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질문) 웟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의 지방교회를 어떻게 봐야 하나요? 12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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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 (질문) 웟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의 지방교회를 어떻게 봐야 하나요? 12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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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질문) 웟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의 지방교회를 어떻게 봐야 하나요? 1297

한국 교회에 백영희 목사님과 같은 훌륭한 분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먼저 감사를 드립니다. 저는 백 목사님의 목회 설교록을 통하여 큰 도전과 은혜를 받고 있는 기독교한국침례회 산하의 전도사입니다. 안상홍 증인회에 대한 답변의 글 참 잘 읽었습니다. 그런데 저희 가족에게도 이단의 문제와 관련하여 구성원들이 10년째 나뉘어져 큰 진통을 앓고 있습니다.

저희 누님들이 웟치만 니 전집과 위트니스 리의 주석에 심취해 있는 목사님의 교회에 출석하고 있습니다. 신앙의 외길을 간다는 명목하에 너무들 한다고 생각하여 목사님께 자문을 구하고자 합니다. 그런데 그 교회는 한기총 산하의 정통 교단입니다. 문제는 정통 교단의 교회이면서 그 목사님이 그 분들의 신학에 빠져 있다는 것입니다.

크리스마스에 대한 개념은 안상홍 증인회와 동일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기존의 교회들이 썩었다고 합니다. 또한 자기들의 신앙에 동조하지 않는다고 생모에게도 몇년째 찾아오지도 않고 전화조차 한통화 없습니다. 물론 저희 모친께서도 기독교한국침례회(김장환, 이동원, 김충기, 오관석 목사 측)에 속한 교회를 다니십니다.

문제의 본질은 누님들이 목사님의 영향력 아래에서 배우다가 그 분을 닮아버린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그 목사님은 웟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의 신학에 심취해 있습니다. 그 분들에 대한 견해를 많은 목사님들께 물었습니다. 그러고 나니 다음의 두 가지 견해로 말씀하시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1. 그래도 워치만 니는 순교자이기 때문에 부분적으로 배울 것이 있지만 위트니스 리는 복음의 변질자이다.
2.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를 포함한 지방교회는 정통교회를 훼방하는 이단의 집단이다.

정말로 어떻게 봐야 하는지요? 그리고 그곳에 빠져 있는 누님들과 매형들을 위해서 취할 수 있는 행동은 어떤 것이 있는지요? 목사님의 답변 부탁 드리겠습니다. 저도 진리의 전파와 수호를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사역자가 되기를 진정으로 소원합니다.


(답변1) 답변에 필요한 자료를 '지방교회'측에 직접 확인

(자료 소개)

'워치만 니'라는 중국사람에 의하여 시작된 '지방교회' 운동은 현재 국내에서 대부분 이단으로 정죄되거나 그렇게 알려져 있습니다. 우선 일반적으로 그 실체 자체가 잘 알려져 있지 않는 곳인데, 이런 경우 한 사람이 주관적으로 전달하고 그것을 또 다른 사람이 전달하다 보면 실제와 다른 내용으로 정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곳은 '워치만 니'와 '지방교회'를 아주 간단하게라도 알고 있으나, 이곳을 방문하는 분들이 대부분 잘 모른다고 생각하여 우선 객관적인 자료를 제시하고 이에 대하여 간단하게 평가하겠습니다. 질문자께 관련 자료 또는 직접 들은 말씀들을 먼저 제공해 주시라는 요청을 했으나 아직 연락이 닿지 않아, 답변자가 '지방교회' 소속으로 출간물을 담당하는 '한국복음서원'으로 전화를 하여 그곳의 입장이라고 소개하는 다음 2가지 내용을 확인하고 기초 자료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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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설자 '워치만 니')

작은 무리(The Little Flock) 또는 지방교회 등으로 알려진 이 모임은 일반적으로는 그의 영어 이름인 웟치만니(Watchman Nee)(1903-1972)로 알려진 니 수추(Ni Shu-Tsu)에 의해 중국에서 1920년대에 시작되었다. Nee는 그의 할아버지가 회중교회 목사이고 그의 부모들은 신실한 감리교신자들인 중국인 그리스도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자신이 하나님을 위하여 사람들을 깨우는 목적을 가진 종치는 자라는 것을 자신에게 끊임없이 생각나게 하려고 본래 이름인 니 수추(헨리 니)를 니 토생(웟치만)으로 바꿨다.

이름뿐인 종교적 청년기로부터 그는 감리교 복음전도자인 도라 유(Dora Yu)에 의해 회심되었고, 곧이어 독립 선교사인 마가렛 바버(Magaret E Barber)와 함께 일하기 시작했는데 그는 그녀를 통해 존 넬슨 다비(John Nelson Darby)와 폐쇄파 플리머스 형제회의 저술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는 교회조직에 있어서 다비의 반교파적 접근을 채택했고 곧이어 소규모의 복음주의적 그리스도인 무리의 인도자로 부상했다. 1920년대 말에 그는 제임스 테일러(James Taylor)가 이끄는 형제회의 한 부류와 접촉을 가졌고 그들의 초청으로 1933년에 영국을 방문했다. 그러나 그들은 오스틴 스팍스가 관장하는 비형제회 모임인 HOCF(Honor Oak Christian Fellowship)과 허가받지 않은 교통을 하였다는 이유로 니와의 관계를 곧 단절했다.

