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대속의 전제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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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21 18:21
개정본의 내용은 완료 되었으나 공개에 앞서 '저작권' 문제가 있는지 검토 중입니다.
검토가 완료 되면 제목에 표시하고 공개하겠습니다.
조직(구)
2. 대속의 전제 조건
예수님께서 신인양성일위의 존재로 세상에 오신 것은, 우리를 대속하기 위한 필수 조건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예수님은 신인양성일위로 오셔야 했는지, 또 우리를 대속하기 위해서는 어떤 조건들이 있었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① 신인양성일위
▪ 인성
예수님이 사람으로 오신 이유는 모든 택자를 대표하는 신분이었기 때문에 사람과 같은 신분을 가졌습니다. 하나님의 택한 사람들이 받아야 할 형벌을 대신 받으려면 사람으로 와서 그 형벌을 받아야 했습니다. 사람이 맞을 매를 짐승이 대신 맞거나 나무토막이 대신 맞는다면 값이 되지 않습니다. 사람이 지은 죄로 사람이 당해야 할 고통을 대신 받으려면 사람으로 오셔서 사람으로 그 고통을 받아야 그 죄의 고통에 값이 계산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사람으로 오셔야 했습니다(롬8:3, 히2:14, 9:22).‘롬8:3’은 p.242, ‘히2:14’ ‘히9:22’은 p.243 참조
고전15:22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아담이 인류의 대표였기 때문에 아담의 범죄는 아담뿐 아니고 모든 인류 전체의 범죄가 되고 인류 전체에게 그 범죄에 해당되는 고통이 가해지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2의 아담이 되어 택자의 대표로 택자를 구하기 위해 온 것이므로 예수님은 반드시 사람이라야 했습니다.
첫째 아담이 첫 시험에서 악령을 이겼더라면 모든 인류에게 영원한 승리를 가지게 하여 영생했을 것인데 실패하였으므로 모든 인류를 사망에 이르게 했습니다. 이제 둘째 아담으로 예수님이 오신 것은 첫째 아담의 실패로 희망이 없게 된 인간 중에 택자들에게는 다시 한번 영생의 기회를 주기 위해 왔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1차적으로 범죄의 죄값 해결을 대신 치르기 위해 왔지만 2차적으로는 죄값을 치른 택자들에게 영생의 기회를 다시 한번 주시기 위해 악령에게 한번 더 도전을 하는 택자의 대표로 오신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이 승리하므로 모든 택자에게 영생을 가지게 하려면 첫째 아담처럼 예수님도 사람이라야 하기 때문에 사람으로 오신 것입니다(고전15:22).
롬5:14-18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 위에도 사망이 왕노릇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표상이라 그러나 이 은사는 그 범죄와 같지 아니하니 곧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또는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이 많은 사람에게 넘쳤으리라’
혹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꼭 사람으로 왔어야 했는가 하는 의문이 있을 수 있습니다만, 하나님의 역사는 어느 것 하나라도 필연적으로 이루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역사는 우연으로 되는 것이 없고, 또 이래도 되고 저래도 되는 일을 이렇게 혹은 저렇게 하는 일도 없습니다. 혹 사람의 눈에는 모세가 바로왕의 딸에게 들어간 것이 우연처럼 보일 수 있고, 또 다윗이 솔로몬을 후임으로 세워도 되고 다른 아들을 세워도 되는데 솔로몬을 택해 본 것으로 당시 역사를 읽는 사람도 있지만 그것은 사람의 눈에 그렇게 보였을 뿐이지, 그 전부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는 필연적인 내용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전부가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사람으로 오신 것은 사람의 죄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사람이라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지은 죄는 사람이 해결해야 하는 필연의 길이 있기 때문에 사람으로 오신 것입니다. 왜 사람으로 와야 하는 것이 필수적인 조건이냐고 묻는다면, 예수님이 사람으로 오신 것을 봐서 그것은 필연적인 조건이라고 대답하는 것이 성경에 가장 빠르고 바른 대답입니다. 그리고 이 사실을 전제로 해놓고 나서 그 다음 이치를 따져보면 어리석고 둔한 인간이지만 진리를 깨닫는 길을 어렵게 해놓지 않았기 때문에 조금 살펴보면 자연스럽게 알게 했습니다.
