정에서 죄와 세상을 분별하는 것은 그래도 좀 쉬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부인되어야 할 자아 그 중에서도 특히 개인주의적 성향, 종교성, 특별한 민족성, 특별한 문화를 분별하여 걸러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 골로새서 등에서 이런 그리스도 자신이 아닌 이물질들을 분별하고 걸러내는 것들을 놓고 단호하게 싸웠습니다. 한번은 주의 회복 안에 있는 한 동역자 형제님이 한국 교회들에게 말씀을 공급하러 왔을 때 어떤 본문을 다루면서, '한국에는 한국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것들이 문제다' 라고 했습니다. 소제 안에 그리스인, 수구디아인, 유대인이 있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이 말을 참으로 이해하고 그 문제를 심각하게 인식하는 사람은 교회를 소제로 아는 사람입니다. 다양한 민족들과 언어들이 한데 어울려 한 몸으로 지어져 가는 역사가 50여년 이상된 주의 회복 안에서는 이에 대한 체험이 적지 않습니다. 총공회 안에서 이런 인종과 문화와 언어문제는 현재는 그렇게 심각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때가 되면 이런 부분들이 교회 안에서 왜 문제를 가져오는지에 대해 실감하실 날이 올 수 있습니다(행6:1).<br/>: : <br/>: : <br/>: : 밀알들과 한 떡<br/>: : <br/>: : 주님은 그분이 오신 것이 한 알의 밀알로 땅에 떨어져 많은 밀알들을 얻기 위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을 읽는 사람은 다 이 말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의 의미를 참되게 아는 사람도 많지 않습니다. 떨어져 죽은 밀알과 그로 인하여 나온 많은 밀알들은 그 생명 그 본성에서 똑같습니다. 그러므로 많은 밀알들이 생명과 본성에서 죽은 한 알의 밀알과 똑같다 는 말을 들을 때 우린 아멘을 외쳐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거의 유일하게 총공회측 성도님들만이 이 말을 참되게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br/>: : <br/>: : 그렇다면 이제 한 알의 밀알을 통해 산출된 이 많은 밀알들이 할일은 무엇인가? 각자가 더 많이 기도하고 더 많이 말씀을 대함으로 영양분을 빨아들여 각자의 밀알들이 자신들의 등치를 제 각각 부풀려 가는 것인가? 이것은 밀알들이 한 단계 더 전진하여 갈려지고 빻아져서 한 떡이 되는 이상을 볼 때 저절로 의문이 풀릴 수 있습니다(고전10:17). 이 한 떡은 많은 밀알들에게서 나온 것되, 성만찬 상 위에 놓여진 것은 많은 밀알들이 아니라 한 떡입니다. 각 개인이되, 각기 독립된 개인이 아니라 전체의 부분으로서의 개인입니다. <br/>: : <br/>: : 에스겔서의 네 생물(사람, 소, 사자, 독수리)이 사면으로 향하여 있고 각기 떨어진 것이 아님으로 독수리가 앞을 보고 나아갈 때, 다른 셋은 본인이 원치 않아도 옆걸음과 뒷걸음으로 그 독수리를 따라 움직여야 하는 것이 운명입니다. 이 떡은 그런 한 떡입니다. 한국 사람 떡이 다르고, 미국 사람 떡이 다르고, 워치만 니 떡이 다르고, 백영희 떡이 다를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매주 나누는 성만찬의 떡이 어느 범위까지를 포함하는가가 그가 몸을 본 정도를 가늠케 합니다. 우주가운데 몸은 하나입니다(엡4:4). 우리가 성만찬시 상 위에 놓인 한 떡을 볼 때, 그 떡은 이 유일한 한 몸을 의미하고 그것을 대표해야 합니다. 성만찬을 어떻게 인식하고 어떻게 실행하고 있는가도 교회론입니다. 저희들은 매주 성만찬을 하고 있습니다. 즉 저희들의 주일을 지키는 주된 목적은 성만찬에 참여하고, 또 모두가 신언함으로 교회를 건축하는 것입니다. 다른 지체들의 말을 듣기도 하고 직접 말도 합니다.<br/>: : <br/>: : <br/>: : 맏형님, 많은 아들들<br/>: : <br/>: : 주 예수님은 우리의 하나님이시요, 우리의 구주시요, 우리의 머리이실 뿐 아니라 또한 우리의 맏 형님이십니다. 어떤 이들은 주님이 우리의 맏형님이시라는 고백을 불경하다고 말합니다. 