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교회의 특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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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2.12 18:15
2. 교회의 특성
① 계속성
▪ 계통 전승
참 교회는 어디서 어떻게 존재하더라도 각 시대를 이어가며 계통을 유지하고 있다(마1:1-17). 한 시대에 수많은 교파와 교단과 각개 지역교회들이 있지만 하나님 앞에서 그 시대를 대표하며 후시대로 이어지는 교회가 있다. 이 교회가 바로 정통교회다. 물론 정통교회가 사람이 알도록 그 시대 교회들의 활동 중심에 서는 일은 거의 없다. 오히려 그 반대가 되어 대개 왜소한 상태로 명맥을 겨우 잇거나 심지어 그 맥이 완전히 단절된 정도로 보이는 것이 보통이다.
정통교회의 계승에 있어 하나 기억할 것은 정통교회는 항상 정통교회에서 정통교회로 이어진다. 정통교회가 타락하지 않고 그대로 그다음 시대에 이어지는 때도 가끔 있고, 또 정통교회가 타락하게 되면 그 타락한 교회에서 개혁운동이 일어나서 원래 교회의 참모습을 찾아 다시 정통교회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분명한 것은 타락한 정통교회에서 개혁운동이 일어나서 정통교회가 다시 나타나는 수는 있어도 정통교회에서 벗어나 탈선한 교회에서 정통교회가 이어지는 수는 없다. 이단에서 정통이 나오는 수는 없습니다. 정통에서 정통이 이어진다. 인간이 인간 수준에서 ‘정통’의 이름을 너무 많이 써먹고 또 정통이 이어진 ‘전통’의 이름을 너무 많이 써먹고 있지만, 그래도 정통이 전통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정통의 전통을 찾아 원래 참 교회의 모습을 찾는 일은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 정통의 이름을 다른 목적으로 사용하는 이들에게 반발심이 많아지면 정통을 잘못 이해하고 써먹는 그들 때문에 정통 자체까지 배척하는 것이 유약한 인간들이다(왕상12:16, 약3:12)
왕상12:16 ‘온 이스라엘이 자기들의 말을 왕이 듣지 아니함을 보고 왕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우리가 다윗과 무슨 관계가 있느뇨 이새의 아들에게서 업이 없도다 이스라엘아 너희의 장막으로 돌아가라 다윗이여 이제 너는 네 집이나 돌아보라 하고 이스라엘이 그 장막으로 돌아가니라’
약3:12 ‘내 형제들아 어찌 무화과나무가 감람열매를 포도나무가 무화과를 맺겠느뇨 이와 같이 짠물이 단물을 내지 못하느니라’
▪ 전투 교회
참 교회는 이 세상에서는 반드시 대내외의 투쟁을 피할 수 없다. 교회는 하나님의 것이고 세상은 악령의 것이며 하나님은 교회를 세상에서 하나님께만 붙들린 것을 만들려 하시고 악령은 그것을 막는 일이 자기 일이다.
악령이 교회를 하나님으로부터 떼 내어 세상에 편입시킨 만큼 악령의 나라 지옥의 권세를 확보한다. 악령의 침투로는 크게 2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교회를 외부에서 정면으로 비판하고 해체하기 위해 교회를 여러 종교 중에 한 종교로 만들고 그 이름을 기독교라고 붙인 다음 무신론이나 타종교를 통해 종교 간의 문제를 제기하여 대적하는 일이다(행17:18). 또 하나는 교회 내에 악령의 사람들을 심고 길러서 교회 내부에서 스스로 교회의 본질을 포기하게 만드는 일이다(유1:4, 행20:30).
어떤 때는 외부전투에 집중하고 어떤 때는 내부전투에 집중하고 어떤 때는 2개의 전선을 동시에 가동한다. 교회 내에 들어온 적을 상대하려면 악령은 형제사랑이라는 방패를 들고 나서고, 교회 밖에서 들어오는 적을 상대하려면 세상의 힘으로 진압을 하며 나선다. 그 전법과 전선의 형태가 어떠한 것은 따로 살펴볼 일이고 여기서 단정할 수 있는 것은, 교회가 참 교회라 한다면 그 교회는 지상역사 끝날까지 안팎의 전투에서 벗어나 쉴 수 있는 때는 없다(벧전5:8-9, 계7:14).
