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베드로의 순교를 그대로 볼 수 있는 백목사님의 순교 과정

주제별 정리      

                   ▒ 6.베드로의 순교를 그대로 볼 수 있는 백목사님의 순교 과정

서기 0 9
6. 순교로 마감한 생애

1) 그의 순교는 예고되고 있었습니다.

백목사님 순교는 1989. 8. 27.이었습니다. 그러나 1988. 8.부터는 매사를 다음 해의 순교에 두고 모든 일정을 맞추어 나갔습니다. 1988년 8월 집회 시에는 과거 집회 때 빠짐없이 약속했던 다음해 집회 약속을 하지 않았습니다. 1988년 12월 성탄절은 마지막 성탄절이라며 행사를 준비했습니다. 1989년 1월 서부교회 성찬식과 3월의 총공회 성찬식을 마지막 성찬이라며 진행했습니다. 손으로 다 꼽을 수 없을 만큼 마지막 점검을 해나갔기 때문에 목회연구소 직원들은 1989년 신년부터 장례절차를 세밀하게 계획하고 기록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2) 1989. 5. 21. 설교의 의미

여기 소개하는 1989. 5. 21. 설교는 순교 3개월 전, 베드로가 순교를 눈 앞에 두고 로마를 빠져나간 실수를 막으시려고 주님이 백목사님께 보여주신 계시 때문에 했던 설교입니다.

교회 역사는 베드로가 한 번 잘못 생각하여 로마를 빠져나오다 주님을 만났고, 즉시 돌아서서 순교했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1989. 5. 21. 순교 3개월 전 백목사님은 꿈속에서 주님이 보여주는 계시를 보았습니다. 생사를 초월하고 살아왔던 평생이었으나 사람인지라 한 번 잘못 깨달으면 베드로와 같이 눈 앞에 닥친 순교를 놓칠 수 있는 것입니다. 백목사님을 순교로 데려가시려는 주님은 순간의 생각 한 번도 그냥 두지 않고 붙들어 그를 데려갔습니다. 그리고 1989. 8. 16. 마지막 주일공과 설교시 20여회나 '마지막으로 주일학생들에게 가르칠 것이 있다면'을 외쳤습니다.

백영희 목회설교록 자료에서 1989년 5월 21일 주일오전(본문 : 마 10:16-18)과 1989년 8월 27일 (본문 : 요1:7-13)을 참고해 보셨으면 합니다.

( 설교 소개 )

번호: 89052101
시일: 89년 5월 21일 주일오전
본문: 마10:16-18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 사람들을 삼가라 저희가 너희를 공회에 넘겨 주겠고 저희 회당에서 채찍질 하리라 또 너희가 나를 인하여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리니 이는 저희와 이방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 신앙의 성격 )

( ① 신앙이란 하나님의 뜻에 소유와 몸과 생명을 바치는 것 )

이 말씀은 잘 알고 있는 줄 압니다. 우리가 성경만이 우리 믿음의 법칙입니다. 어떻게 믿어야 하느냐 하는 데 대한 법칙은 신구약 성경 외에는 없습니다. 성신의 감화도 성경 안에서만 역사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 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바로 깨닫고 깨달은 하나님의 뜻이라면 자기의 소유도 몸도 생명도 다 투자하는 길입니다. 사람들이 소유도 귀중히 여기고 자기 몸도 귀중히 여기고 생명은 최고로 귀중히 여기는 것이 우리 사람들입니다. 이렇게 귀중히 여기는 것들을 내가 투자할 길이요 바칠 길입니다. 소유보다 하나님의 뜻이 더 귀하기 때문에 소유를 하나님의 뜻에 바치는 것이요, 또 자기의 몸과 생명보다 하나님의 뜻이 귀하기 때문에 자기의 소유와 몸과 생명을 하나님에게 바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신구약 성경에서 배워서 아는 것인데 이 성경에서 하나님의 뜻을 안 이 하나님의 뜻은 자기의 소유와 몸과 생명을 바칠 뜻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누구든지 자기 소유나 몸이나 생명보다 하나님의 뜻을 귀중히 여기는 사람들은 이것들을 하나님의 뜻에게 바치고 하나님의 뜻보다 이런 것들을 귀중히 여기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을 저버렸으면 저버렸지 자기의 이 세 가지 모든 소유나 몸이나 생명을 바칠 리가 없는 것입니다.

