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구)
(2004년)
3. 교리의 요소
교리는 성경을 보고 깨닫고 체계화한 것이지만, 만일 바르게 체계화 된 교리라고 한다면 그 교리 속에는 ①통일성 ②사회성 ③역사성 ④권위성 ⑤문화성이라는 다음 5가지 정도의 요소가 발견됩니다.
① 통일성
성경 진리를 체계화하여 가르칠 때 이를 교리라고 합니다. 이때 체계화라는 말은 마치 한 몸으로 연결되었다는 뜻입니다. 한 몸에 여러 지체가 있어, 위치와 생긴 모습과 기능은 제각각 다 달라도 전체적으로는 하나입니다. 모든 교리들은 한 몸을 이루는 한 분자이면서 내적으로는 연결이 되어 있고 본질과 본성이 하나입니다. 여러 개처럼 보이지만 실은 하나라는 뜻을 표현할 때 체계화라 합니다.
교리의 내용은 대개 하나님이 무엇을 통해 가르쳐 주시는지에 대한 ‘계시론’, 하나님에 대한 ‘신론’, 사람에 대한 ‘인론’, 사람의 범죄에 대한 ‘죄론’, 예수님에 대한 ‘기독론’, 우리가 믿게 되고 살아가는 과정에 대한 ‘구원론’, 교회의 본질과 운영 등에 대한 ‘교회론’, 그리고 재림과 영계 영원에 대한 ‘말세론’ 등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이런 교리들은 또 다시 세분하면 대단히 복잡하게 나눌 수 있으나 전체적으로 하나의 몸과 같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시청각의 감각기관, 입과 위와 장으로 된 소화기관, 심장에서 온 몸의 세포로 향하는 순환기관, 전신의 정보통신을 맡고 있는 신경기관 등이 뗄래야 뗄 수가 없는 관계로 한 몸을 이루는 것과 같이 교리들도 그렇습니다.
신론에서 알게 된 하나님의 속성에 대한 교리는 인론에서 인간의 원형 문제와 직결되어 설명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인간의 죄를 연구하려면 하나님을 알아야 바로 알게 되고 그 죄를 대속하실 예수님은 그 죄를 대속하러 왔으니 그 죄의 모든 영향을 다 받아야 하기 때문에 신론과 인론과 죄론과 기독론이 마치 온 몸의 각 기관과 세포가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과 같습니다. 구원론에서 설명하는 우리의 중생과 성화, 그리고 말세론에서 안내하는 심판과 우리의 영원한 나라는 심은 대로 거두는 관계입니다. 어느 한 교리도 그 교리가 전체 교리와 독립해서 존재할 수 없고 다른 교리 전체와 연결되고 맞아떨어지지 않는 교리는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이 면을 가리켜 교리는 통일성을 가졌다고 합니다. 통일성을 가지지 않았다면 교리일 수 없습니다.
예를 들면, 구원론의 이단이 처음에는 구원론의 한 부분만 오해를 해서 잘못 발표를 하게 되는데, 그 잘못된 부분 하나를 포기하지 않고 붙들고 있으면 점차 전체 교리를 삐뚤어지게 만듭니다. 그렇지 않으면 나머지 모든 교리가 그 구원론의 잘못된 교리를 잘못된 것으로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만일 새로 깨달은 교리가 하나 소개된다면 이 통일성의 원칙에 의하여, 그 교리는 심사를 받게 됩니다. 만일 나머지 전체 교리와 바로 맞아진다면 이 교리는 바로 된 교리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새 교리가 나오게 되는 것은 교리가 발전하면서 나타나는 증거입니다. 이렇게 새로 깨달아진 교리 하나는 나머지 모든 교리를 더 깊게 만들며 교리는 발전하게 됩니다.(엡4:16)엡4:16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입음으로 연락하고 상합하여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② 사회성
교리는 그 교리 내부의 모든 교리끼리 통일성을 가질 뿐 아니라 동시에 그 교리가 적용되는 모든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적용이 됩니다. 교리는 교리 내부적으로 하나라는 뜻으로 발표할 때는 ‘교리의 통일성’이라고 표현하지만, 그 교리가 모든 사람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된다고 말할 때는 ‘교리의 사회성’이라고 합니다.
