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 6.25로 한국교회의 정통성이 백영희로 이어지는 내부적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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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13 21:24
3. 6․25 전란이 가지는 또 하나의 교회사적 의미
1) 사건이 아니라 시대적 환란으로서 가지는 신사참배의 의미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신사참배 환란은 훗날 그렇게 큰 의미가 있을 것으로 생각지 않았던 단순한 환란이었는데 하나님은 한국 교회사의 중심에 이 사건을 두고 외형적 교회사와 내면적 교회사를 따로 진행시키고 계셨습니다. 이 과정에서 고신의 의미, 그리고 고신내의 주남선의 경건의 의미, 그리고 백영희로 이어지는 한국 교회의 진리 노선을 살펴보았습니다.
신사참배가 한국 교회의 정통성을 옮기거나 혹은 정통 교회에서 배제될 교회를 나눌 정도의 환란이었다는 것이 이 글의 시각이며 이런 전제 하에서 고신과 백영희로 이어지는 한국 교회사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신사참배라는 단일 사안에 대하여 지나치게 확대 해석 또는 포화상태 이상의 가치를 부여한 것이 아니냐는 반론은 쉽게 제기 될 수가 있습니다. 한국 교회가 100여년을 지나면서 왜 굳이 신사참배라는 단일 환란이 그렇게 큰 의미를 가져야 하겠는가 라는 점을 살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자기에게 유리한 환란은 대환란으로 역사적 의미를 부여하고 불리한 환란은 헤프닝으로 취급하는 것은 너무도 흔한 일입니다. 그러나 이런 이해관계를 계산하기 전 신앙 본질적으로 그렇게 규정치 않을 수 없는 이유는 분명하여야 할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6․25라는 사건은 신사참배라는 문제가 일반적으로 흔히 있는 사건과는 달리 교회사를 특별하게 규정하지 않을 수 없도록 마련된 사건임을 쉽게 알 수 있다고 봅니다. 따라서 6․25의 모습으로 다시 나타난 신사참배를 보며, 우리는 그 환란의 성격을 확연하게 규정할 수 있고 그 규정에 따라 교회사적 의미를 줄 수가 있습니다.
2) 신사참배에 이어 6․25에서도 패할 수 밖에 없는 한국 교회
⑴ 환란에 대한 성경적 의미
환란이란, 현실을 어렵게 느끼는 개인의 감정을 기준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그러나 환란을 본질적으로 접근한다면 시련을 통한 시험이라고 하는 것이 정확합니다. 불순물을 불로 태워 없애며 순금을 뽑아내듯 인간적 요소를 태워 없애도록 하나님은 현실이란 용광로를 주시고 마침내 순전한 믿음만을 가지게 하는 것이 바로 환란의 성질입니다. 그리고 이런 연단의 기회는 기간이 주어지고 또 그 기간이 끝나면 연단을 바로 했는지 합격과 불합격을 판정키 위해 다른 환란이 주어집니다. 이런 환란을 시험이라고 하며 이 시험으로 개인은 개인 신앙 판정을 받게 되고 교회는 교회의 신앙 판정을 받게 됩니다.
신사참배라는 사건은 그 자체만으로도 한국 교회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이 사건은 5년 뒤 6․25라는 환란에 의하여 그 성격이 더욱 분명해지게 됩니다. 6․25는 신사참배와 함께 고난의 강도, 5년이란 시차 등의 외부 모습만 달랐을 뿐 그 환란들의 내용과 성격은 꼭 같았습니다. 굳이 비교를 하자면 신사참배로 확정된 한국 교회사의 정통성을 6․25가 한번 더 확인해 주고 확정시켜 준 사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두 환란은 그 성격과 내용을 이런 면에서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이 파악될 수 있어야 하고 또한 그 보충적 또는 후속적 환란이라는 연관성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바로 여기서 살피는 주안점입니다.
