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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희 신앙노선의 오늘을 고민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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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공회 신앙인들의 기적은 참으로 많다) > 나는 혼자 겪은 기적을 체험할 때마다 나보다 신앙이 나은 다른 사람들을 그려 본다. 나보다 신앙에 앞서니 이런 기적과 능력을 더 많고 크게 겪었겠다고 생각한다. 내가 평소 다른 사람보다 신앙이 좋아 보였다면 나의 경험은 나만의 경험을 생각했을 듯하다. 많은 글에서 나는 성장 과정이 아주 험했고 좋지 않았다고 적었다. 그런 내가 어떻게 하다 기적을 체험했으니 나보다 앞선 이들은 얼마나 많은 비밀의 세계를 가지고 있을까...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듯하다. 못난 사람에게 주신 안전 장치로 본다. 교만하기가 좀 어렵다는 뜻이다. 함께 자라며, 또는 다른 곳에서 나와 같은 시기를 보내며, 주변 사람에게 나와 달리 아주 모범적이고 어릴 때부터 신앙의 싹이 훌륭했던 이들은 내가 겪은 기적과 능력의 세계가 많을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그들이 훌륭하기 때문에 나처럼 형편 없는 이들은 그런 세계를 체험하지 못했을 것으로 여길 듯하다. 내 경험이 그렇다. 나를 가르치려 들었던 동료들, 내게 신앙의 신기한 세계를 장황하게 설명하면서 내게 잘 배우라 했던 많은 선후배들의 요구를 접할 때마다 나는 속으로 참 감사했다. 내가 좀 좋게 자랐다면 저들보다 훨씬 더했겠지... 자랑거리를 찾으려 해도 찾을 수가 없으니 교만하고자 해도 교만할 거리가 없다. > > (좀 늦었지만 내게도 찾아 오기 시작했다.) > 그런 내게 중학교 3학년에 두 번, 그리고 고등학교를 다니며 여러 번 겹치는 기적을 봤다. 우연이 아니고 1회가 아니었다. 그리고 대학 4년의 가을 학기가 시작 되었다. 그 때는 9월이 취업철이다. 합격하면 학교에서 출석과 졸업을 보장해 줬다. 1982년 9월 어느 날 전화가 왔다. 3학년 때부터 계속 학교에 보이지 않으나 학교에 들어 온 취업 추천서를 분배해야 하는데 지도교수님이 성적 순서로 나누라 했다 한다. 나는 성적을 몰랐다. 2학년 때 편입을 해 왔고, 신앙 생활이 엄격해서 친구들과 따로 어울릴 일도 없었고, 군대를 갔다 온 뒤 복학한 3학년 때부터는 노동 현장과 국제시장 장사만 했다. 당시는 대학생이 이런 일을 한다는 개념이 없을 때다. 나 역시 백 목사님 때문에 했을 뿐이고 서부교회에서도 실제 이렇게 한 사람은 나 하나뿐이다. 학교에 갔다. 모두들 7개 학기 성적표를 제출하라는데 학적과에서 발급 받은 서류를 들고 강의실에 갔다가 잠시 밖에 나갔다 오니 내 성적표를 들고 모두들 수군거렸다. 말이 되지 않는다고... 1학년의 교양과목 49학점이 평균 A는 불가능한 것이라고. 그 동안 평균 B학점도 없었다는 것이 나 없을 때 친구들끼리 서로 비교해 본 결과라 한다. > > (설교록에 소개 된 내용의 배경이다.) > 학교와 성적과 회사 합격 등은 교역자회에도 일반 설교에도 자주 인용이 되었다. 과장 되는 것도 막고, 한 편으로 설교록의 백 목사님 표현을 비판하는 이들을 만류하기 위해 설명을 한다. 나에 대한 설교록 인용은 많은 편이다. 나와 관계 된 인용이 아마 백 목사님 설교록 전체를 통해 몇 번째 가지 않을까? 