어떤 이들은 그런 말이 성경에 있기에 적극 반대는 않지만 뭔가 어색해 합니다. 또 어떤 이들은 이 고백을 달콤하게 생각합니다. 히브리서 2장 11-12절은 매우 심오합니다. 즉 거룩하게 하시는 분과 거룩하게 되고 있는 사람들이 모두 한분에게서 났으므로,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형제들이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신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이것은 신성만 있으신 독생자 즉 제 2격하나님과 피조물인 우리와의 관계에서는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그분의 인성 안에서는 가능한 일이고, 여기에 구원론과 교회론의 비밀이 담겨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를 의롭다 하실 수 있는 근거이듯이, ‘모두 한분에게서 났으므로’가 서로가 형제라고 불릴 수 있는 근거입니다. 형이 동생에게 성경을 가르칠 때 그는 또한 교사가 될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형제 관계는 교사가 된 후에도 사라지지 않습니다. <br/>: : <br/>: : 하나님께서 미리 예정하신 것은 많은 아들들인 우리가 맏형처럼 되는 것이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롬8:29). 즉 우리가 맏 형님의 형상을 본받아 그분과 똑같이 되게 하시는 것이 주님이 지금하고 계신 일이고 사도 바울을 포함한 주의 종들이 하는 일입니다(갈4:19). 물론 그분의 경배받는 신격에는 결코 참여할 수 없으며 그것은 그분의 고유영역입니다. 주 예수님이 우리를 형제라고 부르시기를 부끄러워 아니하시는데, 같은 피조물들끼리인 지체들끼리 형제라고 부르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대가족의 일원임을 일깨워 줍니다. 가족 중에 어떤 형은 힘도 세고 말도 잘하고 아버지의 심중을 헤아려 동생들을 잘 돌봅니다. 교회는 이런 하나님의 가족입니다(엡2:19). <br/>: : <br/>: : <br/>: : 사역자와 그 가족<br/>: : <br/>: : 워치만 니가 하루는 교회 인도자들을 모아 놓고 교회 행정을 돌봄에 있어서 어떤 사람의 간섭을 고려할 필요가 없다는 취지의 말을 했습니다. 비록 구체적인 언급은 없었지만 그가 자신의 육신의 어머니를 말하고 있다는 것을 그 방 안에 있던 봉사자들은 다 알았습니다. 워치만 니는 어머님의 회심이후 급격한 변화를 보고 주님께 이끌렸습니다. 그러나 워치만 니가 사역의 책임을 지고 있다고 해서 그의 어머니에게도 행정에 관여할 분깃이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런 공과를 함께 통과한 이후 주의 회복 안에는 사역자의 친인척 문제에 대해서 선명한 선이 있게 되었습니다. <br/>: : <br/>: : 교회는 죽음을 그 이후의 부활영역입니다. 그러한 교회 또는 각 지역 교회들의 행정과 관리는 머리의 지시를 받는 대리권위 즉 복수의 장로들의 손에 맡겨진 것입니다. 또한 위트니스 리 사후 현재 주의 회복의 인도는 철저하게 영적 분량이 검증된 일단의 '형제들'의 어깨 위에 놓여져 있습니다. 그들이 머리 앞에서 기도하며 서로 교통(교제)하며 한 마음 한 뜻 가운데 인도하고 있습니다. 지역 교회이든 사역이든 친인척 특히 여자가 행정에 관여하는 경우는 일체 없습니다. <br/>: : <br/>: : 물론 워치만 니나 위트니스 리의 경우에도 사역자의 가족들은 많은 희생을 감수해야 했습니다. 그 보상은 장래에 있을 것입니다. 주의 회복 안에서 현재 위트니스 리의 미망인 자매님이 생존해 계시지만 그분이 사역이나 교회 행정에 관여한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그러나 수 많은 영적 사례들을 지켜보았고 영적 공과를 통과한 그 분량과 분깃은 수 많은 자매들에게 좋은 본이 되었고 또 한 자매로서 다른 자매들을 온전케 하는데 그 고유한 분깃을 잘 발휘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교회 행정에 있어서는 사역자의 가족이기 때문에 갖는 지위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교회는 주님의 몸이요, 주님의 소유이기 때문입니다. <br/>: : <br/>: : 자매들은 머리에 수건을 쓰고 몸 안의 한 지체로서 누린 그리스도를 말할 수는 있지만, 교회 행정에 관여하는 일이 일체 없는 기준으로는 총공회측의 다음 언급이 잘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총공회분들은 무슨 일이든 신중하게 또 성경에 맞게 실행하시는 것으로 알기에, 경솔한 판단을 자제합니다. 