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교회의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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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2.12 20:39
5. 교회의 직책
① 교회직책의 특징
▪ 목회직 딤전5:17 ‘잘 다스리는 장로들을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을 더할 것이니라’
행6:1-6 ‘...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공궤를 일삼는 것이 마땅치 아니하니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저희에게 맡기고 우리는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을 전무하리라 하니 ...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 택하여 사도들 앞에 세우니 사도들이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니라’
교회의 직책을 두고 일반적으로 목사는 설교를 주로 맡고, 장로는 교회 정치를 주로 맡으며(딤전5:17), 집사는 살림살이를 맡는다고 분류하고 있다(행6:1-6). 물론 남보다 그 면에 특별한 실력을 가질 수가 있으면 그런 점은 장점이지 단점이 될 수는 없다.
그러나 교회의 직책은 어떤 형태든지 결국 ‘목회직’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어린 교인을 길러가는 목자의 역할이 교회의 모든 직책이 가져야 하는 본질이다. 신앙어린 사람을 가르치는 목사라야 하고 신앙어린 사람을 보살피는 장로라야 하고 신앙어린 사람을 위해 교회 살림을 사용하는 집사라야 한다. 그리고 그 직책은 업무 분담이 기계적으로 나누어져서는 안 된다. 집사가 설교를 할 수 있어야 하고 목사가 교회 살림의 세부사항을 실제 알아야 하고 장로가 설교와 어린 학생의 신앙을 심방하고 지도할 수 있어야 한다. 마치 장로는 세상조직의 감사실 같고 목사는 기관단체장 같고 집사는 행정관리들 같은 모습을 띤다면 교회가 아니라 세상이 되었다는 증거다(요21:15-17).
요21:15-17 ‘... 가라사대 내 어린 양을 먹이라 ... 내 양을 치라 ...’
마16:24 ‘...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요10:11 ‘...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눅16:10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 충성되고 ...’
▪ 희생직
교회의 모든 직책은 주님이 우리 위해 죽으심같이 자기들도 다른 사람의 신앙을 위해 죽을 각오로 맡아야 할 것이다(마16:24, 요10:11). 일반 신앙으로는 그런 순교적 차원에 이르지 못할 것인데, 그렇다면 자기가 할 수 있는 범위에서 지극히 작은 것부터 희생할 수 있어야 한다(눅16:10).
현재 교회의 직책은 이미 세상 욕심을 기준으로 먹음직하고 보암직하며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운 상태가 되어 있다. 특히 교회가 복음의 초기 선교단계를 지나고 그 사회에서 안정되기 시작하면 예외 없이 교회의 모든 직책은 명예와 이권과 자기만족 등을 위해 욕심을 낼만한 자리로 변질된다. 그래서 남을 위해 나를 희생하고 내어놓기 위한 교회직분이 되지 않고 나를 위해 확보해야 할 직분이 된다. 그래서 교회는 각종 직책을 두고 내분이나 경쟁이 벌어지게 되는데 이는 벌써 교회가 세상으로 바뀌었다는 증거다.
진정 교회의 직책은 자기희생과 십자가를 각오해야 하기 때문에 그 직책을 매는 이들에게 주변에서는 감사히 생각해야 하고 본인은 자기 본능이 그 자리를 회피하려 하나 주님의 시선이 두려워 순종하는 내면이 있어야 한다. 혹 이런 과정을 밟지 않고 직책을 가졌다면 얼른 회개하여 자신을 이런 상태로 만들어야 한다.
▪ 신앙직
교회의 직분을 맡는 실력은 첫째 신앙이 있어야 한다. 신앙은 없으나 세상에서 지도력을 갖추었다 해서 교회 내에서 흔히 고위직을 쉽게 맡기는 경우가 있다. 물론 그를 신앙으로 기르기 위해서 그렇게 할 수도 있지만 속으로는 그 사람이 가진 세상에 압도되고 그 세상을 가치있게 평가하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수가 많다.
교회의 인물 평가 기준은 말할 것 없이 신앙이다. 신앙 있는 사람이 좋은 사람이고 신앙 있는 사람이 실력 있는 사람이며 신앙 있는 사람이 교회 안에서는 인재다. 물론 신앙이라는 것은 주관적인 것이어서 외부 사람이 평가하기에 어려움은 많다. 그러나 여러 사람이 모여 한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도록 하나님께서 하셨기 때문에 비록 신앙이 사람의 내면에 들어 있는 것이지만 외부 다른 사람이 확인하기에 불가능할 만큼 숨겨 두지는 않았다(삼상16:7).
삼상16:7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 용모와 신장을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신16:19 ‘... 사람을 외모로 보지 말며 또 뇌물을 받지 말라 뇌물은 지혜자의 눈을 어둡게 하고 의인의 말을 굽게 하느니라’
갈2:6 ‘유명하다는 이들 중에 (본래 어떤이들이든지 내게 상관이 없으며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취하지 아니하시나니) 저 유명한 이들은 내게 더하여 준 것이 없고’
교회는 신앙을 생명으로 알고 있는 곳이다. 교회는 신앙으로 앞선 사람이 신앙으로 따라 오는 사람을 지도하도록 모이게 한 곳이다. 혹 교회가 예배당 건축과 같이 세상에 속한 업무를 해야 할 때도 있다. 그러나 그런 때도 신앙이 있는 사람이 기본 방향과 성격을 결정해야 하고, 세상일에 속한 실무적인 것은 그 면에 실력 있는 사람이 신앙 있는 사람의 지도를 받아 일을 해야 한다(신16:19, 갈2:6).
