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KIST
백영희 신앙노선의 오늘을 고민하는
목회 연구소
총공회 목회연구소
0
총공회
백영희
보관자료
연구실
행정실
활용자료
참고자료
총공회
총공회 소개
인물/사건
소사/일지
역사자료
목회 연구소
역사
참고
백영희
보관자료
추가자료
출간 설교록
미출간 (준비)
설교록 발췌집
연구서적
출간목록
연구실
행정실
행정
보관
정정
회원/후원
활용자료
교리 정리
성경신학
[설교류]
원본설교(확정)
원본설교(검토)
성경단어사전
주교공과
[사전류]
교리성구사전
주해사전
용어사전
예화사전
메모사전
각주사전
참고자료
메인
총공회
백영희
보관자료
연구실
행정실
활용자료
참고자료
0
남단에서
     
명상 또는 추천의 글
홈 > 연구실 > 남단에서
이 게시판에는
이 홈
에 올려진 글 중에 이곳에서 따로 소개하고 싶은 글도 포함됩니다
.
남단에서 글답변
이름
필수
비밀번호
필수
분류
비밀글
날짜
제목
필수
내용
웹에디터 시작
> > > (항상 두 길! 오직 한 길!) > 공회을 신앙 노선 차원에서 설명할 때 이 표현은 공회의 모든 것을 다 담게 된다. 마치 공회 교리가 기능구원에 다 담기듯이. > 어떤 난관을 거친 뒤에도, 어떤 고차원의 길을 걷는다 해도, 절정에 섰다고 확신이 드는 그 순간에도 항상 두 길이 기다린다. > 자존 완전의 하나님께서 목적을 정할 때도 외길이 아니라 두 길 중에 하나를 '선택'했다. 죄로부터 구원을 목적 안에 두셨다. > > > (백영희 생전을 돌아 본다.) > 1936년에 백영희는 신앙을 출발한다. 이 연도는 백영희 자녀들조차 모른다. 한 분은 알지만 여러 입장 때문에 평생 침묵이다. > 일제 말 신사참배 환란이 시작할 때 백영희는 신앙을 출발했고 그 때 주변에는 스승이 많았으나 주남선만 오직 한 길이었다. > 백영희는 믿는 순간, 흑암의 절망에서 천국을 발견했고 신앙의 모든 것이 천상의 세계인 줄 알았으나 알고 보니 두 길이었다. > 신사참배를 이긴 불과 몇 동지조차 해방이 되자 한국교회는 이들을 다시 제명했고 동지들조차 내부적으로 또 둘로 나뉘었다. > 신사참배를 승리한 몇몇 동지가 모인 고신에서도 다시 제명을 당한 백영희, 이제 그를 따르는 공회로 모였으니 하나였을까? > 공회라는 이름으로 모인 것이 1966년, 바로 다음 해 1967년 바로 밑에 동생이자 공회 최고의 실력가였던 백영익은 탈퇴한다. > 몇 년 간격으로 김석준, 신도범, 장렬, 송용조 목사님들이 탈퇴했고 1989년 돌아 가실 때까지 늘 공회는 항상 두 길이었다. > > > (사후, 부공3을 돌아 본다.) > 현재 총공회는 5개 공회로 나뉘어 운영된다. 부공3은 작은 규모지만 누구라도 그 역사성 정통성 정체성은 부인하기 어렵다. > 부공3의 초기부터 가장 중심에 선 분들이 2010년대 중반을 거치며 탈퇴했다. '항상 두 길! 오직 한 길!' 이란 원칙을 따랐을까? > 항상 두 길인데 교회사를 모르는 이들은 부공3만은 정말 하나인 줄 알고 주님 오실 때까지 하나로 간다고 생각을 하게 된다. > 항상 두 길이니 나뉘지 않아도 되는 것을 둘로 나누라는 것이 아니다. 하나인 줄 알고 꼭 하나로 가려 해도 분화가 되고 만다. > 왜 한 길 안에 항상 두 길이고 왜 결국 다시 나뉘어 한 길만 남게 되는가? 성령과 악령이 자라 가는 우리를 당기기 때문이다. > > 1967년, 백영익 목사님은 상식적이고 합리적이며 도적적이다. 그렇다면 공회와는 성향이 달라 함께 갈 수는 없다. > 1971년, 백영익을 넘어 설 정도의 인물이다. 그런데 신학에 대한 활용 입장이 달랐다. 신학이 다르면 할 수가 없다. > 1979년, 백태영 목사님과 갈등이 격화 되면서 소외가 된다고 생각해서 나간다. 그렇다면 달리 해결할 방법은 없다. > 1981년, 교회 이동이 잦게 되자 수용할 수가 없어 개척을 했다. 배우겠다는 마음이 없다면 독자로 갈 수밖에 없다. > 1987년, 공회의 운영을 두고 미국에서 배운 개혁주의 노선을 선호했다. 공회의 구조와 방향에 이의가 있어 나갔다. > 1990년, 비록 사후지만 백태영 목사님은 정확히 공회를 탈퇴한다. 가장 먼저 나갔어야 했다. 