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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희 신앙노선의 오늘을 고민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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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단에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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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p></p><p></p><br/>1.주남선목사님의 큰 딸 주경순권사님<br><br>평생 결혼하지 않고 주님과 복음을 위해 헌신한 분입니다.<br>신사참배 옥고를 치르는 아버지 주남선목사님 때문에 일제하 수많은 고초를 겪었고<br>해방 후에는 오갈 데 없는 아이들을 모아 복음으로 인도한 전도자였습니다.<br>주경순권사님의 이름은 본인 스스로 수고하고 노력한 것도 크지만<br>늘 그 부친 주남선목사님 이름 때문에 우리에게는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br><br><br>2.주남선목사님의 이름은 <br><br>신사참배 출옥성도와 현 고신의 설립자라는 이름으로 한국교회사 한 중심에 있습니다. <br>신사참배 사건은 한국교회사의 전반부 요약이라 할 수 있고<br>출옥성도라는 이름은 한국교회사 후반부의 도로 표시판 정도라 할 수 있습니다.<br/><br/><br/>3.주남선과 백영희<br/><br/>1936년 7월, 갑자기 신앙으로 돌아서면서 불같이 일어나던 백영희신앙세계에 <br/>선생으로서 첫 영향을 미친 분은 주남선이었습니다.<br/>설교보다는 감화가 있었고<br/>감화보다는 주님 동행과 말씀으로 만들어진 신앙인격을 가졌던 분입니다.<br/><br/>이 노선이 주목사님에 대하여 가지는 특별한 점은<br/>자기보다 앞서 나가는 교인 백영희의 신앙세계를 두고 다른 유명 인사들과 달리<br/>견제하거나 시샘하지 않고 그 신앙발전을 자기 것으로 아꼈다는 것입니다.<br/>주목사님을 청하는 집회에 집사였던 백영희를 전국에 파송하였고<br/>단순간에 백영희의 이름은 전국 교회를 휩쓸게 된 원인입니다. <br/><br/>1951년 전쟁 중에 주목사님은 세상을 떠나면서<br/>백영희를 가장 가깝게 두고 그의 마지막 부탁과 함께 사용하던 성경을 건넸니다.<br/>주목사님 장례는 백영희 손에서 치르졌고 굉장한 은혜가 임하였으며<br/>주목사님의 가족들, 특히 가족을 책임진 맏딸 주경순에게는 평생을 잊지 않고<br/>새겨둔 부친 주목사님과 백영희의 모습으로 남아있습니다.<br/><br/>일제 신사참배 반대로 주목사님은 옥고를 치르고 가족들은 끼니를 연명할 수 없던 때<br/>백영희는 꾸준하게 주목사님 사택의 양식을 실어날랐으며<br/>당시 분위기로 그런 행동은 '독립지사 가정의 후원자'로 분류되어<br/>함께 처리되는 극단적 상황을 각오해야 했기 때문에 <br/>주목사님 가족들의 가장 어렵고 외로웠던 6년 기간 내내 백영희에 대한 감사는 말로 할 수 없었습니다. <br/><br/><br/>4.주경순과 백영희<br/><br/>1951년 주목사님이 돌아가시고 주경순에게는 백목사님이 아버지와 같은 존재였습니다.<br/>아버지 신앙이 그대로 이어지고 있었고<br/>아버지 소원이 그대로 구현된 신앙인이었으며<br/>아버지와 백영희의 관계는 어떤 혈육에 비할 수 없는 극적인 하나였기 때문입니다. <br/><br/>맏딸로 결혼하지 않고 평생 살면서<br/>신앙적으로 또 인간적으로 사람이 그리울 때는 백목사님을 찾았습니다.<br/>해방 후 마산에서 자리를 잡고<br/>출옥성도 조수옥권사님과 함께 고아원사업을 할 때<br/>고신의 가장 강경파 본부라 할 수 있는 마산지역의 여론을 백영희 지지로 돌려세운 분들이 바로 조수옥과 주경순입니다. 