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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희 신앙노선의 오늘을 고민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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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p></p><p></p><br/><br>기사입력: 2012/09/20 [04:48] 최종편집: ⓒ 크리스찬투데이 <br><br><br/>크리스찬투데이 <br/><br/><br/><br/><mo> 미드웨스턴신학대학원 한국부 학장에 정태우 교수(사진)가 임명됐다.<br/><br/>▲ 정채우 교수 © 크리스찬투데이 <br/><br/>미드웨스턴신학대학원 캔사스시티에 자리한 남침례교단 신학교 중 하나다.<br/><br/>정태우 교수는 이 대학 한국부 박사원 및 온라인 석사원을 담당했으며,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이 학교 한국부 학장으로 임명됐다. 미드웨스턴 한국박사원은 학생수가 200여 명이 넘고, 남침례교단 신학 대학원 중에서 최대 규모로 발전하고 있는 학교 중 하나다.<br/><br/>한편 2012년 가을 학기 미드웨스턴침례신학대학원 본교한인학생회를 섬길 회장과 총무로 박승호 목사와 최모훈 목사가 각각 선출됐다. 지난 9월 1일에는 한인학생회가 주최하는 가을학기 개강예배를 올렸다. 문의:(816)414-3754. <br/>----------------------------------------------------------------------<br/><br/><br/><br/><br/><br/><br/><br/>미드웨스턴 침례신학교 한국어 목회학 박사 과정 개설한다 <br/>LA지역 강사는 최영기, 이동원, 김만풍 목사등 <br/><br/>2010/02/17 ㆍ조회: 7965 <br/><br/><br/>미드웨스턴 침례신학교(총장 필 로벗츠 박사 MBTS, Midwestern Baptist Theological Seminary)는 한국어 목회학 박사(K-D.Min) 과정을 개설하고 학생을 모집하고 있다.<br/><br/>MBTS는 지난 1957년 5월 미조리 주 캔사스시티에 세워진 남침례교단 산하 신학교로 북미 신학교 협의회(ATS)와 NCA(North Central Association)의 정회원으로 가입된 학교.<br/><br/>로드니 헤리슨 부총장은 “K-D.Min 과정은 지난 5년간 연구를 통해 개설된 프로그램이다. 이번 프로그램의 특징은 학업을 위해 교회를 비우기 힘든 한인목회자들의 형편을 고려해 본교 외에 LA, 뉴욕, 달라스, 시카고에서 돌아가며 강의가 열리게 된다”라고 말했다. <br/><br/>MBTS는 본교에서는 영어클래스와 이중언어 클래스로 나누어 강의가 열리게 되며 LA와 뉴욕, 그리고 달라스와 시카고에서는 한영 이중언어 클래스가 열린다. 또한 1년중 3차례 LA에서 수업이 진행되며 수강생들은 어떠한 지역에서도 수강이 가능하다는 잇점을 가지고 있다.<br/><br/>한국어 코디네이터인 최락준 목사는 “우리학교의 교수진은 Ph.D 등 박사 학위만을 소지한 자가 아닌 최소한 10년 이상의 담임목회 경력을 가진 자로 학문적 지식과 더불어 풍부한 현장목회경험을 가지고 가르친다”고 말했다. <br/><br/>이번 LA지역에서 열리는 학위 과정은 한과목당 6명이상이 강의에 참가할 수 있으며 6월중에 로스앤젤레스 한인침례교회에서 열린다. LA지역에서는 1년에 3차례 강좌가 열린다. <br/><br/>목회학 박사 과정은 총 36학점(과목 30학점, 논문 6학점)을 이수해야 하며 과정을 마치기 위해서는 대개 3년이 소요된다. 또한 클래스는 5일간의 집중강의로 이루어지며, 강사는 최영기, 이동원, 박성근, 김만풍 목사 등을 비롯해 각 지역의 자격 있는 교수진으로 구성된다. 학비는 남침례교의 재정지원으로 침례교인은 3년간 등록금이 5,960불이며, 그 외 타 교단 출신은 1만1,000불이다. <br/><br/>문의: (773)275-0101<br/><br/>ⓒ 크리스천뉴스위크<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 "` 님이 쓰신 내용 <<<br/>:<br/>: 1. 미국 신학교에 넘쳐 나는 한인 학생들<br/>: <br/>: 2009년 4월에 미국 필라델피아에 있는 웨스트민스터 신학교를 방문할 일이 있었습니다. 도서관 1층의 화장실에 학교 측에서 한글로 안내판을 붙여 놓았습니다. 한국 학생들이 너무 많이 보여서 행정실에 들어 갔다가 물어 봤습니다. 전교생 700여 명에 한국 학생이 200여 명은 넘을 것이라고 합니다. 미국 웨신은 미국에 첫 손 꼽는 명문 프린스톤 대학의 신학교로부터 신학 사상 문제 때문에 나와서 개척했고 이후 프린스톤과 사상 싸움에서 이길 전사를 양성한다는 목적 의식이 강하여 학교의 크기나 지명도는 비록 미미해도 그 정신과 역할은 새파랗게 살아 있는 미국의 대표적인 보수 장로교 신학교입니다. <br/>: <br/>: 2012년 8월 마지막 주간에 LA의 바이올라 신학교에 이 홈 관련 한인 2세 선생님이 등록을 했습니다. 강의실의 학생이 약 40여 명 정도로 보였는데 그 중 절반이 한인들이고 그 중에 2세 학생들이 8:2 정도로 많았으며 남녀 비율도 7:3이나 될 만큼 많았다고 합니다. 바이올라대학교의 탈봇 신학교는 LA 지역의 3대 정통 강경파 신학교 중 하나로 그 중에서도 소수 정예를 기르며 강한 면모를 보이고 있습니다. 입학이나 공부하는 조건은 웨신보다 센 곳입니다. <br/>: <br/>: 이 글에서 생각하고 싶은 것은 미국의 백인 주류 정통 신학교에 한인 학생이 주류가 되어 넘치는 모습을 보이는 이 현상은 과거 어느 누구도 생각할 수 없는 기이한 상황이며 한국이 세계 기독교의 보수 정통의 중심에 섰다는 증거를 확실하게 드러 내는 통계인데 그 원인 때문입니다. <br/>: <br/>: 상황이 이 정도니 미국에는 한국 사람이 설립하고 한국 사람이 한국 말로 강의하는 정규 신학교도 있고 일반 미국의 전통 있는 신학교에서 한국 교수가 한국 말로 강의하거나 한국 학생들만을 위해 정규 과정에서 통역하는 경우까지 있다고 합니다. 