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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희 신앙노선의 오늘을 고민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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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단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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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1972년의 가을 소풍에 주일 문제로 나는 신앙의 첫 경험을 제대로 했다. 그런데 훗날 다시 짚어 보니 주님은 그 손으로 능력을 친히 직접 뜨겁게 내밀었기 때문에 내게 청구한 것이 있었다. 이제 제대로 믿고 살라는 요구였다. 그런데 나는 그 큰 체험에도 불구하고 공회의 모태 가정에서 덧 없이 세월을 보내는 일반 아이들처럼 그냥 습관적으로 교회를 다녔다. 다만 교회 주일학교의 서기 보조를 맡았다. 예배 때 나와서 간단하게 심부름하는 일이다. 나 스스로 신앙을 위해 노력한 적은 없다. 창동교회는 1971년 가을에 이진헌 목사님이 부임하고 1972년 봄에 가셨는데 그 6개월 기간에 과거 남녀 학년 별 담임제였던 주일학교를 서부교회 주일학교 식으로 완전히 전환을 해 버렸고 몇십 명 수준의 주일학교가 몇백 명까지 치솟았다. 교회는 뜨겁게 변화되고 있었으나 나는 서기부 심부름이나 할 정도였다. 이도찬 후배는 키가 작아서 중학생인데도 초등학생 속에 묻히는데도 자전거로 아이들을 실어 날랐다. 나는 신기하게 쳐다만 봤다. 그 가정은 뒤에 서울로 올라 가면서 동문교회의 주력이 된다. 그 가정 식구들이 이 글을 읽는다면 '그 친구 사람 됐네... 많이 컸어...' 라고 나를 내려다 볼 듯하다. 그들은 공회 안에서 잘 자란 신앙의 사람들이고 나는 훼방꾼이었다. > > 가을 소풍을 갔다 오고 매서운 겨울이 찾아 왔다. 12월로 기억 되는 어느 날, 학교에서 고교 진학 원서를 내라고 했다. 나는 샛별초교를 나왔고 현재 거창중학교를 다니니 그 다음에는 당연히 거창고교로 간다고 생각했다. 나는 45명 샛별초 성적도 항상 10등 주변에서 맴돌았고, 중학교 성적도 10등 주변이었다. 거창고의 입학 성적은 반에서 10등이면 안정권이라고 했다. 13등 정도가 합격 통과선이었다. 나는 집안 경제가 좋았기 때문에 담임 선생님들 집에 가서 직접 과외를 받은 적이 많다. 계속성도 없고 공부 체질도 아니어서 조금 다니다 말았지만 과외비를 낼 수 있는 가정은 많지 않다. 나는 시내 한복판에 공장을 하는 아버지와 15세 위의 큰 누님이 거창 사회의 주류층을 잘 알기 때문에 그 연줄로 늘 덕을 보고 살았다. 부모 그늘이 아니라 누님 그늘이 내게는 컸다. > > 1학년 때 담임은 과학 교사다. 그 집에서 가서 몇몇 친구와 과외를 받았다. 2학년 때 담임은 영어교사였다. 그 집에 가서도 과외를 받았다. 지금도 은밀하게 남아 있지만 합법적으로 교사에게 과외를 받던 때 시골의 분위기였으니 성적에 확실한 도움을 느꼈다. 과외를 한다고 실력이 무조건 늘지는 않는다. 학생의 의지가 있어야 한다. 나는 그렇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성적은 눈에 띄게 괜찮아 졌다. 대충 어느 정도의 효과가 있는지 점수로 계산이 되었다. 샛별초는 거창고가 운영했기 때문에 정직에 대해서는 칼날처럼 확실했다. 그러나 5학년 때 담임은 거창교회 바로 옆에 있던 집으로 불러 과외를 했다. 교장은 교사를 내보내고 이하수 선생님이라는 분을 모시고 왔다. 훗날 교장이 된다. 신용인 목사님이 초등 3학년 때 부임하자 김명자 사모님이 사택에서 몇 명을 과외했다. 이 문제는 백 목사님께 보고가 되어 바로 중단이 되었다. 사택 마당에 닭을 몇 마리 키웠다는 것도 보고가 되었다. 목회자는 부업이 금지란다. 