④죽음의 결과

조직신학 본서       교리성구 사전

                        ④죽음의 결과

서기 0 16
(4) 죽음의 결과

  말세론에서 개인의 죽음을 논할 때는 죄론에서 살펴본 것과는 달리 몸의 죽음으로 인하여 발생되는 일을 중심으로 살펴본다. 몸이 죽으면 어떤 일이 있을 것이며, 몸의 죽음에 관련된 현상들은 어떤 공통점이 있겠는가를 살펴본다.


  ① 몸과 마음의 분리

  보통 세상에서 말하는 ‘죽음’이란, 그 이면에 마음이 몸으로부터 분리되어 일어나는 현상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들 때 몸은 마음과 연결된 상태에서만 존재의 의미가 있도록 했다는 것은 조직신학의 인론에서 이미 살폈다. 몸은 마음으로부터 분리되면 그 순간부터는 존재 가치와 이용 목적과 작동의 의미를 완전히 잃어버린다. 마음과 분리된 몸은 송장으로 남을 뿐이다.

  대개 의학이 죽음을 확정지을 때는 몸의 기능을 기준으로 삼기 때문에 의학은 몸이 죽은 결과만을 본다. 그러나 몸의 죽음만을 가지고 정확하게 표현한다면 몸이 죽으면 마음이 몸으로부터 분리되는 것이 아니고, 마음이 몸으로부터 분리되면 몸은 죽는 것이다. 그리고 그 분리되는 순간은 인간이 볼 때는 몸의 기능이 다하는 시점인데, 실은 하나님께서 각 사람의 몸으로부터 마음을 불러들이는 시기를 정해놓았다. 따라서 몸의 기능 마비는 그 사람의 마음을 불러들일 시간이 임박했다는 표시다(눅12:20, 행5:10).


  ② 몸의 활동 중단

  마음이 몸으로부터 떠나게 되면 몸의 기능과 활동은 완전히 중단된다. 몸을 존재시키고 유지시키고 움직이게 만드는 생명은 자기 마음과의 연결에서 나오기 때문에 마음과 분리된 몸은 즉시 송장이 되는 것이다. 모든 기능과 활동은 전부 중단되고 몸은 그 형체까지도 분해 되어버린다(약2:26). 

  죽음을 몸의 활동 정지라고 본다면, 몸이 있어야 하고 몸으로 해야 할 모든 일은 전부 종료가 된다는 말이다. 예를 들면, 마음은 몸을 통하여 이 세상에서 존재하고 활동하는데 몸이 완전히 없어지게 되면 마음도 이 세상에서 더 이상 존재하고 활동할 방법이 없게 된다. 따라서 마음이 몸으로부터 분리되면 마음은 즉시 영과 함께 영계로 옮겨지지만 혹 마음이 이 세상에 있고 싶다고 해도 몸이 없이는 마음만으로는 이 세상에 존재할 수가 없다.

  그렇다면 세상 사람들이 흔히 사람이 죽은 뒤 몸을 벗어두고 마음이나 영이 이 세상에 남아 따로 존재하거나 활동한다고 생각하는 모든 종류는 오해다. 사람이 죽는 것은 몸이 죽는다는 뜻이고 몸이 죽는다는 뜻은 마음이 이 세상에 더 이상 단독으로 남을 수 없어 영계로 바로 옮겼다는 말이다. 이 세상에 따로 남은 부분이 있어 어느 가정을 불행하게 한다거나 몸을 가진 사람 이상의 신비한 존재로 움직일 수 없다. 즉 죽은 사람이 귀신으로 나타나는 것으로 아는 것은 사람의 몸을 알지 못한 것이 원인이다(고후5:1).


