②천국

조직신학 본서       교리성구 사전

                        ②천국

서기 0 39
.(2) 천국

  ① 천국의 의미

  천국은 택자들이 세상에서 잠깐의 준비와 훈련을 끝내고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사는 곳이다. 택자들의 영원한 활동 무대가 된다. 물질이 아니라 영계의 영물로만 이루어지고 영물들만 있는 곳이다. 오직 택자들만은 물질로 된 육과 영물로 된 영을 다 함께 가진 존재로 천국의 주인인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영원히 하나님을, 아버지를 닮아가는 곳으로 영계를 사용하게 된다.


  ② 천국의 모습

  ▪ ‘교회’로 활동할 택자들

  택자들의 천국은 세상에서 마련한 하나님 동행의 실력과 준비된 모든 기능으로 영원히 만물을 통치하며 살게 된다. 주님을 머리로 삼고 모든 택자 전부가 준비한 실력과 장점과 기능은 전부 한 몸속에 구성 성분이 되어 전체가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형태다. 이 단체를 달리 표현하면 ‘교회’요 주님의 ‘몸’이다(엡1:23, 4:15-16).


엡1:23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

엡4:15-16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찌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입음으로 연락하고 상합하여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 광대한 활동 무대

  세상 물질계도 그 종류와 상황이 끝이 없으며, 만일 우주 전체를 우리 범위로 넓힌다면 현재 지구를 중심으로 살아온 6천년의 범위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광대한 세계다. 그러나 영계는 이 우주 전체를 하나의 점 정도로 계산할 만큼 그 끝을 측량할 수 없는 세계다.

  따라서 영계의 범위와 그곳에서 살아갈 우리의 모습과 그곳에 있는 존재들과 생활에 대하여는 우리의 지식이 마치 돌 지난 아이와 같다. 그 아이에게 유엔을 설명하고 유전자의 이치를 가르치고 우주선의 정교함을 설명하는 것은 필요가 없다. 영계를 오늘 이 땅 위에 사는 우리에게는 다 알릴 수가 없어 극히 일부분만 조금 엿볼 수 있게 했다(계21:1-22:15).


‘계21:1-22:15’은 성경 참조

롬8:21-22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 한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 하는 것을 ... ’



  ▪ 각자의 분담과 각자의 차이

  세상과 비교할 수 없는 무한하다 할 만한 그곳에서 우리들은 많은 종류와 존재들과 복잡한 조직과 질서 속에서 주인공이 된다. 세상에서 하기 싫은 일만 많이 했던 노예출신들은 천국을 그냥 쉬는 곳으로만 생각하고 싶지만, 천국은 이 세상에서 보람된 일을 맡아 참으로 바쁘게 세월을 보내는 것으로 만족해 본 사람들의 일에 대한 즐거움으로 추론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 그곳은 그런 성질의 일로 가득 차고 무한하게 진행되는 나라다.

  죄와 악령과 어떤 종류의 방해자도 없고, 오히려 하나님과 진리에 자유 하되 만물이 돕고 환영하는 중에서 맡은 일을 하게 된다(롬8:21-22).


  ▪ 각자의 차이는 불만 대신 감사할 이유

  천국에서도 차이가 있다. 세상 차이는 약육강식이어서 그 차이 자체가 지옥이지만, 하늘나라의 차이는 강자가 약자를 위해 봉사하는 곳이므로 약한 자가 강한 자의 수고를 감사하는 곳이다. 오늘 세상에서는 제 주제와 위치와 실력을 알지 못하고 올라만 가면 좋다 하고도, 그 사람이 올라감으로 다른 사람은 자기가 가질 기회가 박탈되어 시기를 하거나 아니면 투쟁을 하게 된다. 천국은 눈이 완전하게 열리게 되어 실력 있는 사람이 그 자리에 있는 것이 실력 없는 사람의 소원이다.

