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성경 읽는 법, 설교록 읽는 법, 신앙의 알맹이를 대하는 법을 알려주세요. 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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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13 21:54
2. 질문 : 성경 읽는 법, 설교록 읽는 법, 신앙의 알맹이를 대하는 법을 알려주세요. 534
1. 성경을 읽는 법을 배우고 싶습니다. 연경교재를 사용하는 것도 좋을 것 같고, 백영희 목사님께서 자신의 주관대로 읽되 틀린 것을 바로 잡을 귀와 마음을 열어두라는 말씀도 좋은 것 같습니다. 좀 더 설명해 주셨으면 합니다.
2. 설교록을 재독하는 법
제 개인의 경우는 성경을 꾸준히 읽되 설교록은 대충 골라서 가끔씩 봅니다. 그 가끔씩 볼 때, 은혜와 깨달음이 있어 앞으로는 조금이나마 체계적으로 보고 싶습니다. 1년치 설교록을 꾸준히 보는 것이 좋겠는지요? 좋은 조언 주세요.
3. 신앙의 알맹이를 대하는 법.
나쁜 '사람병'이 있는 것 같습니다. 좋은 설교를 듣다가 '아, 사람이 어떻게 이런 설교를 할 수 있을까'하고 감탄만 하고 실제 내용은 생활에서 버립니다. 또 자료를 읽다가, '아 이글 쓴 사람 대단하구나. 자기가 깨달은 것을 정리해 놨구나' 하고 감탄만 하고 실생활에 적용을 하는 것은 뒤로 한단 말입니다. 신앙의 알맹이를 지키기 위해 어떻게 해야할까요? 말을 줄이고 묵상을 많이 해야 할 것 같습니다만.
4. 사람의 자세가 어떠해야 할지
제가 타교인으로서 백영희란 분에 관심을 가진 것은, 그 분이 시무하던 교회에서는 일제시대 때 주일학교 학생 하나까지 신사참배를 거부했다는 말을 듣고 였습니다. 그 전까지는 목사들이 다 똑 같지라는 생각에 설교테이프를 권해도 별로 들을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이야기를 듣고 이 분은 뭔가 다르겠구나 생각했고,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제 삶의 방향이 송두리째 바뀌어 버렸습니다. 아뭏튼, 아무 사심 없이 질문 드리건데, 저같이 멀리서 백영희 목사님께 감탄한 사람도 감탄만 하고 교훈은 잊을 때가 많은 데 백목사님 가까이 있던 분들도 그런 것이 있지 않았을까요? 그런 것이 있고 없고는 별로 중요하지 않고 있다 해도 제가 비판할 자격도 없고 수준도 안 됩니다. 단, 그런 것을 어떻게 극복해서 진실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길만 걸을 수 있을까요?
답변1 : 성경을 읽을 때
I. 내용 자체를 우선 알아야 합니다.
1. 전반적으로 많이 접촉해 두셔야 합니다.
성경 내용 그대로를 많이 읽고 또 외워 두시면 언젠가 생각도 않은 현실에서 성경이 내 마음에 떠오르고 또 나를 인도하게 됩니다. 어느 말씀이 어느 현실에서 어떻게 해당될찌 우리는 모릅니다. 그래서 일단 전체를 정독, 속독 등을 통해 많이 접해 두어야 합니다.
2. 꾸준히 읽다보면 한 순간에 많은 은혜가 임할 것입니다.
꾸준하게 읽으시다보면, 특별한 주제를 가지고 연구를 하는 것도 아닌데 그냥 은혜가 되어질 때가 올 것입니다. 그럴 때는 읽고 싶어 읽는 것이 아니고 읽어지는 느낌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럴 때 바짝 읽어 두시면 수십번 읽고도 기억도 못하던 때와 달리 한번 읽으면서도 거진 외워지는 것을 느낄 것입니다. 이런 때가 오는 것은 어떤 분은 성경을 읽을 결심을 하고 그렇게 읽는 초기에 경험하는 분도 있고 어떤 분은 많은 세월 뒤에 이런 경험을 가지는 분도 있고 또 이런 경험이 몇 번에 나누어 지나갈 때도 있습니다. 한번 이런 기회가 오면 몇 달 또는 성경 1-2독을 하는 기간을 걸쳐 계속 나타나기도 합니다.
