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25가 보여준 신사참배 승리자들의 진정한 신앙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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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13 21:24
3) 6.25가 보여준 신사참배 승리자들의 진정한 신앙 모습
⑴ 공산정권 하에서 보여준 신사참배 승리자들의 모습
이미 교회의 정통성은 신사참배와 그후 회개 운동을 통해서 고신교단으로 소재 파악이 되고 있음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구원이라는 천주교와 달리 성경대로 믿는 우리는 한번 정통성을 가졌다고 해도 다음 시험에서는 베드로처럼 실패할 수 있음을 압니다. 6.25 공산치하는 신사참배를 실패했던 이들에게는 재확인을, 그리고 신사참배 승리자들에게는 그 승리의 의미를 재분류 재분석하고 있었습니다.
신사참배 승리를 신사참배라는 사건에서 승리한 이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에게는 신사참배에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크게 닥친 6.25에서는 실패하게 됩니다. 신사참배 승리가 신사참배 승리로 끝나지 않고 어떤 세상주의라도 교회 안에서는 배제시키고 오직 말씀에만 붙들린 사람으로 신사참배를 이긴 이들도 있었습니다. 전자의 경우는 신사참배라는 모습과 고통을 가진 세상주의에게는 이겼으나 다른 고통 다른 모습의 세상주의에게는 실패할 수 있는 이들입니다. 그러나 후자의 경우는 어떤 모습 어떤 종류의 세상주의라도 세상주의라는 자체가 교회에는 발을 딛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는 이들이고 이들은 신사참배를 세상주의의 일점8로 보았고 그래서 세상주의를 이긴 신앙인들이었습니다. 전자의 경우 신사참배와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급박하고 현장 즉결 처분을 해버리는 공산주의 앞에서는 여지없이 실패하였습니다. 6.25전란은 신사참배 승리자들에게 그들이 가진 세상주의 단절이 어떤 차원이며 어떤 의미라는 것을 분석해 보는 성격이 되었습니다.
⑵ 6․25 이후 세상주의로 매진했던 고신 지도부의 행적
신사참배 실패자들의 진정한 실패시점은 해방 시점이 아니라 6․25였습니다. 신사참배 승리자들의 승리가 진정한 신앙 승리의 본질을 가졌느냐는 것은 해방 시점에서 확정된 것이 아니라 6.25에서 확정되어졌습니다. 6․25전란이 신사참배 실패자들이 주도한 지역을 완전히 쓸고 가면서 아무리 눈이 어두운 사람이라도 신사참배 실패자들의 실상을 볼 수 있게 한 것같이, 6․25이후 고신 지도부의 행적은 불신자들도 비난하고 알 수 있도록 교권일편으로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신사참배의 승리가 세상주의를 본질적으로 승리했던 승리가 아니었음을 6․25를 통해 보이셨고, 6․25에서 나타난 고신의 실패는 6․25 이후 교권을 위해 무한 투쟁으로 나가는 모습에서 고신의 주체도 역시 세상주의였음을 확정적으로 보여준 표시판이었습니다. 신사참배 승리로 한국 교회의 정통성을 소유하게 되었던 것은 임시 보관이었던 것입니다.
⑶ 다시 나타난 신사참배, 6.25와 그후 신앙 행적에서 확인되는 한국 교회의 정통성
일본 식민지 탄압 속에서 생사를 넘나든 종류는 비단 교회뿐이 아닙니다. 독립을 위한 애국주의, 공산혁명을 전제로 한 빨치산 항일운동, 민족 자긍심에 근거한 한민족 제일주의, 정치적 입지를 생각하고 움직인 정치주의, 제국주의에 반대한 자연주의까지 그 종류는 다양합니다. 이들도 일본 식민지 탄압을 같은 고통 속에서 견디고 또 죽기도 하였습니다. 비록 신사참배를 거부하여 투옥은 되었지만, 교회의 교권이 목적일 수도 있고 자신이 주장했던 설교의 언행일치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진정한 모습은 훗날이 쉽게 알려줍니다.