( ② 실제 바치는 데에서만 건설구원은 이루어짐 )

기독자의 건설구원은, 기본구원은 순전히 은혜로 받는 것이기 때문에 사람은 거기에 대해서 관심도 가질 필요 없고 알 필요도 없고 노력도 필요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로 거저 주시는 이 구원이니 이 구원은 너무도 그 가치가 커서 사람들의 요소의 무엇을 조그만큼이라도 거기에 접할 수 없어서 순전히 은혜되는 것이지 가치가 적어서 은혜로 주시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기본구원을 얻은 사람들이 영원한 나라에 가 가지고 기본구원을 얻은 자와 얻은 자의 차이가 되는 그 영광의 구원은 모두 다 우리들이 건설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가리켜서 건설구원이라, 집짓는 비유로도 했고 또 성전 건축 비유로도 했습니다.

이제 이 건설구원을 하는 것은 아무나따나 행함이 아니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그것만이 영생이 되고 구원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자기의 소유나 몸이나 생명이나 이 세상에 어떤 것보다 가치가 더 큰 것을 깨닫고 하나님의 뜻에다가 자기의 이 소유나 몸이나 생명을 바칠 수 있는 그 가치 차이를 가진 사람이라야 예수 믿는 건설구원을 이루어 갈 수 있는 것입니다.

물론 소유도 귀하고 몸도 귀하고 생명도 귀합니다. 이것은 온 천하보다 귀한 것입니다. 자기의 생명은 천하보다 귀한 것이요 자기 몸도 천하보다 귀한 것입니다. 이렇게 귀하만 건설구원을 이루고자 하는 자는 자기에게 대한 하나님의 뜻은 이런 것보다 더 높은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이 사실을 깨달은 사람이라야 하나님의 뜻에 자기의 이 귀중한 세 가지를 바쳐서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기의 소유나 몸이나 생명 이것을 자기에게 대한 하나님의 뜻보다 귀중히 여기는 사람은 건설구원에는 상관이 없습니다. 이것은 그에게는 하나도 상관이 없습니다. 비로소, 자기에게 대한 하나님의 뜻이라면 자기의 소유 몸 생명보다 가치가 크다는 것을 생각하고 깨달은 사람이 비로소 희망이 있습니다.

이렇게 깨닫고만 있어도 아무 소용없습니다. 깨달은 다음에는 하나님의 뜻을 찾았을 때에는 자기 소유나 몸이나 생명이나 아끼지 않고 거기다가 다 투자하기를 원하는 그 사람만이 건설구원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사람이 이루는 그 구원은 영생이 되고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피조물들의 머리가 되고 하나님의 수족과 몸과 같이 그렇게 귀중한 만물의 중보가 되는 것입니다.

( ③ 자기를 다 바칠 사람이 아니면 하나님의 뜻 하나를 쉽게 생 각함 )

그러나 오늘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을 자기가 이 귀중한 세 가지를 그 뜻에 바쳐서 그 뜻대로 살아야 건설구원이 이루어진다는 이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자기의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것이라면 신중이 다루어야 되겠고, 자기의 몸이 망하고 흥하는 것이라면 신중히 다루어야 되겠고, 자기의 소유가 흥하고 망하는 것이라면 신중히 다룰 만한 가치가 있지만 하나님의 뜻이야 이렇게 말해도 되고 저렇게 말해도 되고 이것도 되고 저것도 되고 그거야 이거나 저거나 거게 대해서 가치를 여기지 않하는 그자는 중생된 자라도 건설구원에는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오늘 교회들이 천 명이면 천 명, 만 명이면 만 명, 평신도뿐만 아니라 최고의 위치를 가지고 있는 목사들까지도 하나님의 뜻의 가치를 이렇게 평가하지 않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이야 이리 말하나 저리 말하나 상관 없는 것으로 자기에게는 별 가치 없는 것으로, 말단의 어떤 것으로 생각을 가지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이 이것이냐 저것이냐, 하나님의 뜻은 성경에 담겨 있으니까 성경 깨달음이 이거냐 저거냐하는 문제에 대하여는 크게 가치를 두고 있지 않습니다. 성경 해석이 이거냐 저거냐 하는 데 대해서 아무것이라도 상관 없다는 이런 가증스러운 것을 가지고 오늘 살고 있는 것이 하나님의 종들이요 설교자들이요 목회자들입니다.

하나님의 뜻의 가치는 영원 무궁을 하나님의 뜻에서 결정하고 하늘의 것과 땅의 것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의 이 통치권, 소유권, 그들에게 환영받는 시은의 권세 이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뜻 하나에 들어 있습니다.