▪ 건덕직
다른 사람에게 덕을 세운다는 말을 교회에서는 건덕이라고 흔히 사용한다. 교회의 모든 직책은 그 사람의 신앙 실상도 봐야 하겠으나 일반 사람들의 시선에 덕이 되는 면을 유지해야 한다. 덕은 하나님과 관계가 아니고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말한다.
하나님 앞에 누가 어떤 죄를 어떻게 지었으며 그 죄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어떻게 평가하시는지는 사람이 알 수가 없다. 따라서 하나님 앞에 감추어져 있는 죄는 직분과 연관 지을 수가 없고 그 사람과 하나님 사이에 은밀하게 해결할 문제다.
그러나, 만일 일반 사람들이 알도록 드러난 죄가 있을 때는 교회 내에서 직책문제를 조심해서 맡겨야 한다. 교회의 직책은 하나님과 자기 사이의 신앙관계 때문에 맡기는 것이 아니고 다른 사람을 신앙으로 인도해야 하는 일이다. 따라서 사람들에게 표시가 나게 된 죄는 그 직책과 연관을 지어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를 각 교회는 의논해야 한다.
더 큰 죄가 있다 해도 드러나지 않았다면 직책과 연관을 시킬 수 없고, 더 작은 죄라도 사람들에게 확연하게 드러났다면 직책과 연관을 지을 수 있다. 어느 정도의 죄를 가지고 그렇게 따져야 하느냐는 것은 교회와 그 사회의 인식을 중요하게 참고해야 한다. 다시 한번 분명히 해 둘 것은, 교회 직책은 다른 사람을 위해 필요해서 목회와 희생의 성격으로 임명하는 것이므로 그 직책이 하나님과 그 사람 사이의 신앙을 말하는 것이 아니며 오직 사람의 눈에 덕 되지 않는 면이 있는 사람은 이런 목회와 희생의 직책이라는 성격 때문에 제재가 필요한 것다(벧전5:3, 고전14:12, 딤전3:1-13).
벧전5:3 ‘맡기운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오직 양 무리의 본이 되라’
고전14:12 ‘그러면 너희도 신령한 것을 사모하는 자인즉 교회의 덕 세우기를 위하여 풍성하기를 구하라’
딤전3:1-13 ‘... 그러므로 감독은 책망할 것이 없으며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 절제하며 근신하며 아담하며 나그네를 대접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오직 관용하며 다투지 아니하며 돈을 사랑치 아니하며 자기 집을 잘 다스려 자녀들로 모든 단정함으로 복종케 하는 자라야 할찌며 (사람이 자기 집을 다스릴줄 알지 못하면 어찌 하나님의 교회를 돌아 보리요) ... 또한 외인에게서도 선한 증거를 얻은 자라야 할찌니 비방과 마귀의 올무에 빠질까 염려하라 이와 같이 집사들도 단정하고 일구 이언을 하지 아니하고 술에 인박이지 아니하고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아니하고 깨끗한 양심에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라야 할찌니 이에 이 사람들을 먼저 시험하여 보고 그 후에 책망할 것이 없으면 집사의 직분을 하게 할 것이요 여자들도 이와 같이 단정하고 참소하지 말며 절제하며 모든 일에 충성된 자라야 할찌니라 집사들은 한 아내의 남편이 되어 자녀와 자기 집을 잘 다스리는 자일찌니 집사의 직분을 잘한 자들은 아름다운 지위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에 큰 담력을 얻느니라’
▪ 임시직
보통 교회의 직책 중에서 안수를 하고 임명을 하게 되는 목사와 장로 그리고 집사 직책 등은 교회 내에서 항존직이라고 분류한다. 한번 임명을 받았으면 평생 그대로 계속되는 직책이라는 뜻이다. 이에 비하여 조사나 권찰이나 반사 등은 임시직책으로 교회가 세울 수도 있고 폐지할 수도 있으며 세운다 해도 1년 기간 등으로 기한을 정하게 된다. 소위 임시직이라고 분류한다.
그러나 교회론에서 원칙적으로 알아야 할 것은 목사나 장로나 집사라는 직책 자체는 교회 내에서 꼭 필요한 직책이라고 할 수 있지만 한 번 그 직책에 임명된 사람은 다시 변경될 수 없다고 한다면 이는 성경을 곡해한 것이다. 어느 직책은 항존직이고 어느 직책은 임시직이라고 분류하는 것부터가 성경적이지를 않다.
신약교회에서는 하나님 앞에 모든 직책이 전부 임시직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구약과 달리 신약은 하나님께서 누구 한 사람을 붙들고 계속해서 한 직책을 맡길지 다른 직책을 맡길지 어떻게 변경시킬지 알 수 없다. 구약은 형식적인 방법을 중심으로 길렀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한 번 제사장에 임명되면 끝까지 제사장의 신분을 갖는 것이 원칙이지만 신약은 반대다.
참고로, 앞에서 교회 직분의 건덕면과 임시직이라는 성격을 고려할 때 교회는 직책에 대하여 시무투표 등의 방법을 통해 항상 각 직책의 유지 여부를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 목회직이므로 목회 차원의 결과가 있었는지 평가할 수 있으며, 희생직이므로 그 직책 평가에서 낙제를 당해도 개인적으로 회개하여 유익을 볼지언정 본인은 짐을 벗게 되는 것이니 섭섭할 일이 아니다. 교회의 직책은 임시직의 성격이 있으므로 신약교회에서는 그 사람의 신앙이 항상 동일하게 유지되지 않는다는 것을 전제한다면 직책을 평가하는 일은 오히려 필수적인 사항이라 할 수가 있다. 더구나 하나님께서 남을 보는 지혜와 능력은 자기가 자기를 보는 능력보다 탁월하도록 했다. 또한 교회의 직책은 건덕직이므로 사람의 평가를 참고할 분명한 이유가 있다(고전10:12, 딤전3:1-13).
