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간 창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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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인간 창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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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인간 창조

1) 특수 피조물

다른 만물과 달리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실 때는 몇가지 특수한 점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당신의 목적 대상이기 때문이었습니다.

⑴ 삼위일체 하나님의 특별의논

하나님께서 다른 만물을 창조하실 때는 말씀으로 창조했습니다. 그러나, 사람을 창조하실 때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특별 의논이 있었습니다. 여기 "의논" 하신 것은 하나님이 모르는 것이 있고 서로 도움받을 일이 있어 의논하는 의논이 아니라, 전지 전능하신 하나님이 모든 것을 만세 전에 예정하셨고, 그 예정대로 창조하시는 것이지만, "의논"을 창세기 1:26절에 나타내 보이신 것은
첫째, 성부 하나님의 우주 영계의 전체 운영에 관계성을 가진 인간임을 보이시고
둘째, 성자 하나님이 삼위일체 하나님을 나타내 보이시는 역사에 관계성을 가진 인간임을 보이시고
세째, 성령 하나님의 감화 감동 역사에 관계성을 가진 인간임을 보이십니다.

하나님은 한 하나님이시나 삼위가 삼위 각자 역사의 특별성을 가지셨습니다. 삼위 하나님의 의논이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기록해 주신 것은 이제 창조하는 인간은 하나님이 삼위로서 역사하는 이 모든 역사에 특별한 존재라는 것을 계시해 주시는 것입니다.

인간 외의 존재, 즉 만물은 하나님이 인간으로 가지는 신인 교재에 무대이며, 이용물일 뿐입니다. 마치 부모가 모든 소망을 두고 있는 자녀는 그 부모가 가지고 있는 모든 집이나 다른 소유와 다른 것 처럼.

⑵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

삼위일체 하나님과 이렇게 특별한 상대가 되는 이 사람이라는 존재는 삼위의 특별하신 모든 역사에 밀접히 하나되어 역사할 존재이니 그는 하나님이 마음대로 움직여 쓸 수 있어야 할 특별한 존재라야 할 것입니다. 이 특별 관계에 이질적인 요소가 있으면 이는 대립, 마찰, 분요가 있게 될 것이니 당연히 하나님과 동질적인 존재로 만드신 것입니다. 일부 신학자들의 오해와 같이 사람의 영은 신적 요소의 일부가 떨어져나와 된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피조물이요, 인적 요소로 되었으나 하나님이 쓰시고 상대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창1:26 말씀에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하신 대로 인간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것은 무엇인가? "참사람", "속사람", "참자기", "새사람"이라고도 하는 바로 "영"인 것입니다. 영육으로 된것이 사람이기 때문에 영을 떼낸 육만을 가지고는 사람이라 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육을 떼놓은 영만을 가지고도 사람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는 육으로 사는 사람을 사람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습니다. 원래 창조 때는 영육이 온전히 하나되어 있었으나 범죄 후 영은 죽고 심신으로 된 육으로만 사는 인생, 무엇이라 불러야 할까? 범죄 전이나 후나 인간이 볼 때는 꼭 같은 "사람"인데 영이 죽어 육으로만 사는 사람과 범죄로 죽은 사람을 구별하여 성경은 말하고 있으니 곧 육으로만 사는 사람을 "옛사람" "겉사람" "죽은 사람" “거짓 자기"라고 하고 죄 이전 원래 만들어진 사람처럼 산 영과 육이 하나된 사람을 "새사람, 속사람, 참사람, 참자기"라고 하는데 이는 중생된 "영"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러면 인간에게 넣어주신 하나님의 형상은 무엇인가? 하나님은 물체도 영체도 가지지 않는 완전자이니 인간의 둔탁한 표현 방법으로 그저 "형상"이라 "모양"이라 한 것이요, 우리 인간 수준에서 아는 "형상"에 하나님을 맞추려하면 이는 잘못입니다. "형상", "모양"이라는 말은 그 사람의 외부로 나타난 모습을 말하는 것이니, 완전자시며 무형인 하나님이 외부로 나타나신 모습은 어떠한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필요한 면을 자연계시와 특별계시로 알려주셨으니 알려주신 그 범위만큼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즉, 하나님은 무형의 하나님이시니 우리와 같은 형상은 없으시고 나타내 보여주신 그분의 속성들이 있으니 이 속성이 바로 우리가 접할 수 있는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역사, 활동 등을 통하여 알려진 하나님은 "자존" "완전"…"사랑" "진실 " "의" "거룩"… 등 12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이 중에 피조물로서는 성질상 가질 수 없는 "자존", "완전", "영원 불변", "단일"의 4가지 형상이 있으니 이것을 빼고 그대신 인간이 특수 피조물로서 가지는 8가지를 우선 요약할 수 있습니다. 물론 사람이 가진 이 8가지 속성도 원형을 본받아 만든 모형이기 때문에 그 가치성, 실력성, 활동성, 완전성은 다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진 사람,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영"입니다.

이러한 속성들로만 된 영이기 때문에 영은 하나님과 연결되어 움직이는 이 생명을 가진 산 영으로서 8가지 속성적 활동만 합니다. 만일 영이 죽으면 이 8가지 속성은 곧 활동이 중단되는 것이요, 영체 자체가 소멸되는 것은 아닙니다. 또한 하나님의 형상대로 본받아 지어진 영의 속성, 영의 활동이기 때문에 하나님 아닌 다른 존재는 본질적으로 할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죽은 영은 활동을 멈추게 되는 상태가 죽은 것이요, 악령은 범죄한 인간의 하나님과 끊어진 영을 이용할 수 없습니다.

⑶ 영육의 존재

우리는 하나님의 상대자입니다. 하나님의 목적 대상이 바로 우리이기 때문에 당신을 본받아 모형으로 지은 영을 우선 앞에서 설명했습니다.

또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이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이 영에게 육으로 된 마음과 몸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하나된 영이 자기의 소유격인 육, 즉 심신을 통하여 만물을 상대하게 하십니다.