오늘도 내가 중간반 공부하는 것 보니까 ‘현실에 하나님의 뜻에는 예수님의 대속이 속에 들어 있고 삼위일체의 하나님이 내재해 계시고, 전지 전능이 그 안에 내재해 역사하고, 하나님의 모든 충만이 하나님의 뜻 안에 들었다’ 하는 것을 가르치는 것을 제가 들었습니다. 하나님의 전지 전능을 제것을 삼는 것도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아 행하는 거기 있고, 또 삼위일체 하나님을 제 하나님으로 모시는 것도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아서 그것을 제것으로 삼는 데 있고, 하나님의 충만도 예수님의 대속의 효력도 자기 것을 삼는 데에는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는 거기에 있지 딴데에 있지 않습니다.

이러기에, 하나님의 뜻은 우리의 생명보다 귀하고 우리의 몸보다 귀하고 우리의 전소유보다 귀하기 때문에 이 하나님의 뜻을 바로 배우려고, 바로 찾으려고 사람들은 애를 쓰는 것입니다. 이것을 돈만 못하게 여기는 자에게는 돈을 찾지 하나님의 뜻을 찾을 리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생명보다 천하게 여기는 사람은 제 생명 사는 것이 급하고 고귀하지 하나님의 뜻을 찾아서 자기 생명을 바치려고 하는 그런 일이 될 리는 천부당 만부당한 일입니다.

( ⑵ 본문 해석 )

( ① 양을 이리 가운데 보내신 분은 주님 )

“내가” 우리를 대속하신 예수님을 가리켜서 '내가'라고 말했습니다. "너희" 예수님의 대속을 입은 자는 누구든지 전부를 다 말해서 너희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보냄이" 대속해서 이 세상에 내보내는 것은, 세상에 살게 하는 것은, 세상에 머물게 하는 것은, 세상에 거주하게 하는 것은 하는 말입니다. 그것은 마치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양을 제일 살해하고 삼키는 데에 맹수들이 많지마는 제일 능한 것은 이리입니다. 양을 잘 잡아먹는 것은 이리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양은 맹수 중에 사자 그런 것보다도 이리를 더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리는 양을 삼키는 맹수요 양은 이리를 제일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이, 우리 위해서 생명까지 바쳐서 우리를 대속하신 주님이 우리를 이 어떤 세상에 살게 하느냐? 마치 양이 이리 가운데 사는 것처럼 우리들에게 제일 원수 많은 원수 속에 살게 한다 하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원수 속에 살게 하신다 하는 말씀입니다.

( ② 우리 원수인 마귀 )

이 원수는 양을 삼키는 원수인데 그러면 원수는 어떤 게 원수인가 우리가 알아야 되겠는데, 원수는 곧 베드로전서 5장 8절에 보면 “근신하라 깨어라 마귀가 우는 사자와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다”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여기 이리는 곧 마귀입니다. 마귀요, 귀신이요, 사귀요, 사탄이요, 뱀이요, 용이요, 붉은 용으로, 사귀로 이렇게 성경에 기록했는데 오늘 주일학교 공과는 이것을 가르친 줄 압니다.

그러면 이 말씀은 달리 말하면 내가 너희들을 이 세상에 살게 하는 것이 마귀 속에서 살게 한다 하는 말씀입니다. 사탄 속에서 살게 한다, 귀신 속에서 살게 한다, 사귀 속에서 살게 한다, 미혹의 배암, 용, 붉은 용 속에서 살게 한다 하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이 귀신이 어떤게 귀신인가? 온 세상이 다 귀신입니다. 어떻게 온 세상이 귀신인가? 그 공과 공부에 보면 마귀란 놈이 우리를 삼키려고 달려들 때에 그가 입고 오는 그 갑옷이 무엇인가 하는 갑옷에 대해서 공부를 가르쳤습니다. 에덴동산에는 이 마귀가 배암을 입고 왔기 때문에 그 해와와 아담이 마귀인 줄을 모르고 친구인 줄 알고 달려들어서 서로 대화하다가 마지막에는 삼키워서 멸망받고 말았습니다.

