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교회의 기본 활동 - 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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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2.13 07:22
7. 교회의 기본 활동
① 예배의 정의
예배는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은혜를 받는 제일 기본되고 중심되는 시간이다. 겉으로는 하나님을 섬기는 형식으로 모이지만 내용으로는 하나님은 베푸시고 우리는 그 은혜를 받는 것이 예배다. 예배의 중심은 말씀이며 구약은 제사였다. 구약의 제사는 오실 예수님의 대속을 짐승으로 예표한 것이고, 신약은 예수님의 대속을 가르쳐 대속의 사람을 만드는 일이다(롬12:1).
② 예배의 요소
예배는 설교와 기도와 찬송으로 구성된다(고전14:26). 꼭 3가지 요소를 형식적으로 갖추지는 않더라도 그런 요소가 포함된 내용을 가지면 된다. 찬송은 하나님 주신 은혜를 감사하는 것이 중심이고, 기도는 그 은혜를 구한다. 이 모든 것의 중심은 말씀이다. 말씀은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에게 내리시는 뜻이다(행17:2-3, 18:4).
롬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고전14:26 ‘그런즉 형제들아 어찌할꼬 너희가 모일 때에 각각 찬송시도 있으며 가르치는 말씀도 있으며 계시도 있으며 방언도 있으며 통역함도 있나니 모든 것을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하라’
행17:2-3 ‘바울이 자기의 규례대로 저희에게로 들어가서 세 안식일에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며 뜻을 풀어 그리스도가 해를 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야 할것을 증명하고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전하는 이 예수가 곧 그리스도라 하니’
행18:4 ‘안식일마다 바울이 회당에서 강론하고 유대인과 헬라인을 권면하니라’
자기에게 대한 하나님의 뜻을 말씀으로 받는 것이 설교이며, 그 뜻을 가지고 하나님께 질문하고 의논하고 그 뜻을 가지고 하나님께 간구하는 것이 기도다. 그리고 받은 은혜에 대한 감사가 찬송이므로 시간이 있을 때는 이 3가지 형태로 예배를 드리고 시간이 없을 때는 이 3가지 요소 중 하나나 둘을 가지고 예배를 드릴 수도 있고 또 간단하게 예배를 드릴 때는 찬송 속에 기도와 말씀을 담아서 예배를 드릴 수도 있으며, 기도 속에 찬송과 말씀을 담아서 예배로 드릴 수도 있다. 말씀 하나만을 가지고도 간구의 기도와 감사의 찬송을 포함시켜 전할 수 있다(골3:16) .
그러나 특별한 일이 아니면 예배는 최소한 3가지 모습을 갖추며 진행하는 것이 좋다. 예배는 단순해야 하지만 이 3가지 정도의 모습은 은혜를 위해서는 꼭 필요한 최소한의 요소라고 모든 성도들이 공통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③ 예배의 특성
▪ 성령의 신령한 은혜
예배는 하나님을 섬기는 시간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하나님께 은혜를 받는 시간이다. 참 예배로 진행되는 예배는 말씀의 이치를 배우고 가르치고 깨달으며 그 말씀 속에서 역사하는 성령의 감화와 감동의 은혜를 받는 시간이다. 물론 예배 시간 외에도 따로 성경공부나 다른 기회를 통해 말씀과 성령의 은혜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특별히 ‘예배’라는 의미로 이 문제를 살피는 것은 구약은 제사고 신약은 예배를 통하여 은혜를 구할 때, 하나님께서 미리 약속한 언약을 통해 일반 다른 은혜와 분명하게 차이 나는 은혜를 받도록 하기 때문이다(요4:20-24, 행4:31).
골3:16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요4:20-24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니라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행4:31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특별히, 예배는 주일과 분리할 수 없다. 예배의 가장 기본되는 것은 주일 예배다. 날 중에 가장 귀한 날은 주일이고, 시간 중에 제일 귀한 시간은 예배시간이다. 주일의 예배는 단순히 다른 날과 다른 시간보다 더 은혜롭기 때문에 중요한 것이 아니고, 주일 예배가 종자가 되고 다른 날과 다른 시간의 예배와 은혜는 이 주일 예배에서 뻗어나간 지류다(행18:4).
