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1.총공회내부의 신앙성향 연구 - 1997.12.1.
서기
0
10
2023.03.13 21:24
신앙강론 971201 1997.12.12.
한국교회사에서 살펴본
총공회 노선 분열
백영희목회연구소 연구부 이 영 인
1. 한국교회 분열사의 대강
한국교회의 특징은 1. 교단으로는 ‘장로교’ 2. 신앙적으로는 ‘보수’ 3. 열심으로는 ‘분열’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목사님께서는 지난 과거 많은 설교에서 장로교의 분열역사를 수도 없이 언급하셨고, 또 자연계시인 세상정치를 우리 교회의 신앙과 비교하며 신앙에 많은 징조들로 인용하신 것을 설교록 중에서 볼 수 있을 것이다. 목사님 없는 10년 세월을 눈 앞에 두고 ‘총공회 노선’의 현재와 앞날에 많은 근심들이 있는 것 같다. 한국 장로교회사와 세상이라는 자연계시를 잠깐 살펴본다면 짙은 안개가 많이 걷혀지고 우리 총공회의 앞길이 보이리라고 생각한다.
1)해방후 장로교의 분열:
신사참배 6년 환란 속을 헤매던 한국교회가 8.15 해방을 맞이할 때 출옥성도들은 큰 오판을 하고 있었다. 불신 세상까지도 ‘친일’을 지탄하였으니 신앙의 근본을 팔아먹은 신사참배 찬성 측은 교계의 죄인이 되고 신사참배 반대측은 교회의 주도권을 완전히 잡을 줄 알았다. 극소수 진리노선을 걷는 종들이 한국교회의 대세를 잡을 줄로 착각을 하였던 것이다. 신앙 떠난 교회는 육체의 숫자와 육체의 힘이 지배하는 줄을 몰랐던 것이다.
모든 것은 표대결로 결정을 지웠고 ‘다수’라는 표의 힘으로 장로교 총회에서는 신사참배를 찬성했던 측이 오히려 거부했던 사람들로 중심이 되었던 총회 내의 ‘고신측’을 1950년에 제명해 버리고 말았다. 한국장로교가 둘로 나뉘어지는 첫 싸움이 되었고 동시에 고신의 출발이 되었다. 장로교 내부에서 소수였던 고신을 갈라낸 총회는 신앙노선 문제를 두고 이번에는 ‘기장측’을 1954년에 다시 분리하게 되고 마지막으로 세계기독교통합운동 참가 문제를 두고 ‘통합측’과 1959년에 다시 분리를 하게 되었다. 고신, 기장, 통합을 차례로 갈라낸 총회는 일차 분리되었던 고신과는 총회 내에서 신학과 신앙이 동일했던 그룹들이었으나 신사참배라는 사건에 대한 처리문제로 나뉘었던 것이라는 인식에서 1960년 다시 합동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2년을 채 못채워 1962년 다시 갈라지게 되었다.
2)노선으로 살펴본 한국장로교:
현재 장로교는 그 교단의 숫자가 1백개를 헤아리고 있으며 비공개, 미확인 교단까지를 포함한다면 2백여개가 넘을 정도로 분열이 심하여 세계기독교사에 유례가 없는 정도이다. 모든 교단들은 다 ‘하나님의 원대하신 뜻과 진리’를 세우려다가 나뉘었다고 하지만 교권, 감정의 더러운 利를 위해서 나뉜 것이 거의 전부이다. 그러나 적어도 ‘신앙노선 문제’가 본질적인 원인이 되어 서로가 분열치 않을 수 없고 함께 갈 수 없게 되어 결국 분열되어 버린 예는 다음과 같이 3가지 정도로 나눌 수 있다.
한쌍의 부부가 이혼을 하는 사건에도 얼마나 많은 사연이 있고 억울한 과거가 너무도 많아서 책으로 적는다면 한권이 넘게 된다. 하물며 수많은 교회와 교역자, 그리고 소속 교인들이 교단분열을 통과하게 될 때는 어느 한 가정의 부부 이혼에 비할 정도이겠는가? 그러나 사연 많은 이야기를 다 들어 줄 필요 없이 신앙의 본질적인 면으로 분석을 한다면 그 신앙의 성향이 진리 보수적, 인간 수정적, 그리고 진리와 인간적인 입장을 적절히 배합하는 중립적 신앙으로 나눌 수가 있겠다.
①보수측:
모든 신앙을 성경중심으로, 진리를 앞세워 나가는 것이 옳다는 교단들이 보수측이며, 이들은 신사참배를 했던 안했던 신사참배는 잘못이라는 점을 명백하게 알고 죄를 지은 사람들은 꼭 회개를 해야 한다는 입장까지도 동일하다. 그러나 실제 어느 정도 회개를 해야 하느냐는 문제는 각자의 신앙 정도에 따라서 조금씩 달랐고, 회개의 정도와 방법에 따라서 재건, 고신, 합동으로 3분되었다.
②수정측:
성경과 신앙 문제를 ‘진리’가 아니라 ‘인간이 지킬 도덕이나 윤리’정도로 보는 신앙이다. 이들에게는 ‘신사참배’가 자기 양심이나 일반 국민들에게 부끄럽고 창피한 ‘실수’정도로 아는 이들이다. 그것이 무슨 천국과 지옥을 좌우할 문제가 될 수 없었고, 오히려 그것을 영생의 문제로 보고 서로 싸우는 것 자체가 인간적으로 볼 때 더 큰 죄가 된다는 도덕적 기독교, 실은 기독교가 아니었다. 오늘날 기독교 사회개량주의에 앞장서는 신앙들이며 바로 기독교장로교이다.
