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구원론에 대한 혼선 - 칼빈주의를 단순 반복하는 교계의 과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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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구원론에 대한 혼선 - 칼빈주의를 단순 반복하는 교계의 과도기

서기 0 6
Ⅶ.구원론에 대한 혼선 - 칼빈주의를 단순 반복하는 교계의 과도기


1. 건설구원에 대한 교계 인식의 중요한 전환점

예수를 한번 믿은 사람은 천국가는 구원은 기본적으로 얻게 되고, 예수 믿은 이후 평생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믿는 사람 속에 있는 자기 인격을 성화시켜나가는 건설을 위한 것이라는 것이 백목사님의 구원교리입니다. 이 구원론은 1960-70년대를 거치면서 20여년간 백목사님이 이단으로 정죄되는 제일의 원인이었습니다. 1980년대에 접어들면서는 구원론에 있어 백목사님의 교리는 기독교의 구원론을 완성하는 차원에서 인정받게 됩니다.

그러나 솔직하지 못한 교계의 신학자들은 내심으로는 옳지만 그렇게 시인하고 공개적으로 따르는 데에는 인색하여 주저하고 있습니다. 이런 과도기적 분위기가 현재도 진행중이기 때문에 백목사님의 구원교리를 두고는 교계가 스스로 혼선을 빚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미 가장 극단적인 백목사님 비판 신학자들까지도 구원론을 두고 해결 못할 난제가 생기면 백목사님의 주장을 바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물론 백목사님께 배운 것이라는 말은 하지 않고 있습니다.


2. 동일한 칼빈주의 교리로 백목사님의 구원론을 한편에서는 비판하고 한편에서는 인용한 경우

여기 백목사님의 구원론에 대한 마지막 비판자라 할 수 있는 '최삼경목사님'이 박옥수목사님을 비판하면서 백목사님의 구원론을 그대로 인용하고 있는 자료를 소개합니다. 기본구원과 건설구원이라는 이름만 뺐을 뿐이지 정확하게 백목사님의 주장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최삼경목사님이 구원론을 그렇게 주장하면 자기 학파에게 바로 이단으로 정죄받을 일이었습니다. 그의 선배들이 같은 구원론을 두고 백목사님을 정죄했던 발표문을 함께 소개합니다.

비록 최삼경목사님의 글은 그 양이 많지만 구원론의 시비를 두고는 참으로 대단한 변화를 볼 수 있습니다. '최삼경'이라는 분을 인물로만 상대한다면 그리 중요한 분도 아니며 그리 주목할 분도 아닙니다. 그러나 그분의 주장과 그분의 위치는 백목사님의 교리에 대한 시비에 있어서는 아주 대표적인 한 '경우'이기 때문에 예를 드는 것입니다.


1) 최삼경 목사님 구원론 혼동의 예

·1996년 6월호 '교회와 신앙'에서 말한 내용

백영희목사의 "거듭(중생)난 영은 절대 범죄하지 않는다"는 주장은 비성경적 구원파식 교리:

"거듭(중생)난 영은 절대 범죄하지 않는다."는 말이나 '기본구원' 과 '건설 구원'을 나누는 것은 현재 [한국총공회]라는 교단에서 주장하는 교리로서 이미 고인이 된 백영희 목사의 주장을 다룬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위의 주장에 문제가 있음을 느끼고 있었지만 기회를 가지지 못하였는데 이것을 계기로 필자는 앞으로 더 깊이 있게 연구할 것을 약속드리며, 본 호에서는 우선 위의 주장을 따르면 어떤 문제점들이 발생하는지 간단히 살펴보겠습니다.

⑴ 구원을 얻는 방법은 몇 가지인가

① 성경에는 '기본 구원'이나 '건설 구원'이란 말이 없으며, 그렇게 나누면 구원이 이원화되어 버립니다.

② 위의 주장이 잘못된 것은 우선 성경이 구원을 '기본구원'이나 '건설구원'이라는 식으로 나누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또 그런 용어도 없습니다. 용어가 없어도 사상이 있으면 그 사상을 가장 잘 나타내 주는 용어를 만들어 쓸 수는 있습니다. 예컨대 삼위 일체란 말이 그렇다. 그러나 '기본 구원'이나 '건설 구원'이란 용어는 성경에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러한 사상도 없습니다.