한국 교회의 초기 어려울 때라면 약한 한국 교회를 기르기 위해서겠지만 지금 한국 교회의 교세나 경제로 볼 때는 아예 미국 신학교들의 학생 유치가 더 큰 의미가 있겠다고 느껴 질 정도입니다. <br/>: <br/>: <br/>: <br/>: 2. 왜 이렇게까지 늘고 있을까?<br/>: <br/>: 1) 한국 교회의 전성기<br/>: <br/>: 세계 교회가 다 노쇠해 가고 있는데 한국 교회만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는 것이 제일 큰 원인일 것입니다. 물론 한국 교회조차 이제 정점을 찍고 하강 곡선을 그린다 하여 모두 바짝 긴장하고 있으나 좀 넓은 시야로 볼 때 한국 교회는 여전히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습니다. 한국 교회의 부흥사는 모두가 세계적인 기적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조선의 멸망, 조선의 중심국인 중국의 해체, 동양의 사상과 종교의 종말, 미국 중심의 서구의 등장, 일본의 조선 통치, 해방, 전쟁, 생존을 넘어 발전의 과정에서 미국에 대한 무한한 존경심, 미국의 한국 선교, 한국 교회의 미국 답습에 이르는 모든 과정에서 미국은 세계 전체를 대상으로 활동했고 한국이 가장 자랑스런 모범 성공사례이고, 한국은 스스로도 기대하지 못했고 아무도 몰랐던 절정기를 구가하고 있습니다. 한국교회가 총론적으로 전성기며 현재 세계 교회의 최 중심에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정도니 미국 내 신학교에서의 한인 학생수도 그런 역량의 자연스런 현상 중 하나로 보입니다.<br/>: <br/>: <br/>: 2) 미국의 한인 이민 사회<br/>: <br/>: 선교 파송국이면서 전쟁의 지원국인 미국은 우리 나라와 이민과 유학의 초기 과정에서 맺어 지는 인연은 주로 교회가 연결 고리가 되고 또한 그 중심에 서게 됩니다. 미국의 교회가 미국으로 오는 이민이나 유학생이나 기타 한인의 유입에 가장 중심이 되었고 이로 인해 초기부터 한국 사람은 미국에 가면 미국의 교회를 중심으로 살게 되고, 한인들이 많아 지면서 한인 교회들이 미국 각지의 한인 사회에 중심이 되어 한인회와 한국교회는 따로 구별을 하지 못할 정도입니다.<br/>: <br/>: 한국의 경제적 사회적 발전에 따라 교회와 상관 없이 미국으로 가는 인원이 폭발적으로 늘어 나감에도 불구하고 한인들은 영어에 관한한 유무식을 막론하고 아주 적응이 어려워 미국에서 잘 적응한 선배 한인들의 도움이 필요하고 선배 한인들은 전도하기 위해 뒤에 도착한 사람들을 잘 이끌게 되면서 지금 그 숫자를 통계 내기도 어려울 만큼 많은 한인들이 미국에 살지만 예외없이 한인들은 한인 교회에 교인으로 살고 있다 할 정도입니다.<br/>: 미국에 사는 한인의 숫자가 많아 지면서 미국 내 한인 교회가 많아 지고 커지면서 미국 내 신학교에 한인 학생의 등록 수요가 많아 졌습니다. <br/>: <br/>: <br/>: 3) 미국 유학이 갖는 힘<br/>: <br/>: 작은 나라에 양반 상놈으로 내려 온 세월, 유교 사회로 내려 온 6백 년을 통해 글 하는 사람을 특대하는 풍습, 사대주의에 찌들어 당대 제일 큰 나라의 학벌이 우상이 된 민족성, 이런 이유로 우리 나라는 해방과 더불어 오늘까지 세계 최대 최강 최고인 미국이라는 이름을 향해 가지는 심리적 추앙심이 너무 지나 칩니다. 최근 우리의 위상으로 볼 때 이제 미국 부러워 할 것이 별로 없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지난 날의 우상인 미국의 위상은 아직도 힘을 갖고 있습니다. 교수뿐 아니라 목회자까지도 미국의 신학 학위를 무조건 선호하는 이 뿌리 깊은 사고 방식이 수요가 되었으니 미국 신학교로 가서 공부하려는 공급은 필시 넘칠 수밖에 없습니다. <br/>: <br/>: 바로 이런 흐름 때문에 미국에 있는 한인 교회들의 인식과 행태도 국내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미국의 이민 사회에 사는 분들과 한인 교회들은 한국과 모든 것이 판이하게 다르다 하는데 실제 다른 것은 맞으나 객관적으로 멀리서 본다면 국내나 국외나 한국인은 어디 가도 한국인의 특유의 성향이 있으며, 한인 교회도 국내 한국 교회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은 면이 많습니다. 국내에서 선호하는 미국 내 신학교에 대한 미국 내 한인 교회들의 인식 역시 그렇습니다. 미국 사회는 알아 주지 않아도, 미국의 교계가 생각하는 평판과는 다를지라도 한국의 국내 교회와 미국의 한인 교회의 미국 내 신학교에 대한 인식은 함께 가고 있습니다. <br/>: <br/>: 한인 교회의 초기 지도자들이 모두 한국에서 유학으로 건너 간 경우이고 그들이 초창기부터 노래를 부른 것이 미국 내 보수주의 신학교이며 그들이 국내에서부터 듣고 가진 인식을 한인 교회 내에서 계속 반복하니까 이제는 한인 2세라는 미국 사고방식의 청년들까지도 한인으로 한인 교회에서 일할 마음이 있으면 국내의 수요와 같은 그 수요에 따라 맞추는 경향이 뚜렷합니다.<br/>: <br/>: <br/>: 4) 교수들의 성 쌓기<br/>: <br/>: 비단 교수직에만 있는 것은 아니나 이 번 글이 신학이므로 신학교의 선생님들을 중심으로 살펴 볼 수밖에 없습니다. 신학 교수라 해도 그 것이 직업인 시대에는 신학의 원래 지향하는 신앙이야 아예 기대할 수 없는 것입니다. 직업이라면 그 직업은 어느 직종에 상관 없이 밥벌이니 밥그릇을 지키려는 여러 가지 본능적 행동이 나옵니다. 가깝게는 3 끼 밥을 안정적으로 먹어야 하는 것이고 넓게 보면 배는 불러도 마음까지 배가 불러야 하므로 명예나 여러 이해 관계로 얽히게 됩니다. 자기 직업에 대한 보호 본능, 보호를 위한 선전 선동, 그 결과 나타 나는 영역 확장이 왜 한국 교회의 모든 목사님들에게 해외 유학을 선망하게 만들고 미국 신학 과정을 우상화의 대표로 만들어 놓았을까?<br/>: <br/>: 연세대를 나온 교사는 학생들에게 평생에 연대가 고대보다 낫고 서울대 정도 된다 합니다.<br/>: 고려대를 나온 교사는 서울대와 고려대가 팽팽하고 연세대는 한참 밑이라고 말해 놓습니다.<br/>: 국어 선생님은 한글의 중요성을 영어 교사는 영어의 세계화를 과학 선생님은 과학 없는 세상은 없다 하고 음악 선생님은 모든 과목을 아주 우습게 만들고 음악에서 인생의 모든 행복을 찾습니다. 