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본)
② 교리의 형성
*성경의 이치적 요약
교리는 성경을 이치로 요약한다. 우리는 만사를 이치로 요약하는 이성을 받았다. 성경의 모든 말씀을 요약하면 교리라 하며 이를 체계화라 한다. 교리를 통해 성경 전체의 방향을 알게 되면 성경의 각 말씀에 담은 내용을 더 깊게 더 바르게 알게 된다. 이것이 교리가 필요한 이유다. *행15:1-22
논리란 이치를 따진다는 뜻이다. 성경을 벗어난 교리는 교리가 아니다.
그런데 성경은 같으나 교파마다 교리가 다른 것은 성경을 아는 정도나 교리의 형성 과정에 속도 차이 때문이다. 이런 경우는 사람의 주관이나 이해관계만 배제할 수 있다면 교리의 차이는 언젠가 해결이 된다. 성경 전체는 진리여서 이치를 따지는 논리를 통해 하나가 되어야 한다. 논리 과정에 성경을 떠난 주장을 하게 되면 교리 문제가 아니다. *행15:25
구약의 모든 모든 논쟁은 주님이 오셔서 모든 결론을 지웠다. 신약이 시작 되면서 5세기 전후 어거스틴과 펠라기우스의 경우처럼, 또 16세기 이후 칼빈과 알미니우스처럼 한 시대에 정반대의 교리도 있었으나 아는 정도와 자라 가는 속도의 차이였을 뿐이다. 논쟁 당시는 판단이 어려웠으나 열매로 나무를 아는 이치에 따라 세월이 모든 것은 결론을 지웠다. 오늘도 일부 몇 가지 문제가 논쟁처럼 남아 있지만 중요한 것은 모두 결론이 났다고 본다.
*교회의 결정
일반적으로, 교리는 ‘교회라는 단체’가 결정한다고들 말한다. 그 ‘교회’란 모두들 자기가 소속을 두거나 활동하는 교회로 특정한다. 결과적으로 그렇게 된다 해도, 어디까지나 바른 교리가 도출 되었다면 그 과정에 간여한 곳이 교회다. 옳은 교리를 만들었다면, 그 사람 그 단체 그 과정이 교회다. 옳은 교회가 만들어 그 교리가 옳게 되는 경우는 주님 오실 때까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총공회 교단이 옳기 때문에 총공회 교리는 옳아 지는 것이 아니라, 총공회 교리가 옳다면 그 때 총공회는 옳은 교회였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마7:20, 11:19
한 인물도 한 교회나 교파도 한 번은 옳을 수 있고 한 번은 잘못 될 수 있다. 그래서 한 인물의 교리나 발표가 다른 사람보다 탁월할 수는 있다 해도 그 인물의 발표가 항상 옳다고 단정할 수는 없고, 교회나 교파도 마찬 가지다. 어디에 있든 어떤 형태로 있든 옳고 바른 것의 총합이 교회고 그 교회가 바른 교리를 요약한다. *마16:17,18, 23.
조직(구)
(2004년)
2. 교리의 형성
① 성경 근거
교리는, 하나님께서 성경에서 어떻게 말씀하셨는가를 연구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사람에게 이치를시119:105 ‘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의 빛이니이다’
행15:1-2 ‘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형제들을 가르치되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얻지 못하리라 하니 바울과 바나바와 저희 사이에 적지 아니한 다툼과 변론이 일어난지라’
엡4:1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따져보는 이성을 주셨기 때문에 성경을 ‘교리’로 체계화시켜 말씀을 배우게 되는 것이지만, 어디까지나 그 근거는 성경이라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시119:105).
같은 성경을 가지고도 교파마다 교리가 서로 다른 이유는 우선 성경을 아는 정도에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보다 넓게 체계화를 한 사람과 그보다 좁은 범위에서만 맞추어 놓은 사람은 꼭 같은 성경을 봐도 서로 달리 해석하는 경우가 있습니다(행15:1-2). 이런 경우는 대개 신앙이 자라가는 과정에서 서로의 신앙 속도에 차이가 나는 것이므로 좀더 연구하게 되면 결국 넓은 범위에서 체계화한 것으로 일원화됩니다(엡4:13).