6․25는 신사참배 승리자들에게도 넘어갈 수 없는 환란임을 보였고, 그들의 한계점을 보여준 6․25는 신사참배의 본론일 수 있었습니다. 6․25는 신사참배 승리자들의 등급을 분리하며 향후 한국 교회의 촛대가 어디를 향할지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즉 끝나지 않았던 신사참배였으니 6.25는 다시 나타난 신사참배 환란이었습니다. 8․15 해방으로서 신사참배가 끝나고 이때까지 승리한 이들은 다시는 패전 없는 승리자인 줄로 착각하였기 때문에 한국 교회에 영원한 승리자로 자임하는 실수를 했었고, 끝나지 않았던 후편 환란이 엄습하여 성급히 승리자로 착각했던 이들까지 전부 신사참배의 실질적 실패자로 도장을 찍었던 사건이 바로 6․25라고 하겠습니다.
이 모든 과정에서 오직 말씀만을 붙들고 세상주의란 어떤 때 어떤 강도로 어떤 모습으로 닥쳐와도 초월했던 이들이 손양원, 주남선, 백영희였습니다. 손양원은 특수기관 목회자로 그 신앙의 계통이 전달되지 않고 있습니다. 엄밀하게 전달되는 계통이 있다면 애양원교회에서 분리 개척했던 손목사님의 사모님과 그를 따르는 몇몇 교인을 통해 현재 백영희 신앙노선 교회로 소속하여 있습니다. 주남선 역시 그 신앙의 계대는 오직 백영희 신앙노선 교회에서만 확인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교회법적으로 확인되는 정통성보다 교회사적으로 하나님이 세우는 촛대의 향방을 실질적으로 추적하는 시각에서 본다면 6.25를 통해 확인되는 모든 신앙주의의 흐름은 백영희로 집적되고 있습니다. 또한 백영희의 6.25 이후 40여년 여생의 걸음을 통해서 이는 확인되고 있습니다. 뿌리로 나무 종류를 알기는 어려우나 맺힌 열매로 뿌리의 종류를 확인하기는 너무도 쉽다는 이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⑴ 공산정권 하에서 보여준 신사참배 승리자들의 모습
이미 교회의 정통성은 신사참배와 그후 회개 운동을 통해서 고신교단으로 소재 파악이 되고 있음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구원이라는 천주교와 달리 성경대로 믿는 우리는 한번 정통성을 가졌다고 해도 다음 시험에서는 베드로처럼 실패할 수 있음을 압니다. 6.25 공산치하는 신사참배를 실패했던 이들에게는 재확인을, 그리고 신사참배 승리자들에게는 그 승리의 의미를 재분류 재분석하고 있었습니다.
신사참배 승리를 신사참배라는 사건에서 승리한 이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에게는 신사참배에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크게 닥친 6.25에서는 실패하게 됩니다. 신사참배 승리가 신사참배 승리로 끝나지 않고 어떤 세상주의라도 교회 안에서는 배제시키고 오직 말씀에만 붙들린 사람으로 신사참배를 이긴 이들도 있었습니다. 전자의 경우는 신사참배라는 모습과 고통을 가진 세상주의에게는 이겼으나 다른 고통 다른 모습의 세상주의에게는 실패할 수 있는 이들입니다. 그러나 후자의 경우는 어떤 모습 어떤 종류의 세상주의라도 세상주의라는 자체가 교회에는 발을 딛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는 이들이고 이들은 신사참배를 세상주의의 일점8로 보았고 그래서 세상주의를 이긴 신앙인들이었습니다. 전자의 경우 신사참배와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급박하고 현장 즉결 처분을 해버리는 공산주의 앞에서는 여지없이 실패하였습니다. 6.25전란은 신사참배 승리자들에게 그들이 가진 세상주의 단절이 어떤 차원이며 어떤 의미라는 것을 분석해 보는 성격이 되었습니다.
