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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예수님의 존재론 - ‘신인양성일위’와 ‘도성인신’
① 역사적 교리
교회의 교리 표현 중에 그 역사가 가장 오래된 것 중 하나가 신인양성일위다. 주후 325년 니케아 공회에서 삼위일체 교리라는 신관을 형성했고, 이후 여러 차례 공회를 통해 431년 칼세돈 공회는 신인양성일위라는 기독론의 중추 교리를 요약하게 된다.
이후 오늘까지 신인양성일위는 다음과 같은 뜻을 담고 있다. 즉, 예수님은 하나님이 사람 되어 오신 분이므로 예수님은 참 하나님이면서 동시에 참 사람이고 이 두 분은 두 분으로 따로 계시거나 혹은 뒤섞인 한 분으로 계시지 않고, 두 분은 영원히 하나님 그대로와 사람 그대로를 유지하면서도 동시에 ‘한 분’으로 계시는 분이라는 뜻을 신인양성일위라는 단어로 함축하고 있다.
② 신인양성일위
▪ ‘신인양성’
예수님의 내부 구성을 표현하는 신인양성일위의 ‘신’은 ‘신성’을 말하고, ‘인’은 ‘인성’을 말한다. 그리고 ‘신성’은 하나님을 말하고 ‘인성’은 사람을 말하는 단어다.
신인양성이라는 표현에서 신성과 인성에 ‘성품’이라는 의미의 성(性)이라는 글자를 붙였다고 해서 예수님을 신성과 인성이 뒤섞이거나 혼합되어 하나 된 분으로 보면 오해다. 또 예수님을 하나님의 성질을 가진 일부분과 사람의 성질을 가진 일부분의 종합체로 보면 오해다.
예수님 속에 있는 인성은 인간적인 어떤 부분이 예수님 안에 들어 있다는 말이 아니고 온전한 사람 하나가 통째로 예수님 안에 있는데 그 온전한 사람 전체가 예수님의 일부이기 때문에 ‘인성’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신성 역시 마찬가지다. 신성이라는 표현은 하나님의 일부분이거나 하나님을 닮은 요소라 해서 신성이라 한 것이 아니고 바로 하나님 자체를 신성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완전한 하나님 한 분 전체가 예수님 안에 들어 있는데, 그 완전한 하나님 한 분 전체가 예수님을 구성하는 일부이기 때문에 예수님 안에 있는 하나님은 ‘신성’으로 표현하고 있다.
즉 예수님의 구성을 그 출신으로 살핀다면 ‘신성 + 인성 = 예수님’이다. 그리고 그 구성 내용을 결과적으로 살펴본다면 ‘하나님 한분(1개) + 사람 한분(1개) = 예수님 한분(1개)’다. 하나에 하나를 더하여 둘이 되는 식이 아니고 하나에 하나를 더하여 하나가 되는 존재 형식이 예수님이다(요1:14, 빌2:6-8, 히1:2-3).
▪ ‘신성’
예수님 속에 있는 신성은 정확하게 하나님 자체다. 좀더 자세하게 말한다면 삼위일체 하나님 중에 제2위 성자 하나님이다. 성자 하나님의 일부만 예수님 속에 들어와 있는 것이 아니고 성자 하나님을 닮은 신적 요소만 파견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성자 하나님께서 직접 사람으로 오신 것이다.
바로 이 예수님 속에 계신 하나님이 창조주 하나님이다. 영원 자존하신 하나님이다. 우리를 창조하시기 전, 예정하시기 전, 우리를 하나님 아버지를 닮은 자녀로 만드시려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목적을 실무로 떠맡고 나선 바로 그 하나님이다.
따라서 예수님을 대할 때는 이분이 하나님이심을 늘 기억해야 한다. 예수님의 바깥 부분이 사람이기 때문에 우리가 첫 인상에도 예수님을 사람으로 대하고 또 우리 기억 속에도 늘 사람으로만 기억하고 있기 쉽다. 그분은 물론 두말할 것 없이 사람이다. 그러나 그 분이 사람이라는 사실은 달리 설명하지 않아도 잘 알 수 있으나 그 분이 바로 하나님 자체라는 사실은 너무 잊어버리고 사는 것이 우리들이다(요1:1, 14, 빌2:6, 히1:3).요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
빌2:6-8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
히1:2-3 ‘... 이 아들을 만유의 후사로 세우시고 또 저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
요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 ‘인성’
예수님은 그 안에 참 하나님이 계시지만, 여전히 예수님은 참 사람이다. 예수님 속에 계신 분은 창조주 하나님이지만 그 하나님이 사람으로 오신 그 사람은 피조물이다. 아버지 없이 몸만 빌려 입고 나왔기 때문에 원죄가 없는 것만 우리와 다를 뿐이다. 예수님의 육체는 먹이지 않으면 굶어죽는 몸이고, 때리면 고통을 느끼는 몸이다. 추우면 옷을 입어야 따뜻해지는 우리 몸과 꼭 같다.
심지어 예수님도 죄를 지으면 죽어야 하고, 죄를 지어 죽는다면 예수님의 인성도 지옥을 가야 한다. 예수님의 인성이 모든 면에서 우리와 꼭 같으므로 젖을 먹었고 소년 시절을 지냈고 부모를 섬겼으며 목수라는 세상 직업을 가졌다. 예수님은 세상에 왔다가 유람하고 간 것이 아니라, 우리 인간이 거쳐야 할 모든 일을 다 거쳤다(눅2:51-52, 마4:1-11, 롬8:3).