목회자와 서부교회 핵심 인물들과 백 목사님의 가족까지 모두 포함해서... > > 학교에서 내가 취업 추천서 1순위였다. 그런데 모두 주일 시험이다. 나는 교회 주변의 중소기업이나 하나 있을까 해서 왔었다. 당시 현대 삼성 대우 3개 회사가 최고였고 이 회사들은 1200명을 그룹 단위에서 한꺼번에 선발했다. 이런 저런 추천서들이 많았으나 주일 시험만 주목을 했다. 1차 시험은 무조건 모두 주일이다. 모두 다른 사람들에게 넘겼다. 문득 대우그룹의 시험에 1차가 서류 전형으로 되어 있고 2차는 평일에 면접과 적성검사였고 3차는 월요일이었다. 1차 시험이 필답 시험인데 늘 주일이었다. 1982년에 대기업 최초로 대우가 선발시험의 방향을 바꾼 것이다. 대우그룹 추천서를 가져 왔다. 추천서가 학교로 들어 온 것 외에 직접 지원해 볼 수 없는 곳은 2류급 대회사부터 지방의 별별 회사가 많았다. 대우는 그냥 주일이 아니니 넣어 보고, 그 외 회사는 훨씬 못한 회사들이니 시험 없이 면접으로 들어 갈 수 있는 곳이 더러 있어서 모두 넣어 봤다. 전부 다 떨어 졌다. 지방 2류대니 그렇겠지 싶었다. 대우는 발표가 늦어 졌으나 지명도가 낮은 회사들이 모두 되지 않았기 때문에 내 수준으로는 회사 취업은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 > 그런데 대우그룹에서 1차 선발이 되었다고 통고가 왔고, 2차는 서울역 앞에 있던 대우본사 건물에서 적성 검사와 면접을 봤다. 무난히 본 것으로 기억이 났다. 1차 2차를 합격하고 3차 최종 시험일이 통고가 되었다. 9월말 어느 월요일로 기억이 된다. 3차 최종 시험날이 월요일 9시, 대우그룹 본사로 가야 하는데 문제는 주일 날은 반사를 했기 때문에 미리 갈 수 없고 월요일에는 9시에 서울역 앞에 있던 회사에 도착할 길이 없었다. 비행기도 열차도 고속버스도 마찬 가지였다. 중3 때 소풍 갔다 올 때가 기억이 났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길이 열리면 된다. 지금 생각하면 참 못나서 그렇다. 택시 타고 가면 되는데, 당시 나는 택시는 시내라고만 생각했다. 그런 못난 사람의 못난 생각 때문에 월요일 9시의 시험장이라는 문제는 환란이 되고 이 것이 해결이 되면 내게는 기적이 되지만, 택시나 자가용을 쉽게 타고 다녔거나 그런 생각이 미치는 정도로 듣고 보고 살았던 사람이면 교통비가 좀 나가는 정도에서 그쳤을 일이다. 문제는 내게는 평생에 큰 기회였고, 내게는 주일이 걸렸고, 내게는 월요일 9시에 도착할 방법이 없다. 이런 못난 사람의 주관에 갇힌 걱정을 붙들고 주님은 남 몰래 이 못난 사람에게 신앙의 체험을 주시면서 훗날 더 잘 난 사람들이 주저할 때 주저하지 않는 인재로 기른다. 그래서 못난 사람은 못난 대로 믿으면 된다. > > (설교 때 들은 말씀 때문에 톨게이트로 갔다.) > 아무리 알아 봐도 길이 없었다. 결론은 간단했다. 주일 학교 반사니 오전과 오후까지 열심히 뛰고, 그리고 저녁을 먹고 기도회를 갔다 오면 주일 일정이 끝이 난다. 월요일 아침 9시에 서울 도착은 주일 저녁에 생각해 보고 길이 없으면 포기하면 된다. 마음을 비우니 개운했고 그 날도 주일학교와 주일에 충실했다. 저녁 기도를 갔다 와서 잠깐 길이 있을까를 생각했다. 모든 가능성을 알아 봤기 때문에 복잡할 것도 없다. 그런데 바로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서울을 가는 경부고속도로 입구가 동래에 있다. 주일 밤 12시를 넘자 바로 택시를 타고 고속도로 입구의 톨게이트에 가서 서울로 가는 화물차를 잡아 보는 것이었다. 