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특수 피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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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13 21:24
본론 -Ⅰ 인간 창조
1 특수 피조물
다른 만물과 달리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실 때는 몇가지 특수한 점이 있었다. 우리는 당신의 목적대상이기 때문이었다.
(1) 삼위일체 하나님의 특별의논:
다른 만물을 창조하실 때는 말씀으로 창조했다. 그러나, 사람을 창조하실 때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특별의논이 있었다. 여기 "의논"하신 것은 인간이 모르는 것이 있고 서로 도움받을 일이 있어 의논하는 의논이 아니라,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모든 것을 만세전에 예정하셨고, 그 예정대로 창조하시는 것이지만, "의논"을 창세기 1:26절에 나타내 보이신 것은
첫째, 성부 하나님의 우주영계의 전체운영에 관계성을 가진 인간임을 보이시고
둘째, 성자하나님이 삼위일체하나님을 나타내보이시는 역사에 관계성을 가진 인간임을 보이시고
세째, 성령하나님의 감화감동역사에 관계성을 가진 인간임을 보이신다.
하나님은 한하나님이시나 삼위가 삼위 각자 역사의 특별성을 가지셨다. 삼위하나님의 의논이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기록해 주신 것은 이제 창조하는 인간은 하나님이 삼위로서 역사하는 이 모든 역사에 특별한 존재라는 것을 계시해 주시는 것이다.
인간외의 존재, 즉 만물은 하나님이 인간으로 가지는 신인교재에 무대이며, 이용물일 뿐이다. 마치 부모가 모든 소망을 두고 있는 자녀와 부모가 가지고 있는 모든 집 소유는 다른 것 처럼
(2)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
삼위일체 하나님과 이렇게 특별한 상대가 되는 이 존재, 즉 사람은 당연히 삼위의 특별하신 모든 역사에 밀접히 하나되어 역사할 존재이니 그는 하나님이 마음대로 움직여 쓸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 특별관계에 이질적인 요소가 있으면 이는 대립,마찰,분요가 있게 될 것이니 당연히 하나님과 동질적인 존재로 만드신 것이다. 일부의 오해와 같이 신적요소의 일부가 떨어져나와 된 영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피조물이요, 인적요소로 되었으나 하나님이 쓰시고 상대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이다.
창1:26 말씀에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하신대로 인간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셨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것은 무엇인가? "참사람", "속사람", "참자기", "새사람"이라고도 하는 바로 "영"인 것이다. 영육으로 된것이 사람이기 때문에 영을 떼낸 육만을 가지고는 사람이라 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영을 떼놓은 육만을 가지고도 사람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는 육으로 사는 사람을 사람이라고 표현할 수 밖에 없다. 원래 창조때는 영육이 온전히 하나되어 있었으나 범죄후 영은 죽고 심신으로된 육으로만 사는 인생, 무엇이라 불러야 할까? 범죄전이나 후나 인간이 볼때는 꼭같은 "사람"인데 영이 죽어 육으로만 사는 사람과 범죄로 죽은 사람을 구별하여 성경은 말하고 있으니 곧 육으로만 사는 사람을 "옛사람" "겉사람" "죽은사람"거짓자기"라고 하고 죄이전 원래만들어진 사람처럼 산영과 육이 하나된 사람을 "새사람,속사람,참사람,참자기"라고 하는데 이는 중생된 "영"을 가리키는 말이다.