여성도들이지만 고신 내 가장 강한 마산 지역 각 교회 교인들의 실제 영향력을 쥐고 있던 이분들이 백목사님에 대한 지지가 너무 강하여 이들 때문에 고신 지도부가 백목사님을 제거하는 데에는 그렇게 오랜 세월을 보내게 됩니다. <br/><br/>고신 내부에서 백영희노선 제거에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던 지도부가<br/>가장 두려워했던 세력 중 하나가 바로 마산의 교인 분위기였습니다. <br/><br/>백영희 제거는 <br/>주남선 제거라는 결과가 되고<br/>이인재와 같은 생존 출옥성도가 백영희와 함께 죽겠다며 버티고 있었고<br/>전국 고신의 교역자와 교회들 중에서 백영희를 따를 세력이 막강했으며<br/>고신 내 주요 인사들이 그를 주목하고 있던 터에<br/>교회 내 가장 기초가 되는 교인들 중에서는 마산의 분위기가 그렇게 강력했습니다. <br/><br/><br/>5.이 노선에서 멀어졌던 시절<br/><br/>백영희가 고신에서 제거되던 마지막 순간<br/>주경순 조수옥 박인순 등 수많은 고신 내 이 노선 지지 교인들이 <br/>백목사님과 함께 이 노선으로 출발할 것으로 예견되었으나<br/>훗날 다시 설명할 수많은 사연들 때문에 <br/>불과 몇 사람만 이 노선에 몸으로 함께 하는 복을 누리게 되었고<br/>고신 내에는 수많은 아깝고 위대한 신앙인들이 잔류하게 됩니다. <br/><br/>가족이라도 오해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의 죄목이 조작되어<br/>이 노선을 덮었고 그 죄목들은 너무 엄청난 것이어서 고신 지도부 전부가 미치지 않고는 그렇게 할 수 없는 정도가 되자 고신 내부의 아까운 신앙인들이 아마 백목사님이 깜빡 실수를 했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노선 선택의 마지막 순간에 한 걸음 주저했고 그것은 그대로 그들의 소속을 결정지우고 말았습니다.<br/><br/><br/>6.그러나 1980년대, 환갑이 되면서<br/><br/>주경순은 다시 백목사님을 찾게 됩니다.<br/>고신 내부에 주요 직책들을 가지고 원로가 되었던 분들이<br/>백목사님과 헤어졌던 20년 세월을 통해서 <br/>고신의 지도부가 도저히 해서는 안 될 방법으로 제거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br/>그 모든 결과가 환하게 드러나게 되자 다시 모이게 됩니다.<br/><br/>백목사님 제거에 가장 적극적이었던 분들 중에 생존했던<br/>한목사님 남목사님 박목사님은 이 시기 고신 최고 원로로서 백목사님을 찾았고<br/>고신 신학과 이론의 작성자라 할 박윤선도 그러했으며<br/>고신의 교인들에게 현장에서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치고 있던 <br/>박인순 박복달 조수옥 주경순과 같은 고신 1세대 최고 원로 교인들이<br/>서부교회로 발걸음을 분주하게 재촉하고 있었습니다.<br/><br/>당시 방문하는 분들은 주로 서부교회 입구 행정실 3층의 응접실에서 <br/>백목사님을 만났고, 저는 응접실 바로 옆 작은 방 한칸을 연구실로 사용하였으므로<br/>이런 모습들을 항상 자연스럽게 보게 되었습니다.<br/>평생 못볼 줄 알았던 남북이산의 어머니와 딸이 만난 듯<br/>숨막히는 기쁨과 감격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br/>박인순 조수옥 주경순 이인재 ... 이런 출옥성도들의 백목사님 접견 모습은<br/>이 노선의 내면이 어느 수준에 이르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br/><br/>그 중에서도 주경순은 스스럼없이 백목사님을 아버지로 대했습니다.<br/>마지막 백목사님 장례식 기간에 5층을 찾은 그분의 모습을 잊을 수 없습니다.<br/><br/><br/>7.현재 <br/><br/>총공회 소속 각 공회들과 목회자들과 교인들은<br/><br/>주경순권사님이 백목사님과 이 노선의 열렬한 해방 직후 세대였지만 <br/>고신에서 총공회로 분리되던 바로 그 순간<br/>갈랫길에서 순간적으로 방향감각을 잃었고<br/>그 한 순간 실수로 20여년 세월을 안타깝게도 일반 신앙의 공허한 기간으로 보냈던 <br/>바로 그 읽어버린 기간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br/><br/>재독은 우상이라는 그런 말도 안되는 천하 거짓말로 <br/>대구공회와 소속 모든 이들을 광분하게 했던 지도부! <br/>현재 그들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어떤 걸음을 걷고 있는지 살펴보면<br/>당시 거짓에 대한 실상을 여실히 알 수 있는데도<br/>주경순의 20년 세월처럼 기어코 20년을 채우려고 하는지<br/>그때는 20년이지만 오늘 우리에게는 20년의 몇배로 닥칠지 가늠할 수 있을지!