  위로 예수님부터 아래로 우리 택자 중 아무리 적은 자라 해도, 자기가 세상에서 수고한 만큼, 실력을 갖춘 만큼 정확하게 그 자리를 맡게 된다. 그 자리에 그 사람이 책임을 맡게 됨으로 나를 포함한 만존재가 혜택을 입게 되어 늘 영광을 돌리게 된다.

  이런 실력 차이는 이 세상의 고통과 다른 차원에서 진행되기 때문에 천국도 세상처럼 차이 때문에 천국이 천국 되지 못하는 경우는 없다. 이를 세상식으로 오해하여 천국도 차이가 있으면 불공평으로 인해 원망이 생길 것으로 생각하고 이 교리를 사정없이 비판하는 학자들이 많다. 그것은 이 세상에서 그런 감정을 가졌던 것이 자기중심이라는 악성이었고, 욕심이라는 옛사람의 요소였고, 또 무지하여 깨닫지 못하는 짐승 같은 수준의 미련 때문이었다. 이런 것들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고 전부 지옥에 버려질 것이므로(계21:8), 천국에서는 그 차이 때문에 불평과 갈등이 있지 않다. 오히려 영광이 있고 감탄이 있고 환호를 받는다. 그 차이 때문에 오늘 세상과 같은 질투와 고통이 발생하지 않는다(엡1:23, 4:16).


계21:8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하리니...’

엡1:23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

엡4:16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입음으로 연락하고 상합하여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 차이로 인한 감사는, 천국 차원의 후회

  천국의 차이를 오늘 세상에 있는 우리가 느끼기 쉽도록 표현을 할 때 후회라는 표현을 빌려서 느껴 볼 수 있다. 세상에서의 후회는 죄값이며 지옥의 고통을 비추어 준다. 천국에서의 차이란 이 땅의 후회와 같은 죄악의 값으로 당하는 그런 지옥적인 고통은 없다. 더 잘 할 수 있었는데 하지 못한 것에 대한 차이를 깨닫고 느끼면서, 이를 극복할 기회를 주신 주님의 대속 앞에 죄송스러움은 천국에서도 당연히 있다. 후회라는 단어를 굳이 사용하는 것은 오늘 이 땅 위에서 우리가 미리 준비하지 못했을 때 겪는 일반적인 느낌을 통해 천국 준비를 재촉하는 의미다.

우리는 천국에서 끝없이 자라 갈 때 항상 감사해야 하고 더욱 감사해야 하는데 세상에서 준비하지 못해서 그렇게 되지 못한다면 주님 앞에 늘 죄송할 것이다. 천국에 가서 자기의 지난 날을 돌아 볼 때 세상에서 마련하지 못한 자신과 함께 주변에 잘 마련하고 온 성도에게 돌아 가는 감탄과 환호를 비교하게 된다. 세상에서는 미리 준비하지 못해서 못난 사람이 되면 주변에서 무시를 하고 짓밟게 되지만, 천국에서는 미리 준비하지 못한 자기를 향해 주변에서 대신 보충해 줄 것이니 그들에게 감사를 하게 된다. 이 감사와 감탄과 환호를 오늘 세상 식으로 표현한다면 후회와 같다. 세상에서 믿는 우리가 평생을 살면서 죄를 지은 만큼 우리 속에는 죄의 기능이 만들어 진다. 그런 기능은 지옥에 버리고 천국에 가게 되지만 그 버린 기능 때문에 빈 자리는 우리가 늘 보면서 살아야 한다. 그 것을 오늘 세상의 표현으로 말한다면 후회며 부끄럽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다 내가 세상에서 만들었고 지옥에 버린 나의 기능을 천국에 있는 내가 지켜 봐야 한다. 자기가 세상에서 잘못 산 생애를 천국에 가서 우리는 망각하게 되지 않는다. 또한 죄의 기능이 지옥에서 영원토록 불타며 호소하는 소리를 들을 때 오늘 이 땅 위의 감정과 느낌의 기준으로 표현한다면, 천국에서도 그 죄의 기능의 호소 때문에 고통을 느끼게 된다.