아울러 교회론과 관련된 것이기에 아래처럼 말씀하시는 배경을 혹시 설명해 주실 수 있는지 조심스럽게 문의를 드려봅니다.<br/>: : <br/>: : “이 번 선거를 통해 하나님께서 4층 사모님이 서부교회를 또는 서성교회 사모님이 총공회를 과거처럼 지도할 수 있게 될 가능성을 보이시는 것일까?.”<br/>: : <br/>: : <br/>: : 보는 것 그리고 아는 것<br/>: : <br/>: : 사도 바울은 다마스커스 길을 가다가 교회를 보았습니다(행9:4). 즉 몸과 머리가 하나로 연결된 새사람을 본 것입니다(엡2:15). 그후 그는 자기가 본 ‘하늘의 이상’(heavenly vision)을 거스리지 않기를 힘썼습니다. 그것은 무슨 일을 하건 몸을 세우는데 이로운 것을 적극적으로 하고, 몸을 손상시키거나 더럽히는 것은 금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도 바울이 쓴 14(13) 서신의 압축된 내용입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같은 성경을 보아도 사실은 바울이 본 것을 보지는 못합니다. 단지 힌 종이 위의 검은 글씨를 읽을 뿐입니다. <br/>: : <br/>: :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안다고 생각했으나 사실은 몰랐습니다. 그러므로 참으로 아시는 주 예수님과 그들의 대화는 늘 동문서답일 때가 많습니다 (요8:55, 57). 사도 바울은 이런 하나님의 감추인 비밀을 말로 전했을 뿐 아니라 또한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왜냐하면 지혜와 계시의 영이 몸을 보고 몸을 알게 함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워치만 니는 어느 날 자신에게 훈련을 받고 있는 동역자들에게 자기가 몸을 본 것을 말해 보라고 요청한 후 이리 저리 말을 하면 그후에 당신은 몸을 보지 못했다고 말해주고 또 다른 사람에게도 그와 같이 요청한 후 같은 말을 해주었습니다.<br/>: : <br/>: : 그후 워치만 니가 왜 누구는 몸을 보지 못했다고 말헀는지, 또 몸을 본 사람은 어떤 특징이 있는지를 말해 주었습니다. 그러자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다 공감했습니다. 그 중에 한 가지는 몸을 본 사람은 결코 개인주의 또는 독립적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 육신의 몸을 보아도 그렇습니다(고전12:12).<br/>: : <br/>: : <br/>: : 워치만니-그리스도의 몸<br/>: : <br/>: : 끝으로 워치만 니가 쓴 <그리스도의 몸>(한국복음서원, 2006)이라는 책(134쪽)의 목차 만을 이곳에 소개드리고 잠정적으로 교회론의 개괄적인 소개를 마칠까 합니다. 다음 글에서는 무명2님의 질문에 답변 하는 식으로 설명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br/>: : <br/>: : 그리스도의 비밀/그리스도의 몸/ 믿는 이와 지체의 분별/몸의 공급/몸의 보호와 제한과 사역/ 몸의 권위/몸의 기름 부음/ 몸의 규율/몸의 원칙/몸의 풍성/몸의 사역<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 무명2 님이 쓰신 내용 <<<br/>: : :<br/>: : : 1. 형제님께서 우려하신 사항은 두가지 면이 있습니다. <br/>: : : <br/>: : : 신언 시간에 위트니스 리 목사님의 가르침을 반복하는 것은 우려하신 것 처럼 폐단이 드러나는 경우가 있고 또 어떤 이들에게는 그러한 면이 꼭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br/>: : : <br/>: : : 그러나 이와 같은 현상은 총공회라 해도 피해갈 수 없었습니다. 