예배는, 예배를 드려서 예배에서 은혜를 받아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 그 은혜는 말씀을 통하여 말씀 속에서 말씀으로 역사하는 성령의 은혜다. 인간이 노력하여 인간의 것으로 만든 인적요소가 아니라 신적요소의 은혜다(요20:19-23).
행18:4 ‘안식일마다 바울이 회당에서 강론하고 유대인과 헬라인을 권면하니라’
요20:19-23 ‘이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에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 ...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향하사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 너희가 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 모일수록 더하는 은혜
예배는 예배 모임으로 모이면 모일수록 더욱 은혜를 받는다. 예배의 기본과 종자는 주일예배지만, 이 예배에서 시작된 은혜는 평일의 다른 시간의 예배와 다른 은혜를 구하는 모임으로 연결된다. 세상에서 우리들이 예배시간으로 하나님을 뵙고 접촉하게 되지만, 이 예배시간의 접촉은 점점 확대되어 나중에는 평일이 주일과 같아지고 예배 시간 외의 모든 시간이 예배시간의 은혜와 같게 되어 시간적으로 평생의 모든 시간이 전부 하나님께 받는 은혜와 하나님을 섬기는 시간으로 발전하는 것이 신앙의 발전ㅇ;다.
주일예배를 신앙의 시간적 출발점으로 삼고, 주일에 받은 은혜를 평일로 확대하고 예배시간에 받은 은혜로 또 다른 예배시간을 찾아 자꾸 확대시켜서 결국 우리의 1주일 남은 시간 전부가 항상 주일예배와 같은 내용이 되도록 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모일수록 은혜를 더한다. 모여 본 사람만 알 수 있고 또 예배를 거듭해서 자꾸 드려본 사람만 알 수 있도록 한다. 경험을 가진 사람은 일정 때문에 예배를 보는 것이 아니고 은혜에 끌려서 자꾸 예배를 더 보게 된다. 이 경험을 갖지 못한 이들에게는 앞서 경험을 가진 사람으로서 강권하는 방법 외에는 없다.
교회는 시간적으로 첫째 할 일이 바로 예배시간을 유지하는 것이다. 그리고 예배를 확대하는 것이다(히10:24-25, 행2:46, 마18:20).
히10:24-25 ‘...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행2:46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마18:20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삼상17:38-40 ‘이에 사울이 자기 군복을 다윗에게 입히고 놋투구를 그 머리에 씌우고 또 그에게 갑옷을 입히매 다윗이 칼을 군복 위에 차고는 익숙치 못하므로 시험적으로 걸어 보다가 사울에게 고하되 익숙치 못하니 이것을 입고 가지 못하겠나이다 하고 곧 벗고 손에 막대기를 가지고 시내에서 매끄러운 돌 다섯을 골라서 자기 목자의 제구 곧 주머니에 넣고 손에 물매를 가지고 블레셋 사람에게로 나아가니라’
고전14:33 ‘하나님은 어지러움의 하나님이 아니시요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니라’
▪ 단순성
구약교회에게는 형식을 먼저 보이시고 그 형식 속에서 구원의 예수님을 발견하도록 방편을 주셨다. 그래서 구약은 율법이 요구한 모든 형식과 절차를 온전히 다 알고 실행하는 것이 선행조건이었다. 그러나 신약은 예수님의 대속 완성으로 모든 종류의 형식을 완전히 제거해 버렸다.
이제 예수님의 대속으로 성령이 직접 우리 속에 거하며 우리를 바로 상대하는 시기다. 따라서 신약교회는 형식과 절차에 관련된 모든 것을 다 배제하고 오직 말씀 하나를 통해 성령으로 직접 역사하고 있다. 따라서 신약은 은혜를 구하기 위해 형식이나 다른 절차를 설치하게 되면 오히려 말씀에 집중하고 성령으로 친히 동행하는 일에 방해만 될 뿐이다.