첫째 아담의 범죄가 대표범죄였기 때문에 이후 모든 사람이 원죄를 가지게 되었고 또 둘째 아담이 우리를 대신 해서 죽고 부활하여 죄값을 해결하고 영생을 마련한 것을 결과적으로 보아서 우리는 예수님의 인성은 사람을 대표하고 대신하기 위해 필수적인 조건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롬5:14-18).
▪ 신성
예수님은 그 외모가 우리와 꼭 같은 사람이지만 그 속에는 하나님이 계셨습니다. 예수님 속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고 사람만이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비록 죄가 없다 해도 예수님께서 하나님이 아니고 사람으로만 계셨다면 한 사람만 구원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 속에 무한하신 하나님이 계셨기 때문에 예수님 한 분의 희생은 겉으로는 한 사람의 수고였지만 그 이면에는 택한 자 전부를 다 구원하고도 남는 하나님의 무한이 있었습니다.
즉, 예수님의 인성은 사람이 지은 죄를 사람으로서 대신하고 사람의 죄값을 대신 받는 구주의 기본 자격을 위해 필요했고, 예수님의 신성은 예수님이 구원하고자 하시는 택자 전부를 다 구원할 수 있는 구주의 지불 능력을 위해 필요했습니다. 아들이 가게에서 1만원 빚을 졌다면 아버지가 1만원으로 대신 갚고 아들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들이 10명인 아버지가 아들이 각각 1만원씩 빚을 졌다면 그 아버지는 10만원이 있어야 해결할 수 있습니다(히9:23-28). 히9:23-28 ‘... 대제사장이 해마다 다른 것의 피로써 성소에 들어가는 것 같이 자주 자기를 드리려고 아니하실찌니 그리하면 그가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자주 고난을 받았어야 할 것이로되 이제 자기를 단번에 제사로 드려 죄를 없게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느니라 ...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
▪ 신인양성일위
예수님께는 신성도 있고 또 인성도 있었지만, 이 두 요소가 우리처럼 신인양성‘일행’의 관계가 아니고 신인양성‘일위’이었습니다. 한분 예수님으로 일위가 된 것은 인성이 있어야 구주가 될 수 있고 신성이 있어야 택한 사람 전부를 구할 수 있는데, 이 2가지 요건을 한 분이 가지고 있어야 동시에 해결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신인양성일위가 되신 것입니다.
인성과 신성이 합하여 한 존재라야 구주가 될 수 있는 자격과 택한 사람 전부를 구할 수 있는 용량이 된다는 점에서 예수님은 일반 다른 성자와 근본적으로 같을 수가 없습니다. 우선 사람이라면 죄 없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예수님과 같은 수준의 사람은 존재할 수가 없고, 둘째는 예수님은 창조주 하나님과 동행하는 관계이거나 동업하는 관계가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 자신이었습니다(요1:1, 10:30, 빌2:6).
아브라함이 비록 신앙의 조상이고 예수님 족보에도 조상이라고 기록되었지만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손을 잡고 다닌 인간이고 예수님은 아브라함이 손을 잡고 동행했던 바로 그 하나님 자신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인성이 아니라 예수님의 신성이 그 하나님입니다(요8:58).
