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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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2.11 17:51
3. 죄론
(1) 죄
① 죄의 정의
죄는 하나님께 ‘삐뚤어진 것’이다. 하나님께 삐뚤어진 것이 아니면 성경이 말하는 죄와 다른 세상의 죄다. 국법을 어긴 죄나 도덕에 잘못된 죄 또는 세상 어떤 조직과 질서에서 말하는 죄는 성경이 말하는 죄와 다르다. ‘죄’라는 단어는 같이 사용해도 무엇을 기준으로 어디에 삐뚤어졌느냐는 것이 문제다. 하나님만이 죄를 결정하는 유일한 기준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바로 접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에게 적어주신 그 말씀을 기준으로 삼아 죄를 판단하게 된다. 하나님의 법에 삐뚤어졌을 때, 그것만을 성경은 죄라고 한다(사53:6).
사53: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② 죄라는 단어의 혼동
흔히 성경의 죄를 세상에서 사용하는 죄라는 단어와 혼동하여 오늘 말세 교회의 속화가 가속되고 있다.
국법을 지키는 것은, 성경이 성도에게 자기가 사는 국가의 법을 지키라고 했기 때문에 지키는 것이지 국법을 범하는 것 자체가 지옥 갈 죄가 되기 때문에 국법을 지키는 것은 아니다. 그 나라 백성으로 그 나라를 살아가는 데 필요한 법일 뿐이다. 또 도덕은 사람의 양심이 기준이며 자기를 엄하게 규제하는 법이다. 이 법은 다른 종교를 만들어 사람을 수양하도록 만드는 데에는 기여를 했지만, 이 법을 어기는 것은 구원과 전혀 상관이 없다.
그러나 현 교회와 세상은, 성경 죄와 세상 죄를 혼동하여 기독교를 세상의 국법이나 도덕법을 지키는 세상 양심집단으로 취급하고 있으며 이런 현상은 너무도 심각한 수준에 이르러 이미 교회 거의를 다 삼킨 정도다. 따라서 이 시대 교회가 특별히 견지해야 할 교리가 여럿 있지만 죄에 대한 정의도 그 중에 하나다.
③ 죄의 종류
죄는 하나님께 삐뚤어진 것이라는 단 하나의 기준으로 간단하게 정의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 우리 신앙생활에 죄와 싸우고 죄로부터 돌이켜 의롭게 살기 위해서는 죄가 어떤 차원에서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고 활동하는지를 자세하게 알수록 도움이 된다. 크게 4가지 차원에서 죄를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죄를 4가지 면으로 살펴본다는 것은, 달리 말하면 우리는 4가지 차원으로 하나님을 상대하고 있다. 이 쪽으로는 잘 하고 있지만 다른 쪽으로는 부족할 수 있기 때문에 성경이 가르치는 모든 면을 함께 살피는 것이 필요하다.
▪하나님의 법을 어긴 죄 - ‘죄’
▪하나님의 뜻을 어긴 죄 - ‘불의’의 죄
▪하나님을 배반 한 죄 - ‘원수’된 죄
▪하나님 소망을 버린 죄 - ‘절망’의 죄
▪죄 - 하나님의 법을 어긴 죄
하나님께 삐뚤어진 죄 중에서도 제일 첫째로 기억할 죄는 하나님의 말씀, 그분의 명령을 어긴 ‘죄’입니다. 참고로 죄라고 표현할 때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모든 종류의 죄를 다 포함한 넓은 의미의 죄가 있고, 하나님의 말씀을 어긴 행동만을 말하는 좁은 의미의 죄가 있다(창2:17).
신구약 성경 66권의 말씀을 어기면 죄다. 하라는 것을 하지 않아도 죄이고, 하지 말라는 것을 해도 죄가 된다. 하라는 것을 다 하지 않아도 죄가 되며, 하기는 다 했으나 분량이 모자라도 죄다. 무릇 죄의 종류 중 첫째 죄는 다른 죄보다는 가장 초보적인 단계에서 지켜야 할 것이지만, 성경 66권 말씀을 기준으로 냉정하게 살펴본다면, 우리는 죄 없는 사람이 없다. 그리고 그 죄로부터 의롭게 될 수 있는 가능성도 전혀 없다. 이런 의미에서 사람은 전적 죄인이다(롬3:9-11, 23).