어쨌던 자기가 읽으려고 의지를 가지고 읽는 도중에 무엇인가 내 속에 읽으려는 힘이 나오고 읽게 되어지도록 하는 그런 때가 오게 되면 그때를 놓치지 마시고 그때가 바로 신구약 성경 거의 전부를 외울 수 있는 때라고 생각하시고, 그런 때는 평생에 한번 밖에 없을 때라는 것을 기억하셨으면 합니다. 또 그렇게 한꺼번에 은혜를 주실 때는 내용 자체도 촬영이 되듯 기억이 되면서 동시에 그렇게 말씀 내용에서도 은혜를 받게 됩니다. 성령의 감화와 감동을 가장 체험하는 때이기도 합니다. 물론 그 강도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이런 경험은 1)번에서 말씀드린 자세로 읽을 때 오는 현상입니다.
3. 성경을 읽으실 때는 마음속으로 그 당시 당시 자기 주관으로 해석을 하셨으면 합니다.
처음 믿는 사람이 무엇을 알겠습니까만 읽는 순간마다 그 당시 자기로서는 이런 뜻이겠다 저런 뜻이겠다 라고 마음에서 확정을 지으면서 읽어 가십시오. 물론 훗날 99% 이상 수정을 해야 할 것입니다만 그렇게 해야만 나중에 옳은 깨달음에 빨리 나가게 됩니다. 틀릴지라도 문제를 힘껏 풀어본 사람은 훗날 선생님의 지도를 받을 때 왜 틀렸으며 무엇이 문제였는지 등이 아주 각인이 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또 자세를 그렇게 하셔야 읽으면서 그 내용 자체에 대한 기억력과 또 그 말씀을 대하는 마음의 집중 강도가 비교할 수 없이 강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연구하는 마음도 생기게 됩니다. 실은 우리 신앙은 매 현실 모든 순간마다 대충이거나 모르면서 해놓고 보는 자세가 가장 위험합니다. 그러나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이 자기대로 덮어놓고 확정하는 것도 위험한 것은 매 한가지입니다. 훗날 수정할 것이 있을 것이며 아직은 모든 것이 자라가는 철없는 신앙이지만 오늘 현재로서는 하나님이 주신 상황에서 내 모든 것 다하여 나대로는 이렇게 생각한다는 것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절대'를 붙여 단정하지는 말고, 그러나 주관으로는 일단 확고하게 결론을 내릴 만큼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통독 정독 속독 등의 방법으로 성경을 쭉 읽다보면 그렇게 많은 생각을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성경을 쭉 읽어가시는 분이라도 한번씩 마음에 과제로 생각할 부분들이라고 여겨지는 성구에서는 잠시 멈추고 깊이 생각도 해보시고 또 일반 성구들은 그대로 쭉 읽어 가면서 혼자 마음속으로 이런 말씀이겠다 저런 것을 우리에게 가르치려고 쓴 말씀이겠다 하는 정도로 읽어 내려가라는 것입니다.
II. 성경을 연구하셔야 합니다.
1. 성구 외우기가 좋습니다.
어느 성구인들 좋지 않은 것이 있겠습니까만, 백목사님의 설교를 접하는 경우 성구가 그렇게 길지 않습니다. 이렇게 몇 절 짜리 성구들은 그 설교를 듣고 나서 외우시면 바로 외워집니다. 해석과 함께 그 성구로 설교를 들었기 때문에 아주 쉽습니다. 우선 외움으로 성경 내용 자체를 늘 머리 속에 가지고 다닐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외운 성구들은 언제든지 불러내어 깊이 살펴볼 수 있기 때문에 특히 좋습니다. 차를 타거나 식사를 하는 등 다른 일을 겸하여 하지 못할 때는 외워둔 성구들이 자연스럽게 나오거나 또는 불러내기가 쉬워 그 성구를 가지고 들은 설교도 생각해 가며 동시에 새롭게 연구해 볼 수 있습니다.
설교 본문으로 외우는 외에, 로마서 1장, 야고보서 1장, 유다서 등 한 장을 통째로 외우는 것도 좋습니다. 성경 전체를 다 외우지는 못해도 한 장 단위로 외우다 보면 그 한 장 단위로 외우는 것은 몇 절씩 따로 떼서 외우는 것과는 또 다른 차원으로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사람에 따라서는 틈틈이 외우다 보면 1장 외우는데 1주-1개월도 걸릴 것입니다. 될 수 있는대로 세로 성경을 복사해서 가지고 다니며 외우거나, 아니면 어떻게 좀 시간이 많이 남는 날, 주일 등을 사용하여 1년이면 몇 장 정도는 외워 보시면 왜 외워보시라는 것을 알 것입니다.
