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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희 신앙노선의 오늘을 고민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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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p></p><p></p><br/>출처: /총공회/문답/230번<br>------------------------<br><br><br><br><b>(질문) 장로님의 사회권 제한에 대해</b><br><br><br>주일 예배시 일반적으로 장로님이 사회를 봅니다. <br>서부교회에 현재 사회를 보지 않고 계신 장로님이 두 분 계십니다. 원래 세 분인데 한 분은 전라도 지역으로 목회를 가셔서 지금은 교회에 계시지 않습니다.<br><br>이곳 답변자님도 알고계시리라 생각이 됩니다만 <br>사회를 보지 않은 두 분중에 한 분은 중소기업을 운영하고 주일학교 1층 부장선생님을 맡고 계십니다. 그 분의 설교를 들으면 은혜도 대고 교훈에 대해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이 듭니다. <br><br/>또 다른 한 분은 <br/>제가 역이나 터미널 근처에서 전도지를 전하는 것을 많이 보았습니다. 전도에 열심이 있고 설교록을 많이 읽는 것 같습니다.<br/><br/>두 분에 대한 예배시 사회를 보지 않게하는 것은 현 목사님과 반대되는 입장을 보이셔서 그런 것 같은데 구체적인 이유가 무었인지요?<br/><br/>그리고 본인이 원해서 사회를 보지 않으면 할 수 없지만 강제로 사회를 금하는 것이 총공회 교훈에 합당한지요? <br/><br/><br/><br/><b>(답변) 서부교회 장로님의 사회 문제</b><br/><br/><br/>1.예배 사회<br/><br/>①‘순서’로 본, 백영희신앙노선의 예배 모범<br/><br/>(예배시간의 진행 모습)<br/>총공회의 예배 진행은 대체로 이런 모습입니다. 예배를 인도할 사람이 강단에 서면, 예배 은혜를 구하는 기도를 잠깐 하고 찬송을 한 두 장 부른 다음 그 날 전할 말씀을 성령의 감동을 따라 조심스럽게 전한 다음, 그 날 받은 말씀 내용을 생각하며 찬송으로 감사하고 기도로 각오한 뒤 예배를 마칩니다. <br/><br/>(예배시간의 뒷부분)<br/>예배 후 자기 일정에 따라 그 날 받은 말씀을 그 자리에서 더 깊이 새기고 가기 위해 충분히 기도하는 분도 계시고, 또 예배 후 바쁜 일정이 있으면 말씀을 새기는 시간은 마음 속에서 계속되도록 하고 몸은 예배당을 먼저 뜨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리고 다음 예배까지는 그 전 시간에 받은 말씀이 모든 생활과 행동의 주동력이 됩니다. <br/><br/>(전 생활은 확대된 예배시간) <br/>백영희신앙노선의 예배 모범은, 예배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예배시간 내의 순서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고, 그 이전 예배 시간 이후 이번 예배시간까지를 예배 모범의 앞 부분으로 포함시키고, 또 이번 예배 시간 이후 다음 예배시간까지를 예배의 뒷부분으로 포함하고 있습니다. 예배의 범위를 이렇게 잡는 것은, 신학교과서의 이론적 설명에 그치지 않고 정상적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모든 교인들에게 실제 상황이 되게 합니다. <br/><br/>(굳이 예배시간의 순서를 제시한다면)<br/>-----------------------------<br/>。준비<br/> 기도: 묵도나 대표기도<br/> 찬송: 1-2장 예배찬송<br/>。말씀<br/>기도: 말씀 준비 각자 기도<br/>말씀: 본문 중심 말씀 증거<br/>。종료<br/>기도: 각자 말씀 새김 기도<br/>찬송: 1장 정도 마침 기도<br/>-----------------------------<br/>*광고는 미리 최소한의 분량으로 적어 두었다가 간단하게 읽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br/>*기도나 찬송은 예배 전체에서 1차례 이상은 하되, 말씀 받을 준비가 되었다면 최소화<br/>*위에 순서는 주일예배 표준, 밤예배는 예배 후반부의 기도 찬송을 가능하면 생략<br/><br/><br/>②예배 진행자의 숫자로 본, 백영희신앙노선의 예배 모범<br/><br/>(예배 진행자의 숫자)<br/>보통 예배 진행에 관련된 인원을 생각해 본다면 설교자, 사회자, 찬송인도자, 반주자, 찬양대, 광고담당 등이 있습니다. 