▪ 불의의 죄
하나님께 삐뚤어진 죄 중에서도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에 개별적으로 하나님의 원하는 뜻을 감동시켜 주시는데 자기 신앙양심을 통해 나타나는 하나님의 뜻을 어긴 죄는 ‘불의’의 죄라고 한다(행24:16).
죄의 종류 중에서 앞에 말씀드린 ‘말씀을 어긴 죄’는 그 기준이 성경이다. 성경은 모든 믿는 사람에게 동시에 해당되는 말씀이다. 그러나 그 성경 전체 말씀 중에서 자기 현실마다 따로 자기에게 특별히 지킬 것을 원하는 말씀은 따로 있다(신28:1). 또 그 말씀을 지키되 어떻게 지켜야 할 것을 성령이 우리 믿는 사람에게는 신앙양심을 통해 직접 말씀한다. 이를 성령의 감화와 감동이라 하며, 줄여서 ‘영감’이라고 한다.
보통 영감이라 하면 성경기록 영감만을 영감이라고 생각하여 초대교회 이후 영감역사는 종료되었다고 하는데, 여기서 말하는 영감은 성경기록영감 외에도 성령이 오늘 우리 각자 마음속에 말씀대로 살도록 지도하고 또 우리 생활 속에서 어떻게 해야 할 것을 각자에 따라 개별적으로 역사하는 영감을 말한다(요일2:27).
창2:1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롬3:9-11 ‘... 다 죄 아래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기록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
롬3: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행24:16 ‘... 나도 하나님과 사람을 대하여 항상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힘쓰노라’
신28:1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
요일2:27 ‘너희는 주께 받은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
엡2:14-16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이 모든 성령의 역사 전체를 영감으로 표현한다면, 바로 자기 양심에서 말씀대로 살도록 역사하는 하나님의 뜻이 각 개인에게 영감을 통해 나타나는 것이니 그것에 삐뚤어지면 ‘불의’라고 합니다.
▪ 원수 된 죄
하나님과 우리 사이는 원래 하나였다. 연결이 되어 있었기 때문에 어떤 문제도 없었다. 그런데 이 연결이 끊어져 버렸다. 이 연결은 전선연결이나 무선연결이나 손과 손으로 접촉된 연결이 아니라 볼 수 없는 연결이다. 하나님과 동행이었고 하나님께 붙들려 그분과 한 편 된 것이었다. 마치 부부가 멀리 떨어져 있어도 그 부부사이가 좋으면 연결이 되어 한 부부이고, 함께 살아도 그 사이가 멀어지면 손은 잡고 있어도 동상이몽의 남남일 수도 있다.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는 모든 면으로 하나였다. 하나님과 우리가 동거동행 하는 사이였는데 아담이 하나님과 등을 대고 돌아섰다. 말하자면 아담의 얼굴 방향이 이제 하나님과 다른 쪽을 보게 되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고 아담은 아담이다. 하나 되었던 관계를 하나님과 ‘화친’ 또는 ‘화목’이라고 한다면, 하나님과 반대로 살게 된 것은 하나님과 원수 된 상태다. 하나님과 하나 되어 화친과 화목으로 살지 않는 상태, 바로 그 상태를 하나님과 원수라고 한다. 이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삐뚤어져 있는 죄다(엡2:14-16).
학생이 학칙을 전부 지키며 학교를 다닌다 해도 교사가 자기에게 개인적으로 특별히 지도한 것은 지키지 않는 경우가 있는 것처럼, 또 학생이 지킬 일반 본분과 교사의 개별 지도를 성실하게 따라하는데 속으로는 그 교사 자체를 싫어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성경의 일반 말씀은 지켜도 자기 혼자 따로 해야 할 신앙양심의 성령의 지도를 거부할 수 있고, 말씀도 영감에도 순종하지만 마지못해서 순종하는 요나 같은 심정이 될 수도 있다.