따라서, 모든 피조물을 창조된 재료로 나눈다면, 영물로 된 영, 물질로 된 우주계가 있고, 영물로만 된 것은 천사요, 물질로만 된 것은 이 세상 모든 만물들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영물로 된 영과 물질로 된 육, 즉 심신을 한 존재에 함께 가졌으니 이것이 특수 피조물의 특징 중에 또한 하나입니다.
여기서 하나 의문이 제기될 수 있는 것은 "마음"이 어떻게 물질이냐 하는 것입니다. "물질"이라 할 때 사람들이 우선 생각하는 것은 돌, 나무, 고기덩어리 같이 육안의 두 눈에 보이고 손바닥에 쥐면 잡히는 것만 생각하게 됩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창세 때부터 이미 만들어 놓으셨던 물질에 대한 지식에조차 인간들이 미개했기 때문입니다. 물질에 관한 지식을 자연계시라고 합니다. 창조 때 한번에 만들어서 우주에 넣어 두신 것입니다. 그러나 자연계시에 대한 무지로 성급히 태양이 지구를 돈다는 주관적 성경 해석 주관적 신앙으로 주장을 하여 "무지한 광신자" 취급을 받는 안타까운 성도들도 있고, 한편으로는 "발견", 또는 "발명" 하는 사람들이 마치 "창조"한 것처럼 교만한 것도 전부 하나님이 엿새 창조에 이미 만들어 배열시켜 운영하고 있던 것이 인간 제가 무지, 무식, 어두워서 몰랐다가 알게 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물질에 대하여 인간이 몰랐던 것을 수천년의 세월 속에 하나씩 알아갈수록, 너무 커서 못 보던 것을 이제야 본 것입니다. 예를들면 지구, 태평양, 한국 사람 에게는 한국땅이 그 예가 될 것입니다. 반대로 너무 작아서 못 보던 것을 이제야 본 것이 있습니다. 예를들면 세균, 세포, 원자, 전자 또 망원경을 통해서던지, 현미경을 통해서든지 점점 보게 되어지는 것이 있으나, 아무리 가도 물질의 성질상 아예 볼 수 없는 물질들이 있다는 것도 점점 밝혀져 나가고 있습니다. 예컨대, 예전에는 "소리"는 그냥 "소리"지 이것의 실체가 무엇이냐 하는 것은 개념도 없었고, 접근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공기 진동으로 나오는 보이지 않는 물질임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성경을 볼 때 모든 피조물은 영질과 물질로만 되어있고 천사, 악령, 인간의 영 외에는 이 우주의 모든 피조물들이 다 물질입니다. 그러면, "소리" "햇빛" "공기"… 이 전부가 볼 수 없고 만질 수 없어도 물질이 아닌가? 오감( 五感 ) 중에서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대상만 물질인가? 귀로 들을 수 있는 소리는 물질이 아니겠는가?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서, 오감 전체 어느 부분으로도 접할 수 없는 것도 있습니다. 예컨대 동물의 육체를 움직이는 것은 "힘"입니다. 육체의 근육과 모든 조직을 움직이는 힘은 그 동물이 먹는 음식을 소화시킬 때 나오는 "열"입니다. 먹은 음식을 소화시킬 때 나오는 그 "에너지"는 물질인가, 영질인가? 우리의 오감 어느 부분으로도 접할 수 없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도 과학이 발달해서 볼 수 있는 실체를 밝혀낼지는 모를 일입니다. 설사 밝혀 낸다 할지라도 놀랄것이 하나도 없는 것은 우리 하나님께서 창조 때 만들어 놓았던 것이 이제야 인간이 알아낸 것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물질의 발명과 발견은 어떤 것이라도 창조 때 하나님께서 내어놓으신 만큼은 앞으로 어느 정도까지라도 계속 되어질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현재 가공할 만한 현대 과학, 특히 생명공학, 인체공학, 유전공학, 전자공학, 우주공학, 컴퓨터공학… 등의 출현과 실제적인 연구 결과에 대하여 초연히 상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즉, "어떤 과학의 발명과 발견도 물질에 관한한 하나님께서 내어놓으신 범위 안에서는 계속될 것이다."라고 결론지을 수 있습니다. 섣불리 신학자들이 인체를 만드는 것은 과학으로 안된다고 했다가 인조 인체가 나오니까 신학자들의 신학이 과학에 밀려서 오락가락해 버리는 경우를 우리는 금세기 수십년에서 수없이 보아왔습니다.

이 문제에 대하여 상당히 많이 언급하는 이유는 무엇이 물질이냐를 확정짓지 않으면 성급히 인간 과학, 인간 능력으로 가능한 문제를 자연계시에 대한 무지의 소치로 불가능한 것으로 보게 되거나 아니면 신앙에 여러가지 불필요한 모순들을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물질이냐? 오감으로 접할 수 없다고 무작정 물질이 아닌 것으로 단정해서는 안됩니다. 성경으로 판단할 문제입니다. 전술한 바와같이 우주 만물이 물질로 이루어졌고 따라서, 동물들도 물질로만 만들어진 피조물입니다. 그러면, 동물과 인간의 다른 점이 무엇인가? 본질적으로 다른 점은 두말할 것 없이 인간에게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영이 있다는 점뿐입니다. 영 외에는 정도 차이, 가치 차이, 활동 차이, 실력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사람의 몸과 마음도 본질적으로는 물질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짐승에게는 육체, 고깃덩어리만 있고 그 육체를 움직이는 마음, 생각은 없을까? 있습니다. 두말할 것 없이 있습니다. 사람의 혼은 위로, 짐승의 혼은 아래로 간다고 전도서 3:21에 분명히 밝혔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이 영이라고 주장하는 신학자들은 짐승에게 마음에 대한 존재를 인정하면 역설적으로 인간도 물질만으로 되어진 존재라는 모순이 되기 때문에, “사람의 마음은 영이다, 고로 짐승에게는 마음이 있으면 안된다”는 가설을 세워놓고 이 가설에 따라서 짐승을 설명하기 때문에 여기에는 많은 모순이 따르는 것입니다. 자연계시에 어두웠던 시대에 신학자들이 만물의 영장인 사람이 사는 지구가 중심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태양이 지구를 돌아야 한다는 억해로 발전된적이 있었습니다. 그 주장 때문에 과학자들이 신학자들의 과학 무지만을 비방하는 것이 아니라 신학자들의 성경까지 비방해버리게 하는 빌미를 주게 되었던 것과 같습니다.