따라서 예수님은 이방 세계 인물과 비교한다면, 석가나 공자나 소크라테스와 함께 세계 4대 성현으로 분류될 분이 아니라 3명의 성자를 없는 가운데에서 만들었고 그 3명의 성자들이 평생 찾고자 했던 절대자가 바로 예수님 자신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3명의 성자들이 예수님을 믿었더라면 천국을 갔을 터인데 그들에게는 그런 기회가 허락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지금 지옥 밑바닥에 있을 것입니다. 이런 것도 알지 못하고 입으로 밥을 먹는다 해서 사람과 개를 같은 존재라고 분류하는 동물학자가 있다면 그는 동물학자이기 이전에 그 자신이 동물일 것입니다(롬1:22-23).요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요10:30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
빌2: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요8:58 ‘예수께서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 하시니’
롬1:22-23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준하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② 죄인의 모양
▪ 죄인을 대신한 신분
롬8:3에서 예수님의 모습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이라고 했습니다. 이는 예수님이 우리를 대속하기 위해서 반드시 가져야 할 사전 조건이었습니다. 대속이란 죄를 대신 해결한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그 죄를 대신할 사람이 죄인의 위치에 서게 됩니다.
만일 돈만 가지고 해결할 수 있는 일이라면 액수만 지출하면 되겠지만 인간의 죄는 돈 얼마를 가지고 계산할 죄가 아니었습니다. 만일 아담이 악령의 유혹을 물리치고 시험에서 이겼더라면 악령은 영원히 아담이 부리는 아담의 종이 되었을 것입니다. 반대로 이 싸움에서 인간이 지게 되어 인간은 죄로 인하여 악령의 종이 되었습니다. 벧후2:19에서 우리의 싸움을 가리켜, 진 자는 누구든지 이긴 자의 종이 된다고 한 원칙이 있습니다.
따라서 죄를 지어 악령의 종이 된 사람을 구원하려면, 그 사람의 지은 죄값은 말할 것 없이 다 치러야 하지만 동시에 그 죄값 중에 우리가 죄인 된 그 신분 자체도 죄값이니 그 죄값을 치르려면 예수님은 우리 대신 죄인이 되어야 했습니다(롬8:3).롬8:3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 악령의 왕권적 지배
죄를 지은 적이 없기 때문에 예수님 자체는 죄인이 아니지만 우리를 대신하고 우리를 악령에게서 구원해 내려면 예수님은 악령의 종이 된 우리 대신 당신이 악령의 종이 되어야 합니다. 종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는, 예수님은 비록 만유주 하나님이며 죄 없는 몸을 입고 오신 분이지만, 우리 때문에 악령에게 완전히 붙들려 악령이 자기 원하는 대로 예수님을 해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때리면 맞아야 하고 굶기면 굶어야 하고 십자가에 못을 박으면 박혀야 하는 것이 예수님의 신분입니다.
만일 그렇게 악령이 예수님을 마음껏 왕으로서 자유 하다가 예수님으로 하여금 죄를 짓게 하면, 이제 예수님도 우리를 구원하기는커녕 예수님도 악령의 종이 되어 우리와 같은 신세가 되어야 합니다. 세상의 모든 처결권은 세상을 점령한 악령이 자기 마음대로 하고, 그 악령에게 완전히 자신을 다 내맡기면서도 죄는 짓지 않아야 하는 것이 예수님이 죄인을 대신하여 죄인의 모양으로 오셔서 죄인을 구원하는 과정입니다(마4:1-11, 요14:30-31, 롬5:14-17).
오늘 우리 믿는 사람이 세상에 사는 동안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우리의 자유이고 또 그렇게 해야 하지만 그 대신 세상은 우리를 신앙 때문에 마음껏 죽일 수도 있고 고통을 줄 수도 있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마4:1-11’ ‘요14:30-31’은 p.242, ‘롬5:14-17’은 p.246참조
마26:53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 두 영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
사53:1-9 ‘...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그가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갔으니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산 자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을 인함이라 하였으리요’
▪ 전능하신 신성, 무죄한 인성의 신분을 포기
예수님 속에 하나님은 전능하신 창조주이지만, 우리를 대신하고 우리를 구하기 위해 자진해서 이 땅 위에 오신 이상 그분은 마치 죄인이 죄를 지어 묶여 사는 것처럼 이 세상에게 자신을 내 맡겨야 했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전능하신 신성이 천하를 당장에 뒤엎을 수 있지만 무지 무능자처럼 죄인으로 그 사형 형벌을 조용히 다 당했습니다. 예수님 속에 하나님은 무지 무능한 바보로만 보였습니다. 전능자의 실력과 솜씨를 한 번도 써보지 않았습니다. 만일 사용했다면 예수님 속의 신성은 ‘하나님’으로서 문제가 없지만 ‘구주’로서는 자격 미달입니다.
