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KIST
백영희 신앙노선의 오늘을 고민하는
목회 연구소
총공회 목회연구소
0
총공회
백영희
보관자료
연구실
행정실
활용자료
참고자료
총공회
총공회 소개
인물/사건
소사/일지
역사자료
목회 연구소
역사
참고
백영희
보관자료
추가자료
출간 설교록
미출간 (준비)
설교록 발췌집
연구서적
출간목록
연구실
행정실
행정
보관
정정
회원/후원
활용자료
교리 정리
성경신학
[설교류]
원본설교(확정)
원본설교(검토)
성경단어사전
주교공과
[사전류]
교리성구사전
주해사전
용어사전
예화사전
메모사전
각주사전
참고자료
메인
총공회
백영희
보관자료
연구실
행정실
활용자료
참고자료
0
가족 소중한 모습(상세) 글답변
이름
필수
비밀번호
필수
옵션
HTML
제목
필수
안내
지도
웹에디터 시작
> > > 시카고 대학 경제학부에서 졸업논문을 준비 중이던 한국인 2세인 루이스 최. 그에게 어느날 날아든 아버지의 의식불명. 그는 학업을 중단하고 아버지가 누워있는 낯선 조국의 병실을 찾는다. 그리고 시작된 병마와의 처절한 3년여 싸움 끝에 그느 아버지의 의식을 소생시킨다 > 교회 예배 인도 중 쓰러진 아버지 희망은 없었다 > > 교회예배인도 중 쓰러진 아버지 희망은 없었다. > > 우리 형제 둘만을 미국에 두고 어머니마저 고국에 들어가신 아버지 뒤를 쫓아 귀국을 하셨을 때, 난 어떤 불행도 예감도 하지 못했다. 아버지가 한국에서 갑자기 의식을 잃고 쓰러지신다든가, 그 상태로 6백18일을 지낸다든가, 그 때문에 내 인생의 스케줄표가 엄청나게 뒤틀린다든가 하는 그 모든 것을. > 만약 그것을 미리 알았다면 나는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빌었을 것이다. 제발 그런 일만은 내 앞에 일어나지 말게 해달라고 지금도 난, '겪고 나니 견딜만 하더라'하며 지나간 시간을 정당화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 그것이 모든 사람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하더라도 지난 6백18일은 정말 돌이키고 싶지 않은 악몽의 시간들이었다. > 아버지는 예배를 인도하는 도중 갑자기 동작을 멈추셨다. 설교 연단에 가지런히 놓인 의자에 앉아 머리 위로 양손을 맞잡은 채로 기도를 드리는 것같은 아버지에게서 코고는 소리가 났다. 목회자가 예배 도중에 졸다니.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놀란 어머니가 조용히 연단 옆으로 갔다. 아버지를 흔들었다. 그런데도 아버지는 반응이 없었다. 어머니가 이상하다고 느끼는 그 순간, 아버지는 어머니 앞으로 푹 고꾸라졌다. 마치 감자자루가 무너지는 것처럼. > 병명은 다중 동맥류 파열증. 수술을 할 것인가? 고통이 없는 편안한 사후를 준비할 것인가? 우리 앞에 찾아온 첫 번째 시련이었다. 의사는 아버지의 증세에 대해 비관적이었다. > '수술 전 환자의 건강상태가 좋지 않아 수술 후에도 문제가 있을 것 같다. 설사 수술을 이겨낸다고 해도 회복까지는 오랜시간이 걸리고 또 많은 어려움이 따를 것이다' > 그러나 난 그 말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어머니와 내가 할 수 있는 뾰족한 방법도 없었다. 기적을 위한 기도 외에도 그리고 나는 언제 내 앞에 > > 닥칠지 모르는 죽음에 대한 마음의 준비를 해야 했다. > 아주 어렸을 때, 나는 언젠가는 나도 죽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잠을 설친 적이 있었다. 일찍 죽음을 생각했으니 나이에 비해 조숙했던 것 같다. 그런데 이처럼 죽음을 생생하게 느낀 적은 없었다. 내 앞에 버티고 서 있는 현실의 죽음은 지난 날의 내 모든 두려움을 한낱 모조품으로 격하시키고도 남았다. > 결국 우리는 수술을 택했다. 