행17:18 ‘어떤 에비구레오와 스도이고 철학자들도 바울과 쟁론할쌔 혹은 이르되 이 말장이가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느뇨 하고 혹은 이르되 이방 신들을 전하는 사람인가보다 하니 이는 바울이 예수와 또 몸의 부활 전함을 인함이러라’
유1:4 ‘이는 가만히 들어온 사람 몇이 있음이라 저희는 옛적부터 이 판결을 받기로 미리 기록된 자니 ...’
행20:30 ‘또한 너희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좇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니’
벧전5:8-9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 ...’
계7:14 ‘...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 외형 유지
참 교회는 때로는 사람들의 눈에 어디 있는지 확인이 불가능할 만큼 사라지는 때도 있다. 그러나 찾아보는 사람의 시력이 약해서 보지 못했을 뿐이다. 지상 역사 기간을 통하여 참 교회는 반드시 그 교회를 외형 교회의 형태 속에서 존재하도록 한다. 따라서 참 교회는 피난 시절과 같이 긴급한 때는 그 교회의 형태조차 없는 듯 보이지만 반드시 보이는 교회의 모습 속에서 그 계통을 유지하고 있다.
혹 시대적인 박해로 인하여 교회의 기본 형태조차 갖추지 못하고 오랜 시간을 지하교회로 유지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그 기간이 끝이 나고 신앙자유가 주어지면 교회는 반드시 교회의 형태를 가지고 그 시대를 감당한다. 무교회주의를 경계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물론 교회의 외형 유지라는 것은 어느 교파가 헌법으로 규정한 교회의 설립 요건을 기준으로 판단하지는 못한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현실과 시대에 따라 그 존재하는 형식은 다양할 수 있다. 다만 교회는 외형유지가 필요하다고 강조하는 이유는, 교회의 단체 타락에서 개혁운동을 일으킬 때 자칫 교회의 잘못된 것만 고치지 않고 교회 자체를 잡아버리거나 또는 교회가 단체로 존재하는 이상 항상 다시 타락할 수 있는 점을 생각하여 교회의 존재형태 자체를 거부하는 자세를 가지기 쉽기 때문에 이를 경계하는 것이다(히10:25).
‘히10:25’은 p.346 참조
▪ 인인 계승
교회는 반드시 사람을 통해 사람을 기르고 앞의 사람의 수고에 뒤 사람의 수고를 더하며 자라고 건설되어 간다. 한 사람이나 한 시대에 전부를 맡기지 않는 것은 우리 각자가 한 몸의 분자로 한 분 하나님으로 움직여야 할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바로 깨닫고 바로 쌓아놓은 다른 사람의 앞선 수고를 잊거나 무시하게 되면 뒤따르는 사람의 모든 수고는 크게 지체되거나 혹은 그의 평생 수고가 헛일이 될 수도 있다. 매일 자기 현실에서 지극히 작은 것에 죽도록 충성하며 조심하되 동시에 자기가 어느 줄에서 어느 사람의 어떤 수고의 연결선에 이어져 자기 할 일을 해야 하는지도 삼가 살펴야 할 이유가 여기 있다.
한 지방 교회의 복음운동으로부터 한 시대를 이어가는 범위 넓은 복음운동에 이르기까지 하나님께서 앞서 나간 이들을 통해 미리 닦아 둔 터가 어디며 또 어느 부분까지 어떤 작업을 끝마쳤는지를 살펴 그 뒤를 잇는 것이 늘 중요하다. 사람을 통해 사람을 구원하고, 사람을 통해 사람을 기르며, 사람을 통해 복음 운동의 여러 면을 갈라 맡기고 이어가며 전체가 하나의 참 교회가 되도록 하고 있다(수11:15).
