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KIST
백영희 신앙노선의 오늘을 고민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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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p></p><p></p><br/>지방교회 운동, 무엇이 문제인가? - 박만수 (도서출판 안티오크 대표) <br><br><br/>이단인가, 오류를 범한 지체인가 <br/><br/>윗트니스 리와 지방교회 운동은 중국의 집교회 운동(the house church movement)과 맥락을 같이 하면서도 그 순수성과 성경적 정통성에 강한 의혹을 사고 있습니다. 중국의 집교회 운동은 공산화 이후 불과 반 세기만에 기적적인 급성장을 이룩한 중국 지하교회의 대명사가 되고 있습니다만, 지방교회 운동은 뭔가 독특하면서도 교조주의적인 특성으로 인해 일반적인 집교회 운동의 흐름을 뛰어넘어 버렸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지방교회 운동은 지도층의 사도성 문제와 분파적 독선주의, 성경에 대한 알레고리 해석문제 및 이질적인 교회실행 등으로 인해 이단성 시비에 휘말리고 있습니다. <br/><br/>그러나 정작 중요한 문제는 워치만 니와 윗트니스 리에 대한 사도성 시비와 지방교회의 교리 및 실행에 대한 이단성 평가 못지 않게, 지방교회 운동에 가담한 많은 수의 무고한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대책일 것입니다. 그들 모두를 이단자로 치부해 버리기에는 너무도 순진하고 억울한 그리스도인들이 적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우리는 이단인 자와 오류에 빠진 형제는 구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단인 자는 한 두 번 훈계한 후 거절해야 하지만(딛 3:10), 오류에 미혹된 형제는 아무리 잘못되었을지라도 오래 참고 기다리는 가운데 진리로 회복되도록 도와 주어야만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형제를 실족케 하고 상처를 주는 것은 그리스도께 죄를 짓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고전 8:11-13). <br/><br/>이단인 자와 이단사상에 영향을 받아 미혹된 형제를 구분해내는 작업은 그리스도의 몸의 하나됨을 지키기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과정입니다. 미혹케 하는 자들에 대해서는 단호히 대처해야 마땅하지만, 오류를 범한 형제들에 대해서는 온유한 영으로 회복시키고자 최선을 다해야만 하며(갈 6:1), 혹 형제가 아닐지라도 마귀에게 사로잡혀 있는 자들을 온유함으로 일깨워 마귀의 올가미에서 스스로 벗어나도록 도와 주어야 할 것입니다(딤후 2:25,26). <br/><br/>윗트니스 리와 지방교회의 기본이해 <br/><br/>윗트니스 리(이상수, 1905-1997)는 워치만 니(니토생, 1903-1972)의 제자로서 1933년부터 "작은 무리회"(The Little Flock) 및 지방교회 운동에 적극 가담하였습니다. 워치만 니 자신은 주로 형제교회(the Brethren church)의 배경 하에 오스틴 스팍스(T. Austine Sparks), 마가렛 바버(M.E. Barber), 존 다아비(John Nelson Darby), 마담 귀용(Madame Guyon), 앤드류 머레이(Andrew Murray), 팸버(G.H. Pember), 제시 펜루이스(Jesse Penn-Lewis) 등의 영향을 받아 지방교회의 교리를 정립하였습니다. 워치만 니의 사상과 교리는 그의 저서 "영에 속한 사람"(The Spiritual Man)과 "사역의 재고"(Concerning Our Missions) 등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윗트니스 리는 워치만 니의 사상과 교리를 교회의 실행쪽으로 발전시켰지만, 워치만 니의 또 다른 동역자였던 스테픈 캉(Stephen Kaung)으로부터 원래의 흐름에서 상당히 변질되었다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br/><br/>워치만 니의 신학사조는 필라델피아 운동과 플리머스 형제교회 운동에서 비롯된 세대주의 교리에 바탕을 두고서 내적 체험을 중시하는 기독교 신비주의와 적절히 융합하여 독특한 경건주의 흐름을 형성하였지만, 윗트니스 리에 의해 보다 신비주의적 경향으로 기울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이 두 사람에 의해 주도된 지방교회 운동의 흐름을 "내적 생명노선"(the Inner Life Line)이라고 부르는 것도 교리로부터 체험(영과 생명 체험)으로 옮겨가는 흐름과 맥락을 같이 합니다. <br/><br/>중국이 공산화되자 워치만 니는 본토에 남고 윗트니스 리는 대만으로 사역지를 옮기게 되었는데, 이 때부터 윗트니스 리의 사역이 워치만 니의 사역과 달라졌다는 비판이 일기 시작합니다. 