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하나님과 하느님 그리고 여호와와 야훼의 차이점은? 2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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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13 21:54
22. 질문 : 하나님과 하느님 그리고 여호와와 야훼의 차이점은? 2253
사무엘하 22장 32절
개역한글 : 여호와 외에 누가 하나님이며 우리 하나님 외에 누가 바위뇨
공동번역 : 하느님은 야훼뿐, 바위가 되실 이는 우리 하느님,
표준새번역 : 주님 밖에 그 어느 누가 하나님이며, 우리의 하나님 밖에, 그 어느 누가 구원의 반석인가?
NIV : For who is God besides the LORD? And who is the Rock except our God?
KJV : For who is God, save the LORD? and who is a rock, save our God?
보통 우리가 하나님을 '한분 하나님'이라는 뜻으로 하나님이라 하는 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천주교는 하나님을 하느님이라고 부릅니다. 말하는 분의 속은 한분 하나님을 표현하고 있어도 범신론적인 표현으로 하느님이라는 표현 같아서 거리감이 있습니다. 일반인들도 어려움에 처하면 하느님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우리 애국가에도 '하느님이 보우하사'라는 표현도 같은 느낌입니다. 위에 번역한 '공동번역'도 천주교와 함께 작업을 하여서 하나님을 하느님이라 표현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하느님이라고 표현해도 상관이 없습니까?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은 '계약의 하나님, 약속의 하나님'이라는 뜻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야훼의 뜻은 무엇입니까? 우리나라에세 제일 큰 교회 목사님이 예배시 하나님 말씀 봉독 때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되어있는 것을 '야훼 하나님'이라고 봉독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설교 때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하지 않고 야훼 하나님이라고 설교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개역한글 성경에는 야훼라는 표현이 없고 여호와라는 표현만 있는데 공동번역에서는 여호와라는 표현을 전부 야훼로 변경하였습니다. 그러면 여호와 하나님과 야훼 하나님은 같은 뜻입니까?
답변 : 어떻게 번역해도 상관은 없으나, 천주교의 정신상태와 신학자의 신앙은 배제하는 것이 좋습니다.
1. 기독교의 '하나님'과 천주교의 '하느님'
① 표현하는 방식만 다르지 꼭 같은 성경의 그 하나님을 말합니다.
천주교가 '하느님'이라 표현한다고 해서 우리가 말하는 '하나님'과 다른 하나님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이 '하느님'이라고 할 때 그 '하느님'은 우리가 읽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신구약 성경에 나오는 바로 그 '하나님'을 말합니다. 내나 같은 분을 말하는데 다만 표현하는 방식이 달랐을 뿐입니다.
② 같은 것 하나를 두고도 표현을 달리하는 것은 한 두가지가 아닙니다.
성경이냐 성서냐, 목사냐 신부냐, 교리냐 교의냐, 찬양대냐 성가대냐, 연보냐 헌금이냐, 이렇게 헤아리다 보면 한도 없습니다. 물론 그 단어 하나 하나를 두고 따지자면 할 말이 많지만 일반 우리 교인들로서는 이러나 저러나 꼭 같은 말인데 다만 표현하는 것만 다르다고 알고 있습니다. 기독교의 하나님과 천주교의 하느님도 그런 경우입니다.
2. 뜻은 같지만, 굳이 '하나님'을 고수하는 이유는
① 꼭 바꿔야 할 이유가 없다면, 신앙이란 이전 것을 유지하기 때문입니다.
예배당 건축 자재와 같은 것은 건물의 경제성과 효용성을 두고 결정하는 것이므로 시대와 유행을 따라 바꿀 수가 있습니다. 그렇다 해도 성급하게 바꾸거나 세상에 앞서 나가는 일은 삼가하고 있습니다. 조금 뒤에 서서 그들이 앞서 가는 모습을 보며 조심스럽게 뒤를 따르는 것이 신앙적인 행동입니다. 그렇다면 일반 건물의 내구연한이 보통 100년이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건축 형태도 최소 4-50년에서 100년 정도의 보수성은 가지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건축자재보다 내구연한이 좀더 오래 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으로는, '반사'나 '구역' 또는 '조사' 등과 같은 교회 행정 용어들이 있습니다. 건축물의 내구연한도 100년을 잡아야 할 것인데, 하물며 이런 용어들은 적어도 수백년 정도는 유지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라는 생각입니다. 이런 용어의 변경을 두고 교리가 잘못되었거나 신앙이 삐뚤어졌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선택의 문제입니다. 그러나 바꾸어도 되고 바꾸지 않아도 될 문제이면 바꾸지 않는 것이 좋고, 그렇다면 이런 용어는 수백년 또는 그 이상이라도 지속될 정도라야 정상적인 신앙이겠다는 생각입니다.
② 건축자재나 행정용어와 비교도 할 수 없도록 지켜져야 하는 것은 교리적 표현들입니다.
교리적 표현은 변경할 수 없다는 원칙을 교리적으로 정해놓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나 '성경'이나 '기도'나 '대속'이나 '회개'와 같이 신앙의 본질적 용어와 같은 것은 한번 정하면 그 표현이 교리상 옳으냐 틀렸느냐, 또 그 표현 때문에 교훈 전달에 문제가 있느냐 없느냐는 기준으로 바꾸면 바꾸지 세월이 오래 지나갔다고 해서 바꾸는 것은 안 됩니다. 신앙의 본질에 가까우면 가까워질수록 신앙의 원칙이 더 엄하게 적용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교리에 관련된 표현은 그 표현까지도 교리와 생사를 같이 하는 것이 일반적임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이유는? 처음에 그 교리를 정할 때는 어떤 용어를 사용할지 고민하다가 여러 개 중에서 하나를 고르게 됩니다. 이때는 그 교리 용어라는 것은 하나의 선택 문제일 뿐입니다. 그러나 그 교리를 표현하기 위해 사용한 그 단어를 자꾸 사용하다보면 세월이 지나가면서 어느 순간에 단어와 교리는 같은 존재가 되어버립니다. 단어를 변경하면 교리 자체가 변동되는 문제가 생깁니다.