고전10:12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딤전3:1-13 ‘... 또한 외인에게서도 선한 증거를 얻은 자라야 할찌니 ... 이에 이 사람들을 먼저 시험하여 보고 그 후에 책망할 것이 없으면 집사의 직분을 하게 할 것이요 ...’
▪ 평생직
신약교회의 모든 직책은 주시는 은혜와 자기 신앙 형편의 변화 때문에 항상 변동이 가능한 직책이지만, 동시에 하나 알고 있어야 할 것은 한 번 맡은 직책은 가능하다면 하나님 앞에 서는 날까지 죽도록 충성해야 하는 평생직의 사명으로 맡아야 한다. 그 직책에 집중하는 정도도 ‘죽기까지’라야 하지만, 기간적으로도 실제 ‘죽는 날까지’ 지속되는 것이 신앙의 원칙이다.
주일학교를 맡은 반사라 해서 나이가 많아지면 못한다는 인식은 잘못된 것이다. 심방을 필수로 해야 하는 직책을 가진 사람이 다리를 사용하지 못하는 형편이 되었다면 몰라도 단순히 나이 때문에 은퇴하는 일은 성경적이지 못하다. 오히려 젊어서는 힘으로 했고 나이가 들면 그동안 쌓은 신앙실력으로 육체의 노쇠를 대신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 정상이다. 신앙은 성장성이 있고 신약의 복음운동은 구약과 달리 주로 육체보다는 내면의 신령한 면으로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현재 일반 교회에서 아주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은퇴제도는 후배에게 길을 열어주고 또 오래 동안 수고한 사람에게 휴식의 기회를 주며 또한 노쇠한 육체에게 더 이상 교회의 직책을 맡기지 않는다는 취지다. 이는 분명히 잘못된 발상이다. 후배에게 길을 열어주기 위해 선배가 물러나는 것은 하나님께서 복음사역자가 모자라서 찾고 있는 심정과 배치된다. 이런 발상은 주로 인간의 세상 욕심 기준으로 탐나는 자리를 후배에게 물려준다는 세상발상이다. 복음운동에는 한 일꾼이 일을 하기 위해 다른 일꾼 하나가 물러나야 하는 것이 아니고 좋은 일꾼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더욱 복음운동이 힘을 얻게 되는 유기체다. 또한 수고한 이에게 휴식을 준다는 것은 죽도록 충성해야 하는 십자가에 대한 기초개념도 없는 생각이다(계2:10, 잠16:31).
계2:10 ‘...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잠16:31 ‘백발은 영화의 면류관이라 의로운 길에서 얻으리라’
민8:24-26 ‘레위인은 ... 이십 오세 이상으로는 회막에 들어와서 봉사하여 일할 것이요 오십세부터는 그 일을 쉬어 봉사하지 아니할 것이나 그 형제와 함께 회막에서 모시는 직무를 지킬 것이요 일하지 아니할 것이라...’
신34:7 ‘모세의 죽을 때 나이 일백 이십세나 그 눈이 흐리지 아니하였고 기력이 쇠하지 아니하였더라’
물론 육체로 섬겨야 하는 레위인들이나 군인에 나가야 하는 연령은 제한이 있었지만 구약에도 육체로 섬기는 일에 해당되지 않은 것은 은퇴가 없다(민8:24-26, 신34:7). 정상적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라면 고후4:16 말씀대로 ‘겉 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에 해당되어야 한다.
② 교회직책과 관련된 몇 가지 논란
▪ 교회직책의 자격 제한
교회직책은 현재 여러 자격 제한이 많다. 목사가 되기 위해서는 신학교 졸업과정과 시험규정 그리고 연령규정에 이르기까지 여러 제한이 있고, 장로나 집사 등 모든 직책에 세례 받은 후 몇 년 등 제반 규정들이 교회별로 부과되고 있다.
이런 규정들은 거의 성경적 근거는 없이 추측과 희망사항 그리고 여러 사람의 이권 충돌을 조정한 결과로 작성된다. 물론 그 동기는 교회와 복음을 위한 것이지만 그런 규정들은 교회의 형편과 상대방에 따라 늘 변하기 마련인데 이런 규정을 고정시켜 버리면 복음에 유익보다는 복음에 손해 보는 면이 많아지게 된다.
현재 교회들마다 직책을 임명하는데 관련 있는 규정들은 거의 다 강제규정이다. 이런 규정들은 전부 하나의 참고 규정들로 바뀌어져야 한다. 교회가 이런 직책에 사람을 임명할 때는 이런 기준과 이런 측면을 참고하겠다는 정도로 시행하는 것이 옳다. 혹시 강행법규로 정하지 않으면 교회가 혼란스럽고 자의적 해석으로 분쟁이 일어나지 않겠느냐고 반론할 수 있다. 강제규정으로 정한다고 교회의 직책에 관련된 모순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고 오히려 그 규정에 형식적으로 맞는 사람은 반드시 임명해야 하는 문제가 생기므로 오히려 부적격 인물이 합법적으로 임명되는 길만 열어놓게 된다. 더구나 이런 임명 규정이 참고사항이므로 분쟁과 혼란이 일어나는 교회가 있다면 이미 그 교회는 분규가 시작된 교회다(마15:1-9, 골2:8)
마15:1-9 ‘... 너희는 어찌하여 너희 유전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느뇨 ... 외식하는 자들아 이사야가 너희에게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일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하시고’
골2:8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노략할까 주의하라 이것이 사람의 유전과 세상의 초등 학문을 좇음이요 그리스도를 좇음이 아니니라’
결론적으로 교회의 직책 관련 규정은 다른 모든 규정과 함께 참고사항으로 제시되는 정도에서 그쳐야 옳고, 꼭 성경에 근거를 가지고 있는 사항은 반드시 지켜야 하는 규정으로 발표하되 원칙선포 정도에서 그치는 것이 옳다.