③중립측:
보수측의 ‘진리노선’과 수정측의 ‘도덕노선’ 사이에서 ‘중도를 지키는 노선’이다. 수정측과 같이 성경을 무시하는 것도 문제며, 보수측과 같이 도덕과 사회개량을 무시하는 것도 문제라는 것이다. 그래서 진리는 보수측에 가깝고, 도덕과 사회참여에 대하여는 수정측에 가까운 걸음을 걷는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들의 구호는 기독교라는 큰 울타리 안에서 모든 교회는 하나되는 것이 최선이며 교리문제나 행정문제 무엇이든지 타협과 양보로써 절충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에게는 분리나 분파라는 것이 제일 큰 죄가 되기 때문에 ‘통합교단’과 같이 중립 노선을 걷는 교단들은 제일 무난하고 분열없는 교단으로 운영되고 있다.
3)신앙노선과 처신의 차이
신앙본질의 문제인 노선별로는 3종류로 크게 나눌 수 있지만 한국교단이 분리되는 과도기에서 실제로 결정적인 요인은 이런 신앙본질 문제가 아니라 이권이나 감정 등 지극히 지엽적인 요인들이 더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신사참배 처리 문제라는 ‘진리’문제를 두고 싸워야 할 한국교회 지도자들이 실은 자기들의 교회담임권과 교단 운영권 등의 이권문제를 배경에 깔고 싸우고 나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신사참배 반대측에 설 보수적 신앙의 인물이 오히려 찬성측에 서서 활동을 하는 경우가 허다하게 되었다. 물론 보수측인 사람들이 상황판단을 잘못하거나 아니면 상황은 알지만 이권관계 등으로 인하여 수정측이나 중립측에 서는 경우도 있었으며 그 반대의 경우도 많았다.
그러나 1945년에서 1960년까지 약 15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결국은 신앙의 본질에 따라 보수와 수정, 그리고 중립 등으로 그 교단은 정체를 들어내며 뚜렷히 표시가 나도록 되었다.
1950년 고신측을 갈라낼 때는 총회측이 수정측 입장이었고 고신이 보수측 입장이었다. 그러나 총회 진영 안에는 장차 기장으로 정체가 드러날 수정측과 통합이라는 중립 노선을 표방할 세력들이 함께 섞여 있었다. 고신측에 의하여 피해를 입고 있다고 느끼는 측은 중립과 수정측 뿐이 아니라 보수측에도 있었고 따라서 고신측의 공격에 대하여 방어를 필요로 하는 공동 목표가 있었기 때문에 고신에 반대되는 측은 전부 ‘총회’라는 한 간판 속에서 일단 고신측 인사들을 제쳐 내버리는 데까지는 힘을 합했다.
그리고 고신을 배제하는데 성공하자 곧 바로 총회측 안에서는 3가지 성질의 신앙에 따라서 자연 분화가 이루어졌으니 보수측인 합동, 중립인 통합, 수정인 기장의 분립이었다. 그러므로 원래 보수측이었던 합동교단은 초기 고신과 분리에 고신의 반대측에 섰던 것은 고신과 신앙이 달라서가 아니라 ‘강단권’이라는 교권투쟁의 입장 때문에 일시 중립과 수정측에 연합되었던 것이었고 본질은 같은 신앙이었기 때문에 그후 수정측과 중립측을 분리해 낸 뒤 보수측 신앙만 남게 되자 고신과의 재결합이 추진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원래의 신앙 본질이 하나였기 때문이었다. 총회 내에서 고신제거라는 사건은 이미 10여년의 세월이 지나면서 순간적 감정이 사그러 들었고 신앙의 본질은 원래부터 같았으므로 자연히 두 교단은 통합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 통합이 실패로 돌아간 것은 노선 차이가 아니라 두 교단이 한 교단으로 합하면서 총회장 등 많은 권세직이 절반으로 줄어들면서 발생되는 교권문제가 원인이었다. 다시 나뉘면서도 그들은 각각 진리 투쟁의 필연이라고 주장을 하지만 객관에 있는 우리는 ‘동일 신앙에 밥그릇 싸움’이라고 이름을 붙혀주고 있는 것이다.
2. 신앙노선으로 본 총공회
현재 총공회는 서로가 진짜 총공회이며 다른측 총공회는 집을 나간 탕자들이라고 주장하는 가운데 4개의 총공회가 다음과 같이 존재하고 있다.
공식명칭 통상명칭 중심교회
.예수교장로회 한국총공회 부산측 서부교회
.예수교장로회 한국총공회 대구측 남정교회
.예수교장로회 한국총공회 거창측 안산교회
.예수교장로회 총회 서울측 잠실동교회
교단 형태를 갖추고 있는 곳이 4곳이며 기타 소속을 미루고 있거나 개교회주의 입장으로 소속을 규정하기 곤란한 교회들도 다수가 존재하고 있다. 제일 대표적인 보수노선은 부산측이며 수정노선은 서울측이며 대구측과 거창측은 중립의 노선을 취하고 있다.
한국장로교의 분열에서 수정측인 기장은 이름 자체를 ‘대한예수교장로회’에서 ‘대한기독교장로회’로 이름까지 완전히 바꿔버렸듯이, 수정측인 잠실동측은 총공회라는 이름까지 바꿔버렸다. 보수측과 중립측은 ‘대한예수교장로회’라는 동일한 간판 아래 정통성을 주장하기 위해 2백여개의 교단이 존재하고 있듯이 총공회 안에도 보수측과 중립측은 ‘예수교장로회 한국총공회’라는 ‘이름’을 3개 교단에서 서로가 꼭 쥐고 있다. 물론 일반 장로교는 정통성이라는 의미 때문에만 그 이름을 서로가 양보치 않는 것이지 이름에 교리문제가 첨부되지는 않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름 자체가 교리와 신조 그리고 행정노선을 담고 있기 때문에 수평적 비교는 곤란하다.