온 세상을 왜 마귀라고 하는고 하니, 세상이 마귀는 아닙니다. 사람도 깨끗하고 동물도 깨끗하고 또 식물들도 깨끗하고 무생물도 깨끗하고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것은 다 깨끗합니다. 깨끗한데 왜 이것을 가리켜서 마귀라고 말하는가? 그것은 벌써 마귀가, 우주의 피조물 대리로 하나님 앞에 세워 놓은 것이 범죄해서 마귀가 점령했기 때문에 오늘은 마귀가 무엇이든지 제가 필요한 대로 입어서 가장을 해 가지고, 세상의 무엇을 입고 가장하든지, 가장이라 말은 옷을 달리 입었다 그말이오. 꾸미기를 달리 꾸몄다는 그말입니다. 거짓 것으로 꾸몄다 말이오.

그러니까 마귀란 놈이 왕도 제가 자기 갑옷으로 입고 올 수 있고 또 모든 친구도, 부모 형제도, 부부간도, 또 높은 사람도, 낮은 사람도 심지어 목사도 장로도 다 마귀란 놈이 그놈이 입을 수만 있으면 입어서 필요할 때에는 입고 오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마귀가 모든 것을 제가 입을 수 있는 그런 권세를 가지고 있고 모든 우주에 있는 피조물은 마귀에게 입혀질 수 없는, 마귀를 자기 중심에 모시지 않을 수 없는 그런 권세가 없기 때문에 이제 모든 것을 다 마귀란 놈이 입을 수 있기 때문에 어느 때 어느 장소에서 무엇을 입고 올는지 모르기 때문에 우리는 온 세상은 마귀가 입고 올 수 있는 것들이다. 양을 삼키는 이리가 입고 올 수 있는 것들이다. 그러기 때문에, 온 세상은 마귀가 입고 나를 삼킬 수 있는 것들이기 때문에 온 세상은 마귀가 입고 나한테 와 가지고 나를 삼키는 이리 노릇을 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온 세상은 이리의 다 무더기다 이렇게 말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만물은 다 깨끗하지마는 마귀가 입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이 나에게 이리 노릇하는 데, 나를 삼키는 데에 그것이 필요하게 이용되기 때문에 우리는 무엇이든지 자기 집안에 있는 아름다운 가구라도 저것도 마귀가 입고 올 수 있습니다. 자기의 사랑하는, 아주 자기를 사랑하셔서 자기에게 모든 걸 다 희생할 수 있는 부모도 마귀가 입을 권세가 있기 때문에 마귀가 입고 올 때에는 그 부모는 나를 죽이려 하는 그 일을 맺고야 마는 것입니다.

( ③ 참사람으로 사는 것이 승리 )

여기 “양을 이리 가운데 보낸다” 양이라고 말하는 것은 예수님의 사죄 칭의 화친의 대속을 입어서 하나님의 자녀된 자를 가리켜서 양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사랑하는 부모지마는 귀신이 들어가 놓으면 그 부모를 통해서 귀신이 와 가지고 그 아들을 하나님의 아들로 살지 못하게 합니다. 진실한 사람으로 살지 못하게 합니다. 의인으로 살지 못하게 합니다. 마귀로 살도록 그렇게 만듭니다. 그러기 때문에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기 때문에 너희 주위 환경은 너를 삼킬 원수로 가득 찬 세상이다 이렇게 말씀을 해 주신 것입니다.

결론은, 이 복음 이 진리로 살아가는 사람이 오늘 죽는다면, 이 복음 전하다가 이 순간 하나님 앞에 서게 된다면, 그래도 전할 말씀과 그래도 외칠 증거가 있다면 바로 이 말씀입니다. 내일까지를 생각지 않고 다음 기회를 찾지 않고 바로 이 자리 이 현실 여기에서 죽어도 전할 말씀입니다. 마지막 공과를 대할 때마다 주님 앞에 자신을 그대로 거울 앞에 세우듯 세워놓고 이 순간 불러가셔도 전할 말씀인가? 여기에서 전해 보시기를 특별히 요청드립니다.

그 말씀은 주님 동행입니다. 비록 복음의 일이지만 복음의 일을 일로 할 수 있습니다. 복음의 일을 하는 것도 복음의 일을 하라 하시는 주님, 그 주님이 원인이며 그 주님 때문에, 그 주님이 하라하시기 때문에 하는 일이 바로 복음의 일이라야 한다는 것이 마지막 공과의 내용입니다.

깊은 말씀이며, 인격을 기울여 할 말씀입니다. 두려운 말씀이며 참으로 그 앞에 서기가 죄송스런 공과입니다. 공과 내용 한 마디 한 마디를 전하는 분이 마음 속에 꼭꼭 져며가며 입으로는 가르치되 주님과 마음 속으로 동행하며 가르치시기를 권합니다.