복주에서의 소규모 시작으로부터 니의 운동은 중국 전역에 확산되었다. 1930년대에 그는 넓은 지역을 여행하며 기독교의 하나됨의 기본적인 표현으로서 (분열적인 교파주의에 맞서) 각 도시마다 오직 한 지방교회(회중)만 있어야 한다는 그의 신념에 근거한 회중들을 만났다. 1922년부터 1952년(중국혁명이 기독교의 확산을 차단했던 때인) 사이에 200개 이상의 지방교회들이 그의 사역을 통해 일어났다. 니는 또한 50권 이상의 책을 썼는데 대부분 그리스도인의 생활과 교회생활에 관한 것들이다. 교회에 관한 그의 성숙된 견해는 그의 가장 유명한 책인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교회생활'(사역의 재고)에서 찾아 볼 수 있다. 그는 또한 '영에 속한 사람'을 썼는데 그 책에서 그는 몸 혼 영으로 구성된 사람의 세 부분의 본성에 대한 그의 이해를 발전시켰다.

1949년에 권력을 장악한 중화인민공화국은 니를 (또한 그와 제휴함으로 관련이 있는 교회들을) 미국과 국민당 정부를 위해 간첩행위를 했다고 고소했다. 그는 처음에는 상해에서 축출 되었고 그후 1952년에 투옥되었다. 그는 1972년 감옥에서 죽었다.


(동역 후계자 '윗트니스 리'와 지방교회 운동)

1930년대에 니는, 체후(Chefoo)에 있는 교회를 세우고 그 교회의 장로가 된 전 개신교 목회자(former Protestant minister)인 윗트니스 리를 동역자로 얻었다. 그는 1932년에 니의 사역에 동참했고 몇년 내에 니의 가장 소중한 동역자가 되었다. 폐결핵과 싸우던 3년간의 부재 후에 윗트니스 리는 중국혁명 직전인 1948년에 전시간 사역자로서 니와 재결합 했다. 니는 윗트니스 리를 대만으로 보냈는데 그곳의 교회들은 번성하여 태평양 연안으로 확산되었다.

미국으로 이주한 성도들은 그 운동을 서부 해안으로 가져왔다. 윗트니스 리는 1962년에 미국으로 이주해서 리빙스트림 미니스트리(LSM)를 설립했다. 그는 지방교회들 가운데 인도적 지위에 있는 전시간 사역자로 인정받아온 이래, 지방교회의 확산을 위해 전반적인 방향을 제시해 왔다. 그는 또한 웟치만 니의 저술에서는 발견되지 않는 몇가지 신학적 강조점들을 소개함으로 그 운동 안에서 혁신을 위한 근원이 되었는데 예를들면, "기도로 말씀먹기" "주의 이름을 부름"과 같은 몇가지 실행들은 논쟁의 주제가 되었다.


(교회 조직)

지방교회는 교회의 하나, 교회생활의 단체성, 그리스도의 교회에 대한 직접적인 머리 역할을 주장한다. 주된 강조점은 교회생활, 함께 모임(일주일에 여러번), 하나님과의 살아있는 관계를 유지하는 것과 교회(회중)생활의 의무를 분담함에 있어 각 지체들의 기능과 책임이다. 성직자와 평신도를 구분하는 것을 거절함에 있어, 교회생활의 실제적인 표현을 위한 본이 세워져 왔다.

지방교회는 한 도시에 하나인 독립적 회중들의 교통으로서 조직된다. 각 회중은 그들을 가르치고, 복음을 전하고, 일반적인 행정일을 하는, 회중들이 인정하는 인도자들 중에서 나온 2-5명의 소규모 장로그룹에 의해 인도된다. 또한 사도적 기능을 가지고 교사와 리더쉽훈련가로서 지방교회들을 순회하고 지방교회가 아직 없는 도시에 새로운 모임을 시작하기도하는 소규모의 사람들도 있다. 지정된 사역자들은 다소간 공식적으로 그들의 수고들을 독립된 사역으로 조직한다. 예를 들어, 윗트니스 리의 경우에 그의 사역은 리빙스트림 미니스트 리로서 합병되었고 그것은 현재 지방교회들 가운데 가장 뛰어난 사도적 노력(endeavor)이다.

다비의 반 교파적 자세가 문제를 일으켰던 플리머스 형제회처럼 니의 운동도 분파적인 이름을 갖지 않았다. 지방교회는 자신들을 다만 교회라고 부른다. "지방교회"라는 말은 편의상의 호칭이지 이름이 아니다. 지방교인들은 그들 자신들을 "(어느 도시에 있는) 교회"라고 부른다.