성경은 공간적으로 어디에 사는 어떤 형편의 사람에게도 하나밖에 없는 진리로 기록해 주셨습니다. 교리가 이런 성경 진리를 체계화했다면 그 교리는 어느 나라 어느 교회 어느 성도에게도 공통적으로 해당되는 이치를 찾아 체계화된 것입니다. 따라서 교리는 사회성을 가지게 됩니다. 이때 ‘사회성’이라는 의미는 세상 사회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성도 한 사람이나 일부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성도 사회’ 전체에 해당된다는 뜻입니다.
교리에는 이 사회성이 있기 때문에 한 교리의 정확성을 따질 때 그 교리를 어느 한 강의실에서만 토론할 것이 아니고 다른 시대나 다른 환경에 있는 성도들에게 두루 적용이 될 수 있는지를 따져 보면 토론에서 밝히지 못했거나 밝힐 수 없는 문제가 그대로 드러나게 되어 그 교리의 정확성 여부를 판단할 수 있습니다. 교리의 사회성은, 교리는 공간을 초월하여 어떤 현실에서도 적용된다는 의미입니다.(마28:19-20)마28:19-20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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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역사성
교리는 수평으로 펼쳐놓을 때 공간을 초월하여 사회성을 가지지만 동시에 교리는 시간의 흐름을 따라 위에서 밑으로 펼쳐놓아도 변동이 없습니다. 교리는 성경 깨달음을 체계화한 것이고, 성경은 시간을 초월한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시간이 흘러가면서 하나의 옳은 교리는 역사 속에서 그 다음으로 이어지고 또 다시 깨달아진 옳은 교리가 있다면 앞에서 내려오던 교리에서 자연스럽게 뻗어 자라나가는 생명을 가진 모습으로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바른 교리라는 것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단절되거나 갑자기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역사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한 시대에는 옳지만 다른 시대에 적용이 될 때 모순이 된다면 이는 성경을 잘못 깨닫고 잘못 체계화했다는 뜻입니다. 교리의 ‘사회성’이 공간을 초월하여 적용된다는 점을 설명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역사성이란 교리는 시간을 초월하여 적용된다는 점을 말합니다.
역사성이 중요한 것은, 혹 인간의 짐작이나 추론을 교리에 포함시켜도 그 사람이 일반인을 뛰어넘는 명석한 사람들인 경우에는 자기 시대 여러 종류의 성도들을 다 고려해서 이론을 정립시켜 사회성을 확보한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 시대를 두루 연구하여 사회성을 확보하는 것은 가능하다 해도, 앞으로 닥쳐올 다음 세대를 두고 역사적으로도 옳다는 역사성을 확보한다는 것은 인간으로서 불가능합니다. 미래에 대한 것은 단 1초의 순간도 인간 능력으로는 파악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사회성을 억지로 맞춘 교리는 더러 있어도 역사성을 꿰맞추어 놓은 교리는 없기 때문에 어느 한 당대 교회를 석권한 교리가 있다 해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결국 그 정체는 밝혀지고 맙니다.