어쨌던 명칭에 연연치 말고 실은 우리가 눈여겨 살펴볼 일은 각 공회의 실질적인 신앙 노선이다. 바로 보수, 수정, 중립으로 대별되어 있다.
①보수측:
백목사님의 생사에 상관없이 우리가 걸어온 이 길이 옳고 바른 길이기 때문에 이 신앙노선으로 계속해야 한다는 측이 보수측이니 부산공회와 거창공회는 그 주창하는 내용이 보수측이다. ‘신사참배 처리’라는 사건에 발을 잘못 디뎌서 합동측이 고신과 나뉜 것이지 고신과 신앙이 달라서 합동이 된 것이 아닌 것 처럼, 거창측은 ‘비디오 예배’라는 문제를 바로 알지 못해서 반대측에 섰고 또한 분열 당시 분열 주도측의 의도를 잘못 파악하다가 수정측에 서는 실수를 한 것이지 그들의 신앙 노선은 보수측과 같다.
②수정측:
백목사님 생전에 걸어온 총공회 신앙노선은 크게 잘못된 길이고 따라서 백목사님의 신앙노선은 수정해야 한다는 교회들이니 백태영목사님을 중심으로한 서울측 교회들이다. 이미 1980년대 중반부터 이런 수정측의 주장은 총공회 내부에서 제기 되어 교리적으로는 심신의 기능적 분리심판에 대하여, 행정적으로는 총공회 기본 원칙들에 대하여 수정적 입장을 표명하였다. 백목사님 순교 직후 수정측에서 보수측을 향하여 총공회 간판을 바꾸려는 자들이라고까지 주장하고 나섰던 것은 그들의 신앙본질에서 나온 것이 아니고 교회 장악을 위해 동원된 하나의 전술이었다. 분열이 완결된 뒤 그 핵심부가 속한 서울측은 공회 이름 자체를 스스로 변경하게 되고 이런 행동이 그때의 배경을 잘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③중립측:
보수측과 수정측 사이에서 서로 적절한 양보와 타협을 통해서 중도의 길을 만들어 보려는 화합적, 화평적 중도 신앙이 중립측이니 대구공회가 바로 이들이다. 중립측이란 진리 제일 주의의 보수측과 인간 우선 주의의 수정측을 조화시켜야 하는 것을 지상목표로 삼게 된다. 이렇게 되면 진리 보수주의는 그 신앙 성질상 타협에 불응하게 되고 수정측은 상황에 따라서 얼마든지 타협 자체가 가능하게 되기 때문에 협상과 통합의 노력을 기울이는 중립측에서는 수정측이 심정적으로 가깝게 된다.
따라서 중립측은 그 구호와 중심은 보수주의에 가까운 주장을 하게 되지만 마지막 행동은 수정측에 유리한 상황을 만들어 주게 된다. 총공회 분열사에 중립측은 수정측 내부에 속하여 수정측 주도 세력들에게 계속하여 협상과 양보를 주장함으로 늘 고생을 하여 온 것은 인정한다. 그러나 그들의 결국은 진리 보수에 반대를 하는 역할을 했지 속화 타락을 막는 일에 도움이 되어 본 적은 없다.
1)수정측 신앙의 노선분석:
인본주의 감리교의 신앙 원조가 되는 알미니우스는 원래 칼빈 밑에서 직접 배운 제자였다. 인간적이며 도덕적이던 그는 칼빈 밑에서 배우면서도 인본주의라는 자기의 본 바탕 자체를 신본주의라는 칼빈신앙으로 바꾸지는 못했고 결국 남은 평생을 칼빈신앙과 정반대되는 곁길로 나가고 말았다. 초기 한국교회의 건전한 신앙 속에서도 결국 도덕과 신앙을 구별치 못했던 사람들이 신앙을 인간 개화와 감화의 수단으로만 보고 나갔으니 그들이 바로 기장을 만들게 되는 신신학자들이었다. 그들의 눈에는 하나님의 능력이 우연의 일치나 혹은 극한 감정 격화에서 일어날 수 있는 착각으로 해석을 했으며 천국제일주의는 현실도피로 기도는 마음 안정에 유익한 자기 최면으로 보았다. 그리고 기독교의 최종 목표는 이 땅위에 모든 사람들이 싸움 없이 평화롭고 건전하게 살아가는 일을 선도하는 도덕으로 보게 되었다.
백목사님이라는 시대적인 종 밑에서 배우던 많은 사람 중에는 알미니우스와 같고 또는 한국 초기사의 신신학자들과 같은 이들이 있었다. 백목사님 밑에 배울 때는 어디 가서도 배울 수 없는 말씀과 능력, 목회 지도,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많은 증거들을 보며 다른 제자들과 같이 좋아 했던 종들이다. 그러나 그들 신앙 밑바탕에는 전통의 장로교 교리와 행정이 먼저 선입견으로 들어 있었기 때문에 폭설에 덮혀도 눈이 멎었다 싶으면 곧 본색이 들어나곤 했었다. 전통의 장로교는 어느 교파보다도 많은 장점을 가진 노선이라고 우리는 분명히 알고 있지만 동시에 한가지 분명히 짚고 넘어갈 것은 고칠 것도 없고 성장도 필요없는 완벽한 노선이라고는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목회자로서는 백영익, 신도범, 백태영, 김철수 목사님 등이었고 신학자들로서는 송용조, 서영호 목사님들이었다. 총공회 노선 속에 있을 때에도 늘 과거 장로교 모습으로 돌출하다가 결국 시차와 위치한 교단의 이름 차이만 다른 정도일 뿐 일반 장로교로 거의 회귀가 되었다.