백영희 목사님의 설교를 맹목적으로 설교시간에 반복한다며 이는 성령의 현재적 말씀이 아니라고 여기 포도가지님을 비롯하여 많은 다른 분들이 반대하고 계십니다. 심지어, 저희 교회에서는 재독이 죄라며 교회를 떠나신 분들도 계십니다. 오해와 조심없음에서 비롯된 결정들이라 생각됩니다.<br/>: : : <br/>: : : 백목사님의 설교는 그분이 돌아가신지 20여년이 지난 지금도 반복할 수 있으며, 위트니스 리 목사님의 경우는 그리하면 안된다는 주장은 모순되기에 저희 공회는 그렇게 주장하지 않습니다.<br/>: : : <br/>: : : 그럼에도, 저는 백목사님의 설교를 총공회 목회 현장에서 아직은 계속되어야 하며 또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그때까지는 계속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며 만약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변절이요 수정주의이며 변질, 타락이라는 입장입니다. <br/>: : : <br/>: : : 따라서, 위트니스 리 목사님의 설교를 신언 시간에 계속하여 반복하는 것 자체에 대해서는 지방교회 지도부나 핵심측에서는 그렇게 주장할수도 있다고 봅니다.<br/>: : : <br/>: : : <br/>: : : 2. 한 가지 예를 들어 설명을 드리겠습니다.<br/>: : : <br/>: : : 수학이라는 학문에는, 집합, 방정식, 미분, 적분 등등 각각의 발전 분야와 단계가 있었습니다. 시대 시대 마다, 천재들이 나와 각 분야를 개척하고 집대성하여 발표하여 주었습니다. 어떤때는 같은 시기 안에서도 몇 개의 분야가 한꺼번에 쏟아져 나온 경우도 있었으며, 또 어떤 때는 몇 백년동안 정체된 듯한 시기도 있었습니다. <br/>: : : <br/>: : : 그런데, 어떤 사람이 현재의 수학은 죽었다고 주장을 합니다. 심지어 수학자가 눈에 도통 보이지 않는다고 말하고 다닙니다. 왜냐하면, 수학의 생명은 창의성인데, 더 이상 미분, 적분 과 같은 새로운 분야가 개척되고 있지 않기 때문이라 합니다. 그 말은 일면 맞지만, 일면 틀린 말이기도 합니다. <br/>: : : <br/>: : : 산수선생님, 수학선생님, 수학 교수님 등등 이런 분들이 학생들에게 수학을 열심히 가르치기도 하고 새로운 문제를 만들기도 하며, 새로운 상황에 적용하는데 편하도록 연구하여 공백 부분을 채우기도하며, 또 배운 그 학생들은 수학을 배워 일상에 적용도 하고 각기 다른 학문 분야에 적용하여 물리학, 전자공학, 논리학, 심지어 경제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발전을 거듭하고 있지만, 수학 자체에서는 새로운 분야가 개척이 안되었기에 진정한 수학자가 없고 고목나무와 같다는 주장이 맞다고 볼수도 있습니다. <br/>: : : <br/>: : : 그러나, 수학 세계는 여러 분야에서 또 수학 자체 안에서도 더욱 구비하고 더욱 응용되고, 더욱 적용되어 가는 면으로는 발전을 거듭하고 있기에 이 시대에 수학자가 없다는 주장은 틀린 말이기도 합니다.<br/>: : : <br/>: : : 저희가 피타고라스나 데카르트나 가우스와 같은 수학자가 되어야만 할수도 있지만, 그들과 같은 수학자가 나올수 있게끔 이름 없는 그들의 초등학교 산수 선생님이 되어야 하는 경우도 있다고 봅니다. 또, 그들이 소개한 그 수학 원리를 경제학에 적용하여 미시경제학을 개척한 사람이 되는 분도 있을 것이고, 또 그 수학 원리를 전자공학에 적용하여 에어컨을 만든 사람이 되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br/>: : : 그러나, 결국 그들이 기초로한 수학 원리의 연장선 상에 있지 이와 배치되지는 않을 것입니다.<br/>: : : <br/>: : : 저희가 배운 백영희 목사님의 교훈은 이를 뛰어넘는 전혀 새로운 교리나 교훈이 과연 우리 대에서 나올수나 있을까 할 정도로 뛰어나고 높고 깊고 여러면으로 구비하다고 봅니다.<br/>: : : <br/>: : : 이런면에서는 발전을 못하고 새로운 움싹이 나오지 못하고 있으니, 총공회가 죽었다는 표현을 할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백목사님의 교훈을 폐하여야 할까요? 아니면, 그가 한발 내딛어 열어준 새로운 진리의 세계를 탐험하고 연구하고 구비하고 여러면으로 누려야 하는 시기가 지금이 아닐까요? 