▪ 교회직책의 여성 제한
앞서 설명한 교회직책의 규정에 관련된 사안 중에 하나이지만 여자들의 교회 내 직책 문제는 교계적으로 급속히 변화되는 현상을 보이고 또 논란이 되고 있어 예를 들겠다.
여성의 교회 직책 제한 문제는 보수교계일수록 금하거나 제한하는 방향이고 진보교계에서는 남녀평등의 원칙으로 제한 없이 허락하는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 남녀평등이라는 세상의 사회시각을 교회 내로 가져오는 것은 분명히 죄가 된다.
일단 성경은 그리스도를 교회의 머리로 가르치면서 부부 사이에서 남편을 아내의 머리로 명시했고 또 여성에게 교회 내에서 발언하는 것을 제한했기 때문에 교회 내의 직책이나 활동을 두고 교회가 일정한 제한을 한다면 이는 각 교회의 자기 판단으로 할 수 있다. 다만 여성의 활동 자체를 금한 것이 아니고 여성은 창조원리에서부터 지도의 책임보다는 순종으로 따르는 면을 가지게 했으므로 교회 내에서도 여성의 직책과 활동이 남성 지도자의 신앙지도 범위 안에 있다면 일괄적으로 제한할 수 없다. 다만 교회의 일반적 질서를 위해 각 교회가 자기 교회 형편에 따라 여러 규정을 두고 있는데 이를 성경 근거라고 생각하여 절대규정으로 제한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전11:3, 딤전2:11-14).
고전11:3 ‘그러나 나는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
딤전2:11-14 ‘여자는 일절 순종함으로 종용히 배우라 여자의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지 아니하노니 오직 종용할찌니라 이는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고 이와가 그 후며 아담이 꾀임을 보지 아니하고 여자가 꾀임을 보아 죄에 빠졌음이니라’
삿4:4-5 ‘그 때에 랍비돗의 아내 여선지 드보라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었는데 그는 에브라임 산지 라마와 벧엘 사이 드보라의 종려나무 아래 거하였고 이스라엘 자손은 그에게 나아가 재판을 받더라’
요일2:27 ‘너희는 주께 받은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
분명한 것은 구약에도 가끔 볼 수 있지만 여성이라 해도 그의 신앙지도가 여성의 순종성을 넘어 남성에게 주신 지도력의 장점을 가지는 경우는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될 수 있었다(삿4:4-5). 신약은 형식과 외적인 제한을 거의 하지 않는 시대이므로 여성의 직책 금지에 있어서도 무조건적 금지는 곤란할 것이다(요일2:27).
다만 목사직책은 어느 교회든 그 교회를 하나님 앞에 책임질 자리라는 전제가 있으므로 일괄적으로 여성을 목사 안수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다만 어느 한 여성이 하나님 앞에서 특별히 그 시대와 그 교회를 맡을 실력을 뚜렷하게 받았다고 한다면 그의 안수를 금할 법은 없다. 그러나 현재까지 죄 되지 않는 이상 교회는 과거를 보수하는 것이 옳고 또 여성으로서 목사 실력을 갖춘 이라 해도 굳이 목사 안수가 필요한 경우는 없을 것이므로 여성의 목사 안수는 일반적으로는 하지 않는 것이 옳다(딤전2:11-14).
▪ 교회직책의 시무 신임
교회의 일반 직책은 신앙으로 책임진 다른 사람에 의하여 임명될 때뿐 아니라 여러 기회를 통하여 평가를 받게 된다. 그러나 그 교회의 책임을 최종적으로 지고 있는 목회자나 장로 직책은 다른 사람을 평가만 하지 자신들은 평가를 받을 기회가 적거나 혹 없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교회의 최종 책임자에 속하는 직책들은 주기적으로 전체 교인에 의하여 평가받을 기회를 갖도록 하는 것이 유익할 것인데 백영희신앙노선의 공회체제 교회들은 매 2년 정도로 기간을 정하고 그 대상은 목회자와 장로들로 정하여 정기적으로 시무 신임을 평가하고 있다. 시무 신임투표의 기간과 대상 등 방법론은 각 교회의 신앙 형편에 따라 조절이 가능하겠으나 이 제도의 취지는 교회를 바로 세우기 위해 필요할 것다(마26:41, 갈2:11-14, 약4:14).