작은 골짜기 부자는 이 나라 몇 째 가는 부자인 줄 알고, 전국의 중소 도시에 그 도시 이름을 붙인 지방 명문대학들은 경기고교 다음이 자기 고교인 줄 압니다. 순천고는 2010년 경 법조계 최대 배출 고교로 이름을 올렸으나 제가 이 지방으로 오던 1989년에 저는 순천고교라는 이름을 모르고 왔습니다. 이 지역에는 그 학교 이름으로 모든 명문과 하층 학교를 분류합니다. <br/>: <br/>: 구약 교수는 구약을 강조하고, 조직신학 교수는 교리의 중요성을, 설교학 교수는 설교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강조가 그 학문의 존재 가치와 의미를 가르치는 데 그치지 않고 학생들로 하여금 그 과목만 부각하는 데 정신이 없습니다. 원어 과목에서는 원어만이 신앙이며 신학이며 우리의 전부입니다. <br/>: <br/>: 바로 이 연장선에서 이 나라 초기의 신학 교수들은 자기가 공부한 나라와 그 신학교와 그 교수만을 가지고 평생 자기 활동 범위에서 학생들로 하여금 신학의 한 우주를 형성 시켜 놓았습니다. 천만 다행으로 박형룡 박윤선이라는 이름으로 해방 한국 신학사를 형성한 한국교회는 '칼빈의 개혁주의' '신앙의 정통 보수' '웨스트민스터'와 같은 참으로 생명 되고 소중한 이름을 전국의 교회와 교인 뇌리에 잊혀 질 수가 없고 털어 버릴 수가 없도록 만들어 놓았습니다.<br/>: <br/>: <br/>: 5) 민족적 성향<br/>: <br/>: - 또 돌아 보는 우리의 본토 친척 아비 집<br/>: 여기서 우리는 또 한 번 우리가 한반도에 사는 한민족임을 잊을 수가 없는 문제가 생깁니다. 대륙을 횡단하여 여기까지 건너 왔던 우리 조상들은 그 모든 이주민들 중에서도 끈기가 있어 대륙 끝 한반도까지 왔을 것이며, 그들은 원래 그리 잘 나지 않았기 때문에 중간중간에 좋은 땅을 차지 하지 못하고 쫓기거나 새로운 변방을 찾아 유리했을 것이며, 그들은 한반도까지 와서 땅의 끝을 가지게 되자 여기에 못을 박고 고인물이 되었을 것입니다. 더 용감한 이들은 동해의 험한 파고를 넘었을 터인데 그 정도의 무모하게 생명을 거는 편이 되는 이들은 일본으로 빠져 나가 오늘의 일본을 만들었고 일본의 단칼 정신을 형성했을 것이나 우리는 그 바로 직전에서 머물렀습니다. 그리고 머물고 온 세월 동안 우리는 이 땅의 지정학적 환경에 영향을 받았습니다. <br/>: <br/>: 대륙을 건너 올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서 우리는 원래 이 곳까지 온 우리의 민족적 본래 성향을 유추할 수 있고 또 이 한반도에 못 박고 살아 온 환경이 그 성향과 화학작용을 일으키며 오늘 우리를 만든 줄 알 것입니다. 인류학자나 생물학자의 무슨 전문 용어나 웅변이 없다 해도 또는 그들의 주장과 배치가 된다 해도 이 정도의 맥락은 하늘이 위에 있고 땅이 아래에 있음 정도의 차원에서 단정할 수 있습니다. <br/>: <br/>: - 미국 일변도, 편중 된 신학교<br/>: 그들 중에 우리가 믿었고 우리 중에 두 박 박사님들이 한국 교회의 보수 정통 신앙의 첫 길을 열었고 그들에게 감동 받고 양육 된 이들이 한국교회의 신학계에 쏟아 져 나왔습니다. 모두가 미국을 노래하고, 미국을 갈 수 없거나 미국을 가는 주류에서 한 걸음 옆으로 나오면 박윤선 목사님이 잠깐 구경하고 왔던 화란 신학을 공부합니다. 하나도 그렇고 열도 그렇고, 백도 그렇고 천도 그렇습니다. 천편일률입니다. <br/>: <br/>: 최근에 유독 남아공과 영국과 유럽 계열에서 공부한 경력들이 눈에 많이 띕니다. 그 분들은 학문으로는 유럽이 미국보다 훨씬 위라 하고 남아공은 영연방에서 가장 보수적이고 철두철미하다고 강변하는데 그런 말씀들을 하지 않아도 우리는 일반 상식으로 다 압니다. 그런데 왜 그들의 선배들은 오로지 미국 유학이었던가? <br/>: <br/>: 해방 후 한국교회의 극단적 분열 중에서 '박형룡'과 '박윤선'은 미국에서 신학을 했다는 이 '미국'이라는 단어 하나에 전국 장로교 판도를 태풍의 눈처럼 휩쓸었습니다. 조선을 아침 해장거리처럼 먹어 치운 일본, 5천 년의 대국 중국을 순식간에 무력화한 일본, 세계를 향해 승승장구하던 일본, 그 일본을 원자탄 하나로 요절 내고 천황을 무릎꿇린 미국, 우리는 독립운동조차도 하지 못했는데 우리의 독립운동은 뒷골목 양아치 수준이었는데, 우리에게 독립을 안겨 준 미국, 그런데 한국에 있는 교회로서는 그들에게 전도 받았고 그들의 나라가 우리를 독립 시켰으니 사회적으로도 해방 직후 이 나라는 '미국' 노래를 불렀고, 교회는 가히 우상을 넘어 설 정도였습니다. 북한에 들어 선 공산 정권, 한국의 교회 중심지 북한의 교회를 다 쓸어 버린 공산당, 전쟁의 참화와 낙동강까지 한 달만에 밀려 간 위기에서 또 한 번 우리를 살려 낸 구세주가 미국이었습니다. 동네 아이들이 '먹던 것도 좋아요, 씹던 것도 좋아요' 하며 미군을 따라 다니며 껌 하나 주워 먹던 시절, 그들의 강냉이와 구호 물자가 우리에게 하늘의 은혜이던 시절, 교회는 전국의 구호품 전달의 창구가 되었습니다. <br/>: 이런 모든 상황에서 한국민 우리의 옛 사람적 습성, 일제와 독립과 전쟁과 전후의 복구 역사, 이승만 정권이라는 절대 친미파 정부, 사회 전체의 분위기, 바로 이 시기에 장로교회의 교단 판세는 친일 청산과 함께 박형룡 박윤선이라는 인물이 미국에서 박사를 따왔다는 이 사실 하나에 온 장로교회는 그들의 말 한 마디와 그들의 결정에 목을 매 달고 있었습니다. 한 분은 신사참배가 두려워 해외로 도망 간 분이고 한 분은 신사참배를 했던 분입니다. 따라서 신앙으로는 처참한 패배자 중의 하나라야 하는데 미국 박사라는 이 이름 하나 때문에 신사참배를 승리한 분들까지도 신앙으로는 자기들만도 못한 박사를 쳐다 보며 박사는 모든 것을 다 아는 학자인데 그들이 미국에서 그 박사를 따 왔으니, 그 박사 학위가 미국에서 뭘 보고 뭘 배워 왔는지 국내 모든 이들이 전체 무식한 상태에서 그냥 줄줄줄줄 따라만 다녔습니다.<br/>: <br/>: 우리에게는 바로 이 현상이 얼마나 다행인지! 그 두 분이 철저한 보수 신앙이기 때문에 그 분들이 마구 온 미국과 세계의 잘 믿는 사람들의 이름을 가지고 국내를 보수 신앙으로 휘몰아 갈 때 국내는 실제 그 바람에 휩싸였고 그 여파는 6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한국교회의 원류를 형성하고 있는 정도입니다. <br/>: <br/>: 이 과정에서 한상동 목사님 같은 이는 '박사학위에 정말 서럽고...'