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KIST
백영희 신앙노선의 오늘을 고민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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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폐지를 직면한 고신의 SFC) > - SFC, Students for Christ > 고신의 성장 과정을 보면 출옥 성도 몇 분이 시작을 했고 이 분들이 든 기치에 모인 1 세대들이 당대를 감당했다. 그리고 이들을 보면서 자란 2 세대는 SFC라는 '학생신앙운동 > 학신'의 이름으로 표시할 수 있다. 전국의 학교마다 고신의 중고교 대학생들이 학생회를 조직하여 친구들을 전도하고 신앙 운동을 했다. 회원인 학생들의 자기 신앙을 독려하고, 주변 불신 학생들을 전도했다. 현재 고신은 아마 거의 전부가 SFC 출신으로 보면 되고, 합동과 합신 등의 국내 보수 정통 교단들의 현재 중요한 원로들도 SFC 출신들이다. 공회에 주일학교와 중간반을 고신은 SFC라고 보면 된다. > > - 공회와 비교하면 > * 기본 성격 > 서로의 성격과 접근은 아주 다르다. 우선 교회의 학생들의 조직이라는 점은 거의 같다. 고신의 SFC는 학생회다. 학생들이 스스로 학생회를 조직하고 운영한다. 공회는 중고교 대학생이 주일학교의 반사나 보조 반사를 하면서 한 편으로 중간반 학생이 된다. 중학생 이전의 학생과 아이들을 가르치는 입장을 가지거나 단순히 장년반의 축소판 또는 전단계에 해당하는 중간반 학생으로 배우는 입장이다. > > * 양 쪽의 장단점 > 고신의 SFC 장점은 학생들이 조직과 운영 일체를 맡기 때문에 수동적이 아니라 능동적이 되며, 이로 인해 지도부를 형성하는 학생들의 신앙이 엄청나게 발휘 발전하게 된다. 단점이라면 뭐든지 힘과 의지만 있고 신앙의 노선과 깊이를 모르기 때문에 철 없는 조처와 방향이 된다. 그야 말로 딱 '운동'이다. 10대 또는 20대 초반에 물불을 가리지 않을 때의 운동이란 일시에 들불 같이 일어 난다. 목회자와 장년반 지도부가 이루지 못하는 성과를 낼 수도 있다. 그런데 운동이란 분위기가 돌아 서면 남는 것이 없다. 또 방향이 걷잡을 수 없게 나갈 수 있다. > > 공회는 아예 이런 식이 질색이다. 어떤 부흥과 뜨거움을 포기해도 이런 식이라는 것은 한두 번은 할 수 있다 해도 구조적으로 두고 보지 않는다. 공회는 말씀에 따라 주신 현실을 한 걸음씩만 걸어 간다. 행동 하나 하기 전에 몇 번이고 생각을 먼저 한다. 하나를 결정하기 전에 옳고 그른 것을 말씀과 노선과 교리로 따지게 된다. 학생들로서는 이런 세계가 맞지 않고 또 어렵다. 맞든 맞지 않든 공회는 만사를 그렇게 한 걸음씩 나간다. 공회의 주교와 반사와 엄청 난 성과를 흔히들 한 때의 운동으로 보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대신에 교계나 고신은 이런 운동을 그렇게 좋아했고 이 운동의 문제점을 지적하거나 반대하는 경우는 아마 없다. 이 운동의 치명적인 문제는 10대 남녀 학생이 지도부를 형성하면 신앙의 그 어떤 불길이라도 뒤에 보면 이성 문제로 잿더미가 된다. SFC 때문에 고신은 7 계명 문제를 일찍 포기했다. 오히려 7 계명의 죄를 장려하고 자랑했다. SFC를 통해 부부가 된 사람도 많지만 불장난으로 끝이 나고 묻어 둔 경우는 헤아릴 수 없다. 공회는 순복음교회 70만 명을 가질 수 있다 해도 이런 문제가 구조적으로 염려가 되면 아예 시작도 하지 않는다. > > 공회의 주교 반사나 보조 반사 그리고 중간반 개념은 SFC의 장단점에 반대다. 학생에게 어떤 자율권 자치권도 주지 않는다. 그냥 반사나 보조 반사로 활동을 하면 골목에 나가서 바로 전도를 한다. 따라 오는 학생이 있으면 작은 목회자나 어린 반사로 활동한다. 