이 생각이 떠오른 것은 5월 집회 때 백 목사님이 늘 하시던 말씀 때문이다. 대구 집회 장소는 경부고속도로에 바로 붙어 있다. 낮에는 차 소리가 없다. 주변의 동촌비행장의 공군기 훈련 소음이 컸다. 사월초파일과 마주치면 기도원에 붙은 절에서 목탁 소리가 컸다. 그런데 밤이 되면 고속도로를 채우는 화물차 소리가 컸다. 백 목사님은 야간에 서울과 부산을 오가는 화물차의 소음을 듣고 국가의 경제를 짐작해 왔다. 백 목사님은 가을에 교역자회를 하면 전국에서 모여 드는 목회자들에게 오는 길에 벼 농사의 작황을 묻는다. 농사가 좋으면 하나님께서 아직은 이 나라를 기뻐 하신다면서 안심을 했다. 5월 집회 때 화물차 소음이 많으면 이 나라 경제가 좋다고 알아 차렸다. 독재 정권 시절이고 미개하던 때여서 정부는 만사 잘 된다고 좀 얹어서 떠든다. 야당은 정부 발표는 거짓말이라고 난리다. 백 목사님은 2 가지를 통해 따로 판단했다. 이런 작은 표현 하나를 통해 나는 세상 속에 살며 세상과 별도로 세상을 파악하는 눈을 길렀다. 뭐든지 그 분 때문에 배웠다. 얼마나 감사한지. 그런데 백 목사님은 화물차를 파악할 때 낮이 아니라 왜 밤인지가 궁금했다. 누군가 말하기를 물류 운송의 특성 때문이라 한다. 당시 경부고속도로에 물류 이동을 맡은 화물차가 밤에 집중 된다는 말이 상식 밖이어서 기억을 하고 있었다. 나는 이 이야기를 기억하면서 동래의 고속도로 톨게이트로 갔다. 기사에게 화물차 하나를 세워 부탁을 해야 하겠다고 말을 하니 그는 톨게이트보다 톨게이트 직전에 주유소가 하나 있는데 화물차들이 여기서 기름을 채워서 간다고 했다. > > 주유소에서 화물차마다 문을 두드렸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서울을 가야 한다고 했다. 서너대를 넘겼을까, 마음이 좋아 보이는 운전사 한 사람이 고개를 갸우뚱한다. 화물차는 짐도 많이 실었고, 당시 차들은 엉망이었지만 이 차는 가장 남루했다. 제시간에 갈 수 있을까 모르겠다 한다. 이미 1시가 가깝다. 8시간에 가기는 빠득하지만 해 보자고 한다. 차에 타니 차에는 조수 한 사람이 있고, 좌석 뒤에는 데리고 다니는 여자 분이 있다. 한 눈에 대략 분위기를 알 만했다. 이런 상황을 따질 겨를이 없고, 나는 주일 때문에 그리고 입사 시험 때문에 형편이 딱하다는 말만 했고 고맙다는 인사만 했다. 이 날 나는 이 차를 타고 가며 운전사와 조수와 여자분의 대화와 분위기를 통해 내가 평생 접할 수 없고 들을 수 없는 세계를 무척이나 많이 접했다. 사람이 더러워 지려면 그리 어렵지 않고, 이런 분위기를 파악하며 미리 조심하면 자기를 깨끗하게 지켜 내는 것도 어렵지 않겠다는 귀한 경험을 가졌다. 백 목사님의 평생 설교는 현실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며 그 현실에서 우리는 영생의 모든 것을 마련하는 것이며 어떤 환란이든 현실이든 복이며 배울 것뿐이라는 내용이다. 그 분 설교는 한 줄 한 단어마다 실제 살아 보면 그대로 현실과 겹친다. 그래서 생명력이 있다. 화물차 안에서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모든 것이 신기했다. 이런 일정, 이런 생활, 이런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도 있다. 이런 기회가 아니면 내가 어떻게 생생하게 알게 되겠는가? 내가 평생 다른 사람을 지도할 때 잘 사용하고 있다. > > 차는 잘 달렸다. 그러나 화물의 무게와 차의 성능이 문제다. 대전을 지나 갈 때쯤 운전수는 현재 속도로는 9시까지 도착할 수 없다고 한다. 나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한 마디를 한다. 