라는 표현을 하게 됩니다. 그 분의 인격이 우리 수준이었다면 '더럽고 아니꼽고' 이렇게 했을 터입니다. 어쨌든 두 박사님 중 한 박사님은 미국 박사님이 맞고 사실 한 박사님은 요즘 표현으로 말하면 박사님이 아닙니다. 박사 사칭으로 난도질을 당해도 할 말이 없을 정도입니다. 석사에서 끝났습니다. 요즘 시골에도 넘쳐 나는 석사, 시골에도 쉽게 볼 수 있는 미국 박사, 석박사 2 명이 한국교회를 흔들어 댔으니 이 광경을 보면서 1945년 해방 이후에 청소년으로서 또는 청년들로서 이 나라 보수 교계에 있는 모든 머리 좋은 학생들은 '미국에서 신학'이라는 것은 이순신 정도가 되는 앙모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br/>: <br/>: 우리 한국인의 순식간에 쏠림 현상, 주한 미사령관이 북구에 사는 들쥐들이 한국의 개떼들처럼 하나가 튀면 따라서 죽을 곳이든 살 곳이든 무조건 휩쓸려 가지 개인적으로 자기의 생각과 행동은 너무 볼 수가 없다고 비판한 적이 있는데 그를 욕할 것이 아니라 그런 우리를 살펴야 할 일입니다. 아닐까요? 좌측이 우파를 욕할 때도 이 나라 전체가 그리 된다고 욕하고, 우파가 좌측을 욕할 때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그렇습니다. 공회도 그렇고 교계도 그렇고, 해방 후의 특이한 상황에서 미국 출신 학자라 해 봐야 그 기간에 그들이 미국에서 읽고 들을 내용이야 뻔한 것이고, 실제 공부는 학위를 딴 이후부터 책상에 앉아서 이제 출발하는 것인데 그 분들이 미국 이야기를 하고 신학 배운 이야기를 하자 한국의 보수 정통 교계는 그 분들의 말만이 전부였습니다. 그래서 미국으로 미국으로 몰려 갔습니다. 그 때는 독일이나 화란이나 남아공에서 신학을 하는 사람은 아주 독특한 경력의 이상한 이름으로 보였습니다. <br/>: <br/>: 바로 이 현상이 60년대부터 본격화 되기 시작하자 서울의 주한 미대사관에서는 이상한 통계가 잡히기 시작합니다. 한국에서 신청하는 비자 중에서 '교회'나 '신학'이나 '목사'와 같은 이름으로 신청 된 비자들은 비자 발급의 약속을 어기고 미국에 불법 체류하거나 도중에 영주 체류로 돌아 서는 경우가 너무 또렷했습니다. 1970년대에 들어 오면서 미국무부에서는 특단의 대책이 나옵니다. 한국인이 신학이나 교회 계통으로 신청하는 비자는 무조건 거부하라, 말하자면 이 정도가 되었습니다. 한강 철교가 끊어 진 줄 모르고 뒤에서 밀려 대는 피난민들 때문에 앞에서는 빠져 죽고 뒤에서는 계속 밀고 내려 가던 모습처럼 한국의 해외 신학 행렬은 이 모양이었습니다. 여기서 출로를 찾은 것이 남아공 영국 화란 독일이었습니다. 소수의 굉장한 두뇌들은 처음부터 화란과 독일처럼 미국보다 더 어렵고 치열한 전쟁터로 뛰어 들었으나 거의 대부분의 유학생들은 미국만 가고 싶었는데 길이 확실하게 막히자 꿩 대신 닭이라도 잡는 마음으로 무조건 해외를 갔다 와야 했기 때문에 가게 되었습니다.<br/>: <br/>: 그래서 해외 한인교회에까지 한국 이름이 가는 곳에는 교회가, 교회 가는 곳에는 미국 박사가, 미국 박사가 아니면 미국 유학 경력이라도, 그래도 안 되면 화란과 독일로, 실력이 안 되면 영국과 남아공이라도 출로를 찾은 것이 오늘의 한국 신학자들의 연령과 해외 경력을 보면 그냥 한 눈에 알 수가 있습니다. 1990년대 이후에 한국의 경제가 놀랍도록 좋아 지고 한인들의 미국 체류의 부작용이 줄어 들면서 한국 학생의 미국 신학 유학이 완화 되었고 최근에는 완전히 자유화가 되었으나 이 역사적 흐름은 오늘도 면면히 미국의 신학교마다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br/>: <br/>: <br/>: 6) 꿈을 이루는 나라를 향하여<br/>: <br/>: 우리가 갈 곳은 천국이고, 우리의 시선은 그 곳만이어야 할 터인데 어찌 하여 이 나라의 모든 교회를 지도하는 이들의 시선은 미국의 신학교를 향하게 되었는가? 미국을 갔다가 돌아 오기라도 하면 그나마 자기 합리화에는 유리할 터인데 간 사람들마다 줄줄이 다 눌러 앉아 버렸습니다. 자기 합리화 때문에 돌아 온 이들도 마지막 돌아 갈 곳은 그 곳이었습니다. 우리 나라가 미국과 비교해도 될 정도의 국력을 가진 최근에는 달라 졌지만 1980년대까지는 어떤 연을 잡고라도 천국을 잊고 버리고 희생 시키고 팔아 먹어서라도 미국으로만 향했습니다. <br/>: <br/>: 물론 가난하던 시절 우리 나라와 미국을 비교하면 이 땅 위에 기준으로는 하늘과 땅 차이였으므로 굳이 한국에서 천국을 바로 향하는 것보다 미국만 가도 천국 중간쯤은 될 정도였습니다. 그렇다 해도 종교인이, 생명을 가진 이 기독교의 지도자들이 그렇다는 것은 이 것은 오늘 21세기에 이르러 기독교의 타락상이 지적 받는 것과 달리 21세기에 지적을 받지 않을 수 없도록 이미 그 시기에 썩을 대로 다 썩어 있었습니다. <br/>: <br/>: <br/>: <br/>: <br/>: 3. 한국, 세계 기독교의 중심이 된 나라<br/>: <br/>: - 세계 기독교의 성공 사례<br/>: 짧은 역사에 이룬 성과도 크겠지만 현재 단면을 놓고 봐도 우리 나라의 기독교 경쟁력은 가히 세계 최강입니다. 최근 삼성과 애플이 휴대폰 시장을 놓고 세기적 특허 전쟁을 벌이고 있다는데 우리의 첨단 전자 산업의 역량이 이렇게까지 된 것을 두고 누구도 예측할 수 없었고 우리 스스로 감탄할 일입니다. 이런 현상이 최근에 집중 되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을 보며 세상이 문제가 아니라 이 사회에 얹혀 사는 우리 한국 교회의 모습을 보고 있습니다. <br/>: <br/>: 세계 최대 교회가 각 교파 별로 또 교파를 초월해서 줄줄이 한국이 섭렵을 하고 있습니다. 저력의 미국과 역사의 유럽이 여전히 큰 힘을 갖고 있으나 아다시피 신앙이란 저력과 역사란 가능성에 그치며 항상 중요한 것은 현실의 현 상황입니다. 이스라엘이 성경의 모든 성자 성녀를 거의 다 보유하고 있으나 오늘 현실에서 우리는 그들에게 잠재력과 가능성 외에 것을 주지는 않습니다. 그들은 이방인들입니다. 우리가 신령한 이스라엘입니다. 