⑵ 신사참배와 6․25 두 환란에서 드러난 한국 교회의 세상주 의
신사참배는 2계명을 지키느냐는 문제였지만 그것보다는 세상을 붙들겠느냐 진리를 붙들겠느냐는 문제였습니다. 6․25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선교 50여년을 안팎으로 하여 하나님은 한국 교회에 그동안 충분히 배웠던 신앙노선을 시험했던 것입니다. 교회라는 간판 속에 진정한 교인이 되었는가, 교회라는 간판만 가지고 외형만 잡았을 뿐 속은 여전히 세상인가 라는 시험이었습니다. 이 두 시험을 통해 한국 교회는 두 번씩이나 세상을 잡았고 말씀을 버렸습니다. 심지어 신사참배에서 승리했던 이들도 다시 만난 환란 속에서는 패전하여 신사참배 승리가 한 때의 승리였을 뿐 그들 속에 진정 세상을 버리고 말씀만으로 사는 사람들은 아님을 보이게 되었습니다.
신사참배에서 또 6.25에서 신앙을 지키지 못한 것은 한국 교회의 범죄 본질이 바로 세상주의라는 것입니다. 평소에는 이런 주범이 뿌리를 박고 있으면서도 얼마든지 신앙으로 표방하고 활동을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시기마다 생사를 나누는 환란으로 그 교회의 본질이 어느 것이었느냐는 것을 시험했고 그 뿌리가 세상에 있던 한국 교회의 신앙 실패는 당연했던 것입니다.
즉, 어느 시대 교회나 마찬가지지만 아주 간단한 시험문제로 한국교회는 하나님을 모시고 계속 자라나갈 교회냐 아니면 하나님을 모시고 자라 나오다가 세상으로 다시 돌아가 버린 교회냐 하는 갈림길에서 세상을 택했습니다. 교회가 평소에는 하나님을 따르다가 마지막은 인간을 따르고, 교회가 평소에는 말씀대로 사는 것 같지만 다급하면 세상을 챙기는 이것으로 교회의 정체성을 확정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한국 교회는 100여년 역사 속에서 그 중반부에 신사참배와 6․25 전쟁이라는 두 가지 환란이 겹치면서 확실하게 정통성의 소재를 한번 확인하게 됩니다. 한국 교회 전체 속에서 고신이라는 이름으로 정통성은 한번 확인이 되었고 이것이 6.25를 통해 다시 고신 속에서도 백영희목사님으로 신앙의 정통성이 확인된다는 의미가 됩니다. 6․25 전쟁을 신앙으로 승리한 사람은 고신에서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6․25 전쟁에서 신앙으로 승리한 사람은 백목사님 신앙노선에 관련 있는 주목사님 등 몇분 뿐이기 때문입니다.
3) 6.25가 보여준 신사참배 승리자들의 진정한 신앙 모습
⑴ 공산정권 하에서 보여준 신사참배 승리자들의 모습
이미 교회의 정통성은 신사참배와 그후 회개 운동을 통해서 고신교단으로 소재 파악이 되고 있음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구원이라는 천주교와 달리 성경대로 믿는 우리는 한번 정통성을 가졌다고 해도 다음 시험에서는 베드로처럼 실패할 수 있음을 압니다. 6.25 공산치하는 신사참배를 실패했던 이들에게는 재확인을, 그리고 신사참배 승리자들에게는 그 승리의 의미를 재분류 재분석하고 있었습니다.
신사참배 승리를 신사참배라는 사건에서 승리한 이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에게는 신사참배에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크게 닥친 6.25에서는 실패하게 됩니다. 신사참배 승리가 신사참배 승리로 끝나지 않고 어떤 세상주의라도 교회 안에서는 배제시키고 오직 말씀에만 붙들린 사람으로 신사참배를 이긴 이들도 있었습니다. 전자의 경우는 신사참배라는 모습과 고통을 가진 세상주의에게는 이겼으나 다른 고통 다른 모습의 세상주의에게는 실패할 수 있는 이들입니다. 그러나 후자의 경우는 어떤 모습 어떤 종류의 세상주의라도 세상주의라는 자체가 교회에는 발을 딛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는 이들이고 이들은 신사참배를 세상주의의 일점8로 보았고 그래서 세상주의를 이긴 신앙인들이었습니다. 전자의 경우 신사참배와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급박하고 현장 즉결 처분을 해버리는 공산주의 앞에서는 여지없이 실패하였습니다. 6.25전란은 신사참배 승리자들에게 그들이 가진 세상주의 단절이 어떤 차원이며 어떤 의미라는 것을 분석해 보는 성격이 되었습니다.
