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KIST
백영희 신앙노선의 오늘을 고민하는
목회 연구소
총공회 목회연구소
0
총공회
백영희
보관자료
연구실
행정실
활용자료
참고자료
총공회
총공회 소개
인물/사건
소사/일지
역사자료
목회 연구소
역사
참고
백영희
보관자료
추가자료
출간 설교록
미출간 (준비)
설교록 발췌집
연구서적
출간목록
연구실
행정실
행정
보관
정정
회원/후원
활용자료
교리 정리
성경신학
[설교류]
원본설교(확정)
원본설교(검토)
성경단어사전
주교공과
[사전류]
교리성구사전
주해사전
용어사전
예화사전
메모사전
각주사전
참고자료
메인
총공회
백영희
보관자료
연구실
행정실
활용자료
참고자료
0
가족 소중한 모습(상세) 글답변
이름
필수
비밀번호
필수
옵션
HTML
제목
필수
안내
지도
웹에디터 시작
> > > 1.가정소개: > > 백영희목사님께는 4남 3녀의 자녀가 있고 14명의 손자 6명의 손녀 등 20명의 손주가 있습니다. 여기 소개하는 최창원씨는 미국 이름 Samuel Louis Choi 이며 보통 'Sam' 샘이라고 부릅니다. Sam의 아버지가 되는 최재현목사님은 합천이 고향이었으나 해방 직후 모친을 따라 백목사님의 개명교회 초기 부흥운동을 사모하여 개명으로 이주하게 되며 백목사님의 지도를 따라 고려신학교 1회 입학을 하게 되고 이후 미국으로 유학을 가게 됩니다. 백목사님의 큰 사위가 되었고 1984년 귀국할 때까지 미국에서 사업을 하였으며 또한 St. Louis 교회를 세웠는데 이 시절 두 아들을 가졌고 큰아들이 창근(Paul)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고 하신 창12:2에 의하여 창근, 창원으로 두 아들의 이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형인 창근은 유정현목사님과 함께 창동교회 장중근집사님의 사위가 되며 부인은 장민정씨로서 백목사님 20명 손주 중 첫 번째 며느리가 됩니다. > > 2.최창원, 그리고 재미 2세 손주들 > > 그는 미국에서 태어나서 미국에서 자랐고, 우리에게 미국이 아직도 낯선 외국이듯 그에게도 한국이 그렇게 이상한 나라였던 시절을 가졌습니다. 그 곳에서만 성장했던 전형적인 미국인이었습니다. 부친 최목사님은 미국을 떠나기 전 늘 탄식하기를 '어떻게 해야 저 아이들 속에 있는 우상, 마이클 잭슨을 뽑아내고 이 복음을 넣을 수 있을까!' 했던 주변 아이들 중에 하나였습니다. 그에게 인생의 전기가 된 것은 한 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었던 할아버지의 설교, 백목사님의 설교 말씀에서 은혜를 받기 시작했던 1986년 경이었습니다. 방언의 역사라고 해야 더 옳을 듯 합니다. 초보적인 한국말을 어깨 너머로 겨우 익혔던 그에게 어렵기로 정평있는 백목사님의 강해설교가 은혜로 닿을 수 있다는 것은 그냥 기적입니다. 미국생활에 젖은 아이들은 우리처럼 꿇어앉거나 바닥에 그냥 앉아있지를 못합니다. 그런데도 한 여름 거창집회에서 3-4시간씩 하루 3차례를 앉아 들리지 않는 그 설교를 듣고 있는 그를 볼 때, 베드로의 방언역사가 아니고는 해석이 될 수 없는 현상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현상은 다른 손주들에게도 공통적으로 다 해당되는 기적이었습니다. > > 미주교포사회에서는 한국 목사 아들이 되면 돈도 너무 많아지고 부모 덕을 너무 많이 볼 수 있어 행복해진다는 것이 상식입니다. 그런 인식에서 본다면 백목사님의 손주들이 산 집회에서 열심히 앉아있는 모습도 무언가 기대를 하고 참는 것이라고 이해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미국으로 시집보내는 딸에게 비행기 표값 까지 부담하고 데려가게 했던 백목사님의 평생 생활을 잘 알고 있는 손주들에게는 이런 기대는 전혀 해당되지 않습니다. 결국 오랜 유학생활로 돈이 없었던 신랑이 은행 빚을 내어 데려갔습니다. 이런 경제면의 섭섭함이 미국에서 자란 2세에게는 가장 큰 인간관계의 기준이 됩니다. 