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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희 신앙노선의 오늘을 고민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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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단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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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평양 출옥성도의 유족을 대표하는 분과 2009년 미국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 한부선 선교사 자료실에 백영희와 공회의 해방 직후 자료를 찾기 위해 함께 방문한 적이 있다. 그 분은 고신 측이 중심이 되어 가족과 함께 부친을 독립유공자로 인정 받기 위해 노력을 해도 아직도 성사를 시키지 못했다. 부친의 신사참배 거부 운동은 유명했다. 신사참배 환란 때 총독부가 전국에서 가장 두목급은 전부 평양감옥에 모았고 그 이하는 지방 감옥이 맡았는데 지방 감옥에 있었던 손양원 목사님도 독립유공자가 되었으나 그 부친은 그렇지 않다. 손 목사님의 노력을 저평가 하는 것이 아니라 평양 출옥 성도의 저평가를 말하는 것이다. 고신의 가장 대표적인 인물인 한상동 역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 > > 그런데 손양원 목사님의 신사참배 저항은 그 기록도 별로 없는데 독립유공자가 되었고 기념관은 애양원뿐 아니라 경남 함안에도 국고를 지원 받아 건립이 된다는 소식을 전하자 '왜 2곳?'이라는 표현이 나왔다. 왜 2곳일까? > > 애양원에 손양원 기념관, 이해가 된다. > > 경남 함안에 손양원 기념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물론 이해를 하자고 든다면 애양원에서 보여 준 손양원의 신앙은 함안에서 만들어 냈기 때문에 그 '뿌리'를 전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기념 사업의 방향과 내용을 들여다 보면 고개를 젓지 않을 수 없다. > > 생가는 없어 졌고 주소만 남아 있다. 그 곳은 개 축사였다. 그 곳을 매입하여 생가를 복원? 모방? 해 놓았다. 그런데 손양원의 신앙을 제대로 만들어 낸 부친 손종일의 신앙 흔적이 아직도 생생하게 있는 곳은 기념관 바로 주변에 있는 '선친 묘소'다. 손종일 선친은 신앙 생활을 출발하자 문중이 모인 시제에 제사상을 둘러 엎어 버렸다. 당시로서는 엄청난 사건이었다. 그런데 선산에는 손종일 선친의 부친인 손치형 (손양원 조부) 부부 묘가 있었다. 자기는 제사상을 엎었지만 문중은 손치형 부모 묘소에 계속 절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장을 해 버린다. 그리고 이장한 새 묘소에 손종일 장로님은 자기의 신앙을 묘비에다 적는다. 1914년 당시 묘비에는 쓰일 수 없는 표현들이 담긴다. 또한 비슷한 시기에 작성 된 호적에 손치형 부친과 함께 모친의 이름을 적을 때 당시 실제 사용 되지 않았을 이름을 호적에라도 적는다. 심망소, 바랄 망에 예수교 소로 이름을 만들어 넣었다. '망'이라는 글자가 소망 할 때 망인지 거룩할 성자인지 아직 최종 판단은 하지 못하고 있다. 일제 초기의 한자체로 면 직원이 적었고 이 글자 확인을 위해 교계의 금석학자와 역사학자들에게까지 검토를 해 봐도 글자체만 가지고는 의견이 나뉜다. 나는 거룩한 예수님으로 읽힐 '심성소'로 적었을 리가 없다고 본다. 부친이 한학을 했고 1914년의 당시 시골 분위기에서는 예수님의 이름을 직접 채용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망소, 예수님을 바란다는 이름이면 맞다. 이 외에도 비문에는 귀한 내용들이 많다. 역사를 아는 이들은 글자 하나에서 당대를 재구성할 정도인데 이 비문에는 손양원 신앙과 호주 선교부와 당시 손종일 장로님의 이야기를 아는 이들이 읽는다면 손양원 연구와 자료에 소중한 1차 기록이다. > > 그런데 이 묘의 위치조차 알 수가 없어 함안의 기념관에 손양원 가족들의 이름으로 수 년을 연락해도 불가능했다. 왜? 2020년 들어 와서야 묘소를 찾았다. 그리고 이유를 한 눈에 알게 되었다. 이 정도로 방치? 아예 버려 뒀다고 봐야 했다. 손 목사님의 가족들은 함안 기념관과 함께 지자체에서 관리를 하는 줄로 알았다. 고향 교회도 있기 때문이다. 이 자료들을 최근 발굴했고 전해 드리고 있다. 그런데 함안 기념관에서는 '뭐가 중요하냐, 무슨 의미냐?' 되묻고 있다. > > 여기 비석의 글자를 먼저 공개한다. 내용은 답글에서 이어 본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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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4
여호와여 나를 살피시고 시험하사 내 뜻과 내 마음을 단련하소서
03.04
내가 나의 완전함에 행하였사오며 요동치 아니하고 여호와를 의지하였사오니 여호와여 나를 판단하소서
03.04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려니와 무고히 속이는 자는 수치를 당하리이다
03.04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의지하였사오니 나로 부끄럽지 않게 하시고 나의 원수로 나를 이기어 개가를 부르지 못하게 하소서
03.04
여호와여 나의 영혼이 주를 우러러 보나이다
03.03
내 나이 이제 팔십세라 어떻게 좋고 흉한 것을 분간할 수 있사오며 음식의 맛을 알 수 있사오리이까 어떻게 다시 노래하는 남자나 여인의 소리를 알아 들을 수 있사오리이까 어찌하여 종이 내 ?
03.02
여호와께서 그 터를 바다 위에 세우심이여 강들 위에 건설하셨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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