그가 평소 일반적인 선지의 본분을 잘 했다. 말씀을 어기는 죄는 짓지 않았으나 자기에게 특별히 내린 사명, 즉 자기 신앙양심에 자기에게만 지시한 영감에는 죽음이 두려워 니느웨를 가지 않고 그 명령을 회피하는 불의의 죄를 지었다(욘1:3). 그리고 물고기 뱃속을 통과한 뒤 그는 불의의 죄를 회개하고 니느웨 성에 외쳐야 할 일을 다 하게 된다. 그러나 니느웨 처리 문제를 놓고 하나님과 맞섰다. 니느웨를 두고 처리하는 하나님과 요나의 자세와 진행 방향은 달랐고 그 인격의 교통이 단절되었으니 하나님과 원수 된 자리에 앉게 된다. 이는 하나님과 화친 화목 되어 하나 될 사람이 하나님과 원수 되는 죄를 지은 것이다(욘4:1-9).
욘1:3 ‘그러나 요나가 여호와의 낯을 피하려고 일어나 다시스로 도망하려 하여 욥바로 내려갔더니 ...’
욘4:1-9 ‘... 초막을 짓고 그 그늘 아래 앉아서 성읍이 어떻게 되는 것을 보려 하니라 ...’
▪ 낙망의 죄
죄 중에 가장 죄 같지 않은 죄인데 실은 제일 깊이 숨어 있는 가장 큰 죄가 바로 ‘낙망’의 죄다. 좀도둑은 담을 넘고 큰 도둑은 서류 한 장을 움직이는데, 천하를 훔치는 도둑은 도둑을 맞는 사람들에게 고맙다고 인사까지 받을 정도로 깊이 숨어 있다.
하나님께서 만물을 만드신 근본 이유가 우리 때문이다. 우리들은 세상이 존재하기도 전에 이미 하나님을 닮은 하나님 자녀로 만들어지도록 목적을 정한 바로 그 목적 대상이다. 이 목적 대상인 우리가 이 목적을 향하여 걸어가는 길에 지킬 것을 하나 실수하면 그것이 ‘죄’나 ‘불의’다. 그리고 이 길을 걸어가는데 자기 혼자 덜렁덜렁 걸어간 것은 ‘원수’된 죄다. 그러나 이런 것은 이 목적을 향하여 걸어가는 길에 옷이 찢어지고 발이 부르트고 온 몸에 입는 상처정도라고 한다면, 낙망이라는 것은 이 목적을 향하는 근본 방향을 틀어버리거나 아니면 그 방향을 포기하는 죄다(딛1:2, 시42:5).
학생으로 말하면 수학문제 하나를 틀리거나 잘못 풀거나 제 마음대로 풀어버리는 실수가 아니라 학교 다닐 마음이 없는 학생이라면 이는 학생으로서 가장 큰 문제다. 낙망의 죄라는 것은 우리에게 주신 택자의 근본 목표, 하나님의 완전한 자녀가 되는 하나님의 최종 목적 자체를 포기하고 그 목적에 삐뚤어진 죄다. 따라서 죄 중에 가장 무서운 죄이며 가장 높은 차원에 숨어 있는 죄이므로 사람들이 대개 그 죄의 크기를 잘 알지 못한다. 심지어 그런 죄야 그렇게 큰 죄가 되겠느냐고 오히려 반문을 하겠지만, 하나님께 삐뚤어진 죄 중에 이 죄도 분명히 죄라는 사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죄의 중요성을 두고 우리에게 자연계시로 알려주신 것이 많다. 모든 상황이 어려워도 희망을 가진 사람과 모든 상황이 좋은데 속으로 모든 것을 포기한 사람의 차이로 비교해 볼 수도 있다(사40:31, 삼상25:37).
딛1:2 ‘영생의 소망을 인함이라 이 영생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영원한 때 전부터 약속하신 것인데’
시42:5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그 얼굴의 도우심을 인하여 내가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사40:31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
삼상25:37 ‘아침에 나발이 포도주가 깬 후에 그 아내가 그에게 이 일을 고하매 그가 낙담하여 몸이 돌과 같이 되었더니’
▪ 4가지 종류의 죄를 보여주는 에덴동산
인간의 모든 죄가 시작되던 에덴동산 선악과 범죄로 비교를 해본다면,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고 명령한 것을 먹은 것은 말씀을 어긴 ‘죄’다(창3:6). 자기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자기 뜻대로 옷을 해 입은 것은 ‘불의’의 죄다(창3:7). 하나님을 피하여 동산 나무사이로 숨은 것은 하나님과 분리되는 ‘원수’된 죄다(창3:8). 하나님께서 책망하실 때 소망을 가지고 돌이켜 회개하지 않고 포기한 것은 ‘낙망’의 죄라고 할 수 있다(창3:12).
