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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희 신앙노선의 오늘을 고민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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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p></p><p></p><br/>1. 서부교회 예배당<br><br>건물 중앙에 돌출 된 부분의 뒤 쪽이 1870년에 건축한 현재 서부교회 예배당의 원래 본당 뒤 부분입니다. 중앙에 나온 부분은 1층이 주일학교 서기실, 창문이 두 개 보이는 2층에는 목회연구소의 전신인 편집실이 1982년부터 88년까지 있었는데 그 전에는 교회 연장 창고로 사용 되었습니다. 창문이 3 개가 보이는 곳은 사생활을 포기하고 평생 교회의 전도인으로 일한 나인숙 김현찬 김효순 등의 초기 구역장님 3 명들의 방 한 칸들이 있었습니다. 그 위의 옥상은 교회 장독대이고 사진의 왼 쪽으로 나온 부분은 본당에 사람들이 많아 져서 1 977년에 교회 북 쪽으로 늘린 별관입니다. 사진의 25 인 승 차량이 선 부분은 1988년까지 백 목사님의 사모님이 사용하던 2층 단독 주택이 있었습니다. <br><br><img border="1" height="600" src="http://paikist.net/ftp/album2/공회/역사지/서부교회예배당.JPG" style="border-color:black;" width="800"/><br><br><br><br>2. 서부교회 본당 1층 입구<br><br>서부교회 주일학교는 3천 명이 출석하던 때까지는 1층에서만 진행했습니다. 그러나 2천 3천 4천을 지나 8,500 명까지 폭증을 하게 되는데 3천 명 정도 선에서 더 이상 앉을 자리가 없어 2층 본당에는 여반사 반이 그리고 1층에는 남반사 반이 따로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현재 입구는 예전 그 모습 그대로입니다. 육중한 철문을 열고 들어 가면 현관도 없이 바로 학생들이 촘촘히 다 앉았습니다. 보이는 창문에 1 인용 작은 책상 하나가 서기 자리고 모든 창문은 그 창문을 열면 바로 주일학생들의 머리였고 빈 곳이 없었습니다. <br><br><img border="1" height="600" src="http://paikist.net/ftp/album2/공회/역사지/서부교회1층입구.JPG" style="border-color:black;" width="800"/><br><br/><br/><br/>3. 1층 강단<br/><br/>지금은 강단이 두 단으로 되어 있고 장식목으로 되어 있었으나 예전은 아래 한 단의 높이가 전부였습니다. 마루로만 계속해 오다가 비가 오게 되면 신발장 하나 없는 전체 예배당 마루가 엉망이어서 신발을 신고 들어 오게 했습니다. 1980년대 중반입니다. 2층으로 여반사 반들이 나눈 후에도 주교 오후예배나 새벽예배는 모두 1층에서 드렸습니다. <br/><br/><img border="1" height="600" src="http://paikist.net/ftp/album2/공회/역사지/크기변환_서부1층강단.JPG" style="border-color:black;" width="800"/><br/><br/><br/><br/>4. 1층 강단에서 본 북 쪽 남반 별관 예배당<br/><br/>강단에서 보면 바로 보이게 했습니다. 일반 대형 교회들은 의자 배치가 널찍하여 같은 면적에 서부교회와 출석 인원이 비교 되지 않습니다. <br/><br/><img border="1" height="600" src="http://paikist.net/ftp/album2/공회/역사지/서부1층남쪽.JPG" style="border-color:black;" width="800"/><br/><br/><br/><br/><br/>5. 2층 본관<br/><br/>아래 강단을 앞으로 많이 늘였고 강단 전체를 무늬목으로 둘렀습니다. 백 목사님 생전에는 강단 자체가 도끼다시라는 돌세멘트로만 되었습니다. 상하 강단은 서부교회 개척 때부터 사용하던 과거 그대로이며 위 강단의 양 옆으로 비껴 진 부분은 백 목사님이 다리가 불편하여 설교를 앉아서 하시게 되면서 옆 모습을 가루기 위해 설치한 것입니다. 그리고 앉고 일어 서기가 불편하게 되어 사회석을 따로 설치하게 됩니다. 예배당의 건축 구조물을 설명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강단의 오른 쪽에는 찬양할 때 오케스트라가 앉는 좌석이었습니다. <br/><br/><img border="1" src="http://paikist.net/ftp/album2/공회/역사지/크기변환_서부2층강단.JPG" style="border-color:black;"/><br/><br/><br/><br/>6. 3층<br/><br/>과거 2층의 본관을 내려다 볼 수 있도록 3층은 예배를 드리는 중간층이었습니다. 그러나 좌석이 비좁게 되어 1층 전체를 좌석으로 사용하게 되면서 3층은 주일학교를 위해 사용했고 백 목사님 사후 2층과 4층의 분리 예배 후에는 2층의 중간반 예배를 위해 꾸며 진 공간이 되었습니다. <br/><br/><img border="1" height="600" src="http://paikist.net/ftp/album2/공회/역사지/서부3층.JPG" style="border-color:black;" width="800"/><br/><br/><br/><br/>7. 