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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희 신앙노선의 오늘을 고민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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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단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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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목록 > 1. 서영준. 그는 후계자였다. 그러나 동지가 없었다. > 2. 후임을 위해 개인 일들을 적는다. 오늘 일이기 때문이다. > > > > > > > > 1. 서영준 목사님 > > (인물의 신앙면) > 전남 장흥 사람이다. 부모님이 서울 서대문 어려운 동네에 살았다. 좀 멀지만 걸어서 사직동교회를 다녔다. > 그는 사직동 시절이나 서부교회 시절이나 서부교회의 중간반을 맡았을 때나 후계자로 지목을 받았을 때도 동지가 없었다. > 학생 때는 공부만 했고 교회에 오면 가장 성실한 교인이었다. 서부교회 10년 세월에도 늘 말이 없었다. 그냥 자기 일만 했다. > 그는 누구와 경쟁을 하거나 견제한 적이 없다. 누구에게도 친절했다. 누구도 꺼리고 피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것이 전부였다. > > 그를 비판하거나 경쟁 상대로 알거나 견제하려 든 이들은 많다. 우선 1980년대에 공회를 탈퇴한 이들은 거의 다 해당이 된다. > 탈퇴하지 않고 공회 내에 있다 해도 그에 대한 비판은 참으로 심했다. 서부교회 1층 출입문 입구에 떼로 모여 성토를 했었다. > 백 목사님의 사위라서 순위를 밟고 넘어 섰다는 말, 공부만 했지 현실을 모르고 교인 입장을 모른다는 말... 참 비판이 많았다. > 그 중에서 백 목사님의 자녀 중에서 나온 견제가 가장 극심했다. 입에 담지 못할 표현들이 나왔다. 후계자에 밀렸기 때문이다. > > 2013년에 시작 된 수 없는 고소 사건의 배경도 여기에서 시작 되었다. 여러 배경 여러 과정이 있었지만 절정은 후계 문제였다. > 백 목사님의 후계자를 자처하는 분이 연구소 구 게시판에 서영준 목사님이 유일하게 후계자로 지목 됐다는 말에 격분을 했다. > 나머지 가족이 동조하는 형국이 되었다. 무엇이 본질이며 목표인지 무엇이 단합하도록 자극했는지 알기나 하는지 모르겠다. > 가족이 일제히 고소에 합심을 하든말든 내게는 서영준 목사님이 백 목사님 생전에 유일의 후계자라는 사실이 바뀌지 않는다. > > 서 목사님에 대한 아쉬움이란 내게도 있다. 백 목사님의 수준은 아니었다. 그러나 후계자로 지목한 결정은 갈수록 이해한다. > 그 분에게 직접 배운 것은 거의 없다. 그러나 그 분을 마음에 생각하면 그냥 느껴 진다.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감탄이 된다. > 그 분이 백 목사님 사후를 맡았더라면 나는 아랫 사람의 충성이란 어떤 것인지 보였을 듯하다. 서로에게 주신 장점이 있다. > 나는 지도자 위치는 남의 옷처럼 어색하다. 나는 지도자를 모실 때는 나은 편이다. 집안 내력에 그런 면이 좀 있는 듯하다. > > > > (그에게는 동지가 없었다.) > 그는 동지를 따로 만들지 않았다. 만드려 하지도 않았고 만들 틈도 없었다. 그냥 자기 위치에서 자기 할 일에만 전력한다. > 공회의 노력은 하나님과 자기 관계에서 찾는다. 하나님과 만나는 시간 하나님과 대화 시간이 얼마인가? 그 것이 신앙이다. > 여유 시간이 있다면, 말씀을 한 번 더 읽는다. 기도한다. 이 시간 이 교제에 붙들려 옆에 사람이 잘 보이지 않아야 신앙이다. > 하나님께 붙들린 사람이 주변의 사람을 붙들면 하나님과 함께 한 능력과 은혜가 건너 가게 된다. 