수11:15 ‘여호와께서 그종 모세에게 명하신 것을 모세는 여호수아에게 명하였고 여호수아는 그대로 행하여 여호와께서 무릇 모세에게 명하신 것을 하나도 행치 아니한 것이 없었더라’
고전3:6-9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셨나니 ... 심는 이와 물 주는 이가 일반이나 각각 자기의 일하는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
엡4:15-16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찌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입음으로 연락하고 상합하여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 유기적 존재
참 교회는 그 내부 구성과 상호관계가 마치 한 사람의 몸이 하나의 유기적 조직체로 연결되고 운영되는 것과 같다. 가장 잘 보고 참고할 수 있는 것이 인체다.
발끝이 머리에 이어져 있고 손끝의 불편이 발끝에 불편이 되고, 눈의 수고가 발의 수고와 합해 머리를 살리고, 머리를 중심으로 전신의 각 부분이 순서와 질서와 협력과 분담과 지원과 도움을 주고받되 그 생긴 모양과 역할과 동작은 천차만별이다. 그러나 그 생명은 하나이고 그 목적도 하나이며 그 활동도 결국 하나다.
하나님의 교회는 하나님 한 분이 생명이며 하나님의 목적이 교회의 목적이며 하나님의 뜻대로 움직이되 각자에게 주어진 환경과 역할과 장단점과 활동은 전혀 다른데도 그 모두는 정확하게 한 몸의 관계와 같다. 교회론을 바로 안다면 교회생활을 통해 시험 들고 갈 길에 방해를 받고 갈등하여 고민하는 일은 전혀 없다. 온 몸의 전부가 다 병들고 약해져 있다면 자기에게 주어진 일이 더욱 중하고 긴급하여 혼자서 그 몸을 책임져야 하는 시기이지, 다른 지체들의 고장과 무력에 영향을 받아 함께 그리 될 수 없는 일이다(고전3:6-9, 엡4:15-16).
② 단순성
교회는 하나님이 주동이시고, 인간은 순종으로 운영된다. 따라서 한 분 하나님만 상대로 움직이기 때문에 항상 단순하다. 하나님 없는 인간들의 조직체는 조직 자체가 조직을 유지하는 힘이요 근간이기 때문에 복잡하기 그지없다. 인간의 수없는 꾀와 방편들이 복잡하게 쌓여져야 하기 때문이다. 교회가 타락하면 눈에 확인할 수 있도록 나타나는 현상 중에 하나가 단순하던 교회가 복잡하게 된다. 단순해도 생명이 있고 따뜻함이 있었는데, 타락하게 되면 복잡한 제도와 수많은 방법들이 제시되는데 그 속에 성령이 주시는 뜨거움은 없어지고 일반 세상 조직과 같은 외형을 가지는 데까지 나간다.
하나님의 교회는 오로지 하나님 한분으로 그 전부를 삼는데 하나님은 단일성이므로 그 모든 운영과 존재 형식은 단순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비록 그 말씀이 복잡한 것 같아도 실은 그 말씀 속의 진리는 항상 하나다. 그 속의 내용이 단순하기 때문에 외부로 나타나는 것은 비록 복잡하게 보일지라도 그것은 복잡하게 ‘보일 뿐’이고 실제로는 단순한 형태를 가진다.
오늘 세상의 구조가 무한정으로 복잡하게 발전하고 있는 것처럼 오늘 교회의 타락도 그 교회 내의 복잡함이 마치 세상을 닮아가고 있는 듯 하다. 교회의 법도 조직도 교회의 예배도 교회의 모든 의식과 운영도 인간들이 만들고 제안한 것으로 가득 차 있어 하나님께서 원래 내신 것은 어디 있는지 찾지도 못할 정도다. 이 모든 것의 원인 중에 가장 눈에 띄는 주범이 바로 신학의 복잡화다. 신학이 하나님의 뜻만을 찾는 일로 단순화 되면 교회도 단순해질 것인데, 세상이 학문을 복잡하게 만들고 또 학문도 세상을 복잡하게 만드는 와중에 신학까지도 세상 학문과 꼭 같은 모습으로 교회를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예배당도 단순한 것이 좋고, 교회의 조직도 단순한 것이 좋으며, 교회의 법도 성경법 하나로 모여져 단순해져야 하고, 성도의 생활도 단순해져야 한다. 심지어 입는 옷까지도 단순하고 먹는 음식까지 단순하게 되는 것이 신앙의 근본 방향이다(눅10:40-42, 행15:5-11 고전14:33).