앉아있어 봐야 1원도 득 볼 수 없는 그분,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는 강해설교, 1989년 마지막 집회까지 어깨를 부딪히며 가마니 위에 앉아 비지 땀을 흘리는 일. 이 모든 것이 가능케 된 것은 그들에게 한 마디씩 말씀이 스며들고 있었습니다. 현재 그들은 전부 백목사님 설교 재독에 완전히 심취하여 있습니다. 여기서 소개하고자 하는 것은 넘어갈 수 없는 언어장벽 문화장벽 전도장벽의 본질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그런 연구에는 이렇게 짧은 시간 짧은 글로 정리할 수 없는 신학적 사유가 필요합니다. 이제 이곳에서 소개하고자 하는 것은 세상 불신자들도 부러워할 아주 간단한 한 가지 사회적인 면입니다. > > 3.1996년의 한국사회, 불효의 극치와 그 선도 요소 > > 1980년대말까지 한국 경제는 바닥에서 천장으로 치달았습니다. 오래 부자 생활을 해 본 사람보다 막 부자가 된 사람의 소비는 가히 예측할 수 없습니다. 그 첨단에 있던 사람들이 미주로 자녀 유학을 보냈고 그곳에서 공부 대신 놀고 쓰는 것만 배웠던 이들이 우리 골목 주변에까지 이상한 모습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1990년초반이었습니다. 급격히 이들의 숫자가 늘면서 1995년까지 국내 뉴스에서는 미국에 유학 등으로 다녀온 자녀들의 불효 범죄가 연일 보도되고 있었습니다. 수없는 부모가 미국 물을 먹었던 자녀들에게 죽어나갔고 그 행태도 소름을 끼치게 하는 정도였습니다. 급부상된 사회적 현상이었습니다. 바로 이 시점에 대구 영남대학교 신경외과 병동에서는 그당시 사회병폐에 제일 앞서 있을 교포청년이 우리 전통사회에서도 이미 실종된 지 오래 된 효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손가락으로 부친의 대변을 받아내려고 눈의 초점을 맞추어가며, 간호사나 의료진들에게 그냥 맡겨놓기는 너무 안쓰럽다며 그들이 하려는 일을 최대한 사양하고 자기 손으로 아버지를 정성스레 돌보기 6년이 지나고 있었습니다. 행여 표현치는 못해도 알아듣는 의식이 작동되고 있을까봐 자신의 눈빛 하나까지 신경을 쓰며 있는 힘을 다하기 6년입니다. Sam 이 몇가지 면에서 출중한 인물이냐는 것을 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적어도 이 시대에 가장 찾기 어려운 역사적 유물은 바로 효도입니다. 인간의 기본 바탕으로서 효도면에서는 단연 이순신장군만큼 올려놓고 본받아야 될 인물이라고 하겠습니다. > > '생명일기'로 출간되고 여러 언론에서 취재되었던 것은 일부밖에 되지 않습니다. 대개 이런 효행 등의 뉴스는 기자들의 이야기거리 만들기를 위해 과장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Sam이 아버지를 아껴 공개치 않았던 고생을 다 말한다면 현대판 심청이 이야기로 전개해야 할 수많은 내용이 있었습니다. 이런 내면을 지켜 볼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이 소개의 글을 쓰는 사람은 한없는 자부심을 가집니다. 보지 않고 믿는 수준에 이르지는 못했으나 보고라도 믿을 수 있도록 해 주심이 차선의 복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 > 4.이곳은 백목사님 신앙연구실입니다. 따라서 연구의 핵심을 늘 주목하는 편입니다. > > 굳이 Sam의 효심을 오늘 물질문명의 극단적 폐해를 해결할 수 있는 정형으로 제시한다면 충분히 학문적 연구 가치가 있으며 특별히 교육현장에서는 초특급 사례가 될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그러나 이곳은 '백영희신앙연구'에 집중하는 곳입니다. 세상사람들, 그들까지 알 수 있고 부러워할 수 있는 것은 사실 두 번 돌아볼 필요도 없는 허무한 것이라는 신앙을 가진 곳입니다. 