같은 원리로 오늘 한국 교회의 역동성은 가히 세계 정상입니다. <br/>: <br/>: 한두 교회가 아니고, 무슨 행사의 특별 프로그램이 아니라, 거의 모든 교단의 거의 모든 교회들이 새벽예배를 가지고 있습니다. 많이 쇠퇴 했지만 일주에 3 회의 대예배를 오랜 세월 유지해 왔습니다. 기독교 선진국의 주류에서는 꿈도 꾸기 어렵습니다. 물론 이 홈은 이 노선과 과거 한국 교계의 건전했던 시기를 기준으로 오늘의 한국 교회를 크게 비판하고 있지만 그 것은 기준을 높게 잡은 것이고 한국 교회를 기준으로 미국이나 유럽 교회를 비판하자면 예배당이라 할 곳도 별로 없습니다.<br/>: <br/>: 우리 사회가 정치 사회 문화 경제 기술 학문 체육 등 모든 면에서 단기간에 세계 정상으로 속속 발을 들여 놓는 이 시기에 한국 교회는 세계를 주도하거나 세계 모든 교회가 부러워 할 기독교 전성기를 구가하며 세계 교회의 절정에 서 있습니다. 초대형교회, 세계 교회 속에서의 한국 교회 인물들의 부각, 경제력, 예배당 건축, 신학대학의 숫자, 교수와 박사 학위자, 몰려 드는 신학생들... 무허가 신학교 5백여 개를 헤아리던 때가 20 년 전이었습니다. <br/>: <br/>: - 한국의 신학계<br/>: 이 모든 통계에서 초대형교회의 교세와 함께 지목 되는 부분은 신학 분야입니다. 박사학위 소지자, 몰려 드는 해외 유학 지원자, 국내의 신학대학의 숫자들, 현재 국내에서 활동하는 신학 교수들의 권위와 그 물량은 가히 세계 역사상 최고일 것입니다. 시골에서 목회를 해도 석사학위는 기본이고 박사학위가 없으면 교회 발전에 지장이 있거나 손해를 보거나 아니면 다음 목회지 청빙을 위해 불리하기 때문에 많은 시간과 돈을 들여서 모두가 학위에 나섰고 그 결과 아마 오늘 세계 최대의 신학박사 학위 보유율을 기록하는 나라가 되었을 것입니다. <br/>: <br/>: 바로 이런 경향이 미국 내 백인 일색이었던 신학교들에 한인 학생들이 앉아 있는 비율을 급증 시킨 직접 배경입니다. 일본이나 중국에서 유학 온 분들보다 10여 배는 넘을 것입니다. 중국의 인구와 일본의 기독교 역사를 생각한다면 실로 엄청 난 발전입니다. 미국 안에서 미국 본토인들과 겨룰 정도니. <br/>: <br/>: - 좀 멀고 넓은 이유<br/>: 자기가 유학한 나라를 마구 강조하는 교수, 자기가 공부한 신학교를 마구 강조하는 박사, 자기가 공부한 지도 교수의 이름을 그렇게 반복하는 분들, 이런 분들은 자기 자랑이거나 자기의 영역 확장이거나 자기의 부족한 점을 메꾸려는 컴플렉스 때문입니다. 오늘의 한국도 이미 보수 정통 신학교로서 수준 높은 신학교들은 많습니다. 미국과 유럽에는 수천 년 동안 기독교가 국교였기 때문에 곳곳에 보수 정통의 신학교들은 많습니다. 어느 교단이라도 넓게 나갈 것인가 좁게 나갈 것인가 투쟁은 있는 법이고 그런 분쟁이 교회 역사에서는 없었던 적도 없었고 항상 세끼 밥 먹듯이 있으며 그런 분쟁이 있을 때마다 서로 자신들의 정통성을 주장하다 보면 그들에게서 직접 듣는 이들은 온 우주에 그들의 분쟁만이 신앙 분쟁의 전부인 줄 알고 그들이 옳다는 그 한 길만이 우리의 신앙의 전부인 줄 아는 착각에 빠집니다. 한국에는 웨스트민스터 신학교만 전부인 줄 아나 정작 미국 대부분의 교회는 그 학교 이름도 잘 모르는데... 1980년대에 고신대학과 합동의 총신대에 총장들이 우연히 카브난트 신학교 출신들이 들어 섰는데 이후부터 한국의 제일 보수라 주장하고 또 최대 교파인 두 교파에는 지방의 일반 집사님들까지도 카브난트 출신이라 하면 그렇게 어렵고 성경적이며 좋은 곳을 나왔냐고 인사를 하는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 신학교도 그 지방 사는 사람들도 잘 모르는데.<br/>: <br/>: 1985년인지 86년인지 5월에 김포공항을 통해 국내로 들어 오던 중 세관에서 제 짐을 조사하던 한 분이 성경 큰 것이 나오니까 볼 맨 소리로 한 마디를 툭 던졌습니다. 업무 때문에 제 짐만 보고 있었는지, 아니면 미친 듯이 미국으로 신학 가는 학생에게 침을 뱉는 욕설을 해 대는 판이니 차마 얼굴을 볼 수가 없었는지 짐을 뒤적이며 한 말입니다. 당시는 수입 규제가 많고 밀수가 많아서 짐 조사에 시간이 좀 걸릴 때였습니다. 짐을 조사하는 시점에 나온 말입니다.<br/>: '꼭 미국을 가야 신학을 합니까?'<br/>: '아뇨, 우리 나라에도 좋은 신학교와 교수들이 즐비합니다. 저는 다른 이유가 있어 구경 좀 갔습니다.' <br/>: 그 분은 갑자기 얼굴이 밝아 지면서 <br/>: '아이구, 그렇습니까? 어서 가십시오.'<br/>: 여기에 적기 민망한 몇 마디를 더 하면서 서둘러 그냥 보내 주어 시간 맞춰 잘 올 수 있었습니다. 그 분의 그런 말이 나온 배경을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그 세관이 바로 1984년에 당시 이 나라 최고의 교회라고 알려 진 교회의 담임 목사님의 해외 달러 밀반출을 잡아 냈던 곳입니다. 사건의 실제 내막은 정권의 종교계 손 보기라고 하지만 하필이면 그 교회의 그 분이었느냐는 문제를 가지고는 그냥 넘어 갈 문제는 아닙니다.<br/>: <br/>: - 세계 보수 신앙계<br/>: 미국은 그들의 인종적 사회적 국가적 배경에서부터 자유주의가 신앙을 휩쓸게 되어 있습니다. 유럽은 한 발 앞서 가게 되어 있습니다. 남아공이나 호주와 같은 소수의 골수 백인 사회조차 급격하게 자유주의 신학으로 쏠려 가고 있습니다. <br/>: <br/>: 바로 이런 시점에 한국 교회만은 아직도 막강한 보수주의의 외침이 살아 있습니다. 물론 민족사적 기질과 한국교회의 역사적 흐름을 본다면 어느 날 하루 아침에 돌변하리라 생각합니다. 단기간에 부흥처럼 단기간에 폭싹 내려 앉거나 단기간에 사상적 돌변이 마치 이 나라가 전쟁을 겪으며 반공에 철두철미하여 좌익은 숨도 쉴 수 없었던 나라였는데 하루아침에 이 나라가 좌익의 나라가 되어 맥아더 동산이 뚜드려 맞는 지경이 된 것을 생각하고 또 그 동안의 교회의 여러 중요한 변화를 보면 현재의 분위기가 그 반대로 돌변하는 데는 무슨 절차나 시간도 필요 없을 것으로 봅니다. <br/>: <br/>: 일단 그 날은 그 날이고 또 그 날이 이렇게 늦어 지는 것도 기이한 일입니다만, 오늘을 기준으로 본다면 한국의 보수신앙은 세계 전체의 교계 보수신앙과 비교할 때 단연히 돋보입니다. 