예수님의 인성 역시 비록 피조물이었지만 죄가 없는 분이었기 때문에 범죄 이전 에덴동산의 아담과 같이 만물 위에 호령할 수 있는 만물의 주인공입니다. 그러나 우리를 대신하고 우리를 죄에서 구하려 오셨기 때문에 자신이 당할 필요가 없고 침해를 입을 필요가 없는 무죄자의 자격을 다 포기했습니다. 그리고 마치 악령에게 져서 종이 된 사람처럼 되었습니다(마26:53, 사53:1-9).
이러므로 예수님의 고난은 단순한 고난이 아니라 모든 택자의 모든 죄값과 그 영원한 형벌 전부를 대신했던 걸음입니다. 세상에 자기 신념과 이방 종교와 국가와 가족을 위해 예수님과 같이 대신 죽어 일을 해결하는 경우는 더러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죽음과 그들의 죽음은 비교 자체를 할 수 없습니다(롬5:6-8).롬5:6-8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눅22:37 ‘저는 불법자의 동류로 여김을 받았다 한 말이 내게 이루어져야 하리니 내게 관한 일이 이루어 감이니라’
사53:6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사53:10 ‘여호와께서 그로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케 하셨은즉 그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그 씨를 보게 되며 그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의 뜻을 성취하리로다’
③ 하나님의 지공과 지성법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오신 예수님은 우리가 죄를 지어 하나님 앞에 죄인이 된 상태로 하나님을 상대해야 합니다. 에덴동산 범죄 이전 하나님과 아담 사이가 아니고, 범죄 이후 하나님과 죄인 사이가 된 상태의 죄인 자격으로 하나님을 상대해야 합니다. 죄를 지은 이상 인간은 하나님께 심판의 대상입니다.
따라서 신인양성일위이신 예수님은 하나님의 도움과 그의 은혜를 구하지 못하고 오히려 하나님께서 그 죄값을 물어 어떻게 냉대하고 팽개쳐도 스스로 하나님을 향해 은혜를 구하고 그 법을 따라 살기를 노력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죄인을 대신하려고 나선 예수님을 상대한 것을 지공과 지성의 법대로 처리했다고 표현합니다. 자녀를 향한 사랑의 법으로 상대한 것이 아니라, 죄인을 엄벌하는 가장 공평하고 거룩한 하나님의 법으로 예수님을 대했습니다. 비록 예수님이라 해도 다른 죄인이 죄를 지었을 때와 꼭 같이 엄하게 다스렸고 또 다른 죄인이 죄를 지었는지를 심사할 때 그 엄한 성결의 법을 그대로 적용했습니다(눅22:37, 사53:6, 10).
그러나, 예수님이 하나님으로서 사람이 되어 오되 자원하여 좋아서 대신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예수님의 대속을 막지는 않았습니다. 악령이 제 실력으로 아담에게 접근하여 아담으로 하여금 좋아서 죄를 짓게 한 것처럼, 이번에는 예수님께서 스스로 원하는 마음으로 아담과 그 후손 중에서 택자들을 살리려고 나선 일이므로 역시 막지 못하고 또 막지 않았습니다(눅22:15). 또 예수님에게 엄한 법으로 하나님의 최고 성결로 검사를 했지만 예수님께서 온전하게 행동하여 조금도 그 법을 어긴 것이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법으로도 예수님의 대속은 온전했습니다.
