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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희 신앙노선의 오늘을 고민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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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단에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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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p></p><p></p><br/>▼2004.8.27. 서부교회 4층 교인들의 백목사님 묘소 방문 중, 가운데 연세 많은 분<br><br><img border="1" height="480" src="http://paikist.net/1-boardfix/album/098-etc/soongyoil/09.jpg" style="border-color:black;" width="640"/><br><br><br><br>1.참 서부교인, 김기수<br><br>교회가 있는 부산 대신동에서 장로님 댁이 있는 감천까지 거리는 차가 막히지 않는 새벽시간 기준으로 시내버스 30분 정도 거리입니다. 매일 새벽 4시에 장로님 가정은 택시로 새벽예배를 참석하고 돌아갈 때는 시내버스를 이용합니다. 평생 하루도 빠짐없이 계속되는 그분 생활을 지켜보면 저절로 머리가 숙여집니다. <br><br>새벽기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시내버스에서 버스 승객 한 사람 한 사람을 상대로 '예수님 믿고 구원얻읍시다!' 라는 말과 함께 서부교회 전도지 '기쁜소식'을 한번도 빠지지 않고 나누는 분입니다. 대신동에서 감천으로 오가는 시내버스 승객과 기사들은 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br><br><br><br/>2.세상은 그를 낮게 봤으나, 하나님 앞에 그는 너무 위대한 초인<br/><br/>서부교회 제1의 장로님을 소개해 달라고 하면 이곳은 늘 김장로님을 말씀해 드렸습니다. 그분의 직업은 초등학교 소사입니다. 학교 마당도 쓸고 교사들 심부름을 하는 학교 머슴입니다. 요즘 학생들은 학교 수위라고 합니다. <br/><br/>백목사님 생전 16명 장로님 중 신앙과 생활에 있어 단연 제일이었습니다. 그분이 주일 예배 사회를 설 때 역사하는 성령의 감화와 감동은 다른 말로 대신할 수 없는 증거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기쁘하신다는 증거를 다 말하기에는 이곳 공간이 비좁아 훗날 다른 분들의 소개를 기다리기로 하고 오늘은 지난 8월 27일 백목사님 순교 당일 묘소를 찾았다가 잠깐 지나치며 뵐 기회가 있어 이곳을 찾는 분들께 간단한 소개만 올립니다. <br/><br/><br/>현 78세로 원래 경남 거제 사등마을 출신이며 미신이 강했던 지역과 집안 때문에 어릴 때 자신을 전도하던 친구 조재화를 비웃으며 신앙생활을 거부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이 그를 불러 믿게 하였으며 믿은 이후로는 바로 가르치는 곳을 찾게 되다가 서부교회를 알게 됩니다. 원래 초량의 정종공장에도 다녔고 술공장이니 술도 엄청나게 마셨으나 믿은 이후 하나님께서 그 술들이 전부 피로 보이게 하자 바로 끊어버리고 술공장에 다니는 일도 즉시 그만 두게 됩니다.<br/><br/>30세를 막 넘기던 1959년에 부산으로 이주하여 서부교회를 출석하게 됩니다. 김현찬집사님 구역이었습니다. 부부가 함께 골목 시장에서 장사도 하고 백목사님의 지도로 아이들 목마놀이하는 리어카를 끌며 어렵게 살았으나 믿은 이후 그리고 이 복음을 받은 이후로는 그에게 기쁨과 감사와 충성밖에 없었습니다. 몇 년 고생한 뒤 1962년 경 서면의 초량국민학교 소사자리가 나서 이후 퇴직할 때까지 성북국민학교를 거쳐 감천국민학교에 소사로 살아가게 됩니다. <br/><br/>시내 큰 초등학교 안에 제일 낮은 자리에서 학교 청소와 온갖 잔심부름을 하고 살았던 그분은 누가 봐도 세상에서 가장 못난 사람축에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 속에 복음을 가졌고 이 복음은 천하보다 귀한 보배였으니 그는 학교 안에서 가장 귀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평생 살아가게 됩니다.