마26:41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갈2:11-14 ‘게바가 안디옥에 이르렀을 때에 책망할 일이 있기로 내가 저를 면책하였노라 야고보에게서 온 어떤이들이 이르기 전에 게바가 이방인과 함께 먹다가 저희가 오매 그가 할례자들을 두려워하여 떠나 물러가매 남은 유대인들도 저와 같이 외식하므로 바나바도 저희의 외식에 유혹되었느니라 그러므로 나는 저희가 복음의 진리를 따라 바로 행하지 아니함을 보고 모든 자 앞에서 게바에게 이르되 네가 유대인으로서 이방을 좇고 유대인답게 살지 아니하면서 어찌하여 억지로 이방인을 유대인답게 살게 하려느냐 하였노라’
약4:14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① 교회직책의 특징
▪ 목회직 딤전5:17 ‘잘 다스리는 장로들을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을 더할 것이니라’
행6:1-6 ‘...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공궤를 일삼는 것이 마땅치 아니하니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저희에게 맡기고 우리는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을 전무하리라 하니 ...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 택하여 사도들 앞에 세우니 사도들이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니라’
교회의 직책을 두고 일반적으로 목사는 설교를 주로 맡고, 장로는 교회 정치를 주로 맡으며(딤전5:17), 집사는 살림살이를 맡는다고 분류하고 있다(행6:1-6). 물론 남보다 그 면에 특별한 실력을 가질 수가 있으면 그런 점은 장점이지 단점이 될 수는 없다.
그러나 교회의 직책은 어떤 형태든지 결국 ‘목회직’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어린 교인을 길러가는 목자의 역할이 교회의 모든 직책이 가져야 하는 본질이다. 신앙어린 사람을 가르치는 목사라야 하고 신앙어린 사람을 보살피는 장로라야 하고 신앙어린 사람을 위해 교회 살림을 사용하는 집사라야 한다. 그리고 그 직책은 업무 분담이 기계적으로 나누어져서는 안 된다. 집사가 설교를 할 수 있어야 하고 목사가 교회 살림의 세부사항을 실제 알아야 하고 장로가 설교와 어린 학생의 신앙을 심방하고 지도할 수 있어야 한다. 마치 장로는 세상조직의 감사실 같고 목사는 기관단체장 같고 집사는 행정관리들 같은 모습을 띤다면 교회가 아니라 세상이 되었다는 증거다(요21:15-17).
요21:15-17 ‘... 가라사대 내 어린 양을 먹이라 ... 내 양을 치라 ...’
마16:24 ‘...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요10:11 ‘...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눅16:10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 충성되고 ...’
▪ 희생직
교회의 모든 직책은 주님이 우리 위해 죽으심같이 자기들도 다른 사람의 신앙을 위해 죽을 각오로 맡아야 할 것이다(마16:24, 요10:11). 일반 신앙으로는 그런 순교적 차원에 이르지 못할 것인데, 그렇다면 자기가 할 수 있는 범위에서 지극히 작은 것부터 희생할 수 있어야 한다(눅16:10).
현재 교회의 직책은 이미 세상 욕심을 기준으로 먹음직하고 보암직하며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운 상태가 되어 있다. 특히 교회가 복음의 초기 선교단계를 지나고 그 사회에서 안정되기 시작하면 예외 없이 교회의 모든 직책은 명예와 이권과 자기만족 등을 위해 욕심을 낼만한 자리로 변질된다. 그래서 남을 위해 나를 희생하고 내어놓기 위한 교회직분이 되지 않고 나를 위해 확보해야 할 직분이 된다. 그래서 교회는 각종 직책을 두고 내분이나 경쟁이 벌어지게 되는데 이는 벌써 교회가 세상으로 바뀌었다는 증거다.
진정 교회의 직책은 자기희생과 십자가를 각오해야 하기 때문에 그 직책을 매는 이들에게 주변에서는 감사히 생각해야 하고 본인은 자기 본능이 그 자리를 회피하려 하나 주님의 시선이 두려워 순종하는 내면이 있어야 한다. 혹 이런 과정을 밟지 않고 직책을 가졌다면 얼른 회개하여 자신을 이런 상태로 만들어야 한다.
▪ 신앙직
교회의 직분을 맡는 실력은 첫째 신앙이 있어야 한다. 신앙은 없으나 세상에서 지도력을 갖추었다 해서 교회 내에서 흔히 고위직을 쉽게 맡기는 경우가 있다. 물론 그를 신앙으로 기르기 위해서 그렇게 할 수도 있지만 속으로는 그 사람이 가진 세상에 압도되고 그 세상을 가치있게 평가하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수가 많다.
교회의 인물 평가 기준은 말할 것 없이 신앙이다. 신앙 있는 사람이 좋은 사람이고 신앙 있는 사람이 실력 있는 사람이며 신앙 있는 사람이 교회 안에서는 인재다. 물론 신앙이라는 것은 주관적인 것이어서 외부 사람이 평가하기에 어려움은 많다. 그러나 여러 사람이 모여 한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도록 하나님께서 하셨기 때문에 비록 신앙이 사람의 내면에 들어 있는 것이지만 외부 다른 사람이 확인하기에 불가능할 만큼 숨겨 두지는 않았다(삼상16:7).
삼상16:7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 용모와 신장을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신16:19 ‘... 사람을 외모로 보지 말며 또 뇌물을 받지 말라 뇌물은 지혜자의 눈을 어둡게 하고 의인의 말을 굽게 하느니라’
갈2:6 ‘유명하다는 이들 중에 (본래 어떤이들이든지 내게 상관이 없으며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취하지 아니하시나니) 저 유명한 이들은 내게 더하여 준 것이 없고’
교회는 신앙을 생명으로 알고 있는 곳이다. 교회는 신앙으로 앞선 사람이 신앙으로 따라 오는 사람을 지도하도록 모이게 한 곳이다. 혹 교회가 예배당 건축과 같이 세상에 속한 업무를 해야 할 때도 있다. 그러나 그런 때도 신앙이 있는 사람이 기본 방향과 성격을 결정해야 하고, 세상일에 속한 실무적인 것은 그 면에 실력 있는 사람이 신앙 있는 사람의 지도를 받아 일을 해야 한다(신16:19, 갈2:6).