대전 조금 위에 휴게소가 있는데 대전에서 서울로 출근하는 사람들 때문에 일찍 출발하는 버스들이 휴게소에서 잠깐 식사를 하는데 고속버스 기사에게 나를 태우도록 말을 해 주겠다 한다. 화물차 기사가 고속버스 기사에게 사정 이야기를 하니 고속버스 기사가 흔쾌히 태워 줬다. 나는 이 때까지도 철이 없었던 듯하다. 철 없이 살다 신앙이 들고 부터는 눈 앞만 보고 달렸다. 그 때 그 화물차 기사나 고속버스 기사의 연락처나 회사는 적어 뒀어야 한다. 그들에게 그들이 수고한 결과라도 알려 드렸어야 하지 않을까. 오로지 9시에 도착만 생각할 뿐이었다. 고속버스 기사는 서울에 들어 가는 것은 문제가 없으나 출근 시간에 정체가 걸리면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다고 했다. 고속버스 터미날은 당시 서울역 바로 앞이었다. 9시 30분에야 대우그룹 현관 앞에 고속버스 기사는 차를 세워 줬다. 이 것도 불법인데 특별 배려였다 > > (본사 현관에서) > 부산에서 화물차로 새벽 내내 달렸고, 대전 다음의 휴게소에서 고속버스를 얻어 타고 또 달렸으나 서울 입구의 교통 정체 때문에 30분이 늦었다. 수준 낮은 학생이 자기 수준에서는 주님의 인도로 여러 번의 단계를 은혜로 건너 뛰었고 이제 주일을 지키면서 대기업에 정식으로 입사하면 그야 말로 공회나 서부교회 전체를 통해 아마 거의 첫 경우가 될 상황이다. 나는 그런 상황이 되면 그 합격증을 들고 백 목사님께 가서 해야 할 일이 하나 있었다. 그 때 막 편집실에서 직원을 하나 구하고 있었는데 내게는 이 자리가 꿈의 자리다. 이 세상에 무엇을 주고도 가지고 싶은 최고의 자리, 내가 이후 오늘까지 39년을 지키고 있는 자리, 편집실 직원을 시켜 달라고 하고 싶었다. 그냥 가기는 괴로웠다. 세상에 갈 곳이 없으니 교회에 빌 붙어 사는 모습이 가장 피하고 싶었다. 그런데 재주가 없으면 그렇게 해야 한다. 그런데 뜻 밖에 이 번 합격증을 받게 된다면 모든 면에서 가장 완벽하다. 주일 때문에 어떤 취직도 어려웠는데 대기업 입사는 무조건 꿈을 꾸지 못했고 9급 공무원조차 주일 시험 때문에 우리는 원서도 내지 못했다. > > 2차 시험 때 본사를 와 봤다. 건물 안에서 정해진 곳으로 가는 것이 10분으로 어렵다. 정신 없이 현관 앞으로 달려 가는데 저 쪽에서 한 무리가 건물 밖으로 나온다. 한 눈에 보니 입사생들이다. 이미 끝이 나 버렸고 이제 집으로 다 돌아 가는구나 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 간다. 그래도 뭔가를 해야 했다. 확인이라도. 맨 앞에 회사 직원처럼 보이는 사람이 있어서 물었다. 3차 시험 통고서를 받았는데 절차가 끝이 났느냐고? 전공과목과 이름을 묻는다. 그리고 서류를 뒤적인다. 그리고 저 쪽에 몇 번 차를 타라고 한다. 알고 보니 3차 시험은 신체검사만 있었고 인천 쪽의 회사측 병원으로 이동 중이었다. 이동하는 차와 검사를 받는 과정에서 여러 사정을 알게 되었다. 1200명 중에 법학과 120명, 영문학과 120명, 경영학과 120명을 뽑았고 다른 과는 숫자가 적었다. 그리고 서울대를 최우선 채웠고 연고대와 성균관대로 나머지를 채웠다. 당시 성균관대 법학과는 고대나 연대보다 성적이 높았다. 법학과 120명 중에 일류대 외에는 서울에서 명지대 출신 1명, 지방에서는 경북대 1명과 동아대 1명이 전부다. 3명의 2류대는 학벌 편중에 대한 비판 때문에 끼워 넣기였다. 나야 고마울 뿐이다. 지방 2류대를 최고 학벌로만 채운 회사의 일원으로 선발해 줬으니. 또 들어 가기만 하면 실력으로 열심히 해서 뒤지지 않을 자신은 있었다. 