이는 인간에게 주신 자유성의 원칙이니 인간을 만드신 최초의 원칙이며 가장 중요한 법입니다. 원하고 원하여 행하는 것은 막지 않는 법이 하나님의 자유의 율법입니다. 아담이 죄를 짓는 것도 악령이 유혹하여 지옥으로 데려가려는 것인 줄 알지만 본질적인 문제는 아담이 스스로 원하여 따라가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막지 않았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그 죄에서 구원하시려고 자원하여 나섰고 그 죄값을 전부 다 치렀으며 그 다음 악령이 모든 죄의 왕권으로 예수님을 범죄케 하려 했으나 실패했고 심지어 하나님께서도 예수님을 의인이 아니라 죄인으로 상대하여 하나님의 법을 엄하게 적용하며 그 흠과 점을 찾았으나 완전하게 통과했으므로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게 된 것입니다(롬8:3-4).눅22:15 ‘이르시되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
‘롬8:3’은 p.249 참조
롬8:4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바로 이러한 하나님의 지성과 지공의 법 적용은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미리 알고 각오해야 하는 전제 조건들이었습니다. 이런 모든 조건을 전부 다 통과해야 우리를 구할 수 있는데, 이 일을 할 수 있는 존재는 하나님이 사람 되어 오신 신인양성일위의 예수님뿐입니다. 따라서 우리를 구원할 구주가 될 수 있는 전제 조건들을 안다면, 예수님 외에는 아무도 구주가 될 실력도 자격도 조건도 맞출 수가 없습니다. 현 교회가 예수님 외에도 그 행동이 너무 착하거나 인류에게 미친 공로가 너무 지대한 성자와 성녀들은 일반인 이상으로 대접해야 한다 해서 예수님이 계시는 구주 자리에까지 여러 인물들을 올리려는 발상을 내놓고 있습니다. 이들은 ‘구주론’인 기독론의 근본조차도 혼동했습니다. 이는 불신 세계의 희망사항일 뿐입니다(고후11:4, 갈1:6-9).
④ 대속의 희생 - 성자 하나님의 도성인신
▪ 사람 되신 희생
자존하신 하나님께서 피조물 중에 하나인 사람으로 오신 희생은 예수님의 모든 희생을 다 내포하는 희생입니다. 완전자가 불완전자로, 전지자가 무지자로, 전능자가 무능자로, 창조주가 피조물로 오신 이 희생은 교회가 평생을 되새기며 가르칠 부분이기 때문에 이곳 교리서에서는 간단하게 넘어가겠으나 이 부분은 설명할 부분이 적어서가 아니고 너무 많기 때문에 평생 새기고 연구할 과제로 남겨두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람 되어 오신 희생을 생각할 때는 한편으로 우리 인간이 인간의 자리만으로는 부족해서 하나님이 되려고 하나님 자리로 올라갔으니, 인간이 하나님이 된 그 죄를 대속하는 데에는 하나님께서 인간으로까지 낮아져야 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빌2:6-8).고후11:4 ‘만일 누가 가서 우리의 전파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전파하거나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영을 받게 하거나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 받게 할 때에는 너희가 잘 용납하는구나’
갈1:6-9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 좇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찌어다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의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찌어다’
‘빌2:6-8’은 p.241 참조
요14:3 ‘...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계3:21 ‘...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이 희생은 한편으로 만일 우리를 위해 대속에 성공을 하게 되면 사람이 하나님 되려다가 타락한 그 타락을 고쳐서 이제는 사람이 하나님 같이 온전하고 거룩하고 깨끗해지며 하나님의 보좌에 앉게 되는 데까지 올려놓을 수 있는 희생입니다(요14:3, 계3:21).