⑵ 6․25 이후 세상주의로 매진했던 고신 지도부의 행적
신사참배 실패자들의 진정한 실패시점은 해방 시점이 아니라 6․25였습니다. 신사참배 승리자들의 승리가 진정한 신앙 승리의 본질을 가졌느냐는 것은 해방 시점에서 확정된 것이 아니라 6.25에서 확정되어졌습니다. 6․25전란이 신사참배 실패자들이 주도한 지역을 완전히 쓸고 가면서 아무리 눈이 어두운 사람이라도 신사참배 실패자들의 실상을 볼 수 있게 한 것같이, 6․25이후 고신 지도부의 행적은 불신자들도 비난하고 알 수 있도록 교권일편으로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신사참배의 승리가 세상주의를 본질적으로 승리했던 승리가 아니었음을 6․25를 통해 보이셨고, 6․25에서 나타난 고신의 실패는 6․25 이후 교권을 위해 무한 투쟁으로 나가는 모습에서 고신의 주체도 역시 세상주의였음을 확정적으로 보여준 표시판이었습니다. 신사참배 승리로 한국 교회의 정통성을 소유하게 되었던 것은 임시 보관이었던 것입니다.
⑶ 다시 나타난 신사참배, 6.25와 그후 신앙 행적에서 확인되는 한국 교회의 정통성
일본 식민지 탄압 속에서 생사를 넘나든 종류는 비단 교회뿐이 아닙니다. 독립을 위한 애국주의, 공산혁명을 전제로 한 빨치산 항일운동, 민족 자긍심에 근거한 한민족 제일주의, 정치적 입지를 생각하고 움직인 정치주의, 제국주의에 반대한 자연주의까지 그 종류는 다양합니다. 이들도 일본 식민지 탄압을 같은 고통 속에서 견디고 또 죽기도 하였습니다. 비록 신사참배를 거부하여 투옥은 되었지만, 교회의 교권이 목적일 수도 있고 자신이 주장했던 설교의 언행일치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진정한 모습은 훗날이 쉽게 알려줍니다.
6․25는 신사참배 승리자들에게도 넘어갈 수 없는 환란임을 보였고, 그들의 한계점을 보여준 6․25는 신사참배의 본론일 수 있었습니다. 6․25는 신사참배 승리자들의 등급을 분리하며 향후 한국 교회의 촛대가 어디를 향할지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즉 끝나지 않았던 신사참배였으니 6.25는 다시 나타난 신사참배 환란이었습니다. 8․15 해방으로서 신사참배가 끝나고 이때까지 승리한 이들은 다시는 패전 없는 승리자인 줄로 착각하였기 때문에 한국 교회에 영원한 승리자로 자임하는 실수를 했었고, 끝나지 않았던 후편 환란이 엄습하여 성급히 승리자로 착각했던 이들까지 전부 신사참배의 실질적 실패자로 도장을 찍었던 사건이 바로 6․25라고 하겠습니다.
이 모든 과정에서 오직 말씀만을 붙들고 세상주의란 어떤 때 어떤 강도로 어떤 모습으로 닥쳐와도 초월했던 이들이 손양원, 주남선, 백영희였습니다. 손양원은 특수기관 목회자로 그 신앙의 계통이 전달되지 않고 있습니다. 엄밀하게 전달되는 계통이 있다면 애양원교회에서 분리 개척했던 손목사님의 사모님과 그를 따르는 몇몇 교인을 통해 현재 백영희 신앙노선 교회로 소속하여 있습니다. 주남선 역시 그 신앙의 계대는 오직 백영희 신앙노선 교회에서만 확인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교회법적으로 확인되는 정통성보다 교회사적으로 하나님이 세우는 촛대의 향방을 실질적으로 추적하는 시각에서 본다면 6.25를 통해 확인되는 모든 신앙주의의 흐름은 백영희로 집적되고 있습니다. 또한 백영희의 6.25 이후 40여년 여생의 걸음을 통해서 이는 확인되고 있습니다. 뿌리로 나무 종류를 알기는 어려우나 맺힌 열매로 뿌리의 종류를 확인하기는 너무도 쉽다는 이치가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