하나님의 형상은 무엇인가? 하나님은 물체도 영체도 가지지 않는 완전자이니 인간의 둔탁한 표현 방법으로 거저 "형상"이라 "모양"이라 한 것이요, 우리 인간 수준에서 아는 "형상"에 하나님을 맞추려하면 이는 잘못이다. "형상", "모양"이라는 말은 그 사람의 외부로 나타난 모습을 말하는 것이니, 완전자시며 무형인 하나님이 외부로 나타나신 모습은 어떠한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필요한 면을 자연계시와 특별계시로 알려주셨으니 알려주신 그 범위만큼 우리가 알수 있는 것이다. 즉, 하나님은 무형의 하나님이시니 우리와 같은 형상은 없어시고 나타내 보여주신 그분의 속성들이 있으니 이 속성이 바로 우리가 접할 수 있는 하나님의 형상인 것이다.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역사, 활동, 등을 통하여 알려진 하나님은 "자존" "완전"…"사랑" "진실 " "의" "거룩"… 등 12가지로 요약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중에 피조물로서는 성질상 가질 수 없는 "자존", "완전", "영원 불변", "단일"의 4가지 형상이 있으니 이것을 빼고 특수피조물로서 가지는 8가지를 우선 요약할 수 있다. 물론 사람이 가진 이 8가지 속성도 원형을 본받아 만든 모형이기 때문에 그 가치성, 실력성, 활동성, 완전성은 다른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진 사람,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영"인 것이다.
이러한 속성들로만 된 영이기 때문에 영은 하나님과 연결되어 움직이는 이 생명을 가진 산영으로서 8가지 속상적 활동만 하는 것이다. 만일 영이 죽어면 이 8가지 속성은 곧 활동이 중단되는 것이요, 영체 자체가 소멸되는 것은 아니다. 또한 하나님의 형상대로 본받아 지어진 영의 속성, 영의 활동이기 때문에 하나님 아닌 다른 존재는 이 하나님의 속성만을 본받아 하나님의 속성적활동만을 하는 외에 다른 활동은 본질적으로 할 수 없게 되어 있다. 따라서 죽은 영은 활동을 멈추게 되는 상태가 죽은 것이요, 악령이 범죄한 인간의 하나님과 끊어진 영을 이용할 수 없는 것이다.
(3) 영육의 존재
하나님의 상대자, 하나님의 목적대상인 우리이기 때문에 당신을 본받아 모형으로 지은 영을 앞에서 설명했다.
또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이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이 영에게 육으로 된 마음과 몸을 주셨다. 그래서 하나님과 하나된 영이 자기의 소유격인 육, 즉 심신을 통하여 만물을 상대하게 하신 것이다.
따라서, 모든 피조물을 창조된 자료로 나눈다면, 영질로 된 영, 물질로 된 우주계가 있고, 영질로만 된 것은 천사요, 물질로만 된 것은 이 세상 모든 만물들이다. 그러나 사람은 영질로 된 영과 물질로 된 육, 즉 심신을 한 존재에 함께 가졌으니 이것이 특수피조물의 특징중에 또한 하나이다.
여기서 하나 의문이 제기될 수 있는 것은 "마음"이 어떻게 물질이냐 하는 것이다. "물질"이라 할 때 사람들이 우선 생각하는 것은 돌, 나무, 고기덩어리 같이 육안의 두눈에 보이고 손바닥에 쥐면 잡히는 것만 생각하게 된다.
이것은 하나님이 창세 때부터 이미 만들어 놓으셨던 물질에 대한 지식에조차 인간들이 미개했기 때문이다. 물질에 관한 지식을 자연계시라고 한다. 창조때 한번에 만들어서 우주에 넣어 두신 것이다. 그러나 자연계시에 대한 무지로 성급히 태양이 지구를 돈다는 주관적 성경해석 주관적 신앙으로 주장을 하여 "무지한 광신자"취급을 받는 안타까운 선의의 성도들도 있고, 한편으로는 "발견", 또는 "발명"하는 사람들이 마치 "창조"한 것처럼 교만한 것도 전부 하나님이 엿새창조에 이미 만들어 배열시켜 운영하고 있던 것이 인간 제가 무지, 무식, 어두워서 몰랐다가 알게된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물질에 대하여 인간이 몰랐던 것을 수천년의 세월속에 하나씩 알아갈수록, 너무 크서 못보던 것을 이제야 본 것이 있다. (지구, 태평양, 한국사람이 한국땅). 