⑵ 6․25 이후 세상주의로 매진했던 고신 지도부의 행적
신사참배 실패자들의 진정한 실패시점은 해방 시점이 아니라 6․25였습니다. 신사참배 승리자들의 승리가 진정한 신앙 승리의 본질을 가졌느냐는 것은 해방 시점에서 확정된 것이 아니라 6.25에서 확정되어졌습니다. 6․25전란이 신사참배 실패자들이 주도한 지역을 완전히 쓸고 가면서 아무리 눈이 어두운 사람이라도 신사참배 실패자들의 실상을 볼 수 있게 한 것같이, 6․25이후 고신 지도부의 행적은 불신자들도 비난하고 알 수 있도록 교권일편으로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신사참배의 승리가 세상주의를 본질적으로 승리했던 승리가 아니었음을 6․25를 통해 보이셨고, 6․25에서 나타난 고신의 실패는 6․25 이후 교권을 위해 무한 투쟁으로 나가는 모습에서 고신의 주체도 역시 세상주의였음을 확정적으로 보여준 표시판이었습니다. 신사참배 승리로 한국 교회의 정통성을 소유하게 되었던 것은 임시 보관이었던 것입니다.
⑶ 다시 나타난 신사참배, 6.25와 그후 신앙 행적에서 확인되는 한국 교회의 정통성
일본 식민지 탄압 속에서 생사를 넘나든 종류는 비단 교회뿐이 아닙니다. 독립을 위한 애국주의, 공산혁명을 전제로 한 빨치산 항일운동, 민족 자긍심에 근거한 한민족 제일주의, 정치적 입지를 생각하고 움직인 정치주의, 제국주의에 반대한 자연주의까지 그 종류는 다양합니다. 이들도 일본 식민지 탄압을 같은 고통 속에서 견디고 또 죽기도 하였습니다. 비록 신사참배를 거부하여 투옥은 되었지만, 교회의 교권이 목적일 수도 있고 자신이 주장했던 설교의 언행일치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진정한 모습은 훗날이 쉽게 알려줍니다.
6․25는 신사참배 승리자들에게도 넘어갈 수 없는 환란임을 보였고, 그들의 한계점을 보여준 6․25는 신사참배의 본론일 수 있었습니다. 6․25는 신사참배 승리자들의 등급을 분리하며 향후 한국 교회의 촛대가 어디를 향할지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즉 끝나지 않았던 신사참배였으니 6.25는 다시 나타난 신사참배 환란이었습니다. 8․15 해방으로서 신사참배가 끝나고 이때까지 승리한 이들은 다시는 패전 없는 승리자인 줄로 착각하였기 때문에 한국 교회에 영원한 승리자로 자임하는 실수를 했었고, 끝나지 않았던 후편 환란이 엄습하여 성급히 승리자로 착각했던 이들까지 전부 신사참배의 실질적 실패자로 도장을 찍었던 사건이 바로 6․25라고 하겠습니다.
이 모든 과정에서 오직 말씀만을 붙들고 세상주의란 어떤 때 어떤 강도로 어떤 모습으로 닥쳐와도 초월했던 이들이 손양원, 주남선, 백영희였습니다. 손양원은 특수기관 목회자로 그 신앙의 계통이 전달되지 않고 있습니다. 엄밀하게 전달되는 계통이 있다면 애양원교회에서 분리 개척했던 손목사님의 사모님과 그를 따르는 몇몇 교인을 통해 현재 백영희 신앙노선 교회로 소속하여 있습니다. 주남선 역시 그 신앙의 계대는 오직 백영희 신앙노선 교회에서만 확인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교회법적으로 확인되는 정통성보다 교회사적으로 하나님이 세우는 촛대의 향방을 실질적으로 추적하는 시각에서 본다면 6.25를 통해 확인되는 모든 신앙주의의 흐름은 백영희로 집적되고 있습니다. 또한 백영희의 6.25 이후 40여년 여생의 걸음을 통해서 이는 확인되고 있습니다. 뿌리로 나무 종류를 알기는 어려우나 맺힌 열매로 뿌리의 종류를 확인하기는 너무도 쉽다는 이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1) 사건이 아니라 시대적 환란으로서 가지는 신사참배의 의미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신사참배 환란은 훗날 그렇게 큰 의미가 있을 것으로 생각지 않았던 단순한 환란이었는데 하나님은 한국 교회사의 중심에 이 사건을 두고 외형적 교회사와 내면적 교회사를 따로 진행시키고 계셨습니다. 이 과정에서 고신의 의미, 그리고 고신내의 주남선의 경건의 의미, 그리고 백영희로 이어지는 한국 교회의 진리 노선을 살펴보았습니다.