수술 외에 우리가 택할 방법은 아무 것도 없었다. 수술실에 들어간 아버지는 두세 시간이 되어도 나오질 않았다. 그리고 계속해서 흐르는 시간들... 그것이 도리어 날 안심시켰다. > 수술이 진행되는 동안 수술실 벽에 기대어 난 기도했다. 이 밤이 다 새도록 제발 유리문 밖으로 아무도 나오지 말라고 지난 밤, 의사들은 수술이 밤새도록 계속될 것이라고 내게 일러주었다. 수술 도중 아버지가 생명을 잃는 불상사가 발생하지 않는 한 아버지의 수술은 오랜시간이 걸리는 대수술이었던 것이다. > > 생명을 건 수술 뒤에도 자극에 무반응인 신체 > > 다행히 1차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 수술대 위에 죽은 듯이 누워 있는 아버지의 눈은 부어 있었다. 뺨도 두배 이상 부풀어져 있었다. 입에는 강철 튜브를 깨물고 있었다. > 수술대 위에 누워 있는 아버지를 생각하며 나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아버지가 겪었을 고통을 생각했다. > "기분이 좀 어떠세요?" > 그의 귀에다 대고 속삭였다. 그런데 그는 아무런 대답도, 반응도 보이지 않는다. > "아버지 제 말 들리세요?" > 조금 더 큰 소리로 물었건만 반응은 마찬가지였다. 무반응. 묵묵부답. > 언제 끝날 줄 모르는 아버지의 침묵은 그렇게 내 곁으로 다가왔다. 병상에 누워 있는 아버지의 육체는 이미 산 사람의 모습이 아니었다. > 그러나 나는 아버지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을 본다. 갈라진 틈 바구니 속에서, 핏기어린 그의 흰 눈자위와 검은눈동자의 저편에서, 자신의 뇌 깊이보다 더 깊은 심연의 세계를 아버지는 분명히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내가, 아버지는 잠들어 있는 것이 아니고 일생일대의 정신적 투쟁을 벌이고 있다고 믿는 이유이다. > 의사들은 향후 수술 후 사흘이 고비라고 했다. 그리고 그들은 우리에게 만일의 사태에 대비할 것을 예고했다. 하지만 나는 아버지가 '우리 곁을 떠난다'는 생각은 머리에 담지 않았다. 그것은 그의 죽음에 덧칠을 하는 짓이니까. > 꾸어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꼼짝 않고 하루종일 그의 침대 앞을 지킨다. 십 분마다 아버지의 혈압과 맥박을 재고 기타 육체적 징후를 적는다. 그 밖에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 병원에 입원한 지 7일째 되는 날. 아버지 눈은 감겨져 있고 입은 딱 벌어져 있었다. 입술을 눌러서 입을 다물게 하려고도 해 보았지만 아무 소용도 없었다. > > 어떠한 자극에도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 아버지의 병명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그때부터 나는 아는 의사에게서 의학서적을 빌려 아버지가 앓고 있는 병에 대해 공부를 시작했다. 또 미국에 있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관련 서적을 부쳐줄 것을 부탁했다. 그리고 흐트러지는 자신을 추스렸다. 이제 나도 의사가 되는 것이다. 아버지 병을 내 지식으로 정복하리라. 무지로 인해 나 자신을 잃고, 결국 아버지마저 잃는 일은 없으리라 다집했다. > 그런데 그 결심에 첫 시련이 다가왔다. > '문제가 생겼습니다. 심장마비인 것 같습니다.' > 아버지의 심장이 잠시 멈췄다가 다시 작동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의사는 수술에 따른 혈관경련을 이겨내기 위해 아버지에게 일종의 아드레날린을 주사했다. 피의 공급을 원할하게 하기 위한 것이라 했다. 