따라서 '삼위일체' '대속' '구원'과 같은 단어들은 만일 그 표현을 바꾸어야 할 때가 되었다면 그 단어가 지금까지 소개하고 가르치던 교리 자체를 변경해야 한다는 전제가 따르게 되므로, 교리에 직접 관련된 단어들은 변경을 할 수 없다는 정도로 인식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절대라고 말할 정도는 아닙니다.
③ 질문하신 '하나님'과 '하느님'
처음 천주교가 이 땅에 전도하러 왔을 때는 '하느님'이라고 단어를 결정했고, 우리는 '하나님'이라고 결정을 했습니다. 종교가 다르니 서로 의논할 리도 없었고 각자 생각대로 결정한 것입니다. '신'이라고 결정할 수도 있었고 '하늘님'이라고 결정할 수도 있었고 또 '하느님' 또 '하나님' 등 여러 표현을 두고 고심을 했습니다.
천주교가 '하느님'이라고 결정한 것은 그들은 형식을 강조하기 때문에 우리 신이 가장 높다는 뜻을 선호했습니다. 그래서 '천주, 天主=하늘의 주인' 또는 '상제, 上帝=위에 계신 황제'라고 단어를 사용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한글 표현으로는 '하늘에 계신 분'이라는 뜻으로 '하느님'이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성경의 하나님을 한국 천주교인들에게 소개할 때 '가장 높은 분'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반면에 기독교는 천하에 있는 신들은 전부 조작배기 신들이고 참 신은 오직 한 분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어 '하나님'이라고 표현을 통일하게 됩니다.
④ 결과적으로 하나님이라는 표현이 하느님이라는 표현보다 더 잘 되었습니다.
하나님이냐 하느님이냐 또는 다른 표현이냐는 문제를 두고, 그 결정할 때의 순수했던 뜻으로만 말한다면, 천주교라고 해서 범신론을 염두에 두었을 리는 없고 또 기독교라고 해서 가장 높은 분을 덜 강조하고 싶었을 리도 없었습니다. 이제 세월이 100년 또는 200년이 지나고 있으므로 세월이라는 재판관을 가지고 판결을 한다면 하나님을 대신할 수 있을 정도로 정확하게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말한다면 '하나님'이라고 결정한 기독교의 결정은 옳았고, '하느님'이라고 결정한 천주교의 결정은 속화와 우상의 종교라는 그들의 내면을 여지없이 드러낸 결정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두고는 불신 안 믿는 사람들까지도 전부 기독교가 말하는 유일신, 성경의 창조주라 하는 바로 우리 하나님을 말한다고 인식하고 있습니다. 믿는 우리에게는 이 표현에서 더할 것도 뺄 것도 없이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찾아 모시고 있습니다.
천주교의 '하느님'은 그들 스스로도 범신론 중의 한 하나님으로 그들의 유일신을 내려앉혔고, 그런 일에 그들의 '하느님'이라는 표현은 지대한 역할을 했고, 또 '하느님'이라는 표현을 처음 만드는 과정에서도 그들은 한국사회에서의 '하늘' '하늘님' '한울님'이라는 개념은 범신론 중에서도 가장 흔한 표현임을 고려하지 못했습니다.
물론 그렇게 결정한 과정을 살펴보면 유럽의 관점에서는 사람들이 만든 여러 종류의 '신'을 소문자로 붙여 보통명사 'god'으로 사용하는데, 천주교에서도 한국 사람들이 보통명사로 사용하는 신을 '하늘님'으로 생각하고, 그다음 성경이 가르치는 신은 대문자를 붙여 'God'이라는 고유명사로 사용하니까 한글에서도 '하늘님'의 변형인 '하느님'이라는 단어를 새로 만들어 하나님에게만 붙이는 고유명사로 사용한 것입니다.
⑤ 천주교의 정신상태는, 그 수준이 '하느님'을 택할 수밖에 없는 상태였습니다.
결과적으로 천주교의 '하느님'은 한국사회 어느 누구에게도 별 거부감 없이 '하늘님' '한울님' 등 그런 종류의 신들 중에 하나가 되었고 또 천주교인들 역시 박해가 심해지자 한국토종 종교나 미신에 대하여 굳이 구별하기를 원하지도 않았으므로 그 이름은 아주 기막히게 천주교의 국내 토착화를 돕고 있었습니다. 달리 말하면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본질적인 면을 얼른 제거하고 한국사회의 여러 신들 중에 하나로 세우는 일에 그 이름이 아주 지대한 역할을 하게 됩니다. 천주교라는 곳이 그런 곳이지만 특히 한국 천주교의 토착신앙화는 기막힐 정도입니다.
100여년전 애국가에 '하느님이 보우하사'라는 글귀를 넣어도 유교 불교 천도교 등의 이종교 문화에만 익숙해진 당시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불려진 정도입니다. 그들은 그들의 '하늘님'을 부르고 있었습니다.