지방교회는 새로운 도시에 회중을 조직하고자 하는 교인들의 자발적인 운동에 의하거나 사도적인 사역자들에 의해 일반적으로 확산되어 왔다. 미국에 있는 교회들은 처음에 대만으로부터 이주해 온 성도들에 의해 시작되었다. 그러나 최근에 윗트니스 리의 권고로 지방교회는 새로운 전략을 채택해 왔는데, 그것은 "예루살렘의 원칙" 이라고 불리우는 것으로서 새로운 모임을 탄생시킬 단일한 목적으로 한 작은 무리의 교인들이 새로운 지방으로 이주하는 것이다.


(신앙 노선)

지방교회들은 웟치만 니와 윗트니스 리의 풍부한 저술 안에서 발견되는 가르침을 따른다. 간결한 요약은 (미국종교백과사전 중 '신조(Creeds)'안에서 재인쇄된) '지방교회의 신앙과 생활' 이라는 소책자에서 볼 수 있다. 그러한 선언은 플리머스 형제회와 유사한 근본주의적인 기독교 신앙을 고백하고 있으며, 삼위일체에 대한 신앙, 그리스도의 신성, 예수님의 처녀탄생, 대속적인 구속, 예수님의 부활, 그분의 재림, 성경의 축자영감의 신앙을 확증하고 있다.

예상할 수 있듯이 특별한 주의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하나를 취급하는데 주어진다. 종파주의, 교파주의, 범교파주의를 모두 거절하고 각 지방 안에 있는 모든 믿는이들의 하나됨을 주장한다.

지방교회는 자신들을 성경적인 교회의 회복(또는 복구)의 역사라고 생각한다. 사도시대 이래 완전한 교회생활과 그 하나됨이 상실되었지만, 말틴 루터와 종교개혁으로 회복이 시작되었고 진젠돌프 백작과 모라비안(Moravians), 요한 웨슬리와 감리교도들, 더 최근에는 플리머스 형제회의 경건주의 회복을 통해 계속되었다. 지방교회를 통해 그리스도의 풍성에 대한 그리스도인들의 체험(예를 들면,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누림)과 성경에 근거한 교회생활의 실행이 회복되고 있다. 회복의 일부 요소들은 논쟁의 초점이 되어왔다.

"기도로 (말씀)읽기"는 기도의 말로서 성경 말씀을 사용하는 경건한 실행이다. 기도하는 중에 개인이나 단체들은 성경으로부터 단어나 구절들을 반복해서 말하면서 찬양이나 감사의 말을 자주 삽입하는데 이는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체험이 성경말씀을 통해 기도하는 사람 안으로 들어오기 위한 것이다. 실행의 명칭 자체가 가르키고 있듯이, "주의 이름 부름"은 " 오 주 예수"라는 문구의 반복에 의한 하나님에 대한 기도이다.

"불태움(Burning)"은 하나님과의 밀접한 접촉을 가리키는 용어이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복음의 메시지로 감동시킬 때 그 사람은 "불태워진 것"으로 본다. "불태움"은 또한 어떤 사람의 그리스도인 이전의 생활이나 미지근한 헌신의 상태들이 불 속에서 태워지는 실행이다. 문자적으로 재침례인 "장사지냄(burying)"은 그리스도인 헌신의 보다 새로운 단계의 상징하며, 지방교회 성도들은 한번 이상 침례 받을 수 있다.


(교세 구성원)

1991년에 지방교회는 6개 대륙에 교회(회중)들이 있었다. 태평양 연안에 있는 나라들 안에 가장 많은 성도들이 있다. 대만에 200여 교회 6만명의 성도들이 있다. 미국과 카나다에는 265개 교회 1만 5천명의 성도들이 있다. 남 아메리카와 중앙 아메리카의 스페인어 모임 안에 1만 6천 5백명이 있다. 유럽, 아프리카,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에도 교회들이 있다. 혹독한 핍박에도 불구하고 중국 본토에도 생존하는 성도들이 있어 보이며, 이 운동은 지난 기간 동안 실제로 수십만의 성도들에게 확산되었다. 소련의 붕괴 이후 지방교회는 동유럽과 러시아에 복음 사역을 시작했고 1992년에 모스크바와 성 페테스브르크에 교회가 생겼으며 다른 나라에서도 사역을 발전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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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06 * 지방교회 --- 백과사전 500-501쪽(제5판)
* 리빙 스트림 미니스트리
1853 W. Ball Rd
애나하임 캘리포니아 92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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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2) 일반교회와 대단히 다른 점이 많지만, 이단으로 볼 요소는 별로 보이지 않습니다.

1.'워치만 니'와 '지방교회'는 아직까지 이단으로 볼 요소를 발견한 적은 없었습니다.

①신약교회는 기본적으로 그 모습이 각각 아주 천차만별일 수 있습니다.