공부는 떨어 지나 현장에서 좀 나은 사람도 있고, 공부와 현장이 다 좋은 사람도 있고, 공부는 되지만 현장이 안 되는 사람도 있다. 나는 공부보다 늘 현장이 좀 편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나는 이 회사의 최종 합격증만 필요했다. > > > (1982.10.5.) > 오늘까지 늘 잊지 못할 그 날. 우편 배달부가 합격증을 전했다. 나는 교회로 달려 갔다. 목사님은 꽃마을 기도실에 가셨다 한다. 바로 달려 올라 갔다. 혼자 계셨다. 인사를 드리고 합격증을 보여 드렸다. 오늘 합격했습니다, 편집실에서 지금 사람을 구한다고 광고했지 않습니까? 들어 가게 해 주십시오. 편집실의 월급은 65,000원이다. 대우그룹 초봉은 28만원쯤으로 기억한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 때야 더욱 뜨거울 때니 돈 계산이 들어오지 않을 때다. 목사님은 너무 좋아 하셨다. 바로 직전에 삼환기업이라는 중견 건설회사에 기술 계통으로 취업하고 서울로 간 교인 때문에 목사님은 신앙을 팔았다고 호통을 쳤고 사표를 내고 돌아 왔다가 교회 직원으로 출근한 경우가 있었다. 그 쪽보다는 내가 보기에 더 좋았다. 회사도 더 낫고, 졸업 성적도 더 낫고, 그리고 합격 후 바로 가져 왔으니... 사실은 그 분이 신앙과 모든 면에서 나보다는 월등한 분이다. 나는 그 분에게 개인적으로 모르면 물어 보던 사이다. 어쨌든 그렇게 되었다. > > 목사님은 진지하게 나를 향해 설명을 시작했다. '중간반사가 되라. 목회를 해야 사람이 된다.' 아주 단호했다. > 나는 늘 목사님의 설교 연구만이 내 마음의 전부였다. '목사님 계실 때, 한 말씀이라도 일단 배워야 하겠습니다.' > > 나는 내 평생 아주 중요한 고비 때는 한 번도 목사님의 말씀을 들은 적이 없다. 그래서 지금도 아주 중요할 때 내가 확신 있게 지도를 할 때 상대가 목회자든 교인이든 어린 학생이든 내 말을 듣지 않고 자기 주장을 늘어 놓고 버티면 1982.10.5.을 기억한다. 그리고 1987년 8월 말에 서영준 목사님 후임으로 광안동교회로 가라 하신 말씀을 거부한 기억을 한다. 심지어 1986년 5월에 결혼을 거론하신 목사님께 목사님 자녀들과 목사님 사이를 더 이상 멀어지게 할 수 없다고 순종하지 못한 때를 기억한다. 다른 이유는 아니다. 앞에 두 번은 목사님 돌아 가실 때까지 그 밑에서 한 순간도 떠나지 않고 모든 말씀을 배우고 모든 일을 처리하는 것을 배우고 싶었다. 또 내가 원할 때 언제든지 질문을 하고 싶었다. 결혼 문제는 백 목사님의 자녀들이 극구 반대하면서 백 목사님과 맞서는 문제가 생길 사안이었다. 어쨌든 결과적으로 나는 거부 거절할 수 없는 상황에서 3번을 모두 거절했다. 그리고 내 평생 그 때를 돌아 보며 '순종 이상으로 좋은 것이 없다'는 경험칙을 늘 뼈 속 깊이 새기고 있다. > > 아무리 설득을 해도 너무 완강한 나를 향해 목사님은 최종적으로 말씀을 했다. > '편집실로 가라. 가되, 그 대신 세계 신학을 밟아라' > > 나는 이미 백 목사님의 입에서 떨어 진 말씀은 빗 나가거나 무효가 되는 경우를 보지 못했다. 아무리 될 리가 없다는 상황에서도, 최소한 내게 대한 말씀들은 모두 이루어 졌다. 이 표현을 듣는 순간 나는 또 한 번 막 가는 내 성격으로 쉽게 결론을 냈다. '아, 나는 세계 최고의 신학자, 세상 최고의 교리 학자가 되는구나!' 언제 될지 모르겠다. 내가 이미 되었는지 모르겠다. 적어도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이미 시공을 초월해서 나의 미래는 그렇게 된다고 자신했다. 나만의 지난 날의 주관적, 속 좁은, 우물 안의 개구리로서는 늘 그렇게 되었으니.. 