짐승에게도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즉 마음의 3대 요소라고 일반적으로 말하는 지.정.의 중에서 "정(情)"이 있는 것입니다. 또 계획, 준비, 기억 등의 지(知)가 있으며, 자기대로의 뜻 즉 의 (意)가 있습니다. 다만 그 수준이 유치하고 상당히 저급의 것이라는 차이일 뿐입니다. 만일 짐승은 본능만 있고 이 본능은 물질 작용이요 인간의 마음과 다르다고 주장한다면 말로만 논리할 것이 아니고 영리한 짐승들을 실제로 관찰하며 다시 한번 살펴볼 일입니다. 실제를 말로 맞춘다고 맞아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또한 중생된 성도는 영이 살았으나 불신자는 영이 완전히 죽어있다고 우리가 단정을 합니다. 그러면 불신자에게 죽은 영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이 무엇인가? 영 또는 영혼(2분설적 표현)이 죽고 남은 부분은 물질뿐일 수밖에 없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불신자의 마음의 활동은 무엇으로 볼 것인가? 인간의 마음은 바로 "신비한 물질"인 것입니다. 마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영물로 된 영을 민첩하게 또 유기적으로 잘 받들어 줄 수 있는 탁월한 도구입니다. 그러므로, 일반 저급의 물질과 달리 고급의 탁월한 기능을 가진 물질이요, 또 물질계에 주인으로, 하나님과 연결되어 하나님의 모든 은혜를 만물에게 전달하는 이 영을 전적 상대하기 때문에 그 재질은 물질인데 영과의 관계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신령한 물질, 신비한 물질이라 하는 것입니다.

물론 마음을 영으로 보는 주장에도 그럴 만한 이유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어두워진 인간에게는 하나님과의 영적 면에서 타락하여 인간 정신, 마음 즉, 도덕 수준으로 타락하였고, 이제는 육체의 말초신경이 원하는 대로 타락하게 되었으니 마음 안에 있는 영의 세계를 느끼고 접할 수 있는 깬 마음, 밝아진 마음이 없는 인간으로서는 제 눈에 보이지 않고 잘 느껴지지 않는 영의 세계를 모르는 것이 당연합니다.

⑷ 만물의 영장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만물은 당신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우리의 무대요 활동 세계로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모든 것을 은혜로 받아 우리가 충만하고 이 충만으로 만물을 충만케 해 주는 이 영원무궁에 하나님 다음가는 영광과 찬미는 누가 누릴 것이며, 누구의 것이겠는가?

자존하신 하나님 당신은 완전자이니 홀로 계셔도 부족이나 외로움이 없으시고, 우리를 만들지 않으면 안될 필요성이 있어서가 아니라,전적 완전자 당신이 스스로 당신을 닮은 존재를 하나 만들어 그에게 당신의 모든 것을 주시기로 당신의 기쁘신 뜻을 정했으니 이것이 모든 예정과 창조와 영원 섭리의 시작입니다.

이래서, 당신이 당신의 전부를 우리에게 줌으로써 스스로 기쁨을 가지듯이, 우리는 당신의 것을 가지고 당신을 본받아 당신처럼 다른 존재에게 우리의 전부를 줌으로써 당신의 기쁨을 맛보고 이 기쁨으로 우리의 기쁨을 삼아 영원을 누리도록 만드는 것이 하나님 목적이며, 이 일에 필요한 무대와 활동 세계가 있어야 할 것이니 이것이 곧 만물 창조의 이유입니다.

그러므로, 같은 피조물이지만 일반 만물과 사람은 그 위치와 가치성이 당연히 다릅니다. 비록 영물인 천사라 할찌라도 이 일에 하나님의 심부름하는 점L지 우리와 같이 하나님의 전부를 투자한 목적 대상은 아닙니다.

이런 영원을 목적하셔서 당신의 직접 목적 대상인 우리와 우리의 활동 무대가 되는 만물을 만드셨으니 만물의 영장이 누구이겠는가? 곧 우리인 것입니다. 또한 영원에 조금이라도 흠이 없게 하시려고 세상을 하나의 준비처로 이 일에 숙달장, 연단장, 훈련소로 두신 것이니 "유업을 이을 자가 모든 것의 주인이나 어렸을 동안에는 종과 다름이 없어서 그 아버지의 정한 때까지 후견인과 청지기 아래 있다"고 하셨고, 우리의 영원에는 "세상과 천사도 판단"할 실력자로 기르시는 것입니다(갈4:1, 고전6:2-3).

이런 우리들이니 하나님을 상대하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받아 가질 "영"이 있어야겠고, 이 영이 곧 사람의 주격이며, 이 영을 수종들고 만물을 상대할 물질로 된 육이 있는데 사람 안에서 영과 몸을 연결하는 것이 물질 중에서 신비한 물질, 영과 연결을 갖고 몸을 붙들어 쓰는 것이 마음입니다.

⑸ 생령이 된지라

삼위일체 하나님의 목적 대상이 된 우리들, 이를 위해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영을 가지고 하나님을 상대하며 육인 심신을 가지고 만물을 상대하여, 만물의 영장 노릇하는데 필요한 창조가 창1:26의 인간 창조임을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이런 목적과 필요성에 따라 만든 첫인간 아담은 하나님 창조사역에 제일 중심이므로 창세기 1장과 2장에 아담 창조에 대한 기사를 특별히 자세한 설명을 중복적으로 하신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라고 했는데 여기도 물질로 된 육을 만드신 일만 기록되고 영의 창조가 생략된 것은, 아담 이후 모든 인간이 육의 탄생과 함께 일일이 설명치 않아도 영을 동시에 창조하여 영육이 하나된 존재로 세상에 보내시니 특별히 영의 출생에 대해서는 기록하지 않았다는 것뿐이지, 영 없이 육만 따로 만든 것이 아닙니다. 예컨대, 우주 창조만 특별히 자세하게 기록하고 영계 창조는 따로 기록하지 않음과 같은 것입니다.