침례교와 감리교와 장로교와 성공회와 순복음교회는 그 모습이 천차만별입니다. 침례교에 엄격한 분이 있다면 장로교의 유아세례나 당회 노회 조직 등을 성경에 아주 틀렸다고 주장할 것입니다. 성경에 아주 틀렸다 말은 곧 이단으로 정죄할 수 있다는 교리적 표현이 됩니다. 대외적으로 그렇게 표현은 하지 않으나 이곳은 인간의 전적 타락을 부인하는 알미니안주의인 감리교나 사회구원을 말하는 기장교단의 한신대 등은 이단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와 생각이 같은 분들끼리 모여 앉을 때는 우리 주관에 이단이면 '이단'이라 할 수 있으나, 여러 종류 사람이 함께 모여 앉는 자리에서 '이단'이라 표현할 때는 공통성과 사회성과 역사성을 가졌을 때 그렇게 해야 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교계적으로 이단이라 할 때는 대개 교리면과 사회면 2가지로 기준을 잡고 있습니다.


②우리끼리가 아니고 교계 공통적으로 이단을 정죄할 때는, 2가지 면을 생각하게 됩니다.

교리면으로 이단이 되려면 성경에 대하여 하나님에 대하여 그리고 기본구원에 대하여 근본적인 문제가 있을 때 이단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회면으로는 일반 사람들에게 지탄을 받을 수 있는 자연도덕성에 구조적인 문제점이 있을 때 이단이라 하게 됩니다.

성경에 대하여 그리고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하여 그리고 믿음으로 천국가는 구원에 대하여 근본적으로 시각이 다르면 우리는 이를 기독교와 비슷하게 보이지만 실은 기독교가 아니라고 단정하여 이단으로 분류하게 됩니다. 이런 면에서 본다면, 성경을 근본적으로 부인하는 기장교단의 한신대 계통은 이단 중에서도 첫 손꼽을 이단일 것이고 통합교단처럼 기장교단에 절반정도 전염된 곳도 사이비로 봐야 할 것인데, 현재 교계가 이를 덮어두고 있습니다. 따지게 되면 종교계 내부의 분열이라고 사회인들에게 지탄받을 것을 두려워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신학적으로는 엄연히 이단 또는 사이비로 분류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하여 근본적으로 문제가 있다면 이도 역시 이단으로 분류를 해야 합니다. 그러나 삼위일체 교리를 두고 어떤 신학자 어떤 목회자에게도 신앙어린 사람을 위해 알아듣게 설명을 해 달라고 하면 단번에 그 설명 내용 중에서 이단으로 정죄될 표현들이 줄을 잇게 됩니다. 삼위일체 교리를 두고 이단으로 정죄되지 않으려면 역사적으로 요약된 몇 줄의 표현만 주기도문처럼 암기해서 발표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국내 이단정죄에 앞장 섰던 최삼경목사님이 질문하신 '지방교회'와 논쟁을 벌이다가 그만 삼위일체 이단으로 되몰리게 되어 이를 해명하느라고 지금 고생을 하고 있습니다. 이 교리가 바로 그런 교리입니다.

구원론을 두고, 천주교는 하나님과 인간이 서로 노력해야 한다는 정도였는데 종교개혁의 교리는 오직 믿음으로 천국가는 것이고 인간노력은 전혀 상관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이 교리를 제대로 파악하고 제대로 주장하는 곳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대부분 교단들은 교리적으로 이단이라고 정죄되어도 사실 할 말이 별로 없습니다. 국내 최대교단인 합동측의 주축이었던 경북노회가 박윤선목사님의 신학적 지원을 받고 정죄 발표했던 내용 중에서 '예수 믿는 사람이 흉악한 죄를 짓고도 회개하지 않는데 그래도 천국을 간다고 말하는 것은 이단'이라고 했습니다. 그분들 스스로가 이단되는 발표를 했던 것인데 그 발표문의 의미도 모르고 발표한 분들입니다.


교리 문제 외에 또 하나 이단에 정죄될 중요한 기준은, 불신자의 사회적 양심에서 볼 때에도 용납되지 않을 도덕적 탈선의 구조적 문제점을 가졌을 때입니다. 개신교 총회장이 금품살포를 했다고 해서 그 교단을 이단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사이비종파에 교주가 돈을 많이 먹었다고 해서 이단이라고 하는 것은 성급한 일입니다. 그 교단의 조직과 운영의 기본 방침에 경제부정 폭력행사 등 도덕적 탈선이 구조적으로 들어 있으면 우리는 이를 이단이라고 합니다.

이는 사실 일반 불신 사회가 보는 이단 기준일 뿐이고, 우리가 볼 때는 이런 도덕적 탈선은 그 도덕적 탈선을 구조적으로 하도록 만드는 데에 교리적 뒷받침이 있기 때문에 그 나타난 도덕적 탈선보다 그 도덕적 탈선을 보장하는 교리가 성경에서 탈선되었기 때문에 이단이라고 합니다.


③이단에 대한 기준을 보다 냉정하게 따져 살핀 다음, 이단 문제를 새로 보셨으면 합니다.

