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KIST
백영희 신앙노선의 오늘을 고민하는
목회 연구소
총공회 목회연구소
0
총공회
백영희
보관자료
연구실
행정실
활용자료
참고자료
총공회
총공회 소개
인물/사건
소사/일지
역사자료
목회 연구소
역사
참고
백영희
보관자료
추가자료
출간 설교록
미출간 (준비)
설교록 발췌집
연구서적
출간목록
연구실
행정실
행정
보관
정정
회원/후원
활용자료
교리 정리
성경신학
[설교류]
원본설교(확정)
원본설교(검토)
성경단어사전
주교공과
[사전류]
교리성구사전
주해사전
용어사전
예화사전
메모사전
각주사전
참고자료
메인
총공회
백영희
보관자료
연구실
행정실
활용자료
참고자료
0
남단에서
     
명상 또는 추천의 글
홈 > 연구실 > 남단에서
이 게시판에는
이 홈
에 올려진 글 중에 이곳에서 따로 소개하고 싶은 글도 포함됩니다
.
남단에서 글답변
이름
필수
비밀번호
필수
분류
비밀글
날짜
제목
필수
내용
웹에디터 시작
> > > 1. 선교사의 양면 > > 선교사가 기른 한국교회가 선교사에게 감사할 일은 천 가지도 만 가지도 넘는다. 그러나 이 땅 위에서는 하나님께서 장단점을 섞어 운영하시니 선교사들 때문에 입은 피해도 몇 가지는 있다. 한국 교회에 연애를 가르쳐 놓은 것은 그들이 이룬 한국 교회를 통째로 내려 앉힐 수 있게 했다. 한국 교회에게 미국에 대한 선망을 심어 놓은 것도 너무 아쉽다. 가르치기야 했을까 마는 결과적으로 그렇게 되었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엄하게 조심을 시켜야 했다. 선교사들의 연애는 비교적 절제 통제가 된다. 한국인의 연애는 삽시간에 교회를 엉망으로 만든다. 미국 교회의 체계화와 학위는 어느 정도 필요하다. 한국 교회의 경우는 우리의 수준이 아직 유약했기 때문에 좀 유연했어야 했다. > > 2. 해외 유학의 경우 > > 전국 각 주요 지역의 성경학교와 평양의 신학교를 통한 교육까지는 이해를 할 수 있다. 그런데 한국 학생들을 미국에 유학을 시킨 것은 미국 선교사들로서는 너무 잘한 일로 생각할 것이다. 공회 입장에서는 너무 아쉬워 하는 부분이다. 선교사들은 미국에서 신학교를 공부하고 나왔다. 미국의 신학 교수를 100이라고 했을 때 그 밑에서 공부를 하고 한국에 나온 선교사들의 학습은 60은 되지 않았을까 싶다. 한국에 나온 선교사들이 평양 신학교에서 60 지식으로 가르쳤다면 한국 목사들은 40 정도를 배웠다고 하고 싶다. 미국식 교육학의 기본 사고방식이 60%라야 과정을 통과 시킨다. 이 정도 이하의 학습자는 낙제를 시킨다. 미국의 신학교와 선교사들은 이런 면이 아주 철저하다. 형식적 60점이 아니라 내용적으로 그리 되게 하려고 노력한다. > > 여기서 이제 간단한 셈법이 나온다. 한국에 아주 똑똑한 학생을 선교사들이 접하게 되면 자기들이 배운 미국 신학교에 보내면 자기들과 비슷하게 60을 배우거나 자기들보다 더 훌륭한 학생은 80을 배우지 않을까, 이런 소망으로 유학을 보냈다. 그런데 한 가지 잊은 것이 있다. 한국의 훌륭한 학생이 미국에 가서 영어로 공부를 배우면 얼마나 배울 수 있을까? 1년 동안은 무슨 말인지도 잘 모르고 지나 간다. 1년은 대략 좀 들린다. 다음 1년은 들리지만 학과 과정은 철저하게 짜여 져 있어 1학년 때 공부를 다시 들을 수 없다. 경제적 여유와 한국에서 기다리는 사명의 시급성 때문에 빠듯하게 '과정을 밟기만' 하고 돌아 온다. 이렇게라도 계산이 되는 이유는, 이미 한국에서 신학을 대략 배우고 갔기 때문이다. 