마치 미적분이 처음 발표된 이후 당시의 수학자들이 그 미적분의 원리를 수백년 동안 여러면으로 구비시킨 것처럼 말이지요.<br/>: : : <br/>: : : 게다가 더욱, 힘써 가르치고 이 교훈이 또 하나의 백영희 목사님이 될수 있을지도 모르는 이(나를 포함하여)들을 향하여 나아갈수 있도록 해야 되는게 저희들의 임무일 수 있습니다. <br/>: : : 그렇게하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뜻이고 그렇게 하는 것 자체가 현재 우리에게 임하신 하나님의 음성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 자체가 내 현실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수 있도록 또 순종할 수 있도록 나와 교인을 진리로 양육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br/>: : : <br/>: : : 왜냐하면, 수학에서 2차 방정식의 해를 구하는 공식과 증명과 원리를 가르치는 것 자체에 해당하기 때문입니다. 이를 현실에서 여러 문제들을 통하여 풀어 나가는 것은 학생들의 몫이지, 선생님의 몫은 아닙니다. <br/>: : : 공회 목사님이 백영희 목사님의 교훈을 아직은 그대로 가르치는 것이 수학원리를 가르치시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이 공식을 가지고 각자의 현실에 적용하는 것은 문제 출제자이신 성령님과 문제를 풀어야될 학생 즉 교인들 각자의 몫이라는 것입니다. 만약 어떤 목사님이 새로운 교훈과 교리가 없다하여 수학원리가 아닌 소설을 가르친다면 그는 국어 선생님이지 수학 선생님은 아니시듯이, 그가 백목사님의 교훈을 설교시간에 반복하여 강조하지 않는다면 그는 공회 목회자가 아니요 그냥 일반 교계의 목회자로 나가시는 것이 양심적이라 봅니다. 수학 선생님이 소설을 가르쳐 놓고선 또는 포도가지님 처럼 수학시간 자체를 폐하여 놓고선 또는 학교를 뛰쳐나가 옆의 음악학교에 입학시켜 놓고선 학생들에게 수학 시험장인 현실에 나가서 다양한 2차방정식 문제를 풀어 합격하라고 하면 안되겠지요.<br/>: : : <br/>: : : 저는 지방교회 지도부에서 워치만 니, 위트니스 리 목사님의 가르침을 신언 시간에 반복하는 제도를 유지하시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고 봅니다.<br/>: : : <br/>: : : <br/>: : : <br/>: : : 3. 다만, 주님 주신 상황과 입장에 따라 유연하고 지혜롭게 적용되어야 한다고 봅니다.<br/>: : : <br/>: : : 형제님께서 우려하신 그 폐단은 지방교회 일부에서 유연하게 적용할수도 있는 제도를 너무나도 고집스럽게 엄격히 지키시면서 나타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렇게 까지 강하게 고집할 제도는 아니었는데, 원래의 교훈에서 변질되는 많은 사례를 보고 겪으면서 유연성과 원래 취지을 잃었다고 봅니다. 공회에서는 백목사님의 교훈을 변질됨 없이 그대로 전하면서도 유연하고 지혜롭게 적용하는 사례가 있습니다. 지방교회에서도 위트니스 리 목사님의 교훈을 더 나은 교훈이 나오기까지 변질됨 없이 그대로 후대와 형제에게 전달할 수 있으면서도 유연함을 유지하는 방편을 제도적으로 갖추셨으면 해서 그 방법(정상적인 예배, 새벽예배, 5월 8월 집회, 재독, 실시간, 권찰회, 구역장 제도, 반사제도, 교역자신임투표, 진리전원일치 제도, 성경헌법제도 등등)을 소개해드리고 싶었습니다.<br/>: : : <br/>: : : 물론, 저희 총공회 안에서도, 본인 교회의 교인 구성원들의 귀는 트이지 않았는데도 재독만 고집하시는 목사님이 계신다고 들었습니다. 저는 이는 신앙과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무례하고 과격하며 무식한 행동에 기인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본인도 그 설교에 귀가 트이지 않던 시절이 있었는데, 개구리 올챙이적 생각 못한다고, 그러시면 안되는 것은 불신 세상에서도 상식입니다. 이런면에서는 총공회의 제도도 완벽하다고 볼순 없으며 그러한 폐단이 커진다면 원 취지와 본질적인 교훈을 해치지지 않는 선에서 얼마든지 제도를 개선할수도 있다고 봅니다. 다만, 지방교회의 폐단을 없애는 데는 현재 공회의 제도가 유용하게 참고가 되실수도 있다고 보기에 소개를 드리고 싶은 것입니다.