▪ 건덕직
다른 사람에게 덕을 세운다는 말을 교회에서는 건덕이라고 흔히 사용한다. 교회의 모든 직책은 그 사람의 신앙 실상도 봐야 하겠으나 일반 사람들의 시선에 덕이 되는 면을 유지해야 한다. 덕은 하나님과 관계가 아니고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말한다.
하나님 앞에 누가 어떤 죄를 어떻게 지었으며 그 죄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어떻게 평가하시는지는 사람이 알 수가 없다. 따라서 하나님 앞에 감추어져 있는 죄는 직분과 연관 지을 수가 없고 그 사람과 하나님 사이에 은밀하게 해결할 문제다.
그러나, 만일 일반 사람들이 알도록 드러난 죄가 있을 때는 교회 내에서 직책문제를 조심해서 맡겨야 한다. 교회의 직책은 하나님과 자기 사이의 신앙관계 때문에 맡기는 것이 아니고 다른 사람을 신앙으로 인도해야 하는 일이다. 따라서 사람들에게 표시가 나게 된 죄는 그 직책과 연관을 지어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를 각 교회는 의논해야 한다.
더 큰 죄가 있다 해도 드러나지 않았다면 직책과 연관을 시킬 수 없고, 더 작은 죄라도 사람들에게 확연하게 드러났다면 직책과 연관을 지을 수 있다. 어느 정도의 죄를 가지고 그렇게 따져야 하느냐는 것은 교회와 그 사회의 인식을 중요하게 참고해야 한다. 다시 한번 분명히 해 둘 것은, 교회 직책은 다른 사람을 위해 필요해서 목회와 희생의 성격으로 임명하는 것이므로 그 직책이 하나님과 그 사람 사이의 신앙을 말하는 것이 아니며 오직 사람의 눈에 덕 되지 않는 면이 있는 사람은 이런 목회와 희생의 직책이라는 성격 때문에 제재가 필요한 것다(벧전5:3, 고전14:12, 딤전3:1-13).
벧전5:3 ‘맡기운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오직 양 무리의 본이 되라’
고전14:12 ‘그러면 너희도 신령한 것을 사모하는 자인즉 교회의 덕 세우기를 위하여 풍성하기를 구하라’
딤전3:1-13 ‘... 그러므로 감독은 책망할 것이 없으며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 절제하며 근신하며 아담하며 나그네를 대접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오직 관용하며 다투지 아니하며 돈을 사랑치 아니하며 자기 집을 잘 다스려 자녀들로 모든 단정함으로 복종케 하는 자라야 할찌며 (사람이 자기 집을 다스릴줄 알지 못하면 어찌 하나님의 교회를 돌아 보리요) ... 또한 외인에게서도 선한 증거를 얻은 자라야 할찌니 비방과 마귀의 올무에 빠질까 염려하라 이와 같이 집사들도 단정하고 일구 이언을 하지 아니하고 술에 인박이지 아니하고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아니하고 깨끗한 양심에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라야 할찌니 이에 이 사람들을 먼저 시험하여 보고 그 후에 책망할 것이 없으면 집사의 직분을 하게 할 것이요 여자들도 이와 같이 단정하고 참소하지 말며 절제하며 모든 일에 충성된 자라야 할찌니라 집사들은 한 아내의 남편이 되어 자녀와 자기 집을 잘 다스리는 자일찌니 집사의 직분을 잘한 자들은 아름다운 지위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에 큰 담력을 얻느니라’
▪ 임시직
보통 교회의 직책 중에서 안수를 하고 임명을 하게 되는 목사와 장로 그리고 집사 직책 등은 교회 내에서 항존직이라고 분류한다. 한번 임명을 받았으면 평생 그대로 계속되는 직책이라는 뜻이다. 이에 비하여 조사나 권찰이나 반사 등은 임시직책으로 교회가 세울 수도 있고 폐지할 수도 있으며 세운다 해도 1년 기간 등으로 기한을 정하게 된다. 소위 임시직이라고 분류한다.
그러나 교회론에서 원칙적으로 알아야 할 것은 목사나 장로나 집사라는 직책 자체는 교회 내에서 꼭 필요한 직책이라고 할 수 있지만 한 번 그 직책에 임명된 사람은 다시 변경될 수 없다고 한다면 이는 성경을 곡해한 것이다. 어느 직책은 항존직이고 어느 직책은 임시직이라고 분류하는 것부터가 성경적이지를 않다.
신약교회에서는 하나님 앞에 모든 직책이 전부 임시직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구약과 달리 신약은 하나님께서 누구 한 사람을 붙들고 계속해서 한 직책을 맡길지 다른 직책을 맡길지 어떻게 변경시킬지 알 수 없다. 구약은 형식적인 방법을 중심으로 길렀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한 번 제사장에 임명되면 끝까지 제사장의 신분을 갖는 것이 원칙이지만 신약은 반대다.
참고로, 앞에서 교회 직분의 건덕면과 임시직이라는 성격을 고려할 때 교회는 직책에 대하여 시무투표 등의 방법을 통해 항상 각 직책의 유지 여부를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 목회직이므로 목회 차원의 결과가 있었는지 평가할 수 있으며, 희생직이므로 그 직책 평가에서 낙제를 당해도 개인적으로 회개하여 유익을 볼지언정 본인은 짐을 벗게 되는 것이니 섭섭할 일이 아니다. 교회의 직책은 임시직의 성격이 있으므로 신약교회에서는 그 사람의 신앙이 항상 동일하게 유지되지 않는다는 것을 전제한다면 직책을 평가하는 일은 오히려 필수적인 사항이라 할 수가 있다. 더구나 하나님께서 남을 보는 지혜와 능력은 자기가 자기를 보는 능력보다 탁월하도록 했다. 또한 교회의 직책은 건덕직이므로 사람의 평가를 참고할 분명한 이유가 있다(고전10:12, 딤전3:1-13).