눅10:40-42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지라 예수께 나아가 가로되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지 아니하시나이까 저를 명하사 나를 도와주라 하소서 주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그러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행15:5-11 ‘바리새파 중에 믿는 어떤 사람들이 일어나 말하되 이방인에게 할례 주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 명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사도와 장로들이 이 일을 의논하러 모여 많은 변론이 있은 후에 ... 그런데 지금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여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두려느냐 우리가 저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 받는 줄을 믿노라 하니라’
고전14:33 ‘하나님은 어지러움의 하나님이 아니시요...’
요일2:27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
계1:20 ‘네 본 것은 내 오른 손에 일곱 별의 비밀과 일곱 금 촛대라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
③ 개교회성
교회는 하나님께 직접 속하여 하나님께만 연결되어야 하는데 이를 개교회성이라고 한다. 교회가 각각 하나의 단위로 하나님께 직접 연결되지 못하고 타인이나 상부 기관을 통해 연결이 되어야 하는 구조는 장로교회나 감리교회를 중심으로 흔히 볼 수 있다. 가장 극단적인 경우는 천주교회의 교회관이다. 하나님과 택자 사이에 천주교회가 가로막아 천주교회를 통해서 구원에 관련된 모든 사항이 오르내리도록 길목을 장악하고 있다.
교회는 그 연결성과 관련하여 개교회성을 그 본질로 삼는다. 개인이 하나님께 직접 연결되는 일에 있어 다른 사람에게 지도를 받고 도움을 받는 일은 필요하지만 개인이 하나님과 연결을 가지는 일에 다른 사람이나 다른 존재가 통제를 하거나 가로막는다면 이는 교회의 적이 된다. 이는 하나님의 목적 대상인 우리에게 자유성을 기본으로 주신 면에서 확정지을 원칙이다(요일2:27, 계1:20).
개교회성에 대하여는 현재 우리에게 주어진 말세 마지막 현실에서 성경의 교회론에 가장 정확한 교회체제를 백영희신앙노선의 개교회주의에서 찾아 볼 수 있으므로 교회론의 이어질 내용에서 구체적으로 자세하게 살펴보겠다.
④ 진리성
교회는 말씀대로 된 모습만이기 때문에 말씀 외의 것이 법으로 존재하면 안 된다. 말씀으로 만들어지고, 말씀에 따라 움직이며, 말씀의 인도만을 따르는 것이 교회다. 성경과 다른 법이 만들어지면 이는 교회법이 아니라 세상법이 되는 것이고, 교회와 다른 모습의 조직과 운영이 시행되면 이 역시 교회로부터 세상을 향하여 나가는 탈선이다. 따라서 교회의 모든 기준은 항상 진리인 성경말씀이라야 한다(막7:7-13).
막7:7-13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유전을 지키느니라 ... 너희의 전한 유전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며 또 이같은 일을 많이 행하느니라 하시고’
너무나 중요하지만, 이 원칙은 모르거나 부인할 사람이 없다. 따라서 실제 신앙현장에서 정말 이 원칙이 적용되는지를 살피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모두들 나름대로 성경에 맞는 교회조직과 운영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할 것이므로, 원칙을 장황하게 설명하는 것보다 차라리 이 원칙대로 된 제도와 운영은 과연 어떤 모습이겠으며, 또 현재 참고할 만한 중요한 제도나 운영을 예로 들며 살펴보는 것이 더 중요할 것이다.
