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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희 신앙노선의 오늘을 고민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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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단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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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세상과 접한 여러 종류의 사례들> > > 공회에 내려 온 상식을 간단히 모아 본다. 더 구체적인 자료나 착오가 있으면 보충을 바란다. 자료의 전부는 아니다. > 방역 문제만을 들여다 보면 여간 우수해도 큰 흐름을 놓치기 쉽다. 세계사는 서 박사님이 잘 안다. 우리에게는 공회사도 있다. > > * 신사참배 거부 > 경찰이 신사에 절하러 오라 할 때 가지 않았다. 교회가 동방요배를 하라 할 때 하지 않았다. 다니던 교회가 하자 할 때 거부했다. > 이는 목숨 걸고 하지 않을 각오였다. 그러나 거부의 표면 이유는 일본이 한일합방 때 신앙 자유를 약속했다는 조약을 제시했다. > > * 예배당의 징발 > 면에서 마을 사람들에게 일본어 강습을 위해 장소를 빌려 달라 할 때 거절했다. 강제 징발하자 옆 집으로 옮겨 예배를 드렸다. > 예배당이라는 것은 교회가 아니라 교회가 사용하는 건물이니 건축물이라는 재산 문제로는 다투지 않고 자리를 비켜 주었다. > > * 창씨개명 > 면에서 집안의 성씨를 바꾸는 창씨개명을 요구하여 창씨개명을 했다. 조상에게는 배은이 되지만 이 문제로는 다투지 않았다. > > * 두발 거부 > 일제 말에 전 국민의 전투 자세를 고취한다며 두발을 짧게 깎게 할 때 머리를 정상으로 기르고 다녔다. 요주의 인물로 찍혔다. > > * 해방 후 건축기념 축사 > 고제초등학교에서 개최된 해방 기념 면민 대회에 축사를 부탁 받고 기념 연설을 했다. > > * 여운형의 건준 가입 > 해방 직후 여운형의 건국준비위원회가 건전했을 때 잠깐 고제 책임자로 거창읍에는 오 읍장이 책임자였고 뒤에 사돈이 된다. > > * 거창 기독 단체 결성 거부 > 해방 직후의 혼란을 수습하는 과도기를 지나면서 사회 전체가 좌우 대립을 하자 거창의 교인들이 기독 단체를 결성하게 된다. > 이 단체는 주남선 목사님이 1922년 청년 시절에 주도해서 만든 적이 있었는데 해방 후 다시 조직 될 때 백 목사님은 불참한다. > > * 거창 인민위원회 결성 반대 > 해방 직후 건준은 좌우를 가리지 않았으나 몇 달 후 건준 내 공산 세력이 인민위원회를 결성할 때 고제지부 결성을 막았다. > 이로 인해 지방 좌익에게 극우파로 찍혀 1948년에 사망에 이를 정도의 테러를 당했고 6.25 점령 기간에도 숙청 대상이 된다. > > * 국기배례 거부 > 1948년 정부 수립과 동시에 태극기가 국기가 되고 국기배례가 시행 되자 주일학생까지 단체로 거부하여 사회적 사건이 된다. > 끝까지 거부했고 1950년 정부는 국기배례를 국기에 주목으로 변경했으나 1972년 유신 때 제천 남천교회 사건이 발생한다. > 정부 조처가 불법임을 입증하여 대법원에서 무죄를 받는다. 공회의 국기배례거부는 국기를 모독한 죄가 아니라고 결론 났다. > > * 국기경레 허용 > 국기에 머리나 몸을 숙이는 것은 어떤 구호에도 절이니 거부하나 모자 쓴 학생 거수와 총을 가진 군인 거총은 상관이 없다. > 박해를 피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세상이 정하는 그들의 정의가 천차만별이므로 교인은 성경 원칙만 지킨다는 입장이었다. > > * 계엄령 통금 거부 > 1951.12.~1952.3. 지리산 공비 토벌을 위한 통행 금지의 함양 전투 지역에 70개 넘는 초소의 발포를 무시하고 사경회를 갔다. > 공비 토벌 작전에 결과적으로 방해가 된다 해도 정해 진 예배의 인도 때문에 강사는 자기 목숨을 내 놓고 갔다. > > * 목회자의 교인 복지 사업 대행 > 거창의 나환자 마을인 양혜원에 공회 교회를 설립 시켰고 목회자에게 원장을 돕도록 총무를 맡겨 복지 사업을 직접 도왔다. > 사업이 크지고 국고가 많이 유입 되면서 마을 내 의견이 나뉘게 되자 목회자에게 손을 떼게 하여 원장의 원망을 평생 들었다. > > * 화폐교환 포기 > 1962년 6월 10일, 주일인데 화폐 교환을 실시했고 이 날이 지나면 휴지조각이 된다는 상황에서 주일 때문에 돈을 포기했다. > > * 종교 지도자의 국가 교육 불참 > 유신 정권의 새마을 교육과 5공 정권의 사회 정화 교육 등 교회나 목사를 상대로 진행하는 단체 결성이나 교육은 불참했다. > 군대 내 목사 임명인 군목, 경찰서 담당 목사 제도인 경목 등은 혜택이 지대하지만 공회는 기본적으로 늘 불참 거부했다. > > * 육영사 여사 장례식 조의 표시 > 공회의 전국 교회에 육영수 여사의 장례 기간에 검정 리본을 가슴에 다는 조의 표시를 교인들이 하도록 지도를 했다. > > * 5공 정권의 교회 법인화 거부 > 교회의 법인화를 강제하는 제도가 시도될 때 이 제도 자체가 성경에 죄 되지는 않으나 교회 해체를 각오하고 불참키로 했다. > > * 교회 부동산의 등기를 위한 단체 등록 > 교회가 부동산을 취득하고 등기를 하려면 단체의 고유 번호를 발부 