1962년 윗트니스 리는 미국 로스엔젤레스로 이주하여 거기서 본격적으로 지방교회 운동을 확장해 나갔는데, 그의 모든 가르침에는 늘 "영과 생명의 체험"이 강조되었습니다. 윗트니스 리는 지방교회 운동을 "주님의 회복"(Lord's Recovery)이라고 표현하면서, 회복의 역사가 마틴 루터를 위시한 개혁자들로부터 시작되어 마담 귀용, 페넬롱 신부, 브라더 로우렌스, 진젠도르프 백작과 모라비안 교회, 존 다아비와 형제교회를 거쳐 마침내 워치만 니와 윗트니스 리의 지방교회에 이르렀다고 주장합니다. 특히 다아비의 형제교회가 계시록 2,3장의 일곱 교회 역사 중 필라델피아 교회 시대를 이루었으나 지금은 라오디케아 교회 상태로 전락하였고, 대신에 지방교회 운동이 필라델피아 교회의 간증을 붙잡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br/><br/>1962년부터 약 30여년 동안 미국에서의 윗트니스 리와 지방교회는 성장을 거듭하여 세계 여러 나라로 확장됨으로써 약 13만 명 정도의 교세가 되었는데, 여기에는 리빙 스트림 미니스트리(the Living Stream Ministry)를 비롯한 문서사역의 뒷받침도 적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윗트니스 리의 수제자가 모임을 떠나고 이탈자들도 적지 않게 생기는 등 진통을 겪고 있으며, 설상가상으로 지방교회의 사도로 여기는 윗트니스 리가 1997년 6월 세상을 떠나면서 지방교회의 미래가 중대한 도전에 직면해 있습니다. 특기할만한 것은 1988년 1월 지방교회를 떠난 무리들이 발행한 소위 "비전의 복구"(Reconstruction of the Vision)란 소책자에서 윗트니스 리의 사역에 세 가지 의문점을 제기한 사실인데, 그 내용은 윗트니스 리가 성경의 가르침에서 떠났다는 것과 지방교회 회원들의 돈을 유용한 의혹, 그리고 그의 아들 필립 리(Philip Lee)를 다스리지 못한 점 등이며, 이를 근거로 윗트니스 리의 사도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 것이었습니다. 이듬해 필립 리는 성적 스캔들에 대한 비판을 근거로 에나하임 교제(the Anaheim fellowship)로부터 출교당하였습니다. 또한 지방교회 지도층은 기존 지방교회 회원들과 지방교회를 떠난 무리들 사이의 교제 및 접촉을 차단함으로써 더 이상의 문제가 확산되지 않도록 조처하였습니다. 어쨌든 이러한 퇴보에도 불구하고, 지방교회 운동은 여전히 대학 캠퍼스에서 학생사역을 활성화하는 등 부단히 교세를 확장해 나가고 있습니다. <br/><br/>한국의 경우는 1965년경 대만집회에서 회심한 왕중생씨가 한국으로 건너와서 지방교회 운동을 시작하여 전국적으로 대략 만여명 정도의 교세로 확장하였고, 왕중생씨가 작고한 뒤로 지금까지는 그의 제자인 이희득씨가 한국지방교회를 대표해오고 있습니다. 특기할만한 것은, 한국 지방교회가 왕중생씨에 의해 세워졌으나 훗날 윗트니스 리는 왕중생씨를 거짓사도로 정죄하였고, 그 결과 이희득씨를 비롯하여 왕중생씨에 의해 세워진 한국 지방교회 장로들의 입지가 모호하게 되어 버린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거짓사도가 세운 장로의 정통성은 성경적으로 인정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 일이 있은 후 한국 지방교회는 왕중생씨 아들을 중심으로 하는 친위파와 윗트니스 리의 가르침을 추종하는 개혁파 간의 내부갈등을 겪으면서 공식적인 장로직이 없이 장로격인 지도자들이 이끄는 특이한 형태의 지방교회로서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br/><br/>긍정적 측면 <br/><br/>일찍이 예수님께서는 성경의 기초 위에 자신의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말씀하셨고, 지옥의 문들이 그 교회를 대항하여 이기지 못할 것이라고 예언하셨습니다(마 16:18). 교회 역사를 통해 성경에 입각한 참 교회들의 증거는 주 예수님의 말씀이 진실임을 끊임없이 입증해 왔습니다. 비록 이 세상의 기득권 세력에 의해 역사의 진실이 많이 왜곡되어 오긴 했지만, 세상의 빛을 가릴 수 없듯 참 교회들의 선한 증거도 다 가릴 수는 없습니다. 가령 요한 후스파들이 핍박을 피해 들어간 진젠도르프 백작의 영지에서 이룩한 모라비아 교회의 간증은 아름다운 빛으로 가득하였습니다. 성경의 기초 위에 세워져 진실된 형제사랑의 증거와 세상의 빛으로서의 간증을 유감없이 남긴 그들의 영적 유산은 참으로 귀하고 아름다운 것이었습니다. 