3) 백목사님의 주일학교 마지막 공과 : 하나님의 자녀되는 권세

설교 : 89-08-20(7공과)
본문:요한복음 1장 10절~13절
제목:하나님의 자녀되는 권세
요절: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 1:12)

서 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활의 대속 공로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읍니다.

본 론

1. 창조자시며 전지 전능자시며 대주재시며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신 주권자 하나님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의 아버지 되셨고 우리는 그의 영원한 아들이 되었습니다.

2. 영생하는 생명과 병들지도 아니하고 죽지도 아니하고 고통도 없는 몸으로 부활하여 신령한 영육으로 영생할 우리들입니다.

3. 하나님의 온갖 충만을 우리가 기업으로 받아 충만하고 천상천하의 모든 피조물들에게 이 충만으로 그들에게 충만케 하는 은혜 베푸는 직위로 살 우리들입니다. 이 구원에 대한 모든 준비를 소유와 몸과 생명을 다 기울여 전력하여야 합니다.

문 답

1. 우리는 이 구원에 대하여 어떻게 하여야 합니까?
답:감사와 기쁨과 충성으로 충만하겠습니다.

2. 받은 이 구원을 어떻게 하여야 합니까?
답:밤낮 쉬지 않고 감사와 기쁨으로 생활하고 또 다른 사람에게 도 내 전부를 다하여 전하겠습니다.

〈 항도일보 순교 기사 〉

4만5천 신도의 신앙 지도자이며 항도 부산 최고의 종교 지도자로 칭송받던 백영희목사(서부교회 담임, 예장총공회장)가 설교 도중 칼에 찔려 순교하여 한국기독교계의 순교사를 빛나게 하였다.

설교 강단은 최후까지 지킨다는 신앙에 따라 범인을 보고도 끝까지 사수한 것이 예배 참석 신도들의 목격담을 통해 확인되어 한국 교계 목회자들의 신앙 자세를 돌아보게 하고 있다. 특히 20cm나 되는 칼이 가슴을 꿰뚫어 피를 다 쏟았으나 얼굴의 평안함을 잃지 않고 오히려 범인의 신변을 걱정하였다고 한다. 또 예배당 안을 조용히 시킬 것을 말하며 숨을 끊어 주위의 모든 신도를 감동시켰다. 백목사는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에 자신뿐 아니라 소속 전신도들까지 굴하지 않게 하고 6․25동란 중에도 하루도 빠지지 않고 예배를 인도한 신앙의 거목이라고 알려져 있다.

신앙의 正道를 고집한 진리의 파수꾼이기에 그에게 항상 생명의 위협이 계속된 것으로 전해진다. 따라서 백목사의 신앙과 설교에 정통한 교계의 인사들은 한결같이 이번 사건을 한국 보수교단에 미친 심대한 영향을 두려워한 배후 세력의 소행으로 보고 있다. 최근 그가 교회의 잘못된 정치관과 불건전한 종파에 대한 경각심을 남달리 강하게 외쳐왔기 때문이다. 세계 최대의 주일학교를 이룬 그의 목회, 수많은 제자를 일일이 지도하여 전국과 해외까지 1백 수십 교회를 개척시킨 후배 양성, 1백 수십을 헤아리는 방대한 그의 설교집, 성경 전체를 달통하여 많은 기독교의 교리적 문제점을 보완함으로써 한국 신학계의 주목을 받아온 경력은 한국 기독교사를 빛내기에 충분할 것이다. 수많은 신도들이 참여한 백목사의 장례식은 부산이 낳은 위대한 종교 지도자를 역사를 인물로 아쉽게 보내야 하는 한국 기독교계의 장엄한 환송식이었다.







〈 1989.10.9. 국민일보의 白永僖 목사 추모 기사 〉

순생의 복음 사역이 순교로 끝맺어지기를 그토록 간구하며 속화되지 않은 신앙과 목회상으로 한국과 세계 교회를 밝히던 백영희목사님 (부산 서부교회 담임목사, 예장한국총공회장)이 마침내 8월 27일 설교하던 강단에서 순교를 당했다.