이제 아담의 영과 심신이 완성품으로 만들어졌으므로 이 완성품에게 여호와 하나님께서 생기를 불어 넣으셨으니 하나님의 역사가 이제 최초로 이 아담에게 임하게 되었고, 창조된 아담이 하나님에게 연결되어 동작이 시작하게 되었으니, 생령이 된 것입니다. 마치, 형광등을 다 조립하고 전기선까지 발전소에 연결을 시킨다음 이제 스위치를 넣어 불이 들어오게 됨과 같은 것입니다.

또 성경은 이렇게 하나님과 연결되어 움직이게 된 첫사람에게 광대한 당신의 목적대로의 역할을 시험해 보시되 "각종 들짐승과 새들의 이름을 어떻게 짓나" 하는 것으로 작은 시험 하나를 해 보셨습니다. 그렇게 해 본 결과 "아담이 일컫는 바가 곧 그 이름"이 되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곧, 하나님과 연결된 영이 하나님의 뜻을 찾아 자기의 마음에게 감동시켜주고, 마음은 자기 영이 자기에게 감동시켜주는 하나님의 뜻을 그대로 몸을 통하여 발표하니 아담의 짓는 그 이름이 아담 단독의 주관 행동이 아니라 하나님과 연결된 행동이었습니다. 이 모든 것을 함축한 기록이 바로 아담의 짓는 이름대로 이름이 되어졌다고 성경이 말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움직여지는 인간이 바로 하나님이 목적하신 인간의 모습이었고 이렇게 영원토록 움직이도록 첫사람을 만든 것이었습니다. 만일 아담의 이름 짓는 것이 자기 주관대로의 것이었으면 그 이름이 바로 시행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아담은 이름 짓기 시험으로 합격한 그 존재 그대로 영원히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만물을 하나님 단일 통치로 지키고 다스리면서 살면 영생의 기쁨을 누리게 된 것이었습니다.


2) 인간의 3대 구성 요소

⑴ 영

① 영물의 일반적 성질

영은 영질로 만들어진 영물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실 때 영계는 영질로 우주계는 물질로 만드셨고, 영질로 된 영으로서는 천군 천사들과 또 타락한 천사, 악령이 있고, 인간의 영이 있습니다. 물질계인 우주에서 활동하나 물체가 아slam로 보거나 만지거나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천사는 하나님의 특별 심부름으로 우리 육안에 보이게 나타날 때도 있고, 악령도 나타나 보일 때도 있으나 이는 신앙이 어리고, 어둡던 때에 외부 보이는 형식으로 나타내 보이신 것이지, 성경에 천사나 악령을 보이는 형체로 기록한 그 형체가 바로 천사인 것은 아닙니다. 천사는 영물이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②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음

영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12가지 속성이 곧 하나님을 나타내는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하나님의 12가지 속성은 자존성, 완전성, 영원불변성, 단일성, 지혜, 지식, 선, 사랑, 의, 거룩, 진실, 주권입니다. 그중에 자존성은 하나님만 가지고 계신 것이요, 완전성은 하나님의 완전성이 원형이요 우리는 그 완전에 모형적 완전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과 같은 완전일 수는 없으나 영원히 이 완전을 향하여 나가는 것이 우리의 영입니다. 영원 불변성에 대해서는 영도 범죄하거나 탈선하는 변질은 없고 하나님을 향하여 영원히 자라가는 성장, 발전에 의미에 있어서는 불변일 수는 없습니다. 이는 완전성과 연관있는 부분입니다. 단일성은 영에게도 그대로 있어 물질로 된 심신과 같이 복합체가 아닙니다. 따라서 심신으로 된 우리의 육과 같이 중복적, 점차적인 단계를 거치지 않고 단번에 죽음이요, 반대로 중생 때에도 단번 중생인 것입니다. 이제 말한 4가지 외에 8가지는 비교적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이어서 ‘신론’에서 자세하게 살피기로 하고 여기서는 설명을 생략 하겠습니다. 사람의 영은 하나님의 형상을 그 모형으로 만들어진 것임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③ 인간의 영은 하나님만 사용

인간의 영은 하나님의 속성을 따라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존재이므로 하나님 외에는 사용할 수 없습니다. 만일 하나님과 연결이 끊어지면 즉시 생명이 끊어지고 활동이 멈추어버리는 것이지 심신처럼 딴 주인이 쓴다고 쓰여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떠나 변질된 악령에게는 이용당할 수도 없고 당하지도 않는 성질의 것이 영입니다. 또 영 스스로도 죄를 짓거나 생각할 수도 없습니다.

④ 영은 심신의 주격

영은 심신의 주격입니다. 심신은 영의 소유격으로 영의 지도를 받아 살도록 되어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에게 있어서 "참자기"는 곧 "영"인 것입니다. 그러나 심신은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탁월한 사고와 활동을 가진 소유격으로서 영의 지도를 받아 움직일 때에 아주 탁월한 기능을 발휘합니다. 스피커처럼 단순한 전달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영이 마음에 비추어주면 과거에 대한 기억, 현재의 판단 등 모든 면에 아주 탁월한 것입니다.

⑤ 영은 단일성

영은 단일성입니다. 특별히 이 면을 한번 더 강조하는 것은 하나님이 목적을 이루시기 위해 인간을 만들되 타락의 순서를 거치도록 하였으니 타락의 순서를 거쳐서 다시 더 온전한 구원으로 나아가는 이 면을 깨닫는 데에는 영의 존재와 영의 단일성을 밝히지 못하여 많은 교리적 모순들을 가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영이 단일성이기 때문에 심신의 범죄로 단번 죽고, 이제 대속으로 중생되는 것도 영이 단일성이기 때문에 단번 중생입니다. 동시에 예수님의 대속으로 대속이 되었으니 단번에 완전, 영원 해결입니다. 이것은 영에게 해당된 문제요, 심신의 대속은 중복적입니다. 곧 기본구원, 건설구원 문제에 연관되어지는 핵심적 문제입니다.