우리가 지은 죄를 우리 대신 해결하기 위해 오셨기 때문에 그는 죄인이 아니었으나 죄인으로 이 세상을 살았다. 우리 대신 악령과 세상과 사망에게 모든 것을 내맡겨야 했다. 악령이 원하는 대로 예수님을 시험할 수 있지만 예수님은 죄는 짓지 않아야 했다. 세상이 예수님을 때리든 굶기든 마음대로 할 수 있었으나 예수님은 세상에게 피동은 되지 않아야 했다. 언제든지 죽일 수 있으나 예수님은 죽어도 죽음에 종이 되지 않고 죽어야 했다(마4:1-11, 8:17, 요14:30-31, 고후5:21, 히4:15, 벧전2:24).
눅2:51-52 ‘예수께서 한가지로 내려가사 나사렛에 이르러 순종하여 받드시더라 ... 예수는 그 지혜와 그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마4:1-11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
롬8:3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마8:17 ‘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하신 말씀에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
요14:30-31 ‘... 이 세상 임금이 오겠음이라 그러나 저는 내게 관계할 것이 없으니 오직 내가 아버지를 사랑하는것과 아버지의 명하신대로 행하는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라 ...’
고후5:21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히4: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 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벧전2:24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히2:14 ‘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
히9:22 ‘...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요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10:30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
‘롬8:3’ p.242 참조
▪ ‘신인양성일위’
예수님은 참 하나님이면서 참 사람이었고, 두 분으로 이루어졌지만 한 분이었으며, 예수님 한 분 안에 계신 하나님은 영원무궁토록 하나님이시고, 예수님 안에 계신 사람은 영원무궁토록 피조물인 사람이다.
예수님의 이런 면을 한 마디로 표현한 것이 ‘신인양성일위’다. 일위라는 말은 한 분이 되었다는 뜻이다. 원래 한 분은 하나님이고 한 분은 사람이므로 둘이지 하나가 될 수 없는데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한 분이 되어 우리를 구원하는 일을 맡게 되었다는 것을 ‘일위’로 표현했다.
우리를 구원하는 구주가 되신 것은 제2위 성자 하나님이 비록 삼위일체 하나님이시지만 하나님만으로도 우리의 구주가 될 수는 없다(히2:14-15, 9:22). 또 예수님이 비록 원죄가 없으신 분이지만 사람만으로는 우리의 구주가 될 수는 없다. 하나님이시면서 사람으로, 또 두 분인데 한 분이라야만 우리의 구주가 될 수 있다. 우리를 죄에서 구하기 위해 하나가 되셨고, 우리에게 영원무궁토록 영생을 주시기 위해 한 분이 되셨으니 이를 ‘일위’라고 한다. 따라서 예수님은 신인양성일위다(요1:14, 10:30, 롬8:3, 갈4:4).
③ 도성인신
우리의 구주가 되시기 위해 하나님이 사람 되어 오신 과정은 요한복음 1장에서 잘 살펴볼 수가 있다. 특히 요1:14에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라고 하셨는데 1절 이하에서 제2위 성자 하나님을 ‘말씀’이라는 이름으로 표시했고 그분이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셨음을 기록하고 있다. 이 부분을 한자로 요약하면 ‘도성인신(道成人身)’이다. 말씀 도(道), 될 성(成), 사람 인(人), 몸 신(身)이라는 뜻이니 ‘말씀’ 사람의 몸이 되셨다는 말이다.
여기 ‘말씀’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표현한 것은, 제2위 성자 하나님은 볼 수 없는 하나님을 피조물들에게 알리는 역할을 맡았음을 말한다.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셔서 볼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보이고 볼 수 없는 하나님의 모습을 나타내어 하나님을 알렸다. 사람의 몸을 입고 십자가에서 죽고 우리를 살려낸 모든 희생도, 작게 본다면 죄에서 구원한 것이고, 크게 본다면 볼 수 없는 하나님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알리는 역사다(요1:4-11, 골1:15).
요1:4-11 ‘...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
골1:15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니’
2. 멜기세덱으로 본 예수님
창세기 14장에서 전쟁을 이긴 아브라함에게 축복을 했고 아브라함이 십일조를 바친 인물이다. 그런데 히브리서 5장과 7장에서 멜기세덱을 통해 오실 예수님을 구약에 미리 보여 주셨다.
살렘의 왕이다. 영원한 영계의 영생의 나라를 다스를 만왕의 왕 예수님을 미리 말씀했다.
의의 왕이다. 자기 마음대로 통치하지 않고 하나님 아버지의 뜻으로 다스릴 왕이다.
평강의 왕이다. 완전하신 아버지의 뜻으로 다스리면 그 결과는 평강으로 이어 진다.
아비가 없다. 이 땅 위에 분명히 인성을 입은 완전한 인간이나 멜기세덱의 원인과 생산자가 없다. 하나님이 직접 보내셨기 때문이다.
어미도 없다. 일반 생육법으로 나지 않아야 우리를 대속한 구주가 될 수 있다.
족보도 없다. 이 땅 위에 아담과 노아로 내려 오는 원죄의 인간 속에 들지 않았다.
신인양성일위의 인성은 신성이 우리를 대속하기 위해 완전한 인간을 가져야 했고 그러기 위해 아담과 노아의 계통이 아닌 별도의 인간을 만들어 입고 오셨다.