답변자 교회서는 매년 성탄절 1개월을 두고 야고보서나 에베소서 등과 같이 4-5장 단위의 성경 한 권 자체를 외우도록 하고 있습니다. 계시록 22장은 한 장 단위로 검사를 받게 하여 22장 전장을 다 외워 보았으며 끝까지 외운 분들이 여러 분 있었습니다. 어쨌던 주야로 묵상하는 자가 되는 시편 1장의 말씀에 가장 유익한 방법입니다.
2. 성경교재 중 성구 암송에 좋은 것이 있습니다.
'연경교재'방에 있는 1번 교재는 백목사님이 예수 믿은 초기에 바로 공부했고 또 외웠던 성구들입니다. 각 장 별로 특별히 기억해 둘 것을 요약한 성구들이며 문제를 먼저 풀어보면서 전체를 1회독 한 뒤 다음에는 기록한 답안을 장절과 내용 자체를 전부 외우는 공부입니다. 정식으로는 66권 성경의 각 권별로 외우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성경 전체를 거의 외우게 하는 방법이며 각장 별로 1-2구절을 외우게 되면 앞뒤 내용을 어느 정도 기억하기 때문에 결국 그 성구들을 중심으로 성경 자체를 외우게 만드는 것입니다.
성경교재 2번은 해방 전 선교사들이 작성했던 당시 교재보다 백목사님의 설교록에서 주로 인용한 성구들을 중심으로 외우게 한 것입니다. 시대에 따라 하나님께서 특별히 더 사용하시는 성구들이 있겠다는 깨달음에서 그렇게 해 본 것입니다.
3. 어느 성구를 읽든지 외웠든지 간에 말씀을 접할 때는 다른 성구들과 관련을 찾아야 합니다.
I.번에서는 말씀과 접촉을 권했습니다만 II.번에서는 읽든지 외우든지 간에 접촉한 성구들을 다른 곳에 기록된 내용들과 비교를 하셔야 합니다. 이제 연구다운 연구가 되는 것이고 실은 이 연구만 꾸준하게 하시면 신학도 설교도 모든 난제 해결도 다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성경으로 해석하고 성경은 성경으로 정의하기 때문입니다. 신학이니 설교니 무슨 이름을 붙여도 성경을 성경 밖의 것으로 해석하고 해설하기 때문에 결국 인간수준으로 성경이 내려오게 됩니다.
성구와 성구를 비교하다보면 동일한 내용이 다르게 기록된 것이 많을 것이고 또는 동일한 내용을 달리 대하도록 말씀한 부분도 많을 것입니다. 또한 서론은 여기에 본론은 저곳에 있기도 하고 이 성구는 해석이 되고 저 성구는 그 예가 되기도 합니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신약의 말씀에 대하여 구약에서는 요셉이 형들을 대하는 모습으로 기록되기도 합니다.
한 성구는 그 성구 외의 모든 성경 성구 전체의 해석이 될 수 있고, 모든 성경 성구 전체는 그 한 성구 난해절의 열쇠가 되기도 합니다. 이 단계를 조직신학이라고 이름을 붙일 수 있습니다만 조직신학을 알고 배워서 성경을 체계적으로 또 종합적으로 알게 되는 경우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냥 성경을 성경 자체로만 자꾸 연구하여 성구와 성구의 관련을 짓다보면 저절로 조직신학이 자기 속에서 나오게 됩니다.
III. 이곳이 일부의 지나친 비판에도 불구하고 백목사님의 신앙연구에 집착하는 이유는
백목사님의 신앙과 그의 설교록은 이런 단계들을 가장 잘 소개하고 또 이런 성경 연구에 가장 지름길을 안내하고 있는 내용들이기 때문입니다. 백목사님의 평생 설교는 신학적 요소가 배제되어 있고 성구 자체와 그 성구들의 연결에 모든 것을 두고 집중한 내용입니다. 따라서 이 설교록을 꾸준히 접촉하시다보면 성경을 바로 접하고 바로 읽고 또 그 연구를 바로 하게 만드는 이 면이 있는데, 이 것이 설교록 접촉의 가장 큰 수입입니다.
백목사님의 설교록을 가지고 성경 연구에 도움이 되라는 권면을 드리고 있습니다. 성경 한 절의 깊이가 얼마나 깊은지, 그 끝은 아니지만 얼마나 깊이 들어갈 수 있는지를 볼 수도 있고 그렇게 깨닫는 길로 설교록에 없는 다른 성구를 깨달을 수 있는 도움도 받을 수 있습니다.