⑵ 마음

① 마음은 신비한 물질

마음은 신비한 물질입니다. 그 말은 마음은 영물이 아니라 물질이라는 말입니다. 따라서, 영과 마음과 몸 셋을 실체적으로 분류하면 셋이지만 무엇으로 이루어졌느냐 하는 기준으로 나누면 물질로 된 마음과 몸을 하나로 묶어 "육"으로 말할 수 있으니 곧 영육의 사람으로 말할 수 있습니다. 마음을 영적 존재로 보는 데에서 많은 혼란이 생기고 있습니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대부분의 3분설 학자들이 영과 영혼을 한 존재로 보고 또 2분설 학자들은 마음을 영혼과 한 존재로 보고 단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많은 논쟁이 용어 사용의 오해와 착각 혹은 불일치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이런 역사적 배경이 이 시대의 신학자나 교회들까지에도 그대로 답습이 되고 있어서 삼분론에 대한 주장이 나오면 상대방의 깨달음을 주장하는 그대로 한번 들어보지도 않고 역사적 가설과 선입관에만 붙들려서 상대방이 하지도 않은 주장을 한다고 단정지워놓고 그 주장이 틀렸다고 논리를 펴나가고 그래서 심하면 "이단"이라는 말도 서슴치 않고 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단에 대한 정죄는, 이설에 대한 비판은 두가지 면을 동시에 가진다는 것을 알고 교리를 연구할 때는 삼가 조심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는, 실체적 이단을 성경으로 밝혀 옳은 노선을 제시한 사람에게는 하늘의 선지자상이 있을 것이요, 우주보다 귀한 생명을 수없이 건지는 귀한 일이 됩니다.

둘째는, 감추인 이단을 찾아내는 것이나 드러난 이단의 잘못된 교리를 진리로 바로 비판하려는 정도에서 벗어나 "이단 비판"을 학자의 학적 명예와 공로 인정을 받으려는 이익의 재료로 쓰려는 경우들도 있습니다. 나와 다르기 때문에 상대방은 이단이 되어야 한다는 전제를 먼저 세워놓고 그다음 그가 이단이 되어야 함에 필요 조건을 갖추어 나가는데 필요한 문제점들을 스스로 조립해놓고 이제 이단 정죄를 일삼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래서 자기 스스로 조립한 이단과 자기가 이단이기를 원하는 상대방을 일치시켜 나가다가 이 일에 어려움이 생기면 "이단 비판의 학자에 대한 이단들의 무고, 박해"라 하면서 자기는 "영광의 고난" "십자가의 길"을 걷는다고 하는 일들이 적지 않습니다.

② 영에게 소속된 소유격

마음은 영에게 소속시켜 영이 사용하고 움직이도록 만들어진 신비한 물질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은 혼자 독립할 수 없습니다. 즉, 원래는 자기의 영에게 소속되어 피동되도록 되어 있었고, 악령이 인간을 범죄하게 하여 영이 죽은 후에는 악령이 영의 자리를 대신 차지하여 자기의 심신을 움직이고 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 없이 자기 마음대로 산다고 단순히 생각하기 쉽습니다. 자기 의식으로는 자기 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 무엇을 한다고 생각하고 어느 무엇에 자기 마음이 붙들려서 움직인다고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이렇게 생각하지만, 실은 하나님 없이 불신자로서 살 때나, 혹은 예수 믿은 후에도 하나님 없이 살 때에 자기 마음은 단독이 아니라 악령이 들어와 마음을 붙들고 그 마음에 악령이 원하는 마음이 생기도록 했습니다.

다만 악령도 우리 영도 우리의 마음을 통하여 역사하기 때문에 신앙생활 하는 것도 자기 마음, 신앙생활 안하는 것도 자기 마음, 어쨌던지 자기 마음대로 사는 줄 알지만 실은 그런 마음이 생기게 된 원인이, 그 보이지 않는 이면에 이 두 가지 영이 있어 영들이 넣어주는 대로 그렇게 마음을 가지게 되어있습니다.

말씀대로 살고 싶은 마음이 생겨서 성경을 펴들었습니다. 내 마음 단독의 행위인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고자 하는 모든 마음 안에는 성령이 우리 영을 통하여 우리에게 그 마음을 주셨기 때문에 그 마음이 생겨지게 된 것이며, 또 마음에 하나님 없이 자기 육체의 욕심대로 죄를 하나지었습니다. 그것도 마음 단독이 한 것이 아니라 그 마음을 악령이 붙들고 있어 그 마음을 주니까 그 마음을 가진 것입니다.

이래서 순간도 빈틈없이 우리의 영과 악령은 우리의 마음을 서로 차지하려고 투쟁하는 바 이 투쟁은 죽는 그날까지 늘 순간적으로 교차하고 있습니다. 만일 내 마음에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있다면 그 순간은 바로 악령이 나를 붙들고 있는 시간인 줄 알아야 합니다. 병에 물을 채우면 자연히 공기는 밖으로 다 나갑니다. 만일 물을 부어버리면 진공으로 있는 순간은 조금도 없이 물 없어지는 그 순간 공기가 병에 들어와 있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우리의 마음은 순간도 비어 있지 않고 영과 악령으로 교차되고 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마음이 영에게 소속되어 움직이는 존재요 독립할 수 없는 존재인 동시에 어느 주인을 받드느냐 하는 것은 "자유성"을 가지고 심신이 결정하는 것입니다. 영에게 지도받아 영과 하나되어 움직이느냐, 아니면 영을 배척하고 악령을 자기의 주인으로 모시느냐 하는 결정은 자유입니다. 이것이 만물과 다른 인간의 또한 모습입니다. 이 자유성을 주신 것은 다른 만물과 달리 우리에게 대한 하나님의 소망을 아들이 아버지를 기쁘시게 하고 아버지를 받드는 것처럼 하는 이런 관계를 원하시지 장난감과 같고 꽃밭의 꽃과 같이 주어진 한 가지 기능만을 하는 자유성 없는 존재로 우리를 목적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이러한 자유성은 기계나 동물과 달리 부자간의 관계같은 이런 인격적 관계를 가지게 하는 중요하고도 핵심적인 요소이지만 동시에 책임성이 따릅니다. 그 자유성으로 심신이 영에게 자원하고 유기적으로 하나가 되면 기계나 만물에 비할 수 없는 하나님의 영광의 자유함에 이르지만, 그 자유성으로 심신이 악령을 택해 버리면 그로 말미암아 만물에게 없는 심판과 영멸이 따를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왜 하나님이 이 위험한 자유성을 인간에게 주셨을까? 자유성을 가지는 존재라야 인격적 교제와 영광의 자유가 있기 때문이며, 만일 자유성으로 범죄를 하더라도 하나님에게는 구원의 방법이 있기 때문에 이 길을 내셨습니다. 범죄하여도 살릴 길이 있으니 일부러 자유를 주시고 인간에게 범죄까지도 허락하신 것은 자유성으로 범죄하고 범죄로 죽게 되면 여기서 하나님이 인간되어 하나님의 전부를 우리에게 줄 수 있게 되는데 하나님이 사람되어 우리를 살리는 이 전적 은혜가 바로 하나님의 사랑이며, 이것이 완전자가 다른 존재에게 자기 모든 것을 다 줄 있는 방법인 줄 알기 때문에 이 방법을 택하신 것입니다.