창3:6 ‘...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창3:7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 자기들의 몸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하였더라’
창3:8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아담과 그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창3:12 ‘아담이 가로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하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실과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에덴동산의 죄가 가장 겉으로 드러난 것은 선악과를 먹는 문제였지만, 그 선악과를 먹는 그 행동에도 위에서 말한 4가지 차원의 죄가 다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선악과를 먹은 이후 하나님께 정죄 받고 쫓겨나기까지의 행동 전체가 큰 범위에서 인간의 첫 죄의 4가지를 자세히 풀어서 보여 주고 있다.
④ 죄의 본질
이 모든 죄는 그 기준과 접근 차원에 따라 4가지로 나누어 본 것이다. 그렇게 나누는 이유는 죄의 형태와 차원을 분류하고 잘 파악하여 죄로 더불어 싸워 이기는데 편리하기 위함이다.
이렇게 4가지 형태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 죄이지만, 죄는 근본적으로 하나님께 삐뚤어진 것이라는 점에서는 단일의 죄요 죄성이다. 그렇다면 하나님께 삐뚤어졌다는 것은 결과적으로 그렇게 된 것인데, 그 이전에 그렇게 삐뚤어진 결과로 나타나게 된 원인, 그 삐뚤어진 죄의 근본 성질은 어떤 것인가? 이것을 죄의 본질이라고 한다. 죄의 본질은 자기중심이다.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나님께 붙들려 하나님으로만 살고 하나님 명령대로만 움직이고 그 뜻에 붙들려 하나님과 하나 되고 하나님께서 주신 목적을 향한 소망 속에 살아야 하는 것이 앞에서 살펴본 대로 본래 인간이 노력하고 걸어가야 할 4가지 차원의 길이다. 그런데 인간이 근본적으로 하나님과 전혀 상관없이 자기 스스로 자존자 하나님처럼 살겠다고 나섰으니 이것이 죄의 근본 본질이다. 이제는 하나님 중심이 아니고 자기중심이 되었다. 과거에는 하나님이 인간의 중심이었는데 이제는 인간이 자기를 자기의 중심에 세우게 되었다(창3:22).
인간이 근본적으로 자기중심의 존재가 되자 이제 하나님과 모든 면으로 맞서는 관계가 되고 인간의 모든 행동은 전부 하나님과 삐뚤어지지 않을 수가 없게 되었다. 오늘날 죄의 종류는 십계명으로 대표되는 아주 유명한 죄 10가지를 비롯하여 성경이 기록한 죄가 수도 없이 많고 또 각자 혼자만 아는 불의의 죄를 따져 들어가면 죄의 종류는 한도 없다. 그러나 이 모든 죄의 가장 깊은 속에는 인간이 하나님을 중심으로 살지 않고 하나님을 전제로 살지 않고 인간 자기가 하나님을 대신하여 자기의 중심에 자기를 두고 자기를 위해 자기대로 살게 되었다(고후5:15).
창3:22 ‘...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
고후5:15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
자기중심으로 살게 된 이상, 그 이후로 인간은 자기가 존재하고 있는 그 자체부터도 죄가 되고 그의 생각 그의 활동 하나하나가 전부 죄가 되었다. 인간이 자기중심이 되는 순간부터 하나님께는 삐뚤어지지 않을 수가 없게 된 것이다.
성경이 말하는 ‘악’이란 바로 이 면을 두고 말한다. 하나님중심으로 살아야 할 인간이 자기중심으로 살게 된 것, 이 행동이 악한 행동이요 이것이 모든 악한 행동의 근본 뿌리 되는 악이다. 따라서 ‘죄’라는 표현은 하나님께 삐뚤어졌다는 결과를 두고 말하고, ‘악’이라는 것은 그 중심이 자기중심이라는 면을 두고 말하는 것이니 동기를 두고 말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악은 죄로 이어질 수밖에 없고, 죄라는 것은 그 속에 깊은 내면을 살펴보면 악이라는 원인이 들어 있다(창3:5, 마20:14-15).