그러나 문제가 되는 것은 두 번째 경우인데, 교리 연구를 하는 과정에 고의나 과실로 인간의 선입관이나 주관을 삽입하는 경우입니다(벧후1:20). 5세기 전후 교회사에서 어거스틴과 펠라기우스의 경우, 또 16세기 이후 칼빈과 알미니우스의 경우가 대표적입니다. 어거스틴이나 칼빈은 인간이 억울하든지 말든지 성경이 말하기 때문에 성경대로 교리를 요약하여 ‘전적 타락’과 예수님 대속으로 구원받는 ‘선택’ 교리의 토대를 닦고 또 발전시킨 사람들입니다. 반대로 펠라기우스와 알미니우스는 아무리 성경이 그렇게 말하지만 차마 어떻게 사람을 무자비하게 지옥으로 보낼 수 있는가 하여 인간에게도 기회를 주어야 한다며, 인간 생각을 교리 연구에 개입시켰습니다. 그래서 ‘선택’을 부인하고 인간의 노력 여하에 따라 구원이 결정된다는 교리를 만들게 됩니다.(딤후4:3)벧후1:20 ‘먼저 알 것은 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딤후4:3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벧후1:20-21 ‘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
교리는 사람의 생각과 주관에 이해가 되고 말고를 따라 가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 어떻게 가르치는가를 조직적으로 나열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교리는 오직 성경만이 근거라는 입장에 철저해야 합니다(벧후1:20-21).
② 교회의 결정
일반적으로, 교리는 ‘교회라는 단체’가 연구와 결정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많이 강조를 합니다. 그러나 이는 권위를 인정하고 임무를 맡겼으면 그 결정에 따라 자진해서 성실히 따라야 한다는 서구의 전통적이고도 권위주의적인 면이 지나치게 강조된 결과입니다.
교회는 재림 때까지 항상 내부적으로도 투쟁과 분리가 계속됩니다. 또 교회의 내부는 거의 대부분 속화 타락하는 측이 주도권을 쥐고 있습니다. 만일 교회가 주체가 되어 결정을 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게 되면 교리라는 것은 성경에서 이탈되고 인간 생각대로 조립된 이상한 존재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 생각대로 편리하게 만든 교리는 지지자가 많기 마련이고 성경이 가르치는 대로 바로 깨닫는 사람은 그 지지자가 적기 때문에 그 교리는 교회에서 자꾸 배제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왕상22:13).왕상22:13 ‘선지자들의 말이 여출일구하여 왕에게 길하게 하니 청컨대 당신의 말도 저희 중 한 사람의 말처럼 길하게 하소서’
마16:23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단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롬2:29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찌니 신령에 있고 의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
교회는 하나님을 모신 사람을 교회라고 합니다. 한번 하나님을 모셨다고 늘 하나님을 모시는 것은 아닙니다. 다윗도 하나님을 떠날 때가 있었고 베드로는 그 평생 하나님을 모셨다가 떠나기를 수없이 반복했던 사람입니다. 베드로가 세웠다고 해서 그 교회의 발표는 무조건 옳은 것이 아닙니다. 베드로가 성령에 붙들려 바로 발표할 때는 교리가 되고, 베드로가 악령에 붙들려 발표할 때는 물러가야 할 사탄이 되는 수도 있습니다(마16:23).
일반적으로 교리의 주체를 ‘교회’라고 할 때 교파와 같이 보이는, 교회를 염두에 두고 이해하는 수가 많습니다. 만일 보이는 교회를 두고 교리의 주체라고 생각한다면 교리가 바로 성립되는 것은 어렵습니다. 교회 역사를 통해서 참 교회가 보이는 교회를 주도한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교리의 주체가 ‘교회’라 할 때 ‘교회’는 ‘교회론’에서 말하는 참 교회, 즉 보이지 않는 무형의 교회를 말합니다. 보이지 않는 교회를 어떻게 확인해 볼 수가 있는가? 성경 진리를 바로 체계화 했다면 거기 관계된 교인들과 따르는 교인들이 바로 참 교회입니다(롬2:29).
내용
(2023년본)
② 교리의 형성
*성경의 이치적 요약
교리는 성경을 이치로 요약한다. 우리는 만사를 이치로 요약하는 이성을 받았다. 성경의 모든 말씀을 요약하면 교리라 하며 이를 체계화라 한다. 교리를 통해 성경 전체의 방향을 알게 되면 성경의 각 말씀에 담은 내용을 더 깊게 더 바르게 알게 된다. 이것이 교리가 필요한 이유다. *행15:1-22
논리란 이치를 따진다는 뜻이다. 성경을 벗어난 교리는 교리가 아니다.
그런데 성경은 같으나 교파마다 교리가 다른 것은 성경을 아는 정도나 교리의 형성 과정에 속도 차이 때문이다. 이런 경우는 사람의 주관이나 이해관계만 배제할 수 있다면 교리의 차이는 언젠가 해결이 된다. 성경 전체는 진리여서 이치를 따지는 논리를 통해 하나가 되어야 한다. 논리 과정에 성경을 떠난 주장을 하게 되면 교리 문제가 아니다. *행15:25
구약의 모든 모든 논쟁은 주님이 오셔서 모든 결론을 지웠다. 신약이 시작 되면서 5세기 전후 어거스틴과 펠라기우스의 경우처럼, 또 16세기 이후 칼빈과 알미니우스처럼 한 시대에 정반대의 교리도 있었으나 아는 정도와 자라 가는 속도의 차이였을 뿐이다. 논쟁 당시는 판단이 어려웠으나 열매로 나무를 아는 이치에 따라 세월이 모든 것은 결론을 지웠다. 오늘도 일부 몇 가지 문제가 논쟁처럼 남아 있지만 중요한 것은 모두 결론이 났다고 본다.