이들의 신앙은 간단하게 다음과 같다. 백목사님과 총공회 신앙이란 보수적으로 또 성경적으로 바로 해 보려고 애썼던 노력이었다. 그러나 전통의 장로교 교훈과 행정이 옳은 것이며 따라서 전래의 장로교 전통과 다른 총공회의 교리 신조 행정은 전면 수정되어야 한다는 신앙노선이라고 단정할 수 있다.
2)보수측 신앙노선:
백목사님이라는 훌륭한 선생님을 만나 교훈과 행정에 있어 참으로 좋은 신앙노선을 걷게 되었다고 생각하는 신앙들이다. 교리, 신조, 행정에 확신을 가졌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보고 총공회 노선에서 충실했다. 물론 첫신앙부터 총공회 안에서 자라나온 사람들은 보수노선에 충실할 수 있는 정도가 타진영에서 전입해 온 이들보다는 쉬울 수 밖에 없다.
자신들의 원래 모습이 어떻하든지 총공회 교훈으로 자신을 변화시키려고 힘써 나온 그러나 백목사님이 계실 때와 그렇지 않을 때는 처신의 차이가 많았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신앙 자체는 보수측이다. 그러나 목사님 생전에는 주관에 이해가 되지 않는 문제도 고차원의 신앙에서 지도하는 선생님의 영향으로 노선에서 이탈되는 수는 없었다. 그러나 그런 지도자가 없는 상황에서는 자력으로 새로 전개되는 사건이나 상황에서 처신을 해야 했다. 자연스럽게 두가지로 나뉘고 있었다. 중심은 이 신앙노선에 확고하지만 사건이나 상황을 이해하는 자기의 실력에 따라서 옳게 알고 옳게 처신하는 측과 바로 알지를 못해서 잘못된 길을 바른 길로 알고 처신하는 측으로 나뉘게 되었다.
해방후 신사참배 회개문제로 한국교단이 분리될 때, 신앙은 보수였으나 교회를 뺏기기 싫어서 반대측에 섰던 합동측과 같이 백목사님 사후 노선싸움에서 교회확보, 감정문제, 판단실수 등으로 신앙은 보수였으나 보수측인 부산공회의 반대노선에 섰던 사람들이 상당수가 있다.
목회자로서는 이진헌, 김삼암, 김응도, 이재순목사님 등이며, 보수측의 성격상 ‘신학’이라는 개념 자체를 무시하기 때문에 신학자는 없다.
3)중립측 신앙노선
총공회 노선에 대한 철저한 보수신앙과 전면 개편을 원하는 수정신앙의 중간에는 중립측 신앙노선이 있었다. 총공회 신앙에 많은 장점이 있다는 것을 확실히 느끼고 있는 점에서는 수정측과 구별이 된다. 그러나 시대 흐름과 전도 방법상 일부 교리나 행정을 바꾸어야 한다는 점에서는 보수측과 구별이 된다. 그러나 이들의 특징은 이런 원칙에 앞서 일단 분쟁이 된 것은 타협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는 신앙이었다. 아무리 옳아도 싸움은 피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교리나 진리 문제도 타협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데까지 나가고 있었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중립신앙이라는 것보다는 타협신앙이다.
따라서 이들은 어느측에 있던지 주도세력에 대하여는 반대적 입장을 주로 견지하게 된다. 그들이 보수측에 있으면 기본적으로 보수신앙을 지지하면서도 늘 논점이 되는 문제에 대하여는 수정할 수 있는 방향으로 운동을 하게 되고, 그들이 수정측에 있으면 기본적으로 수정신앙을 지지하면서도 보수측의 주장도 들어주자고 발언을 하게 된다. 그러므로 양측 사이에서 화평을 위해 진정 양심적 발언을 하는데도 항상 반대만 한다는 오해를 받는 것이 자신들이라고 생각한다. 실은 모이지 않는 자는 헤치는 자라는 원칙에서 수정측이 전면의 적이라면 이들은 내부의 적으로 늘 나타나고 있었다.
중립측의 신앙은 이러하기 때문에 그 속성상 여러곳에 혼재되어 있다. 우선 대구공회와 거창공회에 이런 분들이 특별히 많이 있고 부산공회와 서울공회에도 약간씩 있다.
유차연, 배점O, 김명재목사님을 위시한 총공회 중간층의 대부분의 교역자들이 이런 경향이라고 한다면 별로 틀리지 않을 것이다. 이들이 총공회 초기 분열에서 담당했던 역할은 실로 지대했다. 보수측은 10% 정도의 소수였고 수정측은 30% 정도의 숫자였다. 그러나 중립 지향적인 교역자가 약 5-60% 정도가 되었고 이들의 결정이 양측 분열에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많은 분쟁과 마찰 속에 결국 중립측의 결정은 보수측의 주장이 원리에는 옳지만 전혀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고 보았고 그대신 수정측은 타협과 조정의 여지가 있기 때문에 수정측에 합류하여 중립측의 원하는 미래 모습을 만들어 보는 방향으로 확정된다.
보수측이 서부교회를 붙들게 되어 30%정도까지 교회를 확보하게 되지만 이는 서부교회라는 외형을 따라 온 이들이 20% 이상이 되었고 이들은 부산공회 내에서 다시 과반수 이상의 숫자라는 세력이 되어 부산공회 내부 교권 투쟁에서 대세를 따라 움직이는 또 하나의 중립적 역할을 하게 된다.
3.보수측 신앙
1)보수측 신앙
총공회의 교리, 신조, 행정에 대하여 확고한 신앙을 가진 측을 보수측이라 한다. 보수측 안에도 다시 그 성격과 행동 통일 여부에 따라 다음 몇가지 갈래가 있다. 특히 보수측은 신앙이 간절하고 계속성이 있으며 집합력이 다른 측보다 강한 특성이 있으며 이런 신앙들은 존경하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성격이 있고 결국은 그 지도적인 인물이 결정하는 대로 따라가는 편이다.