이제 와서 다시 보니, 천주교가 '하느님'이라고 이름을 붙인 것은 이미 그들 속에 생명역사가 없어진 지 오래 되었으므로 범신론이 심정적으로 가까웠고 따라서 그런 이름을 붙인 것도 자연스러운 결과였습니다.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천주교는 한국사회의 민주화와 인권을 주로 지적하고 그것으로 자신들의 존재 가치를 가지고 더 나아가 천주교라는 집단이 세계사회에서 아직도 일정한 영향력을 보유하려는 노력의 일환에도 잘 맞아졌습니다.
과거에는 하나님을 믿었으나, 오래 전에 하나님을 배제하고 껍데기만 교회라는 이름으로 내려온 집단이 천주교입니다. 그들의 정신상태가 그런 수준이므로 그들이 선교 초기에만 해도 '유일신'을 교리적으로는 외쳐야 하던 시점인데도 '하느님'이라고 하는 기막힌 표현을 택하여 스스로 범신론 속으로 들어가 앉았습니다. 그들의 수준과 상황이 그런 상태였다고 하겠습니다.
3. '여호와'와 '야훼'의 표현
① 히브리어는 자음만을 적고 모음 없이 읽었던 언어입니다.
이스라엘 언어는 히브리어입니다. 히브리어는 원래 모음이 없고 자음만을 가지고 적고 읽었습니다. 자음 중에서 몇 글자가 모음 역할을 했지만, 정확하게 말하면 글자는 자음으로만 적고 모음은 그냥 읽는 사람이 알아서 붙여 읽었습니다. 세월이 지난 뒤 문자가 정확하게 전달되고 기록되며 발음될 수 있도록 모음을 개발하여 붙이게 된 것이 오늘 히브리어 성경의 문자들입니다.
② 여호와라는 단어는 발음하지 못하게 했기 때문에, 진짜 발음은 잊혀진 단어입니다.
원래 히브리어 성경에 '여호와'라는 단어가 자음으로 된 'YHWH'라는 단어로만 전해오고 있었습니다. 비록 자음으로만 적혀 있어도 실제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 4글자의 자음을 어떻게 소리내어 읽느냐는 것은 말에서 말로 전해 내려오기 때문에 그 단어를 어떻게 읽어야 하느냐는 것은 문제가 될 필요가 없었습니다.
예를 들면 '대통령'이라는 단어를 'ㄷㅌㄹ'으로만 적고 우리가 읽을 때는 늘 '대통령'이라고 소리를 낸다면 문제 될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하신 제3계명 때문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중간에 '여호와'라는 단어는 발음도 음에 담지 않기로 하고 그 대신 주님이라는 뜻을 가진 '아도나이'로 읽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다른 단어는 자음으로만 적어놓고도 자기들끼리 읽는 식이 있으니까 누가 적어놓아도 그렇게 생긴 자음은 그렇게 소리를 냈는데, 'YHWH'라는 단어는 오랜 세월동안 아무도 소리조차 내지 않다 보니까 적기만 적었지 읽을 수 있는 사람이 없어 하나님의 이름 '여호와'는 글자로만 남아있고 읽는 법은 완전히 잊혀졌습니다.
③ 현재 '여호와'냐 '야훼'냐는 발음 문제는, 성경 단어 발음과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아무도 읽는 법을 모르고 잊혀진 'YHWH'라는 단어를, 훗날 이스라엘의 서기관들이 히브리어 자음에 모음을 만들어 사용하면서 '아도나이'라고 부르던 그 단어의 모음을 '여호와'라는 자음에 붙여 '여호와'라는 발음이 나오게 됩니다.
그런데 최근 학자들이 연구를 해 보니까 여호와라는 단어의 자음과 아도나이라는 단어의 모음을 합하면 '야훼'로 읽어야 되는데도 종교개혁 후 어느 시점에서 '여호와'로 소리를 내게 되어 오늘에 이르렀다는 학설이 제기되었고 일단 학문적으로는 그 이론이 대세가 된 것 같습니다. 그래서 모두들 황급하게 '여호와' 하나님을 '야훼' 하나님으로 바꾸고 있는 중입니다. 좀 무식하게 욕을 하자면, 하나님을 교체하고 있다고 비판을 하고 싶은데, 그렇게 한다면 인간의 기술이 너무 많이 개입되었다고 할까봐 참겠습니다.
이 발음이든 저 발음이든 이스라엘이 성경과 상관없이 자신들의 언어를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자기들 마음대로 이렇게 저렇게 시도해본 것입니다. 그 정확성은 성경의 정확성과는 전혀 상관이 없고 이스라엘 민족의 언어문화에 관련된 일일 뿐입니다.
예를 들면, 감히 대통령이라는 단어는 발음도 해서 안 된다고 하고 'ㄷㅌㄹ'이라고 자음만을 적게 하고 아무도 소리를 내지 못하게 했다면 '대통령'이라는 원래 발음은 다시는 찾아낼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 대신 'ㄷㅌㄹ'을 읽을 때 '통치자'라고 읽어라고 했다면, 후에 모음을 붙이면서 'ㄷㅌㄹ'이라는 단어에 '통치자'의 모음인 'ㅗㅇ ㅣ ㅏ'를 합성해서 '동티라'라고 발음하게 단어를 적었다는 것입니다. 원래 '대통령'이라고 읽어야 하는 발음은 분실하고, 'ㄷㅌㄹ'으로만 적어 내려오고 소리를 낼 때는 '통치자'로 소리를 내다가 모음이 만들어진 다음 '동티라'라고 적은 소리를 어떻게 정확하게 발음하느냐는 문제를 가지고 다툰다는 것은, 신학자들이 밥 먹고 할 일 없어 연구하고 따질 일이지, 믿는 사람이라면 그런 곳에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이 옳습니다.