예배순서에 대한 일반인들의 생각은 예배 진행자들이 많을수록 예배가 장엄하고 조직적이며 일사분란하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또 그런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해 강단이나 예배당 안팎의 장식까지도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br/><br/>목회자의 서툰 찬송가보다 찬송 전문가의 음향이 교인들의 심금을 울려서 예배 은혜를 재촉하기도 하고, 또 사회자가 통성기도 시간에 간곡한 기도가 터져 나오도록 적절히 자극을 하게 되면 순간적으로 예배당은 서로의 엉켜진 목소리가 상승작용을 일으키게 됩니다. 이렇게 예배를 구약의 장중했던 제사 모습을 떠올릴 수 있도록 외형을 맞추게 되면, 접촉하는 가운데 심리적 영향을 받게 되는 원리 때문에 예배 분위기는 분명히 좋아지게 됩니다. <br/><br/>(단독 진행의 원칙)<br/>그러나 백목사님의 예배인도는 원래 여러 사람이 복잡하게 강단을 오르내리며 순서를 나누어 맡는 것은 지양하는 편입니다. 외부 초청 강사가 있거나 어린 교인을 기르기 위해 혹시 다른 순서자들을 사용하는 경우는 있어도 예배를 격식에 따라 하는 일은 피하는 편입니다. <br/><br/>따라서 과거 백목사님의 예배 인도 모습을 가장 평범하게 볼 수 있었던 분들은 대개 백목사님 혼자 강단에서 조용히 예배 순서를 전부 진행하는 것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이런 현상은 공회 소속 교회들의 과거 예배 모습에서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br/><br/>(사회자를 세우는 문제)<br/>사실 찬송인도나 반주는 목회자의 음조절이나 음색에 장애가 있을 때 또는 교인들의 전반적 찬송 수준이 평균 이하일 때는 예배 진행자의 단순화에도 불구하고 별도의 의미를 가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첫음을 제대로 맞추지 못해서 높은 곳에서 찬송이 끊어진다든지 아니면 찬송의 곡이 엇갈려 방향조차 잡지 못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br/><br/>이에 비하여 사회를 세우는 문제는 설교를 하는 사람이 사회를 따로 세울 필요는 거의 느끼지를 못합니다. 예배의 각 순서를 불러주는 정도가 사회자의 할 일이기 때문에 찬송 문제와 달리 사회자를 세우는 것은 예배의 격식이나 외향 위주에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즉, 설교자는 사회자를 세워서 설교자의 주변을 장식하고 자기는 주인공으로 입장하는 연출의 개념까지 고려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br/><br/>(단독의 원칙)<br/>백영희신앙노선의 예배는 근본적으로 치장, 장식, 연출과 같은 설교자 높이기 개념이 개입 될 여지가 없습니다. 내가 죽고, 날 대신 죽으신 주님으로만 살겠다는 교훈이 말에만 그치지 않고 설교를 맡은 목회자 자신 먼저 자신을 치기 때문입니다. 고개를 치켜들고 강단에서 교인들을 밑으로 휘둘러보는 자세가 아니라, 아직도 마저 죽이지 못한 자기 속의 자기중심이 머리를 치켜들까 해서 이를 내리 누르는 긴장 속에 강단에 서게 됩니다. <br/><br/>말로만 부족한 것이 아니고 진정 부족하기 때문에 여러 사람의 시중을 받아가며 강단의 지배자가 될 가능성도 없는 것이 공회의 예배 설교자입니다. 따라서 다른 사람이 순서 진행을 돕지 않으면 예배 자체에 문제가 있거나 아니면 절박한 다른 필요성이 없는 이상, 강단은 혼자 맡는 것이 공회 예배의 자연스런 모습입니다. <br/><br/><br/>2.백목사님의 서부교회 예배 사회<br/><br/>①백목사님의 초창기 모습의 의미<br/><br/>백목사님이 걸어간 걸음은 이 신앙노선을 걸어가는 이들에게는 항상 연구와 참고 사항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주의할 것은 백목사님의 목회는 서부교회 초창기와 중기 그리고 그 후기로 나누어 각자 어느 단계를 참고하는 것이 실제 필요한 지 살펴봐야 합니다. 예를 들면 세계 10대 교회 규모였던 백목사님의 80세 모습을 오늘 시골교회 젊은 교역자가 자기 예배 인도에 참고로 삼는다면 너무 부자연스러울 것입니다. <br/><br/>40명 교인으로 시작해서 수백명 교회로 올라가던 1950년대의 모습이 오늘 거의 모든 총공회 노선에 있는 우리들에게 참고될 모습일 것입니다. 그리고 재적 수만명 교인을 거느리던 그 훗날의 모습은 앞으로 우리가 초대형교회를 목회하게 될 때 참고해야 할 듯 합니다. 그렇다면, 백목사님의 초창기 모습은 혼자 조용히 예배 인도를 하는 것입니다. <br/><br/><br/>②서부교회에 장로를 세운 것은 부임 후 약 20년 만입니다. <br/><br/>백목사님은 일반 장로교에서 생각하는 ‘장로’와 전혀 다른 개념의 ‘장로’를 정립시켰습니다. 