③ 마음은 복합체

마음은 단일성으로 된 것이 아니라 "복합체"로, 또 여러 "요소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물론 여기서 "복합체"라는 말은 장소적, 공간적 의미에 있어서 복합체라는 것은 아니며, 또한 "요소들"이라는 말도 물량적 갯수라는 의미로 보아서도 안됩니다.
마음 안에 요소들로는 욕심, 소원, 감정, 의지 등이 있다 하겠고 욕심도 그 종류가 무수하고, 감정 역시 그러합니다. 이래서 고요히 눈을 감고 우리 마음의 세계를 차근 차근 새겨보고 연구를 해 보면 우리의 영안이 밝아지면서 이 마음 안의 복잡함이 가히 광대한 우주보다 더 복잡함을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④ 마음에 대한 성경적 사용

성경에는 우리의 마음을 여러면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여기서는 특히 마음과 관련하여 오해나 혼동이 많은 표현 두 가지만 잠깐 살펴 보겠습니다.

㉮ 양 심

양심은 마음 중에 제일 밝고 깨끗한 부분으로 마음의 눈과 귀가 되어 모든 것을 비판 평가합니다. 그러나 이 양심은 지식의 지배를 받기 때문에 독자적인 자기 마음에 가진 지식 범위를 넘어서는 활동은 하지 못합니다. 따라서 어떤 지식의 지배를 받느냐에 따라 그 양심의 종류도 무수하다 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 불교 지식에 빠진 사람은 불경적 양심을 가지게 될 것이고 공산주의 사상에 빠진 사람은 그 양심 역시 공산 혁명적 양심이 됩니다.
요는 양심은 영이 아니라는 것을 조심해서 구별해야 합니다.

양심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지배를 받아 성령의 감동대로 움직이는 양심을 신앙양심이라고 합니다. 이 양심이 비교적 인간의 심신 중에서 제일 깨끗하고 바르기 때문에 양심을 영이라고 생각하기 쉬우나 어디까지나 양심은 마음입니다.

㉯ 영 혼

성경에 영혼이라 할 때의 영혼은 여러가지 원어 사용상의 복잡함이 있지만 둔탁한 인간 표현에 무한한 하나님의 진리를 담아두는 것이므로 한정된 문법과 문자에 스스로 얽매여 진리를 얽어매고 제한해 버리는 죄를 범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성경은 성경으로 해석 해야 합니다. 성경 표현의 사전은 오직 성경이며, 성경에 명시되지 않은 표현은 조명영감에 의지해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성경 전체적 사용에서 보면 "영혼", "심령", "혼" 등은 마음을 각도에 따라서, 혹은 작용에 따라서 표현한 것입니다. 즉 영이 아니라 마음입니다.

⑶ 몸

① 몸은 물질

사람의 몸은 물질로 되어졌습니다. 물론 가치적으로나 기능적으로는 어떤 만물과도 비교할 수 없는 탁월한 것입니다. 비록 사람의 몸 자체는 물질이지만 이 몸은 만물을 충만케 하는 일에 제일 일선과 외부를 맡고 있어 이 일에 적합하도록 하나님께서 만드셨습니다. 즉 한편으로는 마음을 상대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만물을 상대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몸이 물체로서 가진 기능과 활동, 특히 마음과 오묘한 일체를 이룬 이 관계가 요즘 과학의 발달로 그 일부분이 조금씩 알려지고 있습니다. 같은 물질로 되었으나 신비롭기만 한 마음과 그런 마음에 의하여 움직이는 몸, 그리고 둘 사이의 상호 관계성, 이런 면에 대하여도 성경이 알려주시고 또 자연계시로 알려주시는 만큼 아는 데에서 우리의 신앙도 자라가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이 연구하여 안 것이 하나 있으면 그 알게 된 하나의 지식 속에는 더 깊고 더 광대한 비밀의 세계가 새로 열리고 있어, 지금까지 알게 된 자연계시 정도로도 우리의 마음은 가히 광대하고 큰 우주라, 몸은 작은 우주라 할 만합니다.

② 몸은 독립 존재가 아님

마음과 마찬가지로 몸도 독존자가 아닙니다. 독립적인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마음에 속해서만 움직입니다. 만일 몸이 마음에 붙들려 움직이지 않고 독자적 활동을 한다면 이미 정상의 사람이 아닙니다. 이래서 영은 사람 안의 주격, 마음과 몸으로 된 육은 영의 소유격, 육안에서는 마음이 주격, 몸은 소유격, 그러므로, 영이 주격되어 움직이는 사람이 믿는 성도의 정상적 상태이고, 믿는 사람이라도 주격인 영에게 움직이지 않고 다른 영, 곧 악령에게 움직여지는 성도의 심신은 이미 신앙 면에서 보면 미친 사람입니다. 정상의 사람이 아닙니다. 육으로만 사는 사람의 몸이 주격인 마음에게 붙들리지 않으면 이 사람은 정신 이상자입니다.
어쨌든지 하나님이 만드신 인간은 영, 마음, 몸이 한 존재 한 인격이 됨과 동시에 내적으로는 주격,소유격의 관계로 되어지는 것이 정상입니다.