받아야 하며 이를 위한 단체 등록은 공회와 교회가 했다. > > * 청와대나 정부와 협의 > 청와대가 사회 제도에 대한 의견을 문의했을 때 가등기 제도의 불합리를 지적하여 반영 된 경우가 있다. > > * 권력자 교인에 청탁 금지 > 황길태 장로님이 남해 군청 등 공회 교회 소재지 군수로 부임할 때 해당 지역 공회 목회자들에게 어떤 청탁도 금지 시켰다. > 그러나 몰래 부탁을 해서 혜택을 보는 경우를 따로 조사하거나 막아 서는 노력 역시 하지 않았다. > > * 사법고시 주일 시험의 변경 > 1970년대 사법시험 1차가 주일로만 계속 될 때 공회 교인인 김증한 교수를 통해 평일 시험으로 돌려 교인의 응시를 도왔다. > > * 유학생 서류 발급의 내용 조절 > 공회 양성원은 정규 학교를 거부했으나 미국 유학 가는 학생을 위해 Seminary로 표시했으며 이는 신학대학원을 의미했다. > 또 유학생의 미 대사관 비자 발급과 미국 신학교의 입학 허가에 필요한 재정 보증서는 형식만 갖춰 제출했고 실상은 달랐다. > > * 교회의 사회 책임자 선임 > 목회설교록을 출간할 때 토씨 하나 돈 1원 하나까지 백 목사님이 지시를 했으나 출판 책임자는 20대 청년을 형식으로 세웠다. > 서부교회 화재 책임자를 강행수 교인으로 선임했다. 서부교회의 건물과 운영은 물 고리 하나까지 백 목사님이 실제 지시했다. > 실제 책임자는 타 단체나 타 교회와 달리 명확하게 백 목사님의 단독 지시에 따르지만 법적 책임은 형식적으로 분리했다. > > * 교회의 폭행이나 고소 > 교회가 세상에게 요구하는 진정 신청 고발 고소를 하나로 묶을 때 서부교회는 교회 차원에서 도둑 수상한 사람을 고발했다. > 교인 중 억울한 사람에게 고소를 통해 해결하도록 지도를 했다. 예배당에 침임한 도둑은 현장에서 폭행해서 해결하기도 했다. > > * 5공의 단군 신사 추진 반대 > 정부가 단군 동상을 추진하며 일제 때 신사를 흉내 내려 하자 고신을 중심으로 교계가 반대했다. 반대 서명에는 동참을 했다. > 그러나 행동으로 나서는 등의 활동이나 교계의 여러 직함은 일절 사양했다. 정부 정책에 정식으로 반대의 뜻은 밝힌 것이다. > > * 좌익에 대하여 설교로 비판 > 1980년대 10여 년 백영희는 국내 좌파에 대하여 설교를 통해 비판을 했다. 당시 국내 좌익 비판에는 백영희가 독보적이었다. > 우익이 잡을 때는 경제와 안보에 대한 면은 극찬을 했으나 두고 갈 땅에 우리의 신앙을 뺏긴다는 설교는 빠진 적이 없다. > > > 백영희를 모르는 공회의 새 신자, 공회의 어린 세대는 백영희가 정치나 불신 사회에 대하여 언급을 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 철은 없어도, 사상에 사람이 변질이 되었다 해도, 인터넷 검색을 해 보면 알 것인데 그 방면의 전문가조차 굳이 아니라 한다. > 누구를 지목했는지 당사자는 이런 글이 나올 때마다 읽고 있을 것이다. 외면을 해도 이 글이 마음을 울리고 있을 것이다. > 양심을 평생 주장했으나 막상 보니 양심을 만나 본 적도 없는 듯하다. 이 노선을 평생 외쳤으나 이 노선에 근처도 간 적이 없다. > 그리고 아무리 교인이 적다 해도 그리고 그 교인이 이런 식이 될 때 목사가 외치지 않으면 종교 사업가에 지나지 않는다. > > > (진행 중)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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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백영희신앙노선'총괄(요약)
②'백영희신앙노선'총괄(전체)
③교리정리
④성경신학
⑤문답방정리
⑥기타정리
자료
분류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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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의답변
쉬운문답
발언/주제연구
연경교재
참고연경
일반자료
남단에서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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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글..
03.04
여호와여 나를 살피시고 시험하사 내 뜻과 내 마음을 단련하소서
03.04
내가 나의 완전함에 행하였사오며 요동치 아니하고 여호와를 의지하였사오니 여호와여 나를 판단하소서
03.04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려니와 무고히 속이는 자는 수치를 당하리이다
03.04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의지하였사오니 나로 부끄럽지 않게 하시고 나의 원수로 나를 이기어 개가를 부르지 못하게 하소서
03.04
여호와여 나의 영혼이 주를 우러러 보나이다
03.03
내 나이 이제 팔십세라 어떻게 좋고 흉한 것을 분간할 수 있사오며 음식의 맛을 알 수 있사오리이까 어떻게 다시 노래하는 남자나 여인의 소리를 알아 들을 수 있사오리이까 어찌하여 종이 내 ?
03.02
여호와께서 그 터를 바다 위에 세우심이여 강들 위에 건설하셨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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