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구원론과 삼분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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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2.11 16:10
(4) 구원론과 삼분론
① 두 종류의 단어사전
이분설과 삼분론은 같은 단어를 사용하지만 그 단어가 말하는 실체는 전혀 다른 경우가 많다. 동명이인이 많다는 뜻이다. 이는 양측이 사용하는 사전의 정의가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참고로, 이분설의 입장으로 선입관이 굳어진 분들은 삼분론을 대할 때 그 사용하는 단어 때문에 후에 아주 크게 실수를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것을 유의해야 한다.
인론에서 사람의 구성 요소를 삼분으로 정리해 두는 것이 필요한 것은 우선 성경이 그렇게 말을 했기 때문이고 또 두번째로는 신앙현실에서도 영의 존재를 알지 못하면 믿는 사람이 중생 이후 노력해야 할 부분에 혼동이 많아 신앙에 손해가 많기 때문이다.
영의 존재를 바로 알아야 하는 이유는 속죄론과 구원론에서 다시 살펴보겠지만 믿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중생은 바로 영의 중생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지금까지 이분설로서는 영과 마음을 혼동하였기 때문에 중생이라는 단어는 알아도 그 중생이 의미하는 바를 너무 혼동하였고 심지어 마음이 중생한다고 생각하여 믿는 사람이 평생 노력해야 할 방향을 아주 엉뚱하게 안내를 했다.
즉, 중생 후에는 마음을 말씀대로 바로 살도록 하기 위해 죽는 날까지 쉬임 없는 전면투쟁을 해야 하는데 마음이 영이고 중생된 존재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믿는 사람의 마음은 자연적으로 성화가 되어나가는 줄로 오해를 하고 있다.
삼분론의 핵심은 마음은 물질이고 영은 영물이며, 사람의 중생은 영의 중생이며 중생된 영은 다시는 범죄하지 않는 완전 중생이므로 믿는 사람이 평생에 힘쓸 일은 오로지 마음과 몸의 성화라는 중생교리다. 백영희 삼분설은 ‘중생된 영은 범죄하지 않는다’는 교리를 핵심 교리로 제시하는 바, 한국의 대신학자로 정평난 분들까지도 이 교리를 ‘사람의 마음이 죄를 짓지 않는다’는 교리가 발표되었다고 번역을 한 다음, 그 오역된 내용을 가지고 비판하는 경우가 거의 전부였다.
② 건설구원론과 삼분론
▪ 두 교리의 조화와 일치
중생된 사람은 중생되는 순간 ‘단번으로’ ‘영원히’ ‘완전하게’ 해결되는 부분이 있으니 이를 기본구원이라고 했다. 영이 중생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천국을 가게 되는 것은 두 번 반복이 없다. 이는 전적 하나님의 은혜이며 인간이 알지도 못할 때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대속을 입혀 그렇게 만들었다. 이것이 기본구원론이다(롬3:22, 8:1, 갈2:16, 엡2:8-9, 히7:27, 9:25-26, 10:10).
그리고 중생된 사람은 이제 천국 가는 문제는 해결이 되었으나, 평생 자기 심신을 얼마나 어떻게 성화시켰느냐에 따라 차이가 있으므로 이 평생의 건설에 관련된 면을 건설구원론이라고 했다(마5:19, 7:21-29, 마19:16-30, 고전3:12-15, 벧전2:2).
롬3:22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롬8: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갈2:16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줄 아는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엡2:8-9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히7:27 ‘저가 저 대제사장들이 먼저 자기 죄를 위하고 다음에 백성의 죄를 위하여 날마다 제사 드리는 것과 같이 할 필요가 없으니 이는 저가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음이니라’
히9:25-26 ‘대제사장이 해마다 다른 것의 피로써 성소에 들어가는 것 같이 자주 자기를 드리려고 아니하실찌니
그리하면 그가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자주 고난을 받았어야 할 것이로되 이제 자기를 단번에 제사로 드려 죄를 없게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느니라’
히10:10 ‘이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마5:19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마7:21-29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요 나의 이 말을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
마19:16-30 ‘...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 네가 생명에 들어 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
고전3:12-15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각각 공력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력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력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니라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력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누구든지 공력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기는 구원을 얻되 불 가운데서 얻은 것 같으리라’
벧전2:2 ‘...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이 구원론의 전제는, 한 번 중생되면 다시는 죄와 상관이 없고 완전히 죄로부터 해결이 되는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기본구원론에 대하여는 정통교리도 이렇게 깨닫고 있었으나 인성 구조를 이분론으로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믿는 사람 속에 어느 부분이 다시는 죄와 상관없이 중생되었는지를 찾지 못하게 된다.