예배가 요란하여 참석한 사람의 감정을 자극하므로 말씀의 깨달음과 상관없는 느낌을 갖게 하는 것은 은혜가 아니고 인간의 기술이다. 또 수십 가지 예배 절차를 제시하여 그 예배 절차를 익히고 밟고 그 예배에 필요한 직책을 분담하는 일도 마치 다윗에게 사울의 갑옷을 입히는 것처럼 성령으로 동행하는 일을 방해할 뿐이다(삼상17:38-40, 고전14:33).
신약의 은혜는 성령으로 직접 연결되고 말씀을 통해 바로 받는 것이므로 인간의 외견으로 볼 때 단순하게 되어 있다. 교회가 이런 실질적인 은혜를 잃어버리고 이 은혜와 멀어지게 되면 인간적인 여러 절차와 형식을 갖추게 하여, 자기 내면에서부터 솟아나는 성령의 은혜 대신 외부에서 인간의 감정을 움직여 은혜로 착각하게 하는 기술을 사용하게 된다. 천주교는 그들에게 사라진 성령의 은혜를 성당 조각과 내부 장식과 엄숙한 예배 분위기와 수도 없이 복잡한 형식과 제도를 가지고 대신하고 있다. 오늘 교회들의 예배가 분명히 초대교회나 개혁교의 초기 은혜와는 멀어져 있으며 현저하게 천주교화하고 있다. 예배의 석고화라고 할 수 있다.
교회가 정말 복잡하고 세밀하게 살피며 연구해야 할 부분은 매번 바꾸어 주시는 현실에서 하나님은 무엇을 원하시며 나는 말씀대로 살기 위해 이 현실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자기 속에 계신 성령께 살펴야 하는 일이다(롬12:1-2, 엡5:17).
롬12:1-2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엡5:17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① 예배의 정의
예배는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은혜를 받는 제일 기본되고 중심되는 시간이다. 겉으로는 하나님을 섬기는 형식으로 모이지만 내용으로는 하나님은 베푸시고 우리는 그 은혜를 받는 것이 예배다. 예배의 중심은 말씀이며 구약은 제사였다. 구약의 제사는 오실 예수님의 대속을 짐승으로 예표한 것이고, 신약은 예수님의 대속을 가르쳐 대속의 사람을 만드는 일이다(롬12:1).
② 예배의 요소
예배는 설교와 기도와 찬송으로 구성된다(고전14:26). 꼭 3가지 요소를 형식적으로 갖추지는 않더라도 그런 요소가 포함된 내용을 가지면 된다. 찬송은 하나님 주신 은혜를 감사하는 것이 중심이고, 기도는 그 은혜를 구한다. 이 모든 것의 중심은 말씀이다. 말씀은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에게 내리시는 뜻이다(행17:2-3, 18:4).
롬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고전14:26 ‘그런즉 형제들아 어찌할꼬 너희가 모일 때에 각각 찬송시도 있으며 가르치는 말씀도 있으며 계시도 있으며 방언도 있으며 통역함도 있나니 모든 것을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하라’
행17:2-3 ‘바울이 자기의 규례대로 저희에게로 들어가서 세 안식일에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며 뜻을 풀어 그리스도가 해를 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야 할것을 증명하고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전하는 이 예수가 곧 그리스도라 하니’
행18:4 ‘안식일마다 바울이 회당에서 강론하고 유대인과 헬라인을 권면하니라’
자기에게 대한 하나님의 뜻을 말씀으로 받는 것이 설교이며, 그 뜻을 가지고 하나님께 질문하고 의논하고 그 뜻을 가지고 하나님께 간구하는 것이 기도다. 그리고 받은 은혜에 대한 감사가 찬송이므로 시간이 있을 때는 이 3가지 형태로 예배를 드리고 시간이 없을 때는 이 3가지 요소 중 하나나 둘을 가지고 예배를 드릴 수도 있고 또 간단하게 예배를 드릴 때는 찬송 속에 기도와 말씀을 담아서 예배를 드릴 수도 있으며, 기도 속에 찬송과 말씀을 담아서 예배로 드릴 수도 있다. 말씀 하나만을 가지고도 간구의 기도와 감사의 찬송을 포함시켜 전할 수 있다(골3:16) .