① 계속성
▪ 계통 전승
참 교회는 어디서 어떻게 존재하더라도 각 시대를 이어가며 계통을 유지하고 있다(마1:1-17). 한 시대에 수많은 교파와 교단과 각개 지역교회들이 있지만 하나님 앞에서 그 시대를 대표하며 후시대로 이어지는 교회가 있다. 이 교회가 바로 정통교회다. 물론 정통교회가 사람이 알도록 그 시대 교회들의 활동 중심에 서는 일은 거의 없다. 오히려 그 반대가 되어 대개 왜소한 상태로 명맥을 겨우 잇거나 심지어 그 맥이 완전히 단절된 정도로 보이는 것이 보통이다.
정통교회의 계승에 있어 하나 기억할 것은 정통교회는 항상 정통교회에서 정통교회로 이어진다. 정통교회가 타락하지 않고 그대로 그다음 시대에 이어지는 때도 가끔 있고, 또 정통교회가 타락하게 되면 그 타락한 교회에서 개혁운동이 일어나서 원래 교회의 참모습을 찾아 다시 정통교회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분명한 것은 타락한 정통교회에서 개혁운동이 일어나서 정통교회가 다시 나타나는 수는 있어도 정통교회에서 벗어나 탈선한 교회에서 정통교회가 이어지는 수는 없다. 이단에서 정통이 나오는 수는 없습니다. 정통에서 정통이 이어진다. 인간이 인간 수준에서 ‘정통’의 이름을 너무 많이 써먹고 또 정통이 이어진 ‘전통’의 이름을 너무 많이 써먹고 있지만, 그래도 정통이 전통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정통의 전통을 찾아 원래 참 교회의 모습을 찾는 일은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 정통의 이름을 다른 목적으로 사용하는 이들에게 반발심이 많아지면 정통을 잘못 이해하고 써먹는 그들 때문에 정통 자체까지 배척하는 것이 유약한 인간들이다(왕상12:16, 약3:12)
왕상12:16 ‘온 이스라엘이 자기들의 말을 왕이 듣지 아니함을 보고 왕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우리가 다윗과 무슨 관계가 있느뇨 이새의 아들에게서 업이 없도다 이스라엘아 너희의 장막으로 돌아가라 다윗이여 이제 너는 네 집이나 돌아보라 하고 이스라엘이 그 장막으로 돌아가니라’
약3:12 ‘내 형제들아 어찌 무화과나무가 감람열매를 포도나무가 무화과를 맺겠느뇨 이와 같이 짠물이 단물을 내지 못하느니라’
▪ 전투 교회
참 교회는 이 세상에서는 반드시 대내외의 투쟁을 피할 수 없다. 교회는 하나님의 것이고 세상은 악령의 것이며 하나님은 교회를 세상에서 하나님께만 붙들린 것을 만들려 하시고 악령은 그것을 막는 일이 자기 일이다.
악령이 교회를 하나님으로부터 떼 내어 세상에 편입시킨 만큼 악령의 나라 지옥의 권세를 확보한다. 악령의 침투로는 크게 2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교회를 외부에서 정면으로 비판하고 해체하기 위해 교회를 여러 종교 중에 한 종교로 만들고 그 이름을 기독교라고 붙인 다음 무신론이나 타종교를 통해 종교 간의 문제를 제기하여 대적하는 일이다(행17:18). 또 하나는 교회 내에 악령의 사람들을 심고 길러서 교회 내부에서 스스로 교회의 본질을 포기하게 만드는 일이다(유1:4, 행20:30).
어떤 때는 외부전투에 집중하고 어떤 때는 내부전투에 집중하고 어떤 때는 2개의 전선을 동시에 가동한다. 교회 내에 들어온 적을 상대하려면 악령은 형제사랑이라는 방패를 들고 나서고, 교회 밖에서 들어오는 적을 상대하려면 세상의 힘으로 진압을 하며 나선다. 그 전법과 전선의 형태가 어떠한 것은 따로 살펴볼 일이고 여기서 단정할 수 있는 것은, 교회가 참 교회라 한다면 그 교회는 지상역사 끝날까지 안팎의 전투에서 벗어나 쉴 수 있는 때는 없다(벧전5:8-9, 계7:14).