따라서 삼분론은 위에 제시한 성구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마음은 영적 존재일 수 없으니 마음 안에 영적 존재가 따로 있다는 것을 확정지을 수 있고, 또한 구원론에서도 기본구원으로 받은 중생은 마음과는 전혀 상관이 없으니 마음 안에 영적 존재가 따로 있다는 것을 확정지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 두 교리가 연결되면, 중생된 영은 범죄하지 않는다는 교리가 도출되므로, 사람이 처음 믿을 때 그 영이 중생하게 되고, 이 영은 다시는 범죄하지 않는 대속이 입혀졌으므로 이를 기본구원이라 한다. 이 기본구원을 입은 사람이 자기 마음과 몸을 평생 회개시켜 성화시키는 과정이 건설구원이라고 정리할 수 있게 되었다.
▪ 두 교리의 중요성
모든 교리는 사실 우리 신앙생활에 있어 보이지 않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러나 구원론은 바로 우리 매일 생활에 늘 나가야 할 방향을 잡아주고 또 모든 행동의 기준이 되고 있다.
초대교회로부터 오늘까지 교회 교리의 발전사는 신앙의 기준으로 성경에 대한 확립이 주후 1세기 기간에 먼저 있었고, 그 다음 4세기까지 성경으로 섬길 하나님을 신론으로 확립했다. 그 다음 5세기까지는 타락한 우리를 구하러 오신 예수님에 대한 교리를 신인양성일위로 확립했고, 이 예수님이 만든 구원을 받아 천국 가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16세기에 이르러 루터와 칼빈이 해결을 했다. 이제 마지막 남은 단계는, 사람이 믿고 나면 중생과 함께 천국이 확정되는데, 왜 평생토록 말씀대로 살아야 하는가? 라는 의문이 제기 되었다. 그 숙제가 바로 건설구원교리로 해결이 되었다.
즉, 사람이 중생되는 것은 마음이 아니고 영이니, 영은 중생되는 순간 다시는 죄와 상관없이 중생되고, 중생된 이후 평생은 마음과 몸을 회개시켜 깨끗하게 만드는 성화의 건설이 우리가 평생 노력할 일이다. 이를 요약하면, 중생된 영은 범죄하지 않고 마음과 몸만 범죄하는 것이니, 믿는 사람은 자기 심신의 성화를 위해 회개하고 말씀대로 열심히 사는 것이다.
그리고, 이 교리체계는 정통교리가 그 동안 구원론의 미진으로 난해절로 남겨둔 부분을 전부 해결하는 열쇠다. 건설구원론을 이렇게 확립하지 않고 오늘까지 교회가 루터와 칼빈의 구원론으로만 성경을 대하여, 천국 가는 기본구원은 확정을 지워놓고도 믿은 이후에 노력할 건설구원을 혼동하여 무수한 의문만 가져왔으나, 백영희 교리체계로 그 모든 어두움이 걷히게 되었다. 총공회의 신앙노선과 교리체계를 소개하는 의미는 바로 여기에 있다.
오늘 말세지 말에 나타나는 헤아릴 수 없는 모든 종류의 죄와 타락을 두고, 백영희 교리체계가 아니라면 신앙 길을 바르게 걸어가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보는 것이 공회의 시각이다. 또한 교계가 교권으로 타락하는 것을 막는 것은 백영희 행정노선이 아니면 불가능하다고 보는 것이 공회의 시각이다. 백영희 신앙노선을 간단하게라도 소개하는 이유는 교단 홍보가 아니라 신앙노선 때문이다.