신사참배가 한국 교회의 정통성을 옮기거나 혹은 정통 교회에서 배제될 교회를 나눌 정도의 환란이었다는 것이 이 글의 시각이며 이런 전제 하에서 고신과 백영희로 이어지는 한국 교회사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신사참배라는 단일 사안에 대하여 지나치게 확대 해석 또는 포화상태 이상의 가치를 부여한 것이 아니냐는 반론은 쉽게 제기 될 수가 있습니다. 한국 교회가 100여년을 지나면서 왜 굳이 신사참배라는 단일 환란이 그렇게 큰 의미를 가져야 하겠는가 라는 점을 살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자기에게 유리한 환란은 대환란으로 역사적 의미를 부여하고 불리한 환란은 헤프닝으로 취급하는 것은 너무도 흔한 일입니다. 그러나 이런 이해관계를 계산하기 전 신앙 본질적으로 그렇게 규정치 않을 수 없는 이유는 분명하여야 할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6․25라는 사건은 신사참배라는 문제가 일반적으로 흔히 있는 사건과는 달리 교회사를 특별하게 규정하지 않을 수 없도록 마련된 사건임을 쉽게 알 수 있다고 봅니다. 따라서 6․25의 모습으로 다시 나타난 신사참배를 보며, 우리는 그 환란의 성격을 확연하게 규정할 수 있고 그 규정에 따라 교회사적 의미를 줄 수가 있습니다.
2) 신사참배에 이어 6․25에서도 패할 수 밖에 없는 한국 교회
⑴ 환란에 대한 성경적 의미
환란이란, 현실을 어렵게 느끼는 개인의 감정을 기준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그러나 환란을 본질적으로 접근한다면 시련을 통한 시험이라고 하는 것이 정확합니다. 불순물을 불로 태워 없애며 순금을 뽑아내듯 인간적 요소를 태워 없애도록 하나님은 현실이란 용광로를 주시고 마침내 순전한 믿음만을 가지게 하는 것이 바로 환란의 성질입니다. 그리고 이런 연단의 기회는 기간이 주어지고 또 그 기간이 끝나면 연단을 바로 했는지 합격과 불합격을 판정키 위해 다른 환란이 주어집니다. 이런 환란을 시험이라고 하며 이 시험으로 개인은 개인 신앙 판정을 받게 되고 교회는 교회의 신앙 판정을 받게 됩니다.
신사참배라는 사건은 그 자체만으로도 한국 교회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이 사건은 5년 뒤 6․25라는 환란에 의하여 그 성격이 더욱 분명해지게 됩니다. 6․25는 신사참배와 함께 고난의 강도, 5년이란 시차 등의 외부 모습만 달랐을 뿐 그 환란들의 내용과 성격은 꼭 같았습니다. 굳이 비교를 하자면 신사참배로 확정된 한국 교회사의 정통성을 6․25가 한번 더 확인해 주고 확정시켜 준 사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두 환란은 그 성격과 내용을 이런 면에서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이 파악될 수 있어야 하고 또한 그 보충적 또는 후속적 환란이라는 연관성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바로 여기서 살피는 주안점입니다.
