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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희 신앙노선의 오늘을 고민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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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단에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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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p></p><p></p><img onclick="window.open('./img_win.php?img=./data/namdan1/binary/부산남단.png&code=namdan1','img_win','width=80, height=80, scrollbars=yes')" src="./data/namdan1/binary/부산남단.png" style="cursor:hand" width="700"/><br/><br/><br/>사진은 1992년 2월 22일부터 1997년 기간 동안 부산의 목회연구소 시절에 운영했던 '남단'입니다. 건물의 왼 쪽 흰 부분 중 윗층 한 칸이 남단이었고, 오른 쪽의 검정색 벽까지 모두가 단일 건물입니다. <br><br><br>1. 남단의 역사<br>원래 '남단'이란 백 목사님 생전에 서부교회를 일컫는 공회 교인들의 통칭이었습니다. 백 목사님의 갑작스런 순교를 맞아 연구소는 자료 일체를 2 부로 만들어 분리 보관해야 할 급박한 상황에서, 부산의 연구소 3층에 있던 원래 자료실과 별도로 부산의 반대 편에 외부 자료실을 마련하게 됩니다. <br><br>백 목사님의 부재에 이어 만일 자료실이 내부 실수로 불에 타거나 외부에 당하는 상황은 무조건 피해야 했고 당시 연구소 실무진은 이 목적 하나만을 생각해야 했습니다. 연구소 소장님을 포함하여 4 명만 알고 1997년까지 과도기를 보내게 되었습니다. 이 기간에 제가 근무하던 신풍에서는 모든 자료를 2 부로 만들거나 전산화를 하여 어떤 경우라도 원본의 보관과 모든 자료의 2 부 보관을 기하게 되었습니다. <br><br><br><br>2. 백 목사님 생전<br>백 목사님은 생전부터 사후를 일일이 읽어 주셨고 백 목사님이 계시던 5층을 자유로 출입하던 핵심 직원들은 백 목사님의 사후를 불편 없이 읽을 수 있었습니다. 연구소와 관련 된 것만 잠깐 소개하면 목사님이 가시고 나면 총공회가 제일 먼저 이 교훈을 배척하고 연구소 운영을 막을 것이며 그 다음이 서부교회가 될 터인데 총공회는 즉각 그렇게 되고 서부교회도 급박하게 그렇게 돌아 갈 것이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실무 책임을 지는 직원들 사이에서는 백 목사님 사후 준비를 생전에 할 수 있었고 순교 후에는 이 문제를 최우선적으로 처리했습니다. <br><br>아직도 홈에 올려야 할 자료는 한도 없지만 무조건 2 부 체제로 보관 되어 있고, 대부분은 전산화가 된 상태에서 일반 공개를 하기 전에 확인 작업이 필요하여 공개가 늦어 질 뿐입니다. 일단 자료 작업이 끝난 이 상황을 두고 제가 느끼는 다행스러움은 일반인들이 느끼기에는 거리가 너무 멀 것으로 생각합니다. <br><br><br/><br/>3. 남단이 주는 천국 생활<br/>1991년 2월부터 1997년까지 7 년 기간 동안에는 이 남단 때문에 저는 제 경제나 생활 여건에서 꿈도 꾸지 못할 호강을 했습니다. 지금은 주거 밀집지로 바뀌었지만 90년대 7 년 동안에는 그 곳이 부산의 제일 전망 좋은 해운대 언덕이었고 당시는 현해탄과 해운대가 한 눈에 내려다 보이며 주변에도 고급 건물만 몇 채가 있었기 때문에 외국 좋은 곳이 부럽지 않았습니다. 물론 제 돈은 단 1 원도 들어 가지 않았습니다. 저를 믿고 개인적으로 제한 없이 연보를 해 주신 분들의 후원이 있어 가능했습니다. <br/><br/>기도처로도 너무 좋았고, 책을 쓰는 장소로도 그만이었습니다. 휴식도 할 수 있었고 때로는 난치나 불치라는 병을 그 곳에서 단기간에 잡은 경우도 있었습니다. 갈 때마다 좋은 위치, 좋은 전망, 좋은 시설, 모든 것이 편리한 상황에서 그 원룸은 백 목사님의 모든 자료로 가득 차 있었으니 여기에 무엇을 더 바랐겠습니까? <br/><br/>연구소 일을 두고 단 한 번도 가리고 숨겨 보지 않았던 직원들에게도 이 곳의 존재만은 알리지 않았습니다. 모든 자료의 2 부 체제가 완료 되고 자료가 외부에 자유롭게 제공 되는 그 날까지. <br/><br/><br/>4. 