창3: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마20:14-15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나중 온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라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
(1) 죄
① 죄의 정의
죄는 하나님께 ‘삐뚤어진 것’이다. 하나님께 삐뚤어진 것이 아니면 성경이 말하는 죄와 다른 세상의 죄다. 국법을 어긴 죄나 도덕에 잘못된 죄 또는 세상 어떤 조직과 질서에서 말하는 죄는 성경이 말하는 죄와 다르다. ‘죄’라는 단어는 같이 사용해도 무엇을 기준으로 어디에 삐뚤어졌느냐는 것이 문제다. 하나님만이 죄를 결정하는 유일한 기준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바로 접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에게 적어주신 그 말씀을 기준으로 삼아 죄를 판단하게 된다. 하나님의 법에 삐뚤어졌을 때, 그것만을 성경은 죄라고 한다(사53:6).
사53: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② 죄라는 단어의 혼동
흔히 성경의 죄를 세상에서 사용하는 죄라는 단어와 혼동하여 오늘 말세 교회의 속화가 가속되고 있다.
국법을 지키는 것은, 성경이 성도에게 자기가 사는 국가의 법을 지키라고 했기 때문에 지키는 것이지 국법을 범하는 것 자체가 지옥 갈 죄가 되기 때문에 국법을 지키는 것은 아니다. 그 나라 백성으로 그 나라를 살아가는 데 필요한 법일 뿐이다. 또 도덕은 사람의 양심이 기준이며 자기를 엄하게 규제하는 법이다. 이 법은 다른 종교를 만들어 사람을 수양하도록 만드는 데에는 기여를 했지만, 이 법을 어기는 것은 구원과 전혀 상관이 없다.
그러나 현 교회와 세상은, 성경 죄와 세상 죄를 혼동하여 기독교를 세상의 국법이나 도덕법을 지키는 세상 양심집단으로 취급하고 있으며 이런 현상은 너무도 심각한 수준에 이르러 이미 교회 거의를 다 삼킨 정도다. 따라서 이 시대 교회가 특별히 견지해야 할 교리가 여럿 있지만 죄에 대한 정의도 그 중에 하나다.
③ 죄의 종류
죄는 하나님께 삐뚤어진 것이라는 단 하나의 기준으로 간단하게 정의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 우리 신앙생활에 죄와 싸우고 죄로부터 돌이켜 의롭게 살기 위해서는 죄가 어떤 차원에서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고 활동하는지를 자세하게 알수록 도움이 된다. 크게 4가지 차원에서 죄를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죄를 4가지 면으로 살펴본다는 것은, 달리 말하면 우리는 4가지 차원으로 하나님을 상대하고 있다. 이 쪽으로는 잘 하고 있지만 다른 쪽으로는 부족할 수 있기 때문에 성경이 가르치는 모든 면을 함께 살피는 것이 필요하다.
▪하나님의 법을 어긴 죄 - ‘죄’
▪하나님의 뜻을 어긴 죄 - ‘불의’의 죄
▪하나님을 배반 한 죄 - ‘원수’된 죄
▪하나님 소망을 버린 죄 - ‘절망’의 죄
▪죄 - 하나님의 법을 어긴 죄
하나님께 삐뚤어진 죄 중에서도 제일 첫째로 기억할 죄는 하나님의 말씀, 그분의 명령을 어긴 ‘죄’입니다. 참고로 죄라고 표현할 때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모든 종류의 죄를 다 포함한 넓은 의미의 죄가 있고, 하나님의 말씀을 어긴 행동만을 말하는 좁은 의미의 죄가 있다(창2:17).
신구약 성경 66권의 말씀을 어기면 죄다. 하라는 것을 하지 않아도 죄이고, 하지 말라는 것을 해도 죄가 된다. 하라는 것을 다 하지 않아도 죄가 되며, 하기는 다 했으나 분량이 모자라도 죄다. 무릇 죄의 종류 중 첫째 죄는 다른 죄보다는 가장 초보적인 단계에서 지켜야 할 것이지만, 성경 66권 말씀을 기준으로 냉정하게 살펴본다면, 우리는 죄 없는 사람이 없다. 그리고 그 죄로부터 의롭게 될 수 있는 가능성도 전혀 없다. 이런 의미에서 사람은 전적 죄인이다(롬3:9-11, 23).