세계 기독교의 외형적 물량적 역량적인 면과 함께 세계 기독교의 내부 흐름으로 볼 때도 신앙다운 신앙을 가진 면에서 세계 기독교의 중심이라고 하기에 주저할 것이 없습니다. 바로 이 이유 때문에 좌파에서는 국내 기독교의 보수신앙을 그대로 두고는 그들이 이룰 사회적 목적마저 지장이 있다 싶어 국내 좌익의 총공세가 국내 교회의 보수신앙을 향하고 있습니다. <br/>: <br/>: <br/>: <br/>: <br/>: <br/>: 4. 그런데도 미국으로 유학을 가야 하는가? <br/>: <br/>: 1) 이제 이 글의 결론을 향합니다. <br/>: 이 노선처럼 미국의 신학교로 유학을 보내는 이유가 배움이나 학위 취득에 있지 않고 견문에 있다면, 견문이야 넓을수록 좋은 것이니 그 대상이 어딘들 상관이 없습니다. 오히려 오늘까지 한국 교계가 목숨을 걸었던 미국의 신학교를 구경한다는 것은 이왕이면 가장 좋은 대상일 것입니다. 그러나 '배움'과 '학위 취득'의 명예를 두고 말한다면 이미 박사학위까지의 모든 신학 과정은 미국이나 유럽보다는 국내 신학교에서 공부하는 것이 낫다고 해야 할 시대입니다. <br/>: <br/>: <br/>: 2) 국내 신학이 해외 신학보다 나은 이유<br/>: <br/>: - 서울대 국문학과의 경우<br/>: 서울대 국문학과는 그 학문 분야를 놓고 볼 때 아주 특이한 권위를 가지고 있습니다. 모든 대학의 모든 전공과 비교해도 확연하게 구별이 됩니다. 무조건 최고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br/>: 한글은 한국에만 있습니다. <br/>: 한글의 국어국문학적 심층 전공은 기타 전공과 달리 한국인 외에는 거의 없습니다.<br/>: 최근까지 국내 고교생 중 가장 우수한 학생은 무조건 서울대를 제1순위로 두고 진학합니다.<br/>: 포항공대 카이스트 경찰대 육사도 우수하나 그들은 특목대이고 국문학과는 서울대뿐입니다.<br/>: 2위권인 연고대 국문학과 학생 중에 서울대 성적이 되는데 하향 지원하는 경우는 없습니다.<br/>: 태권도도 한국이 특별하지만 발차기와 달리 원어민적 이점 면에서 비교할 수 없습니다.<br/>: 서울대 국문학과는 그 폐쇄성이 유명합니다. 오로지 그들 제자만 기르는 정도입니다.<br/>: <br/>: 이런 이유 때문에 서울대 국문학과란 세계에 하나뿐 일 수밖에 없는 독보적 존재입니다. 서울대 국문학과 교수직이 20 명이면 30 년이 지나면 그 교수 20 명은 전부 은퇴를 합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20 명의 서울대 제자들이 스승의 자리를 대신합니다. 실력으로 보나 서울대의 폐쇄성으로 볼 때 또 한글의 특성으로 볼 때 서울대 국문학과 출신들 중에 가장 우수한 20 명이 그 자리를 대신할 것입니다. 지금 설명하고 싶은 것은 서울대 국문학과 학생 중에서 제일 우수한 학생들은 그들의 스승이 있던 자리를 대신해서 서울대 국문학과 교수들이 되어 다시 후배를 양성할 것입니다. 그런 과정을 통해 서울대 국문학과는 국어학에 있어 국내와 세계의 유일의 권위 있는 교육기관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br/>: <br/>: 만일 서울대 출신 학생 중에 가장 우수한 20 명을 뽑아 따로 대학을 만들면 서울대 국문학과와 경쟁일 될까? 또는 능가할 수 있을까? 포항공대나 카이스트가 과학 분야에서 서울대와 맞서는 그런 상황이 가능할 것입니다. 국내 신학이 서울대와 맞설 포항공대나 카이스트와 같은 환경을 이미 가지고 있는데도 아예 시도조차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유는? 사대주의 때문입니다. 크면 일단 기고 보는 노예 근성 때문입니다. 수요 때문에 공급이 휘둘리고 있는 상황입니다. 서울대의 이름 때문에 타 대학이 서울대와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처지로 내 몰렸지만 최근에는 서울대 이상의 인력을 확보해서 서울대와 곳곳에서 경쟁을 하고 있는데, 한국 교회는 이미 미국 신학교나 유럽의 신학교를 능가할 역량을 가지고도 제국 열강에 눌려 기를 써 볼 생각조차 하지 못한 바로 그 자세를 가지고 있습니다. <br/>: <br/>: -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의 경우<br/>: 한국에서 가장 대표적인 신학교로 알려 진 웨신을 거쳐 박사학위를 받은 학생들의 숫자는 통계를 잡을 수 없을 만큼 많습니다. 웨신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학생 또는 웨신에서 학부를 거친 다음 더 나은 곳으로 가서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 이들은 웨신에서 교수직을 맡을 수 있는 최소한의 자격을 갖춘 신학자들입니다. 그런데 웨신 출신 신학 박사를 100 명이라고 볼 때 그 100 명이 웨신 출신 박사 1000 명 중에서 하위 100 명이라고 한다면 웨신이 선발할 다음 세대 50 명 신학교수 중에 들어 갈 소지가 없습니다. 비록 개인 신상이어서 더 이상은 통계를 낼 수 없겠지만 한인의 학습력, 한인의 미국 내 각종 학교에서의 학습력으로 볼 때 이들은 상위권이지 중위권일 리는 없습니다. <br/>: <br/>: - 한인 학생들의 미국 신학교에서의 경쟁력<br/>: 현재 미국 내 한인 유학생들의 학습력은 거의 모든 분야에서 두각을 확실히 나타 내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미국의 역사와 역량을 직접 1:1로 비교하는 것은 턱도 없습니다. 그러나 신학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우선 한국의 교회는 장로교회가 주도권을 확실히 쥐고 있습니다. 한국의 장로교의 토양은 미국의 장로교의 토양과 비교할 때 단순한 수치에서부터 그 내용이 확실하게 우위에 있습니다. 미국은 침례교나 감리교의 나라입니다. 사회적으로 전반적 자유주의 사상이 주류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장로교 중심의 나라인데 그 중심은 강경 보수 정통 사상입니다. 미국의 장로교 교회에서 보수 정통 신학을 배워서 자유주의에 맞서겠다는 생각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과거부터 내려 오는 일반적인 추세 정도입니다. 