이런 면에서 교리의 역사성이라는 것은, 바른 교리는 생명을 가지고 역사 속에서 살아 내려온다는 면을 주목하고 있기 때문에 교리들이 바른 전통을 가지고 있는지를 살펴 그 교리의 정확성을 가릴 수 있게 합니다. 이 역사성 때문에 잘못된 교리는 한 시대는 속여도 바로 밝혀지게 됩니다.(히13:8)히13:8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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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 권위성
교리는 성경 내용을 이치적으로 요약한 것입니다. 따라서 교리는 성경 성구를 그대로 옮겨놓은 것은 아니지만, 성경이 변치 않는 것처럼 교리도 변치 않는 진리적인 내용을 가져야 하고, 이런 면을 가질 때 이것이 교리의 권위성입니다. 즉 교리는 변치 않는 진리이니 변치 않는 이 진리 면이 교리의 권위입니다. 교리가 변치 않는 것은 교회가 결정한 교리이기 때문에 변치 않는 것이 아니라, 변치 않는 진리를 요약해서 설명한 것이므로, 정확하게 요약한 교리라고 한다면 교리는 권위를 가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변치 않는 진리적인 것은 인간에게서는 나올 수가 없습니다. 식물에게서는 식물성 기름이 나오고, 동물에게서는 동물성 기름이 나옵니다. 식물에게서 동물성 기름이 나올 수 없듯이, 변하는 인간에게서는 변치 않는 진리가 나올 수는 없습니다. 변동하는 세상과 변동하는 인간들 속에서 하나님께서 내신 진리는 변치 않으니 이렇게 변치 않는다는 점이 세상과 인간들에게 권위입니다.
교리의 권위성은 변치 않는 진리에 있다고 한다면, 우리는 어떤 한 교리를 대할 때 큰 교파에서 나온 교리라고 하여 권위를 인정한다든지 아니면 대학자의 학문과 논리에서 제시되었다고 하여 권위를 인정하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학위의 종류와 높낮이에 따라 논문의 정확성과 권위를 인정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또 그런 외적인 면을 가진 사람들이 그런 학위나 경력을 가지고 교리의 정확성을 담보하려 하고 또 권위를 확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현 교계입니다. 이런 교계의 현실은 교회의 권위가 진리의 변치 않음에 있다는 것을 망각한 결과입니다.
참으로 부끄러운 것은, 오늘 교회 현실은 변치 않는 진리를 근거로 정확성과 권위성을 판단하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내일 일도 알지 못하는 변동 많은 인간들이 어떤 글이나 교리의 권위를 확인하는 방법으로 진리를 기준으로 제시하지 않고 인간들이 제도적으로 만든 학위들을 공인제도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이 제도들은 글을 발표하는 방법과 절차를 밟도록 만든 것인데, 그 제도가 원하는 과정만 통과하게 되면 그 사람의 발표는 정확성과 권위성이 있다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피고 집중해야 할 문제는 그런 외형의 절차가 아니라 그 내용의 진리성 여부입니다. 사람이 세상에 속하여 속이고 속는 발표는 잘 할 수 있겠지만, 변치 않는 진리를 발표하는 데에는 그런 인간 제도를 사용하면 사용하는 만큼 진리에서는 더 멀어진다는 점을 전혀 알지 못하고 있으니 오늘은 진리의 권위성이 사라진 암흑시기입니다. 교리의 권위성도 변치 않는 진리에 그 권위성이 있는데 이 면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말세 교회에는 교리의 발전은 고사하고 교리의 보존도 기대할 수 없는 극단의 시대가 되었음을 참고해서 교리 연구를 하고 교리를 상대해야 할 것입니다.(마28:20)마28: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⑤ 문화성
교리는 그 내용이 비록 진리지만 그 진리를 가르치고 표현하는 것은 오늘 땅 위에 인간 언어를 사용합니다. 이런 면을 일반 교리서에서 ‘문화성’이라고 표현하기 때문에 여기서도 사회 일반적 표현은 혼동을 피하기 위해 될 수 있는 대로 사용하고 있으나, ‘문화’라는 미명이 사용되는데 대하여 거부감은 적지 않습니다.