일평생 오해와 박해 속에서도 하나님만 바라보고 고독한 진리의 외길을 끝까지 고수한 白永僖 목사님은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와 6․25 동란 점령 치하의 환난을 승리하여 나왔으나 묵묵히 목회에만 일념하여 교계에서는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기독교에 비판적인 어느 기자가 서부교회의 미아 발생 사건을 취재하던 중 너무나 감동적인 주일학교의 모습에 오히려 극찬의 기사를 실은 것이 그가 세상과 교계에 알려진 동기였다. 한 강단에서 40여년, 주일예배부터 새벽기도회 설교, 반사회 주재로 빠짐없이 80노령까지 하나님 앞에 충성하여 이룬 세계 최대의 주일학교. 1백 72권에 이르는 방대한 교리적 교훈이 담겨진 목회 설교록. 매년 수백명의 병자들이 치료되고 수만 명이 참석하는 32년간의 집회. 반사 하나 하나를 목회자로까지 길러 1백 20여 교회를 개척하는 등 목회도 정말 값진 것이었으나 한편으로 순교의 마지막은 자신이 신앙이 최종 완성되는 영광의 순간이었다.

범인은 일부 보도와는 달리 교인이 아닌 것으로 확인 되었고 정신 질환도 없었던 점과 목사님의 순교 전 예견한 설교 등으로 미루어 이는 진리를 증거하는 목회자를 증오한 배후가 있었음을 쉽게 알게 한다. 다가오는 범인을 보았으나 대속을 언제나 생각하라는 설교가 600여 성도들을 사로잡고 있었고 찔리는 순간까지 모든 교인의 입도 몸도 얼어붙어 있었다. 설교를 녹화하던 카메라에 잡힌 최후 순간은 평소 가르친 대로 목사님은 칼이 들어오는 순간에도 피하기는 커녕 오히려 범인을 향해 말렸고 '아버지여'를 두 번 외치는 목사님의 음성과 함께 20㎝의 칼은 가슴에 완전히 박혔다.

그제야 앞줄의 청년들이 범인을 덮쳤으나 범인은 꽂은 칼을 다시 뒤틀어 목사님의 가슴에 완전히 절단되었다. 그러나 얼굴의 표정은 지극히 평안한 가운데 조금도 요동이 없었고 오히려 부축하는 청년들에게 조용하라 하시며 순교의 상처를 확인하시고 강단에서 피를 다 쏟은 체 순교하셨다.

그는 높은 차원의 독특한 깨달음으로 정통 교리에 대한 많은 문제들을 해결했으며 특히 人論, 救援論의 신학체계는 많은 조직신학자들과 신학생들에게 큰 주목을 받고 있어 그 연구 결과에 대한 기대가 모아지고 있다. 李敏泳(목회연구소 소장)



































죽음, 그리고 순교

이 성 대 목사 (필라델피아 한인개혁장로교회)

지금 세상에 어쩐 순교냐고 상한 마음들은 뜻을 모두어
수상쩍은 눈빛으로 당신을 몰아 가는데
그날 하늘을 가르며 천둥이 치고 세상은 놀라서 문득 요란을 떠는데
당신은 예정대로 마지막 한점 남은 숨결까지 모우면서
기어히 대망의 순교의 길을 떠나셨습니다.

기독교가 인기있어 살맛나는 요즘 세상에 순교가 웬말이냐고
수군거리는 수십억짜리 높은 종탑아래 군중들 속에서
요한처럼, 베드로처럼, 그리고 마지막 십자가의 주님처럼
당신은 피를 쏟으며 수십년 낯익은 그 강단에서 쓸어지셨습니다.

말씀을 토하면서, 피를 쏟으면서도
악한 세대를 유유히 맞으시던
한점 허트러짐 없었던 강단의 사자, 우리의 순교자여!

이 시대 최후의 보루처럼, 무너지지 않던 고고한 영원의 향기로
튼튼한 시온의 반석 같으시던 깨끗한 당신의 걸음, 그리고 음성이요!

죽음은 또한번 이 시대의 존영한 순교자를 잉태시키는데
아! 서러운 인생의 행적, 그 빈 벌판을 가로질러
서슬퍼런 칼자국으로 달려서던 악령의 노래여
광야같은 쓸쓸한 빈세상, 그리고 저물어가는
허무한 세대의 텅빈 스산한 예배당들이여

목사님, 당신은 모세였고 바울이었고 또한 엘리야였기에
당신의 죽음은 순교를 넘어선 영원한 천국의 찬미였습니다.
하오나, 당신의 죽음앞에 무색해진 저 숱한 종탑들은
한동안 울리지 않는 침묵으로 이 시대에 당신을 잃은 슬픔을 안고
진정한 회개의 눈물을 흘려야 합니다.

( 백영희목사님 순교에 드립니다. )

Oct. 1, 1989 크리스찬 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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