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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희 신앙노선의 오늘을 고민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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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p>1970년대 서부교회 주교와 1980년대 서부교회 주교는 달랐다.</p> > <p>(너무 어려운 이야기여서 서론이 길다.)<br /> > 세상이 싫어 세상의 유행어를 피하는 편이나 꼭 필요하면 피하지는 않는다. '불편한 진실'보다 나은 표현이 있으면 추천을 바란다.<br /> > 서부교회 주일학교, 그 성과와 그 당시의 거대한 흐름이 너무 압도적이어서 서부교회 주일학교를 두고 비판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모든 교파 교단 교회들이 견학으로 줄을 이었고 언론의 찬사는 전설과 신화를 만들고 있었다. 규모가 엄청 나고 그 성향이 일반 기준으로 어떻게 접근을 할 수 없으니 비판이 제기 될 수 없었다. 가장 보수적인데 가장 진보적이었고, 가장 옳은 방향인데 결과가 탁월했다. 이럴 수도 없고 이럴 리도 없는 현상이며 업적이었다. 그렇다고 이 땅 위에 어느 교회 어느 운동이 정확무오하겠는가? 밖에서는 몰라도 내면을 아는 사람은 문제점을 짚어 낼 수가 있다. 그런데 그 내면이 너무 알찼고 또 대단했기 때문에 티끌 같은 문제를 아는 사람은 있어도 구조적인 문제, 거대한 흐름을 두고 지적할 만한 사람은 없었고 또 실제 그렇게 제기 되지도 않았다. 서부교회 주일학교의 내면에 있었던 중대한 문제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는 위치는 단 한 명에게 주어졌다. 서부교회 주일학교의 운영 체계 자체가 총무 1 명이 전부 파악하고 운영하며 그 외의 간부는 알기가 어려웠고 또 조사를 해 볼 인물들도 아니었다. 모든 것을 알 수밖에 없는 '총무'가 주변에 말을 내면 모두가 알아 차리는 것은 쉽고 빠르다. 총무가 말하지 않으면 모른다. 이런 의미의 총무는 2 명이었고 첫 총무는 아주 가까운 지인들에게는 토로를 했으나 평소 교회의 다른 면에 대해서는 비판을 하면서 그런 비판 중에 주교의 문제점을 하나의 사례로 포함을 했기 때문에 알려 지지 않은 듯하다. 두 번째 총무는 천상 체질이 주교의 문제점을 문제로 인식하지 않고 대처하는 것을 사명으로 했기 때문에 문제로 인식이 되지 않았을 듯하다. 비를 맞고 놀면 더 좋은 아이가 빗속을 뛰어 다닌 뒤에 우산이 없어 불편했다고 투덜 대겠는가?</p> > <p>(70년대와 80년대는 다른 주교였다.)<br /> > 한반도라는 지리, 한민족이라는 사람, 한반도에 한민족이 수천 년을 살아 왔다. 그러나 19세기까지의 이 곳과 20세기 이후의 이 곳은 그 땅에 그 사람이 살지만 동서양이 다른 만큼 다르고, 하늘과 땅이 다른 만큼 다르다. 유교와 교회가 다른 만큼 19세기까지와 20세기의 생각과 가치관은 다르다. 1894년 갑오경장이 정확한 분기점인가?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1900년 1월 1일의 전후일까, 1910년의 식민지 시절부터일까, 1945년 해방이 기준일까? 딱 잘라 말할 수는 없으나 대략 이런 일들이 대단하게 중요하며 의미도 있다. 전체적으로 크게 보면 19세기와 그 이전, 그리고 20세기가 시작되면서 천지는 달라졌다고 대충 보면 될 듯하다.</p> > <p>서부교회의 1970년대는 외부에 알려 진 '서부교회의 부흥사'의 외형에 부끄럽지 않은 내면사였다. 실은 그 정도에서 그칠 수가 없다. 어떤 학자나 현장에 있었던 분이라 해도 글로 적어 설명을 하거나 입으로 표현을 할 수 없는 그 이상이었다. 꿀 먹은 벙어리... 이 감격을 어떻게 표현하나! 입은 닫고 있는데 그 모습을 보는 사람이 저 친구가 지금 엄청나게 맛있는 무엇을 막 입에 물었다... 이 정도만 짐작할 뿐이다. 대충 좋은 것은 표현의 범위 안으로 들어 온다. 너무 좋은 것은 표현의 범위를 벗어 난다. 내가 말할 수 있는 서부교회 주일학교의 내면은 그렇다. 주교의 당시 외부 모습은 수치와 각종 활동 모습을 설명하면 어느 정도 가능하다. 