이런 내게 고소를 하고, 이런 내게 그 자녀들 중에서 나를 백 목사님이 하찮게 했다 어떻게 했다는 등으로 표현한다고 내 귀에 들어 오겠는가? 오히려 그 상대를 향해 나는 아무 것도 모르는구나, 내가 호적의 자녀인 당신보다 백 목사님에게는 더 가까운 신앙의 아들인데 라고 생각할 뿐이다. 실제 나는 백 목사님의 7남매 전부보다 백 목사님에 대한 역사와 자료와 설교와 정보만을 가지고 말하면 아는 것이 훨씬 많다. 아니! 그들은 잘못 아는 것이 많고 나는 바로 안다. 내 주장이 맞는지 아닌지는 자녀 7명이 운영하는 부산 연구소가 만사에 나를 따라 오고 내가 적은 것을 배끼고, 나와 공개적으로 맞선 적은 한 번도 없다는 것을 통해 말할 수 있다. 나는 38년간 '백영희'라는 단일 주제 하나만을 전부로 살아 왔다. 그렇다면 아무리 무식해도 그 분야만 가지고 말한다면 낫지 않을까? > > > (망연자실! 나 권사님) > 나의 구역장은 나인숙 권사님이다. 일제 때 화신 백화점의 경리요 물품 담당자였다. 부친이 일제 때 수원에서 택시 12대를 운영했고 무남독녀 외딸이며, 6.25 피난 때 부산으로 와서 고신대 복음병원이 시작 되던 순교자유가족원호회의 회계를 맡았다. 이 때 전영창 훗날 거창고 교장이 총무를 했고 안용준 목사님이 회장을 맡았다. 이 3명이 전영창 교장이 미국에서 받아 왔고 미군들에게 받는 구호품을 가지고 손양원 주기철 등 순교자 유가족들을 돕고 있었다. 고려고등성경학교와 고려신학교에서 공부를 하다가 백 목사님을 알게 되어 서부교회로 와서 평생 서부교회 십일조를 맡았다. 백 목사님의 내막을 가장 잘 아는 위치다. 나 권사님께 달려 갔다. '드디어 편집실 직원이 되었습니다.' 나는 최고의 소식을 전했다. 과거에 장원급제가 아닌가? 사법시험 수석 합격이 아닌가? 내게는 그러했다. > > 그런데, 이 말을 듣는 순간 나 권사님의 얼굴은 새카맣게 변했다. 무슨 일인가? '어떻게 하려고 그런 짓을 하셨나!' 나 권사님은 떨고 있었다. 걱정이 그 분의 온 몸은 물론 얼굴에까지 그대로 반영이 되었다. '잘 한 것이 아닙니까? 이제 마음껏 배우게 되었는데... 그래서 서울에서 왔는데요' > > 나 권사님은 '내가 지금까지 백 목사님을 모시고 십일조 회계를 하는 바람에 교회 내막을 가장 잘 알지 않는가? 교회 직원이 되는 사람은 처음에 모두 은혜를 받고 좋아서 하지만 백 목사님을 생활 속에서 출근하면서 계속 접하게 되면 모두가 귀신이 되지 않던가?' 그러면서 한 사람씩 손을 꼽는다. 누구 누구 누구 누구.... > > 나는 최소한 이 문제만큼은 자신이 있었다. 모든 직원들이 100% 귀신이 되어도 저는 오히려 가깝게 갈수록 더 은혜를 받을 것이니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을 드렸다. 나의 장점은, 못났기 때문에 더 시험에 들 것이 없다. ㄸ 묻은 인간이 재를 묻히면 깨끗해 지는 것이지 더 더러워 지지는 않는다. 이 날 이후 나는 오늘까지 '목사' '교회 직원' '교회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이 날의 나 권사님 이야기를 실감 있게 전한다. 그리고 39년간 겪은 서부교회 시절의 모든 직원들, 교역자들, 공회의 모든 직원들과 교역자들, 연구소의 모든 직원들과 간부들을 쭉 나열하며 그 때 나 권사님보다 더 강경하게 외친다. > > '교회 직원은 절대 하지 말라!' > '교회 월급 받는 인간은 천벌이 위에서 쏟아 진다.' > '돈은 세상에 가서 자기 손으로 벌고, 교회는 와서 자원 봉사만 하라!' > '가룟 유다가 왜 가룟 유다인가? 