고전10:12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딤전3:1-13 ‘... 또한 외인에게서도 선한 증거를 얻은 자라야 할찌니 ... 이에 이 사람들을 먼저 시험하여 보고 그 후에 책망할 것이 없으면 집사의 직분을 하게 할 것이요 ...’
▪ 평생직
신약교회의 모든 직책은 주시는 은혜와 자기 신앙 형편의 변화 때문에 항상 변동이 가능한 직책이지만, 동시에 하나 알고 있어야 할 것은 한 번 맡은 직책은 가능하다면 하나님 앞에 서는 날까지 죽도록 충성해야 하는 평생직의 사명으로 맡아야 한다. 그 직책에 집중하는 정도도 ‘죽기까지’라야 하지만, 기간적으로도 실제 ‘죽는 날까지’ 지속되는 것이 신앙의 원칙이다.
주일학교를 맡은 반사라 해서 나이가 많아지면 못한다는 인식은 잘못된 것이다. 심방을 필수로 해야 하는 직책을 가진 사람이 다리를 사용하지 못하는 형편이 되었다면 몰라도 단순히 나이 때문에 은퇴하는 일은 성경적이지 못하다. 오히려 젊어서는 힘으로 했고 나이가 들면 그동안 쌓은 신앙실력으로 육체의 노쇠를 대신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 정상이다. 신앙은 성장성이 있고 신약의 복음운동은 구약과 달리 주로 육체보다는 내면의 신령한 면으로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현재 일반 교회에서 아주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은퇴제도는 후배에게 길을 열어주고 또 오래 동안 수고한 사람에게 휴식의 기회를 주며 또한 노쇠한 육체에게 더 이상 교회의 직책을 맡기지 않는다는 취지다. 이는 분명히 잘못된 발상이다. 후배에게 길을 열어주기 위해 선배가 물러나는 것은 하나님께서 복음사역자가 모자라서 찾고 있는 심정과 배치된다. 이런 발상은 주로 인간의 세상 욕심 기준으로 탐나는 자리를 후배에게 물려준다는 세상발상이다. 복음운동에는 한 일꾼이 일을 하기 위해 다른 일꾼 하나가 물러나야 하는 것이 아니고 좋은 일꾼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더욱 복음운동이 힘을 얻게 되는 유기체다. 또한 수고한 이에게 휴식을 준다는 것은 죽도록 충성해야 하는 십자가에 대한 기초개념도 없는 생각이다(계2:10, 잠16:31).
계2:10 ‘...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잠16:31 ‘백발은 영화의 면류관이라 의로운 길에서 얻으리라’
민8:24-26 ‘레위인은 ... 이십 오세 이상으로는 회막에 들어와서 봉사하여 일할 것이요 오십세부터는 그 일을 쉬어 봉사하지 아니할 것이나 그 형제와 함께 회막에서 모시는 직무를 지킬 것이요 일하지 아니할 것이라...’
신34:7 ‘모세의 죽을 때 나이 일백 이십세나 그 눈이 흐리지 아니하였고 기력이 쇠하지 아니하였더라’
물론 육체로 섬겨야 하는 레위인들이나 군인에 나가야 하는 연령은 제한이 있었지만 구약에도 육체로 섬기는 일에 해당되지 않은 것은 은퇴가 없다(민8:24-26, 신34:7). 정상적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라면 고후4:16 말씀대로 ‘겉 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에 해당되어야 한다.
② 교회직책과 관련된 몇 가지 논란
▪ 교회직책의 자격 제한
교회직책은 현재 여러 자격 제한이 많다. 목사가 되기 위해서는 신학교 졸업과정과 시험규정 그리고 연령규정에 이르기까지 여러 제한이 있고, 장로나 집사 등 모든 직책에 세례 받은 후 몇 년 등 제반 규정들이 교회별로 부과되고 있다.
이런 규정들은 거의 성경적 근거는 없이 추측과 희망사항 그리고 여러 사람의 이권 충돌을 조정한 결과로 작성된다. 물론 그 동기는 교회와 복음을 위한 것이지만 그런 규정들은 교회의 형편과 상대방에 따라 늘 변하기 마련인데 이런 규정을 고정시켜 버리면 복음에 유익보다는 복음에 손해 보는 면이 많아지게 된다.
현재 교회들마다 직책을 임명하는데 관련 있는 규정들은 거의 다 강제규정이다. 이런 규정들은 전부 하나의 참고 규정들로 바뀌어져야 한다. 교회가 이런 직책에 사람을 임명할 때는 이런 기준과 이런 측면을 참고하겠다는 정도로 시행하는 것이 옳다. 혹시 강행법규로 정하지 않으면 교회가 혼란스럽고 자의적 해석으로 분쟁이 일어나지 않겠느냐고 반론할 수 있다. 강제규정으로 정한다고 교회의 직책에 관련된 모순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고 오히려 그 규정에 형식적으로 맞는 사람은 반드시 임명해야 하는 문제가 생기므로 오히려 부적격 인물이 합법적으로 임명되는 길만 열어놓게 된다. 더구나 이런 임명 규정이 참고사항이므로 분쟁과 혼란이 일어나는 교회가 있다면 이미 그 교회는 분규가 시작된 교회다(마15:1-9, 골2:8)
마15:1-9 ‘... 너희는 어찌하여 너희 유전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느뇨 ... 외식하는 자들아 이사야가 너희에게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일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하시고’
골2:8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노략할까 주의하라 이것이 사람의 유전과 세상의 초등 학문을 좇음이요 그리스도를 좇음이 아니니라’
결론적으로 교회의 직책 관련 규정은 다른 모든 규정과 함께 참고사항으로 제시되는 정도에서 그쳐야 옳고, 꼭 성경에 근거를 가지고 있는 사항은 반드시 지켜야 하는 규정으로 발표하되 원칙선포 정도에서 그치는 것이 옳다.