대표적인 분들로는 백목사님 재독을 주로 주장하는 백명희사모님, 백목사님 총공회장직을 이어 받고 있다는 점을 제일 강하게 주장하는 이재순목사님, 그다음은 뚜렷한 주장은 없으나 단독으로 백목사님의 노선을 이어 나간다는 사명감을 가진 독자적인 분들로서 이진헌, 김응도목사님이 있다.
2)보수측 분열
보수측 내부의 분열 역시 50여년 전의 장로교 보수측의 분열사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해방직후 보수측의 분열은 출옥성도들을 중심으로 한 보수의 본류가 고신을 이루었고, 이 고신과는 보수라는 신앙노선 문제에서는 같은 입장이나 교권의 이해관계와 상황판단 실수로 대립하게 된 합동, 그리고 이런 반대파들에 대한 고신의 처신이 너무 온건하다며 최강경으로 나간 재건교회 등 크게 세가지 부류가 있었다.
①재건측:
최강경파였다. 문제는 강경치 말아야 할 것까지도 강경 지상주의로 나갔다. 일본 국신과 일장기를 들여놓은 전국의 모든 교회를 불살라 버려야 한다는 주장, 다른 파 교인들과는 인사도 말아야 한다는 주장 등이 극단적으로 실행되었다. 이렇게 중심부에서 지시하는 행동기준은 하나의 교리가 되었고 여기에 적극적으로 동조하지 않는 이들은 내부에서 가차없이 제거하여 이방인 취급을 해 버렸다.
그러나 재건파의 문제는 사실 극단과 강경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교리나 교훈에 대한 깊은 연구가 없었던 것이다. 이들은 최덕지 김린희 두 여성도의 신사참배 승리신앙을 존경하여 그들의 지도는 무엇이든지 교리와 교훈이 되었다. 따라서 두 사람의 장점인 기도, 순교신앙, 세상초월 등에서는 어느 교단이 따를 수 없는 장점을 보여 주었다. 그러나 두 사람의 단점인 교리와 교훈의 빈약, 넓은 시야의 방향인도 등이 없었다.
따라서 재건파는 그 초기역사는 극단만을 위한 투쟁의 교단으로, 그 중기역사는 악만 남은 오기의 교단으로, 그 후기역사는 명패만 남은 교단으로 단명케 되었다.
②고신측:
신사참배에는 생명바쳐 극단적으로 투쟁하되, 진리가 중심이고 교리와 교훈이 생명되어 나간 보수본류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다만 보수본류의 좋은 방향이 잘 진행하던 도중 수정측이나 중립측과 같이 세상의 큰 것, 많은 것, 좋은 것을 추구하게 되고결국 교권고착적인 교단이 되어 버렸다. 예배당 소송, ICCC가입, 잡다한 복음사업 등 몹쓸 병에 도지게 되었다.
고신이 이렇게 넓은 길로 나가는 초기에 손양원목사님은 ‘원거리의 통행문제’를 핑게삼아 부산에 모이기를 피하기 시작하다가 결국 여수에 눌러 앉아 다시는 고신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주남선목사님은 고신의 중심에서 빠질 수 없는 많은 관계가 있었으나 그 중심은 늘 기도와 두려움에서 헤어나질 못했고 따라서 그의 외부만을 접해본 사람들은 고신의 중심에서 끝까지 활동한 분으로 기억하고 그의 내면을 상대해 본 사람들은 전혀 다른 세계에서 살고 있는 그의 신앙을 엿볼 수 있었다. 이렇게 고신 안에서 살아 움직이던 이들은 초기의 신앙이 교권투쟁으로 변질되어 가는 정도에 따라 고신 중심부에서 자연스럽게 격리되어 가고 있었다.
이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고신은 그 출발이 진리 중심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잠깐의 세월 속에서 다른 교파와 교권투쟁이라는 이권에는 조금도 다를 바 없는 전투병들이 되어 가고 있었고, 그 전개에 따라 이미 신앙보다는 교권 건설의 기술자들로 변화되어 있었다.
③총공회:
6.25 동란 중에 사망한 손양원, 주남선 두 목사님을 제외하고는 바로 백영희조사님이 고신 내부에서 교권에 휩쓸리지 않고 고신의 출발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다. 고신 내의 변질되지 않았던 고신이었다. 고신 중심부가 교권 투쟁의 세월 속에서 강력한 전투병들이 되어 감에 따라 내부의 이질적인 백파에 대하여 동화 순응을 요구했고 결국은 제거하기에 이른다.
이런 초기 한국교회 분열사를 그 중심에서 겪어나오던 백목사님은 교단적으로 제도적으로 속화 타락을 막을 수 있는 교회의 모습에 많은 연구가 있었다. 모든 교권은 아무리 그 초기 역사가 건전하고 진리에 바로 서 있다 할찌라도 반드시 세월 속에 타락의 전철을 밟고야 마는 것이니 이는 그기 속한 인간들의 단점과 아울러 제도적인 단점 둘이 상호 작용을 하기 때문이다. 개인의 신앙은 개별적인 면이 있으니 개별 신앙에서 연구할 일이요 여기서는 교단차원의 타락을 방지할 수 있는 총공회의 시도를 살펴보는 것이다.
백영희목사님의 특별한 점 중에 하나는 복잡한 사건 속에 핵심이 되는 요점을 간촐하게 요약 정리해 내는 명료성을 들 수가 있다. 초기 장로교 분열사를 그 중심에서 십수년을 겪어면서 그에게는 교단적 차원의 타락을 막을 수 있는 ‘교회가 걸어갈 성경적 노선’을 선명하게 잡게 되고 이를 3개 원리로 요약하게 된다.