현재 외국에서 한국 대학으로 유학 온 사람들을 보라. 생활 회화가 되는 사람들에게 대학의 전문 용어가 쏟아지면 알아 듣겠는가? > > 물론, 한국에 미국의 신학교 원서들이 한글로 번역이 되어 있지 않던 시절에 한국 교회의 훗날을 보고 그래도 미국을 다녀 온 경험으로 한국교회와 미국교회를 연결 시킬 사람은 필요했고 천부적으로 언어적 소질이 있는 경우 단기간에 언어의 장벽을 넘을 수 있는 특출한 인재도 없는 것은 아니며, 이런 인재들을 해외에 보내는 것을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미국인들의 사회 생활과 의식 구조가 '과정'이라는 시스템을 만들어 뭐든지 계속하여 같은 제품을 만들어 내는 '표준화'에 능하다. 신학과 신앙을 이렇게 해 버린 것이다. > > 3. 해외 신학교의 한인 숫자 > > 1986년에 공부를 마치고 5월 집회 때문에 서둘러 귀국을 했다. 김포공항 세관 검색대 위에 내 짐을 풀어 놓았다. 책 밖에 없었다. 검색원이 한 마디를 툭 던진다. '왜, 미국에 가서 신학을 해야 합니까?' 나 같이 미국에서 신학을 하고 오는 이들이 너무 많아서 이해를 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공항 검색대의 세관원이면 공부를 한 사람이다. 또 업무상 뭔가를 파악하는 사람이다. 그 분도 믿는 사람이라 한다. 알 만한 사람이다. 한국 학생들이 미국에 신학 공부를 가는 숫자를 생생하게 꿰고 있기 때문에 나온 말이다. > > 나는 바로 그 직전 봄에 Covenant 신학교 교장으로 막 부임한 Kooistra 교수와 대화한 기억이 있다. 그는 칼빈신학교에서 스카웃이 된 분이다. 따뜻한 햇빛을 받으며 Buswell 도서관 옆에서 잠깐 대화할 일이 있었는데 문득 '신학교에서 공부를 하면 그 신학생이 다음 후배를 가르치는 것이 학문의 세계다. 미국에 와서 학위를 받고 가는 한국인들이 수도 없이 많다. 그런데 왜 그들에게 배우지 않고 한국 목사들은 미국에 와서 배우려 하는가?' 아주 심각하게 그리고 아주 이상한 현상이라며 묻는다. 그는 신학교의 교수 중에서도 신학교의 운영까지를 맡은 '총장'이다. 학생을 1명이라도 더 유치를 해야 한다. 칼빈신학교 카브난트신학교 리폼신학교 웨스트민스터신학교 페이스신학교... 이런 신학교들은 한국에 있는 장로교 교회들이나 그 이름을 알지 미국에서는 참으로 어느 구석에 있는 어떤 학교인지도 모르는 무명의 소규모 학교들이다. 미국에서는 장로교라는 교회 자체가 소규모 교단이다. 그 중에서도 이런 신학교들은 보수 정통을 고수하는데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미국에서는 거의 무명이다. 이상하게도 한국의 교회만 장로교가 대세고 장로교 중에서도 보수 정통을 주장하는 교회들이 대세다 보니까 한국 사람들만 이런 신학교를 나온 사람들이 미국에는 '하바드 예일 프린스턴' 그리고 자기가 나온 신학교를 끼워 넣는 말투로 평생을 자기 출신 학교를 자랑한다. 말하자면 한국에 유학을 다녀 온 방글라데시 학생이 '한국에는 서울대 연고대 그리고 내가 나온 울릉대'가 있다고 말하는 셈이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방글라데시 어느 지방 도시에서 평생을 활동하면 그와 접한 사람들은 한국을 이야기 할 때 울릉대가 유명한 줄로 안다. > > 이제 말한 신학교들은 내가 미국에 있을 때 정식 전교생이 100명에서 몇백 명 수준이었다. 이들은 신앙의 정통, 내력, 역사, 내용이 특별하지 그 사회의 일반적인 대학으로서는 아무 의미가 없다. 