반사는 어떤 반사라도 그 반에 전권이 주어 진다. SFC와 같은 구성이란 아예 하지를 않으니 SFC처럼 조직을 구성하고 운영하는 것은 전혀 배우지 못한다. 공회는 그런 것은 신앙의 세계에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결과적으로, 외부에서 보면 SFC는 자치권을 가진 학생들이 스스로 조직하고 운동을 하게 되면서 본인의 원래 실력 이상을 감당하게 되고, 감당을 하고 나면 신앙도 실력도 자라게 되고, 그렇게 되면 그 다음으로 비약적으로 자라 간다. 그리고 그 나이에게 주신 뜨거움이 그들의 평생을 이끌고 나갈 신앙의 성향이나 체질을 고착 시킨다. 그들이 이룬 것이 오늘의 고신이다. 그러니 고신에게 SFC는 군인들로 말하면 훈련소와 같고 훈련소 동기처럼 끈끈하며 실제 그들의 평생을 형성 시킨다. 이런 SFC를 없애자고 한다면 정상적인 고신인들은 사력을 다해 저지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 > > > (고신의 SFC 폐지 논리) > SFC가 역사적으로 그 역할이 엄청 났기 때문에 고신은 교단적으로 후원을 했다. 전국에 월급을 받는 간사들이 핵심 직원이라 할 수 있는 운동원들을 데리고 활동을 했다. 그런데 세월 속에 SFC를 통해 전도 되는 경우가 거의 없어 져 버렸다고 한다. 조직과 경력은 쌓여 가고 돈은 소모 되는데 '학교에서 학생을 전도'한다는 목적에서 보면 불필요한 단체가 되었고 낭비만 하는 단체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없애자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6.25의 피난민 때문에 복음병원의 전신인 '피난민 의료 구제소'를 운영하다가 전쟁이 끝나고 모두 전국의 고향으로 다 돌아 가 버렸다면 부산 시민만을 상대하는 '부산의 의료 기관'으로 바꾸는 것이지 '피난민 구제'라는 간판과 그 조직은 정리하는 것이 맞겠다. 이 것은 교회가 자기 정체성을 부인하는 것도 아니고 SFC라는 학생 운동 단체는 원래 조직신학의 교회론에 교회를 위해 필수적인 제도도 아니다. > > 찬반의 양 쪽 논쟁을 지켜 보면 제 3자 입장으로 볼 때 폐지가 맞다. 교회의 필수가 아닌 조직을 교회의 돈과 인력을 낭비하면서 유지하는 것은 신약에도 구약의 성전과 제사 제도를 유지하자는 식이 될 수 있다. 한 때 부산에는 '외항 선교회'가 힘 있게 운영된 적이 있다. 군 면제에 큰 돈을 벌기 때문에 외항선을 타는 청년들이 많았다. 좁은 배 안에서 갇혀 살고 대양의 위험까지 고려하면 전도 할 좋은 기회였다. 신앙 있는 선원에게는 신앙을 유지 시켜 주고, 믿지 않는 선원은 전도할 기회다. 오늘은 아주 특수한 경우가 아니면 그렇게 나가는 경우도 없고, 또 나간다 해도 설비가 좋고 통신과 인권 보호가 좋아서 사고 위험도 없고 전도 할 기회도 없어 졌다. 그런데 오늘도 외항 선교회를 70년대처럼 유지한다면 문제가 있지 않을까? > > > > (공회의 중간반과 주교 문제) > * 역사적, 회고적 공회의 반사 생활 > 80년대까지의 공회 교인은 골목으로 뛰어 가기만 하면 많은 불신 가정의 아이들을 교회로 몰아 왔다. 황금 어장이었다. 그물만 던지면 무조건 한 가득 올라 온다. 90년대부터 어족 자원이 고갈 되면서 2000년대가 되자 베드로 정도의 유능한 어부조차 밤이 맞도록 그물을 내려도 한 마리도 잡지 못한다. 그렇다고 죄악의 바다에 복음의 그물을 내리지 않을 수는 없다. 그런데 베드로와 요한의 방식으로는 이미 밤이 새도록 잡아도 허탕이었다. 그렇다면 주님께 이런 현실에서 고기잡이를 포기할지 아니면 방향을 바꾸어야 할지 물어 봐야 한다. 어디든 뛰어 가면 아이들이 나올 때는 방법론이 필요가 없었다. 열심만 있으면 된다. 열심이 없다면 억지로 데리고 가면 저절로 힘이 나고 열심이 생겨서 반사가 된다. 