<br/><br/>대구공회에 이어 부산공회 1과 2의 교권싸움 과정에서 또 다시 이 노선을 이탈하고 있는 부공2의 모든 이들을 보며 그 절반의 안타까움이 이미 닥치고 있음을 탄식합니다. <br/><br/><br/>백목사님이 생존해 계셨더라면<br/>주경순권사님 장례식에 직접 가지는 않을지라도 아마 제일 아끼는 사람을 보내어<br/>문상했을 것입니다.<br/>서부교회나 부산공회 소속 어느 공회가 그런 의미를 담아 <br/>백목사님과 이 노선의 따뜻한 문안을 대신할 수 있을지!<br/><br/>세상 말로 표현하면 강자와 승자의 아량이 되고<br/>이 노선의 우리로 말하면 이 노선에 대한 그분의 애틋한 애모와 중심을 아낀다는 표시가 필요한 문상입니다. 이 노선 초기를 담고 살아온 또 한 분의 인생 이력이 종료되었다는 소식으로 주경순권사님의 장례 소식에 여러 묵상들을 적어보았습니다. </br></br></br></br></br></br></br></br></br></br></br></br></b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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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백영희신앙노선'총괄(요약)
②'백영희신앙노선'총괄(전체)
③교리정리
④성경신학
⑤문답방정리
⑥기타정리
자료
분류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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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의답변
쉬운문답
발언/주제연구
연경교재
참고연경
일반자료
남단에서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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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글..
03.04
여호와여 나를 살피시고 시험하사 내 뜻과 내 마음을 단련하소서
03.04
내가 나의 완전함에 행하였사오며 요동치 아니하고 여호와를 의지하였사오니 여호와여 나를 판단하소서
03.04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려니와 무고히 속이는 자는 수치를 당하리이다
03.04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의지하였사오니 나로 부끄럽지 않게 하시고 나의 원수로 나를 이기어 개가를 부르지 못하게 하소서
03.04
여호와여 나의 영혼이 주를 우러러 보나이다
03.03
내 나이 이제 팔십세라 어떻게 좋고 흉한 것을 분간할 수 있사오며 음식의 맛을 알 수 있사오리이까 어떻게 다시 노래하는 남자나 여인의 소리를 알아 들을 수 있사오리이까 어찌하여 종이 내 ?
03.02
여호와께서 그 터를 바다 위에 세우심이여 강들 위에 건설하셨도다
+
새댓글
공회교인
6시간전
참 감사할 일입니다. 그저 고맙고 감사할 뿐입니다
ysha
6시간전
저도 그 사모님이 그립습니다.
교인
6시간전
목사님, 늘 변함없이 칠흑같은 바다를 비추어지눈 등대처럼 바른 길로 인도해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늘 건강하시…
황선욱
6시간전
'성자'라는 표현은 쓰지 않는 것이 좋다고 봅니다. 말 그대로 '거룩할 성'이므로, 사람에게 쓰는 것은 좋지…
13.11.02
12.21
이 노선의 우리가 지켜 볼 이유와 사연이 있는 볼리비아 선교회 고광문 목사님이 보내 온 소식입니다. '선교'…
서기
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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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A
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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