그런데 평생 자기 학교를 자꾸 거론하다 보니까 참으로 우스운 왜곡 현상이 나온다. 그 교회나 교단의 교인들까지 좀 아는 이들에게 바보 취급을 받게 한다. 공회의 정식 교인들은 10명이 기와집 안방에서 공부를 하는 양성원이 세계 최고라고 생각한다. 우물 안의 개구리라 그렇다. 신앙과 역사와 내면으로는 최고다. 그러나 사회인이 볼 때는 '학교'도 아니고 '학원'도 아니다. 그냥 어느 강좌 모임 정도다. 실제 듣는 학생들이 초등학교만 나와서 영어 알파벳이 안 되는 이들이다. 교수조차 영어 알파벳을 모른다. 그렇다면 이런 신학교는 처음부터 우리는 세상이 아니다, 우리는 말씀을 연구한다, 이렇게 말해야 하지 않을까? 이 것이 정통 기독교의 내면이 아닐까? > > 나는 유학 과정에 한국의 최고 신학교에서 이미 공부를 했고 그 중에서 유망하여 유학을 왔던 인재들과 접할 기회들이 있었다. 모두가 뻔했다. 한국에서 이미 다 배운 과목들이다. 이제 영어로 배우는 것이다. 영어가 들리지 않아도 내용을 알기 때문에 별 어려움이 없다. 영어에 관한 한 한국 사람은 토플이 600점을 넘어 최정상급이든 550점 대가 되어 일반적이든 상관 없이 미국의 신학교에서 교수들이 줄줄 읊는 강의를 속속들이 이해하는 것은 어렵다. 그런데 그들이 무슨 강의를 하든 그들의 강의 중에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인 것은 책에 있다. 그 책은 한국에서 읽어도 된다. 그런 책들은 이미 우리 말로 번역이 되어 있다. 그렇다면 이미 독파한 한국의 교수가 한글로 번역 된 교재를 우리 말로 가르치는 것을 듣고 배우는 것이 좋다. 다만, 그 교수와 그 도서를 뛰어 넘을 정도의 학자가 될 사람이라면 처음부터 미국에서 배우고 활동하는 것이 유리할 수도 있다. 그런데 그런 학자가 되기 위해 유학을 가는가? 그들의 중고교 대학의 성적을 보면 학자라는 말이 우리 모두 부끄럽다. 그냥 학위를 받아 오면 한국의 교계에서 활동을 할 때 보기에 좋을 뿐이다. > > 바로 이런 점 때문에 백 목사님은 한국에서도 신학교 체계의 신학 공부라는 것은 그야 말로 교회가 아주 가끔 보유해야 할 한두 사람에게나 해당이 되고, 그냥 목사를 할 사람은 상식적으로 몇 권을 읽으면 충분하다는 입장이다. 아이를 낳아 기르는 가정 주부를 목적으로 하는 여성이 가정학 박사 과정이 왜 필요할까? 중학교 '가정' 과목 정도만 들어도 충분하다는 입장이다. > > 3. 백영희의 '신학관' > > 이런 점이 명확하다 보니 백 목사님은 공회에 필요한 목회자는 성경을 많이 읽고 바르게 읽을 수 있는 성경 과정만 양성원에 두고자 했고, 일반 신학교의 모든 과목은 타 교단이 이런 것을 가르친다고 구경을 하라는 정도로만 운영을 했다. 바로 이 관점에서 백 목사님은 설교록 편찬도 일반적으로 출간 되는 설교록은 처음부터 마음에 없었다. 목회를 위해 필요한 설교만 설교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설교 속에 든 것을 분석하고 체계화 할 필요가 있다면 해외 유학은 필요가 없다. 따라서 목회연구소도 양성원도 해외 유학과 신학이라는 세계는 처음부터 필요한 대상이 아니다. 아니기 때문에 목사님은 신학 공부만을 위해 유학을 보내는 일은 없어야 했다. > > 그런데도 1명을 선발해서 보낸 이유는, 교계는 물론 공회 내부에서조차 개인적으로 유학을 다녀 온 분들의 학위에 얼마나 크게 영향을 받는지, 이를 막을 도리가 없게 되자 1명이라도 유학의 이름으로 보낸 다음에 그를 통해 유학의 허상을 강조하기 위해 유학을 보내게 된다. 