그러나 그의 심장은 그것을 견뎌낼 힘이 없었다. > '앞으로 사흘 간이 아주 중요합니다. 무슨일이 생길지는 예측할 수 없지만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 나는 무의식적으로 아버지의 침대 곁에 바짝 붙어 선다. 멀리 지나간 줄 알았던 죽음이 또 다시 내게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었다. > 그러나 장례를 위한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죽지 않았다. 그런 상태로 열흘을 넘겼다. > 그리고 아버지의 심장은 안정을 되찾았다. > 하지만 아버지는 여전히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는다. > "아버지 제 목소리 들리면 눈을 뜨세요" > "아버지, 제 목소리가 들리면 몸 어디라고 움직여 보세요" > "아버지, 제 목소리가 들리면 제 손을 곡 잡으세요" > 어느 질문에도 반응이 없다. 침대 곁에 꼼짝 않고 한 시간 두 시간을 반복해도 마찬가지다. 힘이 빠진다. 뭐가 뭔지 > > 도 모르겠다. 상태가 좋은 건지 나쁜 건지도... 어쩌면 기본적으로 내 착상이 틀렸는지도 모른다. 혼란이 가중된다. > 매일 드나드는 방문객들. 2주 동안에 족히 백 명은 넘는 것 같다. 개중에는 진정으로 우리를 염려해 주고 위로해 주고 위로의 말과 더불어 충고를 아끼지 않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달갑지 않는 방문객도 종종 있었다. > 별로 관심도 없으면서 시종 빈말만 해대는 그들이 안그래도 견디기 어려운 병원 생활을 더 비참하게 만든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들의 바보 같은 감상주의와 마지못해 찾아온 이들의 빈말 중 과연 어느 쪽이 더 나쁠까. 방문객 중에는 후자에 속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 나는 그런 인물들의 빈말을 탐지하고 그것을 어머니에게 이야기하는 것이 내 임무라고 생각했다. > 병원에 입원한 지 서른 한 번째 되던 날, 아버지를 중환자실에서 일반병실로 옮겼다. 생명의 위협에서 벗어났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나는 그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른다. 아버지가 더 이상 생명에 위험을 느끼지 않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는 아직도 식물인간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 의사는 '이제부터 모든 일은 보호자의 책임입니다'라며 환자에게 석션은 물론 침구 챙기는 일, 매 시간마다 환자를 돌려 눕히는 일을 보호자에게 일임한다. 병원은 무엇을 하는 곳인가. 저으기 분통이 터졌다. > 석션 때문에 나는 잠을 잘 때도 한쪽 눈을 뜨고 잤다. 꿈속에서조차 나는 꾸르륵거리는 아버지의 가래 소리를 듣고 일어났다. 그리고 기계적으로 침대 아래서 뛰쳐 나와 석션기계를 켰다. 담배를 피우지 않아 비교적 분비액이 적은 아버지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매일 밤 세 번의 가벼운 석션을 했다. > 또 2시간에 한 번씩 침대 아래서 굴러나와 아버지의 누운 자세를 바꿔주었다. 욕창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덕택에 아버지의 피부는 곱다. 장기 입원 > > 환자임에도 욕창이 없다. 새벽4시에 내가 그를 바로 눕히면 다시 그를 돌려 눕히는 것은 어머니다. > 그밖에도 나는 몇 번씩 더 일어나 기관지에 고이는 분비액을 체크했다. 