이단을 이단이라 하지 않는 죄도 크지만 이단 아닌 곳을 이단이라고 정죄한 죄는 더 큰 죄가 됩니다. 이단인지 아닌지 살펴보는 기간이 늦어지는 것은 영안이 어둡고 신앙이 어리다고 표현하고 말지만, 이단 아닌 곳을 이단으로 정죄한 죄는 생사람을 죽인 살인죄가 됩니다. 대단히 신중하게 따져 봐야 할 일입니다.

이곳은, 기장교단의 한신대와 같은 곳은 여호와의 증인과 같은 수준의 이단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교계가 기장교단을 신학적 의견이 다른 정도로 보고 있기 때문에 혼자 속으로 이단이라고 하지 대외적으로 발표하지는 않고 있습니다. 순복음교회를 이단으로 정죄한 교계의 정죄는 서툴고 잘못된 전형적인 예입니다. 사실 장로교 기준에서 엄격하게 본다면 '워치만 니'의 '지방교회'나 '침례교'의 개교회주의나 도토리 키재기일 뿐입니다. 두 곳 다 장로교 교리의 '교회론'에서는 이단으로 정죄하려면 함께 해야 하고, 한 곳을 이단으로 정죄할 정도가 아니라고 한다면 다른 곳도 역시 마찬가지라고 할 정도입니다.

한국의 현재 침례교는 전통적인 침례교 본질에서 많이 벗어나 있습니다. 우리 한국인 특유의 당파성이 대단히 깊이 침투되어 있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침례교는 원래 그런 점을 경계하고 개인 개교회 신앙자유성을 최대한 보장하는 신앙입니다. 그렇다면 침례교 입장에서 본다면 장로교는 너무 조직적이고 지방교회는 너무 비조직적이며 침례교는 그 중간쯤으로 봐야 옳을 것입니다. 침례교를 기준으로 침례교보다 더 비조직으로 나간 '지방교회'를 이단으로 본다면 그 반대 방향으로 나간 장로교는 침례교보다 더 조직적이기 때문에 이 역시 이단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④현재 한국교회의 이단 판정은, 사실 교계와 어울릴 수 있는 정도 여부에 있습니다.

현재 한국 교계는 초교파적으로 협력해 가며 정부와 사회에 대하여 한국교회의 세상 권리와 자리를 챙기고 있습니다. 이 일을 위해서는 정부나 사회가 볼 때 기독교 대표라고 인정할 만큼 교파와 교단들이 단합해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그 교리와 신앙노선 입장에 상관없이 덩치 큰 곳들이 힘을 합한 것입니다.

이 일을 위해서는 서로가 과거를 묻지 않아야 하고 또 서로의 현재 형편을 따지지 않아야 하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개신교 주요 교단들이 늘 함께 모여 세상 정치가들을 만나 자기들의 영향력을 기르고 또 각 교단들의 이해문제를 해결하면서 오랜 세월이 지나게 되니까 이들에게는 객관적으로 이단을 선별하는 기준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자신들의 취향에 따라 이단을 선별하게 된 것입니다.

즉, 현재 한국의 정통교단들이라고 하는 교파들 범위에 교리적으로나 도덕적으로나 들어갈 수 있는 교회들 중에서 자신들의 이해 관계에 문제가 없고 자신들의 주도권 영향 아래로 들어올 수 있는 곳들은 그냥 두고, 자신들에게 위협이 되거나 자기들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고 독자적으로 나가는 곳들에 대하여는 무슨 꼬투리를 잡아도 잡아서 기어코 이단이라고 이름을 붙여버리고 있습니다. 1970년대 순복음교회가 그렇게 당한 대표적 경우였는데, 덩치가 너무 커져버리니까 대충 지도부가 만나서 타협을 한 다음 지금은 정통으로 인정을 하고 있습니다. 소위 양성화를 시켜 준 것입니다.

지방교회는 그 교리 때문에 찍힌 것이 아니고 교회운영 형태가 현재 일반 교회의 기존 형태를 해체하고 새로운 형태의 교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기 때문에 아주 몹쓸 교회로 찍은 것입니다. 구원파라고 알려진 박옥수목사님측은 그 교리가 잘못되었다는 것보다 그들의 행동이 일반 교회 교인들을 상대로 자기 교회로 끌어들이는데 주력을 하기 때문에 미움을 받게 된 것입니다. 순복음교회도 1970년대 초반 한참 부흥될 때에는 일반 교회를 다니는 이들에게 '성령을 받으셨습니까?'라고 물어보고 그 질문 하나로 중생이 됐다 안 됐다고 하면서 일반 교인들을 자기들 교회로 끌어들이는데 주력을 했었고, 이 문제로 일반 교계에게 이단으로 못박히는 결정적 이유가 되었습니다.


⑤이제 냉정하게 '워치만 니'의 '지방교회'를 두고 한번 살펴 볼 일입니다.