2층 측문 바깥<br/><br/>2층 본당의 남반 쪽 측문을 열고 나오면 백 목사님이 생활하시는 5층으로 올라 가는 계단이 나오고 그 좁은 곳에 큰 연보궤가 있습니다. 원래 합판으로 둘러 놓고 위에는 비워 두어 누구든지 쉽게 연보를 넣고 가게 했는데 어린 아이들을 절도에 사용하는 전문 털이범들이 연보궤 안에 아이들을 들여 보내어 훔치는 일이 있어 그후 위 뚜껑을 닫았습니다. 지금은 많이 발전을 한 것 같습니다. <br/>왼 쪽으로 보이는 창문이 서부교회 안에 있던 목회연구소 전신인 편집실 사무실입니다. 이 창문은 특히 소장 목사님이 새벽예배가 끝나면 바로 그 날 설교 말씀을 타이핑하던 곳입니다. 한 페이지씩 타이핑이 나오면 바로 그 자리에서 교정을 보며 1982년 10월부터 저는 꿈 같은 세월을 이 곳에서 보냈습니다. <br/>그리고 백 목사님께 여쭙고 싶은 매 예배 뒤에 이 측문 옆에 서 있다가 제가 궁금한 성경과 교리와 공회 운영과 제 사생활까지 모든 것을 마음껏 문의 드릴 수 있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받아 적든지 아니면 말씀이 끝나면 바로 옮겨 적고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지금 이 홈의 /연구실/문의답변/이나 /쉬운문답/ 게시판의 모든 답변은 당시 질문하며 배운 내용을 그 분 사후 이 노선을 사모하는 분들께 그대로 전해 드리고 있습니다. 이 홈의 당시 문답방이었습니다. 참으로 당황스러웠던 것은 그 수 많은 교인과 전국의 목회자와 공회 노선의 모든 분들이 왜 백 목사님께 질문을 하지 않았던가? 그렇게 잘 아셨던가?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전혀 아는 것이 없는데 왜 그 분께 여쭙지 않았던가? 지도자가 필요 없고 본인들이 스스로 다 지도자였던가? 저는 아는 것이 없어 늘 여기 서서 여쭈었고 그 결과 오늘 제가 걸어 갈 정도로 필요한 것은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었던 곳이어서 제게는 가장 소중한 곳입니다. <br/><br/><img border="1" height="600" src="http://paikist.net/ftp/album2/공회/역사지/크기변환_서부2층측문.JPG" style="border-color:black;" width="800"/><br/><br/><br/><br/><br/>8. 전임 구역장 방<br/><br/>왼 쪽의 문이 예전 문 그대로이고 중앙의 문은 바뀌었고 오른 쪽 문은 보이지 않습니다. 오른 쪽이 나인숙 권사님 방이었습니다. 2층 본당 측문에서 5층으로 올라 가던 계단 중간에 있습니다. <br/><br/><img border="1" height="600" src="http://paikist.net/ftp/album2/공회/역사지/크기변환_서부2층쪽방.JPG" style="border-color:black;" width="800"/><br/><br/><br/><br/><br/>9. 5층 계단<br/><br/>4층에는 중간반 예배당이 있고 지금 보이는 계단은 5층으로 올라 가는 계단입니다. 계단 끝에 보이는 문이 5층 대문입니다. 이 문을 열면 목사님 혼자 계시는 공간입니다. 사전 약속이나 허락 없이 올라 갈 수 있는 분은 가족 한 두 분, 청소나 식사를 맡은 몇 분이고 그 외에 업무상 목사님을 뵐 수 있는 몇 분이 전부였습니다. 이 영광스런 입장에 설 수 있었다는 사실, 그 하나만으로도 늘 감격합니다. 오늘 이 홈을 운영하는 이유는 그 때 배우고 그 때 받은 그 감동을 혼자 가지고 있다면 천하를 훔친 도적일 것이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br/><br/><img border="1" height="600" src="http://paikist.net/ftp/album2/공회/역사지/크기변환_서부5층계단.JPG" style="border-color:black;" width="800"/><br/><br/><br/><br/><br/><br/><br/><br/><br/><b>(설명이 계속 이어 질 예정입니다.)</b><br/><br/><br/><br/><br/><br/>10. 5층 입구<br/><br/><img border="1" height="600" src="http://paikist.net/ftp/album2/공회/역사지/크기변환_서부5층계단상.JPG" style="border-color:black;" width="800"/><br/><br/><br/><br/><br/>11. 서부교회 행정실(좌), 총공회 양성원(중), 서부교회 사택 부속 건물(우)<br/><br/><img border="1" height="600" src="http://paikist.net/ftp/album2/공회/역사지/크기변환_양성원.서부부속.행정실.JPG" style="border-color:black;" width="800"/><br/><br/><br/><br/>12. 총공회 양성원<br/><br/><img border="1" height="600" src="http://paikist.net/ftp/album2/공회/역사지/양성원.