④ 어쨌든 재주 좋은 학자들이 '야훼'라고 읽어야 맞 다는 것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이 학설 때문에 지금 많이 배운 사람일수록 또 잘 나가는 사람일수록 '야훼'로 발음을 하고 있습니다만, 앞에서 설명한 몇 가지 원칙을 생각하면, 그 학자들이 어떤 근거와 자료로 제시를 한다 해도 이미 우리는 '여호와'라고 발음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그 번역 초기의 과정은 '선택의 문제'였지만 이제 '여호와'라는 단어는 구약 하나님의 이름으로 우리 한글성경에서는 독자적인 단어가 되어 있습니다. 신학자들이 월급을 받고 좋은 직책에 앉아 있다가 보면 무엇인가 남모르는 것을 하나 끄집어내서 내놓아야 값이 올라가기 때문에 자꾸만 '신학'을 앞세워 교회들을 뒤흔들고 있는데, 그것은 아주 큰 마귀역사입니다.
마귀역사라는 것은 옳은 말을 가지고도 할 수 있고, 심지어 성경을 그대로 인용해서도 예수님을 시험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루터와 칼빈에게 형제를 사랑하고 노하기를 더디하라는 성구만 자꾸 읽으면 그 사람은 귀신입니다. 천주교 1천년에서 교회를 살리는 그 시대 그 현실에서는 루터와 칼빈이 양손에 칼을 쥐고 입에는 세상 가장 험악한 단어로 무장을 하고 설쳐야 할 때입니다. 그래도 사실 모자라는 때입니다. 여호와보다 야훼라는 발음이 더 정확하다 하더라도 그것은 이스라엘 유대인의 민족 문화의 발전 과정에 있었던 일입니다. '여호와'의 정확한 발음은 하나님께서 역사에서 없애버렸습니다. 그렇다면 훗날 두 단어의 자음과 모음을 합해서 새로 발음하게 한 단어의 정확성이라는 것은 정확성을 발굴해서 사용해야 할 필요성 자체가 없는 것입니다. 특히 번역된 외국어의 경우는 더욱 더 그렇습니다.
⑤ 금으로 만든 단지에 똥을 넣으면 똥 단지가 됩니다. 요강에 금을 담으면 금단지가 됩니다.
단지에 이름을 붙이는 것은 단지의 재료에 있는 것 같지만 실은 그 반대입니다. 꿀이 들었으면 그 단지 재료가 무엇이든지 꿀단지입니다. 똥이 들었으면 똥 단지입니다. 언어 문제 때문에 교리 문제나 신앙 문제가 뒷전으로 밀려나는 것을 대단히 예의주시해야 합니다.
지금 천주교에서는 '마태오'라고 하고 '바올로'라고 발음을 하는데 분명히 신약 초대교회 교인들과 사도들의 발음은 그쪽이 가깝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냥 '마태' '바울'이라고 번역하여 사용하고 있습니다. '마태'와 '바울'이라고 발음하고 적고 사용하고, 또 그 단어 속에 담아주신 말씀을 은혜로 새기는 우리 기독교인들에게 천주교에서 헬라어 원 발음으로 '마태오'와 '바올로'가 더 가깝다고 비교 우위를 강조하는 것은 귀신 소리입니다.
수학 시험에서 명필의 오답과 악필의 정답을 놓고, 글씨체를 예술적으로 비교하자는 주장, 그런 강조는 틀린 것을 감추고 옳은 것을 묻어버리려는 귀신들이 하는 일이라고 욕을 해버렸으면 합니다. 개탄할 일은, 지금 우리 한국교회들도 여호와에서 야훼로 넘어가고 있지 야훼에서 여호와로 넘어오는 경우는 없습니다. 아마 앞으로 점점 일반 교인들의 학식이 더해가고 또 그들의 외국어 이해와 구사능력이 높아지면 가속도로 여호와 대신에 야훼를 사용하게 될 것입니다.
번역하던 초기에 야훼로 했다면, 백영희목회연구회도 야훼로 사용하는 문제를 두고 아무 반대할 일이 없었을 것입니다. 오히려 도중에 '여호와'로 바꾸자고 했다면 앞장서서 반대를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한국교회로서는 '여호와'라는 표기를 '야훼'로 바꾸면 어문학적으로는 발전을 할 것이고 신앙적으로는 파선으로 간다고 보시면 될 것입니다.
4. 참고로, 백영희목회연구회는 원어나 신학의 깊은 면에 대하여는 일반 신학생 평균 수준 이하에 있습니다.
박사들이 적은 글은, 그 글을 읽고 해득하는 것도 어려운 정도입니다. 여기서 원어나 신학의 전문 분야를 인용하는 경우가 있습니다만 배껴서 옮기는 것도 제대로 하지 못해서 오류가 많이 발견될 것입니다. 혹 있다면 지적해 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러나 백영희목회연구회에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그런 전문지식에 착오가 아무리 있어도 백영희목회연구회가 신앙노선으로 방향을 잡고 답변하고 발표하는 것은 그런 착오 때문에 영향을 받지 않는 신앙의 넓은 면을 살펴보는데 집중을 하고 있습니다.