▪ 불의의 죄
하나님께 삐뚤어진 죄 중에서도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에 개별적으로 하나님의 원하는 뜻을 감동시켜 주시는데 자기 신앙양심을 통해 나타나는 하나님의 뜻을 어긴 죄는 ‘불의’의 죄라고 한다(행24:16).
죄의 종류 중에서 앞에 말씀드린 ‘말씀을 어긴 죄’는 그 기준이 성경이다. 성경은 모든 믿는 사람에게 동시에 해당되는 말씀이다. 그러나 그 성경 전체 말씀 중에서 자기 현실마다 따로 자기에게 특별히 지킬 것을 원하는 말씀은 따로 있다(신28:1). 또 그 말씀을 지키되 어떻게 지켜야 할 것을 성령이 우리 믿는 사람에게는 신앙양심을 통해 직접 말씀한다. 이를 성령의 감화와 감동이라 하며, 줄여서 ‘영감’이라고 한다.
보통 영감이라 하면 성경기록 영감만을 영감이라고 생각하여 초대교회 이후 영감역사는 종료되었다고 하는데, 여기서 말하는 영감은 성경기록영감 외에도 성령이 오늘 우리 각자 마음속에 말씀대로 살도록 지도하고 또 우리 생활 속에서 어떻게 해야 할 것을 각자에 따라 개별적으로 역사하는 영감을 말한다(요일2:27).
창2:1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롬3:9-11 ‘... 다 죄 아래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기록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
롬3: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행24:16 ‘... 나도 하나님과 사람을 대하여 항상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힘쓰노라’
신28:1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
요일2:27 ‘너희는 주께 받은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
엡2:14-16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이 모든 성령의 역사 전체를 영감으로 표현한다면, 바로 자기 양심에서 말씀대로 살도록 역사하는 하나님의 뜻이 각 개인에게 영감을 통해 나타나는 것이니 그것에 삐뚤어지면 ‘불의’라고 합니다.
▪ 원수 된 죄
하나님과 우리 사이는 원래 하나였다. 연결이 되어 있었기 때문에 어떤 문제도 없었다. 그런데 이 연결이 끊어져 버렸다. 이 연결은 전선연결이나 무선연결이나 손과 손으로 접촉된 연결이 아니라 볼 수 없는 연결이다. 하나님과 동행이었고 하나님께 붙들려 그분과 한 편 된 것이었다. 마치 부부가 멀리 떨어져 있어도 그 부부사이가 좋으면 연결이 되어 한 부부이고, 함께 살아도 그 사이가 멀어지면 손은 잡고 있어도 동상이몽의 남남일 수도 있다.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는 모든 면으로 하나였다. 하나님과 우리가 동거동행 하는 사이였는데 아담이 하나님과 등을 대고 돌아섰다. 말하자면 아담의 얼굴 방향이 이제 하나님과 다른 쪽을 보게 되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고 아담은 아담이다. 하나 되었던 관계를 하나님과 ‘화친’ 또는 ‘화목’이라고 한다면, 하나님과 반대로 살게 된 것은 하나님과 원수 된 상태다. 하나님과 하나 되어 화친과 화목으로 살지 않는 상태, 바로 그 상태를 하나님과 원수라고 한다. 이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삐뚤어져 있는 죄다(엡2:14-16).
학생이 학칙을 전부 지키며 학교를 다닌다 해도 교사가 자기에게 개인적으로 특별히 지도한 것은 지키지 않는 경우가 있는 것처럼, 또 학생이 지킬 일반 본분과 교사의 개별 지도를 성실하게 따라하는데 속으로는 그 교사 자체를 싫어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성경의 일반 말씀은 지켜도 자기 혼자 따로 해야 할 신앙양심의 성령의 지도를 거부할 수 있고, 말씀도 영감에도 순종하지만 마지못해서 순종하는 요나 같은 심정이 될 수도 있다.