서부부속.JPG" style="border-color:black;" width="800"/><br/><br/><br/><br/><br/>13. 서부교회 주변 - 5층에서 본 구덕산 <br/><br/><img border="1" height="600" src="http://paikist.net/ftp/album2/공회/역사지/크기변환_동대산복.5층에서.JPG" style="border-color:black;" width="800"/><br/><br/><br/><br/><br/><br/>14. 서부교회와 아미동 산복도로 - 동대신 산복도로에서 <br/><br/><img border="1" height="600" src="http://paikist.net/ftp/album2/공회/역사지/산복.아미.JPG" style="border-color:black;" width="800"/><br/><br/><br/><br/>15. 서부교회와 대티고개 - 동대신동 산복도로에서<br/><br/><img border="1" height="600" src="http://paikist.net/ftp/album2/공회/역사지/서부주변.아미쪽.JPG" style="border-color:black;" width="800"/><br/><br/><br/><img border="1" height="600" src="http://paikist.net/ftp/album2/공회/역사지/서부주변.대티쪽.JPG" style="border-color:black;" width="800"/><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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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백영희신앙노선'총괄(요약)
②'백영희신앙노선'총괄(전체)
③교리정리
④성경신학
⑤문답방정리
⑥기타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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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언/주제연구
연경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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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자료
남단에서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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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4
여호와여 나를 살피시고 시험하사 내 뜻과 내 마음을 단련하소서
03.04
내가 나의 완전함에 행하였사오며 요동치 아니하고 여호와를 의지하였사오니 여호와여 나를 판단하소서
03.04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려니와 무고히 속이는 자는 수치를 당하리이다
03.04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의지하였사오니 나로 부끄럽지 않게 하시고 나의 원수로 나를 이기어 개가를 부르지 못하게 하소서
03.04
여호와여 나의 영혼이 주를 우러러 보나이다
03.03
내 나이 이제 팔십세라 어떻게 좋고 흉한 것을 분간할 수 있사오며 음식의 맛을 알 수 있사오리이까 어떻게 다시 노래하는 남자나 여인의 소리를 알아 들을 수 있사오리이까 어찌하여 종이 내 ?
03.02
여호와께서 그 터를 바다 위에 세우심이여 강들 위에 건설하셨도다
+
새댓글
공회교인
6시간전
참 감사할 일입니다. 그저 고맙고 감사할 뿐입니다
ysha
6시간전
저도 그 사모님이 그립습니다.
교인
7시간전
목사님, 늘 변함없이 칠흑같은 바다를 비추어지눈 등대처럼 바른 길로 인도해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늘 건강하시…
황선욱
7시간전
'성자'라는 표현은 쓰지 않는 것이 좋다고 봅니다. 말 그대로 '거룩할 성'이므로, 사람에게 쓰는 것은 좋지…
13.11.02
12.21
이 노선의 우리가 지켜 볼 이유와 사연이 있는 볼리비아 선교회 고광문 목사님이 보내 온 소식입니다. '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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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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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A
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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