재질문 : 한글 맞춤법상의 아래아 사용에 따른 변화
목사님 안녕하세요. 저는 총공회 교인은 아닙니다. 그러나 과거 총공회 교회에서 믿음생활을 시작하였기에 애정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교회가 하나님이라는 표현을 쓰게 된 것이 역사적으로 한분 하나님을 의미하지 않았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처음에 한국교회에서는 아래아를 사용하여 하나님을 표현하였습니다. 물론 비신자들도 최고의 신으로서 하나님을 사용할 때에 아래아의 하나님을 사용하였지요. 그런데 맞춤법이 변하고 아래아를 사용하지 않으면서 아래아의 하나님이 하느님으로 변천하였으나 교회에서는 하나님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처음 아래아 하나님을 사용할 때에 사도 바울이 아덴에서 알지 못 하는 신을 통하여 하나님을 설명하고 복음을 전한 것 같은 지혜로운 선택이었다고 봅니다. 이는 또한 우리나라를 복음으로 복되게 하신 하나님의 섭리이겠지만요. 결론적으로 제 생각으로는 우리 교회에서 사용하는 하나님은 천주교에서 사용하는 하느님과 의미는 같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세월이 흘러 교회에서 사용하는 하나님이 한분 하나님을 의미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의미가 틀리다고 생각합니다. 하나의 의미가 유일신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하나는 오직 하나뿐 아니라 여럿 중에 하나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아니 여럿 중에 하나라는 의미가 더 많겠지요.
국어사전에 하나님을 기독교의 하느님으로 설명하고 있으니 굳이 바꿀 필요도 없고요.
답변 : 백영희목회연구회는 국문법에 초보적 상식만 가지고 있을 뿐입니다. 백영희목회연구회가 잘못 알았을 수도 있습니다
국어 맞춤법에 대하여는 백영희목회연구회 상식이 일반 사람에도 제대로 미치지 못한다는 것은 모르는 분이 없을 것 같습니다. 백영희목회연구회는 'ㅡ'와 'ㅓ' 사용을 수십년 듣고도 아직 혼용하고 있는 정도입니다.
그러나 고문법은 백영희목회연구회의 국어실력에도 불구하고 좀 나은 편입니다. 이유는 어릴 때부터 사용하던 생활언어가 비교적 옛날 고어를 잘 보존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초등학교 때까지 주변에서 생활언어로 듣고 사용하던 단어들이, 뒤에 안 사실이지만 1백년 혹은 2백년전에 존재하던 고어들이었던 것도 많았습니다.
이는 고어가 현대화 하는 과정에 있어 서울과 지방, 또 지방과 지방에 따라 시차가 굉장히 있었기 때문입니다. 답변자의 초등학교 시절은 1960년대지만 그 당시 그 시골은 서울에 비하여 50년 또는 1백년 정도 이전 고어를 그대로 사용하는 경우가 허다했습니다.
답변자 아는 바로는 '아래 아'는 하늘의 고어인 '하날'에서도 사용했지만 '1'을 의미하는 '하나'도 '아래 아'를 사용했다고 기억합니다. 또 현재 가지고 있는 한글 고어판에서도 하늘과 한 개를 의미하는 하나가 다 함께 '아래 아'로 표기되어 있습니다. 더구나 기독교의 유일신 강조와 천주교의 하늘 강조는 기독교 고대사를 익히고 내려온 선배들에게 직접 들은 내용이므로 아마 학적인 연구와 달리 초기 한국 기독교사의 실제 상황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현재 한국 교회사는 불과 100년을 막 넘고 있습니다. 답변자가 초기에 접했던 신앙지도자들은 그들 자신이 한국선교 초기의 산 증인들이었습니다. 이렇게 구술이 몇 대를 넘지 않고 바로 당대의 이전 기억으로 전해지는 경우는, 학적으로 접근하여 내린 결론과는 아주 다를 수 있고 만일 이 둘이 다르다면 어느 쪽을 옳다고 택하느냐는 문제가 있습니다. 몇 대를 내려온 것이 아니라 이렇게 자기 당대에 겪은 내용일 때는 학적인 결과와 대등한 위치에서 선택의 문제로 부각됩니다.
백영희목회연구회는 '하나님'이라는 단어의 형성이 아직까지는 천주교의 하늘에 대한 강조에 대하여 유일신의 강조라고 알고 있습니다. 또 질문자께서 지적하신 몇 가지 말씀은 충분히 이해를 했지만 판단을 바꿀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혹 백영희목회연구회가 판단 자체를 바꾸어야 할 정도의 자료들이 있다면 백영희목회연구회에 제공해 주셨으면 합니다. 백영희목회연구회는 기초 사실이 잘못되지 않도록 늘 조심하고 있는 편이나 활동범위가 넓지 못하여 많은 면에서 부족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백영희목회연구회의 잘못을 한 가지 가르쳐 고치신다면 백영희목회연구회를 통해 오가는 많은 분들의 상식을 함께 고칠 수 있습니다.
재질문 : 저의 의견에 성심껏 답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전에도 언급했지만 저는 지금에 와서 하나님을 하느님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지는 않습니다. 자연스럽게 기독교의 신(하나님)으로 정착했는데 굳이 바꿀 필요가 없겠지요.
그런데 목사님께서는 하나님뿐 아니라 1을 의미하는 하나에도 아래아를 사용한다고 하셨는데요. 모두 아래아를 사용한 것은 맞지만 하나님에는 나에 아래아가 사용되었고, 1을 의미하는 하나에는 하에 아래아가 사용되지 않았는지요.
저는 구역성경을 가지고 있지 않아 어떻게 사용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상식적으로 두 번째 음절의 아래아는 ㅡ로 변천하였고 첫 번째 음절의 아래아는 ㅏ로 변천하였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1을 의미하는 하나는 하에 아래아가 사용되어 하나로 바뀌었고 아래아를 사용한 하날은 하늘로 변천되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맞춤법상 아래아를 사용한 하나님은 하느님으로 바뀌었다고 배운 것 같습니다.