당시의 내면은 당시 반사로 활동하던 이들은 불신자 표현으로 '신들린' 사람들이었다. 제 정신이 아니니 설명을 못한다. 자기들이 한 것이 아니라 귀신에 씌여 난동을 부리다 정신을 차리고 나면 방금 내가 무엇을 했지? 알 듯 말 듯... 그러나 짐작은 한다. 그렇다고 맨 정신으로 확실히 설명하는 것은 불가하다. 제 정신이 아니라 귀신에 씌었으니. 70년대의 서부교회 주교는 성령에 붙들려 그렇게 10여 년을 보냈다. 그들은 세계 최고 최대의 주일학교를 형성했고 이루었으나 그들 스스로 그 것이그런 것인 줄 인지하는 이가 하나도 없었다. 그냥 했을 뿐이다. 어느 날 밖에서 방문을 했고 방문객이 밖에다가 설명을 하는 바람에 비로소 우리의 실체가 이 정도였음을 알게 되었다. 왕궁의 밥만 먹던 왕자가 다리 밑 거지와 비교를 하지 못했던 것과 같다. 다리 밑에 한 번 다녀 온 뒤에는 제 정신을 차렸다. 비로소 객관적인 무엇이 들어 왔다. 나의 매 순간과 나의 어느 손 끝 움직임 하나도 바깥의 만 백성과는 다르다는 것을.</p> > <p>80년대 주일학교는 서부교회 주교 자체가 이제 외부를 인식했다. 세상이 다 아는 서부교회 주교임을 알았다. 기독교 언론을 장식하는 온갖 극찬에 몰려 드는 전국의 견학 규모가 가히 압도적이었다. 방문하는 이들의 모습, 자세, 출신, 숫자, 그들의 감격하는 말과 눈 빛.. 서부교회 주교 반사 전부는 갑자기 TV 스타가 되고 어디를 가든 주변의 눈을 의식해야 하는 입장이 되었다. 평소 1 명 반사가 100 명 학생을 매 주일 오전 8시 30분에 한 자리에 빼곡하게 앉히는 경우가 한둘이 아니라 10여 명이 넘는다. 그런데 언론에서는 수십 명의 반사들이 그렇다고 전했다. 성경학교나 성탄절에는 그러했으나 평소는 그렇지 않다. 50 명을 넘기는 반사는 지금 기억에 50여 반사들이 있다. 100명을 넘기는 경우는 많지 않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는 지금도 그 때도 교인의 숫자를 따질 때 주교나 장년반이나 예배의 1 회 출석수로만 발표한다. 교계는 교회의 재적수를 교인수로 발표한다. 그래서 역사적으로 타 교단의 교세는 우리 기준으로 보면 3-4배 이상이다. 그리고 대형 초대형 교회로 가면 10배 또는 그 이상이 되어 버린다. 기독교 언론에 적는 기자가 대 놓고 거짓말을 하지는 않으나 기준에 따라 이럴 수 있고 저럴 수 있다면 기자의 주관이 개입 된다. 기자의 비판은 최대치로 간다. 그래서 언론의 비판은 최소치로 읽어야 어느 정도 균형이 맞는다. 기자가 좋게 칭찬을 하려 들면 그 때는 그 표현과 숫자를 대폭 줄여야 한다. 서부교회 보도는 무조건 극찬이었다. 기사를 읽고 방문하는 이들의 절대 다수는 감동이 되어 왔지 비판적으로 오거나 조사하러 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p> > <p>이런 이들을 접하게 되는 반사들은 '평정심'을 잃는다. 지도하는 백 목사님이 위인이고 의인이고 시대를 초월했지, 주교의 실무 총책임자로부터 6백여 반사와 4백여 보조 반사들이야 전국 어느 교회에 가도 그 정도 신앙은 있고 또 어느 교회도 그냥 멋 모르고 따라붙는 서툰 이들이 섞인 일반 교인들이다. 전통적으로 서부교회와 공회의 전반적 수준은 사회적으로도 또 교계 평균과 비교해도 낮은 편이다. 어느 날 목사님의 지도를 따라가다 보니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한국의 그 유명한 교회들과 우리보다 훌륭해 보이는 견학, 비록 견학이지만 한 눈에 그들의 수준은 각 교회의 지도급들인데 그들에게 본이 되어 버렸으니 마음이 혼란스러웠다. 자부심이 먼저 나온 반사도 몇은 있었을 것이고, 무조건 창피해서 고개를 들지 못하는 체질이 서부교회 반사들의 대부분이다. 안 믿는 아이들만 수십 명에서 수백 명을 데려 오는 서부 주교의 주일 새벽의 반사 활동은 날씨에 따라 또 그 날의 여러 여건에 따라 1백 명을 예상했는데 150명이 올 수도 있고 1백 명은 무조건 될 줄 알았으나 50명으로 내려 올 수도 있다. 5월 5일 어린이날이 겹치면 불신 가정에서 반사의 노력으로 겨우 데려 오는 학생들은 대폭 결석한다. 부모가 당연히 보내 주고 아이가 착하게 말을 잘 듣고 따라 오는 경우는 어느 반이든 10%나 될까? 그런데 어린이날 새벽부터 비가 와 버리고 행사가 엉망이 되면 아이들은 평소 비 오는 날의 주일처럼 온다. 