바로 이 모라비아 교회의 영적 유산을 계승하는 흐름들 중에 형제교회 운동과 지방교회 운동이 자리하고 있다는 점에서 지방교회 운동의 가치를 높이 평가할만 합니다. <br/><br/>그러나 후스파와 모라비아 교회가 종교개혁 이전에 이미 존재하고 있던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 중의 하나인데 반해, 지방교회는 자신들의 회복의 역사를 종교개혁을 기점으로 잡고 있다는 점에서 근원적 차이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늘 전진해 왔고, 중세 암흑시대 동안에도 지옥의 세력들을 제압하는 승리하는 교회들로서 항존해 왔으므로, 개혁이나 회복이 필요치 않는 교회의 증거를 보이고 있는 반면, 지방교회 운동은 회복되고 있는 교회로서의 정체성을 자랑해 왔다는 점에서 근본적 차이가 있다 함입니다. <br/><br/>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방교회 운동에는 모라비아 교회가 남긴 휼륭한 유산들의 흔적들이 아직은 많이 남아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할 수도 있습니다. 가령, 로마 카톨릭의 성직계급체제와 피라밋 조직을 거부하고 철저히 형제애와 지체관계에 기초한 유기적 교회 형태를 이루었다는 점과(이 점은 중국의 집교회 운동의 두드러진 특징이기도 합니다), 주님의 임재 체험을 비롯한 내적 체험을 중시한 경건주의 운동의 특색을 지녔다는 점(비록 신비주의 경향으로 흘렀지만), 그리고 생활 속의 전도와 자연스런 생명의 배가방식에 따른 교회성장으로 특징지워진다는 점 등에서 높이 평가할만 합니다. 몇 가지 결정적 문제점만 아니었더라도, 지방교회 운동은 성경적인 교회를 갈망하는 많은 이들에게 신선한 충격과 아울러 소중한 본보기를 보여 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지금이라도 다시금 성경으로 돌아간다면, 그들에게 아직은 희망이 있다고 여겨지기도 합니다. <br/><br/>문제점 <br/><br/>지방교회 운동의 치명적인 문제점은 무엇보다도 사도성(apostleship)에 대한 그릇된 가르침에 있다 하겠습니다. 워치만 니와 윗트니스 리는 이 점에서 공통적으로 오류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사도(apostle)란 성경용어의 독특성에도 불구하고 워치만 니는 사도를 교회 외부사역자라는 일반개념으로 해석하였고, 윗트니스 리도 이 견해를 답습하였습니다. <br/><br/>보냄을 받은 자로서의 사도의 임무가 성경의 완성과 함께 완성되었고, 사도성 및 사도권이 오로지 성경에 국한된다는 중대한 사실을 간과한채, 워치만 니와 윗트니스 리는 사도의 개념을 일반화시켰고, 자신들의 메시지를 계시(revelation)의 차원으로 끌어올렸으며, 그 결과 지방교회 추종자들로부터 이 시대의 사도로 추앙받기에 이르렀습니다. 사도성이 성경의 무오류성과 맞물려있기에, 워치만 니와 윗트니스 리는 공통적으로 무오류성 문제에서 시험대에 오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소위 워치만 니가 받은 계시의 메시지들은 처음것들과 다소 달라진 점이 지방교회 장로들에 의해 포착되었고, 이로 인해 한 때는 워치만 니가 사역을 중단하게 되는 위기를 맞기도 하였습니다(이 시기에 "영에 속한 사람"이란 책을 저술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그러나 윗트니스 리가 장로들을 설득하여 워치만 니가 사역에 복귀하게 되었는데, 훗날 윗트니스 리 역시 이 문제로 인해 중대한 도전을 받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의 메시지들의 집대성이라 할 수 있는 라이프 스터디 시리즈와 그 후의 그의 메시지들 사이에 간극이 생기면서 그의 사도성에 대한 의혹이 야기되었고, 급기야는 재정관리상의 의혹과 아들의 스캔들로 인해 증폭되어 중대한 고비를 맞다가 작고하게 됩니다. 이제 20세기의 두 사도를 잃어버린 지방교회의 향후 정체성이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오리무중에 빠질 것은 명약관화합니다. <br/><br/>성경의 기초에 대해서도 워치만 니는 자신의 저술에서 1901년판 미국표준역(ASV)이 원어에 가장 가깝다는 표현을 자주 사용함으로써 원본주의적 자가당착에 빠지곤 했습니다. 윗트니스 리는 아예 알렉산드리아 사본에 기초하여 "회복역"(the Recovery Version) 성서를 만들어내기까지 했습니다. 이로써 그들의 원뿌리라 할 수 있는 모라비아 교회의 성경의 기초를 떠나는 우를 범한 셈이 된 것입니다. 모라비아 교회는 요한 후스가 위클리프 성경에서 보헤미아어로 번역한 안디옥(안티오크) 성경에 기초하여 교회의 진리를 발견한 반면, 그들의 교회생활의 뿌리를 이어받았다고 자부하는 플리머스 형제교회는 다이비가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사본에 기초한 다아비역을 만들어냈고, 지방교회는 윗트니스 리가 역시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사본에 기초한 회복역을 만들어내는 등 모라비아 교회의 전통에 역행하는 모순을 스스로 보여 준 것입니다. <br/><br/>성경해석에 있어서도 워치만 니와 윗트니스 리는 초지일관 오리겐과 로마 카톨릭의 알레고리 해석으로 일관함으로써 자의적 해석의 우를 범해 왔습니다. 