마치 일본의 ‘총리’와 우리나라의 ‘총리’는 이름은 같아도 그 위치와 역할이 전혀 다른 것과 같습니다. 만일 총공회의 ‘장로’님들이 장로교의 당회 노회를 구성하는 ‘장로권’을 요구하려면 그 장로교가 요구하는 형태의 장로 자격증을 새로 받도록 요건을 구비하고 시험을 쳐야 할 것입니다. <br/><br/>일반 교회의 장로라는 개념을 비성경적이라고 비판했기 때문에 백목사님은 20여년을 장로 한 사람 없이 서부교회를 목회했으나 주변 이웃 교회에서 대형화 되는 교회에 장로가 단 한 사람도 없다면 목회자가 교인의 견제도 없이 비리를 저지른다는 비판이 있을 때 이를 해명하기 어렵다고 보아, 어린 교인을 기를 겸 또 주변의 불필요한 주목을 가릴 겸, 겸사해서 1973년에야 장로님을 한 분 세우게 됩니다. <br/><br/>40여명 교인의 1952년에 부임한 백목사님이 1973년에 이르게 되면 부산 최대 교회가 되면서 1천명 단위 대형교회로 성장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갑작스럽게 외부에 부각이 되자 장로님을 한 사람 세웁니다. 신앙과 실력으로 담임목사와 견줄 차원이 아니고 서부교회의 여러 구역 중에 한 남자 식구 정도이면서 교회 내부 분위기를 잘 파악하여 백목사님 목회에 도움 될 정도의 분을 하나 지목한 것입니다. 세상 실력 경제 학벌 등을 위주로 선출한 것이 아닙니다. <br/><br/><br/>③서부교회의 예배 사회<br/><br/>서부교회가 이제 도저히 숨으래야 숨을 수 없도록 고속 성장하며 교계에서 그 역할과 비중이 뚜렷하게 자리를 잡게 되자 장로님들의 숫자도 10여명을 넘기게 되고 앞서 배수윤목사님이나 이동근목사님과 같이 기존 특별 목적으로 사회를 세우던 분들에 더하여 장로님으로 임명받은 이들에게 신앙 전념과 장래 목회 지도 등 여러 목적을 두고 사회를 돌아가며 시키게 됩니다. <br/><br/>약간 기록 착오는 있을 수 있겠으나 대충 살펴본다면 1973년에 이동근장로님, 1980년에 김기수 강상영 손성준 이춘영 백도광 박영태장로님, 1982년에 정순환 홍종복 성정수 주덕원 이창수장로님이 각각 안수를 받아 서부교회에 12명이나 되는 많은 장로님들을 세우게 됩니다. 이때쯤에는 주일학교 때문에 전국적 집중을 한꺼번에 받고 있었기 때문에 장로님들의 숫자가 1-2명밖에 없다면 교계에 대단히 큰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되고 그리되면 해명할 시간과 오해로 인한 손실이 뚜렷하게 됩니다. <br/><br/>그래서 장로님들이 교회를 주도하는 장로교 탈선의 주요 원인을 막으면서 외부에는 오해가 없도록 하고 그러면서도 이왕이면 장로로 세우는 이들을 앞으로 목회로 내보낼 소망 등을 가지게 되자 이 분들에게 사회를 돌아가면서 하도록 합니다. 백목사님이 설교를 하는 강단에 사회를 선다는 것은 그 순서를 앞두고 준비하는 이들은 시험날자 받아둔 학생들만큼이나 장기간 긴장을 하게 되어, 그들 자신의 신앙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백목사님 손으로 마지막 세우고 가신 장로님들로는 1987년 구의남 서문행장로님, 1989년 이상원장로님이 마지막입니다. <br/><br/><br/>3.질문하신 현 서부교회의 반대측 장로님 두분의 사회 배제 문제<br/><br/>①결론적으로, 서부교회 예배 사회는 장로님들의 사회권이라는 시각으로 볼 수 없습니다. <br/><br/>그렇지만 1989년 8월 백목사님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시자, 교회는 바로 그 다음 주간에 시작 된 교역자회의에서 서부교회 장로님들이 서부교회 원래 장립한 성격의 장로가 아니라 일반 장로교의 당회 구성원으로서 가지는 장로권을 들고 나오는 기막힌 상황을 접하게 됩니다. <br/><br/>그렇게 가르치고 눌러 놓았지만, 백목사님 눈 감은 1주간 만에 서부교회는 장로교이므로 장로권은 교회 운영의 절대 주체라는 논리였는데, 그분들은 서부교회 간판 앞에 붙어 있는 ‘장로교’만 보았지 그 다음에 붙어 있는 ‘총공회’는 아무리 봐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후 장로님들은 따로 회집을 해서 ‘장로교의 정식 장로회’를 소집하고 주일학교 총무를 치리해버리는 일까지 저질게 되는데, 담임목회자가 있는 상태에서 장로들끼리만 모여 치리권을 행사하는 것은 일반 장로교의 기본상식도 모르는 무식한 소치였습니다. <br/><br/>그리고 1991년 1월, 현 담임목회자의 부임이 있었습니다. 이후 서부교회는 서부교회 운영 주체로서의 권찰회 운영은 종료되고 백목사님이 우려했던 장로교식 간부회의가 교회 운영 주체로 전면에 나서게 됩니다. 1992년 11월 시무투표에서 서목사님이 불신임을 당하게 될 때 서부교회 장로님들은 단 1명도 예외 없이 함께 전원 불신임을 당합니다. 