IV. 성경 연구의 최점:
말씀을 접할 때마다 이 말씀이 나에게 현재 요구하는 것은? 이 말씀이 지금 나에게 어떻게 하라는 것인가? 즉, 말씀과 나와의 관계에까지 나아가라는 것입니다. 물론 처음 접할 때부터 그럴 수도 있지만, 많이 읽고 외우고 또 많이 연구하면서 자연스럽게 말씀이 원하는 자기, 자기에게 명령하는 성구를 접하게 됩니다.
성경으로 자기를 고치고 자기를 바꾸게 되는 것입니다. 앞에 I번과 II번에서 그치면 남을 비판하고 정죄하는 데 머물게 됩니다. 알게 된 것은 곧 나를 고치기 위해서이며 나를 바꾸기 위해서입니다. 그렇게 하여 말씀으로 바뀌어진 나는, 나와 말씀이 하나이니 곧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말씀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이렇게 받은 말씀으로 자기를 고치는 현실을 통과한 다음, 다시 그 성경을 보게 되면 이전에 알던 성경과 전혀 다른 차원으로 다시 자기에게 다가오게 됩니다. 말씀이 자기를 만들고, 만들어진 만큼 자기는 말씀을 다시 대하게 되는 반복이 계속되면, 시동 걸린 자동차가 됩니다.
V. 성령이 이 모든 일에 동행토록 마음속에서는 계속하여 매달림이 있어야 합니다.
성경을 내용 자체로 접촉하는 일, 외우는 노력, 성구끼리 연결시키는 일, 그 말씀으로 자기를 고치는 등 모든 것은 결국 성령이 마음을 열어 주셔야만 합니다. 성령이 오셔서 역사해 주시는 것은 인간의 이성과 지성이 노력해서 연구하는 것은 인간 수평선 이하의 것만 알게 되는 것이라고 단정해야 합니다. 비록 성경을 연구한다 해도 인간이 인간노력으로만 이루어낸 것은 다른 종교 다른 철학에서도 찾아낼 수 있는 것까지입니다. 신학이 신앙을 죽이고 신학자가 믿는 사람을 죽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 모든 일에 마음을 열어주시고 감동시켜 주시라는 절박감, 진정한 간구, 그런 심정을 꾸준하게 가질 때. 그러면서 꾸준하게 성경을 보고 연구하노라면, 어느새 그분이 함께 하고 계셨음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이 모든 하나님의 역사는 봄이 오면 얼음이 녹는 것은 틀림없는데 어디부터 언제부터 어떻게 녹는지는 눈에 잘 보이지 않는데도 주변 전체가 녹아내리고 있는 것은 분명하게 알 수 있는 것처럼, 역사합니다.
*설교록을 접하면서 성경을 어떻게 대하는지 라는 숙제를 마음 속에 가지고 있으면 뜻하지 않게 성경에 대하여 평생 새겨둘 말씀이 지나가게 될 것입니다.
답변2 : 설교록을 읽을 때 ,
1. 설교록도 성경을 읽을 때와 꼭 같이 하시면 됩니다.
설교록을 읽을 때도 앞에서 말씀드린 성경 읽을 때와 같은 자세로 하시기를 권합니다. 물론 상식 수준에서 아시겠지만, 설교록은 성경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어떤 설교록을 대해도 성경을 대하는 자세로 대하라고 권할 책은 칼빈의 설교록 외에는 거의 본 적이 없습니다. 이는 설교자의 기본자세가 신학적 또는 도덕 교양 상식을 전달하는 차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백목사님의 설교록은 그 설교를 전하는 설교자의 기본자세가 성경을 대하는 가장 모범적인 자세, 즉 앞에서 말씀드린 성경 연구자세 이상으로 늘 살아왔고 전했던 경우이기 때문에 일반 신학서적이나 설교록을 대하는 자세와는 기본적으로 달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2. 설교록을 대하면서 주의할 점 하나입니다.
외부로 발표하기에는 대단히 위험스런 표현이지만, 누구든 설교록을 진지하게 꾸준하게 읽어보았다면 성경보다 더 은혜롭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봅니다. 그러나 이런 표현이 흠만 잡고 토만 다는 사람들에게 시비를 하지 말라고 해 보는 소리일 뿐입니다. 어느 교회 어느 목회자의 설교를 듣는다 해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백목사님의 설교는 특히 너무도 은혜가 되고 또 특별하기 때문에 한 마디 덧붙이는 것입니다.