우리는 십자가에 필요하면 생부모와 생이별도 불사하고 그런 일을 평상의 일로 알아야 한다는 윤리관을 가진 The Paikian 입니다. 그런데도 Sam의 사례를 두고 이곳에서 언론소개까지 해가며 연구실 방한칸을 마련해 두는 것은, Sam의 사례 속에는 이 복음의 묘한, 참으로 귀한 또 하나의 보배가 있기 때문입니다. > > 이곳을 운영하는 사람들은 전부가 Sam과 관련이 있거나 소속을 함께 하는 분들에 의하여 교단적으로는 매장에 가까운 처리를 받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인간적으로 섭섭하려 한다면 그 첫 손에 꼽혀야 한다고까지 할 말이 많습니다. 그러나 자기 마음도 어제와 오늘이 다를 수 있는데 하물며 남과 자기 사이의 기준을 두고 이를 객관화시킨다는 것은 연구의 자세가 아니라고 봅니다. 오히려 Sam이 속한 공회와 반대 입장일 수 있는 이곳에서 세상이 만들었던 어린 시절 Sam을 이 복음의 Sam으로 만든 이 복음의 성질을 소개하는 것이 진정한 연구의 자세라고 하겠습니다. > > 1980년대까지 미국에서만 살았고 이 말세, 가장 극단적인 타락, 그 끝에까지 올라가서 그 모든 것을 머릿속 사상에 취미에 언행에 저려놓았던 한 인간, 그는 유아기로부터 청년기에까지 자기 속에 저려놓았던 모든 세상을 완전히 비워버리고 이 복음의 소개를 따라 반대로 돌아섰습니다. 그를 돌려 세워 놓은 힘, 그 동인(動因)을 소개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오늘 사회가 함께 우려하는 일반적인 타락의 현장을 새삼 느끼고 있습니다. 교회들이 세상에서 접할 더러운 것을 예배당 안에까지 끌어다 놓고 양성화시키는 정도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런 때에 우리가 가는 신앙걸음은 그 역행이며 그 역항선에 있습니다. 아버지 병상 6년, 그 6년간 그 병상 옆에는 단 한번도 끊어지지 않았던 음파(音波)가 있었습니다. 백목사님의 설교 재독 소리. 어느 신문기자의 표현대로 '선승의 굴'과 같았다는 것이 바로 그 모습을 보았던 것입니다. > > 이 복음! 이 진리! 이 신앙노선! 이것은 어떤 인간 어떤 문화 어떤 사상 어떤 타락에라도 접촉만 시키면 그들을 변화시키는 '생명'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가진 이 복음입니다. 세상을 따라가서 함께 죽는 것이 천하 교회들의 신앙걸음이라고 한다면, 세상을 거스려 세상을 단절하고 오히려 세상과 대칭점에 서서 그 세상을 이 복음으로 복음화시키면 시켰지 그리로 따라가는 것은 세속이라 속화입니다. > > 2001. 4. 7. 이영인, 신풍교회 > >
웹 에디터 끝
첨부파일
추가하기
삭제하기
첨부사진
상단출력
하단출력
본문삽입
본문삽입시 {이미지:0}, {이미지:1} 과 같이 첨부번호를 입력하면 내용에 첨부사진 출력 가능
자동등록방지
숫자음성듣기
새로고침
자동등록방지 숫자를 순서대로 입력하세요.
작성완료
취소
백영희 일반소개
인물사로 본 백영희
(new)
연구기관
교계기사로 본 백영희
가족, 소중한분들
자료
●
백영희 시집
+
새글..
07.11
백도영 목사님께서 신풍교회를 방문하신 소식
07.11
<저자와함께>"생명일기"낸 루이스 최
07.11
4년동안의 간병 깨어나는 아버지-재미교포 루이스 최
07.11
시카고대 다니다 학업도 중단하고 식물인간된 아버지 병상 지키며 눈물의 기록'생명일기' 펴낸 루이스 최군과 그의 어머니 최순희 씨
07.11
식물인간된 아버지 간병위해 학업중단하고 고국으로 날아온 교포 2세 청년의 6백18일간 간병기
07.11
최창원, 귀한 길임을 보이시려고 드러내신 인물
07.11
(남천교회) 국기경례 거부, 승소 판결도 있다.
+
새댓글
서기
03.18
공개 완료
성도A
03.16
31절에서34절말씀주해요망
State
현재 접속자
134 명
오늘 방문자
566 명
어제 방문자
632 명
최대 방문자
1,483 명
전체 방문자
2,624,530 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