  우리는 각자 세상에서 자기가 감당하고 준비했어야 할 것이 있다. 그런데 우리는 부족하여 그렇지 않다. 그렇다 해도 주님은 그런 것을 미리 다 아시고 우리가 하지 못한 것까지 십자가에서 다 감당했다. 그래서 천국에서 후회할 일을 우리가 오늘도 하고 있지만 천국에서는 세상식의 고통은 없다. 다만 천국수준에서 느끼는 죄송함은 있을 것이다. 이 문제를 가르친 것이 눅15장의 홍포 입은 부자의 지옥 호소다.

  불택자는 자기 자체가 지옥에서 영원토록 불 가운데 타는 것이 옳다는 것을 알게 된다. 죽은 뒤에는 시공의 제한을 벗기 때문에 모르는 것이 없다. 그러나 택자가 만든 죄의 기능이 지옥에서 불타고 있다면, 그 기능을 만든 장본인인 우리는 예수님 대속으로 천국에 있을 것인데, 비록 예수님 대속으로 모든 문제는 해결되었으나, 오늘 세상에서 죄의 기능을 만들지 않아야 할 절박한 심정과 그런 자세를 갖는 것은 바로 홍포 입은 부자의 일로 우리에게 알리고 있다(눅15:21, 계1:17).


눅15:21 ‘아들이 가로되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계1:17 ‘내가 볼 때에 그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매 ...’



  ▪ 영원한 성장

  우리의 천국은 택자 전체가 주님 모신 한 몸이면서 그 한 몸 속에 우리 각자는 자기가 세상에서 준비한 각자의 분담과 실력 차이가 있게 된다. 그런 한번 세상에서 결정된 이 분화와 실력은 영원히 고착된 상태로 있는 것이 아니고 자라가게 된다. 따라서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천국에서 가면 갈수록 격차는 더욱 벌어 질 것이다.

  세상에서 미리 준비하지 못한 것을 천국에서 새로 마련하는 일은 불가하다. 세상에서 차이 난 것이 천국에서 자라가면서 그 순서나 실력이 뒤바뀌는 변화는 없다. 오히려 각자의 차이는 영원토록 점점 벌어지게 된다. 따라서 세상에서 준비하는 것은 마치 천국에서 영원히 길러갈 하나님 닮은 요소와 자기 실력에 대한 ‘종자’ 마련과 같다. 그리고 그 수량과도 같다. 그리고 그 실력과도 같다.

  몇 가지나 준비했고 얼마나 많은 양을 준비했느냐는 것으로 한 번 천국으로 들어가면서 확정되고 나면, 모두들 영원히 자라가기는 하지만 이미 준비한 것만으로 자라간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오늘 세상은 매 순간을 세상에서 준비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로 알고 전력해야 할 것이다(고전13:13).


고전13:13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 영원한 성장은 그 방향이 하나님

  천국에서 우리가 영원히 자라가다 보면, 언젠가 하나님의 형상을 완전히 다 닮을 수가 있겠는가 하는 질문이 한번씩 제기 된다. 성경에 단정하지 않았으므로 좌우간에 확정지을 수는 없다. 세상에서 하나님을 닮을 종자 전부를 다 마련해서 천국에 서는 사람이 없다는 점을 생각할 때, 비록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지만, 한 부분적으로 하나님을 닮지 전면적으로 다 닮을 수는 없다.

  따라서 우리는 영원히 하나님을 향해 닮아가야 하는 것이 천국에서 우리의 목표이면서 우리 할 일이며, 또한 우리의 소망이다. 이 면 때문에 천국에서도 늘 새로움이 있다. 이 면을 두고 가르친 것이 고전 13:13이다. 자라갈 ‘소망’이 우리에게는 영원히 있을 것이다. 그런데 자라갈 수 있는 방법은 천국에서도 영원토록 ‘믿음’이라는 순종으로 자라간다. 이렇게 순종할 때 영원히 자라도록 모든 것을 은혜로 주시는 면을 가르쳐 ‘사랑’이라고 한다.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계 22: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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