조직(구)
1. 예수님의 존재론 - ‘신인양성일위’와 ‘도성인신’
① 역사적 교리
교회의 교리 표현 중에 그 역사가 가장 오래된 것 중 하나가 신인양성일위입니다. 주후 325년 니케아 공회에서 삼위일체 교리라는 신관을 형성했고, 이후 여러 차례 공회를 통해 431년 칼세돈 공회는 신인양성일위라는 기독론의 중추 교리를 요약하게 됩니다.
이후 오늘까지 신인양성일위는 다음과 같은 뜻을 담고 있습니다. 즉, 예수님은 하나님이 사람 되어 오신 분이므로 예수님은 참 하나님이면서 동시에 참 사람이고 이 두 분은 두 분으로 따로 계시거나 혹은 뒤섞인 한 분으로 계시지 않고, 두 분은 영원히 하나님 그대로와 사람 그대로를 유지하면서도 동시에 ‘한 분’으로 계시는 분이라는 뜻을 신인양성일위라는 단어로 함축하고 있습니다.
② 신인양성일위
▪ ‘신인양성’
예수님의 내부 구성을 표현하는 신인양성일위의 ‘신’은 ‘신성’을 말하고, ‘인’은 ‘인성’을 말합니다. 그리고 ‘신성’은 하나님을 말하고 ‘인성’은 사람을 말하는 단어입니다.
신인양성이라는 표현에서 신성과 인성에 ‘성품’이라는 의미의 성(性)이라는 글자를 붙였다고 해서 예수님을 신성과 인성이 뒤섞이거나 혼합되어 하나 된 분으로 보면 오해입니다. 또 예수님을 하나님의 성질을 가진 일부분과 사람의 성질을 가진 일부분의 종합체로 보면 오해입니다.
예수님 속에 있는 인성은 인간적인 어떤 부분이 예수님 안에 들어 있다는 말이 아니고 온전한 사람 하나가 통째로 예수님 안에 있는데 그 온전한 사람 전체가 예수님의 일부이기 때문에 ‘인성’이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신성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신성이라는 표현은 하나님의 일부분이거나 하나님을 닮은 요소라 해서 신성이라 한 것이 아니고 바로 하나님 자체를 신성이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완전한 하나님 한 분 전체가 예수님 안에 들어 있는데, 그 완전한 하나님 한 분 전체가 예수님을 구성하는 일부이기 때문에 예수님 안에 있는 하나님은 ‘신성’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즉 예수님의 구성을 그 출신으로 살핀다면 ‘신성 + 인성 = 예수님’입니다. 그리고 그 구성 내용을 결과적으로 살펴본다면 ‘하나님 한분(1개) + 사람 한분(1개) = 예수님 한분(1개)’입니다. 하나에 하나를 더하여 둘이 되는 식이 아니고 하나에 하나를 더하여 하나가 되는 존재 형식이 예수님입니다(요1:14, 빌2:6-8, 히1:2-3).
▪ ‘신성’
예수님 속에 있는 신성은 정확하게 하나님 자체입니다. 좀더 자세하게 말한다면 삼위일체 하나님 중에 제2위 성자 하나님입니다. 성자 하나님의 일부만 예수님 속에 들어와 있는 것이 아니고 성자 하나님을 닮은 신적 요소만 파견되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성자 하나님께서 직접 사람으로 오신 것입니다.
바로 이 예수님 속에 계신 하나님이 창조주 하나님입니다. 영원 자존하신 하나님입니다. 우리를 창조하시기 전, 예정하시기 전, 우리를 하나님 아버지를 닮은 자녀로 만드시려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목적을 실무로 떠맡고 나선 바로 그 하나님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대할 때는 이분이 하나님이심을 늘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바깥 부분이 사람이기 때문에 우리가 첫 인상에도 예수님을 사람으로 대하고 또 우리 기억 속에도 늘 사람으로만 기억하고 있기 쉽습니다. 그분은 물론 두말할 것 없이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 분이 사람이라는 사실은 달리 설명하지 않아도 잘 알 수 있으나 그 분이 바로 하나님 자체라는 사실은 너무 잊어버리고 사는 것이 우리들입니다(요1:1, 14, 빌2:6, 히1:3).요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
빌2:6-8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
히1:2-3 ‘... 이 아들을 만유의 후사로 세우시고 또 저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
요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 ‘인성’
예수님은 그 안에 참 하나님이 계시지만, 여전히 예수님은 참 사람입니다. 예수님 속에 계신 분은 창조주 하나님이지만 그 하나님이 사람으로 오신 그 사람은 피조물입니다. 아버지 없이 몸만 빌려 입고 나왔기 때문에 원죄가 없는 것만 우리와 다를 뿐입니다. 예수님의 육체는 먹이지 않으면 굶어죽는 몸이고, 때리면 고통을 느끼는 몸입니다. 추우면 옷을 입어야 따뜻해지는 우리 몸과 꼭 같습니다.
심지어 예수님도 죄를 지으면 죽어야 하고, 죄를 지어 죽는다면 예수님의 인성도 지옥을 가야 합니다. 예수님의 인성이 모든 면에서 우리와 꼭 같으므로 젖을 먹었고 소년 시절을 지냈고 부모를 섬겼으며 목수라는 세상 직업을 가졌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에 왔다가 유람하고 간 것이 아니라, 우리 인간이 거쳐야 할 모든 일을 다 거쳤습니다(눅2:51-52, 마4:1-11, 롬8:3).