어린 마음에 어리둥절했으나 내게는 많은 면으로 깊고 깊은 통찰력을 길러 주는 일화들이었다. 이래저래 주변과 비교하면 부럽지 않은 여건에서 공부를 했으나 놀든 열심히 하든 나는 항상 반에서 10등 정도다. 고등학교에 가서도 그랬다. > > 1973년 1월 초, 조금 있으면 고교 입학 시험날인데 어느 날 얼음이 얼고 추운 날이었다. 그지 없어 집 안에만 있다 무슨 일이 있어 길에 나가자 친구가 지나 가면서 '너 거고 원서 냈지?' '그런데...' '이 번에 학교에서 학생 유치에 열을 냈고 좋은 학생들이 몰리면서 커트라인이 134점이 될 수 있다더라' > > 그 친구는 훗날 고대 상대를 들어 가는데 평소에도 정말 공부에 전력했다. 나는 샛별초를 나왔고 이제 중3년을 돌아 다시 거고로 가는 것이니 집으로 가는 것처럼 그냥 가게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컷이 134점이면 나는 합격을 자신할 수 없었다. 원래 입학시험의 분포도는 커트라인 근처에 많이 몰리는 것이고 나는 예전의 컷이 127점, 그 정도로 들었기 때문에 안정권이라고 생각했었다. 그 친구의 말은 내 머리를 사정 없이 강타했다. 재수를 하게 되나?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 낙제 걱정은 하지 않을 안정권, 반에서 10등이 내가 늘 숨어서 편히 놀던 나의 안식처다. 나는 이 때의 경험 때문에 평생 학생들의 학습과 진학 진로를 할 때 소중하게 써먹는다. 나는 최우수 학생들은 어떻게 지도해야 할지 감을 잡지 못한다. 어중간한 학생이 원래 많다. 그런 학생들을 지도할 때는 내가 걸어 온 경험 때문에 열심히 강의를 한다. 실제 많은 효력이 있었다. > > 친구에게 그 말을 듣고, 바로 집으로 왔다. 시험 날까지 주일을 빼고 딱 7일 남았다. 공부할 기회는 6일이다. 시험에 떨어 질 확률 50%, 합격할 가능성 50%. 내 주변에서 나 정도 공부하는 사람들이 그냥 대수롭지 않게 들어 가던 학교를 들어 가지 못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 때는 합격을 해놓고도 5% 정도의 학생들은 학비가 없어 합격을 포기한다. 그래서 입학생을 발표할 때 거창중학교는 360명 모집에 50명 정도를 보궐 명단에 적어서 발표한다. 거창고의 숫자는 기억에 없지만 형제 중에 그렇게 들어 간 경우가 있다. 돈으로 들어 갔다는 말을 두고두고 듣는다. 참 창피한 일이다. 그 것이 더 아찔했다. > > 방에 앉아 잠깐 계산을 해봤다. 딱 6일. 10개 과목의 200개 문제로 200점 만점이다. 190점을 넘기는 학생은 거창중에서 2-3명 있다. 그들은 부산의 경남고 부산고, 아니면 마산고 진주고라는 명문으로 간다. 180점대 중후반은 그런 곳에 응시를 했다가 떨어 지면 재수를 해서 들어 간다. 한 해에 그런 명문에 들어 가는 숫자는 1-2명, 많으면 3-4명이다. 거창고는 170점대가 되면 수석 차석을 생각한다. 장학생은 기본이다. 180점대면 거뜬하다. 나는 130점대를 살짝 넘긴다. 최소한 5점에서 10점을 높여야 안정권이다. 6일에 할 수 있는 일은 간단했다. 기출문제만 풀어 보는 것이다. 어머님께 책 한 권 산다고 돈을 받았다. 평소 같으면 책 값에 얼마를 더해야 10원이라도 용돈을 챙길지 계산을 할 것인데 시험을 한 주간 남긴 상태니 어머니도 반갑게 얼른 돈을 주고 나는 바로 서점에 가서 기출문제 10년치 책 한 권을 샀다. > > 그리고 집에 와서 안방에 앉은뱅이 책상을 놓고 어머니께 부탁을 했다. 이 시간부터 시험 날까지 화장실 가는 것 외에는 앉은 자리에서 먹고 자고 공부만 하고 주일만 책을 덮겠으니 무조건 도와 달라고 했다. 비장한 얼굴에 한 번도 하지 않던 공부 부탁을 하니 바로 그렇게 해주셨다. 책상에 앉아 먼저 기도를 했다. 미리 좀 했더라면 합격 걱정은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먼저 나왔다. 믿는 가정에서 기도라는 것은 눈을 감으라 해서 질끈 감고 시간만 계산하다 눈을 뜬 것이 전부다. 이 번 기도는 난생 처음으로 나의 마음으로 내가 필요해서 간절하게 기도를 했다. '이 번에 한 번만 합격을 시켜 주시면, 평소에 할 일을 착실하게 잘 하겠습니다.' 