이후 서부교회는 다시는 시무투표가 없었기 때문에 현 서부교회는 담임목사님과 장로님들이 존재하지 않는 상태로 내려오고 있습니다. <br/><br/><br/>②현재 서부교회의 목사님과 장로님들은, 서부교회 전체가 아니라 각 파를 대표합니다. <br/><br/>현재 서부교회는 담임목사님이 없습니다. 다만 2층에서 예배를 드리는 서목사님은 서목사님측 부산공회(2) 소속 서부교회의 담임목회자이고 그 사회를 보는 장로님들도 그런 신분입니다. 전체 서부교회의 이름을 걸 수 있는 목사님과 장로님들은 1992년에 전원 사직되었습니다. 또한 질문자께서 말씀하시는 김장로님과 구장로님은 서목사님을 반대했던 분들인데, 이 분들은 그 신앙은 높이 평가해야 할 분들이지만 정확하게 말하면 전체 서부교회의 장로님들이 아니고 서부교회 내의 부산공회(1) 소속 교인들의 장로님들입니다. <br/><br/>따라서 현재 서부교회 2층 예배에서 담임목사님이 반대측 두 장로님을 사회에서 배제하는 것은 당연한 조처이고 양심적인 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이러한 서목사님의 조처는 서부교회를 두 개의 서부교회로 스스로 공식화하고 있는 것임을 아는 분은 없는 것 같습니다. 이를 안다면 서목사님 측은 두 분을 사회자로 모시려 해야 하고 또 두 분은 사회자로 모시려 해도 극구 거절해야 할 일이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질문 내용처럼 왜 그 두 신앙있는 장로님들을 사회에서 배제하느냐고 반론할 성질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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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백영희신앙노선'총괄(요약)
②'백영희신앙노선'총괄(전체)
③교리정리
④성경신학
⑤문답방정리
⑥기타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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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운문답
발언/주제연구
연경교재
참고연경
일반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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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글..
03.04
여호와여 나를 살피시고 시험하사 내 뜻과 내 마음을 단련하소서
03.04
내가 나의 완전함에 행하였사오며 요동치 아니하고 여호와를 의지하였사오니 여호와여 나를 판단하소서
03.04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려니와 무고히 속이는 자는 수치를 당하리이다
03.04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의지하였사오니 나로 부끄럽지 않게 하시고 나의 원수로 나를 이기어 개가를 부르지 못하게 하소서
03.04
여호와여 나의 영혼이 주를 우러러 보나이다
03.03
내 나이 이제 팔십세라 어떻게 좋고 흉한 것을 분간할 수 있사오며 음식의 맛을 알 수 있사오리이까 어떻게 다시 노래하는 남자나 여인의 소리를 알아 들을 수 있사오리이까 어찌하여 종이 내 ?
03.02
여호와께서 그 터를 바다 위에 세우심이여 강들 위에 건설하셨도다
+
새댓글
공회교인
7시간전
참 감사할 일입니다. 그저 고맙고 감사할 뿐입니다
ysha
7시간전
저도 그 사모님이 그립습니다.
교인
7시간전
목사님, 늘 변함없이 칠흑같은 바다를 비추어지눈 등대처럼 바른 길로 인도해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늘 건강하시…
황선욱
7시간전
'성자'라는 표현은 쓰지 않는 것이 좋다고 봅니다. 말 그대로 '거룩할 성'이므로, 사람에게 쓰는 것은 좋지…
13.11.02
12.21
이 노선의 우리가 지켜 볼 이유와 사연이 있는 볼리비아 선교회 고광문 목사님이 보내 온 소식입니다. '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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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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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A
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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