<br/><br/>감천초등학교에만 약 20여년 있었습니다. 소사로 평생 일하면서 이 복음에 감격하여 이 복음을 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능력을 받아 그대로 사는 분입니다. 복음의 첫날부터 하나님 앞에 서는 날까지 오직 한 길에서 처음과 나중이 같고 시작과 끝이 동일하게 걸어가는 평온한 걸음, 담대한 걸음, 단호한 걸음의 사람입니다.<br/><br/><br/>3.이 복음을 가장 외치고 싶었던 분! 실제 그렇게 했던 분!<br/><br/>서부교회의 전도는 단체 행사로 진행되는 경우가 전혀 없었습니다. 서부교회의 전도는 각자 개인이 자기 생활 속에서 말씀대로 사는 모습에서 전달되는 전도를 기본으로 하고, 또 시간이 나는 사람은 개인적으로 호별전도를 합니다. 많으면 두 사람, 보통 혼자 따로 조용히 집집마다 방문하며 조용히 전하기 때문에 전혀 소리없이 전도를 하고 있습니다. 예배 때 받은 말씀으로 자기 생활 속에서 살며 자기 현실에 따라 전하는 것입니다. <br/><br/>그러나 밖으로 드러내고 단체로 움직이는 전도는 단 하나밖에 없는데 남전도회의 전도부의 주일 단체 전도입니다. 매 주일 오전 오후 예배가 끝나면 청년들이 발이 닿을 수 있는 곳곳마다 함께 전도를 가게 됩니다. 이 전도단에는 회원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고 예배 후 잠깐 전도를 나갈 수 있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모여 움직입니다. 항상 그 중심에 서서 그들을 이끌고 움직인 분이 바로 김기수장로님입니다. <br/><br/>몇 달 하다 마는 사람, 몇 년 하다 마는 사람, 신앙의 침체기 때문에 중단하는 청년들도 있었고 교회의 다른 중직을 맡아 할 수 없이 그만 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김기수장로님은 첫 신앙에도 그 자세였고 그후 교회의 중진이 되었을 때도 그러했고 연로하여 쉬어야 할 나이에도 그러했고 서부교회 몇 안 되는 장로님으로 임명되어서도 그러했습니다. 그분은 변함이 없는 분입니다. 이 말씀의 은혜가 그를 붙들고 능력으로 그를 복음 전하는 전도인으로 삼은 결과였으며 그는 그 말씀의 능력이 붙들고 가는 대로 말없이 순종한 종입니다. <br/><br/><br/>서부교회 전도는 남 보라고 표시내는 플래카드도 없고 무슨 행사 기간을 정해서 특별히 하는 것도 피하고 있습니다. 해야 할 일이면 조용히 그리고 끝없이 계속하는 실무만 있을 뿐입니다. 때로는 10명 때로는 20명이 그날 갈 지역을 정해 놓고 그곳으로 바쁜 걸음으로 움직입니다. 머무는 곳에서 다 함께 찬송 한 장 부르고 나면 한 사람이 스피커로 10분 정도 말씀을 전하게 되고 그 동안 나머지 사람들은 주변 가정들과 행인들에게 전도지를 전하게 됩니다. 한번 움직이면서 몇 곳을 머물며 그렇게 하고 내려온 세월이 수십년입니다. <br/><br/>예배 후 조용히 모여 전도지역으로 움직일 때의 모습은 마치 아3:6-8 말씀을 연상케 합니다. 솔로몬의 연을 옹위한 이스라엘 용사 60인이 밤과 같은 죄악세상을 상대하기 위해 긴장하며 각기 그 허리에 말씀의 칼을 지니고 목적지를 향해 가는 모습이었습니다. 걸어가는 그들은 막 끝난 예배에서 배운 말씀을 잊지 않기 위해 속으로 되새기고 있었고 걸어가는 동안에 새기는 말씀이 더욱 큰 확신과 능력을 마음 속에 붓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전도할 지역에 다달으면 입에 가득 머금었던 복음을 힘있게 전하고 있었습니다. <br/><br/>전국은 비교해 볼 수 없었으나 부산 내에서는 이렇게 한 주일도 빠지지 않고 수십 년 세월동안 이렇게 힘있게 말씀을 전하는 곳은 없었습니다. 그 전도의 가장 중심에 말없이, 기쁨에 충만하여, 하늘 소망을 가득 품고, 청년들에 앞선 걸음으로 이 복음을 전하던 분이 김기수장로님입니다. <br/><br/><br/>4.