우리가 지은 죄를 우리 대신 해결하기 위해 오셨기 때문에 그는 죄인이 아니었으나 죄인으로 이 세상을 살았습니다. 우리 대신 악령과 세상과 사망에게 모든 것을 내맡겨야 했습니다. 악령이 원하는 대로 예수님을 시험할 수 있지만 예수님은 죄는 짓지 않아야 했습니다. 세상이 예수님을 때리든 굶기든 마음대로 할 수 있었으나 예수님은 세상에게 피동은 되지 않아야 했습니다. 언제든지 죽일 수 있으나 예수님은 죽어도 죽음에 종이 되지 않고 죽어야 했습니다(마4:1-11, 8:17, 요14:30-31, 고후5:21, 히4:15, 벧전2:24).눅2:51-52 ‘예수께서 한가지로 내려가사 나사렛에 이르러 순종하여 받드시더라 ... 예수는 그 지혜와 그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마4:1-11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
롬8:3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마8:17 ‘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하신 말씀에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
요14:30-31 ‘... 이 세상 임금이 오겠음이라 그러나 저는 내게 관계할 것이 없으니 오직 내가 아버지를 사랑하는것과 아버지의 명하신대로 행하는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라 ...’
고후5:21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히4: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 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벧전2:24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히2:14 ‘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
히9:22 ‘...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요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10:30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
‘롬8:3’ p.242 참조
▪ ‘신인양성일위’
예수님은 참 하나님이면서 참 사람이었고, 두 분으로 이루어졌지만 한 분이었으며, 예수님 한 분 안에 계신 하나님은 영원무궁토록 하나님이시고, 예수님 안에 계신 사람은 영원무궁토록 피조물인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이런 면을 한 마디로 표현한 것이 ‘신인양성일위’입니다. 일위라는 말은 한 분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원래 한 분은 하나님이고 한 분은 사람이므로 둘이지 하나가 될 수 없는데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한 분이 되어 우리를 구원하는 일을 맡게 되었다는 것을 ‘일위’로 표현했습니다.
우리를 구원하는 구주가 되신 것은 제2위 성자 하나님이 비록 삼위일체 하나님이시지만 하나님만으로도 우리의 구주가 될 수는 없습니다(히2:14-15, 9:22). 또 예수님이 비록 원죄가 없으신 분이지만 사람만으로는 우리의 구주가 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이시면서 사람으로, 또 두 분인데 한 분이라야만 우리의 구주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를 죄에서 구하기 위해 하나가 되셨고, 우리에게 영원무궁토록 영생을 주시기 위해 한 분이 되셨으니 이를 ‘일위’라고 합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신인양성일위입니다(요1:14, 10:30, 롬8:3, 갈4:4).
③ 도성인신
우리의 구주가 되시기 위해 하나님이 사람 되어 오신 과정은 요한복음 1장에서 잘 살펴볼 수가 있습니다. 특히 요1:14에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라고 하셨는데 1절 이하에서 제2위 성자 하나님을 ‘말씀’이라는 이름으로 표시했고 그분이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셨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부분을 한자로 요약하면 ‘도성인신(道成人身)’입니다. 말씀 도(道), 될 성(成), 사람 인(人), 몸 신(身)이라는 뜻이니 ‘말씀’ 사람의 몸이 되셨다는 말입니다.
여기 ‘말씀’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표현한 것은, 제2위 성자 하나님은 볼 수 없는 하나님을 피조물들에게 알리는 역할을 맡았음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셔서 볼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보이고 볼 수 없는 하나님의 모습을 나타내어 하나님을 알렸습니다. 사람의 몸을 입고 십자가에서 죽고 우리를 살려낸 모든 희생도, 작게 본다면 죄에서 구원한 것이고, 크게 본다면 볼 수 없는 하나님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알리는 역사입니다(요1:4-11, 골1:15).요1:4-11 ‘...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
골1:15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니’
내용
개정본의 내용은 완료 되었으나 공개에 앞서 '저작권' 문제가 있는지 검토 중입니다.
검토가 완료 되면 제목에 표시하고 공개하겠습니다.
1. 예수님의 존재론 - ‘신인양성일위’와 ‘도성인신’
① 역사적 교리
교회의 교리 표현 중에 그 역사가 가장 오래된 것 중 하나가 신인양성일위다. 주후 325년 니케아 공회에서 삼위일체 교리라는 신관을 형성했고, 이후 여러 차례 공회를 통해 431년 칼세돈 공회는 신인양성일위라는 기독론의 중추 교리를 요약하게 된다.
이후 오늘까지 신인양성일위는 다음과 같은 뜻을 담고 있다. 즉, 예수님은 하나님이 사람 되어 오신 분이므로 예수님은 참 하나님이면서 동시에 참 사람이고 이 두 분은 두 분으로 따로 계시거나 혹은 뒤섞인 한 분으로 계시지 않고, 두 분은 영원히 하나님 그대로와 사람 그대로를 유지하면서도 동시에 ‘한 분’으로 계시는 분이라는 뜻을 신인양성일위라는 단어로 함축하고 있다.
② 신인양성일위
▪ ‘신인양성’
예수님의 내부 구성을 표현하는 신인양성일위의 ‘신’은 ‘신성’을 말하고, ‘인’은 ‘인성’을 말한다. 그리고 ‘신성’은 하나님을 말하고 ‘인성’은 사람을 말하는 단어다.