▪ 낮아지신 희생
하늘의 하나님께서 이 땅 위까지 낮아지셨으니 더 이상 낮아질 곳이 없어 내려가지 못했습니다. 더 내려감으로 우리를 위해 유리할 곳이 있다면 더 내려갔을 분입니다. 지옥 형벌의 영원한 고통까지를 감당하셨으니 실제로는 이 땅보다 더 낮은 지옥에까지 내려가신 것인데 사람의 눈으로는 하늘의 하나님께서 이 땅 위에까지 내려온 것만 볼 수 있었기 때문에 이 땅까지 낮아졌다고 쉽게 표현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람 되어 오신 ‘예수님의 낮아짐’을 그 사시던 하늘에서 이 땅 위에까지 낮아졌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이는 첫 신앙의 어린 사람들에게 알기 쉽게 표현하는 방법입니다. 하나님의 위치는 하늘나라보다 더 높습니다. 그 이상이 없고 달리 다른 위치로는 표시할 수가 없어 보통 ‘지상(至上)’이라고만 표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공간적으로 높은 것이 아니라 지식적으로 실력적으로 권위적으로 기타 모든 면으로 높은 분입니다. 하나님은 높은 분이라고 하다보면 혹 1등과 2등이 있는데 2등이 아니고 1등이어서 높다고 생각할 수 있겠으나, 그분의 높음은 우리 인간과 비교 자체가 되지 않고, 피조물끼리는 등수를 따져서 높낮이를 표현하지만 하나님의 높으심은 비교 자체가 되지 않는 높음입니다(사46:5-9, 단4:17).사46:5-9 ‘너희가 나를 누구에 비기며 누구와 짝하며 누구와 비교하여 서로 같다 하겠느냐 ... 나는 하나님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 나는 하나님이라 나 같은 이가 없느니라’
단4:17 ‘... 지극히 높으신 자가 인간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며 또 지극히 천한 자로 그 위에 세우시는 줄을 알게 하려 함이니라 ...’
엡4:9 ‘올라가셨다 하였은즉 땅 아랫곳으로 내리셨던 것이 아니면 무엇이냐’
‘빌2:6-8’은 p.248 참조
사람이 하나님 한 분 밑과 만물 위에 자리를 가졌으나 주신 자리를 만족하지 못해서 올라가려다가 죄를 지었기 때문에 이를 대속하실 구주는 올라감으로 지은 죄를 대신하기 위해 내려올 필요가 없는 지고의 자리에서 제일 낮은 자리로 내려온 것입니다(엡4:9, 빌2:6-8).
이 낮게 오신 예수님의 희생의 대속이 끝까지 성공을 하게 되면 예수님의 희생 때문에 우리는 지옥 밑바닥까지 떨어진 데에서 다시 건짐을 받되 예전 자리만큼만 올라오는 것이 아니고 우리를 구하시려고 낮아지신 예수님의 인성이 올라간 자리로까지 올려지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예수님이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처럼 우리도 예수님 때문에 예수님을 따라 올라가다보면 예수님이 앉은 그 자리까지 올라가게 됩니다. 바로 그 길을 열어놓으시려고 오신 것입니다(요14:3, 계3:21).‘요14:3’ ‘계3:21’은 p.253 참조
눅9:58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 하시고’
▪ 가난해진 희생
없는 가운데 하나님은 모든 것을 만드신 분입니다. 따라서 만물의 참 소유주는 오직 하나님뿐입니다. 우리 인간이 네 것이라 또 내 것이라 하는 것은 실은 참 소유주 하나님을 고려하지 않고 인간끼리 정해놓은 소유 개념이니 이는 진정한 의미에서 소유권이라 할 수 없습니다. 없는 가운데에서 전부를 만들고 그 만들어놓은 만물이 움직일 수 있도록 모든 힘을 주고 있는 하나님만 진정 소유주니 이분만 부유한 분입니다. 그분이 사람 되어 오면서 단 하나도 가진 것이 없이 오셨으므로, 원래 전부를 다 가진 분이 전부를 다 내놓은 것입니다. 전부를 다 가진 그분의 소유는 영계와 우주 전부이고, 그분이 내놓고 가난해 진 상태는 가진 소유물은 물론 가진 몸과 생명까지도 전부 다 세상 임금에게 맡겨 자유로 처분토록 했습니다. 따라서 그냥 우리가 보통 말할 때 가난해진 정도가 아니고 전무가 되었습니다. 이 희생이 우리를 위한 희생입니다. 신론에서 하나님을 아는 만큼 이 기독론에서는 예수님의 대속의 희생을 알 수가 있습니다(눅9:58).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것 이상으로 가지고 싶어 아담이 죄를 지었고 아담의 후손되는 오늘 우리도 만유주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주신 것이 있는데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그 이상을 가지려 하므로 범죄 했습니다. 이 죄를 사하려고 대속의 제물로 오신 예수님은 모든 것을 다 가진 분인데 모든 것을 다 내놓았습니다.