물론 이 목적 하나뿐은 아니다. 공회라는 우리의 세계를 전할 때 바깥 동네의 분위기를 알고 전하는 것과 아예 모르고 적는 것의 차이는 있다. 바깥 것을 배워야 우리 것을 정리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니라, 교계의 현황을 염두에 두고 우리 것을 전할 때 강조할 것이 있고 일반적으로 상식이니 생략할 것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 > 그런 이유로 보내면서도 한 편으로는 하나님이 우리 모르는 교회에 어떤 깨달음을 주셨는지 알 수 없고, 또 하나님은 한 쪽에만 전부를 주지 않으니 공회가 배워야 할 것이 있는지 살펴 보도록 부탁을 했다. 우리의 깨달음과 기독교 정통의 역사 속에 나온 것을 비교하여 같은 것은 같은 줄로 알면 되고 우리 것이 나으면 정말 나은지 비교를 제대로 해 봐야 할 것이고, 만일 우리가 몰랐거나 잘못 안 것을 배울 기회가 있다면 그 점에 대해서는 우리는 스승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이미 세계 신학을 배운 수 없는 국내 신학자와 목회자를 통해 세계 신학을 짐작할 수는 있지만, 백 목사님의 사후에 그 신앙과 노선을 정리할 실무자가 직접 살펴 보면 참고가 된다는 것이 유학 파견의 이유였다. > > 4. 이런 점 때문에 > > 백 목사님 사후, 나는 이후에 이어 질 공회를 위해 또 해외에 보낼 만한 사람이 있는지 살펴 왔다. 당연히 목회가 가능한 분 중에서 찾다가 적당한 인물이 없어 여반이라도 마음에 두었으나 결혼에 바쁘고 아이를 4명이나 계속 낳고 있어 이제는 보낼 인물조차 없다. 바로 이런 시점에 인터넷 강의가 넘치게 되었고, 이제는 해외 유명한 신학 강좌를 얼마든지 여기서 직접 들을 수 있다. 그렇다면 굳이 사람을 보내려고 노력할 필요도 없어 졌다. > > 이제는 미국 생활이 자연스럽고 미국의 신학교 공부가 불편 없을 정도의 공회 내부 인물이 있으면 공부를 하도록 부탁은 하겠지만 하게 된다면 하는 이유는 앞에서 적은 이유와 같다. 그 외의 이유로 신학 공부를 하는 것은 우습다. 낭비가 되거나 위험한 일이다. 앞으로 공부할 기회와 이유가 될 때를 생각해서 미리 적고 있다. > > 5. 내가 가게 된 것은 > > 70년대 미국 유학이 광풍으로 불 때 공회 내에서도 최정상급 인물들이 모두 유학에 마음을 두고 있었다. 그런데 한국에 있는 미대사관에서 한국 사람이 '교회' '유학' '신학' '목사' 때문에 비자를 신청하면 무조건 거부를 하고 있었다. 송종섭 목사님은 연세대에서 영어를 전공했고 아들 언더우드 박사에게 직접 배운 분이며 총애를 받던 인재였다. 대사관에서 무조건 비자를 거부하여 언더우드 박사에게 직접 대사관의 비자 발급에 도움을 달라고 부탁을 했다. 연세대 영문학과 출신으로 행정고시까지 합격한 인재였고 신앙이 특별했으며 인품을 잘 알기 때문에 미국 유학 과정에 대사관을 속일 인물이 아니라는 보증을 말한다. 언더우드 박사는 미 대사관에서 아주 인정하든 인물이다. 그런데 언더우드 박사는 '송 목사, 대사관에 비자 문제만은 안 되오. 아예 말도 꺼내지 못합니다.'라며 일언지하에 거절을 했다. > > 공회의 인재들은 신앙과 인격과 실력이 특출했으나 미 대사관의 한국인 신학 관련 유학을 가차 없이 거절하던 시기에 겹쳐 모두가 유학을 갈 수가 없었다. 이렇게 되자 국내 신학교들의 일반적인 유학은 영국 독일 네델란드 남아공으로 모두 방향이 바뀠었다. 바로 이 시기에 이민 등의 사유로 미국을 갈 수 있는 사람들은 미국에 가서 신학교를 다닐 수 있었다. 