⑵ 신사참배와 6․25 두 환란에서 드러난 한국 교회의 세상주 의
신사참배는 2계명을 지키느냐는 문제였지만 그것보다는 세상을 붙들겠느냐 진리를 붙들겠느냐는 문제였습니다. 6․25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선교 50여년을 안팎으로 하여 하나님은 한국 교회에 그동안 충분히 배웠던 신앙노선을 시험했던 것입니다. 교회라는 간판 속에 진정한 교인이 되었는가, 교회라는 간판만 가지고 외형만 잡았을 뿐 속은 여전히 세상인가 라는 시험이었습니다. 이 두 시험을 통해 한국 교회는 두 번씩이나 세상을 잡았고 말씀을 버렸습니다. 심지어 신사참배에서 승리했던 이들도 다시 만난 환란 속에서는 패전하여 신사참배 승리가 한 때의 승리였을 뿐 그들 속에 진정 세상을 버리고 말씀만으로 사는 사람들은 아님을 보이게 되었습니다.
신사참배에서 또 6.25에서 신앙을 지키지 못한 것은 한국 교회의 범죄 본질이 바로 세상주의라는 것입니다. 평소에는 이런 주범이 뿌리를 박고 있으면서도 얼마든지 신앙으로 표방하고 활동을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시기마다 생사를 나누는 환란으로 그 교회의 본질이 어느 것이었느냐는 것을 시험했고 그 뿌리가 세상에 있던 한국 교회의 신앙 실패는 당연했던 것입니다.
즉, 어느 시대 교회나 마찬가지지만 아주 간단한 시험문제로 한국교회는 하나님을 모시고 계속 자라나갈 교회냐 아니면 하나님을 모시고 자라 나오다가 세상으로 다시 돌아가 버린 교회냐 하는 갈림길에서 세상을 택했습니다. 교회가 평소에는 하나님을 따르다가 마지막은 인간을 따르고, 교회가 평소에는 말씀대로 사는 것 같지만 다급하면 세상을 챙기는 이것으로 교회의 정체성을 확정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한국 교회는 100여년 역사 속에서 그 중반부에 신사참배와 6․25 전쟁이라는 두 가지 환란이 겹치면서 확실하게 정통성의 소재를 한번 확인하게 됩니다. 한국 교회 전체 속에서 고신이라는 이름으로 정통성은 한번 확인이 되었고 이것이 6.25를 통해 다시 고신 속에서도 백영희목사님으로 신앙의 정통성이 확인된다는 의미가 됩니다. 6․25 전쟁을 신앙으로 승리한 사람은 고신에서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6․25 전쟁에서 신앙으로 승리한 사람은 백목사님 신앙노선에 관련 있는 주목사님 등 몇분 뿐이기 때문입니다.
3) 6.25가 보여준 신사참배 승리자들의 진정한 신앙 모습
⑴ 공산정권 하에서 보여준 신사참배 승리자들의 모습
이미 교회의 정통성은 신사참배와 그후 회개 운동을 통해서 고신교단으로 소재 파악이 되고 있음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구원이라는 천주교와 달리 성경대로 믿는 우리는 한번 정통성을 가졌다고 해도 다음 시험에서는 베드로처럼 실패할 수 있음을 압니다. 6.25 공산치하는 신사참배를 실패했던 이들에게는 재확인을, 그리고 신사참배 승리자들에게는 그 승리의 의미를 재분류 재분석하고 있었습니다.
신사참배 승리를 신사참배라는 사건에서 승리한 이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에게는 신사참배에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크게 닥친 6.25에서는 실패하게 됩니다. 신사참배 승리가 신사참배 승리로 끝나지 않고 어떤 세상주의라도 교회 안에서는 배제시키고 오직 말씀에만 붙들린 사람으로 신사참배를 이긴 이들도 있었습니다. 전자의 경우는 신사참배라는 모습과 고통을 가진 세상주의에게는 이겼으나 다른 고통 다른 모습의 세상주의에게는 실패할 수 있는 이들입니다. 그러나 후자의 경우는 어떤 모습 어떤 종류의 세상주의라도 세상주의라는 자체가 교회에는 발을 딛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는 이들이고 이들은 신사참배를 세상주의의 일점8로 보았고 그래서 세상주의를 이긴 신앙인들이었습니다. 전자의 경우 신사참배와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급박하고 현장 즉결 처분을 해버리는 공산주의 앞에서는 여지없이 실패하였습니다. 6.25전란은 신사참배 승리자들에게 그들이 가진 세상주의 단절이 어떤 차원이며 어떤 의미라는 것을 분석해 보는 성격이 되었습니다.