서부교회의 단면을 가장 잘 담고 있는 분<br/><br/>서부교회는 잘난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도 부산 최대의 교회였고 국내 손꼽는 초대형교회였으므로 구석구석 나름대로 잘난 사람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초등학교 소사에 지나지 않는 그분을 백목사님은 서부교회 몇 되지 않는 장로님 중에 한 분으로 세웠고, 그분은 장로님들 중에 신앙에 첫째였고 실행에 첫째였으며 서부교회 교인들 중에 장차 목회 나갈 준비를 하던 모든 이들에게 장로님들 중에 가장 존경받는 신앙의 장로님이었습니다. <br/><br/>그분이 주일 예배의 사회를 서게 되면 다른 장로님들이 사회를 보며 기도하는 기도와는 확연히 다른 차원에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무식한 분이며 가난한 분이며 세상으로는 못난 분이므로 초등학교 청소나 교실 뒷치닥거리를 하는 소사였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이 복음에서는 너무 위대한 분이었으며 지금도 그 분의 모습을 어떻게 기억해야 할 경우가 되면 정신을 번쩍 차리게 합니다. 그는 이 복음을 들었고 이 복음을 아는 대로 살았던 분입니다. 말없이 그러나 끝까지 자기 생활 속에 그대로 옮겨놓고 있었던 분입니다. <br/><br/><br/>본인이 외부 교단 분들과 대화하며 서부교회를 다른 교단 다른 유명한 교회들과 비교할 필요가 있으면 항상 김기수장로님을 먼저 예로 들고 시작합니다. 교리는 복잡한 논리 싸움이 될 수 있어 상대방을 봐가며 말을 끄집어 냅니다. 그러나 김기수장로님을 예로 들면 상대방이 무식하든 유식하든 목회전문가든 초보신앙가든 그만 제일 빨리 이해하고 머리를 숙입니다. 세계 10대교회로, 국내 4대교회로 올려졌던 서부교회의 최고 장로님, 신앙과 교인들 마음에 진심으로 존경할 장로님, 그 장로님은 초등학교 청소부입니다.<br/><br/>서부교회가 서부교회인 것은 그 사람의 세상 형편과 모습과 실력이 어떠해도 그 사람이 이 복음 앞에 어떤 사람이냐는 것으로 교회 내의 위치가 결정되었습니다. 지금은 모르겠습니다. 서부교회를 가보지 않은 세월이 10년을 훨씬 넘고 있습니다. 적어도 과거는 그러했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 공부가 전부인 목회자라도 그에게 말씀과 성령의 능력이 함께 한다면 그를 진심으로 존경하고 따랐던 것이 서부교회의 원 모습입니다. 어떤 세상의 경력과 실력을 갖추어도 말씀이 아니면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던 것이 서부교회의 신앙의 저력이요 서부교회가 서부교회로 내려온 참 모습이었습니다. <br/><br/>그런 모습을 가장 잘 나타내고 있는 인물이 김기수장로님입니다. 이번 8.27. 백목사님 묘소를 찾았다가 그분을 오랜 만에 뵙게 되었습니다. 머리 숙여 인사 드리고 손잡고 악수한 순간이 비록 몇 초 정도뿐이었으나 아직도 제가 살고 있는 바로 지금 이 시대에 역사적 인물로 기록할 성자요 의인이 생존해 있고 그런 분이 자신의 발로 움직이고 있는 순간을 뵐 수 있었다는 것은 큰 복이었습니다. <br/><br/><br/>5.참으로 부러운, 그분의 가정<br/><br/>그분에게는 부인 이금순집사님과 4자녀가 있습니다. 들내지 않고 묵묵히 걸어간 그 가정에 큰 아들은 1953년생 김순봉집사님 부부로 서부교회 가장 모범적인 반사 부부입니다. 큰 딸은 중간반사 출신을 거쳐 현재 목회를 하고 있는 마호인 김인순 목사님 부부, 둘째 딸은 목회연구소 연구부를 거쳐 목회하고 있는 김영환 김인옥 목사님 부부, 막내 딸도 목회연구소 직원을 거쳐 현재 서부교회 4층 중간반사 부부로 있는 나병재 김인선 선생님 부부들입니다. <br/><br/>예수님 12제자 중에도 여러 종류의 신앙이 있으니 이 가정에도 신앙의 색채가 다를 수 있고 강조하는 면이 다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부부와 장성한 자녀들 전부가 이 복음의 가장 안에서 자랐고 활동하고 있으며 모두들 그 중심이 바르기 때문에 혹 편차가 있다 해도 복음 안에 안심할 수 있는 좋은 사람들입니다.<br/><br/>집안을 자랑하려면 이런 집안을 집안으로 자랑해야 하는 것이 신앙의 세계입니다. <br/>세상으로 자랑할 것은 없으나 오히려 주님으로 자랑할 것이 많으니 이것이 우리의 자랑입니다. <br/>온 식구들이 총공회신앙노선으로 믿는데 딴 소리가 없고 불편이 없고 눈치 볼 것이 없다면, 남들은 뭐라 할지 몰라도 우리는 이런 가족을 이상적이라고 표현하겠습니다. <br/><br/>올해 78세에도 서부교회 전임 전도인의 직책인 남권찰을 맡아 오늘도 지하철로 시장으로 다니며 '예수님 믿고 구원 얻읍시다!' 