하나 같았으나 달랐다. > > 공회를 나갔으니 우리는 비판한다. 그러나 객관적으로 보면 단순한 분리다. 교파를 만들거나 이끌 교계적 거물들이었다. > 공회는 그들이 틀렸다고 본다. 조금만 고치면 되는데 고비를 넘기지 못했다고 본다. 함께 있었다면 공회는 굉장했을 덴데... > > > 연구소를 운영하는 부산공회는 앞에 예를 든 탈퇴자들을 기준으로 볼 때 그들의 자녀 수준이고 주일학교 학생 정도였다. > 그들은 공회 1세대고 이 곳은 공회의 2세대다. 그러나 반복과 순환을 통해 기르시는 주님의 원리 때문에 이치는 같다. > 부공3의 역사를 통해 나뉜 이들을 살펴 본다. > > 1997년, 김석준 목사님과 비슷한 이진헌, 생전 설교록 발행인 이민영 이도영 목사님이 나갔다. 대세를 택했다. 이해한다. > 1998년, 서부교회 주교 총무로 유명한 장영목, 부공3의 출발 목회자였으나 부흥에 필요하면 노선을 희생한다고 말했다. > 2015년, 생전 공회 백영익과 같은 위치와 실력자인 이신영, 합리적이며 상식적이며 도덕적이다. 불만은 당연해 보인다. > 손돈 김형렬 목사님 김정수 장로님, 왜 동반 탈퇴를 했을까? 아무래도 모르겠다. 굳이 말한다면 개인 사정이다. > > 부공3은 개인의 나라 사랑과 민주화 소신을 공회 노선이 따라 갈 수는 없다. 처음에는 기다리나 끝까지 도울 길은 없다. > 부공3은 교인이 손해를 보더라도 목회자의 마음이 편해야 한다는 입장을 수용하지 않는다. 최선을 다해 도우려 했었다. > 부공3은 수고한 목회자를 칭찬하고 알아 주고 높여 주자는 입장을 받지 않는다. 목회자를 감싸는 순간 교인이 희생한다. > > 이 인물들은 공회에서 안수를 받은 분들이어서 공인으로 이름을 적는다. 안수를 받지 않았으나 더 뛰어 난 분도 많았다. > 총공회 전체를 통해 가진 귀한 보배들, 이 노선을 위해 참으로 귀한 실력과 이력을 가진 분들, 많은 분들이 지나 갔었다. > 그 어떤 분의 실력도 소원도 안타까운 사정도, 부공3은 총공회를 오늘에도 이어 간다는 노선과 사명이 그들보다 귀하다. > 둘 중에 하나를 택한다면 가치 있는 것을 먼저 가지게 된다. 비교요 비중이요 선택이다. 좋은 분들, 그러나 두 길은 없다. > >
웹 에디터 끝
링크 #1
유튜브, 비메오 등 동영상 공유주소 등록시 해당 동영상은 본문 자동실행
링크 #2
날짜수정
자동(선택)
추가태그
첨부파일
파일추가
파일삭제
첨부사진
상단출력
하단출력
본문삽입
본문삽입시 {이미지:0}, {이미지:1} 형태로 글내용 입력시 지정 첨부사진이 출력됨
자동등록방지
숫자음성듣기
새로고침
자동등록방지 숫자를 순서대로 입력하세요.
작성완료
취소
정리
(세부)▶
①'백영희신앙노선'총괄(요약)
②'백영희신앙노선'총괄(전체)
③교리정리
④성경신학
⑤문답방정리
⑥기타정리
자료
분류자료
●
문의답변
쉬운문답
발언/주제연구
연경교재
참고연경
일반자료
남단에서2
+
새글..
03.04
여호와여 나를 살피시고 시험하사 내 뜻과 내 마음을 단련하소서
03.04
내가 나의 완전함에 행하였사오며 요동치 아니하고 여호와를 의지하였사오니 여호와여 나를 판단하소서
03.04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려니와 무고히 속이는 자는 수치를 당하리이다
03.04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의지하였사오니 나로 부끄럽지 않게 하시고 나의 원수로 나를 이기어 개가를 부르지 못하게 하소서
03.04
여호와여 나의 영혼이 주를 우러러 보나이다
03.03
내 나이 이제 팔십세라 어떻게 좋고 흉한 것을 분간할 수 있사오며 음식의 맛을 알 수 있사오리이까 어떻게 다시 노래하는 남자나 여인의 소리를 알아 들을 수 있사오리이까 어찌하여 종이 내 ?
03.02
여호와께서 그 터를 바다 위에 세우심이여 강들 위에 건설하셨도다
+
새댓글
01.01
01.01
01.01
01.01
01.01
01.01
01.01
State
현재 접속자
189 명
오늘 방문자
5,894 명
어제 방문자
7,234 명
최대 방문자
7,646 명
전체 방문자
3,303,856 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