이 말뿐이고 이 마음뿐이었다. 그 대신 그 기도는 간절했다. 내 평생에 기도치고 그 때만큼 그렇게 간절히 기도한 적은 없다. 남들에게는 대수롭지 않아도, 기도하는 자신에게 절박하면 그 기도는 뜨겁게 되고, 그렇게 만들어 놓은 주님은 남 몰래 그 기도를 통해 거래를 하신다. 태어 나서 처음 기도를 해봤다. 1주일, 이 번에는 죽도록 공부를 하겠습니다, 이 노력을 기도로 받아 주시고, 합격만 시켜 주시면 다음에는 이렇게 외상으로 기도하지 않고 미리 준비하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기도의 내용과 성격을 분명히 했다. 이 때의 기도 때문에 평생 기도해야 할 사람에게 나는 하나님을 설득 시킬 수 있는 '조건'을 제시하며 기도하라고 부탁을 한다. 무조건 주문처럼 반복하지 말고, 주님이 속아 주실 수 있고 설득을 당할 수 있고 한 번은 기회를 주실 수밖에 없는 조건. 너무 높게 잡아서 뻔히 불가능할 조건으로 높이지 말고 그렇다고 하찮은 것을 걸지 말고, 하면 할 수 있는 것으로 그리고 그렇게 한다면 주님이 한 번 들어 줄 수 있겠다고 자기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조건을 제시했다. > > 이 기도를 생각해 보면 믿는 가정에서 교회를 습관적으로 다니는 것조차 얼마나 큰 복인지 모르겠다. 백 목사님은 평생 부러워 해 본 것은 불신자 때 내 나라의 군인이 되어 보는 것, 믿은 이후에는 믿는 가정에서 자라는 것을 든다. 나는 모태 신앙이다. 그렇게 싫었으나 이미 내 속에는 정말 다급하게 되자, 기도가 나왔고 그 기도는 타 교회의 일반적 기도나 타 종교의 주문이 아니라 공회의 수준 높은 기도를 배운, 마치 잘 배워 써 먹는 것처럼, 그런 기도가 나왔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내게는 놀라운 집중력이 생겼다. 10개 과목의 두꺼운 책, 기억에 4~5백 페이지는 되지 않았을까? 그 책을 6일로 나누고, 다시 하루 분량을 시간 별로 나누어 표시를 해 두었다. 하루 20시간은 공부를 했던 것 같다. 한 번 읽으면 두 번 읽을 시간이 없다. 구경만 하고 넘어 가면 소용이 없다. 이 문제가 나오면 답을 맞출 수 있어야 했다. 영어와 수학 과목은 아예 빼버렸다. 그렇게 한 주간을 쏟아 부었다. > > 시험을 치고, 그 친구가 다시 내게 말을 건넸다. 그 친구는 학교에 아는 사람이 있는 듯했다. '너 점수 잘 나왔던데!' '어떻게 알아?' '나는 몇 등을 했어. 장학생이야. 그런데 너는 장학생 명단에는 들어 가지 못해도 바로 그 다음 성적이야.' 그 때 그 친구가 알려 준 점수는 167점이었던 듯하다. 영어 수학을 완전히 포기한 점수다. 영어 수학이 그 등수의 일반 점수로 나왔다면 수석이 가능했을 정도였다. 영어 수학 외에는 거의 만점이었다. 그 순간 내게는 앞에 적은 가을 소풍 때 느꼈던 그 체험으로 하늘을 나는 듯 했던 때와 정확하게 같았다. 합격이나 높은 성적이 아니라 나는 태어 나고 처음으로 기도라는 것을 해봤고, 그 기도의 효력을 봤다. 이로서 나는 하나님을 이제 확실하게 만난 사람이 되었다. 이 것이 기뻤다. 소풍 때의 체험은 습관적 신앙 때문에 불쑥 내다 질렀는데 친구 때문에 그렇게 그렇게 된 것이다. 이 번에는 신앙의 분야가 다르다. 또한 안정권으로 합격만 할 줄 알았는데 아예 하나님께서 내게 확신을 주시려고 표시를 아주 확실하게 했다. > > 나는 이 날 이후 나의 하나님과 내가 급할 때, 그리고 그 급한 것은 30세가 되도록까지 계속해서 공부를 떠날 수 없었던 세월 속에 주로 시험과 관련 해서, 그런 식으로 늘 오가는 결과가 있었다. 나는 반에서 그냥 10등 정도하는 평범한 학생이다. 나보다 학습력이 떨어 져도 조금 열심히 하면 나를 앞 설 수 있고, 나보다 머리가 좋은 친구는 별 신경 쓰지 않아도 내 앞에 있다. 나는 그 어중간한 그 정도였다. 그런데 시험만 치면 나를 아는 나의 주변 사람들이 짐작조차 할 수 없는 결과로만 계속 이어 졌다. 나는 잘하지는 못해도 내 평생 학생이었고 또는 가르치는 선생이었다. 