그가 평소 일반적인 선지의 본분을 잘 했다. 말씀을 어기는 죄는 짓지 않았으나 자기에게 특별히 내린 사명, 즉 자기 신앙양심에 자기에게만 지시한 영감에는 죽음이 두려워 니느웨를 가지 않고 그 명령을 회피하는 불의의 죄를 지었다(욘1:3). 그리고 물고기 뱃속을 통과한 뒤 그는 불의의 죄를 회개하고 니느웨 성에 외쳐야 할 일을 다 하게 된다. 그러나 니느웨 처리 문제를 놓고 하나님과 맞섰다. 니느웨를 두고 처리하는 하나님과 요나의 자세와 진행 방향은 달랐고 그 인격의 교통이 단절되었으니 하나님과 원수 된 자리에 앉게 된다. 이는 하나님과 화친 화목 되어 하나 될 사람이 하나님과 원수 되는 죄를 지은 것이다(욘4:1-9).
욘1:3 ‘그러나 요나가 여호와의 낯을 피하려고 일어나 다시스로 도망하려 하여 욥바로 내려갔더니 ...’
욘4:1-9 ‘... 초막을 짓고 그 그늘 아래 앉아서 성읍이 어떻게 되는 것을 보려 하니라 ...’
▪ 낙망의 죄
죄 중에 가장 죄 같지 않은 죄인데 실은 제일 깊이 숨어 있는 가장 큰 죄가 바로 ‘낙망’의 죄다. 좀도둑은 담을 넘고 큰 도둑은 서류 한 장을 움직이는데, 천하를 훔치는 도둑은 도둑을 맞는 사람들에게 고맙다고 인사까지 받을 정도로 깊이 숨어 있다.
하나님께서 만물을 만드신 근본 이유가 우리 때문이다. 우리들은 세상이 존재하기도 전에 이미 하나님을 닮은 하나님 자녀로 만들어지도록 목적을 정한 바로 그 목적 대상이다. 이 목적 대상인 우리가 이 목적을 향하여 걸어가는 길에 지킬 것을 하나 실수하면 그것이 ‘죄’나 ‘불의’다. 그리고 이 길을 걸어가는데 자기 혼자 덜렁덜렁 걸어간 것은 ‘원수’된 죄다. 그러나 이런 것은 이 목적을 향하여 걸어가는 길에 옷이 찢어지고 발이 부르트고 온 몸에 입는 상처정도라고 한다면, 낙망이라는 것은 이 목적을 향하는 근본 방향을 틀어버리거나 아니면 그 방향을 포기하는 죄다(딛1:2, 시42:5).
학생으로 말하면 수학문제 하나를 틀리거나 잘못 풀거나 제 마음대로 풀어버리는 실수가 아니라 학교 다닐 마음이 없는 학생이라면 이는 학생으로서 가장 큰 문제다. 낙망의 죄라는 것은 우리에게 주신 택자의 근본 목표, 하나님의 완전한 자녀가 되는 하나님의 최종 목적 자체를 포기하고 그 목적에 삐뚤어진 죄다. 따라서 죄 중에 가장 무서운 죄이며 가장 높은 차원에 숨어 있는 죄이므로 사람들이 대개 그 죄의 크기를 잘 알지 못한다. 심지어 그런 죄야 그렇게 큰 죄가 되겠느냐고 오히려 반문을 하겠지만, 하나님께 삐뚤어진 죄 중에 이 죄도 분명히 죄라는 사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죄의 중요성을 두고 우리에게 자연계시로 알려주신 것이 많다. 모든 상황이 어려워도 희망을 가진 사람과 모든 상황이 좋은데 속으로 모든 것을 포기한 사람의 차이로 비교해 볼 수도 있다(사40:31, 삼상25:37).
딛1:2 ‘영생의 소망을 인함이라 이 영생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영원한 때 전부터 약속하신 것인데’
시42:5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그 얼굴의 도우심을 인하여 내가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사40:31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
삼상25:37 ‘아침에 나발이 포도주가 깬 후에 그 아내가 그에게 이 일을 고하매 그가 낙담하여 몸이 돌과 같이 되었더니’
▪ 4가지 종류의 죄를 보여주는 에덴동산
인간의 모든 죄가 시작되던 에덴동산 선악과 범죄로 비교를 해본다면,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고 명령한 것을 먹은 것은 말씀을 어긴 ‘죄’다(창3:6). 자기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자기 뜻대로 옷을 해 입은 것은 ‘불의’의 죄다(창3:7). 하나님을 피하여 동산 나무사이로 숨은 것은 하나님과 분리되는 ‘원수’된 죄다(창3:8). 하나님께서 책망하실 때 소망을 가지고 돌이켜 회개하지 않고 포기한 것은 ‘낙망’의 죄라고 할 수 있다(창3:12).