이 것은 인간 관계라 한다. > > 온전하게 된 사람은 하나님과 하나 되면서 사람과 하나 되는 관계를 정확하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온전이란 쉽지 않다. > 사람을 접하면 자기도 모르게 하나님과 멀어 진다. 아이를 가까이 하면 남편과 멀어 질 듯하다. 꼭 같이 함께 할 수는 없다. > 다른 교회 다른 조직이라면 하나님을 가까이 한다면서 조직 내 주요 인물을 붙들지 못하면 지도자로서는 역할 할 수 없다. > 하나님과 좀 멀어 져도 사람을 챙겨야 교회와 조직이 유지 된다. 서 목사님은 이런 면에서는 애초부터 지도자감이 아니었다. > > 바로 이 점 때문에 서 목사님이 그립고 존경이 되어 진다. 그 어느 때라도 그 어느 순간에도 늘 주님을 모신 모습이 선하다. > 백 목사님의 사진을 유심히 살펴 보면 그의 시선은 늘 그 마음에 붙든 주님 때문에 사진의 주제나 배경에 어울리지 않는다. > 백 목사님 사진 속 시선을 볼 때마다 서영준 목사님의 표정이 생각난다. 그리고 그 분이 늘 주력했던 하나님 동행이 부럽다. > 70년대 10여년을 서부교회는 주일학교 출석이 매해 1천명씩 부흥을 하며 폭발적 성장을 했다. 그래서 중간반이 출발한다. > > 백 목사님은 양성원 교학실을 맡던 서 목사님을 중간반 부장에 앉히고 전임 반사들과 2천 명 중간반 출석을 인도하게 했다. > 중간반 반사는 늘 바뀌었지만 유급 전도사와 같던 분들이 30여 명이 넘었다. 1주일 내내 새벽부터 밤 12시까지 심방을 했다. > 원칙적으로 부부 반사로 유지가 되어 남녀 선생님은 각각 남녀반을 맡았다. 매주 주일 오전 출석만 50 명에서 1백 명이었다. > 30명 이상의 유급 반사들과 2천명의 출석 중고교생들을 맡아 그 분은 헌신했다. 그들의 희생과 충성은 상상 자체가 어렵다. > > > > (반사들의 반발) > 서 목사님은 따뜻했다. 따뜻함을 보여 줄 기회는 별로 없었다. 바빴기 때문이다. 사람을 아꼈다. 아끼는 표는 나지 않았다. > 서 목사님을 공연히 경쟁 견제하던 분들은 스스로 사람을 아끼며 챙기고 따뜻하다고 자기 홍보를 했다. 실은 그 반대였다. > 백 목사님은 중간반을 교회의 모든 업무 중 최우선으로 챙겼다. 지원도 최우선이고 대우도 그렇고 독촉도 당연히 그러했다. > 서 목사님은 충신이다. 당연히 충성을 했다. 본인 스스로 반을 맡아 심방을 했고 전도를 했다. 그리고 반사를 직접 챙겼다. > > 이런 상황이 되면 일반 반사들로서는 반응이 2가지로 나온다. 실무를 잘 아는 분이 실무를 챙기면 어디 숨을 곳이 없어 진다. > 바로 이런 상황 때문에 복 있는 사람은 자기들을 챙겨 주니 감사하다고 하면 좋겠다. 그런데 원망과 불평들이 시작이 되었다. > 뒤로 비판하는 사람, 버티는 사람, 몇몇은 모여서 고라 당파처럼 직접 대 들기도 했다. 1982년이 되자 통제가 어려워 졌다. > 이유가 없지는 않다. 책임자 서 목사님은 후계자여서 가장 엄하게 요구를 하면서 일반 반사들의 발언은 모두 수용을 했었다. > > 무조건 수용은 아니다. 일반 반사들의 발언, 이의, 제안이 있으면 백 목사님은 부장에게 꼭 같은 위치에서 해명을 요구한다. > 이렇게 되면 부장과 반사가 일대 일로 토론을 해야 한다. 30명이 넘는 반사들은 이해 관계가 같다. 조금 쉽게 가고 싶다. > 서 목사님은 전체를 책임 진 분으로서 더 충성하자는 방향이다. 더 나아가 각 반사들이 맡은 학생들의 입장을 먼저 생각한다. > 학생들을 위해서 반사들이 할 일을 요구한다. 반사 대부분은 각자 백 목사님과 직접 여러 관계를 가지고 있다. 대들기도 했다. > > 1980년, 1981년의 여름 집회 때 중간반은 관광버스 50여 대가 움직였다. 나는 차량 한 대를 맡았고 중간반 보조를 했었다. > 폭우가 쏟아 진 집회 장소의 숙소가 엉망이 될 때 서 목사님은 전체 학생들 때문에 지휘를 하고 있었으나 모두 흩어 졌다. > 서 목사님 옆에서 나만 남아 있었다. 중간반 반사, 단 1명도 빼지 않고 전부가 미웠다. 옆에 있었다면 주먹이 나갈 정도였다. > 서 목사님의 고생이 어느 정도인지 그 때 더욱 절감했다. 그 때 그 대들던 반사들이 지금 각 공회의 60대 중진들이 되어 있다. > > 이제는 그들도 각 교회에서 수십 년 목회자이고 각 공회의 원로 대신들이 되었으니 서 목사님의 당시 어려움을 이해나 할까? > 중간반 반사는 70년대 말에서 80년대 초중반을 함께 고생한 특별한 과거 때문에 공회와 노선을 넘어 서며 만나는 모양이다. > 충분히 이해한다. 