목회연구소는<br/>원래 주소지가 1982년 부산 서부교회 안에서 '편집실'로 출발했고 1988년에는 서부교회 바로 옆에 독립 건물(지하1층, 지상 4층)을 확보하였으며, 1989년 3월 18일 제가 신풍으로 근무지를 옮기면서 그 때부터는 연구소가 부산과 여수로 이원화가 되었고, 목사님 순교 후의 자료실은 2 곳의 연구소와 별도로 유지했던 곳입니다. <br/><br/>아직 만족할 수는 없지만 백영희 관련 자료 일체의 유지와 그 전달을 두고 이 남단의 건물 시절은 저를 믿고 경제적으로 조건 없이 지원하신 분들께 이 자리를 빌어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어떤 큰 연보를 받고도 받았다는 표시조차 하지 않는 편이어서 연보를 한 분들이 자기 연보가 제대로 전달이나 되었는지 불안해 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br/><br/>연보로 지원하시는 분들 외에 아예 자신과 가족의 평생을 모두어 이 연구소 업무에 쏟고 계신 분들을 저는 이 노선의 핵심 중에 핵심이라고 생각하고 싶습니다. 최근 여러 책들이 출간 준비를 하고 있는데 갈수록 동참하는 분들이 많아서 그지 없이 감사할 뿐입니다. 성경언어론을 봐서 알겠지만 이 노선에서는 방향만 잡으면 출간할 책들이 무수하고 그 책들은 대부분 세상 어떤 서점이나 어느 도서관에서도 찾을 수 없는 내용들이 될 것인데 혼자 갈 길이라고 생각했던 때를 생각하면 지금 저는 감개무량할 뿐입니다. 백 목사님께서 생전에, 특히 80년대 초반에 사석에서 종종 언급했던 성구 하나를 소개합니다. <br/><br/>사49:21<br/>그 때에 네 심중에 이르기를 누가 나를 위하여 이 무리를 낳았는고 나는 자녀를 잃고 외로와졌으며 사로잡혔으며 유리하였거늘 이 무리를 누가 양육하였는고 나는 홀로 되었거늘 이 무리는 어디서 생겼는고 하리라</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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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4
여호와여 나를 살피시고 시험하사 내 뜻과 내 마음을 단련하소서
03.04
내가 나의 완전함에 행하였사오며 요동치 아니하고 여호와를 의지하였사오니 여호와여 나를 판단하소서
03.04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려니와 무고히 속이는 자는 수치를 당하리이다
03.04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의지하였사오니 나로 부끄럽지 않게 하시고 나의 원수로 나를 이기어 개가를 부르지 못하게 하소서
03.04
여호와여 나의 영혼이 주를 우러러 보나이다
03.03
내 나이 이제 팔십세라 어떻게 좋고 흉한 것을 분간할 수 있사오며 음식의 맛을 알 수 있사오리이까 어떻게 다시 노래하는 남자나 여인의 소리를 알아 들을 수 있사오리이까 어찌하여 종이 내 ?
03.02
여호와께서 그 터를 바다 위에 세우심이여 강들 위에 건설하셨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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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댓글
공회교인
6시간전
참 감사할 일입니다. 그저 고맙고 감사할 뿐입니다
ysha
6시간전
저도 그 사모님이 그립습니다.
교인
6시간전
목사님, 늘 변함없이 칠흑같은 바다를 비추어지눈 등대처럼 바른 길로 인도해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늘 건강하시…
황선욱
6시간전
'성자'라는 표현은 쓰지 않는 것이 좋다고 봅니다. 말 그대로 '거룩할 성'이므로, 사람에게 쓰는 것은 좋지…
13.11.02
12.21
이 노선의 우리가 지켜 볼 이유와 사연이 있는 볼리비아 선교회 고광문 목사님이 보내 온 소식입니다. '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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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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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A
03.16
31절에서34절말씀주해요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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