우리가 신학적으로 구원이란 말은 사용할 때 두 가지로 사용함을 알아야 합니다. 넓은 의미로 말할 때의 구원이 있으며, 좁은 의미에서 구원을 말할 때가 있습니다. 좁은 의미에서는 우리의 거듭남 내지는 중생을 말합니다. 그러나 넓은 의미에서는 거듭남과 성장을 다 포함시켜서 하는 말입니다. 인간의 육신을 비유로 말하자면 인간은 태어나는 것과 자라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을 것입니다. 태어나지 않고 자라는 사람이 없을 것이고, 또한 자라지 않는 아이는 태어나지 않는 것보다 못할 것입니다. 넓은 의미에서 구원을 말할 때면 태어나는 것과 자라는 것을 포함해서 하는 말이요. 좁은 의미에서 구원을 말할 때면 태어나는 것을 가리켜 하는 말입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루이스 벌콥(Louis Berkhof) 이란 학자는 구원의 순서를 여러 단계로 나누어 말했습니다. 즉 소망, 중생, 회심, 신앙, 칭의, 성화, 성도의견인 그리고 영화가 그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구원의 순서를 말하는 것이지 구원을 따로 따로 떼어서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즉 '성화 구원'이니 '영화구원'이니 하는 식으로 말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⑵ 2001년 3월 7일 '교회와 신앙'에서 말한 내용

박옥수쐴G 구원론을 본격적으로 비판해 보자.

구원지상주의자 박씨

「죄사함, 거듭남의 비밀」이란 책은 1986년 10월 6일부터 10일까지 부산 무공화회관(이사벨여자고등학교 대강당)에서 한 설교를 수록한 것으로 그가 집회시마다 주로 사용하는 설교들이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구원에 대한 내용으로 되어 있으며, 그 자신의 말에 의하면 그는 창세기로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죄사함에 관한 방법을 다 찾아보았다고 합니다(p.44). 물론 그의 주관적인 입장이요, 그의 잘못된 성경해석에 의한 주장들이었습니다. 한 마디로 박씨는 구원지상주의자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물론 구원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구원은 두 가지로 나누어 보아야 합니다. 하나는 넓은 의미의 구원이요, 하나는 좁은 의미의 구원이다. 구원의 단계와 서정을 여러 가지로 나누어 설명하기도 하는데,

크게 보면 중생 즉, 거듭남으로써의 구원과,
그 후에 따르는 성화의 구원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전자를 좁은 의미의 구원이라 할 수 있고, 후자까지 포함시켜 넓은 의미의 구원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박씨는 이 좁은 의미의 구원에만 모든 관심을 다 모아 마치 기독교의 전부가 구원이요, 성경의 전부가 구원인 양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자연히 그 결과 성경이 억지로 해석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박씨는 죄사함과 구원을 동일시하고 있기 때문에 매 페이지마다 이 죄사함이란 단어와 사상이 거의 빠진 일이 없습니다.

⑶ 지옥가는 이단과 천국가는 이단의 최삼경목사님식 구분법

'교회와 신앙' 발췌 (등록일 : 2001.12.13)

최삼경 sam5566@hanmail.net 월간 <교회와신앙> 발행인, 빛과소금교회 담임목사

이단에 속한 자는 모두 지옥에 가는가?

어떤 사람, 어떤 단체를 사이비 이단이라고 할 때 우선 기본적으로 그들이 구원을 받을 수 없는 사람이거나 단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면서도 '이단에 속하기만 하면 모두 구원받을 수 없을까' 하는 생각도 들게 됩니다. 과연 이단에 속한 자는 모두 구원을 받을 수 없는가 생각해 보겠습니다.

우선 이 문제에 대하여 바른 답을 얻으려면 두 가지를 살펴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첫째는 구원의 문제요, 다음은 이단이 무엇이냐의 문제입니다. 구원은 누가 누구에게 주는 것이냐는 것이며, 다음은 이단 문제의 핵심이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우선 구원의 문제부터 생각해 보겠습니다. 구원은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먼저는 연역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의 측면에서 보는 것이요, 다음은 귀납적으로 인간의 믿음의 측면에서 보는 것입니다.

먼저 구원이란 하나님의 절대 주권에 속한다는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롬 9:16)라고 말입니다. 심지어 같은 진흙을 가지고 귀한 그릇도 만들고 천한 그릇도 만드는 토기장이 비유까지 들어서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말하였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주권 앞에 인간의 믿음은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하나님의 주권은 인간의 의무를 약화시키고, 반대로 인간의 의무는 하나님의 주권을 약화시키는 것처럼 보이게 합니다. 즉 구원 얻도록 예정된 자는 믿지 않아도 구원받을 것이요, 또 구원 얻지 못하도록 예정된 자는 믿어도 구원 얻지 못할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구원에 있어서 하나님의 주권을 말한다고 해서 인간의 의무인 믿음이나 전도를 무시하지 않는다는 점이요, 역시 인간의 의무인 믿음과 전도를 강조한다고 해서 하나님의 주권을 무시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인간의 의무를 강조하면서도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고,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면서도 또한 인간의 의무를 강조하여 이 두 가지가 조화 있게 나타납니다. 즉 인간에게 믿음과 전도를 촉구하면서도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부정하지 않으며, 또한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믿고 인정하면서도 인간의 의무인 믿음과 전도를 촉구하는 것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우리는 다른 사람의 구원에 대하여 말할 때 조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주권을 침해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구원은 인간에 의해서 좌지우지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구원은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기 때문입니다. 믿어야 구원을 받지만 그 믿음도 구원받을 믿음인지 아닌지 판단하시는 분은 바로 하나님입니다.