이렇게 전면적으로 유학이 막히게 되자, 공회는 이런 상황에 다른 길이 열리고 있었다. 이미 목사가 된 사람들은 목사 신분을 속이고 비자를 받을 수 없지만, 공회의 청년들은 목사가 될 사람이라도 신학교를 가지 않고 일반 학교를 가기 때문에 일반 학교로 유학을 간 뒤에 미국 내에서 신학교를 진학하면 된다. 다만 미국에 유학을 가고자 하는 사람이 있어도 그냥 보내면 안심을 하지 못하여 결혼을 하고 목사가 된 사람만 허락을 했었다. 결혼과 목사 조건만 보지 않으면 된다. > > 그래서 일반 학교를 졸업한 편집실 직원에게 대학을 졸업한 2월로부터 3개월이 지난 다음에 유학을 준비하게 했다. 한국에서 '목사'거나 '신학교' 경력이 있으면 비자가 나오지 않는데 83년 2월에 일반 대학을 졸업하고 연구소 직원으로 근무하는 내게는 '목사'와 '신학'의 경력이 없다. 그리고 미국의 일반 대학으로 유학을 가면 비자가 나온다. 그래서 공회 교회가 있고 유학을 해야 할 Covenant 신학교가 있는 세인트루이스 시의 St. Louis University로 편입을 했다. 그리고 한 학기를 공부한 다음 신학교로 진학을 했다. 속일 것도 없고 자연스러웠다. 이렇게 해서 입학을 하게 되자 신학교 내에서는 모두가 어떻게 비자를 받았는지 질문이 쏟아 졌다. 한국의 유력 신학교 교수조차 직접 전화로 물어 왔다. > > * 대학과 대학원에서 '신학' 이름이 없다. > > * 미국 내 일반 대학에 편입을 했다. > > * 미국 내 과정을 마치고 신학교로 미국 내에서 진학을 했다. > > 신학자가 되거나 목회자가 될 사람은 한국 내에서 '00신대' '00신학원'을 나온다. 이 학력이 붙으면 비자가 무조건 거부 되던 시절이다. 이 길만 열려 있지 목사님은 미혼과 목사가 아니라 주일학교 반사일 뿐이고 교회에 출근하는 일반 직원인데 유학을 보내게 된다. 이런 내막을 잘 알지 못하는 공회 내 모든 목회자들과 일반 교인들은 '결혼한 목사' 중에서도 극히 일부에게만 허락 되던 신학 유학을, 이제 막 대학을 졸업한 주교 반사를 억지로 유학에 보내고 서부교회와 총공회가 경비 일체를 최초로 지원한다는 결정이 알려 지자, 마치 신앙이 훌륭하거나 아니면 학적으로 아주 특출한 줄 오해를 하게 된다. 학적으로 특출하다고 오해를 하게 된 과정은 앞에 다른 글에서 밝혔다. 중간쯤에서 조금 나은 정도의 일반 학생일 뿐인데 학점의 제도와 시험의 결과가 그렇게 나오는 바람에 '만들어 진 성적'일 뿐인데 마치 천재나 되는 것처럼 알려 졌다. > > 공회에는 막 가는 무식한 목회자들 지도자들이 대부분이지만 몇몇 분들은 세상 어디 내놓아도 특출한 분들이 있다. 그런 분들에게까지 주어지지 않던 유학 선발 파견이 이루어 지자 그들을 넘어 서는 인재인 줄 모두가 착각을 하게 된다. 왜 그렇게까지 착각을 하게 되어 졌을까? 백 목사님 사후 30년이 지나 가는 오늘까지의 궤적을 보면 이해가 된다. 이렇게 쓰시기 위해 만들어 주신 것이다. 허명, 허울, 명함을 잘 찍어 주셨다. > > > > 6. 어디에 사용하는가? > > 나는 원어의 알파벳조차 모른다. 알파벳 도표를 맞추어 봐야 겨우 확인을 하는 정도다. 나는 미국에서 신학 공부를 거의 하지 않았다. 시험만 쳤고 성적만 괜찮게 받았을 뿐이다. 읽어 오라는 과제는 읽을 시간도 없고 또 읽을 가치가 있는 부분이 거의 없어 거의 책장만 넘겼다. 함께 공부한 친구들이 책을 들고 있는 시간이 없는데 점수가 잘 나오니까 커닝을 했는지 싶을 정도인데 나는 그런 일은 없다. 아는 것도 없고, 알 것도 없고, 알고 싶지도 않았다. 