그리고 아버지의 가슴에 내 귀를 대고 공기가 순조롭게 통과되고 있는지를 확인한다. 그럴 때마다 불쑥불쑥 반문이 든다. 이런 나의 노력이 과연 성과가 있을 것인가? > 그러나 기적은 우리를 비껴가지 않았다. 그리고 기적은 예기치 않게 너무나도 쉽게 다가왔다. 아버지가 병상에 누운지 석 달 째 되던날 밤이었다. > 잠결에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무슨 소린지 모를 사람의 목소리였다. 마치 잠속에서 하는 말처럼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다. > 누굴까. 아버지는 아닐 것이다. 너무나 오래전, 아버지에게서 말이 없어지지 않았던가. 그로 인해 내 의식 속에는 아버지는 인격체가 아니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는 형체가 없는 인간이 되어버리고 만 것이다. > "어머니세요? 혹시 지금 잠꼬대를 하셨어요?" > 바로 그때, 어딘가 내 위에서 > "응" > 하는 소리가 들린다. 갑자기 이상한 예감이 나의 뇌리를 스친다. 아버지? 그러나 내 입에서 터져나온 말은 > "어머니!" > 였다. > 침대 밑에서 굴러나와 아버지를 살폈다. 머리는 평상시와 마찬가지로 뒤로 젖혀져 있고, 아버지의 시선은 여전히 머리 위의 무언가를 응시하고 있었다. 팔의 위치 또한 변하지 않았다. > "아버지, 제 말 들리세요?" > 이미 천 번도 넘게 아버지에게 던진 질문을 기계적으로 또 다시 던졌다. 그런데 내가 그 말을 하고 막 돌아서려는 순간, 아버지의 머리가 내 쪽으로 움직이는 것이 보인다. 바로 내눈 앞에서, 죽은 사람이 살아 나오는 광경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 > . 나는 꼼짝없이 그 자리에 선다. 그것은 현실이었다. > "아버지, 제 말 들리세요?" > "으응" > 그 순간, 나는 지금 내가 들은 소리가 천지 창조 이후 이 세상에 처음 퍼져나간 소리와 흡사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나도 모르게 입이 딱 벌어졌다. 지금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같은 질문을 아버지에게 던졌다. > 아버지는 또 다시 머리를 끄떡인다. 그리고 이번에는 마치 다시 한번 이 세상에 태어난 아이처럼 눈까지 뜬다. > "제가 누군지 아시겠어요?" > 아버지는 무언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혼자서 중얼거렸다. 내 귀를 바싹 그의 입 쪽으로 갖다댔지만 무슨 말인지는 여전히 알아 들을 수 없었다. 너무나 놀란 나머지 내가 외친다. > "어머니! 아버지가 말을 하세요!" > 어렴풋한 조명 아래로 어머니의 얼굴 모습이 비쳤다. 어둠 속에서 어머니는 아버지와 내가 나누는 대화를 듣고 계셨던 것이다. 아버지의 정신은 그렇게 깨어나기 시작했다. > 병원에 들어온 지 1년이 가까워졌을 때 아버지는 '예', '아니오'를 분명히 말할 수 있음은 물론 자기 의사를 짧은 말로 표현할 수도 있게 되었다. 그즈음부터는 주위를 알아보고 짜증도 냈다. 목소리도 커졌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를 제압할 정도는 못되었다. 그때 나는 아버지에게 많은 질문을 던졌다. '아버지 이름이 뭐지요?''아이들은 몇 명이죠?''부인 이름은?''아버지 어디서 오셨어요?'등등. > 그러면 아버지는 바른 대답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일관성을 결여하고 있었다. 똑같은 질문에 '예'라고 했다가 '아니오'로 했다가 두서가 없었다. > 아버지의 그런 행동은 내가 느끼기에는 우리가 어린애 같은 질문을 하는 것에 대해 속으로 언짢게 생각하고 있는 것 > > 같다. 