그 결과 성경 전체를 자신들의 사상의 틀에 맞추어 자의적으로 영해함으로써 경건주의의 한계를 넘어서서 신비주의의 늪에 한없이 빠져 들어갔습니다. 가령, 대표적으로 삼위일체에 대한 양태론적 해석과 그리스도론의 범신론적 접근, 신인합일설, 부분휴거설, 연옥설과 유사한 사후 제3의 훈련소 등의 위험한 교리들과 말씀먹기(pray reading), 주의 이름 부르기, 신언(神言) 등의 독특하고 이질적인 교회실행 등을 들 수 있습니다. <br/><br/>특히 기성교회의 분파주의에 대한 대안으로서 워치만 니는 지방 입장론을 조심스럽게 제기하였는데, 윗트니스 리는 이것을 가장 중요한 교회의 진리로 격상함으로써 성경이 강조하지 않은 점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성경이 침묵하는 점을 가장 큰 소리로 외치는 우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즉 이 세상에 속한 지방자치 행정의 단편을 절대적인 교회 교리로 주장함으로써 이같은 독특한 교리를 가진 지방교회만이 참 교회이고 다른 모든 교회는 바빌론 포로 상태의 교회들로 매도하는 독선을 나타내고 만 것입니다. 심지어 윗트니스 리에 의해 지방교회에 도입된 독특한 실행들은 워치만 니의 가르침과도 이질적인 것이어서 중국과 대만의 워치만 니 추종자들로부터도 비판을 받을 정도였으며, 점차 중국 본토의 지하교회들인 집교회들과 다른 흐름으로 변질되어가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br/><br/>이외에도 윗트니스 리와 지방교회는 매우 독특한 교회실행들을 발명해 냈다고 자랑하지만, 그러한 것들이 오히려 그리스도의 몸에 상처를 주고 분열을 일으키는 이질적인 뜸씨들임에 유의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가령 말씀먹기 실행의 경우, 의미 자체는 큰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중언부언을 금한 주님의 경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혼을 마비시켜 접신(接神)하는 이교적 접신방법과 흡사하게 오 주 예수여, 아멘, 할렐루야 등을 수없이 반복하면서 넋나간 상태에서 성경을 읽는 등, 건전한 성경연구 자세와 인격적인 진리의 성령님의 역사와는 거리가 먼 매우 이질적이고 저질적인 관행을 교회실행으로 삼고 있습니다. 주의 이름 부르기도 이론은 그럴듯하지만, 그 실행이 매우 기계적이고 관념적이며 마치 이교도들이 주문 외우는 듯한 인상을 풍길 정도입니다. 신언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교회 안에서 생명의 질서를 따라 말씀을 나누는 모습에서 지나쳐 형제자매 할 것없이 거의 기계적으로 일어서서 분위기를 살려가려는 듯한 모습은 왠지 성경의 모습과는 이질적인 것임을 느끼게 합니다. 더욱이 그 나누는 내용이 천편일률적으로 윗트니스 리의 가르침을 앵무새처럼 되풀이하는 데 그치고 있는 것은 분명 성경의 교회모임의 모습과는 다른 것입니다. <br/><br/>이상의 여러 치명적인 문제점들과 영지주의적 태도로 인해 지방교회 운동의 열매는 이질적인 또 다른 분파주의와 교조주의로 드러나게 되었고, 마침내 이단성의 시험대에 올려지고 만 것입니다. <br/><br/>성경으로 돌아가는 길 <br/><br/>요한 후스의 연합 형제단(Unitas Fractrum)과 모라비아 교회가 처음부터 바른 성경에 기초하여 성경적인 교회생활을 이룬 것과는 대조적으로 지방교회 운동은 처음부터 성경의 기초를 잘못 놓으면서부터 이미 첫단추를 잘못 채우고 있었습니다. 비록 모라비아 교회의 훌륭한 영적 유산들을 많이 이어받음으로써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의 영적 우월감과 분파적 배타주의, 신비주의의 흐름을 타고 들어온 이교적 요소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도성에 대한 결정적 오류로 말미암아 지방교회 운동은 이미 성경의 교회들로부터 점점 멀어져가고 있습니다. <br/><br/>그러나 지금이라도 지방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이 스스로 마음을 낮추고 바른 성경의 기초로 되돌아가 다시금 성경의 순수한 계시에 따라 자신들의 오류를 과감히 교정하기만 한다면, 그들도 주님으로부터 성경적인 교회들로 인정받을 수 있는 기회가 아직은 남아있다고 조심스럽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br/><br/>또한 지방교회 내에서 바른 성경에 기초하여 바르고 건전한 성경해석의 원칙이 새롭게 정립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지나친 알레고리 해석의 틀을 버리고, 오직 성경이 알레고리라 말씀한 것만(갈 4:24) 알레고리로 해석하고, 성경이 비유라 한 것만 비유로 해석하고(마 13:18), 성경이 문자적으로 말씀한 것은 문자적으로, 상징적으로 말씀한 것은 상징적으로 해석하며, 성경의 문맥과 관주와 기타 건전한 해석원칙들을 다시금 