설교는 성경을 풀어 증거 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의 신앙이 어리고 무지하기 때문에 더 은혜 되는 성경은 덜 은혜롭게 읽고 덜 은혜 되는 설교는 더 은혜롭게 느끼는 것입니다. 설교가 성경보다 더 은혜롭다는 것은 절대치로 말한 것이 아니라 듣는 이의 체감을 기준으로 할 때 그렇다는 것입니다. 만일 설교보다 성경이 더 은혜로운 정도의 사람이라면 성경 하나만으로 설교할 사람이고 그는 다른 사람의 설교를 들어서는 안 되는 특수 은혜의 사도 바울이나 백목사님 같은 신앙의 사람일 것입니다.
설교록을 대할 때, 성경을 읽는 것보다 더 은혜롭고 또 마음에 와 닿기 때문에 설교록에서 만족하고 성경으로까지 직접 나아가는 일이 중단될 수 있습니다. 실제 총공회 내부 교역자와 교인 중 설교 은혜를 강하게 받은 분들 중에는 많은 분들이 의외로 설교록에 막혀 성경에 나아가지 않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설교록을 바로 읽는 자세는 설교록에서 성경이 보이고 성경으로 안내되는 데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설교록을 대하면서 성경을 대하는 법을 배우고 또 실제 성경을 대하게 되고, 또 성경을 많이 알아갈수록 설교록이 이전보다 더 많이 들리게 되면 그가 설교록에서 얻은 수입은 성경 이외에는 설교록 한권만 가지면 충분하겠다고 느낄 정도에 이를 것입니다. 설교록의 설교는 백목사님의 성경중심 성경유일 성경대로의 설교를 한 기록이기 때문에 가능한 세계입니다.
성경을 늘 마음에 두고 설교록을 읽으시라는 권면으로 요약하겠습니다.
3. 설교록을 읽으실 때 가장 은혜 받고 또 파악하시는데 빠른 길은 설교록 교정입니다.
성경을 읽거나 연구하면서는 안 될 법이지만, 설교록은 성경이 아니기 때문에 펜을 들고 감히 교정할 수 있습니다. 설교자의 잘못 발언한 것도 있고, 설교자가 혹 착각한 것도 있습니다. 또한 설교록 편집 직원들의 오자는 그 수를 다 헤아리기도 어렵습니다.
설교록 출간에 관련한 편집 직원 전체의 수준이 그 책임의 위치에 있었던 답변자로부터 말단에 이르기까지 세상 수준이 낮았으며 이곳에 답변하는 국문 표기법에서도 알 수 있을 정도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설교록은 원본 녹음테이프를 들으면서 얼마든지 교정할 수 있는 책입니다.
헤드폰을 착용하시고, 설교록을 쭉 따라 보면서 틀린 곳, 바로 고쳐야 할 부분, 또는 이렇게 편집하는 것이 더 좋았겠다는 '편집 직원의 위치와 근무 자세'로 설교록을 직접 첨삭해가며 교정을 해본다면, 백목사님 설교에 정통할 수 있는 가장 지름길이며 어느 누구라도 다 이곳의 답변자와 같은 심정에 이를 수 있다고 봅니다.
이유는, 설교록에 자신의 마음을 가장 집중 시킬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집중만 하게 되면 설교 때에 설교자를 붙들었던 그 영감의 역사가 다시 읽는 이들에게 또한 역사하는 영감 역사가 있기 때문입니다. 백목사님 설교록 관련 모든 출간물을 1982년부터 2001년에 이르는 만 20년간 전담한 이곳의 모든 연구회 직원들, 또 그동안 이 출간 과정에 잠깐 동안씩 거쳐 갔던 모든 분들 전부가 일치 통과한 경험이었습니다. 지금도 이 방법으로 권하여 드린 분 중에 그 설교록의 세계를 이전과 완전히 다른 차원에서 겪어보지 않은 분이 없습니다.
이런 경험 때문에 부산공회(3)으로 함께 하는 이곳 관련 교회들은 5월과 8월의 집회를 지금도 설교록을 들고 테이프를 들으면서 설교록을 그냥 읽는 것보다 오자나 탈자, 또는 편집자의 편집 내용 자체를 변경해야 할 곳을 찾는 마음으로 설교록을 재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집회 전체 참석 인원의 1/3에 해당하는 주일학생들이 장시간의 집회 설교를 다 통과하고 있습니다. 이 예배 분위기만 가지고는 다른 어느 집회와는 아주 눈으로 확인되는 특별한 말씀 은혜가 있다는 것도 설교록 출간 과정에서 가진 전 직원들의 경험입니다. 백목사님 사후 집회 방향을 결정할 때도 이곳 직원들의 요청으로 부산공회는 일반화 되어 있는 방법입니다.