그러나 특별한 일이 아니면 예배는 최소한 3가지 모습을 갖추며 진행하는 것이 좋다. 예배는 단순해야 하지만 이 3가지 정도의 모습은 은혜를 위해서는 꼭 필요한 최소한의 요소라고 모든 성도들이 공통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③ 예배의 특성
▪ 성령의 신령한 은혜
예배는 하나님을 섬기는 시간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하나님께 은혜를 받는 시간이다. 참 예배로 진행되는 예배는 말씀의 이치를 배우고 가르치고 깨달으며 그 말씀 속에서 역사하는 성령의 감화와 감동의 은혜를 받는 시간이다. 물론 예배 시간 외에도 따로 성경공부나 다른 기회를 통해 말씀과 성령의 은혜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특별히 ‘예배’라는 의미로 이 문제를 살피는 것은 구약은 제사고 신약은 예배를 통하여 은혜를 구할 때, 하나님께서 미리 약속한 언약을 통해 일반 다른 은혜와 분명하게 차이 나는 은혜를 받도록 하기 때문이다(요4:20-24, 행4:31).
골3:16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요4:20-24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니라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행4:31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특별히, 예배는 주일과 분리할 수 없다. 예배의 가장 기본되는 것은 주일 예배다. 날 중에 가장 귀한 날은 주일이고, 시간 중에 제일 귀한 시간은 예배시간이다. 주일의 예배는 단순히 다른 날과 다른 시간보다 더 은혜롭기 때문에 중요한 것이 아니고, 주일 예배가 종자가 되고 다른 날과 다른 시간의 예배와 은혜는 이 주일 예배에서 뻗어나간 지류다(행18:4).
예배는, 예배를 드려서 예배에서 은혜를 받아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 그 은혜는 말씀을 통하여 말씀 속에서 말씀으로 역사하는 성령의 은혜다. 인간이 노력하여 인간의 것으로 만든 인적요소가 아니라 신적요소의 은혜다(요20:19-23).
행18:4 ‘안식일마다 바울이 회당에서 강론하고 유대인과 헬라인을 권면하니라’
요20:19-23 ‘이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에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 ...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향하사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 너희가 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 모일수록 더하는 은혜
예배는 예배 모임으로 모이면 모일수록 더욱 은혜를 받는다. 예배의 기본과 종자는 주일예배지만, 이 예배에서 시작된 은혜는 평일의 다른 시간의 예배와 다른 은혜를 구하는 모임으로 연결된다. 세상에서 우리들이 예배시간으로 하나님을 뵙고 접촉하게 되지만, 이 예배시간의 접촉은 점점 확대되어 나중에는 평일이 주일과 같아지고 예배 시간 외의 모든 시간이 예배시간의 은혜와 같게 되어 시간적으로 평생의 모든 시간이 전부 하나님께 받는 은혜와 하나님을 섬기는 시간으로 발전하는 것이 신앙의 발전ㅇ;다.
주일예배를 신앙의 시간적 출발점으로 삼고, 주일에 받은 은혜를 평일로 확대하고 예배시간에 받은 은혜로 또 다른 예배시간을 찾아 자꾸 확대시켜서 결국 우리의 1주일 남은 시간 전부가 항상 주일예배와 같은 내용이 되도록 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모일수록 은혜를 더한다. 모여 본 사람만 알 수 있고 또 예배를 거듭해서 자꾸 드려본 사람만 알 수 있도록 한다. 경험을 가진 사람은 일정 때문에 예배를 보는 것이 아니고 은혜에 끌려서 자꾸 예배를 더 보게 된다. 이 경험을 갖지 못한 이들에게는 앞서 경험을 가진 사람으로서 강권하는 방법 외에는 없다.