신인양성이라는 표현에서 신성과 인성에 ‘성품’이라는 의미의 성(性)이라는 글자를 붙였다고 해서 예수님을 신성과 인성이 뒤섞이거나 혼합되어 하나 된 분으로 보면 오해다. 또 예수님을 하나님의 성질을 가진 일부분과 사람의 성질을 가진 일부분의 종합체로 보면 오해다.
예수님 속에 있는 인성은 인간적인 어떤 부분이 예수님 안에 들어 있다는 말이 아니고 온전한 사람 하나가 통째로 예수님 안에 있는데 그 온전한 사람 전체가 예수님의 일부이기 때문에 ‘인성’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신성 역시 마찬가지다. 신성이라는 표현은 하나님의 일부분이거나 하나님을 닮은 요소라 해서 신성이라 한 것이 아니고 바로 하나님 자체를 신성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완전한 하나님 한 분 전체가 예수님 안에 들어 있는데, 그 완전한 하나님 한 분 전체가 예수님을 구성하는 일부이기 때문에 예수님 안에 있는 하나님은 ‘신성’으로 표현하고 있다.
즉 예수님의 구성을 그 출신으로 살핀다면 ‘신성 + 인성 = 예수님’이다. 그리고 그 구성 내용을 결과적으로 살펴본다면 ‘하나님 한분(1개) + 사람 한분(1개) = 예수님 한분(1개)’다. 하나에 하나를 더하여 둘이 되는 식이 아니고 하나에 하나를 더하여 하나가 되는 존재 형식이 예수님이다(요1:14, 빌2:6-8, 히1:2-3).
▪ ‘신성’
예수님 속에 있는 신성은 정확하게 하나님 자체다. 좀더 자세하게 말한다면 삼위일체 하나님 중에 제2위 성자 하나님이다. 성자 하나님의 일부만 예수님 속에 들어와 있는 것이 아니고 성자 하나님을 닮은 신적 요소만 파견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성자 하나님께서 직접 사람으로 오신 것이다.
바로 이 예수님 속에 계신 하나님이 창조주 하나님이다. 영원 자존하신 하나님이다. 우리를 창조하시기 전, 예정하시기 전, 우리를 하나님 아버지를 닮은 자녀로 만드시려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목적을 실무로 떠맡고 나선 바로 그 하나님이다.
따라서 예수님을 대할 때는 이분이 하나님이심을 늘 기억해야 한다. 예수님의 바깥 부분이 사람이기 때문에 우리가 첫 인상에도 예수님을 사람으로 대하고 또 우리 기억 속에도 늘 사람으로만 기억하고 있기 쉽다. 그분은 물론 두말할 것 없이 사람이다. 그러나 그 분이 사람이라는 사실은 달리 설명하지 않아도 잘 알 수 있으나 그 분이 바로 하나님 자체라는 사실은 너무 잊어버리고 사는 것이 우리들이다(요1:1, 14, 빌2:6, 히1:3).요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
빌2:6-8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
히1:2-3 ‘... 이 아들을 만유의 후사로 세우시고 또 저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
요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 ‘인성’
예수님은 그 안에 참 하나님이 계시지만, 여전히 예수님은 참 사람이다. 예수님 속에 계신 분은 창조주 하나님이지만 그 하나님이 사람으로 오신 그 사람은 피조물이다. 아버지 없이 몸만 빌려 입고 나왔기 때문에 원죄가 없는 것만 우리와 다를 뿐이다. 예수님의 육체는 먹이지 않으면 굶어죽는 몸이고, 때리면 고통을 느끼는 몸이다. 추우면 옷을 입어야 따뜻해지는 우리 몸과 꼭 같다.
심지어 예수님도 죄를 지으면 죽어야 하고, 죄를 지어 죽는다면 예수님의 인성도 지옥을 가야 한다. 예수님의 인성이 모든 면에서 우리와 꼭 같으므로 젖을 먹었고 소년 시절을 지냈고 부모를 섬겼으며 목수라는 세상 직업을 가졌다. 예수님은 세상에 왔다가 유람하고 간 것이 아니라, 우리 인간이 거쳐야 할 모든 일을 다 거쳤다(눅2:51-52, 마4:1-11, 롬8:3).
우리가 지은 죄를 우리 대신 해결하기 위해 오셨기 때문에 그는 죄인이 아니었으나 죄인으로 이 세상을 살았다. 우리 대신 악령과 세상과 사망에게 모든 것을 내맡겨야 했다. 악령이 원하는 대로 예수님을 시험할 수 있지만 예수님은 죄는 짓지 않아야 했다. 세상이 예수님을 때리든 굶기든 마음대로 할 수 있었으나 예수님은 세상에게 피동은 되지 않아야 했다. 언제든지 죽일 수 있으나 예수님은 죽어도 죽음에 종이 되지 않고 죽어야 했다(마4:1-11, 8:17, 요14:30-31, 고후5:21, 히4:15, 벧전2:24).
눅2:51-52 ‘예수께서 한가지로 내려가사 나사렛에 이르러 순종하여 받드시더라 ... 예수는 그 지혜와 그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마4:1-11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
롬8:3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마8:17 ‘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하신 말씀에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
요14:30-31 ‘... 이 세상 임금이 오겠음이라 그러나 저는 내게 관계할 것이 없으니 오직 내가 아버지를 사랑하는것과 아버지의 명하신대로 행하는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라 ...’