그리고, 1을 의미하는 하나에 님을 붙였다면 하나님이 아니고 한님이 되어야 자연스럽다고 생각 됩니다. 우리가 한분 하나님이라고 표현 하듯이 말입니다.
최초의 한국어 성경인 로스역 성경에서
1882년본에는 "..... 두사람이 하느님의 압페셔 올운쟈라......"와 같이 하느님을 사용했고
1883년본에는 "..... 두사람이 하나님의 압페셔 올은쟈라......"와 같이 하나님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천주와 상제라는 용어가 사용 된 적도 있고요. 마지막으로 제 생각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조상들이 생각했던 신 중의 신을 의미하는 하나님(하느님)을 사용하여 모든 신들 중에 뛰어나신 여호와 하나님을 표현하는데 사용하였다는 것입니다. 전에 언급했듯이 바울이 아덴에서 사용한 방법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그분은 한 분일 수밖에 없습니다. 가장 뛰어나신(높으신) 분은 한분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다만 오직 한분의 개념인 유일하신 하나님을 표현하는데 부족한 것이 아쉽지만 말입니다. 그러나 또 전에 언급했듯이 하나를 의미한다고 해도 유일의 의미는 아니니 마찬가지겠지요. 그러므로 굳이 의미를 축소하여 하나이신 하나님보다는 모든 신중에 뛰어나신 하나님이 더 여호와 하나님을 지칭하는데 더 적합하다는 결론입니다. 성경에도 마태복음에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 천국, 천부라는 표현을 많이 쓰고 있고 말입니다.
답변 : 지금 '어원'에 대하여 확인하고 있습니다. 조금 기다리셨으면
1. 한글 고문의 '아래 아' 표기에 대하여 지적하신 말씀이 맞 .습니다.
지적하신 대로, 하나님의 아래 아는 '나'에 붙어 있고, 숫자를 나타내는 '하나'의 아래 아는 '하'에 붙어 있음을 구역성경에서 직접 확인했습니다. 그동안 늘 잘못 알고 있었습니다. 지적해 주셔서 기초 사실을 먼저 바로 잡도록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2. 일단 고문 표기 문제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보다 정확하게 확인해보겠습니다.
이 홈에 가끔 들러는 분 중에 '중세 고문'을 전공하시는 한양대 교수님이 계십니다. 이 분야에서는 가장 전문가일 것이므로 일단 그 분에게 '고문법'에 대한 설명을 부탁드렸습니다. 답변이 오면 다시 이 고문법 부분은 의견을 드리겠습니다.
3. 고문의 표기에 상관없이, 우선 드릴 수 있는 말씀이 있습니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하나님'을 '유일'이라는 뜻으로 표기하고 사용했다고 백영희목회연구회가 설명을 하게 된 것은, 구역성경의 표기를 보고 말씀드린 것이 아니고, 선교 초기에 선교사들에게 믿고 일제 때부터 한국교회 사정을 잘 아는 분들을 통해서 배운 내용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라는 구역 표기를 본 것은 훨씬 후에 일입니다. 고문에 대하여는 기초 상식이 있고 또 성장환경이 고어체를 많이 사용하는 곳이므로 다른 공부에 비해서 고문은 관심이 있었으나 이번 구역 표기를 혼동한 것은 서툴게 알고 있다가 잘못 봐서 실수를 한 것이 아니고, 초기 한국교회를 아는 분들로부터 '유일'의 뜻으로 하나님을 표기했다는 말을 들은 선입견 때문에 그렇게 쉽게 보았던 것 같습니다.
그 표기가 어찌 되었든, 일단 '하나님'이라는 표기는 '유일'이라는 뜻을 강조하여 우리 기독교가 번역과정에서 정한 것이라는 입장은 아직 바뀔 입장이 아닙니다. 답변자가 이 문제에 대하여 설명을 들었던 분은 우리 한글 성경을 구역에서 개역으로 출간할 때 번역위원이 되어 핵심적으로 활동했던 선교사에게 직접 배웠던 분입니다. 따라서 현재 학자들이 과거 기록을 가지고 되짚어가는 것보다, 당시 상황을 가장 확실하게 아는 담당자의 입장을 바로 확인할 수 있는 면이 있기 때문에, 이런 경로로 알게 된 내용은 일반 신학 상식과 다르더라도 그 내용을 대단히 신임하는 편입니다.
어쨌든, 이 문제는 성경으로 따져야 하는 교리 문제가 아니고 역사에 있었던 사실을 확인하는 문제이므로, 비록 불신자라도 정확하게 알 수 있는 문제이므로 사실을 알고 싶을 뿐입니다. 좀더 참고되는 말씀이 있으면 해 주셨으면 합니다.