행17:18 ‘어떤 에비구레오와 스도이고 철학자들도 바울과 쟁론할쌔 혹은 이르되 이 말장이가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느뇨 하고 혹은 이르되 이방 신들을 전하는 사람인가보다 하니 이는 바울이 예수와 또 몸의 부활 전함을 인함이러라’
유1:4 ‘이는 가만히 들어온 사람 몇이 있음이라 저희는 옛적부터 이 판결을 받기로 미리 기록된 자니 ...’
행20:30 ‘또한 너희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좇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니’
벧전5:8-9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 ...’
계7:14 ‘...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 외형 유지
참 교회는 때로는 사람들의 눈에 어디 있는지 확인이 불가능할 만큼 사라지는 때도 있다. 그러나 찾아보는 사람의 시력이 약해서 보지 못했을 뿐이다. 지상 역사 기간을 통하여 참 교회는 반드시 그 교회를 외형 교회의 형태 속에서 존재하도록 한다. 따라서 참 교회는 피난 시절과 같이 긴급한 때는 그 교회의 형태조차 없는 듯 보이지만 반드시 보이는 교회의 모습 속에서 그 계통을 유지하고 있다.
혹 시대적인 박해로 인하여 교회의 기본 형태조차 갖추지 못하고 오랜 시간을 지하교회로 유지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그 기간이 끝이 나고 신앙자유가 주어지면 교회는 반드시 교회의 형태를 가지고 그 시대를 감당한다. 무교회주의를 경계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물론 교회의 외형 유지라는 것은 어느 교파가 헌법으로 규정한 교회의 설립 요건을 기준으로 판단하지는 못한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현실과 시대에 따라 그 존재하는 형식은 다양할 수 있다. 다만 교회는 외형유지가 필요하다고 강조하는 이유는, 교회의 단체 타락에서 개혁운동을 일으킬 때 자칫 교회의 잘못된 것만 고치지 않고 교회 자체를 잡아버리거나 또는 교회가 단체로 존재하는 이상 항상 다시 타락할 수 있는 점을 생각하여 교회의 존재형태 자체를 거부하는 자세를 가지기 쉽기 때문에 이를 경계하는 것이다(히10:25).
‘히10:25’은 p.346 참조
▪ 인인 계승
교회는 반드시 사람을 통해 사람을 기르고 앞의 사람의 수고에 뒤 사람의 수고를 더하며 자라고 건설되어 간다. 한 사람이나 한 시대에 전부를 맡기지 않는 것은 우리 각자가 한 몸의 분자로 한 분 하나님으로 움직여야 할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바로 깨닫고 바로 쌓아놓은 다른 사람의 앞선 수고를 잊거나 무시하게 되면 뒤따르는 사람의 모든 수고는 크게 지체되거나 혹은 그의 평생 수고가 헛일이 될 수도 있다. 매일 자기 현실에서 지극히 작은 것에 죽도록 충성하며 조심하되 동시에 자기가 어느 줄에서 어느 사람의 어떤 수고의 연결선에 이어져 자기 할 일을 해야 하는지도 삼가 살펴야 할 이유가 여기 있다.
한 지방 교회의 복음운동으로부터 한 시대를 이어가는 범위 넓은 복음운동에 이르기까지 하나님께서 앞서 나간 이들을 통해 미리 닦아 둔 터가 어디며 또 어느 부분까지 어떤 작업을 끝마쳤는지를 살펴 그 뒤를 잇는 것이 늘 중요하다. 사람을 통해 사람을 구원하고, 사람을 통해 사람을 기르며, 사람을 통해 복음 운동의 여러 면을 갈라 맡기고 이어가며 전체가 하나의 참 교회가 되도록 하고 있다(수11:15).