참고로, 물론 정상의 사람이라면 영과 마음, 몸이 각각 자체로도 상호관계로도 이상이 없어야 합니다. 셋 중에 어느 부분이라도 이상이 생기면 그 이상 있는 상태에 따라 사람은 사람이라도 앞에 붙는 말이 달라집니다.

영은 단일성이라 죽은 영, 산 영으로만 구별하고 이에 따라 신자, 불신자로 나눕니다. 마음은 복합체라 해당되는 부분의 이상에 따라서, 정신병의 강약, 종류가 달라집니다. 몸 역시 복합체라 지체와 기관, 그 작용에 따라서 여러가지 불구자, 병자가 있게 됩니다

③ 몸은 복합체

몸은 복합체입니다. 물체이므로 양과 수로서 계산이 가능합니다. 물리, 곧 물질의 이치에만 맞으면 떼낼 수도 있고 붙일 수도 있으며 교환도 가능합니다. 어느 정도까지 가능할 것인가? 하나님이 내신 물질의 이치에 가능한 일이면 다 할 수 가 있는 것입니다. 과학이 어떤 인체에 대한 놀랄 일들을 해낸다 해도 몸이 물질이며, 복합체라는 사실만 붙들고 있으면 놀랄 일들이 아닙니다.

현재 생체공학의 발전을 두고 기독교 교리 학자들이 하나님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하는데 이는 사람의 인체와 마음이 둘 다 물질로 되어 있고, 물질은 물질의 법칙인 물리에 따라 규율 된다는 초보적 교리를 몰라서 오해한 것입니다. 없는 데에서 만든 창조는 자존자만 하실 수 있으나, 창조된 세상의 재창조나 변형 변경 문제는 하나님께서 물리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④ 몸에 대한 성경적 사용

몸에 해당된 표현들이 성경에는 많이 쓰여지고 있습니다. 혹자들은 원어의 단어적 해석에 근거하여 여러가지 복잡한 설명들을 하고 있지만 성경에서 사용하는 단어는 생물학적 용어들이 아니라 우리에게 구원의 이치를 가르치고 깨닫도록 하시기 위한 표현의 방편이기 때문에 성경의 단어는 성경 전체에서 그 의미를 정의해야 합니다.
특히, 몸은 마음과 함께 물질로 되어있는 육이기 때문에 성경에서는 때로는 물질과 영으로 기준삼아 사람의 부분을 기록할 때는 몸과 마음을 혼합해서 한마디로 대표 표현하는 수도 있고, 또 몸만을 가리키는 표현으로서 몸과 마음 둘 다를 표현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래서 사람은 무엇으로 되어졌느냐에 따라서, 영, 육 둘로, 또 몇 가지 실체로 되었느냐에 따라서 영, 마음, 몸으로 나누어 종합해서 요약 정리를 한다면 성경에 모든 인성에 대한 표현들에 대하여 정리가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⑷ 영, 마음, 몸에 대한 종합 정리

① 마음은 복합체 영은 단일체

2분설에서는 마음을 영, 영혼, 혼이라 하여 마음의 동의어로 사용 하거나 대체 표현어라고 설명합니다. 그러면 겔18:20의 말씀대로 범죄한 사람은 영혼은 죽고 몸만 가지고 살아야 한다는 말이 됩니다. 또 그들이 삼분설을 공격할 때 사람의 영혼은 단일체로서 물체와 같이 분리할 수 없고 따라서 범죄에 일부가 참여하고 일부는 참여 않을 수 없다고 합니다. 이것이 모순 아닌가라는 이분설의 주장에 대하여는 그들의 자기 논리로 적용해도 마찬가지 입니다. 즉, 이분설은 몸과 마음만 가지고 사는 것이 사람인데 믿는 사람은 마음의 죽어 있던 부분이 다시 중생 되었다고 하고 안 믿은 사람은 그 마음에 여전히 죽어 있는 부분이 있다고 주장을 합니다. 그렇다면 이분설을 주장하는 이들은 사람의 마음이 일부는 죽고 일부는 살아 있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니 이는 영원히 단일성에 모순되는 주장입니다.

범죄한 후에도 영혼이 살아있으니 범죄로 죽는 부분이 있고 여전히 살아있는 부분이 있다면 이는 삼분론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할 때 늘 사용되는 원리, 즉 영혼의 단일성에 배치되는 문제입니다. 마음은 복합체이며 단일성의 존재는 실체는 영입니다.

② 마음의 죄의 여러가지 형태

실제 우리 마음을 볼 때 우리 마음은 하나의 작은 우주라 할 만큼 복잡하며, 또 성경도 우리 마음 속에 여러 다른 부분들이 있어 서로 싸우고, 의논도 하고 따지기도 하는 것을 말씀했습니다. 또한 육체의 욕심을 버리라, 음심을 버리라, 교만한 마음을 버리라 등의 말씀에서 마음의 여러 면을 볼 수 있습니다.
혹, 이런 것들을 실체적 부분들이 아니요 단일체의 여러 가지 작용들, 혹은 활동들이라 주장하면서 영혼은 물체와 달리 여러 지체들의 복합체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이분설 학자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면도 영혼을 단순히 물체에 단순 비교함으로 나온 오해입니다. 마음은 신비한 물질이라 물체와 같은 물량적, 장소적, 수치적, 계량적, 물리적으로 구분되어지지는 않지만 마음 차원의 지체들로 되어있습니다. 신비한 물질인 마음의 요소들을 "지체"라 할 때는 육체에 비유한 표현일 따름이요, 육체와 동일한 기준으로 나뉘어지는 부분들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면, 육체의 지체들이 있듯이 마음의 지체들, 부분들 요소들은 무엇인가? 예컨대, 욕심(정욕, 물욕·····) 정서(감정, 기쁨, 쾌락····· ) 양심, 의지, 이지····· 등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컨대, 성경에서 하늘의 보좌라 한 것을 조선시대 임금의 앉는 금방석, 나무 의자를 연상하면 곤란하다는 것입니다. 고전15장 부활의 형체에 대해서도 해, 달, 별, 물고기·····등으로 표현하기를 땅에 붙어 땅만 알고 사는 어두운 심령의 인간에게 신령한 영계의 실체를 알리기 위해 비유로 말 한 것입니다. 신령한 영계의 실상이 지상에는 없기 때문에 지상에 자연계시로 주신 것들을 통해서 하나님이 깨닫게 해주시는 감동의 역사가 있으면 알 수 있도록 하나 그림자로, 예로, 비유로 나타내 보이신 것입니다. 그래서 마음의 "지체"라 하는 이 표현은 신학의 상식 수준에서 따로 말하지 않아도 알 만한 이런 문제를 가지고 말꼬투리를 잡아 논쟁을 위한 논쟁 혹은 상대방 표현의 실체를 알지 못하고 비판자의 주관적 오판을 근거로 비판을 시작한다면 이는 문제가 있는 자세입니다.