재점검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br/><br/>또한 자신들만이 참교회이고 다른 모든 교회는 지방 입장에 서 있지 않으니 바빌론 포로상태라고 하는 독선적이고 배타적인 태도를 버리고 스스로 겸손히 여러 교회들 중의 하나로 인정하며, 성경에서 지나쳐 버린 지방입장론 교리를 성경의 수준으로 끌어내릴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교회의 간판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교회가 과연 바른 성경의 기초 위에 세워져 있는지와 성경의 청사진 그대로 실행하고 있는지를 점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앞서간 우리 믿음의 선진들도 로마 카톨릭으로부터 왈덴시안이니, 바울파니, 카타리파니, 재침례파니 하는 이단의 이름으로 불려질 수밖에 없었지만 그래도 성경의 기초 위에 서서 성경 그대로 실행한 그들이었으므로 우리 주님으로부터 참 교회들로 인정받지 않겠습니까? 문제는 간판이나 외형이 아니라 내용과 본질이 중요한 것입니다. <br/><br/>영과 생명을 강조하는 것도 좋으나, 그 영과 생명이 성경과 정확히 일치하는 것이어야 함을 유의해야 할 것입니다. 마치 인감증명을 발급할 때에 원도장과 정확히 일치하는지를 대조해 보듯이, 성경의 청사진과 정확히 일치하는 체험이 바른 체험이요 바른 영인 것입니다. <br/><br/>끝으로, 지방교회 운동에 참여한 분들이 바른 성경의 기초로 되돌아와 건전한 성경의 교회들로 회복되기 위해선 그리스도의 몸의 다른 지체들과 다른 이질적인 실행들을 과감한 버릴줄 알아야 할 것입니다. 가령, 말씀먹기라든지 주의 이름 부르기, 신언, 주의 회복, 혼합(mingling), 삼일 하나님, 떠도는 별, 지방 입장 등등의 독특하고 이질적인 용어들과 개념들과 실행들은 건전하고 덕을 세우며 그리스도의 몸 전체에 유익을 주는 것들로 과감히 전환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이미 젖어있는 종교적 습관과 관념을 버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고통스러운 것인지 잘 압니다만, 그래도 그리스도의 몸의 유익을 위해서라면 감수해야만 합니다</br></b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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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백영희신앙노선'총괄(전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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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4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려니와 무고히 속이는 자는 수치를 당하리이다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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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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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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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2
여호와께서 그 터를 바다 위에 세우심이여 강들 위에 건설하셨도다
03.02
땅과 거기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중에 거하는 자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
02.27
저로 영영토록 지극한 복을 받게 하시며 주의 앞에서 기쁘고 즐겁게 하시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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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1.02
12.21
이 노선의 우리가 지켜 볼 이유와 사연이 있는 볼리비아 선교회 고광문 목사님이 보내 온 소식입니다. '선교'…
서기
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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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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