수11:15 ‘여호와께서 그종 모세에게 명하신 것을 모세는 여호수아에게 명하였고 여호수아는 그대로 행하여 여호와께서 무릇 모세에게 명하신 것을 하나도 행치 아니한 것이 없었더라’
고전3:6-9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셨나니 ... 심는 이와 물 주는 이가 일반이나 각각 자기의 일하는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
엡4:15-16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찌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입음으로 연락하고 상합하여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 유기적 존재
참 교회는 그 내부 구성과 상호관계가 마치 한 사람의 몸이 하나의 유기적 조직체로 연결되고 운영되는 것과 같다. 가장 잘 보고 참고할 수 있는 것이 인체다.
발끝이 머리에 이어져 있고 손끝의 불편이 발끝에 불편이 되고, 눈의 수고가 발의 수고와 합해 머리를 살리고, 머리를 중심으로 전신의 각 부분이 순서와 질서와 협력과 분담과 지원과 도움을 주고받되 그 생긴 모양과 역할과 동작은 천차만별이다. 그러나 그 생명은 하나이고 그 목적도 하나이며 그 활동도 결국 하나다.
하나님의 교회는 하나님 한 분이 생명이며 하나님의 목적이 교회의 목적이며 하나님의 뜻대로 움직이되 각자에게 주어진 환경과 역할과 장단점과 활동은 전혀 다른데도 그 모두는 정확하게 한 몸의 관계와 같다. 교회론을 바로 안다면 교회생활을 통해 시험 들고 갈 길에 방해를 받고 갈등하여 고민하는 일은 전혀 없다. 온 몸의 전부가 다 병들고 약해져 있다면 자기에게 주어진 일이 더욱 중하고 긴급하여 혼자서 그 몸을 책임져야 하는 시기이지, 다른 지체들의 고장과 무력에 영향을 받아 함께 그리 될 수 없는 일이다(고전3:6-9, 엡4:15-16).
② 단순성
교회는 하나님이 주동이시고, 인간은 순종으로 운영된다. 따라서 한 분 하나님만 상대로 움직이기 때문에 항상 단순하다. 하나님 없는 인간들의 조직체는 조직 자체가 조직을 유지하는 힘이요 근간이기 때문에 복잡하기 그지없다. 인간의 수없는 꾀와 방편들이 복잡하게 쌓여져야 하기 때문이다. 교회가 타락하면 눈에 확인할 수 있도록 나타나는 현상 중에 하나가 단순하던 교회가 복잡하게 된다. 단순해도 생명이 있고 따뜻함이 있었는데, 타락하게 되면 복잡한 제도와 수많은 방법들이 제시되는데 그 속에 성령이 주시는 뜨거움은 없어지고 일반 세상 조직과 같은 외형을 가지는 데까지 나간다.
하나님의 교회는 오로지 하나님 한분으로 그 전부를 삼는데 하나님은 단일성이므로 그 모든 운영과 존재 형식은 단순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비록 그 말씀이 복잡한 것 같아도 실은 그 말씀 속의 진리는 항상 하나다. 그 속의 내용이 단순하기 때문에 외부로 나타나는 것은 비록 복잡하게 보일지라도 그것은 복잡하게 ‘보일 뿐’이고 실제로는 단순한 형태를 가진다.
오늘 세상의 구조가 무한정으로 복잡하게 발전하고 있는 것처럼 오늘 교회의 타락도 그 교회 내의 복잡함이 마치 세상을 닮아가고 있는 듯 하다. 교회의 법도 조직도 교회의 예배도 교회의 모든 의식과 운영도 인간들이 만들고 제안한 것으로 가득 차 있어 하나님께서 원래 내신 것은 어디 있는지 찾지도 못할 정도다. 이 모든 것의 원인 중에 가장 눈에 띄는 주범이 바로 신학의 복잡화다. 신학이 하나님의 뜻만을 찾는 일로 단순화 되면 교회도 단순해질 것인데, 세상이 학문을 복잡하게 만들고 또 학문도 세상을 복잡하게 만드는 와중에 신학까지도 세상 학문과 꼭 같은 모습으로 교회를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예배당도 단순한 것이 좋고, 교회의 조직도 단순한 것이 좋으며, 교회의 법도 성경법 하나로 모여져 단순해져야 하고, 성도의 생활도 단순해져야 한다. 심지어 입는 옷까지도 단순하고 먹는 음식까지 단순하게 되는 것이 신앙의 근본 방향이다(눅10:40-42, 행15:5-11 고전14:33).