이 가난해진 대속의 희생은 십자가 사활로 대속의 성공을 이룬 뒤에 하늘의 하나님으로부터 하늘과 땅의 모든 것을 다 넘겨받는 부요자가 되는데, 예수님의 이 부요하게 되심은 바로 우리 택자의 것이 되게 하려 하심입니다. 가난해지신 희생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필수적인 선행 조건인데, 이 가난해지신 희생은 대속 사업을 성공한 뒤에 가난한 우리에게 하늘과 땅의 모든 것을 다 주시게 되는 대속이기도 합니다(고후8:9).고후8:9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
‘요14:30-31’은 p.242, ‘사53:2, 7’은 p.250 참조
▪ 무능해진 희생
예수님은 전능자며 주권자입니다. 능치 못하심이 없는 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대속하기 위해서는 악령에게 세상 왕권을 인정하고 예수님은 그 수하에 종이 되어야 합니다. 전능하신 주권자 하나님으로서의 권리는 전혀 사용하지 않아야만 우리를 대속하는 구주가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전능자 하나님께서 무지 무능자가 되어 우리를 대신하여 우리 죄값을 치른 것입니다(요14:30-31, 사53:2, 7).
그러나 예수님이 무지무능자로 오셔서 우리 죄값을 치르고 대속을 완성하게 되면 우리는 예수님이 무능자로 오신 그 공로 때문에 타락 후 무능자였던 우리가 유능자가 됩니다. 원래 인간이 가진 위치까지로만 올라가는 것이 아니고 도성인신하신 예수님의 인성이 가진 주권과 능력까지 가지게 됩니다.
따라서 무능자로 오신 예수님의 희생은 우선 우리의 형벌을 대신 받기 위해 그런 상태로 오신 것이지만 동시에 예수님께서 무능자 되심으로 우리는 전지전능하신 예수님의 부활의 인성을 본받아
그런 예수님의 위치에 갈 소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막10:40, 빌3:21).
▪ 수치 받은 희생
예수님은 천군 천사를 비롯하여 만물이 영원무궁토록 영광을 돌릴 제2위 성자 하나님입니다. 그러나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는 공중에 권세 잡은 악령이 자기 마음껏 다스리는 이 세상에 오셔서 그 악령이 주는 수치를 전부 다 받아야 했습니다. 지극히 영광스런 하나님께서 지극히 수치스런 만물의 찌끼가 되었습니다(사53:3). 그러나 그 수고로 우리 죄값을 없애고 나아가 그 수치스러운 상황에서 대속의 완성을 이루게 되자 하나님도 지극히 기뻐하시고 만물도 기뻐하고 심지어 지옥에 있는 죄인들까지도 예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었습니다(빌2:6-11).막10:40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나의 줄 것이 아니라 누구를 위하여 예비 되었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
빌3:21 ‘그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
빌2:6-11 ‘...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골3:4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살후1:12 ‘우리 주 예수의 이름이 너희 가운데서 영광을 얻으시고 너희도 그 안에서 영광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살후2:14 ‘이를 위하여 우리 복음으로 너희를 부르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예수님께서 그렇게 수치스런 죄인으로 오신 것은 한편으로는 대속 이후에 그렇게 영광스러워진 바로 그 영광을 오늘 우리 믿는 택자들에게 주시려고 했던 것입니다(골3:4, 살후1:12, 2:14).