현 부산공회 집회는 설교록 은혜 받는데 가장 좋은 방법을 사용하고 있으나 공회 간 노선 갈등이 집회 장소까지 따라 가기 때문에 현재 재독 문제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또한 그 연장선에서 반발세력으로 분류되는 분들이 일반 목회자들의 설교로 대신하고 있으나 크게 잘못된 길로 들어서고 있다는 것이 이곳의 주장입니다. 설교가 잘못이 아니며 설교자의 노력을 반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설교를 듣는 귀를 어떻게 열어 어떻게 길러가야 하는지를 전혀 반대로 분석했기 때문입니다.
4. 설교록을 여러 면으로 분해하고 또 요약해 보셨으면 합니다.
이 설교는 제목을 붙이자면 어떻게 요약을 할 수 있겠는가? 이 과제를 가지고 처음부터 들어보시면 아주 달리 들릴 것입니다. 설교 중 어느 부분까지가 서론에 해당되겠는가, 어느 라인에서 내용 상 구분을 할까, 본론이라고 한다면 본론 중에서 몇 가지를 가르친 설교라고 대지를 잡아 볼까, 그리고 그 대지를 잡을 때 분류 기준을 어떻게 해 볼까 하는 등으로 설교 내용 자체를 들으면서 한편으로는 내용을 설교 전체 차원에서 분석을 해 보시면, 대개 10-15페이지의 설교 한 개 분량을 10줄 정도의 요약으로 줄일 수 있을 것이고 그 10줄 정도를 다시 한 문장으로, 그리고 마지막에는 몇 개의 단어로 된 제목으로 함축시킬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된다면, 제목 하나만 가지고 줄거리를, 줄거리를 가지고 설교 내용의 전반적인 윤곽 정리를 하면서 설교 전체를 재구성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부채살을 오므렸다 펴는 것처럼, 설교 내용 전체를 간단하게 요약하고 요약된 내용으로 다시 전체 설교를 설교록을 보지 않고 그대로 펴낼 수 있게 된다면, 그는 이미 일반 교계에서 보기 드문 설교자가 되어 있는 자신을 볼 것입니다.
총공회 내부에는 그 신앙노선이 각각 다름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성경으로 설교하는 면에 있어서는 대단히 탁월한 분들이 적지 않으며 그분들은 대개 이런 세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수십년 설교를 연구한 분이나 몇 개월 이렇게 집중해서 연구한 분이 우열을 가리기 어려울 정도로 비교되고 또 드러나기도 합니다.
부산공회(2)에 현재 소속한 이진헌목사님의 경우 일반 교계에서 가장 정평 있는 설교가로 이름이 있으며, 김명재목사님은 공회 내부에서, 또한 정경수목사님 등 많은 분들이 여러 면에서 그런 세계를 나름대로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곳에서 소개드리는 방법이면 그리 오래지 않은 시간에 다 그런 분들을 능가할 수 있겠다는 주관적인 자신감이 심겨질 정도로 누구나 설교록을 접할 수 있을 것입니다.
현재 일반 교계 목회자들은 대예배 설교거리를 찾지 못해 남모르는 고통으로 수없는 신학 서적과 주석들을 뒤적이지만 늘 같은 소리밖에 없어 결국 세상 여러 뉴스나 예화를 사용하며 애를 먹고 있습니다. 공회 안에서는 일반 주일학교 반사일지라도 설교록을 통해 어느 정도 말씀을 파악한 이들은 다른 실력이 없어 목회를 못하지 설교가 부족하고 설교에 낭패를 보는 경우는 별로 없는 것이 다 설교록을 통해 쌓은 실력입니다. 일반 교인들은 설교를 이렇게 연구해볼 기회는 거의 없지만, 목회자들이 없을 때 강단을 맡게 되는데 그런 경우 설교록으로 설교를 준비하게 되면서 앞에서 소개받은 설교록 접촉의 집중력이 순간 높아지게 되면서 습득케 되는 훈련이 되어졌기 때문입니다.
5. 설교록을 읽는 순서 등
설교록을 읽는 순서는 제일 앞에서부터 차근 차근 읽으셨으면 합니다. 단, 설교록에 붙인 홋수는 100호부터 182호로 출간하고 그후 99호부터 밑으로 내려가고 있습니다. 연대별이라는 것 외에는 특별한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나 백목사님의 설교 세계는 1982년을 전후로 하여 대단히 수준과 그 깊이에 차이가 많습니다. 분명한 것은 1979년 7월부터 백목사님 자신이 자신 설교 전체를 녹음하도록 했다는 것입니다. 원래 녹음 등 기록에 대하여는 극단적으로 금지하던 분이기 때문에 이 의미는 예사롭지 않습니다.