그 다음에 오는 문제는, 이단 문제는 구원의 문제라는 점입니다. 오늘날 많은 이단들이 가정을 파괴하고 금품을 갈취하며 부녀자를 폭행하는 등의 부도덕한 일을 자행하지만, 그러나 그것이 이단 문제의 본질이 아니란 것입니다. 이단 문제의 본질은 윤리적 문제가 아니라 교리적 문제입니다. 즉 이단이란 성경이 말하고, 사도들의 전승 위에서 2천 년 동안 교회가 믿어오고 주장하던 구원론을 부정하고 침해하는 사람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그래서 요한이서 1장 9절에서 "지내쳐 그리스도 교훈 안에 거하지 아니하는 자마다 하나님을 모시지 못하되 교훈 안에 거하는 이 사람이 아버지와 아들을 모시느니라"라고 했습니다. '교훈의 종교', 그것이 기독교입니다.

그렇다면 이단자가 구원받지 못한다는 것은 자연스런 결론입니다. 그런데 이것과 하나님의 주권을 어떻게 조화시킬 수 있느냐는 문제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누구에게 믿음을 확인하고 그에게 구원을 확신시키는 것이 하나님의 주권을 침해하는 행위가 아닌 것처럼, 이단에게도 구원이 있는지 없는지 밝히는 것이 하나님의 주권을 침해하는 것이 아님은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단들은 본질적으로 구원을 받을 수 없는 사람인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이단에 속하기만 하면 무조건 구원을 받지 못한다고 하는 생각은 위험한 생각이 됩니다. 우리는 둘로 나누어 보아야 한다고 봅니다. 본질적으로 구원받을 가능성이 거의 없는 이단과, 그러나 개인적으로 구원받을 가능성이 있는 이단을 나누어 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즉 통일교나 JMS나 최근의 천부교나 영생교 등은 개인적으로 구원받을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됩니다. 왜냐하면 이들의 교리적 체계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바르게 알고 바르게 믿을 가능성이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구원받을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수 없는 이단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성락교회 김기동 씨 같은 경우 이단사상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어쩌면 한국에 활동하는 이단 중에 이단 사상이 가장 넓게 퍼져 있는 사람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신론에도, 기독론에도, 인간론에도, 계시론에도, 창조론에도, 천사론에도, 성령론 등에서도 이단사상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에게 속한 사람들은 전혀 구원받을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비록 그 속에 있어도 김기동 쐴G 사상과 상관없이 바른 죄관과 구속관과 영접관을 가질 수도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혹자는 이단자도 구원받을 수 있다는 말을 비난할지도 모르는 일이며, 또한 이단에 속한 자도 구원받을 가능성이 있다는 말로 이단에 빠진 사람들이 위로를 받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무조건 이단에 속한 사람은 다 구원받지 못한다고 단정해 버리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침해요, 또한 이단자도 구원받는다고 하여 이단에 속한 교회를 나가도 되는 것처럼 한다는 것은 죽은 바다에서 고기를 잡겠다고 낚시질을 하는 일과 같을 것입니다.


2) 1968년 합동측 경북노회 발표문

백영희목사가 칼빈주의의 신조와 기독자 본분 이행에 끼치는 치명적 손해에 대하여

즉 거듭난 사람은 그 영혼이 거듭남과 동시에 다시는 결단코 추호도 범죄치 아니한다고 하므로써 그 영혼은 죄책을 지지 아니하므로 거듭난 후에 지은 죄를 뜻 없이 만들어 방점; 가져오게 하며 율법(하나님의 요구)을 아주 무의미하게 하여 버린다. 그들은 거듭난 후에 짓는 죄가 끼치는 영향은 단순히 천국에 들어갔을 때에 상급만을 못 받게 하는 것 뿐이고 구원에는 하등 상관이 없다고 한다. 다시 말하면 거듭난 자는 거듭남과 동시부터 죽는 시간까지 간음 살인 강간, 거짓말을 계속하는 생활 속에 있어도 구원에는 아무런 걱정이 없다고 말한다. 그 내용인 즉은 들은 구원을 양분하여 "기본구원" 과 "건설구원"을 말한다. 소위 '기본구원'이란 지옥 갈 자가 천국에 가게 됨을 말하며 다만 중생만으로써 '기본구원'은 완성을 본다고 말하고 있다. 또한 '건설구원'이란 '기본구원'을 얻는 자가 상급을 받는 것을 말하는데 헌신과 적선으로 받는 것이라고 말한다. 결국 구원은 중생만으로써 완성을 본다는 '기본구원'으로서 족한 것이고 '건설구원'은 전혀 없어도 상관없게 된 것이다. 다시 말하면 거듭난 자는 죽는 날까지 계속하여 간음, 살인, 도적, 거짓 속에 파묻혀 살아도 단지 상급이 없을 뿐이고 천국 가는 일에는 꺼떡도 없다는 결론인 것이다. 고로 방점; 가져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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