우선 이곳에서는 상기 자료를 두고 어떤 면으로 봐도 이단이라고 할 만한 내용은 찾지를 못하겠습니다. 그러나 신앙노선을 두고 이곳과는 너무 판이하게 다른 면이 많습니다. 이곳 신앙노선과 다른 면은 이곳 생각에는 전부 단점으로 보여집니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이단이라고 말하는 데에는 문제가 있습니다. 혹시 이곳에 올린 자료와 다른 내용이 문제가 될 수 있다면 이곳에 올려주셨으면 합니다.


2.질문 내용과 상기 자료를 가지고 직접 살펴보겠습니다.

①성탄절이 성경적이 아니라고 말한 것은, 분명히 성경에 맞는 말입니다.

현재 어떤 기독교 교파도 성탄절을 성경에 근거한 것으로 보지는 않습니다. 그냥 초대교회에서 중세교회로 넘어오는 사이에 생겨진 하나의 전통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따라서 교회가 성탄절을 앞에 믿는 선배들이 해오던 전통 정도로 생각한다면 별 문제가 아니지만 만일 성탄절을 교회의 정식 절기 정도로 생각한다면 그렇게 생각하는 분들이 성경에서 이탈되는 것입니다.

술 담배처럼 물론 전통도 꼭 지켜야 할 전통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탄절은 그냥 전통이지 꼭 지킬 전통이 아니며 더구나 성경적 근거로 말을 하려면 오히려 하지 않는 것이 하는 것보다 더 위험한 것입니다.


②기존 교회가 다 썩었다는 말은 누가 해도 옳은 말입니다.

기존 교회가 다 썩었다는 말은 비록 이단이 사람을 유혹하기 위해서 하더라도 우리는 인정해야 합니다. 교계가 썩은 것은 맞는 말인데 데리러 온 너희 이단교파는 썩은 중에도 조금 남아 있는 생명을 볶아 먹으러 왔으니 따라 가지 못하겠다고 해야 옳을 것입니다. 만일 오늘 교계를 썩지 않았다고 변호하려면 어떤 이론과 논리로도 그것을 증명하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남한에 거지가 있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비록 북한이 말을 해도 맞는 말입니다. 문제는 북한은 남한 거지만도 못하다는 뒷말을 해 주면 될 것입니다.

현재 국내 이름이 외부로 드러난 교단치고 썩을 대로 썩어 그 생명의 존부조차 확인하기 어렵다 하지 않을 교단이 없습니다. 심지어 뽑기를 해서 총회장을 임명하는 교단이 생겼고 그 교단이 국내 최대 교단이며 그다음 크기의 교단이 지금 준비단계에 있습니다. 뽑기를 하게 된 이유는 부정선거 금품살포라고 하는데, 이 말은 그들이 스스로 하는 말입니다. 문제는 이 교단들이 이렇게 썩어다고 해도 그들이 믿는 성경과 하나님까지 금품살포에 연루된 것은 아닙니다. 욕을 먹을 것은 인정을 하고, 욕을 해서 안될 부분은 따로 분리를 하게 되면 모든 것이 쉬워지리라고 생각합니다.


③자기 신앙노선과 다르다고 집안 친척과 연결도 끊는 행위도 이단으로 볼 수는 없습니다.

신앙의 가치가 지상의 최고 가치라고 한다면 그 지상의 가치를 위해서는 친구와도 다른 길을 갈 수 있고 이웃이나 집안 심지어 부자 부부까지도 다른 길을 갈 수 있는 것이 기독교 신앙의 근본 노선입니다. 즉,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 하나님 뜻을 따라만 가라는 것이 창12:1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주신 첫 명령이요 오늘 우리에게도 해당되는 명령입니다.

다만, 복음 전파를 위해 죄되지 않으면 이해하지 못하는 분들을 심방하는 차원에서 접촉하고 달래는 것이 더 좋겠다는 것이 이곳의 노선이지만, 어디까지나 전도와 심방의 방편 문제이기 때문에 질문하신 분의 가정 식구 중에 '지방교회'에 소속한 분이 자기 노선이 옳기 때문에 집안 식구들을 그리로 소개하기 위해 지금 어떤 노력을 하는 중에 한 가지 방편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그분들의 노선이 과연 옳으냐 틀리냐는 것이 중요하지 그 노선을 위해 어떤 행동을 보이느냐는 문제는 서툴다고 하거나 아니면 좀더 원만하다고 표현할 차원일 뿐입니다.


④'워치만 니'와 '윗트니스 리'에 대한 개별 평가는 크게 중요할 것 같지 않습니다.

워치만 니의 노선이 그분들의 신앙사상에서 절대적 위치에 있다면, 그 뒤를 잇는 윗트니스 리의 언행을 두고 워치만 니를 따르던 분들이 경쟁 관계 때문에 비판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고 또 워치만 니만큼은 안되지만 그래도 그 노선을 잘 잇는다고 말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워치만 니와 윗트니스 리의 관계는 일단 지방교회가 좋아서 그곳에 소속한 사람들에게 해당될 문제라고 생각됩니다.