반대로 너무 작아서 못보던 것을 이제야 본 것이 있다. (세균, 세포, 원자, 전자 ) 또 망원경을 통해서던지, 현미경을 통해서든지 점점 보게 되어지는 것이 있으나, 아무리 가도 물질의 성질상 아예 볼 수 없는 물질들이 있다는 것도 점점 밝혀져나가고 있다. 예컨데, 예전에는 "소리"는 그냥 "소리"지 이것의 실체가 무엇이냐하는 것은 개념도 없었고, 접근도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공기진동으로 나오는 보이지 않는 물질임이 들어나고 있다. 성경을 볼 때 모든 피조물은 영질과 물질로만 되어있고 천사,악령, 인간의 영 외에는 이 우주의 모든 피조물들이 다 물질이다. 그러면, "소리" "햇빛" "공기"… 이 전부가 볼 수없고 만질 수 없어도 물질이 아닌가? 오감 ( 五感 ) 중에서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대상만 물질인가? 귀로 들을 수 있는 소리는 물질이 아니겠는가?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서, 오감 전체 어느부분으로도 접할 수 없는 것도 있다. 예컨데, 동물의 육체를 움직이는 것은 "힘"이다. 육체의 근육과 모든 조직을 움직이는 힘은 그 동물이 먹는 음식을 소화시킬 때나오는 "열"인 것이다. 먹은 음식을 소화시킬 때 나오는 그 "에너지"는 물질인가, 영질인가? 우리의 오감 어느 부분으로도 접할 수 없는 것이다. 물론, 이것도 과학이 발달해서 볼 수 있는 실체를 밝혀낼지는 모를 일이다. 설사 밝혀 낸다할지라도 놀랄것이 하나도 없는 것은 우리 하나님께서 창조때 만들어 놓았던 것이 이제야 인간이 알아낸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물질의 발명과 발견은 어떤 것이라도 창조때 하나님께서 내어놓으신 만큼은 앞으로 어느정도까지라도 계속 되어질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가공할 만한 현대 과학, 특히 생명공학, 인체공학, 유전공학, 전자공학, 우주공학, 컴퓨터공학… 등등의 출현과 실제적인 연구결과에 대하여 초연히 상대할 수 있는 것이다. 즉, "어떤 과학의 발명과 발견도 물질에 관한한 하나님께서 내어놓으신 범위안에서는 계속될 것이다." 설불리 신학자들이 인체를 만드는 것은 과학으로 안된다고 했다가 인조 인체가 나오니까 신학자들의 신학이 과학에 밀려서 오락가락해 버리는 경우를 우리는 금세기 수십년에서 수없이 보아왔다.
이 문제에 대하여 상당히 많이 언급하는 이유는 무엇이 물질이냐를 확정짓지 않으면 성급히 인간과학, 인간능력으로 가능한 문제를 자연계시에 대한 무지의 소치로 불가능한 것으로 보던지, 또는 신앙에 여러가지 불필요한 모순들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마음이 물질이냐? 오감으로 접할 수 없다고 무작정 물질이 아닌 것으로 단정해서는 안된다. 성경으로 판단할 문제다. 전술한 바와같이 우주 만물이 물질로 이루어졌고 따라서, 동물들도 물질로만 만들어진 피조물이다. 그러면, 동물과 인간의 다른 점이 무엇인가? 본질적으로다른 점은 두말할 것없이 인간에게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영이 있다는 점뿐이다. 영외에는 정도차이, 가치차이, 활동차이, 실력차이지 본질적으로는 물질이기 때문이다.
짐승에게는 육체, 고기덩어리만 있고 그 육체를 움직이는 마음, 생각은 없을까? 있다. 두말할 것 없이 있다. 사람의 혼은 위로, 짐승의 혼은 아래로 간다고 전도서 3:21 에 분명히 밝혔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이 영이라고 주장하는 신학자들은 짐승에게 마음에 대한 존재를 인정하면 역설적으로 인간도 물질만으로 되어진 존재라는 모순이 되기 때문에, 사람의 마음은 영이다. 고로 짐승에게는 마음이 있으면 안된다는 가설을 세워놓고 이 가설에 따라서 짐승을 설명하기 때문에 여기에는 많은 모순이 따르는 것이다. 자연계시에 어두워던 시대에 신학자들이 만물의 영장인 사람이 사는 지구가 중심이 되어야하기 때문에 태양이 지구를 돌아야한다는 억해로 발전되어 이번에는 과학자들이 신학자들의 과학무지만을 비방하는 것이 아니라 신학자들의 성경까지 비방해버리게 하는 빌미를 주게 되었던 것과 같은 것이다.