오늘 교회 돈을 받고 교회 출근하면 모조리 가룟 유다가 된다' > > 1982년 10월 5일, 나는 서부교회 내 편집실이고 이후에 백영희 목회연구소를 거치며 첫 순간부터 교회 내의 월급 받는 이들의 구조적 죄악을 구석구석 잘 안다. 왜 엘리 제사장의 두 아들이 그렇게 되었을까, 사무엘의 두 아들마저 마찬 가지가 되었다. 나 권사님의 절규가 그토록 심각하지 않았다면 나는 좀 나았겠지만 결국 방심하다 나도 그렇게 되지 않았을까? 엄청나게 극찬을 들을 줄 알고 찾아 간 나 권사님, 그 분 평생에 그토록 진노한 일은 내게 다른 일로 또 한 번이 있었다. 그 날이 처음이다. 그 날의 그렇게 강한 절규 때문에 나는 출근을 하면서 늘 교회에서 돈 받고 사는 생활을 심각하게 두리번 거렸다. 이 이야기를 다 하자면 한도 없다. 백 목사님 생전의 서부교회 내의 직원들 6-70여명이 이 모양이면 그 분 사후는 어느 정도일까? 정화조 통이 30년을 그대로 고였으니 오늘 서부교회와 총공회가 이 모양 이 꼴이다. > > 바로 이 날의 이 경험과 이후 이어 진 경험 때문에 > 백 목사님 사후 내가 연구소 업무를 독자적으로 자유할 수 있게 되거나 내가 신풍교회를 맡고 이후 부산공회3을 형성해 가는 과정에 '교회 돈'을 손에 대는 사람들은 그 어떤 교인이 지켜 봐도 숨이 막힐 정도로 조심을 해 왔다. 비록 무능하다고 손가락질은 받아도, 비록 판단이 잘못 되었다고 비판을 받을지라도 경제 문제만은. 교회 돈을 사용하는 문제만큼은 어떤 사람도 내 주변에 오기를 겁 내도록 만들었다. 내게는 수 많은 문제가 많아도 경제에 관해서는 적어도 도둑ㄴ은 없다. 도둑ㄴ도 없다. 벌지는 못해도, 교회 돈을 잘못 사용해서 손해 보도록 구조적으로 그렇게 만들지는 않는다. 혹시 그렇게 되는 것처럼 보일 때는 훗날까지 면밀하게 계산해서 마지막 결산을 한다면 반드시 남는 장사를 하지 손해 볼 장사는 그 어떤 경우도 하지 않았다. 교회를 모르는 세상 법으로 나를 얽는다면 곳곳에 문제가 많을 것이다. 적어도 상식을 두고 말한다면 나에 대해 경제를 비판하는 사람은 미리 회개하는 것이 지혜로울 것 같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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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4
여호와여 나를 살피시고 시험하사 내 뜻과 내 마음을 단련하소서
03.04
내가 나의 완전함에 행하였사오며 요동치 아니하고 여호와를 의지하였사오니 여호와여 나를 판단하소서
03.04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려니와 무고히 속이는 자는 수치를 당하리이다
03.04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의지하였사오니 나로 부끄럽지 않게 하시고 나의 원수로 나를 이기어 개가를 부르지 못하게 하소서
03.04
여호와여 나의 영혼이 주를 우러러 보나이다
03.03
내 나이 이제 팔십세라 어떻게 좋고 흉한 것을 분간할 수 있사오며 음식의 맛을 알 수 있사오리이까 어떻게 다시 노래하는 남자나 여인의 소리를 알아 들을 수 있사오리이까 어찌하여 종이 내 ?
03.02
여호와께서 그 터를 바다 위에 세우심이여 강들 위에 건설하셨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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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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