▪ 교회직책의 여성 제한
앞서 설명한 교회직책의 규정에 관련된 사안 중에 하나이지만 여자들의 교회 내 직책 문제는 교계적으로 급속히 변화되는 현상을 보이고 또 논란이 되고 있어 예를 들겠다.
여성의 교회 직책 제한 문제는 보수교계일수록 금하거나 제한하는 방향이고 진보교계에서는 남녀평등의 원칙으로 제한 없이 허락하는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 남녀평등이라는 세상의 사회시각을 교회 내로 가져오는 것은 분명히 죄가 된다.
일단 성경은 그리스도를 교회의 머리로 가르치면서 부부 사이에서 남편을 아내의 머리로 명시했고 또 여성에게 교회 내에서 발언하는 것을 제한했기 때문에 교회 내의 직책이나 활동을 두고 교회가 일정한 제한을 한다면 이는 각 교회의 자기 판단으로 할 수 있다. 다만 여성의 활동 자체를 금한 것이 아니고 여성은 창조원리에서부터 지도의 책임보다는 순종으로 따르는 면을 가지게 했으므로 교회 내에서도 여성의 직책과 활동이 남성 지도자의 신앙지도 범위 안에 있다면 일괄적으로 제한할 수 없다. 다만 교회의 일반적 질서를 위해 각 교회가 자기 교회 형편에 따라 여러 규정을 두고 있는데 이를 성경 근거라고 생각하여 절대규정으로 제한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전11:3, 딤전2:11-14).
고전11:3 ‘그러나 나는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
딤전2:11-14 ‘여자는 일절 순종함으로 종용히 배우라 여자의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지 아니하노니 오직 종용할찌니라 이는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고 이와가 그 후며 아담이 꾀임을 보지 아니하고 여자가 꾀임을 보아 죄에 빠졌음이니라’
삿4:4-5 ‘그 때에 랍비돗의 아내 여선지 드보라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었는데 그는 에브라임 산지 라마와 벧엘 사이 드보라의 종려나무 아래 거하였고 이스라엘 자손은 그에게 나아가 재판을 받더라’
요일2:27 ‘너희는 주께 받은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
분명한 것은 구약에도 가끔 볼 수 있지만 여성이라 해도 그의 신앙지도가 여성의 순종성을 넘어 남성에게 주신 지도력의 장점을 가지는 경우는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될 수 있었다(삿4:4-5). 신약은 형식과 외적인 제한을 거의 하지 않는 시대이므로 여성의 직책 금지에 있어서도 무조건적 금지는 곤란할 것이다(요일2:27).
다만 목사직책은 어느 교회든 그 교회를 하나님 앞에 책임질 자리라는 전제가 있으므로 일괄적으로 여성을 목사 안수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다만 어느 한 여성이 하나님 앞에서 특별히 그 시대와 그 교회를 맡을 실력을 뚜렷하게 받았다고 한다면 그의 안수를 금할 법은 없다. 그러나 현재까지 죄 되지 않는 이상 교회는 과거를 보수하는 것이 옳고 또 여성으로서 목사 실력을 갖춘 이라 해도 굳이 목사 안수가 필요한 경우는 없을 것이므로 여성의 목사 안수는 일반적으로는 하지 않는 것이 옳다(딤전2:11-14).
▪ 교회직책의 시무 신임
교회의 일반 직책은 신앙으로 책임진 다른 사람에 의하여 임명될 때뿐 아니라 여러 기회를 통하여 평가를 받게 된다. 그러나 그 교회의 책임을 최종적으로 지고 있는 목회자나 장로 직책은 다른 사람을 평가만 하지 자신들은 평가를 받을 기회가 적거나 혹 없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교회의 최종 책임자에 속하는 직책들은 주기적으로 전체 교인에 의하여 평가받을 기회를 갖도록 하는 것이 유익할 것인데 백영희신앙노선의 공회체제 교회들은 매 2년 정도로 기간을 정하고 그 대상은 목회자와 장로들로 정하여 정기적으로 시무 신임을 평가하고 있다. 시무 신임투표의 기간과 대상 등 방법론은 각 교회의 신앙 형편에 따라 조절이 가능하겠으나 이 제도의 취지는 교회를 바로 세우기 위해 필요할 것다(마26:41, 갈2:11-14, 약4:14).
마26:41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갈2:11-14 ‘게바가 안디옥에 이르렀을 때에 책망할 일이 있기로 내가 저를 면책하였노라 야고보에게서 온 어떤이들이 이르기 전에 게바가 이방인과 함께 먹다가 저희가 오매 그가 할례자들을 두려워하여 떠나 물러가매 남은 유대인들도 저와 같이 외식하므로 바나바도 저희의 외식에 유혹되었느니라 그러므로 나는 저희가 복음의 진리를 따라 바로 행하지 아니함을 보고 모든 자 앞에서 게바에게 이르되 네가 유대인으로서 이방을 좇고 유대인답게 살지 아니하면서 어찌하여 억지로 이방인을 유대인답게 살게 하려느냐 하였노라’
약4:14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