아버지는 그것이 어린애 같은 질문이라는 사실을 알지만 대답할 말이 잘 떠오르지 않아 속으로 더욱 화가 난 것일 거다. > "아버지, 아버지 병은 뇌에 있는 혈관이 터져서 생긴 병이에요. 그래서 뇌수술을 받았어요" > > 의식 회복하기 시작한 아버지 20개월만에 집으로 돌아오다 > > 대답이 없다. 반응도 없다. > "무슨 영문인지 몰라 답답하시죠. 생각이 잘 안날 때도 있고요? 하지만 많이 좋아지고 있어요" > 그제서야 아버지는 빙긋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아버지를 안심시켜 그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다. > 그러나 인간의 나약함을 보여 주기라도 하려는 듯, 우리가 막 한숨을 돌리려는 순간, 아버지에게 새로운 문제가 또 다시 발생한다. 아버지의 숨결이 고르지 않은 것이다. 아버지는 임종 직전의 다른 환자들이 그랬듯이 자신이 숨을 쉴 수가 없다는 사실에 놀란다. '괜찮다'는 위로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의 숨소리는 점점 거칠어져 간다. 씩씩거리는 소리가 밖에서도 들릴 정도다. > 검사결과 아버지의 뒷목 부근이 부어 있었다. 결국 아버지는 후두부가 붓는 것을 막기 위해 기관절개수술을 받아야 했다. > 그리고 6백18일째 되던 날, 의식을 잃고 앰불런스에 실려 들어 온지 20개월만에 아버지는 휠체어를 타고 집으로 돌아간다. 온 가족이 함께, 기적으로 소생을 한 것이다. > 집으로 돌아온 아버지는 화가 나는 일이라도 생기면 아파트가 떠나가라 소리를 지른다.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볼 때마다 내 마음엔 안도감이 물결친다. 말도 못하고 꼼짝없이 침대에 누워만 계시던 때와 비교하면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가. > 나는 아버지를 즐겁게 하기 위해 지난 날의 얘기들을 들려 준다. 그리고 내가 어릴 때 아버지가 나에게 들려 주던 이야기들을 해준다. 그 중 하나는 아버지의 학창시절 이야기다. > "아버지, 공부하실 때 생각나세요? 저녁마다 어머니가 스테이크를 구워 주시던 것 말이에요" > 아버지는 나의 질문에 웃음을 터뜨리며 대답한다. > "물론 기억하지" > 밤늦게까지 공부하실 아버지의 사기를 위해, 어머니 > > 는 애써 모은 돈을 써 가며 저녁마다 커다란 스테이크를 준비했다. > '이걸 잡수시고 열심히 공부하시는 거예요. 아시겠죠?' > 어머니가 말했다. > 아버지는 잔뜩 저녁을 드시고는 커다란 책가방을 메고 도서관으로 향했다. 그러던 어느날 어머니는 자신의 스테이크가 과연 효력을 발휘하고 있는지 한번 확인해 보기로 했다. 마침 한국에서 자신의 여동생이 와 있었다. 어머니는 그녀를 스파이로 보내 아버지의 동정을 살피게 했다. > 그러나 스파이는 돌아와서 정말 한심한 소식을 전하는 것이 아닌가. > '형부는 책상에 양 다리를 올려놓고 한잠 잘 주무셨어요' > 그때부터 어머니는 저녁 식사에 양배추 몇조각과 당근 몇 조각밖에 내놓지 않았다. 물론 아버지는 그때부터 잠을 자지 못했다. 속에서 항상 꼬르륵 소리가 났으니까. > 내가 그 얘기를 들려주자, 아버지는 웃으며 이렇게 대답했다. > "그래, 다시는 스테이크 구경을 못했지" > 그러면서 아버지는 조금씩 잃어버린 시간과 자신을 되찾아 가고 있는 것이다. > > 뇌 실질 손상 환자 가족들에게 뛰우는 편지 > '빨리 좀 나으세요'재촉은 절대 금물 > 환자에게는 보호자가 어떤 행동을 하느냐 하는 것보다 어떤말을 하느냐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부정적인 말 한 마디가 환자에게 심한 우울증을 가져 올 수 있기 때문이다. > 환자들은 대개 자기가 무슨 병에 걸렸는지를 아는 순간, 이미 어느 정도의 우울증에 빠져 있다. 