이 한 마디와 함께 전도지를 나누는 그는 이 시대 현재 진행형으로 존재하고 있는 우리의 성자요 의인입니다. <br/><br/><br/>과거 스피커를 들고 동네를 다니며 전도할 수 있던 시절 그분의 외침이 귀에 생생합니다. <br/><br/>'불심판이 옵니다!' <br/>'부산도, 영도도, 저 태평양 바다도 다 불에 타서 없어집니다!' <br/>'예수님만이 우리의 구원입니다!'<br/><br/>세상은 그의 말을 듣고 마치 그가 옛날 믿기 전에 친구의 전도를 듣고 그러했듯이 비웃고 있었으나, 그가 소개한 그 말은 하나님의 결정이므로 불원 장래 닥쳐올 실제상황입니다. 실제상황이 벌어지기 전에 미리 그는 이 말을 소개하고 외쳤으므로 그는 이 시대의 선지였습니다. 훌륭한 백목사님의 제자였습니다. <br/><br/><br/><br/>지금 부산에는 한쪽 발 무릎까지 목발을 달고서도 백목사님의 지도를 받아 시작한 하루 50집 호별전도를 하루도 쉬지 않고 계속하고 있는 92세 된 양은생집사님도 있습니다. 그분도 시간을 봐가며 소개하겠습니다. </br></br></br></br></br></br></br></br></br></br></br></br></b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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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백영희신앙노선'총괄(요약)
②'백영희신앙노선'총괄(전체)
③교리정리
④성경신학
⑤문답방정리
⑥기타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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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의답변
쉬운문답
발언/주제연구
연경교재
참고연경
일반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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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4
여호와여 나를 살피시고 시험하사 내 뜻과 내 마음을 단련하소서
03.04
내가 나의 완전함에 행하였사오며 요동치 아니하고 여호와를 의지하였사오니 여호와여 나를 판단하소서
03.04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려니와 무고히 속이는 자는 수치를 당하리이다
03.04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의지하였사오니 나로 부끄럽지 않게 하시고 나의 원수로 나를 이기어 개가를 부르지 못하게 하소서
03.04
여호와여 나의 영혼이 주를 우러러 보나이다
03.03
내 나이 이제 팔십세라 어떻게 좋고 흉한 것을 분간할 수 있사오며 음식의 맛을 알 수 있사오리이까 어떻게 다시 노래하는 남자나 여인의 소리를 알아 들을 수 있사오리이까 어찌하여 종이 내 ?
03.02
여호와께서 그 터를 바다 위에 세우심이여 강들 위에 건설하셨도다
+
새댓글
공회교인
6시간전
참 감사할 일입니다. 그저 고맙고 감사할 뿐입니다
ysha
6시간전
저도 그 사모님이 그립습니다.
교인
6시간전
목사님, 늘 변함없이 칠흑같은 바다를 비추어지눈 등대처럼 바른 길로 인도해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늘 건강하시…
황선욱
6시간전
'성자'라는 표현은 쓰지 않는 것이 좋다고 봅니다. 말 그대로 '거룩할 성'이므로, 사람에게 쓰는 것은 좋지…
13.11.02
12.21
이 노선의 우리가 지켜 볼 이유와 사연이 있는 볼리비아 선교회 고광문 목사님이 보내 온 소식입니다. '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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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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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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