③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영

몸과 마음은 하나님의 형상이 아닙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것은 무엇인가? 영입니다.
인간을 이렇게 만든 것은? 바로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당신을 닮은 존재를 만들어 영원히 당신의 것만을 받아 당신에게만 감사하고 당신을 향하여 자라가게 하는 것, 이 목적이 자존하신 하나님의 의지 속에서 이루어진 하나님의 목적이요 이 목적의 대상이 바로 인간입니다. 이 인간에게 만물을 맡겨 하나님은 인간을 다스리고 인간은 한 분 하나님의 뜻대로 만물을 영원히 하나님의 충만으로 충만시켜 영원히 나아갑니다.

인간의 어두운 심령으로 볼 때 영원한 하늘나라는 노래 부르고 일없이 놀고 지내는 영원이 라고 영원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둔탁하고 세속에 가리운 수준에서 영원한 천국을 세상 자연의 것으로 상징, 비유하다 보면 한계가 있습니다. 물질 세계에서도 100년 전과 후가 많이 달라지는데 또한 그 속에 과학의 이치를 아는 정도에 따라 일반인들이 알지 못하는 광대하고 오묘한 세계가 있어 그것이 무저갱(無底坑)이 되어 있거늘 물질에 탁월한 영의 세계 영원히 무한하신 하나님을 향해 나아가는 그 세계의 광대함은 영안이 열린 만큼 느끼고 깨달을 수 있는 것이라 세상 수준에서 영원의 영계를 논하는 사람은 다시 이면을 가지고 성경이 알려 주시는 대로 알아 나가야 할 것입니다.

예화를 하나 소개 한다면 시골 노인 부부가 대화하기를 ‘세상 돈을 다 합하면 얼마나 될까?’ ‘아마 100만원도 넘을 거요’ ‘무슨 모르는 소리, 100만원밖에 안 된다니?’ 세상 돈을 다 합하면 200만원도 넘을 거요‘.

의사가 보는 인체와 평범한 사람이 보는 인체는 차이가 있습니다.
평범한 사람에게는 인체는 사지와 오장육부 뿐이지만 의사에게는 1000억의 뇌세포의 활동, 신경의 조직과 작용, 지구를 2-3바퀴 두를 수 있는 길이의 혈관 등이 있으니 인체를 작은 우주라고 합니다.

④ 영은 주격, 심신은 소유격

하나님의 목적이 영육이 하나된 존재로 인간을 만들어 만물의 영장으로 운영케 하는 것임을 위에서 살펴 보았습니다. 이제 사람의 내부 구조를 보겠습니다. 하나님의 이러한 목적에 맞게끔 되어있음을 곧 알게됩니다.

인간의 몸은 만물 속에 거하며 만물을 직접 상대할 수 있게끔 되어 있습니다. 짐승의 육체나 새, 물고기 등의 육체나 고급, 저급의 차이만 있을뿐이지 본질적인 차이는 없습니다. 식물의 구조와도, 심지어 무생물인 돌, 흙과도 본질적인 차이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몸은 돌, 흙에 있는 성분이 양식도 되고 몸의 건강에 필요한 치료제도 됩니다.

식물은 이들보다 더 좋은 양식이 되며 인간의 육체와 제일 가까운 짐승, 새, 물고기 등 짐승들의 육체가 제일 좋은 양식이 됩니다. 같은 재질이기 때문에 그러한 합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사람되는 것은 육체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물질과 사람의 몸은 본질적인 차이는 없습니다.

그러면 마음은 어떤가? 짐승에게 없는 것이 마음이요, 따라서 마음이 사람되는 본질적인 요소인가? 이도 역시 정도 차이요 수준 차이지 본질적으로는 짐승에게도 있는 고급의 물질일 뿐입니다. 과학이 발달하여 식물에게도 미약한 정서가 감지된다고 합니다. 확인되지 않은 것은 제외하고 확인될 수 있는 제일 근접한 것이 짐승입니다. 짐승에게도 인간의 마음의 세계가 가진 모든 요소들을 정도 차이지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지 : 짐승도 지(知)가 있습니다. 그들에게도 추억이 있으며 오감으로 인지하여 알게 된 사물에 대한 기존 지식이 있습니다.
정 : 짐승도 감정이 있습니다. 애정이 있으며 복수가 있고 욕심이 있 습니다.
의 : 짐승에게도 계획, 대비, 연구등등 의(意 )의 요소가 있습니다.

다른 피조물, 곧 물질로만 이루어진 물질계에 한 피조물인 짐승에게도 있는 몸과 마음은 곧 물질입니다. 마음은 신비한 물질이라고나 할까? 짐승은 본능뿐이라고 하나 이는 자세히 관찰해 보지 않은 결과요 영을 모르고 마음이 영이라는 단정에서 인간에게만 있는 요소는 짐승에게 없어야 한다는 오해의 가설에서 비롯된 선입적 명칭 부여에 지나지 않습니다. 또 성경이 말하는 것 같이 "짐승의 혼은 아래로 내려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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