그런 상태에서 남도 아닌 가족들까지 부정적인 발언을 한다는 것은 회복을 더디게 하는 첩경일 수밖에 없다. > 보호자들은 자기네들이 하는 말을 환자가 알아듣지 못할 것으로 알고 말을 함부로 한다. 하지만 환자는 말을 알아 듣되, 단지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할 뿐이다. 따라서 보호자들은 항상 자신의 말에 신경을 써야한다. 부정적인 발언이 환자에게 해롭듯이 긍정적인 발언은 크게 그들의 회복을 도울 수 있기 때문이다. > 좋은 환경을 만드는 법을 몇 가지 적어보면, > 첫째는 병실 내부를 깨끗이 하고 병균이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한다. 무균 상태의 방은 박테리아나 기타 전염병을 예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환자를 청결히 유지하는 첫걸음이다. 병신은 더러운데 환자는 깨끗하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 둘째는 병실은 환자에게 뿐만 아니라 보호자에게도 불편한 곳이 되어서는 안된다. 가능한 한 자기'집'처럼 느낄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좋다. 특히 잠자리가 편하도록 유의해야 한다. 보호자가 안절부절하면 결국은 환자가 피해를 입게된다. > 셋째 환자가 깨어있는 동안에는 그의 마음을 바쁘게 해야 한다. 특히 그의 감각기능을 충분히 활용하는 것이 좋다. 이것저것을 만져 보게 하고, 눈에 익은 사진들을 보여 주고, 그가 좋아하는 음악소리나 연설 혹은 자연의 음향을 들려준다. > 넷째 새로운 생활 환경에 익숙해지도록 서서히 환자를 가르친다. 그와 > > 대화를 할 때에는 위로와 격려의 말을 잊지 않는다. 환자가 어느 정도의 감각 기능을 회복했을 때에는 어째서 그가 병원까지 오게 되었는지를 조금씩 일깨워 준다. > 위의 모든 것은 결국 상식에서 벗어난 언동을 삼가라는 말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끊임없는 위로와 격려의 말을 해 주는 것이다. > '빨리 좀 나으세요. 우리가 얼마나 고생을 하는지 아세요'등의 말은 절대금물이다. 이런 말은 환자에게 죄의식을 불러 일으킴은 물론 자칫하면 우울증과 자포자기를 유발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환자 옆에서는 항상 말에 신경을 써야한다. > >
웹 에디터 끝
첨부파일
추가하기
삭제하기
첨부사진
상단출력
하단출력
본문삽입
본문삽입시 {이미지:0}, {이미지:1} 과 같이 첨부번호를 입력하면 내용에 첨부사진 출력 가능
자동등록방지
숫자음성듣기
새로고침
자동등록방지 숫자를 순서대로 입력하세요.
작성완료
취소
백영희 일반소개
인물사로 본 백영희
(new)
연구기관
교계기사로 본 백영희
가족, 소중한분들
자료
●
백영희 시집
+
새글..
07.11
백도영 목사님께서 신풍교회를 방문하신 소식
07.11
<저자와함께>"생명일기"낸 루이스 최
07.11
4년동안의 간병 깨어나는 아버지-재미교포 루이스 최
07.11
시카고대 다니다 학업도 중단하고 식물인간된 아버지 병상 지키며 눈물의 기록'생명일기' 펴낸 루이스 최군과 그의 어머니 최순희 씨
07.11
식물인간된 아버지 간병위해 학업중단하고 고국으로 날아온 교포 2세 청년의 6백18일간 간병기
07.11
최창원, 귀한 길임을 보이시려고 드러내신 인물
07.11
(남천교회) 국기경례 거부, 승소 판결도 있다.
+
새댓글
서기
03.18
공개 완료
성도A
03.16
31절에서34절말씀주해요망
State
현재 접속자
136 명
오늘 방문자
566 명
어제 방문자
632 명
최대 방문자
1,483 명
전체 방문자
2,624,530 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