덧붙여, 로스역 등에 사용된 표현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는 입장입니다. 로스와 같은 입장에서는 성경번역의 정확성보다 성경번역의 필요성을 절감한 상태입니다. 그런 경우가 되면, 자신이 사용할 단어 하나가 그 나라에서 믿을 모든 사람들이 그 단어로 평생 천국을 준비한다는 엄청난 면을 고려하는 것보다 귀한 복음을 일단 부족한 표현법이라도 사용해서 얼른 전하고 그래서 죽어가는 심령들을 살려야겠다는 응급실 당번 의사의 심정이 더 많았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기독교보다 먼저 한국에 연관을 가지고 성경을 가르치던 천주교 신부들이 어떤 단어들을 사용했는지를 알아보고 그 표현 자체가 천주교와 기독교가 서로 차이 없이 공통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그대로 사용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연구를 해보지는 않았지만, 삼위일체라는 교리는 천주교나 기독교가 다 함께 사용하고 있습니다. 초대교회로부터 사용하던 이런 용어를 만일 천주교에서 먼저 사용했다면, 삼위일체라는 표현 자체는 천주교에서 기독교를 거슬리도록 표현하지 않기 때문에 천주교의 자금력과 조직력과 단어 사용에 대한 보수성을 인정하고 그들이 앞서 사용한 단어를 기독교도 단순히 따라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표현법은 일부러 같이 사용하지 않고 교회의 의도를 반영하여 약간 달리 강조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지금 백목사님의 '건설구원' 교리나 '사죄 칭의 화친... '이라는 백목사님이 즐겨 사용하는 표현을 영어로 번역할 때 어떤 단어를 사용하느냐는 것을 두고 답변자가 알기로도 이미 5년 이상 고민하는 분이 있습니다. 그는 영어의 달인이지만, 자기가 한번 사용하게 되면 그 단어가 훗날까지 사용될 때 그렇게 표현하는 것이 과연 어떻겠느냐는 등 문제를 가지고 대단히 신중한 입장에 있기 때문입니다.
답변자는, 영어로 주일학교 공과를 만들어 사용해야 할 필요가 20년 전에 잠깐 있었는데, 당시 초급 영어 실력으로 총공회 교리 용어들을 영어로 번역하여 사용한 적이 있었습니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고 저질렀던 일입니다만, 한 주간 후에 당장 가르쳐야 하기 때문에 그 한 주간만이 답변자에게는 생각할 준비 기간 전부였습니다. 그때 사용한 표현이 지금 생각해도 옳고 잘 되었다면 그것은 답변자의 실력 때문이 아니고 순전히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으로 봐야 할 것이고, 만일 그때 잘못 번역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답변자 실력이 꼭 그만큼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답변자는 그때와는 비교할 수 없이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영어로 한번 확정하게 되는 교리 표현은, 앞으로 쉽게 바꿀 수 없기 때문에 세월 속에 고민하고 있습니다.
한 사람의 설교록과 교리를 번역하는데 확정할 단어도 조금 깊이 생각한다면 이 정도인데, 하물며 100년 전, 한국교회 초기 선교사들의 신앙으로 한국교회 앞날의 모든 신앙문제를 좌우할 번역 문제를 두고, 로스역 등과 같이 부분적으로 어떤 개인이 그냥 급해서 번역한 것과, 그후 번역위원회를 만들어 수많은 토론과 세월 속에 만들어진 것은 그 의미나 강조가 다를 수 있다고 봅니다.
백영희목회연구회는 교계가 모이고 위원회가 구성되면 일단 탈선했다고 선입견을 가지고 있는 정도입니다. 그러나 100년 전, 초기 선교 시절의 분위기는 그 후 교권을 향해 흥정에 익숙해지는 시대와는 아주 다른 면이 있다고 예외적으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4. 백영희목회연구회에 반론을 주셔서 답변자로 하여금 한번 더 살펴보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백영희목회연구회를 사랑하시는 마음으로 말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어쨌든 조금 시간을 가지고 지적하신 내용에 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백영희목회연구회는 백영희신앙노선에 관련된 내용 외에는 아주 평범한 사람들이 알고 있는 수준 정도만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번에 지적하신 성경 번역 초기의 표현 문제나 기타 수많은 부분에 대하여는 부족한 점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
비록 백영희목회연구회가 잘못 알았다 해도 다시 살펴볼 필요조차 느끼지 못하는 내용들이라면 일부러 재확인을 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번 건은 관심이 많은 분야이므로 꾸준하게 살펴보겠습니다. 혹 답변이 확정되면 문답방 게시판 제일 첫 머리에 다시 안내문을 띄우겠습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한글 고문법적 입장에서 본
(안내문)
'하나님'이라는 단어의 어원이 '하늘'이냐 '하나'냐 하는 문답이 앞글에서 있었습니다. 일단 고문법 자체를 두고 사실 관계를 좀더 폭넓게 살펴보기 위해 고문법을 잘 아는 분에게 질문을 드렸는데, 이메일이 오가는 과정에 차질이 있어 7월 14일에 발송한 메일을 8월 9일 다시 한번 발송하여 당일에 다음 답변을 받았습니다.
다음 자료는 한글 고문법을 전공하는 김정수교수님(한양대 국문학과, 사직동교회 장로님)의 입장입니다. 사실 관계와 신앙 시각을 구별하는 분이며 특히 사실 관계에 대한 전문적 자료를 제시할 수 있는 분이라는 점에서 답변자가 질문을 드렸습니다. 물론, 고문법 사실 관계 자체도 학자들에 따라 여러 의견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은 상식이지만, 백영희목회연구회가 연락 가능한 분이기 때문에 국문법 관련 사실 내용은 늘 자문을 구하고 있습니다.