어쨌든 교리는 인간 사회에서 의사 표현이 가능하도록 인간의 언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인간의 언어는 인간의 뜻과 생각을 발표하는 데에도 불편하고 한계가 많습니다. 하물며 이것으로 진리를 담는다면 근본적으로 문제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도 교리라는 진리적 내용을 인간 언어에 담는 것은, 성경 기록을 참고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라도 인간 언어를 통해 기록해주셨으니 이 면을 참고한다면 성경에서 표현된 것을 교리로 작업하는 일은 비록 언어의 한계성 때문에 불편하다 해도 못할 일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언어를 가지고 교리를 기록할 때는 언어로 그 진리를 다 표현할 수 없으므로 언어만 상대해서 안 된다는 것을 항상 조심해야 합니다. 마치 우리가 성경 기록을 대할 때 겉으로는 인간의 언어를 상대하나 속으로는 성령의 깨닫게 해 주시는 영감역사로 상대해야 하듯이, 교리로 진리를 체계화 할 때에도 겉으로는 인간의 언어를 사용하나 그 인간의 표현이 전부가 될 수 없음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비록 정확무오한 성경 기록 영감은 오늘에 재현 될 수 없으므로 교리 기록에다가 성경의 정확성과 권위성을 인용해서는 안 되겠지만, 오늘도 늘 우리를 모든 면으로 인도하는 역사 성령이 있으니 이 성령의 감화와 감동으로 교리를 기록할 수 있도록 삼가 조심해야 할 것입니다.
특히 한번 사용한 교리 용어들은 확실하게 더 나은 깨달음을 가진 경우가 아니면 그대로 사용하기를 노력하는 보수성에도 극진히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그 표현에 다소 불편이 있다 하여도 언어 표현 기술로 진리를 깨닫게 하려고 노력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그 교리가 어떤 진리 내용을 가르치는지 그 표현에 담겨 있는 진리를 직접 깨닫도록 노력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성경의 번역 본문이나 찬송가 가사 그리고 교리 용어에 이르기까지 꼭 고쳐야 하는 잘못된 표현은 고칠 수 있지만, 꼭 고쳐야 할 필요가 있어서가 아니라 연구하는 사람마다 자기를 나타내고 자기 업적을 표시하기 위해 용어를 혼란케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을 삼가 유의해야 합니다. 심지어 시대 유행을 따라 장난삼아 교리 표현을 바꾸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 모든 폐단들을 막는 데에는 신앙노선을 보수적으로 가져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교리 표현에 보수성을 가지게 되면 위에서 설명한 여러 폐단들을 막는 데에는 아주 효과적일 것입니다(창11:9).창11:9 ‘그러므로 그 이름을 바벨이라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거기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케 하셨음이라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더라’
내용
(2023년본)
③ 교리의 요소
교리는 성경을 체계화한 것이라는 점에서 통일성, 권위성, 역사성, 사회성, 문화성이 있게 된다.
통일성이란, 하나님은 완전이며 단일이므로 하나님의 발표는 진리여서 한 몸 안의 세포와 기관이 연결되면서 한 편으로 그 한 몸을 이루는 통일성을 갖게 된다. 여러 개처럼 또는 별개처럼 보이지만 실은 하나다. *약2:18-19
교리 체계는 일반적으로 계시론 신론 인론 범죄와 속죄론, 그리고 성령의 교회와 말세 및 천국의 영생을 그 내용으로 한다. 어느 사안 어느 내용이라도 전체는 하나의 진리며 하나의 구원도리다.
통일성이 중요한 이유는 성경이 방대하고, 또 비록 체계화 요약화를 했다 해도 여전히 분량이 많고 내용이 복잡하다. 그런데 잘못된 교리 또는 잘못된 부분은 통일성으로 맞춰 보면 가장 쉽게 오류가 발견 된다.