첫째: 회의의 결정을 다수결로 해놓고는 타락치 않을 제도와 교단이 없게 된다. 더우기 다수결이란 그 자체가 성경을 반하는 것이다. 교단 역사에 그 유례가 없는 ‘전원일치’결의법을 첫째로 잡게 된 것이다.
둘째: 성경외의 법을 가지고는 타락치 않을 제도와 교단이 없게 된다. 실은 성경 이상의 법이 있을 수도 없고 성경유일주의가 신앙의 본질임은 너무도 당연하기도 한 것이다.
세째: 교단의 대표가 상임권을 가지면 교권을 향하여 타락하는 면을 막지 못한다. 교훈에서 나오는 신앙의 권위가 아니라 제도와 자리에서 나오는 권세를 없애 버리는 것이 타락을 막는 세번째 요건이다.
이런 3가지로 제도와 교단의 타락을 막을 수 있는 핵심 요소들을 파악하게 되니 이런 체제의 교회 운영은 바로 개교회주의라고 이름 지을 수 있고 그 개교회주의의 교회들을 총칭해서 공회라고 하는 것이다.
총공회의 시작은 목적을 가지고 교단을 만들게 되어진 인위적인 과정이 없었다. 제일 정통 교단인 고신 안에서 그때 그때 진리를 주장하고 바른 길을 양보 없이 걷게 되니까 고신이 그가 걷는 진리 노선을 제거할 수 밖에 없었고, 고신에서 제명된 그가 자유로이 교회가 나갈 바른 방향으로 나가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따르는 교회들이 생겼고 또한 그 교회들의 연합은 기존 제도와 방식으로는 또 하나의 타락이 예정되어 있음으로 적어도 제도와 교단 전체적인 타락을 방지할 수 있는 교회운영의 방안을 성경으로 찾게 된 것이다.
따라서 총공회는 일반 교단과 달리 법과 체제 자체가 3개 원칙으로 시작이 되었기 때문에 총공회의 존재는 3대 원칙과 동일 하게 되었다. 즉 일반 교단은 법이 있고 교단이라는 체제가 있기 때문에 그 교단이 법을 바꾸고 체제를 바꾸어서라도 존재할 수가 있다. 그리고 그런 조직과 체제에서 제거되면 바로 교단 탈퇴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총공회란 3대 원칙이 바로 총공회이기 때문에 만일 3대 원칙을 수정하거나 그 원칙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이미 총공회일 수가 없는 것이 총공회의 특징이 되었다. 따라서 총공회란 3대 원칙 자체가 성경적 기본원칙이며 수정되거나 대체될 수 없는 원칙이므로 총공회의 타락은 적어도 제도적으로 또는 교단적으로는 있을 수가 없다. 총공회에 소속하고 있는 사람들이 3대 원칙에서 떠나면 그것은 바로 총공회를 떠난 것이 되고 이 3대 원칙을 지킨다면 그것이 바로 총공회 소속이 되는 것이 바로 개교회주의 총공회 특색이다.
4. 총공회 보수측
1)재독측
말씀과 노선에 대하여 타협없는 외길, 세상과 단절하고 천국에 대한 일념, 어떤 고난도 생명 바쳐 나갈 수 있는 신앙의 투쟁력 등 여러가지 면에서 재독측은 우리 총공회 보수측에서 제일 보수적인 장점들을 가진 이들이다. 그러나 재독측은 이성보다는 감정, 원거리보다는 근거리, 건설보다는 전투, 교리보다는 지도자의 결정, 남반보다는 여반의 주도 등에서 장로교 보수측의 재건파와 거의 모든 면이 흡사하게 보인다.
재건파가 행동에서는 고신 교리의 최 전방에 있었으나 교리에서는 여목사 제도를 섣불리 제정하는 등 고신 교리의 근간에서 이탈될 수 있는 여러가지 결정들을 하였고 이런 원인은 감정적 지도가 앞서고 교리적 연구는 너무도 미약했기 때문이다. 재독측이 총공회의 교훈을 좋아하고 연구해 나가는 면은 진정 찬성할 일이지만 때로는 총공회 기본 교리 노선에서 이탈되는 언행들이 돌출되는 일을 자주 볼 수 있다. 예를들면 총공회 존재의 기본 원칙인 전원일치 결의법을 건너 뛸 때가 있고, 또는 총공회 발족의 큰 계기가 되었던 반소노선을 쉽사리 포기할 수 있는 행동을 보인 때가 있다.
재건파의 전철을 밟고 있다고 우려되는 여러가지 이유가 바로 여기 있는 것이다.
2)서파
합리적이며 이성적인 판단과 행동을 중시하는 측이다. 그러나 이들은 서영호목사님을 중심으로 모이는 행동 특색을 보이고 있다. 서목사님이라는 인물 자체는 이미 총공회 노선에서는 보수측일 수가 없는 일반 장로교 지향의 신앙과 중심을 가진 이로 평가가 되고 있다. 그러나 그가 경남 중고교, 서울대 영문학과, 웨스트민스터 신학원, 템플대 철학박사의 순서를 밟아 우리나라에서 손꼽는 학벌을 가진 것은 총공회 기본 교역자와 교인들의 빈약한 학벌 열등감을 대체만족 시켜 줄 수 있는 조건으로서 충분하다.