짐승에게도 희,로,애,락이 있다. 즉 마음의 3대요소라고 일반적으로 말하는 지.정.의중에서 "정(情)"이 있는 것이다. 또 계획, 준비, 기억 등의 지(知)가 있으며, 자기대로의 뜻 즉 의 (意)가 있다. 다만 그 수준이 유치하고 단순한 저급의 것이라는 차이일 뿐이다. 만일 짐승은 본능만 있고 이 본능은 물질작용이요 인간의 마음과 다르다고 주장한다면 말로만 논리할 것이 아니고 영교한 짐승들을 실제로 관찰하며 다시 한 번 살펴볼 일이다. 실제를 말로 맞춘다고 맞아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중생된 성도는 영이 살았으나 불신자는 영이 완전히 죽어있다고 우리가 단정을 한다. 그러면 불신자에게 죽은 영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이 무엇인가? 영 또는 영혼(2분설적 표현)이 죽고 남은 부분은 물질뿐일 수 밖에 없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이다. 불신자의 마음의 활동 무엇으로 볼 것인가? 인간의 마음은 바로
"신비한 물질"인 것이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영질로 된 영을 민첩하게 또 유기적으로 잘 받들어 줄 수 있는 탁월한 도구인 것이다. 그러므로, 일반 저급의 물질과 달리 고급의 탁월한 기능을 가진 물질이요, 또 물질계에 주인으로, 하나님과 연결되어 하나님의 모든 은혜를 만물에게 전달하는 이 영을 전적 상대하기 때문에 그 재질은 물질이나 영과의 관계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신령한 물질, 신비한 물질이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을 영으로 보는 주장에도 그럴만한 이유가 없는 것은 아니다.어두워진 인간에게는 하나님과의 영적 면에서 타락하여 인간 정신, 마음 즉, 도덕수준으로 타락하였고, 이제는 육체의 말초신경이 원하는대로 타락하게 되었으니 마음안에 있는 영의 세계를 느끼고 접할 수 있는 깬 마음, 밝아진 마음이 없는 인간으로서는 제 눈에 보이지 않고 잘 느껴지지 않는 영의 세계를 모르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4) 만물의 영장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만물은 당신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우리의 무대로 활동세계로 주신 것이다. 하나님으로부터 모든 것을 은혜로 받아 우리가 충만하고 이 충만으로 만물을 충만케 해 주는 이 영원무궁에 하나님 다음가는 영광과 찬미는 누가 누릴 것이며, 누구의 것이겠는가?
자존하신 하나님 당신은 완전자이니 홀로 계셔도 부족이나, 외로움이 없으시고, 우리를 만들지 않으면 안될 필요성이 있어서가 아니라,전적 완전자 당신이 스스로 당신을 닮은 존재를 하나 만들어 그에게 당신의 모든 것을 주시기로 당신의 기쁘신 뜻을 정했으니 이것이 모든 예정과 창조와 영원섭리의 시작인 것이다.
이래서, 당신이 당신의 전부를 우리에게 줌으로써 스스로 기쁨을 가지듯이 ,우리는 당신의 것을 가지고 당신을 본받아 당신처럼 다른 존재에게 우리의 전부를 줌으로써 당신의 기쁨을 맛보고 이 기쁨으로 우리의 기쁨을 삼아 영원을 누리도록 만드는 것이 하나님 목적이며, 이 일에 필요한 무대와 활동세계가 있어야 할 것이니 이것이 곧 만물창조의 이유이다.
그러므로, 같은 피조물이지만 일반 만물과 사람은 그 위치와 가치성이 당연히 다른 것이다. 비록 영물인 천사라 할찌라도 이 일에 하나님의 심부름하는 점L지 우리와 같이 하나님의 전부를 투자한 목적대상은 아닌 것이다.