따라서 1979년 7월에서부터 뒤로 읽어 가시면 좋겠다고 권합니다. 흔히, 오래 전부터 백목사님의 설교를 접한 교역자들은 1979년 이전 설교를 그렇게 선호합니다. 1979년 이전 설교는 본문 하나를 중심으로 축절적으로 해석하시고 그 중 몇가지 요약할 내용을 전하기 때문에 각론적이며 명료하고 전후 좌우의 내용이 또렷했으며 따라서 누구든 이해가 쉽고 은혜가 된다고 느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교역자들로서는 설교거리 마련을 위해서는 포장된 fast food 같다고 하겠습니다. 반면 1979년 이후, 특히 1982년을 지나면서부터는 설교가 평생 설교 전체를 한꺼번에 요약하듯 이루어지기 때문에 무슨 말이 진행되고 있는지도 모를 때가 많고 또 추상적인 높은 차원의 말씀이 많습니다.
맥을 잡기 어려워 설교거리로 재사용하는데 어려움이 많았고 듣는 교인들도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고 느끼게 되는 경우가 있으며, 전하는 교역자도 시장에서 쏟아져 나온 각가지 청과물 재료만 받는 듯 하여, 자신이 직접 요리를 해야 한다고 느낄 정도의 설교 형태였습니다. 이 단계에서 과거 1979년 이전 설교로 전적 방향을 잡고 나간 것이 서울 대구공회 교역자 거의 전부입니다. 그리고 그 깊이는 그 이후 너무도 안타까울 정도로 얕아지고 있습니다.
반면 부산공회쪽에는 과거 그대로라는 분위기가 있었고 따라서 녹음 기록된 1979년 이후 설교를 무작정 반복하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자연히 설교가 어렵게 되고 무슨 설교를 하는지 모르겠다는 교인들이 곳곳에서 많이 나타나기는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높은 차원의 말씀을 붙들고 계속하므로 그 설교의 깊이가 전반적으로 유지되고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이곳에서도 역시 1979년 이전의 자료를 거의 전부 소장하고 있고 또 현재 데이타화 시켜 이곳에 공개하고 있으나 1979년 이전의 설교는 어디까지나 연구 참고용에서 활용하고, 백목사님의 설교 세계는 1979년부터 시작하거나, 아니면 적어도 1982년부터 꾸준히 뒤로 가는 방법을 권합니다.
백목사님은 자신이 스스로 평하여 '5년 정도면 설교의 대부분이 한번 지나가게 된다'는 말씀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1985년부터 89년까지 5년을 따로 읽어보시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입니다. 만일 1년 단위로 읽겠다면 어느 해를 기준으로 해도 상관이 없겠습니다.
참고하실 것은, 어느 해 설교든 1-2년, 혹 2-3년치 설교만 잘 집중하게 되면 백목사님의 설교 세계 전부를 정통할 수 있는 기초가 마련되고 이 기초는 수학의 공식 이해와 같아서 나머지 설교 전부를 그 공식선상에서 이해하고 나가면 저절로 정리되고 파일화 될 수 있다고 봅니다.
답변3 : 신앙 알맹이를 대하는 법 ,
명상이 많으면 깊어집니다. 백목사님 평생 교훈은 '명상 많은 사람이 하늘나라에 가면 위대한 사람으로 나타날 것'이라고 합니다. 많은 명상을 통해 자신을 깊게 만들고 나면 많은 말이 쉽게 나오게 됩니다. 그러나 자신을 깊게 만들기 전에 말이 많으면 자칫 자신 속을 깊게 만드는 일은 거의 실패하게 됩니다. 아궁이 속에 들어 있는 불길이 아궁이 밖으로 자꾸 나오면 방 안에 열기는 떨어집니다. 반대로 아궁이 속으로 불길이 들어가고 밖으로 나오지 않으면 겉은 별로인데 속이 뜨겁습니다.