약2:26 ‘영혼 없는 몸이 죽은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고후5:1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나니’
 


  ③ 천국 준비의 종료

  이 세상 기간은 그 자체로서는 고와 슬픔뿐이므로 아무 의미가 없다. 그러나 이 세상 기간은 영계 영원을 준비하는 유일한 기회이므로 세상 기간이란 영계 영원과 같은 의미를 가진다. 하룻밤 나그네로 또 아침 안개의 잠깐으로 비유한 이 찰나의 기간은 영원한 천국과 영원한 지옥을 나누는 기간이며, 영원한 천국에서 영원히 어떤 모습으로 살는지를 결정하는 기회다.
사람에게서 가장 하찮은 것이 몸이지만, 이 몸이 활동을 종료하는 그 시점은 우리의 영원이 결정되는 순간이고, 그 이전까지만 우리에게 천국을 준비할 수 있도록 기회가 주어진다. 이런 점에서 몸이 죽음을 맞게 되는 순간은 천국 준비가 종료된다는 결과를 가지고 온다(눅16:24-31, 히9:27).


눅16:24-31 ‘... 나사로를 보내어 ...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 이제 저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민을 받느니라 ...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이 끼어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할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 ...만일 죽은 자에게서 저희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하리이다 가로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찌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

히9:2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계21: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④ 죄악의 고통도 종료

  사람의 고통과 모든 고생은 천국을 준비하는 이 세상에서만 적용된다. 물론 지옥 갈 불택자는 이 세상의 고통이 영원한 고통의 시작이며 이 세상에서 당하는 고통은 영원한 고통의 견본일 뿐이다. 그러나 택자들에게는 이 세상 고통이 이 세상으로 끝나고 죽는 그 순간 이후부터는 영원히 영생의 천국에서 기쁨과 영광으로만 산다.

  이 세상에서 당하는 고통도 택자에게는 알고 보면 죄값이 아니라 천국을 준비하는 훈련의 고통이지만, 어쨌든 그 고통도 몸의 죽음까지만 있을 뿐이다(계21:4).



  ⑤ 주님과 완전한 재회

  신약성도들은 부활하신 주님과 이 세상 사는 끝날까지 항상 함께 동행하고 있다. 예수님의 ‘승천’은 예수님의 주소 이전이 아니라, 모습의 이동이다. 이런 의미에서 ‘승천’은 지상에서 하늘나라로 ‘승진’하는 공간적 의미가 아니고,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상태에서 다시는 육안으로 확인할 수 없는 상태로 ‘변화’한 것을 말한다. 부활하신 후의 예수님의 인성은 승천 이전이나 이후에 달라진 것은 전혀 없다. 다만 사람의 눈에 확인이 될 수 있도록 일부러 40일을 계셨던 상태를 종료하고 다시는 사람이 육안으로는 볼 수 없도록 했을 뿐이다. 부활 후 인성의 본질적인 변화는 없다.

  마28:20에서 ‘세상 끝날까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신 말씀은 정신적 동행이라는 정도가 아니다. 육안으로 볼 수만 없도록 했을 뿐이지 실존적으로 주님은 부활 후 오늘까지 우리와 늘 함께 하신다. 문제는 우리가 육안으로 볼 수 없는 것은 실감하지 못하는 저급의 수준이기 때문에 이를 느끼지 못할 뿐이다.

  개인이 죽게 되면, 이제 이런 상황까지도 종료된다. 실제로 자기 평생 주님이 자기와 동행했지만, 이제 죽게 되면, 그 순간부터 우리의 마음과 영은 주님과 함께 한순간도 예외 없이 항상 동행하게 된다는 것을 인지하게 된다. 물론 죄를 짓거나 시험에 드는 경우가 없기 때문에 역사적으로도 항상 동행하는 상태에 이르게 된다. 주님이 지금 세상을 완전히 없애 버리고 우주적으로 재림하셔도 우리가 주님과 완전한 재회를 하겠지만, 그 이전 개별적으로 죽는 이들은 개별적으로 주님을 만나 완전하게 재회한다(고후5:8, 살전4:17).


고후5:8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그것이라’

살전4:17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제목
State
  • 현재 접속자 149 명
  • 오늘 방문자 330 명
  • 어제 방문자 81 명
  • 최대 방문자 929 명
  • 전체 방문자 2,545,144 명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Naver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