그대신 한국 장로교회는 출구가 없어 신학을 택했든 자신은 자유주의자인데도 전체 흐름에 쏠려서 자기가 강경 보수라고 알고 활동하든 아니면 정말 특수한 은혜를 받아 세계 최고의 개혁주의 강경 보수자가 되고 싶어 출발했든, 이 나라에는 교계의 다수가 강경 보수 개혁주의 흐름입니다. 그들의 전부가 미국이나 해외 유명 신학교에서 학위를 받는 것입니다. 그들 중에는 이미 한국에서 최고의 학문을 거친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들 정도라면 미국이나 유럽의 신학교에서 학습력으로 말하면 우수생들이지 중위권이 아닙니다. <br/>: <br/>: 서울대 물리학과를 나온 총신대 출신 히브리어 교수분과 1985년에 함께 공부한 적이 있습니다. 이 분은 영어만 못할 뿐이지 목회를 하고 신학을 하게 된 동기에서부터 기초 학습력과 능력과 집중력에 이르기까지 그 신학교에서 우뚝 세울 제1인자였습니다. 문제는 영어가 모자라서 그들에게 그 우수성이 단기간에 표현이 되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신학이 한국의 국어국문학과처럼 한글만이 그 학문의 전부이며 본질이라면 애초부터 경쟁이 될 수 없겠지만 신학은 히브리어와 헬라어를 기초로 하고 라틴어를 매개로 하며 이후 모든 것은 신앙과 기본 학습력입니다. <br/>: <br/>: 신앙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어려우면 저절로 생기거나 아니면 유리한 환경입니다. 이런 이유로 지금 중국에서 제대로 믿으려는 이들은 초대교회적 은혜가 있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우리도 선교 초기에 그러했습니다. 그리고 교회의 발전에 따라 신학은 발전해도 신앙은 후퇴함을 우리가 더 잘 압니다. 같은 논리로 신앙 면을 가지고 따지려 한다면 미국과 유럽의 신학교나 교회는 우리 나라와 비교하지 못할 만큼 얕습니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학습력인데 학습력으로 말하면 우리는 유럽과 미국을 능가하거나 견줄 수 있습니다. 특히 신학은 이미 미국과 유럽에서 가장 우수한 인재들이 몰렸던 옛날과 달리 그들 세계에서 대부분 학습력으로 뒤 쳐지는 이들이 오는 곳입니다. 특히 유태인들처럼 학습력에 있어 모든 방면에서 우수한 이들이 의학 법학 예술 문학 경제 등 뻗치지 않은 곳이 없는데 기독교 신학교에는 그들이 전무하다 시피 합니다. <br/>: <br/>: - 이제 결론적으로 말하면<br/>: 영어를 가지고 말을 하게 되면 우리가 반벙어리 내지는 벙어리 수준이 되어 그들이 볼 때 우리는 바보 비슷합니다. 그러나 신학을 두고 말한다면 우리는 그렇지 않습니다. 한글을 공부하고 싶은 사람에게 서울대 국어국문학과가 가진 권위처럼 신학을 하는 데도 미국의 신학교가 그런 권위를 가지고 있을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나라 신학교에서 신학을 하려면 미국 신학생들은 공부가 불가능할 것이고, 미국 신학교에서 우리 신학생들이 신학 공부를 하려면 갖은 불편에도 불구하고 해 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신학에서 '영어'란 신학에서 '한글'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습니다. 둘 다 함께 소수 소외 언어권입니다. <br/>: <br/>: 개혁주의 신학은 독일과 스위스에서 시작이 되었습니다. 그 발원은 라틴어로 전해 내려 오고 있습니다. 독일과 스위스는 신앙의 흔적도 찾기 어려운 정도입니다. 박물관의 유적 차원입니다. 그래도 네델란드 영국 미국 한국 이런 곳이 보수 강경 개혁주의들이 있는 곳입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개혁교회가 시작 된 곳과 비교할 때 다 함께 외국입니다. 칼빈 이후에는 신학에 발전이란 거의 없고 전부가 칼빈의 해석학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적어도 영어로 말하는 것은 불편해도 영어로 읽고 쓰는 것은 신학을 두고 별 불편이 없습니다. 또한 우리에게는 이제 미국에서 영어를 원어민으로 사용하며 한글을 잘 아는 신학생들을 엄청 나게 보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타 분야와 달리 미국에서 가장 성공한 한인 목사나 교수들이 한국교회가 부른다면 교회와 신학 방면에서는 한국의 위상이 너무나 크기 때문에 서슴치 않고 달려 옵니다. 지금 국내 초대형교회들의 후임들은 한결같이 미국에서 최고의 대우를 받으며 한인교회들을 맡아 성공적으로 수행했던 인물들입니다. 다른 분야와 달리 교회만은 한국의 위상이 미국을 넘어 서고 있기 때문에 초청만 하면 바로 오고 있습니다. <br/>: <br/>: - 미국을 능가할 한국 신학<br/>: 이미 한국 교회가 보유하고 있는 미국 내 신학박사 학위들과 그 공부를 해 낸 분들의 학습력 연구력은 '영어'를 매개로 펼치는 조건만 아니면 미국 신학교 교수들과 이미 수십 년 전에 미국에서 공부할 때 학문적으로는 더 앞섰던 분들이 즐비합니다. 한국에서 한국 목사들과 한국 신학자들을 상대로 한글로 신앙과 신학을 가르치면 '절대로!' 안 되는 것일까. 어떻게 이 기막힌 주제가 제시 되기까지 우리는 그렇게 내려 왔는지 탄식입니다. <br/>: <br/>: 한국 신학교에서 영어로 신학 강좌를 하거나 할 수 있거나 아니면 영어로 공부를 하고 온 사람은 모두가 최고의 학자로 인식이 되어 지고, 한국에서 한글로 신학을 배우고 신학자가 되고 신학을 한다고 하면 모두 내리 깔고 보는 것일까? 바로 이 인식 때문에 모두가 미국으로 유럽으로 해외로 나가 놓고 봅니다. 그리고 국내에서 활동할 때 해외 박사학위와 출신 신학교를 자랑스럽게 적어 놓고 있습니다. <br/>: <br/>: 이제 우리의 인식을 바꾸어, 2012년 지금부터 한국 교단 전부가 한국의 신학교에서만 신학공부를 하도록 만들어 놓을 수 있다면 그렇게 된다면 한국의 신학교는 이미 역량 면에서도 충분하고 또 밀려 드는 우수 학생들이 있다면 그 열기는 단숨에 미국 신학교와 수평 비교하며 능가할 것입니다. 