눅10:40-42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지라 예수께 나아가 가로되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지 아니하시나이까 저를 명하사 나를 도와주라 하소서 주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그러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행15:5-11 ‘바리새파 중에 믿는 어떤 사람들이 일어나 말하되 이방인에게 할례 주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 명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사도와 장로들이 이 일을 의논하러 모여 많은 변론이 있은 후에 ... 그런데 지금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여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두려느냐 우리가 저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 받는 줄을 믿노라 하니라’
고전14:33 ‘하나님은 어지러움의 하나님이 아니시요...’
요일2:27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
계1:20 ‘네 본 것은 내 오른 손에 일곱 별의 비밀과 일곱 금 촛대라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
③ 개교회성
교회는 하나님께 직접 속하여 하나님께만 연결되어야 하는데 이를 개교회성이라고 한다. 교회가 각각 하나의 단위로 하나님께 직접 연결되지 못하고 타인이나 상부 기관을 통해 연결이 되어야 하는 구조는 장로교회나 감리교회를 중심으로 흔히 볼 수 있다. 가장 극단적인 경우는 천주교회의 교회관이다. 하나님과 택자 사이에 천주교회가 가로막아 천주교회를 통해서 구원에 관련된 모든 사항이 오르내리도록 길목을 장악하고 있다.
교회는 그 연결성과 관련하여 개교회성을 그 본질로 삼는다. 개인이 하나님께 직접 연결되는 일에 있어 다른 사람에게 지도를 받고 도움을 받는 일은 필요하지만 개인이 하나님과 연결을 가지는 일에 다른 사람이나 다른 존재가 통제를 하거나 가로막는다면 이는 교회의 적이 된다. 이는 하나님의 목적 대상인 우리에게 자유성을 기본으로 주신 면에서 확정지을 원칙이다(요일2:27, 계1:20).
개교회성에 대하여는 현재 우리에게 주어진 말세 마지막 현실에서 성경의 교회론에 가장 정확한 교회체제를 백영희신앙노선의 개교회주의에서 찾아 볼 수 있으므로 교회론의 이어질 내용에서 구체적으로 자세하게 살펴보겠다.
④ 진리성
교회는 말씀대로 된 모습만이기 때문에 말씀 외의 것이 법으로 존재하면 안 된다. 말씀으로 만들어지고, 말씀에 따라 움직이며, 말씀의 인도만을 따르는 것이 교회다. 성경과 다른 법이 만들어지면 이는 교회법이 아니라 세상법이 되는 것이고, 교회와 다른 모습의 조직과 운영이 시행되면 이 역시 교회로부터 세상을 향하여 나가는 탈선이다. 따라서 교회의 모든 기준은 항상 진리인 성경말씀이라야 한다(막7:7-13).
막7:7-13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유전을 지키느니라 ... 너희의 전한 유전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며 또 이같은 일을 많이 행하느니라 하시고’
너무나 중요하지만, 이 원칙은 모르거나 부인할 사람이 없다. 따라서 실제 신앙현장에서 정말 이 원칙이 적용되는지를 살피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모두들 나름대로 성경에 맞는 교회조직과 운영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할 것이므로, 원칙을 장황하게 설명하는 것보다 차라리 이 원칙대로 된 제도와 운영은 과연 어떤 모습이겠으며, 또 현재 참고할 만한 중요한 제도나 운영을 예로 들며 살펴보는 것이 더 중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