교회는 시간적으로 첫째 할 일이 바로 예배시간을 유지하는 것이다. 그리고 예배를 확대하는 것이다(히10:24-25, 행2:46, 마18:20).
히10:24-25 ‘...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행2:46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마18:20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삼상17:38-40 ‘이에 사울이 자기 군복을 다윗에게 입히고 놋투구를 그 머리에 씌우고 또 그에게 갑옷을 입히매 다윗이 칼을 군복 위에 차고는 익숙치 못하므로 시험적으로 걸어 보다가 사울에게 고하되 익숙치 못하니 이것을 입고 가지 못하겠나이다 하고 곧 벗고 손에 막대기를 가지고 시내에서 매끄러운 돌 다섯을 골라서 자기 목자의 제구 곧 주머니에 넣고 손에 물매를 가지고 블레셋 사람에게로 나아가니라’
고전14:33 ‘하나님은 어지러움의 하나님이 아니시요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니라’
▪ 단순성
구약교회에게는 형식을 먼저 보이시고 그 형식 속에서 구원의 예수님을 발견하도록 방편을 주셨다. 그래서 구약은 율법이 요구한 모든 형식과 절차를 온전히 다 알고 실행하는 것이 선행조건이었다. 그러나 신약은 예수님의 대속 완성으로 모든 종류의 형식을 완전히 제거해 버렸다.
이제 예수님의 대속으로 성령이 직접 우리 속에 거하며 우리를 바로 상대하는 시기다. 따라서 신약교회는 형식과 절차에 관련된 모든 것을 다 배제하고 오직 말씀 하나를 통해 성령으로 직접 역사하고 있다. 따라서 신약은 은혜를 구하기 위해 형식이나 다른 절차를 설치하게 되면 오히려 말씀에 집중하고 성령으로 친히 동행하는 일에 방해만 될 뿐이다.
예배가 요란하여 참석한 사람의 감정을 자극하므로 말씀의 깨달음과 상관없는 느낌을 갖게 하는 것은 은혜가 아니고 인간의 기술이다. 또 수십 가지 예배 절차를 제시하여 그 예배 절차를 익히고 밟고 그 예배에 필요한 직책을 분담하는 일도 마치 다윗에게 사울의 갑옷을 입히는 것처럼 성령으로 동행하는 일을 방해할 뿐이다(삼상17:38-40, 고전14:33).
신약의 은혜는 성령으로 직접 연결되고 말씀을 통해 바로 받는 것이므로 인간의 외견으로 볼 때 단순하게 되어 있다. 교회가 이런 실질적인 은혜를 잃어버리고 이 은혜와 멀어지게 되면 인간적인 여러 절차와 형식을 갖추게 하여, 자기 내면에서부터 솟아나는 성령의 은혜 대신 외부에서 인간의 감정을 움직여 은혜로 착각하게 하는 기술을 사용하게 된다. 천주교는 그들에게 사라진 성령의 은혜를 성당 조각과 내부 장식과 엄숙한 예배 분위기와 수도 없이 복잡한 형식과 제도를 가지고 대신하고 있다. 오늘 교회들의 예배가 분명히 초대교회나 개혁교의 초기 은혜와는 멀어져 있으며 현저하게 천주교화하고 있다. 예배의 석고화라고 할 수 있다.
교회가 정말 복잡하고 세밀하게 살피며 연구해야 할 부분은 매번 바꾸어 주시는 현실에서 하나님은 무엇을 원하시며 나는 말씀대로 살기 위해 이 현실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자기 속에 계신 성령께 살펴야 하는 일이다(롬12:1-2, 엡5:17).
롬12:1-2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엡5:17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