평소보다 적지만 대폭 결석까지는 아니다.</p> > <p>그런데 이런 현장의 예측 못할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날 중에 귀한 주일이고 시간 중에 제일 귀한 예배 시간에 불신 가정에서 한 주간을 살던 학생들을 주일 오전 8시 30분에 예배당에 앉히고 공과 말씀을 가르치는 반사의 '사명감', 그 사명감은 반사의 신앙에서 나오고, 그 신앙은 평소 기본 성향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며칠 전 또는 어제 또는 오늘 새벽에 반사가 출석하는 서부교회의 장년반 설교를 통해 반사가 은혜를 받고 자기가 받은 말씀으로 자기를 깨우치고 이 아이들이 신앙을 생각할 때 마음에 애가 타는 내면의 불이었다. 반사가 매일의 예배를 통해 마음 속에 맡은 아이들을 품고 이 번 주일에도 예배당에 데려다 말씀을 가르친다는 이 불길이 가장 중요했고, 70년대는 이 것이 서부주교를 키웠고 유지를 했는데, 1979년에 언론에 공개가 되면서 서부교회의 주교 활동은 전국이 들여다 보는 진열대 또는 무대 위의 행동이 되어 버렸다. 남의 시선, 평소 자주 보는 시선이 아니라 처음 보는 사람의 시선이라는 것은 숙달이 되지 않으면 자기의 생각과 행동을 평소처럼 제어하기 어렵다. 지켜 보고 방문해서 함께 따라 다니는 외부인들에게 불신 가정의 골목을 뛰어 다니며 아이들을 데려 온다는 것은, 벌써 문제가 있는 것이다. 견학 온 분들이 은혜롭게 잘 보고 가면 그들이나 그들의 교회가 2배 3배 4배로 부흥이 되었다는 감격스런 소식을 듣는다. 오는 이들에게 최소한 실망은 시키지 않아야 한다는 중압감. 이 것이 우리를 복 되게 만들 수도 있고 실제 단기간에는 굉장히 도움이 된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 가면서 이런 일이 반복이 되면 구조적으로 하나의 전시적 활동으로 굳어 질 수가 있다.</p> > <p>(많은 문제점 중에 먼저 하나만 적어 본다.)<br /> > 이제 적는 이런 글은 이 글을 적기 전에 당시 함께 반사를 했던 수 많은 분들이 그 당시 느꼈을 것이고 바로 '그렇지. 그랬지' 라고 할 듯하다. 전국의 어느 닭장이라고 여우 한 마리를 던져 넣으면 난리가 나지 않겠는가? 난리 나는 상황은 다 다르지만 거의 같지 무엇이 그렇게까지 다르겠는가? 닭장 속에 소가 있었다면 닭들과는 달랐겠으나 대략의 흐름이라는 것이 있고, 이 흐름을 지금 설명하고 있다.</p> > <p>공회는 시작할 때부터 소문을 내지 않고 소문도 나지 않는 구조로 출발한다. 기념식이 없고, 프래카드 없고, 포스타도 없다. 무슨 부서를 조직해서 짜고 돌아 가는 것이 참 서툴다. 전국의 집회나 1 년 1 회의 정기 총공회 정도가 되면 1 장짜리 정도의 부서표가 나오지만 타 교단이 이 정도 행사를 하면 소책자로 부서표가 나갈 듯하다. 개척교회의 개척 예배가 없고, 예배당 건축 후 입당 예배가 없고, 목사 부임과 이임에도 행사가 없다. 신앙의 세계란 오로지 주일과 예배에 집중하고 각자 신앙은 자기 현실에서 말씀으로 사는 실전적 긴장만 있다. 외부를 의식도 하지 않았고 원래 표가 나지 않으니 외부에서 전혀 모르는 가운데 그냥 서부주교의 내부 상황 때문에 주교가 뜨거웠는데 외부의 시선, 외부의 방문이라는 변수가 생겨 버렸다. 타 교단이면 이런 외부적 요인은 발전에 도움이 되지만 서부주교는 주님과 동행, 주님의 대속에 감사함으로 학생을 위해 모두가 뛰어 다닌 것이 전부인데 외부의 시선과 방문이 끼어 들게 되자 주님과 동행이라는 마음에 혼선이 오고, 그리고 학생을 위해 뛰어야 하는 순간에 한두 사람 또는 그 이상을 옆에 끼고 비좁은 골목골목 불신 가정집 안에까지 들어 가야 하니 전투 현장의 군인이 제대로 싸울 수가 있을까? 당장에는 혼자 쥘 수 없는 아이들을 함께 따라 온 방문자께 맡기면 도움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크게 보면 서부교회 주교의 내면이 하나의 행사처럼, 전시회처럼, 현장 실습처럼 되어 진다. 그렇다고 주일을 포함해서 전국 곳곳에서 그 교회적 사명으로 파송 받아 온 분들을 돌려 보낸다? 그 것은 우리의 권리가 아니다.</p> > <p>이 문제뿐 아니었다. 당시의 여러 내면들을 이제 속속들이 살펴보고자 한다.<br /> > 1970년대 한국 사회는 서부교회 주일학교식 운영을 위해서는 최적기였다. 