⑤ 사생활과 공생활의 희생
예수님의 희생에서 흔히 쉽게 넘어가는 부분 중 하나가 사생활의 희생입니다. 예수님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 가정을 나선 것은 30세 되던 때입니다. 그 이전까지는 평범한 가정에서 부모를 모시고 형제들과 함께 세상 일반 생활을 꼭 같이 했습니다. 이때 생활을 두고 보통 예수님은 가정생활에서도 모범을 보였다는 정도로 참고하는데, 실은 이 가정생활도 바로 우리를 대속하러 오신 예수님께서 어느 한 틈도 한 종류도 빠짐없이 전부 우리를 위해 우리 대신 역사하였으니 예수님의 사생활은 우리 믿는 사람들이 가정생활이나 세상 일반생활 중에서 지은 죄를 해결하기 위한 것입니다.
즉, 예수님의 생애가 일반 우리 인간들이 태어나서 자라고 성년이 되는 전 과정을 그대로 다 통과한 것은 그 전 과정을 밟아가며 죄와 불의와 원수된 것과 절망한 죄를 해결한 것입니다. 어리기 때문에 어려서 짓는 죄를 어린 시절의 주님이 그 죄값을 대신 치렀고 또 어린 사람이 어리기 때문에 짓는 그 죄를 어린 예수님으로 이겼고 또 어리기 때문에 순종하지 못하는 것을 어린 예수님이 어리면서도 대신 행하여 우리를 대속한 것입니다.
가정생활에서 사회생활에서 또 복음을 전하는 신앙생활에서도 우리는 그 형편 그 환경 그 사정에 따라 각각 여러 종류의 죄를 짓습니다. 이 모든 생활환경과 살아가는 과정까지를 그대로 다 대신 살아가면서 해당되는 모든 죄를 전부 대속했습니다(막6:3, 눅2:51, 3:23). 막6:3 ‘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 시몬의 형제가 아니냐 그 누이들이 우리와 함께 여기 있지 아니하냐 하고 예수를 배척한지라’
눅2:51 ‘예수께서 한가지로 내려가사 나사렛에 이르러 순종하여 받드시더라 ...’
눅3:23 ‘예수께서 가르치심을 시작할 때에 삼십세쯤 되시니라 사람들의 아는대로는 요셉의 아들이니 ...’
따라서 예수님의 희생은, 우리를 하나님 닮은 존재로 만드시려고 목적을 정한 그 목적 세계에서부터 포함되어졌음을 알아야 하고, 또 신인양성일위가 되신 예수님의 신분에서도 그 희생은 살펴져야 하며, 우리가 지은 죄의 4가지 종류와 그 죄로 인한 결과와 그 죄로부터 구원받고 구출되는 과정에서도 그의 희생은 어떤 차원에서 어떤 면으로 이루어졌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더구나 예수님의 부활로 이제 예수님의 고생이 완전히 끝이 났다는 그 순간도 실은 또 다른 차원의 영원한 희생이 진행되는 시작이었음을 알아야 진정 예수님의 희생을 더 깊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 여기서는 예수님의 생애 33년 중에서 그 출생과 그 어린 시절과 성장과정과 장년이 되고 이제 복음을 전하게 되는 그 일생 전부가 우리를 위해 희생하지 않으면 안 되는 과정이었고, 그 하나하나가 전부 우리를 지극히 영광스런 하나님의 자녀를 만드는 일에 꼭 필요한 희생이었음을 자세하게 살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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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정본의 내용은 완료 되었으나 공개에 앞서 '저작권' 문제가 있는지 검토 중입니다.
검토가 완료 되면 제목에 표시하고 공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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