창3:6 ‘...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창3:7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 자기들의 몸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하였더라’
창3:8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아담과 그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창3:12 ‘아담이 가로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하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실과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에덴동산의 죄가 가장 겉으로 드러난 것은 선악과를 먹는 문제였지만, 그 선악과를 먹는 그 행동에도 위에서 말한 4가지 차원의 죄가 다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선악과를 먹은 이후 하나님께 정죄 받고 쫓겨나기까지의 행동 전체가 큰 범위에서 인간의 첫 죄의 4가지를 자세히 풀어서 보여 주고 있다.
④ 죄의 본질
이 모든 죄는 그 기준과 접근 차원에 따라 4가지로 나누어 본 것이다. 그렇게 나누는 이유는 죄의 형태와 차원을 분류하고 잘 파악하여 죄로 더불어 싸워 이기는데 편리하기 위함이다.
이렇게 4가지 형태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 죄이지만, 죄는 근본적으로 하나님께 삐뚤어진 것이라는 점에서는 단일의 죄요 죄성이다. 그렇다면 하나님께 삐뚤어졌다는 것은 결과적으로 그렇게 된 것인데, 그 이전에 그렇게 삐뚤어진 결과로 나타나게 된 원인, 그 삐뚤어진 죄의 근본 성질은 어떤 것인가? 이것을 죄의 본질이라고 한다. 죄의 본질은 자기중심이다.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나님께 붙들려 하나님으로만 살고 하나님 명령대로만 움직이고 그 뜻에 붙들려 하나님과 하나 되고 하나님께서 주신 목적을 향한 소망 속에 살아야 하는 것이 앞에서 살펴본 대로 본래 인간이 노력하고 걸어가야 할 4가지 차원의 길이다. 그런데 인간이 근본적으로 하나님과 전혀 상관없이 자기 스스로 자존자 하나님처럼 살겠다고 나섰으니 이것이 죄의 근본 본질이다. 이제는 하나님 중심이 아니고 자기중심이 되었다. 과거에는 하나님이 인간의 중심이었는데 이제는 인간이 자기를 자기의 중심에 세우게 되었다(창3:22).
인간이 근본적으로 자기중심의 존재가 되자 이제 하나님과 모든 면으로 맞서는 관계가 되고 인간의 모든 행동은 전부 하나님과 삐뚤어지지 않을 수가 없게 되었다. 오늘날 죄의 종류는 십계명으로 대표되는 아주 유명한 죄 10가지를 비롯하여 성경이 기록한 죄가 수도 없이 많고 또 각자 혼자만 아는 불의의 죄를 따져 들어가면 죄의 종류는 한도 없다. 그러나 이 모든 죄의 가장 깊은 속에는 인간이 하나님을 중심으로 살지 않고 하나님을 전제로 살지 않고 인간 자기가 하나님을 대신하여 자기의 중심에 자기를 두고 자기를 위해 자기대로 살게 되었다(고후5:15).
창3:22 ‘...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
고후5:15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
자기중심으로 살게 된 이상, 그 이후로 인간은 자기가 존재하고 있는 그 자체부터도 죄가 되고 그의 생각 그의 활동 하나하나가 전부 죄가 되었다. 인간이 자기중심이 되는 순간부터 하나님께는 삐뚤어지지 않을 수가 없게 된 것이다.
성경이 말하는 ‘악’이란 바로 이 면을 두고 말한다. 하나님중심으로 살아야 할 인간이 자기중심으로 살게 된 것, 이 행동이 악한 행동이요 이것이 모든 악한 행동의 근본 뿌리 되는 악이다. 따라서 ‘죄’라는 표현은 하나님께 삐뚤어졌다는 결과를 두고 말하고, ‘악’이라는 것은 그 중심이 자기중심이라는 면을 두고 말하는 것이니 동기를 두고 말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악은 죄로 이어질 수밖에 없고, 죄라는 것은 그 속에 깊은 내면을 살펴보면 악이라는 원인이 들어 있다(창3:5, 마20:14-15).
창3: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마20:14-15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나중 온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라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