오직 '삼분설' '건설구원'과 같은 논제가 있는지 살피고 그런 주제가 아니면 공부의 방향만 파악하고 시험의 문제나 고려했을 뿐이다. > > 그런데 초등학교로부터 고등학교의 이름, 대학의 성적과 내용, 토플 점수와 신학교의 그 이름과 결과 때문에 남들이 공연히 굉장한 줄 안다. 굉장히 공부를 한들 그들이 또한 무엇을 알 수 있는가? 자기가 공부한 분야 단 하나에만 남들보다 더 많이 알 기회가 있고, 그 외에는 서로가 모르는 것은 매 한 가지다. 나의 이력 때문에 상대방들이 공연히 뭐나 알 것처럼 생각해서 전문 분야를 물어 보지 않으니 모르는 표시가 나지 않았을 뿐이다. 가끔 정말 위대한 학자들은 백영희와 공회의 성격을 알기 때문에 세상 그런 학문적인 이야기를 아예 거론하지 않는다. 알기 때문이다. > > > > 그래서 공회란, 나에게 신앙의 자유와 함께 신학의 자유를 줬다. 이 노선을 벗어 나면 천주교의 압박과 세상의 쇠고랑이 얽어 매는 것이 아니라 '학문' '학위' '명성'에 대한 자기 선입견이 자기를 속박한다. 자승자박이다. 공회는 그 자승자박을 여지 없이 깨뜨렸다. 어거스틴 루터 칼빈도 이런 세계는 없었다. 그들은 타고난 학자들이다. 위대하다. 그들이 가진 학문과 선천적 실력을 여지 없이 교회를 위해 잘 사용했다. 백영희 노선은 그 분들 덕분에 학문도 없고 선천적 실력도 없고 또 있다면 있는 것을 모두 내 버리고도 자유롭다. 그래서 그들이 고맙고, 그래서 나는 백영희가 좋다. 그 자녀들이 그 이름을 떼 내라고 고소까지 했지만 나는 '그래도 그 이름을 뗄 수 없다!'는 지동설론자다. > >
웹 에디터 끝
링크 #1
유튜브, 비메오 등 동영상 공유주소 등록시 해당 동영상은 본문 자동실행
링크 #2
날짜수정
자동(선택)
추가태그
첨부파일
파일추가
파일삭제
첨부사진
상단출력
하단출력
본문삽입
본문삽입시 {이미지:0}, {이미지:1} 형태로 글내용 입력시 지정 첨부사진이 출력됨
자동등록방지
숫자음성듣기
새로고침
자동등록방지 숫자를 순서대로 입력하세요.
작성완료
취소
정리
(세부)▶
①'백영희신앙노선'총괄(요약)
②'백영희신앙노선'총괄(전체)
③교리정리
④성경신학
⑤문답방정리
⑥기타정리
자료
분류자료
●
문의답변
쉬운문답
발언/주제연구
연경교재
참고연경
일반자료
남단에서2
+
새글..
03.04
여호와여 나를 살피시고 시험하사 내 뜻과 내 마음을 단련하소서
03.04
내가 나의 완전함에 행하였사오며 요동치 아니하고 여호와를 의지하였사오니 여호와여 나를 판단하소서
03.04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려니와 무고히 속이는 자는 수치를 당하리이다
03.04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의지하였사오니 나로 부끄럽지 않게 하시고 나의 원수로 나를 이기어 개가를 부르지 못하게 하소서
03.04
여호와여 나의 영혼이 주를 우러러 보나이다
03.03
내 나이 이제 팔십세라 어떻게 좋고 흉한 것을 분간할 수 있사오며 음식의 맛을 알 수 있사오리이까 어떻게 다시 노래하는 남자나 여인의 소리를 알아 들을 수 있사오리이까 어찌하여 종이 내 ?
03.02
여호와께서 그 터를 바다 위에 세우심이여 강들 위에 건설하셨도다
+
새댓글
01.01
01.01
01.01
01.01
01.01
01.01
01.01
State
현재 접속자
196(
1
) 명
오늘 방문자
5,992 명
어제 방문자
7,234 명
최대 방문자
7,646 명
전체 방문자
3,303,954 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