지금은 골목에 아이들이 없다. 지나 가는 아이를 잡고 사탕을 건네 주면 '미성년 유인'이라며 유괴범으로 처벌을 받는다. 그 때 아이는 좋아서 들었고 좋아서 따라 왔고 부모는 고마와 했다. 지금 아이들은 어느 교회를 다니고 있든, 다니기 싫어 중단을 했든, 교회 자체를 싫어 하든, 아예 그 어떤 남의 말도 싫고 손바닥에 휴대폰만 뚫어 지게 보느라고 부모든 교사든 교장이든 경찰이든 말을 걸면 화를 내는 때다. 이런 아이를 그 부모도 눈치를 보며 슬슬 기는데 처음 보는 사람이 말을 건넨다면 우리 사회가 경찰력과 아동보호 기관을 통해 직접 가로 막고 나선다. 그렇다 해도 순교의 각오로 그 가로막을 뚫고 들어 가는 선교를 해야 하는가? 또는 이런 사회를 주신 주님은 다른 면으로 충성을 요구하는지 살펴 봐야 하겠는가? > > 공회의 반사를 제대로 해 본 사람이거나 그 효력이 익어 있는 사람은 어느 교인이든지 조금 괜찮아 보이면 반사로 임명하고 골목으로 밀어 내면 신앙이 생기고 체험을 하면서 전도가 되어 만사 해결 되더라는 경험과 기억을 가지고 있다. 지금도 그렇게 하는 분들이 계실 듯하다. 그리고 지금도 그렇게 하면 하지 않음보다 나은 경우도 없지는 않을 듯하다. 그런데 그 방법이 교리요 신앙의 노선이라면 세상과 시대를 돌아 보지 않고 그렇게 하면 된다. 그 방법 자체가 교리나 노선이 아니라면, 아이 하나라도 쉽게 생각하지 말고 전도라는 것은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전하는 것이라는 것을 진리와 노선으로 삼았다면, 오늘 우리가 포기해야 할 것과 오늘 우리가 새롭게 가질 것이 있는지 살펴 봐야 하지 않을까? > > * 주일학교의 성탄과 여름 성경학교 > 이 제도는 생길 때부터 골목에 넘치는 아동들이 버려 져 있을 때 이들을 교회로 데려 오는 전도의 방법론이었다. 여름 성경학교는 교회가 지켜 내야 할 노선이 아니었다. 불신 가정의 비참한 아이들에게 위생 교육도 했고, 세상의 영웅담도 들려 줬다. 애매하지만 세상 노래도 가르쳤다. 당연히 말씀과 찬송을 이야기나 율동 형식으로 심었다. 그래서 교회에 거부적인 마음에 교회가 여러 종류의 학교 중에 하나인 것처럼 위장을 해서 불신 가정의 교회 차단막을 걷고 아이들을 교회에 첫 발을 딛게 하여 이후 교회를 잘 나올 수 있도록 건너 가는 복음 전파의 위장 행사였고, 호객 행위였다. 역사적으로 이 운동을 통해 불신자가 전도 되고 교회의 기둥들이 대거 배출이 되었다. 성탄절의 행사와 선물도 그러했다. 못 난 가정의 못 난 아이들이 무대 위에 서서 합창이나 합주나 발표를 해 본다는 것은 꿈에서도 어렵던 시절 교회는 그런 꿈을 실현 시켜 줬고 맛도 보기 어려운 떡을 한 입 물고 나올 수 있게 했다. > > 오늘의 성탄과 여름 성경학교의 행사는 유치원이고 학교가 세상 곳곳에서 아이들이 자기를 발표할 기회가 차고 넘치는데 교회까지 나서서 무대를 제공해야 할까? 교회가 무대를 제공한다 해도 그 아들이 서는 교회 밖의 기회와 비교하면 교회 행사는 시하다. 그래서 교회를 위해서 희생하는 정신으로 순서를 맡으면 맡지 무대에 서 볼 꿈을 실현 시켜 줌으로 교회에 붙들어 매는 역할을 하는 경우는 이제 거의 없다. 그런데도 성탄의 행사와 선물을 아직도 제공해야 할까? 여름 성경학교를 아직도 운영해야 할까? 과거에 한 것이니 지금도 고수를 해야 한다면 예배당의 초가 지붕은 왜 고소를 하지 않고, 걸어서 다니는 교회의 출입을 왜 차량으로 바꾸고 있을까? 공회처럼 1백 년이 넘는 일제 때 찬송은 그 가사와 곡이 찬송적이어서 고수를 하고 있고, 최근의 찬송은 세상 유행가보다 못한 경우가 많아서 사용하지 않는다. 성경의 번역도 모양도 그렇다. 예배의 시간과 진행 방법도 그렇다. 그리고 설교는 갈수록 성경의 본문 속으로 더 깊게 들어 가고 있다. 더 발전해야 할 것이 있고, 지켜 내야 할 것도 있다. 그러나 마루 예배당에 의자를 제공하는 것은 아이들 청년들은 바닥에 앉지를 못하는 서구식 골반 구조 때문이다. 