일반 군대를 다녀 와도 반갑고 평생 동지가 되는데 아주 특별한 부대에서 고생하면 전우애란 더 뜨겁다. > 중간반 반사 출신들의 반가움은 이해를 한다. 그러나 그들 모습을 볼 때마다 공회의 후계자로서 서 목사님을 그들은 몰랐다. > > > > (그 분은 과충으로 가셨다.) > 일반 목회자들이 충성을 할 때보다 두세 배를 충성했다. 그냥 어느 정도가 아니라 속에 든 힘을 다 빼 버렸다. 결국 무너 졌다. > 나는 운구할 때 중간반 반사들과 함께 했다. 그들은 지난 날 그 분 밑에서 함께 할 때 그들이 어떻게 했는지 알기나 할까? > 그에게는 동지가 없었다. 자기 밑에 사람들을 자기 사람으로 만드는 방법은 쉽고도 많다. 교회 돈으로 해결해 주면 된다. > 목사님은 진실했고 자기에게 더 엄했고 같은 이유로 교회를 위해 다른 교회처럼 타 조직처럼 그렇게 돈을 쓰지 않았다. > > 쉴 틈을 조금 주면 된다. 그 분이 주지 않았겠는가? 충분하게 줬다. 그런데 돈과 기회를 사용하는 사람은 더 요구하게 된다. > 아무리 잘 해 준다 해도 겉으로는 동지가 되지만 신앙의 동지가 되는 것은 아니다. 신앙이 같아야 신앙의 동지가 된다. > 돈과 함께 업무 관리를 느슨하게 해 주면 눈 앞에서 죄를 짓는 동지가 되는 것은 쉽다. 빌라도와 헤롯의 화해는 아주 쉽다. > 그러나 진리의 길은 주님이라 해도 그 12명 제자조차 데리고 가지 못했다. 자기를 다 바치고 간 분, 오늘 따라 부럽고 그립다. > > 백 목사님의 세계는 사실 올려다 보기가 버겁다. 서 목사님의 세계는 따라 가기는 어려워도 올려다 보는 것은 버겁지 않다. > 그런데 생각해 볼수록 버거워 진다. 그 분에게는 백명희 사모님이 옆에 계셨다. 부부가 함께 계셨다면 참으로 완벽했다. > 그런데 서 목사님만 1987년에 가셨다. 서 목사님이 가시게 되자 백명희 사모님은 흔들렸다. 모두가 더 강하다고 여겼다. > 그러나 남편은 머리라고 했다. 정상이면 머리가 없어 지면 멀리 보고 바르게 가는 것은 어렵다. 힘은 있지만 길이 달라 졌다. > > 서 목사님 때문에 1989년 백 목사님의 순교 때를 전후하여 우리는 백명희 사모님과 하나였다. 연구소와 중간반이 좋았었다. > 서 목사님이 계셨다면 계속 되었을 이 관계에 중간반 반사들, 89년의 반사들이 아니라 중간반 제도 초기 반사들이 문제였다. > 이들이 그 때처럼 다시 백명희 사모님과 연구소 관계를 떼 놓았다. 우리는 해명하거나 맞 상대하지 않았다. 그냥 버려 뒀다. > 그리고 그 반사들 원하는 대로 연구소가 사모님과 나뉘게 되자 그 반사들은 천방지축 전쟁을 시작했다. 지금은 다 사라 졌다. > > > > > > 2. 오늘을 돌아 볼 내일을 위해 > >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한다) > 마6:34은 주님이 주신 현실은 진행 중인 과제니 이에 주력하고, 그 다음 단계는 주님께 맡기라는 말씀이다. > 행1:7에서 때와 기한은 우리 알 바 아니라 했다. 마찬 가지 말씀이다. > 요셉과 다윗과 모든 성도들이 그렇게 살았다. 그래서 오늘도 성경을 정말 그대로 믿는 사람은 다음은 맡기고 현실에 충성한다. > > 공회는 이 말씀 때문에 교회의 1년 예산을 세우지 않는다. 조직을 책임 져 봤거나 회계 집행을 아는 사람이 보면 말이 안 된다. > 예산 자체를 세우지 않는 교단, 그런 교회가 있을까? 공회는 그렇게 해 본 적이 없다. 그런 곳이 있다면 공회를 벗어 난 것이다. > 바로 이 원리 때문에 백 목사님은 후계자를 세우지 않고 가셨다. 모두가 후계자론을 설파 했으나 알면서도 맡기고 가셨다. > 바로 이 원리 때문에 연구소는 후임을 생각하지 않고 최근까지 운영했다. 그냥 공회가 그런 곳이고 성경이 그렇게 되어 있다. > > > > (염려할 내일이면 이미 오늘이다) > 있는 힘을 다해야 할 오늘은 어디까지며, 마음에 담지 말아야 할 내일은 언제부터일까? 달력과 시계를 가지고 선을 긋는가? > 지금 상황에 포함이 되었다면 오늘이다. 현재 상황으로 전혀 알 수가 없다면 내일이다. 주어 진 상황인지 아닌지가 경계다. > 재림은 미래다. 