고후5:21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히4: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 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벧전2:24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히2:14 ‘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
히9:22 ‘...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요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10:30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
‘롬8:3’ p.242 참조
▪ ‘신인양성일위’
예수님은 참 하나님이면서 참 사람이었고, 두 분으로 이루어졌지만 한 분이었으며, 예수님 한 분 안에 계신 하나님은 영원무궁토록 하나님이시고, 예수님 안에 계신 사람은 영원무궁토록 피조물인 사람이다.
예수님의 이런 면을 한 마디로 표현한 것이 ‘신인양성일위’다. 일위라는 말은 한 분이 되었다는 뜻이다. 원래 한 분은 하나님이고 한 분은 사람이므로 둘이지 하나가 될 수 없는데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한 분이 되어 우리를 구원하는 일을 맡게 되었다는 것을 ‘일위’로 표현했다.
우리를 구원하는 구주가 되신 것은 제2위 성자 하나님이 비록 삼위일체 하나님이시지만 하나님만으로도 우리의 구주가 될 수는 없다(히2:14-15, 9:22). 또 예수님이 비록 원죄가 없으신 분이지만 사람만으로는 우리의 구주가 될 수는 없다. 하나님이시면서 사람으로, 또 두 분인데 한 분이라야만 우리의 구주가 될 수 있다. 우리를 죄에서 구하기 위해 하나가 되셨고, 우리에게 영원무궁토록 영생을 주시기 위해 한 분이 되셨으니 이를 ‘일위’라고 한다. 따라서 예수님은 신인양성일위다(요1:14, 10:30, 롬8:3, 갈4:4).
③ 도성인신
우리의 구주가 되시기 위해 하나님이 사람 되어 오신 과정은 요한복음 1장에서 잘 살펴볼 수가 있다. 특히 요1:14에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라고 하셨는데 1절 이하에서 제2위 성자 하나님을 ‘말씀’이라는 이름으로 표시했고 그분이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셨음을 기록하고 있다. 이 부분을 한자로 요약하면 ‘도성인신(道成人身)’이다. 말씀 도(道), 될 성(成), 사람 인(人), 몸 신(身)이라는 뜻이니 ‘말씀’ 사람의 몸이 되셨다는 말이다.
여기 ‘말씀’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표현한 것은, 제2위 성자 하나님은 볼 수 없는 하나님을 피조물들에게 알리는 역할을 맡았음을 말한다.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셔서 볼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보이고 볼 수 없는 하나님의 모습을 나타내어 하나님을 알렸다. 사람의 몸을 입고 십자가에서 죽고 우리를 살려낸 모든 희생도, 작게 본다면 죄에서 구원한 것이고, 크게 본다면 볼 수 없는 하나님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알리는 역사다(요1:4-11, 골1:15).
요1:4-11 ‘...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
골1:15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니’
2. 멜기세덱으로 본 예수님
창세기 14장에서 전쟁을 이긴 아브라함에게 축복을 했고 아브라함이 십일조를 바친 인물이다. 그런데 히브리서 5장과 7장에서 멜기세덱을 통해 오실 예수님을 구약에 미리 보여 주셨다.
살렘의 왕이다. 영원한 영계의 영생의 나라를 다스를 만왕의 왕 예수님을 미리 말씀했다.
의의 왕이다. 자기 마음대로 통치하지 않고 하나님 아버지의 뜻으로 다스릴 왕이다.
평강의 왕이다. 완전하신 아버지의 뜻으로 다스리면 그 결과는 평강으로 이어 진다.
아비가 없다. 이 땅 위에 분명히 인성을 입은 완전한 인간이나 멜기세덱의 원인과 생산자가 없다. 하나님이 직접 보내셨기 때문이다.
어미도 없다. 일반 생육법으로 나지 않아야 우리를 대속한 구주가 될 수 있다.
족보도 없다. 이 땅 위에 아담과 노아로 내려 오는 원죄의 인간 속에 들지 않았다.
신인양성일위의 인성은 신성이 우리를 대속하기 위해 완전한 인간을 가져야 했고 그러기 위해 아담과 노아의 계통이 아닌 별도의 인간을 만들어 입고 오셨다.
내용
개정본의 내용은 완료 되었으나 공개에 앞서 '저작권' 문제가 있는지 검토 중입니다.
검토가 완료 되면 제목에 표시하고 공개하겠습니다.
1. 예수님의 존재론 - ‘신인양성일위’와 ‘도성인신’
① 역사적 교리
교회의 교리 표현 중에 그 역사가 가장 오래된 것 중 하나가 신인양성일위다. 주후 325년 니케아 공회에서 삼위일체 교리라는 신관을 형성했고, 이후 여러 차례 공회를 통해 431년 칼세돈 공회는 신인양성일위라는 기독론의 중추 교리를 요약하게 된다.
이후 오늘까지 신인양성일위는 다음과 같은 뜻을 담고 있다. 즉, 예수님은 하나님이 사람 되어 오신 분이므로 예수님은 참 하나님이면서 동시에 참 사람이고 이 두 분은 두 분으로 따로 계시거나 혹은 뒤섞인 한 분으로 계시지 않고, 두 분은 영원히 하나님 그대로와 사람 그대로를 유지하면서도 동시에 ‘한 분’으로 계시는 분이라는 뜻을 신인양성일위라는 단어로 함축하고 있다.
② 신인양성일위
▪ ‘신인양성’
예수님의 내부 구성을 표현하는 신인양성일위의 ‘신’은 ‘신성’을 말하고, ‘인’은 ‘인성’을 말한다. 그리고 ‘신성’은 하나님을 말하고 ‘인성’은 사람을 말하는 단어다.