*교회의 결정
일반적으로, 교리는 ‘교회라는 단체’가 결정한다고들 말한다. 그 ‘교회’란 모두들 자기가 소속을 두거나 활동하는 교회로 특정한다. 결과적으로 그렇게 된다 해도, 어디까지나 바른 교리가 도출 되었다면 그 과정에 간여한 곳이 교회다. 옳은 교리를 만들었다면, 그 사람 그 단체 그 과정이 교회다. 옳은 교회가 만들어 그 교리가 옳게 되는 경우는 주님 오실 때까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총공회 교단이 옳기 때문에 총공회 교리는 옳아 지는 것이 아니라, 총공회 교리가 옳다면 그 때 총공회는 옳은 교회였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마7:20, 11:19
한 인물도 한 교회나 교파도 한 번은 옳을 수 있고 한 번은 잘못 될 수 있다. 그래서 한 인물의 교리나 발표가 다른 사람보다 탁월할 수는 있다 해도 그 인물의 발표가 항상 옳다고 단정할 수는 없고, 교회나 교파도 마찬 가지다. 어디에 있든 어떤 형태로 있든 옳고 바른 것의 총합이 교회고 그 교회가 바른 교리를 요약한다. *마16:17,18, 23.
내용
(2023년본)
② 교리의 형성
*성경의 이치적 요약
교리는 성경을 이치로 요약한다. 우리는 만사를 이치로 요약하는 이성을 받았다. 성경의 모든 말씀을 요약하면 교리라 하며 이를 체계화라 한다. 교리를 통해 성경 전체의 방향을 알게 되면 성경의 각 말씀에 담은 내용을 더 깊게 더 바르게 알게 된다. 이것이 교리가 필요한 이유다. *행15:1-22
논리란 이치를 따진다는 뜻이다. 성경을 벗어난 교리는 교리가 아니다.
그런데 성경은 같으나 교파마다 교리가 다른 것은 성경을 아는 정도나 교리의 형성 과정에 속도 차이 때문이다. 이런 경우는 사람의 주관이나 이해관계만 배제할 수 있다면 교리의 차이는 언젠가 해결이 된다. 성경 전체는 진리여서 이치를 따지는 논리를 통해 하나가 되어야 한다. 논리 과정에 성경을 떠난 주장을 하게 되면 교리 문제가 아니다. *행15:25
구약의 모든 모든 논쟁은 주님이 오셔서 모든 결론을 지웠다. 신약이 시작 되면서 5세기 전후 어거스틴과 펠라기우스의 경우처럼, 또 16세기 이후 칼빈과 알미니우스처럼 한 시대에 정반대의 교리도 있었으나 아는 정도와 자라 가는 속도의 차이였을 뿐이다. 논쟁 당시는 판단이 어려웠으나 열매로 나무를 아는 이치에 따라 세월이 모든 것은 결론을 지웠다. 오늘도 일부 몇 가지 문제가 논쟁처럼 남아 있지만 중요한 것은 모두 결론이 났다고 본다.
*교회의 결정
일반적으로, 교리는 ‘교회라는 단체’가 결정한다고들 말한다. 그 ‘교회’란 모두들 자기가 소속을 두거나 활동하는 교회로 특정한다. 결과적으로 그렇게 된다 해도, 어디까지나 바른 교리가 도출 되었다면 그 과정에 간여한 곳이 교회다. 옳은 교리를 만들었다면, 그 사람 그 단체 그 과정이 교회다. 옳은 교회가 만들어 그 교리가 옳게 되는 경우는 주님 오실 때까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총공회 교단이 옳기 때문에 총공회 교리는 옳아 지는 것이 아니라, 총공회 교리가 옳다면 그 때 총공회는 옳은 교회였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마7:20, 11:19
한 인물도 한 교회나 교파도 한 번은 옳을 수 있고 한 번은 잘못 될 수 있다. 그래서 한 인물의 교리나 발표가 다른 사람보다 탁월할 수는 있다 해도 그 인물의 발표가 항상 옳다고 단정할 수는 없고, 교회나 교파도 마찬 가지다. 어디에 있든 어떤 형태로 있든 옳고 바른 것의 총합이 교회고 그 교회가 바른 교리를 요약한다. *마16:17,18,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