내일이 아니라 그 다음이다. 그런데 재림은 언제일지 아예 알 수 없기 때문에 늘 '오늘'에 주어 진 과제가 된다. > 수술실에 들어 가는 가족의 담당 의사를 살피고 결정하는 것은 오늘이다. 일단 수술실에 들어 가면 그 결과는 내일 일이 된다. > > 1998년 사이트를 시작할 때는 후임을 생각할 상황이 아니었다. 모두 많이 질문했고 염려해 주셨으나 그 때는 내일 일이었다. > 2021년 현재 이 곳은 여러 '담당'이 함께 진행을 하고 있다. 20년을 도맡아 온 '담당'의 현재 건강 상태란 오늘 일이기 때문이다. > 2018년 이전의 수고가 이후에도 이어 져야 한다는 점 때문에 2018년 이후의 담당들이 공용하는 곳에 개인 글을 올리고 있다. > 나의 개인 글은 내가 부공3의 지도 위치를 가진 면이 많아서 자랑처럼 오해하기 쉬우나 잘 살피면 거의 부끄러운 내용이다. > > 적는 이유는 단 한 가지다. 이후를 맡아야 분들과 모든 분들에게 도움이 될 가능성 때문이다. 선후천적으로 못난 사람이다. > 자라 나온 과정을 아는 모든 분들이 알고, 교회 직원이 된 후에는 공회사에 비판을 제일 많이 받기 때문에 알려 진 사실이다. > 대구공회는 백 목사님의 살인 배후범이라 했고, 부산공회는 3번이나 제명을 했으니 뒤로는 얼마나 비판을 많이 했겠는가? > 이 곳 우리 공회와 연구소에서는 가장 중심 인물들이 수백 건의 고소를 도와 가며 파렴치라고 8년째 비판을 하고 있다. > > 이렇게 못났고 잘못 된 것이 많은 것은 사실이나 그렇다고 다 틀렸기야 하겠는가? 몇 가지 훗날 필요하도록 남길 것도 있다. > 내게 대한 고소 내용이나 비판은 늘 사이트에 대대적으로 공개했다. 그 때마다 고소자들이 공개를 말라고 또 고소를 했다. > 고소자들만 동의한다면 고소자들의 모든 고소 내용을 늘 공개할 수 있다. 고소란 그들이 억울하고 나는 나쁘다는 내용이다. > 담당들만 읽으라고 사무실의 담당들 공용 장소에 올린 글이 외부에 올렸다는 말을 들었다. 내용이 많아 확인도 하지 못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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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백영희신앙노선'총괄(요약)
②'백영희신앙노선'총괄(전체)
③교리정리
④성경신학
⑤문답방정리
⑥기타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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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언/주제연구
연경교재
참고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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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4
여호와여 나를 살피시고 시험하사 내 뜻과 내 마음을 단련하소서
03.04
내가 나의 완전함에 행하였사오며 요동치 아니하고 여호와를 의지하였사오니 여호와여 나를 판단하소서
03.04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려니와 무고히 속이는 자는 수치를 당하리이다
03.04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의지하였사오니 나로 부끄럽지 않게 하시고 나의 원수로 나를 이기어 개가를 부르지 못하게 하소서
03.04
여호와여 나의 영혼이 주를 우러러 보나이다
03.03
내 나이 이제 팔십세라 어떻게 좋고 흉한 것을 분간할 수 있사오며 음식의 맛을 알 수 있사오리이까 어떻게 다시 노래하는 남자나 여인의 소리를 알아 들을 수 있사오리이까 어찌하여 종이 내 ?
03.02
여호와께서 그 터를 바다 위에 세우심이여 강들 위에 건설하셨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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