이런 영원을 목적하셔서 당신의 직접 목적 대상인 우리와 우리의 활동무대가 되는 만물을 만드셨으니 만물의 영장이 누구이겠는가? 곧 우리인 것이다. 또한 영원에 조금이라도 흠이 없게 하시려고 세상을 하나의 준비처로 이일에 숙달장, 연단장, 훈련소로 두신 것이니 "유업을 이을 자가 모든 것의 주인이나 어렸을 동안에는 종과 다름이 없어서 그 아버지의 정한 때까지 후견인과 청지기 아래 있다"고 하셨고, 우리의영원에는 "세상과 천사도 판단"할 실력자로 기르시는 것이다. (갈4:1, 고전6:2-3)
이런 우리들이니 하나님을 상대하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받아가질 "영"이 있어야겠고, 이 영이 곧 사람의 주격이며, 이 영을 수종들고 만물을 상대할 물질로 된 육이 있는데 사람안에서 영과 몸을 연결하는 것이 물질 중에서 신비한 물질, 영과 연결을 갖고 몸을 붙들어 쓰는 것이 마음인 것이다.
(5) 생령이 된지라:
삼위일체 하나님의 목적대상이 된 우리들, 이를 위해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영을 가지고 하나님을 상대하며 육인 심신을 가지고 만물을 상대하여, 만물의 영장노릇하는데 필요한 창조가 창1:26절의 인간창조임을 살펴보았다.
이제 이런 목적과 필요성에 따라 만든 첫인간 아담은 하나님 창조사역에 제일 중심이므로 창세기 1장과 2장에 아담창조에 대한 기사를 특별히 자세한 설명을 중복적으로 하신 것이다.
"여호와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물질로 된 육을 만드신 일만 기록되고 영의 창조는 생략하신 것은, 아담이후 모든 인간이 육의 탄생과 함께 일일이 설명치 않아도 영을 동시에 창조하여 영육이 하나된 존재로 세상에 보내시니 특별히 영의 출생에 대해서는 기록하지 않었다는 것뿐이지, 영없이 육만 따라 만든 것이 아니다. 예컨데, 우주 창조만 특별히 자세하게 기록하고 영계 창조는 따로 기록하지 않음과 같은 것이다.
이제 아담의 영과 심신이 완성품으로 만들어졌음으로 이 완성품에게 여호와하나님께서 "생기를 불어넣으시니" 하나님의 역사가 이제 최초로 이 아담에게 임하였으니, 창조된 아담이 하나님에게 연결되어 동작이 시작하게 되었으니, 즉 "생령이 된지라" 마치, 형광등을 다 조립하고 전기선까지 발전소에 연결을 시킨다음 이제 스위치를 넣어 불이 들어오게 됨과 같은 것이다.
또 성경은 이렇게 하나님과 연결되어 움직이게 된 첫사람에게 광대한 당신의 목적대로의 역할을 시험해 보시되 "각종 들짐승과 새들의 이름을 어떻게 짓나" 하는 것으로 작은 시험 하나를 해 보셨으니, 그렇게 해 본 결과 "아담이 일컫는 바가 곧 그 이름"이 되는 결과가 나왔다. 곧, 하나님과 연결된 영이 하나님의 뜻을 찾아 자기의 마음에게 감동시켜주고, 마음은 자기 영이 자기에게 감동시켜주는 하나님의 뜻을 그대로 몸을 통하여 발표하니 아담의 짓는 그 이름이 아담 단독의 주관행동이 아니라 하나님과 연결된 행동이었다. 이 모든 것을 함축한 기록이 바로 아담의 짓는 이름대로 이름이 되어졌다 함인 것이다.
이렇게 움직여 지는 인간이 바로 하나님이 목적하신 인간의 모습이었고 이렇게 영원토록 움직이도록 첫사람을 만든 것이었다. 만일 아담의 이름 짓는 것이 자기 주관대로의 것이었으면 그 이름이 바로 시행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아담은 이름짓기 시험으로 합격한 그 존재 그대로 영원히 하나님을 기뻐시게하고 만물을 하나님 단일 통치로 지키고 다스리면서 살면 영생의 기쁨을 누리게 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