(김정수교수님의 글)
'하나님'과 '하느님'에 대해서: 너무 자세하게 되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적겠습니다. 먼저 최근에 이르기 전까지 옛 한글 문헌에 나타난 대로만 말하자면 '하느님'은 보이지 않습니다. 한글 학회에서 낸 <우리말 큰 사전>의 맨 뒤에 붙은 <옛말과 이두> 부분에서 '하나님'을 찾아보신 다음 아래아가 붙은 '하ㄴ.님'을(편의상 니은+아래아를 니은+마침표 'ㄴ.'로 적습니다)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17세기 인물인 노계 박인로의 시조에 '하ㄴ.님'이 나오고 나중 시대의 문헌에 '하나님'이 나옵니다. '하느님'의 용례가 문헌에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하느님'이 국어사에 없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한 번이라도 나온 경우와 한 번도 보이지 않는 경우를 동등하게 대우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하ㄴ.ㄹ'이 '하늘'로 변했으니, '하ㄴ.님'도 '하느님'으로 변한 것이라는 생각은 어휘 변화의 일반적인 경향을 모르고 너무 단순하고 기계적으로만 내리는 추론입니다. 'ㅎ.ㄴ.니라'라는 표현은 '하나니라'로도 변했고 '하느니라'로도 변했습니다. 아래아는 낱말의 첫 음절에서 대체로 ㅏ로 변했고 드물게 ㅡ로 변했습니다. 두째 음절 이하에서는 ㅏ로도, ㅡ로도, ㅗ로도 변했습니다. 어원적으로 '하ㄴ.님'은 분명히 '하ㄴ.ㄹ(天)+님'입니다. 'ㅎ.낳(一)+님'은 아닙니다. 그러나 '하ㄴ.ㄹ'이 '하늘'로 변한 것과 무관하게 '하ㄴ.님'은 '하나님'으로 변한 것이 문헌에 반영된 것입니다. '하ㄴ.ㄹ'에서 ㄹ이 떨어진 채 '님'과 붙어 생긴 합성어 '하ㄴ.님'은 그 한 부분의 어원인 '하ㄴ.ㄹ'과는 역사를 달리합니다. 낱말은 저마다 독자적인 변천 과정을 밟는다는 것이 어휘사 연구의 한 결론입니다. '하ㄴ.님'을 말할 적마다 그 사람이 어원을 의식하고 '하ㄴ.ㄹ'과 연관시키지는 않는 것이 일반 언중의 행동이고 그것이 누적된 결과가 그렇게 나타나는 것일 것입니다. '좁쌀, 찹쌀, 멥쌀' 등의 ㅂ은 '쌀'의 어원인 'ㅄ.ㄹ'의 머릿소리(어두음)로서 이처럼 합성어 속에 보전되어 남았습니다. 'ㅄ.ㄹ'이 '쌀'로 변했으니 '좁쌀, 찹쌀, 멥쌀'도 '조쌀, 찰쌀, 메쌀'로 변했다고 주장하면 맞겠습니까? 실은 이와 똑 같은 주장이 '하ㄴ.님'은 '하느님'이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이것은 언어 현실을 잘 몰라서 아니면 무시하고 이론적으로만 교정하는 행위입니다. 애국가의 '하느님이 보우하사'도 제 기억으로는 애초에 '하나님이 보우하사'였습니다. 요약컨대, '하느님'은 인위적이며 피상적인 교정을 거친 어형이고, '하나님'은 '하ㄴ.님'이 저절로 변해서 내려온 역사적이며 정통적인 어형입니다.
성경 번역의 역사에서: '하나님'에 유일신의 뜻이 있다고 본 것은 셈씨(수사) 'ㅎ.낳'이 '하나'로 변한 결과 어원의 차이를 인식하지 못했거나 짐짓 부인하고 신학적인 개념을 덧붙인 성경 번역자들의 민간 어원론입니다. 비전문가의 어원 판단이 전문가의 연구 결과와 일치하는 것은 덮어 두고 일치하지 않는 것을 굳이 드러내어 '민간 어원'(falk/false etymology)이라고 부르니 괘씸한 노릇입니다만, 이러나 저러나 언어 일반의 장구한 변화나 변천은 언어학자가 아니라 일반 언중이 주도하는 것입니다. 이치에 맞은 것도 있고 이치에 어긋나는 것도 얼마든지 있는 것이 언어 현상이고 언어 변화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하느님'의 갈등은 공동 번역 이후에 부각된 것으로 생각됩니다. 종교적인 전쟁과 타협의 산물로 보인다는 점에서 특이한 사례입니다. 천주교인은 천주님이라 불러 왔지 하느님이라고 부르지 않았기에 '천주교'였습니다. 예수교인의 '하나님'을 그냥 받아들이기 어려워서 조금 손질하고 받아들인 것이 '하느님'이 아닌가 합니다. '하나님'에 유일신의 뜻이 있다는 신념에 동의할 수 없었던 예수교 번역자들의 언어적인, 그러나 언어학적이지는 못한 합리주의에도 잘 맞아서 절묘한 절충이 성립했던 것 같습니다.
주관적인 판정
'여호와'를 '야훼/야웨'로 교정하는 것이나 '하나님'을 '하느님'으로 교정하는 짓이나 하나님은 웃으실 것으로 보입니다. 학자들의 편협한 연구 결과가 달라지면 어느 날부터는 '하늘님'이나 '하노님'으로 불러야 한다고 교정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웨'의 획이 너무 많으니 음도 같은 '외'로 바꾸어서 '야회/야외'로 적으면 좋겠다는 제안이 어느 구석에서 나올지도 모릅니다. 변변치 않은 인간 지식과 불순한 인간 정치로 창조주의 이름을 이리 불렀다 저리 불렀다 하는 행위는 아주 불손하게 보입니다. 이에 비하면 '하나님'에 유일신의 뜻이 있다는 해석은 학문적인 지식과 맞지 않지만 결코 저들처럼 불순하고 불손하지 않습니다. 한국말의 변천에 따라 생긴 어형 충돌(동음화)을 이용해서 하나님이 오직 한 분이신 본성을 강조하는 갸륵한 신앙 행위로 받아 주셨을 것입니다. 아뭏든 결과적으로 예수교인 대다수는 변함 없이 '하나님'을 부르는데, 천주교인들만 오래도록 마음이나 입에 익었던 '천주님'을 '하느님'으로 바꾸느라고 경건 생활에 적지 않은 부담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