공부가 나의 전문 분야다. 나의 기적과 능력과 체험과 내가 하나님을 만난 이야기에 가장 깊고 뜨겁고 많은 분야는 공부였고, 그 중에서 시험의 결과였다. > > 사업을 하는 사람은 사업에서 주님을 만나야 하고, 사업에서 말씀으로 살아 본 능력을 가져야 한다. > > 가정에서 활동하는 주부는 가족과 가정 울타리 안에서 성경의 모든 기적을 가질 수 있다고 본다. > > 목회하는 사람은 목회에서, 정치하는 사람은 다니엘과 요셉의 경험을 그 정치 현장에서... > > 내가 자신이 있는 분야에서 주님을 만났더라면 세월이 지나면서 슬그머니 나의 선후천의 실력과 노력이 고개를 들 수 있을 듯하다. 나는 체질적으로 공부가 싫다. 맞지 않는다. 그런데 남들이 하니까 했고 나중에는 목사님 때문에 할 수 없이 계속했다. 그리고 나는 그 공부라는 울타리 안에서 공회 노선이 안내하는 모든 체험은 모두 다 겪어 봤다. 이 글도 이 노선의 교인들에게 이 노선이 기적과 능력을 선전하고 강조하지 않는다 해서 이 노선의 교인들이 순복음교인들처럼 방언하는 감리교인들처럼 뜨겁지 않고 그냥 미지근한 신앙으로 보지 않도록 적고 있다. 그리고 시시해 보이는 공회 사람들은 그들 속에 나와 같이 각자의 다른 분야 다른 생활에서 뜨거운 세계를 가졌고 또 지금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다. 나는 나의 체험 때문에 이후 어떤 공회 교인을 만나도 또 목회자들과 대화를 해도, 저 분 속에도 나와 같은 그런데 나와 다를 수 있는 그런 기적과 능력을 가졌겠지... 라고 기본 인식을 가지고 대화를 한다. 나의 장점 중에 하나는 내가 만나 보는 사람들 중에 그들이 신앙의 체험을 했다면 그 체험은 자기만 체험한 줄 알고 다른 사람은 그런 체험을 하지 않은 듯이 말하는 경우가 있는데 나는 내가 가진 체험은 다른 사람도 그런 체험을 가졌을 것이라고 짐작하는 것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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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백영희신앙노선'총괄(요약)
②'백영희신앙노선'총괄(전체)
③교리정리
④성경신학
⑤문답방정리
⑥기타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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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언/주제연구
연경교재
참고연경
일반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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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4
여호와여 나를 살피시고 시험하사 내 뜻과 내 마음을 단련하소서
03.04
내가 나의 완전함에 행하였사오며 요동치 아니하고 여호와를 의지하였사오니 여호와여 나를 판단하소서
03.04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려니와 무고히 속이는 자는 수치를 당하리이다
03.04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의지하였사오니 나로 부끄럽지 않게 하시고 나의 원수로 나를 이기어 개가를 부르지 못하게 하소서
03.04
여호와여 나의 영혼이 주를 우러러 보나이다
03.03
내 나이 이제 팔십세라 어떻게 좋고 흉한 것을 분간할 수 있사오며 음식의 맛을 알 수 있사오리이까 어떻게 다시 노래하는 남자나 여인의 소리를 알아 들을 수 있사오리이까 어찌하여 종이 내 ?
03.02
여호와께서 그 터를 바다 위에 세우심이여 강들 위에 건설하셨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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