신인양성이라는 표현에서 신성과 인성에 ‘성품’이라는 의미의 성(性)이라는 글자를 붙였다고 해서 예수님을 신성과 인성이 뒤섞이거나 혼합되어 하나 된 분으로 보면 오해다. 또 예수님을 하나님의 성질을 가진 일부분과 사람의 성질을 가진 일부분의 종합체로 보면 오해다.
예수님 속에 있는 인성은 인간적인 어떤 부분이 예수님 안에 들어 있다는 말이 아니고 온전한 사람 하나가 통째로 예수님 안에 있는데 그 온전한 사람 전체가 예수님의 일부이기 때문에 ‘인성’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신성 역시 마찬가지다. 신성이라는 표현은 하나님의 일부분이거나 하나님을 닮은 요소라 해서 신성이라 한 것이 아니고 바로 하나님 자체를 신성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완전한 하나님 한 분 전체가 예수님 안에 들어 있는데, 그 완전한 하나님 한 분 전체가 예수님을 구성하는 일부이기 때문에 예수님 안에 있는 하나님은 ‘신성’으로 표현하고 있다.
즉 예수님의 구성을 그 출신으로 살핀다면 ‘신성 + 인성 = 예수님’이다. 그리고 그 구성 내용을 결과적으로 살펴본다면 ‘하나님 한분(1개) + 사람 한분(1개) = 예수님 한분(1개)’다. 하나에 하나를 더하여 둘이 되는 식이 아니고 하나에 하나를 더하여 하나가 되는 존재 형식이 예수님이다(요1:14, 빌2:6-8, 히1:2-3).
▪ ‘신성’
예수님 속에 있는 신성은 정확하게 하나님 자체다. 좀더 자세하게 말한다면 삼위일체 하나님 중에 제2위 성자 하나님이다. 성자 하나님의 일부만 예수님 속에 들어와 있는 것이 아니고 성자 하나님을 닮은 신적 요소만 파견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성자 하나님께서 직접 사람으로 오신 것이다.
바로 이 예수님 속에 계신 하나님이 창조주 하나님이다. 영원 자존하신 하나님이다. 우리를 창조하시기 전, 예정하시기 전, 우리를 하나님 아버지를 닮은 자녀로 만드시려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목적을 실무로 떠맡고 나선 바로 그 하나님이다.
따라서 예수님을 대할 때는 이분이 하나님이심을 늘 기억해야 한다. 예수님의 바깥 부분이 사람이기 때문에 우리가 첫 인상에도 예수님을 사람으로 대하고 또 우리 기억 속에도 늘 사람으로만 기억하고 있기 쉽다. 그분은 물론 두말할 것 없이 사람이다. 그러나 그 분이 사람이라는 사실은 달리 설명하지 않아도 잘 알 수 있으나 그 분이 바로 하나님 자체라는 사실은 너무 잊어버리고 사는 것이 우리들이다(요1:1, 14, 빌2:6, 히1:3).요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
빌2:6-8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
히1:2-3 ‘... 이 아들을 만유의 후사로 세우시고 또 저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
요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 ‘인성’
예수님은 그 안에 참 하나님이 계시지만, 여전히 예수님은 참 사람이다. 예수님 속에 계신 분은 창조주 하나님이지만 그 하나님이 사람으로 오신 그 사람은 피조물이다. 아버지 없이 몸만 빌려 입고 나왔기 때문에 원죄가 없는 것만 우리와 다를 뿐이다. 예수님의 육체는 먹이지 않으면 굶어죽는 몸이고, 때리면 고통을 느끼는 몸이다. 추우면 옷을 입어야 따뜻해지는 우리 몸과 꼭 같다.
심지어 예수님도 죄를 지으면 죽어야 하고, 죄를 지어 죽는다면 예수님의 인성도 지옥을 가야 한다. 예수님의 인성이 모든 면에서 우리와 꼭 같으므로 젖을 먹었고 소년 시절을 지냈고 부모를 섬겼으며 목수라는 세상 직업을 가졌다. 예수님은 세상에 왔다가 유람하고 간 것이 아니라, 우리 인간이 거쳐야 할 모든 일을 다 거쳤다(눅2:51-52, 마4:1-11, 롬8:3).
우리가 지은 죄를 우리 대신 해결하기 위해 오셨기 때문에 그는 죄인이 아니었으나 죄인으로 이 세상을 살았다. 우리 대신 악령과 세상과 사망에게 모든 것을 내맡겨야 했다. 악령이 원하는 대로 예수님을 시험할 수 있지만 예수님은 죄는 짓지 않아야 했다. 세상이 예수님을 때리든 굶기든 마음대로 할 수 있었으나 예수님은 세상에게 피동은 되지 않아야 했다. 언제든지 죽일 수 있으나 예수님은 죽어도 죽음에 종이 되지 않고 죽어야 했다(마4:1-11, 8:17, 요14:30-31, 고후5:21, 히4:15, 벧전2:24).
눅2:51-52 ‘예수께서 한가지로 내려가사 나사렛에 이르러 순종하여 받드시더라 ... 예수는 그 지혜와 그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마4:1-11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
롬8:3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마8:17 ‘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하신 말씀에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
요14:30-31 ‘... 이 세상 임금이 오겠음이라 그러나 저는 내게 관계할 것이 없으니 오직 내가 아버지를 사랑하는것과 아버지의 명하신대로 행하는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라 ...’