또 평생 생활화가 된 노령의 교인들은 허리와 다리가 아픈 환자여서 앉지를 못한다. 아이들과 청년은 우리와 민족이 다르고, 노령의 교인은 장애자 학대가 될까 해서 의자를 제공한다. 이렇게 바꾸는 것이 맞고 또 좋을 수도 있다. > > 성탄 행사와 여름 성경학교는 불신 아동을 위한 하나의 전도 행사, 한국의 선교 초기에 나팔을 불고 북을 쳐서 일단 시선을 끌어 온 것과 같다. 지금은 먼저 믿는 사람들의 생활을 지켜 보며 주변의 불신자가 교회로 움직인다. 생각이 많고 속이 복잡하며 이들에게는 상품과 발표 행사가 먹히지를 않는다. 상품과 발표 행사가 먹힐 정도가 되려면 교회가 교회이기를 포기해야 할 만큼 전문적이면서 아주 세상 깊이 들어 가야 한다. TV나 각종 지자체의 문화 행사를 능가해야 가능하다. 전도의 기회를 잡기 위해 만든 것인데 전도의 기회를 제공하지 못하고, 오히려 이미 교회를 잘 다니고 있던 기존 교인들이 신앙의 깊은 세계로 들어 가려면 말씀을 살펴야 하는데 찬송을 통해 감성 풀이의 기회를 만든다면 이 것은 교회의 우준화 유아화 조처가 된다. > > > > (공회의 중간반 제도) > 1978년에 시작 된 공회의 중간반 제도는 1970년대에 거침 없이 쏟아 내는 불신 가정의 주교 졸업생을 장년반 오전 예배에 함께 앉히게 되자 예배 진행이 어려울 정도였다. 그래서 장년반에 앉기 전의 주교 졸업생들을 따로 관리하기 위해 만들었다. 8 년을 운용해 본 결과 일시적으로는 필요했으나 계속해서 유지하게 되면 주교도 중간반도 장년반도 피차 어렵게 되어 중간반을 해체 시키는 과정을 밟았다. 1986년에 중간반을 전면 해체 하기 시작하자 당시의 중간반 현직 반사들은 조직적으로 반발을 했다. 좋게 말하면 발전적으로 좋은 뜻으로 중간반 해체를 반대했다. 이 반대 운동이 자기들도 모르게 아도니야를 쫓는 세력이 되는데도 잘 모르니까 철저하게 반대를 했고 그 해체는 1989년까지 늦어 지다가 하나님 앞에 갈 날이 가까와 지고 더 이상 시간을 허비할 수 없게 되자 1989년 5월 경에 백 목사님은 전격 해체를 해 버리고 목사님의 사후 서부교회에게 후임의 이탈을 막고 서부교회를 생전처럼 고수하라는 사명을 주게 된다. 이름은 해체 전의 중간반처럼 같은 중간반 이름을 붙였지만 성격과 사명은 아주 다르다. 1989년 5월에 새로 임명 된 분들은 이 글을 생생하게 기억할 듯하고, 그 분들 외에는 팩트가 틀렸다며 열을 낼 듯하다. 부공2의 주력은 거의 다 모른다. 서부교회 내부도 모른다. 89년 5월의 중간반사들은 고려 때 삼별초와 같다. 결국 토벌이 되어 씨가 없어 졌다. 이들이 성공을 했다면 여수 바다에서 왜군을 다 몰아 낸 노량 해전 후 한양으로 진군하여 집권하는 여수 좌수영의 군부가 되었을 것이다. 서부교회의 최후 중간반, 이들은 성공도 하지 못했고 사명도 지켜 내지 못했으며 자멸하고 사라 졌다. > > 역사를 모르면 원균에 붙어 목숨을 바친 순국자도 나오고, 왜군에 붙어 진격로를 왜곡 시켜 조선군이 섬멸을 하거나 참배를 하게 만든 이가 생겨 난다. 참 희안하고 꼴 불견이며, 온갖 모습이 우후죽순이다. 임란 때 왜군이 조선을 통일하고 통일 된 왜와 조선을 내부에서 재집권을 통해 소리 없이 일본까지 점령하는 것이 나았을지, 노량에서 멋 있게 죽어 자자손손 충신 소리를 듣고도 결국 일본에게 나라를 다 내어 준 것이 나았을지.. 세상 일은 모르겠다. 주의 일은 그 결과는 주님께 맡기고 우리는 주어 진 길을 그냥 갈 뿐이다. 이 노선은 옳기 때문에 변경하지 못하고 이 교훈은 더 낫기 때문에 가치를 혼탁 시킬 수는 없다. 그런데 이 노선과 이 교훈을 지킬 수 있는 장소는 부산의 동대1가 381번지가 전부일까? pkist라는 이 곳일 수도 있다. 381번지에서 주님을 맞겠다는 것이 89년 5월의 중간반이다. 