현재 이곳은 그들을 이단이라고 단정하기에는 아직까지 아는 대로는 그럴 만한 자료가 없습니다. 또 더 이상 자료를 챙겨보지 않아도 이단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그렇다면 이단으로 보든 아니 보든 현재 이곳에서 대화하는 우리는 그곳의 신앙노선을 찬성하지 않는 입장이니 그 내부의 정통성이나 그들 내부에서 평가하는 것에는 별로 상관할 바가 없다고 봅니다.

이제, 위에 올린 자료를 가지고 잠깐 살펴보겠습니다. 워치만 니의 '지방교회'측 출간물을 담당하는 분의 소개로 자기들의 입장을 요약한 글이라고 하여 올렸습니다. 이단 시비로 나갈 수 있는 이런 경우는 항상 그들이 직접 확인하는 자료나 주장을 '사실 확인'한 다음 평가에 들어가는 것이 중요함을 기억하셨으면 합니다.


3.'지방교회'의 '한국복음서원' 관계자 소개로 알게 된 '지방교회'에 관한 내용 평가

①우선 지방교회를 시작한 '워치만 니'에 대한 활동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별 문제가 없습니다.

워치만 니의 글을 약간 읽을 볼 일이 있었습니다. 신령하게 살다간 분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오늘 교회가 세상을 떠나 천국을 향해야 옳은데 오늘 교회치고 세상에 붙들려 세상화 되지 않은 교회가 없다 할 만한 20세기에 오직 위엣 것만 바라보고 자기 속에 계신 성령에 붙들려 살았던 분이라고 간추려 생각하고 있습니다.

한국으로 말하면 김현봉목사님이나 이용도목사님을 보는 느낌이 있습니다. 당대에 그들을 이단으로 정죄하기에 바빴지만 그들의 신앙세계의 높이는 당시 교계가 가진 측정기구로는 도저히 계측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었습니다. 자기들의 실력과 잣대로는 측량도 못할 차원이 되자 간단하게 이단으로 정죄를 해버렸지만 이는 교계적으로 시대를 감당했던 종들을 매장한 결과로 오늘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용도목사님을 최근 신학계에서 재조명한다는 움직임을 읽은 적이 있으나 김현봉목사님은 여전히 묻혀있습니다. 그들이 묻힌 것이 아니고 그 시대가 묻혀 살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었습니다.


②지방교회를 두고 가장 아쉬운 부분은 '목회'라는 현장을 잘못 봤다는 것입니다.

한 지방에 한 교회가 모여 목회자 없이 신앙공동체로 사는 것이 옳다는 지방교회의 주장은 일반 교계로 하여금 바짝 긴장하도록 할 만 합니다. 현재 답변자가 있는 도시에 있는 교회만 해도 6백여개를 헤아린다고 들었고 답변자가 있는 면에만 교회가 15개정도 있습니다. 이곳에 교회를 하나만 둔다고 하면 나머지 목회자들은 다 실업자가 되라는 말인데, 이 주장을 하고도 한국교계에서 살아남기를 바랐다고 한다면 대단히 철없는 생각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 주장이 너무 목회 현장을 모르고 어린 신앙을 길러가는 과정을 이상적으로만 보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마지막 부탁하신 말씀이 내 어린 양을 먹이라 치라는 3번의 부탁이었습니다. 양이라고 표현하고 또 목자라고 표현하는 것은 비록 베드로도 목자가 되기에는 너무도 경솔했고 탈선한 적이 많았고 인간적으로 부족한 것이 한 두가지가 아니지만 그래도 하나님께서 목자와 양의 관계와 같이 앞서 믿은 사람을 통해 뒤에 믿는 사람을 이끌어 가시도록 했는데 지방교회의 교회관은 이런 면을 무시하고 있습니다.

한 지방에 있는 교인 전체가 목회자 없이 교인들끼리만 모여 주시는 은혜대로 신앙생활을 하겠다는 것이 외견상 가장 큰 차이점인데, 이 문제 역시 2가지 면으로 봐야 할 점이 있습니다.


③'지방교회'를 시작한 '워치만 니'가 있던 시절이면 가능했으리라고 봅니다.

현재 지방교회가 한 지방 전체 교인들이 한 교회로만 모이고 또 그들에게는 목회자가 없는 상태에서 교인들로만 스스로 신앙생활을 해 나가도록 하고 있는데, 이런 조직이 과연 성립이 될 수 있겠는가, 과연 유지가 되겠는가 라는 문제를 두고는 일반 교계 수준에서는 불가능하다고 할 것입니다. 그런데 결과는 현재도 유지가 되고 있습니다. 이유는, 워치만 니라는 분의 신앙 지도력에서 가능했고, 지금은 그 여파가 남아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보입니다.