고후5:21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히4: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 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벧전2:24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히2:14 ‘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
히9:22 ‘...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요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10:30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
‘롬8:3’ p.242 참조
▪ ‘신인양성일위’
예수님은 참 하나님이면서 참 사람이었고, 두 분으로 이루어졌지만 한 분이었으며, 예수님 한 분 안에 계신 하나님은 영원무궁토록 하나님이시고, 예수님 안에 계신 사람은 영원무궁토록 피조물인 사람이다.
예수님의 이런 면을 한 마디로 표현한 것이 ‘신인양성일위’다. 일위라는 말은 한 분이 되었다는 뜻이다. 원래 한 분은 하나님이고 한 분은 사람이므로 둘이지 하나가 될 수 없는데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한 분이 되어 우리를 구원하는 일을 맡게 되었다는 것을 ‘일위’로 표현했다.
우리를 구원하는 구주가 되신 것은 제2위 성자 하나님이 비록 삼위일체 하나님이시지만 하나님만으로도 우리의 구주가 될 수는 없다(히2:14-15, 9:22). 또 예수님이 비록 원죄가 없으신 분이지만 사람만으로는 우리의 구주가 될 수는 없다. 하나님이시면서 사람으로, 또 두 분인데 한 분이라야만 우리의 구주가 될 수 있다. 우리를 죄에서 구하기 위해 하나가 되셨고, 우리에게 영원무궁토록 영생을 주시기 위해 한 분이 되셨으니 이를 ‘일위’라고 한다. 따라서 예수님은 신인양성일위다(요1:14, 10:30, 롬8:3, 갈4:4).
③ 도성인신
우리의 구주가 되시기 위해 하나님이 사람 되어 오신 과정은 요한복음 1장에서 잘 살펴볼 수가 있다. 특히 요1:14에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라고 하셨는데 1절 이하에서 제2위 성자 하나님을 ‘말씀’이라는 이름으로 표시했고 그분이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셨음을 기록하고 있다. 이 부분을 한자로 요약하면 ‘도성인신(道成人身)’이다. 말씀 도(道), 될 성(成), 사람 인(人), 몸 신(身)이라는 뜻이니 ‘말씀’ 사람의 몸이 되셨다는 말이다.
여기 ‘말씀’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표현한 것은, 제2위 성자 하나님은 볼 수 없는 하나님을 피조물들에게 알리는 역할을 맡았음을 말한다.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셔서 볼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보이고 볼 수 없는 하나님의 모습을 나타내어 하나님을 알렸다. 사람의 몸을 입고 십자가에서 죽고 우리를 살려낸 모든 희생도, 작게 본다면 죄에서 구원한 것이고, 크게 본다면 볼 수 없는 하나님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알리는 역사다(요1:4-11, 골1:15).
요1:4-11 ‘...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
골1:15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니’
2. 멜기세덱으로 본 예수님
창세기 14장에서 전쟁을 이긴 아브라함에게 축복을 했고 아브라함이 십일조를 바친 인물이다. 그런데 히브리서 5장과 7장에서 멜기세덱을 통해 오실 예수님을 구약에 미리 보여 주셨다.
살렘의 왕이다. 영원한 영계의 영생의 나라를 다스를 만왕의 왕 예수님을 미리 말씀했다.
의의 왕이다. 자기 마음대로 통치하지 않고 하나님 아버지의 뜻으로 다스릴 왕이다.
평강의 왕이다. 완전하신 아버지의 뜻으로 다스리면 그 결과는 평강으로 이어 진다.
아비가 없다. 이 땅 위에 분명히 인성을 입은 완전한 인간이나 멜기세덱의 원인과 생산자가 없다. 하나님이 직접 보내셨기 때문이다.
어미도 없다. 일반 생육법으로 나지 않아야 우리를 대속한 구주가 될 수 있다.
족보도 없다. 이 땅 위에 아담과 노아로 내려 오는 원죄의 인간 속에 들지 않았다.
신인양성일위의 인성은 신성이 우리를 대속하기 위해 완전한 인간을 가져야 했고 그러기 위해 아담과 노아의 계통이 아닌 별도의 인간을 만들어 입고 오셨다.
제8장 중보자 그리스도
2. 하나님의 아들은 삼위일체 중의 제 2위로서 아버지와 동일한 신(神)의 본체이시니, 영원하신 하나님 자신이시다. 때가 차매 그가 오셔서 인성10)을 받으시되, 인간의 모든 본질적 속성과 공통적인 연약성을 그대로 받으셨다. 그러나 성령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죄성은 없이11) 동정녀 마리아에게 그의 체질로 잉태되셨다.12) 그 결과로 완전하고도 구별된 신성과 인성이 나뉠 수 없이 한 인격으로 결합되셨다. 그 결합으로 말하면, 각기 성품의 변동도 아니고, 합성도 아니고, 혼동도 아니다.13) 그 인격이 바로 참 하나님이시요 참 사람이신데, 한 분 그리스도시요,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유일하신 중보자이시다.14)
10)요 1:14, 갈 4:4, 빌 2:6, 요일 5:20. 11)히 2:14,16-17, 4:15. 12)갈 4:4, 눅 1:27,31,35. 13)골 2:9, 눅 1:35, 롬 9:5, 딤전 3:16, 벧전 3:18. 14)딤전 2:5, 롬 1: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