<br/>: : : <br/>: : : <br/>: : :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원래 저는 'help1님의 정리본'에 형제님이 우려하신 그 부분에 대한 것 까지 포함하여 공회의 지방교회 교회론에 대한 입장과 아쉬움과 소개와 대안과 기대가 포함되리라 기대하고 있었습니다.<br/>: : : <br/>: : : 우선 급한대로 이 정도면, 여러가지 생각을 하실수 있으실 것으로 생각되어, 시간이 없어 여기서 마치고 나머지 부분은 정리본에서 말씀 드리도록 하겠습니다.<br/>: : : <br/>: : : <br/>: : : <br/>: : : 4. 다음 글이 이어지기 까지 지방교회 분들의 지적과 보완의 글을 기대합니다.<br/>: : : <br/>: : : 저의 이전 글에 대하여, 주님사랑 님의 해명 여지 의사가 있으셨습니다. 이번에 적은 이 글에 덧 붙여서 하실 말씀이 많으실 것으로 압니다. <br/>: : : <br/>: : : 여러가지 말씀을 적어주신다면, 다음에 제가 드릴 글에 서로를 잘 몰라 실수할수도 있는 불필요한 부분을 줄이고 서로에게 많은 유익한 대화가 될수 있는데 도움이 될 것을 생각합니다.<br/>: : : <br/>: : : 특히, 고린도전서 12장에 한 지체 안에 여러 직분이 있음과 그 정당성을 강조하신 성경이 있음에도 이를 어떻게 읽고 적용하고 계신지가 궁금합니다.<br/>: : : 또, 주님사랑님이 알려주신 주석 사이트는 내용이 너무 빈약하고 산만합니다. 오래전에 워치만 리 목사님의 마태복음 강해서를 사서 일부 읽어본 적이 있습니다. 그 책도 여러면에서 내용이 부족했지만 그래도 진의와 생명을 파악하는데는 충분했습니다. 이런 정도의 주석 책이나 사이트는 없는지 궁금합니다.<br/>: : : <br/>: : : 제 글이 올라오기 전이라도 지적하실 부분이나 저의 오해라고 생각되는 부분은 주님사람 님을 비롯하여 형제님 그리고 LA님 그외에도 많은 지방교회 핵심 내부 교인 분들께서 미리 글을 적어 주신다면 많은 도움이 되어 진심으로 감사하겠습니다. <br/>: : : <br/>: : : <br/>: : : 5. 혹시나 해서, 덧붙입니다. <br/>: : : <br/>: : : 혹시라도 형제님께서 더 나은 성경이 있는데도 위트니스 리 교훈이 꼭 필요하냐는 주장으로 까지 나가실까봐 덧 붙입니다. 주님께서는 성경을 주기도 했지만, 설교의 정당성도 몸소 보여 주셨습니다. 어떤 이들에게는 성경이 직접적인 복음이 되겠지만, 특정인의 설교를 통해서 하나님의 영감이 임하는 형제도 있습니다. 현재 지방교회 지도부에 계신 많은 분들은 위트니스 리 목사님의 설교를 통해 저나 형제님이 백목사님의 설교를 통해 접하는 하나님의 영감과 진리를 경험하고 계신다고 보여집니다. <br/>: : : <br/>: : : 초신자나 지방교회 일부 분들이 위트니스 리 목사님의 설교를 접하고서 지도부와 같이 아직 진리와 영감을 경험하지 못하신다면, 그것이 반드시 제도상의 문제만은 아닐 것으로도 추측되어 집니다. 이에 대한 이해도 부탁드립니다. 제도말고 어떤 다른 점이 원인일지 혹 생각 나신다면 상술하여 주실것을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주은 중에 평안하십시오.<br/>: : : <br/>: : : <br/>: : : <br/>: : : <br/>: : : </br></b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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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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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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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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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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