그들은 실패했다. pkist에 실린 글과 방향과 자세가 오늘의 백영희 노선이며 생전의 서부교회를 이어 가는 것이며 공회의 중심이라고 생각하는 곳도 있다. > > > 이들은 현재 부산공회들을 중심으로 운영 되는 중간반 제도를 두고, 공회도 모르고 이 노선도 모르는 이들이라고 본다. SFC의 폐지? 해야 한다면 할 수 있다. 그 운동은 고신의 정체성은 아니다. 고신에게 해방 직후 맡긴 위치와 기회를 통해 전도 운동을 했고 그 전도 운동의 지도부나 핵심 학생들이 자기 신앙을 엄청 나게 발현 시킨 기회였다. 오늘은? 다른 기회나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할 듯하다. 50년대의 인도와 오늘의 인도는 다를 수 있다. 바울에게 고린도를 맡긴 적도 있고 갈라디아를 맡긴 적도 있다. 그 곳에 따라 설교가 달라 졌고 바울의 역할도 달라 졌다. 이 것은 변질이 아니며 이 것은 상황 논리도 아니다. 변치 않는 복음을 전하는 바울에게 주신 주님의 인도가 달랐다. > > 공회의 중간반 제도는 1978년부터 1982년까지가 정식이다. 이후 1986년까지는 이탈이었다. 그래서 폐지를 전적 밀어 붙였다. 그리고 1989년에는 이름만 같고 형식과 의미와 목적이 아예 다른 중간반이 새로 출발했다. 이 제도는 서부교회의 백영희 사후 서부교회의 이탈을 막고 원래 노선에 세우는 단체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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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백영희신앙노선'총괄(요약)
②'백영희신앙노선'총괄(전체)
③교리정리
④성경신학
⑤문답방정리
⑥기타정리
자료
분류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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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의답변
쉬운문답
발언/주제연구
연경교재
참고연경
일반자료
남단에서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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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글..
03.04
여호와여 나를 살피시고 시험하사 내 뜻과 내 마음을 단련하소서
03.04
내가 나의 완전함에 행하였사오며 요동치 아니하고 여호와를 의지하였사오니 여호와여 나를 판단하소서
03.04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려니와 무고히 속이는 자는 수치를 당하리이다
03.04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의지하였사오니 나로 부끄럽지 않게 하시고 나의 원수로 나를 이기어 개가를 부르지 못하게 하소서
03.04
여호와여 나의 영혼이 주를 우러러 보나이다
03.03
내 나이 이제 팔십세라 어떻게 좋고 흉한 것을 분간할 수 있사오며 음식의 맛을 알 수 있사오리이까 어떻게 다시 노래하는 남자나 여인의 소리를 알아 들을 수 있사오리이까 어찌하여 종이 내 ?
03.02
여호와께서 그 터를 바다 위에 세우심이여 강들 위에 건설하셨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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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1
01.01
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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