1980년대가 되니 급격하게 어려워 졌다.<br /> > 주일학교뿐 아니라 이제는 교회 자체와 예배의 존폐를 걸고 오늘은 벼랑 끝에 내몰렸다. 타 교단은 모르겠고 공회의 입장에서 보면 오늘의 교회와 예배 존폐 문제라는 환경은 서부교회 주교의 1980년대와 같아 보인다. 1970년대의 그림 같은 여건에서 우리는 역사적 결과를 만들었다. 1980년대를 거치면서 우리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의 주교 역사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내면에는 많은 문제가 있었다. 그 문제는 1990년대 이후 오늘의 서부교회 주교가 바닥이 보이지 않고 떨어 지기만 하는데 어떤 답도 없고 대책도 나올 수 없고 그리고 와해가 되는 상황을 지켜만 보는 결과를 만들었다. 백 목사님은 1989년에 별세했다. 그의 생애 전체를 통해 최후까지 그의 사명을 충성했고 그림처럼 만들고 갔다. 그 이후는 그에게 배운 이들의 사명인데 배운 이들 중에 그들의 사명이 뭔지를 생각이나 해 본 분들이 있을까 싶다. 있었다면 서부교회의 1990년 이후 모습이 이렇게 될 리는 없다. 지금 우리는 주일학교의 쇠락과 와해를 가지고 주일학교에 앞서 교회와 예배와 신앙 자체의 쇠락에 이은 와해를 살피고자 한다. 우리의 추락을 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추락을 막고 오히려 비상할 수 있는지를 찾아 보고 있다.</p> > <p>오랜 세월, 우리의 전부를 정말 다 바쳤던 우리의 서부주교에 대해 문제점이나 비판이나 반론을 적고 있다. 갈수록 이 비판은 더욱 강해 질 것같다. 서부주교를 가장 잘 알고 가장 내면에서 마음 먹고 비판을 하려 들면 온갖 이야기가 다 나올 수 있다. 다만, 이 비판을 시작하는 이유는 오늘 주교의 쇠락과 와해가 실제 다 그렇게 된 것처럼 보이는데 당시의 문제를 알고 대처한 교회는 오늘도 별 세계를 살고 있으니 오늘의 교회와 예배의 와해를 분석하고 예배와 교회를 살려 보려는 목적이다.</p> > <p>'서부주교'의 표현을 두고 좁게는 '부산 서부교회의 주일학교'를 말하고, 이 서부주교라는 단어는 항상 전국의 공회 교회들의 모든 주일학교와 중간반까지를 모두 포함한다는 것은 공회의 공회적 모든 표현에서 늘 그러한데, 최근 불신자식으로 고소하는 이들이 교회 내 단어를 세상 단어로 바꾼 다음에 가룟 유다 같은 죄를 짓고 있어 다시 당하지 않기 위함이다.</p>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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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백영희신앙노선'총괄(요약)
②'백영희신앙노선'총괄(전체)
③교리정리
④성경신학
⑤문답방정리
⑥기타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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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4
여호와여 나를 살피시고 시험하사 내 뜻과 내 마음을 단련하소서
03.04
내가 나의 완전함에 행하였사오며 요동치 아니하고 여호와를 의지하였사오니 여호와여 나를 판단하소서
03.04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려니와 무고히 속이는 자는 수치를 당하리이다
03.04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의지하였사오니 나로 부끄럽지 않게 하시고 나의 원수로 나를 이기어 개가를 부르지 못하게 하소서
03.04
여호와여 나의 영혼이 주를 우러러 보나이다
03.03
내 나이 이제 팔십세라 어떻게 좋고 흉한 것을 분간할 수 있사오며 음식의 맛을 알 수 있사오리이까 어떻게 다시 노래하는 남자나 여인의 소리를 알아 들을 수 있사오리이까 어찌하여 종이 내 ?
03.02
여호와께서 그 터를 바다 위에 세우심이여 강들 위에 건설하셨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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