사회성이란, 교리는 그 교리 내부의 모든 교리끼리 하나이면서 동시에 그 교리의 대상이 되는 모든 사람과 교회에게 공통적으로 적용이 됩니다. 교리가 그 내부적으로 하나라는 것은 ‘교리의 통일성’이라 하고 그 교리가 모든 사람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된다고 말할 때는 ‘교리의 사회성’이라고 한다. *살전5:27
성경은 어느 시대 어느 장소의 어떤 형편에서도 늘 하나밖에 없는 진리다. 이런 성경 진리를 체계화했다면 그 교리는 어느 나라 어느 교회 어느 성도에게도 공통적으로 해당된다. ‘성도 사회’ 전체에 해당된다. 따라서 교리가 성경을 바르게 요약했다면 그 교리대로 실제 살아 보면 그 결과가 그 정확성을 드러낸다.
역사성이란, 교리의 내부가 통일적이고 그 대상에게 꼭 같이 적용이 되면서 동시에 시간이 흘러가도 변치 않는다. 뛰어난 사람이면 많은 것을 초월한다. 그렇다고 오랜 세월 후까지를 다 맞출 수는 없다. 교리는 성경을 체계화한 것이고, 성경의 진리는 없는 가운데서 시간까지 창조하여 처음부터 시간을 초월했기 때문이다. 인간이 만든 모든 글과 종교는 인간이 예측한 범위에만 맞춰 놓는다. 만일 시간을 초월하여 역사 전체를 꿰뚫으며 바르게 이어 지는 교리가 있다면 바른 교리가 생명성으로 이어 가는 모습이다. *갈3:15
어느 날 새로 시작한 교리, 뿌리가 없고 역사의 흐름을 단절하고 나타난 교리가 당대에 호응을 받게 되면 천하를 요동치게 하지만 역사성이 없다면 이 것이 바로 다른 교훈이니 사이비 이단의 증거 중 하나다. 그리고 이 역사성이 바른 교리를 바른 방향으로 계속 이끌어 가며 길러 간다. 도중에 사람이 잘못 가감한 것이 있으면 세월이 드러 내며 원래 위치에 갖다 놓고 그리고 자라게 한다. *마5:18
권위성이란, 교리는 성경을 옳게 바르게 요약했다면 성경을 기록한 성령 하나님의 역사가 내재한다. 인간의 창조나 조작이 아니라 하나님의 변치 않는 진리가 포함된 만큼 교리에는 신적 권위를 가진다. 발전소로부터 전선을 연결 시켜 놓으면 전선의 권위가 아니라 발전소의 전기가 역사한다. 현재 세상의 정보 전파력은 너무 빠르고 강하다. 옳고 그르고를 떠나 순식간에 세상뿐 아니라 교회까지 장악을 한다. 서서히 밝혀 지던 때와 달라 지금은 수시로 바른 교리를 묻어 버린다. 그렇다고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니다. *벧후1:21
문화성이란,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고 진리지만 그 기록은 타락한 오늘의 인간을 전도하고 가르쳐 길러 가는 은혜의 길이기 때문에 오늘 사용하는 언어를 사용한다는 뜻이다. 세상이 죄로 저주를 받은 것이 문제지 세상 자체가 죄 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교회는 교리와 신앙의 모든 면에서 이 땅 위에 재료로 예배당을 건축하듯이 성경의 기록도 또 교리의 정리도 이 땅 위에 보편적인 것을 사용한다. 이 면을 문화성이라 한다. 세상의 유행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이해하고 접할 수 있도록 한다는 뜻이다. *롬15:4
불신자라 해도 세상을 살아가며 종교나 신앙에 대해 가지는 기본 자세, 그 정도의 수준에서 성경을 기록했고 교리는 성경의 체계화라는 점에서 교리의 표현도 일반인의 언어로 이해하도록 노력한다. 삼위일체 하나님과 영계의 영생이란 인간의 언어로 표현할 길은 없다. 그런데도 그 표현보다 더 나은 것이 없어 그렇게 적는다. 그리고 나머지 문제는 성령의 개별 역사에 맡긴다. *렘36:4, 겔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