⑵ 6․25 이후 세상주의로 매진했던 고신 지도부의 행적
신사참배 실패자들의 진정한 실패시점은 해방 시점이 아니라 6․25였습니다. 신사참배 승리자들의 승리가 진정한 신앙 승리의 본질을 가졌느냐는 것은 해방 시점에서 확정된 것이 아니라 6.25에서 확정되어졌습니다. 6․25전란이 신사참배 실패자들이 주도한 지역을 완전히 쓸고 가면서 아무리 눈이 어두운 사람이라도 신사참배 실패자들의 실상을 볼 수 있게 한 것같이, 6․25이후 고신 지도부의 행적은 불신자들도 비난하고 알 수 있도록 교권일편으로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신사참배의 승리가 세상주의를 본질적으로 승리했던 승리가 아니었음을 6․25를 통해 보이셨고, 6․25에서 나타난 고신의 실패는 6․25 이후 교권을 위해 무한 투쟁으로 나가는 모습에서 고신의 주체도 역시 세상주의였음을 확정적으로 보여준 표시판이었습니다. 신사참배 승리로 한국 교회의 정통성을 소유하게 되었던 것은 임시 보관이었던 것입니다.
⑶ 다시 나타난 신사참배, 6.25와 그후 신앙 행적에서 확인되는 한국 교회의 정통성
일본 식민지 탄압 속에서 생사를 넘나든 종류는 비단 교회뿐이 아닙니다. 독립을 위한 애국주의, 공산혁명을 전제로 한 빨치산 항일운동, 민족 자긍심에 근거한 한민족 제일주의, 정치적 입지를 생각하고 움직인 정치주의, 제국주의에 반대한 자연주의까지 그 종류는 다양합니다. 이들도 일본 식민지 탄압을 같은 고통 속에서 견디고 또 죽기도 하였습니다. 비록 신사참배를 거부하여 투옥은 되었지만, 교회의 교권이 목적일 수도 있고 자신이 주장했던 설교의 언행일치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진정한 모습은 훗날이 쉽게 알려줍니다.
6․25는 신사참배 승리자들에게도 넘어갈 수 없는 환란임을 보였고, 그들의 한계점을 보여준 6․25는 신사참배의 본론일 수 있었습니다. 6․25는 신사참배 승리자들의 등급을 분리하며 향후 한국 교회의 촛대가 어디를 향할지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즉 끝나지 않았던 신사참배였으니 6.25는 다시 나타난 신사참배 환란이었습니다. 8․15 해방으로서 신사참배가 끝나고 이때까지 승리한 이들은 다시는 패전 없는 승리자인 줄로 착각하였기 때문에 한국 교회에 영원한 승리자로 자임하는 실수를 했었고, 끝나지 않았던 후편 환란이 엄습하여 성급히 승리자로 착각했던 이들까지 전부 신사참배의 실질적 실패자로 도장을 찍었던 사건이 바로 6․25라고 하겠습니다.
이 모든 과정에서 오직 말씀만을 붙들고 세상주의란 어떤 때 어떤 강도로 어떤 모습으로 닥쳐와도 초월했던 이들이 손양원, 주남선, 백영희였습니다. 손양원은 특수기관 목회자로 그 신앙의 계통이 전달되지 않고 있습니다. 엄밀하게 전달되는 계통이 있다면 애양원교회에서 분리 개척했던 손목사님의 사모님과 그를 따르는 몇몇 교인을 통해 현재 백영희 신앙노선 교회로 소속하여 있습니다. 주남선 역시 그 신앙의 계대는 오직 백영희 신앙노선 교회에서만 확인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교회법적으로 확인되는 정통성보다 교회사적으로 하나님이 세우는 촛대의 향방을 실질적으로 추적하는 시각에서 본다면 6.25를 통해 확인되는 모든 신앙주의의 흐름은 백영희로 집적되고 있습니다. 또한 백영희의 6.25 이후 40여년 여생의 걸음을 통해서 이는 확인되고 있습니다. 뿌리로 나무 종류를 알기는 어려우나 맺힌 열매로 뿌리의 종류를 확인하기는 너무도 쉽다는 이치가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