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시차는 신앙의 동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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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시차는 신앙의 동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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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47고후06:02
성구 내가 은혜를 베풀 때에 너를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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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시차는 신앙의 동시성
고후6:2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를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라는 이 말씀은 사49:8 인용이다.
그런데 본문에서 바로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라 했다.
구약에는 구원이 필요한 환란의 날이 오기 전 평소 은혜를 구할 때 응답을 받아 두야 구원의 날에 구원하신다고 적었다.
마25:1 열처녀 비유에서 대낮에 기름을 준비해 둬야 밤중에 등을 켤 수 있다는 말씀이다.
그런데 고후6;2 후반에서 ‘지금은 은혜의 때’인 동시에 ‘지금은 구원의 날’이라고 구약의 시차를 신약에서는 동시로 봤다.

구약과 성경은 우리를 가르치기 위해 시차를 두고 적었으니 그 역사와 그 사건들은 일단 사실이고,
그런 역사와 그런 사실을 시차를 두고 일어 나게 하고 시차가 있었다고 기록한 것은
오늘 우리에게 그 시차처럼 역사가 진행 되기도 하나, 동시에 진행 되는 면을 함께 말했다.

주님 오시면 재림이다.
그러면 심판이 있고 천국과 지옥으로 나뉜다.
이 것은 이 것대로 진행 될 것이나 오늘 우리에게는 매 현실마다 보이지 않는 주님이 내 마음과 내 생활 속으로 찾아 오신다.
이 것도 내 개인에게 그 사건적으로는 주님의 재림이다.
그리고 이 재림은 내 속에 좌우 선택에 따라 말씀과 배반의 행위로 나뉘고 그 행위에 따라 즉각 성화와 악화의 결말을 맺는다.
우리의 모든 현실은 최후 대심판을 준비하면서 나의 개인 종말도 함께 준비해야 한다.
그리고 말세가 아직 오지 않고 내가 더 살아 있다 해도 오늘의 현실 하나가 지나 가면
그 현실은 내게 그 현실적으로 종말이고 다시는 반복하지 못하며 결말을 맺는다.

그리고 고후06:08이 이어지면서 만사 모든 면에 극단적 양면을 말하나 실은 하나임을 말한다.
영광과 욕됨이 하나니 영안으로 보면 영광이고 육안으로 보면 욕됨이다.
불신자는 바울의 이름을 욕되게 부르나 우리는 영광스럽게 부른다.
바울은 속이는 자 같은데 실은 참된 자다. 어떤 사람이 어떤 입장에서 어느 기준으로 보느냐는 것이 다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