미국 신학교의 교단 지원과 한국 신학교의 교단 지원은 각 신학교의 배경이 되는 교단의 결집력과 역량에 있어 한국이 훨씬 낫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장로교 교단들 안에도 이미 다수의 한인교회들이 비중 있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미국의 교단 내부를 잘 읽고 있습니다. <br/>: <br/>: <br/>: 3) 안타까운 것은<br/>: <br/>: 생각만 바꾸면 모든 현실적 여건은 넘치는데도 그 생각을 바꿀 마음조차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 한국의 각 신학교에서 교수로 근무하는 이들이 자기가 공부했던 곳에서 자기 동료 학생들과 비교할 때 학습력과 신앙에 있어 제일 앞섰다고 자신감을 가진 이들이 한국으로 돌아 와서 자기 학생들에게 내게 배워도 해외 유학을 가서 배울 그 학교에서 얻을 것보다 실효적으로 많고 좋다는 것을 자신 있게 말하지를 않고 있고 못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해외에서 유력 교수 밑에서 배워 왔다는 것만 강조하고 있습니다. 물론 자기가 직접 배운 그 노 교수와 자기를 비교한다면 한국에서 강의하는 교수들이 그 교수들에 미치지 못할 것이나 그 교수와 함께 공부를 했던 그 곳의 학생과 자기를 비교하면 자기가 낫지 못할 것이 없는데, 그리고 세월이 지나 동료 학생이 그 학교의 교수가 되고 자기는 귀국하여 한국에서 신학을 가르치고 있는데 자기 생각에 자기가 그 동료 학생이 교수가 된 그 해외 신학교의 강좌보다 더 잘 가르칠 수가 있는데도 왜 그런 말을 하는 교수 이야기를 들어 볼 수가 없을까?<br/>: <br/>: 감히 미국과 네델란드의 어느 신학교를 두고 한국의 어느 교수가 내 강좌가 그 쪽보다 더 낫다 하게 된다면 아주 바보가 될 분위기, 그 분위기 때문에 입을 벌리지 못하고 있을 것입니다. 물론 이 노선의 총공회 내의 정통파들은 미국에 가 봐야 배울 필요 없는 것만 배워 오고 배워야 할 것은 배우지 못할 것이며, 여기서 배우는 것이 거기서 배우는 것보다 배워야 할 것을 기준으로 본다면 많고 낫고 뛰어 나니 갈 것도 없다는 입장을 명확하게 하고 있습니다. <br/>: <br/>: 공회만 그러할까? 공회만 그렇게 되어야 할까? 제 생각에는 미국과 유럽에 비해 탁월하게 낫지는 않을지라도 경쟁력은 충분히 있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교계에서 해외로 내 보낸 학자들 중에는 너무나 우수한 분들이 많았고 그들이 모여 가르치는 신학교라면 확실하게 대등하게 어깨를 겨룰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ㄴ의 외국어, 그 중에서도 영어, 그 것만 들고 나오면 그 말로 말하면서 밀리면 신학이 밀리고 신앙이 밀리고 천국까지 불리하고 소외가 된다고 생각하여 움츠려 드는 이 반도숙명론자들, 노예근성에 빠진 이들, 옛사람의 구습에서 헤어날 생각도 하지 못하는 한국의 신학자들의 사고방식에 탄식을 가집니다. <br/>: <br/>: <br/>: <br/>: 미국의 신학교에 넘쳐 나는 한인 학생들을 보면서<br/>: 이제는 한국 신학이 미국 신학을 능가할 때인데도<br/>: 여전히 미국이 천국이며 그 신학이 신앙인 줄 아는<br/>: 한국 교회와 총공회 서부교인들을 향해 탄식하면서<br/>: <br/>: </mo></br></br></b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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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단에서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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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글..
03.04
여호와여 나를 살피시고 시험하사 내 뜻과 내 마음을 단련하소서
03.04
내가 나의 완전함에 행하였사오며 요동치 아니하고 여호와를 의지하였사오니 여호와여 나를 판단하소서
03.04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려니와 무고히 속이는 자는 수치를 당하리이다
03.04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의지하였사오니 나로 부끄럽지 않게 하시고 나의 원수로 나를 이기어 개가를 부르지 못하게 하소서
03.04
여호와여 나의 영혼이 주를 우러러 보나이다
03.03
내 나이 이제 팔십세라 어떻게 좋고 흉한 것을 분간할 수 있사오며 음식의 맛을 알 수 있사오리이까 어떻게 다시 노래하는 남자나 여인의 소리를 알아 들을 수 있사오리이까 어찌하여 종이 내 ?
03.02
여호와께서 그 터를 바다 위에 세우심이여 강들 위에 건설하셨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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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댓글
공회교인
7시간전
참 감사할 일입니다. 그저 고맙고 감사할 뿐입니다
ysha
7시간전
저도 그 사모님이 그립습니다.
교인
7시간전
목사님, 늘 변함없이 칠흑같은 바다를 비추어지눈 등대처럼 바른 길로 인도해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늘 건강하시…
황선욱
7시간전
'성자'라는 표현은 쓰지 않는 것이 좋다고 봅니다. 말 그대로 '거룩할 성'이므로, 사람에게 쓰는 것은 좋지…
13.11.02
12.21
이 노선의 우리가 지켜 볼 이유와 사연이 있는 볼리비아 선교회 고광문 목사님이 보내 온 소식입니다. '선교'…
서기
03.18
공개 완료
성도A
03.16
31절에서34절말씀주해요망
St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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