손양원목사님이 간 지가 50년이 넘고 있으나 아직도 애양원교회는 통합측에 속하고 있으면서도 그 예배나 기도생활 등에서 통합측에서는 상상도 하지 못할 경건한 보수적 모습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손목사님이 살아있을 때는 훨씬 얼마나 강했을까 하는 면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워치만 니와 같이 이 세상을 살되 하늘에 속한 사람으로 이 세상을 살았던 지도자가 있었다면 그의 지도와 교훈은 어느 한 지방에 있는 소속 교인들이 자기 지방에 있는 지도자를 보아서가 아니고 워치만 니를 사모하고 따르는 그 힘으로 자기 지방 전체가 한 교회로 운영되고 교역자 없이도 그 신앙을 유지할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백영희신앙노선에 있는 총공회로 예를 든다면, 교회론의 근본이 지방교회와는 다르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않았으나 만약 백목사님 생전에 백목사님이 소속 공회 교회들에게는 한 지방에 한 교회만을 두고 공회 소속 교인들은 목회자 없이 신앙생활을 하도록 했다면, 다른 곳에서 볼 때는 과연 그것이 존속되겠느냐고 볼지 몰라도 공회의 신앙성격은 그렇게 되고도 남습니다. 오히려 각 지방과 각 교회를 담당하는 목회자가 있는 것보다 없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은 교회라는 존재를 우리에게 주실 때는, 전국과 세계에 있는 교회를 혼자 목회할 수 있는 인물을 주실 때도 있으나 그렇지 않을 때가 더 많은 법이고, 교회는 재림때까지 계속될 신앙의 중심이기 때문에 훗날과 전체를 보아서 모든 결정을 했던 것입니다.


④어쨌든, 지방교회가 한 지방에 한 교회로 모이고, 교역자 없이 하겠다면 그들의 신앙자유입니다.

통일교가 문선명을 재림예수로 보는 것은 그들의 신앙자유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을 이단으로 정죄하여 기독교로 보지 않고 불교와 같은 수준으로 보고 있습니다. 침례교는 장로교와 그 교회 운영의 기본신앙이 아주 판이하게 다릅니다. 그러나 이런 경우는 장로교에서 이단으로 정죄할 것이 아니고 침례교 믿는 분들의 신앙자유에 속한 것으로 보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백영희신앙노선은 그 교회론을 두고는 침례교와 거의 비슷한 노선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공회의 노선도 신앙자유에 속한 것으로 봐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장로교에서는 당회 노회 체제없이 움직인다고 하여 이단이라는 말을 쉽게 끄내는데 그들의 성급함이 문제입니다.

지방교회의 교회 운영론은, 우리가 볼 때 믿는 사람의 자라가는 면을 너무도 쉽게 보고 너무도 이상적으로만 생각했다고 보입니다. 그러나 워치만 니와 같은 사람이 생존했을 때 그렇게 했다면 그것이 그들의 영력으로 가능했을 것이기 때문에 무조건 잘못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으나 다만 일반적인 교회론으로 본다면 잘못 깨달았다고 생각이 됩니다. 그렇다고 이단으로 정죄할 일은 되지 못합니다.

이유는, 교회 자체를 부인하는 것이 아니고 한 교회가 맡을 범위를 어떻게 정하느냐는 문제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교단헌법에 따라서는 소속 교회간의 거리를 5백미터 안팎으로 정한 것을 읽은 기억이 있습니다. 교회 간 설립 거리를 헌법으로 제한한다는 것은 너무도 교회를 모르는 처사입니다. 이런 교파와 정반대로 한 지방에 한 교회로 운영한다는 것도 역시 너무나 목회현장을 쉽게 보았다는 느낌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곳이든 저곳이든 그것 때문에 이단이라 할 정도는 아니고 그냥 자기 교단을 운영하는 하나의 기술이라고 보는 것이 옳을 듯 합니다.


⑤목회자가 없다는 노선도 그렇게 큰 문제는 아닙니다.

목회자 없는 교회는 교회가 아니라고 단정하려면, 교회가 형편 상 목회자가 없는 상태로 지속되는 경우가 더러 있는데 이런 경우 일시적으로 이단상태라 하겠습니까? 또한 목회자라 해도 각 교파마다 그 목회자를 부르는 이름도 서로 다르고 목회자로 인정하는 요건도 각기 다 다릅니다.

그렇다면 '지방교회'와 같은 경우는 한 지방에 한 교회를 두고 그 교회에 몇몇 주도하는 장로님을 두어 교회의 활동을 지도한다고 하는데, 그 몇몇 주도하는 분들이 바로 목회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름을 굳이 목회자라고 해야 목회자가 있는 것이 아니고 그 교회에서 드러나지 않으나 내면으로 신앙에 앞서 나가는 분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신학교를 졸업하지 않았다는 것을 지적하려면 각 교파의 목회자 양성과정은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으며 공회와 같은 곳은 신학교라는 과정 자체를 불필요하게 생각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4.질문하신 분 때문에 '지방교회'를 약간이라도 자세하게 살필 기회는 처음이었습니다.

이단이라 할 것은 없으나 교회의 목회 현장을 보는 시각이 너무 순수해서 그 단점이 대단히 많겠다고 총평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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