세상 학문을 무시하는 총공회 신앙노선은 바로 나갈 때는 세상 학벌을 밟고 일어서는 신앙력이 되지만, 신앙이 흔들리면 순간적으로 세상 학벌에 열등감이 각 사람의 깊은 속에서 대단한 위력으로 표출하게 되어 있는데 바로 이 면에서 서목사님의 학벌은 총공회 보수측을 포함한 수정측 전 영역의 교인과 교역자들에게 총공회적인 신앙에 이상이 생겼을 때는 즉시 대체 인물로 부각되어 왔다.
따라서 서파는 그 출발이 보수측이든 수정측이든 현재라는 조건에서는 늘 총공회 보수측과는 대립되고 반대되는 신앙 색채를 보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보수측이 양분되면서 서부교회의 후임 청빙에 표가 나뉘어지고 내재되어 있던 일반지향적 교인들의 단합된 표가 서목사님을 서부교회 담임목회자로 청빙하는 결정이 나게 되자 서목사님은 자기 신앙과 정반대의 강경 극보수적 개교회인 서부교회로 부임케 된다.
최강경 보수 신앙의 본류인 서부교회로 담임케 된 서목사님은 그 신앙체질상 바로 축출이 된다고 예견이 되었으나 보수측 주도 인물들의 내부적으로 엇갈리는 복잡한 계산, 서목사님의 현실적응 및 대응력이 ‘표현의 보수화’로 나타났다. 따라서 현재까지 보수측 내부의 교역자와 교인들까지 합류된 외형 보수, 실질 수정의 노선을 걷고 있다.
장로교 초기 분열사에서 장로교 내부는 장차 고신이 될 신앙, 합동, 통합, 기장이 될 신앙 등 크게 4가지 부류가 한 교단으로 혼재되어 있었다. 이들이 신사참배 회개 처리라는 사건을 두고는 합동과 고신이 동일 신앙이었으나 현실 대응 계산상 합동측이 될 세력들이 통합과 기장과 손을 잡고 고신에 연합 대응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따라서 반고신 노선에서는 합동,통합,기장이 일시 한 총회라는 세력으로 모였으나 이미 그 속에 있는 통합은 합동을 앞세워 신사참배 회개처리라는 한 사건에만 연합전선을 폈고 그 중심에는 기본적으로 신앙 노선 자체가 고신과는 하나될 수 없는 본질이 있었고 그 후에야 이 이질신앙이 통합분열로 나타나게 된다.
현재 서파는 보수측 내부에 외형적으로 한 세력이 된 것처럼 포진하고 있지만 지금은 서부교회와 총공회 내부의 세력 장악에 전략적으로 필요하여 보수측 울타리를 벗어나지 않고 있지만 그 본질과 성향 자체가 총공회 보수측일 수가 없는 면들이 엄연하고 따라서 앞으로의 사건 전개에 따라서 충분한 명분이 주어지고 또한 이권의 전개 방향이 유리하게 펼쳐지면 그 본색을 드러내면서 총공회 보수측에 소속한 모든 불편한 것을 다 털어내게 되어 있다. 안타까운 것은 학벌과 인품의 높음에 심한 열등감이 원인되어 서파 측에 연결되어 있는 많은 보수측 본질과 성향의 신앙들이 대부분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들이 장차 그들의 중심세력이 본 모습으로 일반 장로교를 향하여 필요한 이론으로 끌고 갈 때 거의 대부분이 다 따라가게 되어 있는데, 이들 역시 기독교사에서 바로 알지 못하여 원치 않는 길을 걸었던 대다수의 선진들의 재판이라는 점에서 요약되고 말 일이다.
3)개교회주의
장로교 총회에서 보수측 신앙을 견지해 오다가 보수측 신앙까지도 교권으로 타락할 때 백목사님은 진리를 전하고 타협없이 한 길을 걷다가 결국 고신에서 제거되고 자연스럽게 본래 원하던 신앙노선을 마음껏 펼치며 걸어나온 것이 개교회주의 공회라는 이름으로 그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 주었다.
백목사님은 성경 깨달음에 옳아서 그길을 확정하고 걸었고 오늘 우리는 이런 깨달음에 첫째는 동의가 되고 둘째는 그 걸어온 걸음의 30년 역사를 역사로서 보면서 과연 그 과정과 결과가 옳았다는 것이 체험적으로까지 느껴져서 이 길을 걷게 되었다.
오늘 이재순목사님 측의 교권 제일주의를 보면서, 서파의 보수 측 내부 기생주의를 보면서, 재독측의 몇가지 위험스런 요소들을 보면서 다시 한번 백목사님의 걸어가신 그 신앙걸음이 오늘 우리에게 전개되고 있음을 느낀다.
그는 한 시대를 위해서, 특히 마지막 이 우주를 마감할 시대의 마지막 선지로서 주신 분이니 우리와 수평비교할 수는 없으나, 적어도 우리는 그를 통해 하나님이 이 시대에 내신 걸을 걸어가고자 하는 소원과 열심에 있어서만은 그와 같은 입장이 되고자 하는 것이다. 모든 어려움은 그가 겪었던 그 어려움의 종류, 강도, 형편으로서 현재 우리에게 닥쳐오고 있다. 바로 이런 어려움을 만나면서 현재 걷고 있는 걸음이 옳음을 외부적으로까지 참고시켜 주시는 은혜로 알고 걷는 것이다.
총공회 교리, 신조, 행정이 옳음은 현재까지 나온 모든 기독교의 교리, 신조, 행정과 비교할 때 세계 최고의 노선이다. 여기에 다른 견해를 가진 것이 대구측, 잠실측 등의 총공회 수정주의들이다. 그들은 수정측이니 일반 노선에 비하여 우리 노선이 더 좋다는 점이 확실한 이상 수정측의 주장은 요약하여 틀렸다고 우리는 단정한다. 그다음 보수측인데 우리 교리, 신조, 행정이 옳다는 이들이 보수측이요 그러면 우리 교리, 신조, 행정으로 실제를 따져 보면 어느 노선 어떤 방향이 바른 것인지 잣대가 같고 표준이 같으니 비교는 아주 명료해 진다.