그러나 예외가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기르기 위해 교훈하는 것은 교훈 중에 자신이 더 깨달아지며 자신에 대한 가르침이 되어 오히려 자신을 깊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백목사님은 평생 성경 깨달음을 제일 많이 가지게 된 것은 설교 시간이 가장 많았다는 증거를 그렇게 많이 합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을 사람으로 만들려는 중에 자기가 만들어지는 것이 사람이 자기를 만드는 가장 지름길이라는 교훈이었고, 이 원칙으로 주일학교에 적용했으니 반사 실력이 된 사람으로 반사를 시키지 않고, 반사 실력이 없는 사람에게 다른 사람을 가르치면서 자신이 사람이 되도록 하기 위해 반사 임명을 먼저 했기 때문에 반사확보를 그렇게 많이 할 수 있었고, 그 반사들이 반사를 하면서 자기를 깊게 만들어 공회에는 생각 못한 많은 인재가 있게 된 원인입니다.
답변4 : 사람만 남고 교훈은 없어지는 실수는 바로 우리가 조심할 바입니다.
1. 백목사님을 가까이 대하다 보면 그 분의 모든 면에 감탄이 절로 나옵니다.
인간이 다 섭렵할 수 없는, 인간의 지식과 경험 한계선을 넘고 있는 그 분을 가까이 대하면 대할수록 감탄하게 됩니다. 이런 점에서 이곳은 그분의 전기를 사실에 기초한 부분만으로 기록한다 해도 역사상 사도 바울에 필적할 차원에서 기록할 수 있다고 자신합니다.
이곳은 그분의 거의 모든 면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생물학적 사회학적인 면으로까지 살피면서 어떤 경로를 통해서 이런 인물이 발생될 수 있는지를 살폈습니다만, 말씀으로 살아간 그의 생이 그를 만들었지 인간의 자연발생적인 요소는 전혀 없다는 결론에 이르고 있습니다.
아무리 훌륭한 성자들이라도 가까이 다가가며 접하게 되면 멀리서 보고 느낄 때보다 실망이 더해지며 그 평가가 많이 축소되는 법입니다. 그러나 그는 가까이 할수록 사생활에 가까울수록 은밀한 생활에 근접할수록 더 감탄하게 됩니다. 성경의 바울이나 다윗을 오늘 현대에 되살려 보는 듯합니다.
2. 그를 대하다 보면 그의 교훈은 잊을 수 있습니다. 사실 가까운 곳에서 큰 것을 잃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백목사님을 가까이 하다보면 그의 지시 그의 판단 그의 언행이 너무도 정확하고 또 미리 보기 때문에 순종만 하면 되는 타성에 젖게 됩니다. 감탄으로 또 습관으로 백목사님이라는 인물만 상대하다가 그의 교훈은 자기 속에 어느덧 사라지면서 결국 교훈 없는 추종만 남게 된 분들도 적지 않습니다.
지금 백목사님 생전에 가장 목사님을 가까이 했던 이들의 대부분이 그런 경우라고 이곳은 생각하고 있습니다. 백목사님을 가장 장기간 모셨던 서부교회의 권사님들, 공회적으로 가장 오래 함께 동역한 소위 원로 목회자 전부, 그리고 그분의 마지막까지 그분을 가장 가깝게 모셨던 분들까지 그분의 사후 10년 이상의 세월 속에서 뚜렷하게 증명이 된 경우만을 두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이런 결론을 하나 유추해 드립니다.
백목사님을 체온 감지 거리에서 접했던 이들도 백목사님을 접하며 그의 지혜와 능력에만 놀랐을 뿐 결국 교훈을 잡지 못하여 백목사님 사후에는 그와 다른 길을 걷고 있는 것이 대부분이라면, 백목사님을 한번도 개인적으로 상대해 보지 않았으나 그의 설교만을 듣고 또는 그의 설교를 설교록을 통해 간접적으로만 듣고도 오늘 그가 소개한 신앙걸음을 정확하게 정통으로 꿰뚫고 걷는 분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현재 이곳 홈을 통해 접하며 그런 분들을 종종 만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세상의 역사적 의미로는 백목사님을 생전 접촉했던 사실을 소장용으로 가지고 있을 가치가 있을지 모르지만 자기 구원을 이루어가는 일에는 전혀 반대로 작용되도록 하는 분들도 있으며, 반대로 백목사님을 전혀 모르면서도 오늘 그의 신앙걸음을 이어가되 마치 예수님을 전혀 보지 못했던 사도 바울이 12사도 중에 가장 복음에 중앙을 걸었던 것과 같이 오늘도 그럴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런 점에서 이곳은 백목사님의 생전사에 관련된 많은 자료를 제공하면서 동시에 백목사님의 생애나 인간에 막히지 않고 그 속에 있는 신앙걸음을 연구하고 전하기를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백목사님의 신앙노선을 소개받는 모든 분들에게 꼭 주의 요청드리고 싶은 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