현재 비교는 교리와 신조는 이론이기 때문에 보수측인 이상 꼭 같이 인정을 하고 있고 따라서 보이지 않는 속을 뒤집어 보기 전에는 구별키 어렵다. 그러나 행정에 있어서는 속을 뒤집어 볼 필요도 없이 이미 외부로 다 들어나 있다. 보수측이란 행정에 있어서 전원일치 결의와, 성경법과, 총공회장 비상존의 탈 교권화 3가지로 요약이 된다. 지금 재독측, 서파, 반서파 어느 쪽을 막론하고 전원일치 결의법은 적용에 있어 폐기한 지 오래다. 이미 성경법을 심의하는 일은 벗어 버리고 어느 조문, 어느 관습에 근거를 두느냐고 또 하나의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 교단 헌법을 근거로 한 싸움에 날이 새고 있다.
수정측이 목사님 사후 노선 수정의 첫시도로 들고 나온 것이 바로 ‘불문헌법 원칙 추인건’이었다. 우리는 명문 헌법은 없어도 불문 헌법은 가졌다는 말이 되고 불문 헌법 하에서는 여러가지 헌법적 규정을 개별적으로 두어 헌법 없이도 헌법적 규정을 가지면 대체 입법이 된다는 주장이었다. 그들의 첫논리는 대개 헌법없는 교단이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는냐는 의문에서 시작하고 있었다. 총공회 기본 원칙은 이름만으로 ‘헌법’을 거부한 것이 아니라 ‘성경 아닌 어떤 법도 배격’한다는 것이 중심이었다.
현재 우리 보수측 내부는 이미 이런 수정측의 시도와 꼭 같은 현상들이 전반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총공회장 등 각자가 가진 위치에서 생겨지는 권한이 교훈의 권위를 넘어서서 천주교 시대를 흉내내는 막강한 교권주의를 형성하고 있다.
이런 3가지 원칙에 틀린 사례를 지적하면 바로 제명이요 출회조처가 뒤따르는 정도이다. 물론 조직의 보호를 받는 계파적 인물은 또 하나의 교권이 될 힘 때문에 살아 남는다.
5. 총공회는 이런 것이다.
서부교회를 잡은 쪽이 보수측이 되는 것이 아니다. 현재 보수측에 속한 이들은 자기들이 총공회 보수측이라고 자부를 하고 있다. 이재순목사님, 김응도목사님 등 교역자 교인 등 그 부류는 많다. 그러나 이들은 서부교회라는 건물을 차지한 측이 보수측이라고 동일시하는 신앙들이다. 만일 서부교회 교권을 백목사님 사후 수정측에게 빼겼더라면 현재의 보수측에 단 2-3명의 교역자나 교회만이 보수측으로 남아 있을 것이라고 수정측에서 단언을 한 적이 있다. 보수측 내부에서 본 견해 역시 그러했다.
이렇게 큰 교회, 큰 건물, 백목사님의 외부 흔적을 차지하는 것이 보수측인 줄로 까지 알기 때문에 오늘 보수측의 싸움은 이런 외부 형태를 차지하려는 싸움에 진리노선을 걸고 있는 참으로 안타까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건물, 교회 뿐이 아니라 백목사님의 흔적에 중요한 요소 한가지는 총공회장 자리고 이 총공회장 자리가 바로 서부교회 담임목회자 자리와 함께 총공회 보수측을 결정짓는 절대적인 요인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교역자회를 참석하고 총공회를 참석하며 노소원, 등 모든 공회적 활동에 있어서 총공회 내부냐 외부냐, 보수냐 수정이냐는 모든 결정의 판단은 총공회 형태 흔적의 유무에 있는 정도가 되었으니 이것이 일반 교단이면 바로 교권 장악과 형태 장악이 결국 보수가 되게 되어 있으나 총공회는 3대 원칙이 총공회이지 3대 원칙이 만든 서부교회 담암목사직과 총공회장직이 총공회가 아닌 것을 모르고 필요없는 싸움을 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 총공회를 실제로 지켜갈 교역자와 교인들은 백목사님 생전부터 개최해온 총공회 회집장소, 또는 교역자회 개최 기도실, 총공회장 선출의 연속성 등에서 총공회를 찾지 말자. 천주교가 사도 베드로의 로마교회 몇번째 후임자냐는 것으로 기독교의 정통성을 주장하는 바로 그런 우매한 짓을 우리가 재현해서야 되겠는가? 안으로는 총공회 교리 신조를, 밖으로는 3대 행정 원칙이라는 최소한의 속화 방지 원칙을 붙든 것이 총공회 노선이다. 어느 교역자가 설교를 은혜롭게 하고 못하느냐는 것은 개교회와 개 교역자의 개인 신앙문제이지 총공회적인 노선문제와는 다른 차원의 것이다. 총공회적인 노선문제로 접근할 때 우리가 걸어갈 걸음을 살펴보자는 것이다. 머리의 방향이 잡혀야 몸통과 꼬리가 따라간다. 교리와 신조는 속에 있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섣불리 비판하고 속단하지 말 일이다.
그러나 ‘총공회’라는 단체, 제도로서 우리가 지켜갈 노선은 분명히 외부로 판정이 나는 3대 원칙이 있고, 오늘 보수측 부산공회에서조차 완전히 깨져 버리고 지켜지지 않는 총공회의 3대 방향, 그러나 이 3가지 원칙이 바로 총공회이니 오늘 백영희목회 연구소의 직원출신 교역자들이 함께 모여 나가려고 결심하는 내부에는 이런 깨달음이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