① 두 종류의 단어사전
이분설과 삼분론은 같은 단어를 사용하지만 그 단어가 말하는 실체는 전혀 다른 경우가 많다. 동명이인이 많다는 뜻이다. 이는 양측이 사용하는 사전의 정의가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참고로, 이분설의 입장으로 선입관이 굳어진 분들은 삼분론을 대할 때 그 사용하는 단어 때문에 후에 아주 크게 실수를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것을 유의해야 한다.
인론에서 사람의 구성 요소를 삼분으로 정리해 두는 것이 필요한 것은 우선 성경이 그렇게 말을 했기 때문이고 또 두번째로는 신앙현실에서도 영의 존재를 알지 못하면 믿는 사람이 중생 이후 노력해야 할 부분에 혼동이 많아 신앙에 손해가 많기 때문이다.
영의 존재를 바로 알아야 하는 이유는 속죄론과 구원론에서 다시 살펴보겠지만 믿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중생은 바로 영의 중생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지금까지 이분설로서는 영과 마음을 혼동하였기 때문에 중생이라는 단어는 알아도 그 중생이 의미하는 바를 너무 혼동하였고 심지어 마음이 중생한다고 생각하여 믿는 사람이 평생 노력해야 할 방향을 아주 엉뚱하게 안내를 했다.
즉, 중생 후에는 마음을 말씀대로 바로 살도록 하기 위해 죽는 날까지 쉬임 없는 전면투쟁을 해야 하는데 마음이 영이고 중생된 존재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믿는 사람의 마음은 자연적으로 성화가 되어나가는 줄로 오해를 하고 있다.
삼분론의 핵심은 마음은 물질이고 영은 영물이며, 사람의 중생은 영의 중생이며 중생된 영은 다시는 범죄하지 않는 완전 중생이므로 믿는 사람이 평생에 힘쓸 일은 오로지 마음과 몸의 성화라는 중생교리다. 백영희 삼분설은 ‘중생된 영은 범죄하지 않는다’는 교리를 핵심 교리로 제시하는 바, 한국의 대신학자로 정평난 분들까지도 이 교리를 ‘사람의 마음이 죄를 짓지 않는다’는 교리가 발표되었다고 번역을 한 다음, 그 오역된 내용을 가지고 비판하는 경우가 거의 전부였다.
② 건설구원론과 삼분론
▪ 두 교리의 조화와 일치
중생된 사람은 중생되는 순간 ‘단번으로’ ‘영원히’ ‘완전하게’ 해결되는 부분이 있으니 이를 기본구원이라고 했다. 영이 중생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천국을 가게 되는 것은 두 번 반복이 없다. 이는 전적 하나님의 은혜이며 인간이 알지도 못할 때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대속을 입혀 그렇게 만들었다. 이것이 기본구원론이다(롬3:22, 8:1, 갈2:16, 엡2:8-9, 히7:27, 9:25-26, 10:10).
그리고 중생된 사람은 이제 천국 가는 문제는 해결이 되었으나, 평생 자기 심신을 얼마나 어떻게 성화시켰느냐에 따라 차이가 있으므로 이 평생의 건설에 관련된 면을 건설구원론이라고 했다(마5:19, 7:21-29, 마19:16-30, 고전3:12-15, 벧전2:2).
롬3:22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롬8: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갈2:16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줄 아는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엡2:8-9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히7:27 ‘저가 저 대제사장들이 먼저 자기 죄를 위하고 다음에 백성의 죄를 위하여 날마다 제사 드리는 것과 같이 할 필요가 없으니 이는 저가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음이니라’
히9:25-26 ‘대제사장이 해마다 다른 것의 피로써 성소에 들어가는 것 같이 자주 자기를 드리려고 아니하실찌니
그리하면 그가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자주 고난을 받았어야 할 것이로되 이제 자기를 단번에 제사로 드려 죄를 없게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느니라’
히10:10 ‘이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마5:19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마7:21-29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요 나의 이 말을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
마19:16-30 ‘...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 네가 생명에 들어 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
고전3:12-15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각각 공력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력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력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니라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력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누구든지 공력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기는 구원을 얻되 불 가운데서 얻은 것 같으리라’
벧전2:2 ‘...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이 구원론의 전제는, 한 번 중생되면 다시는 죄와 상관이 없고 완전히 죄로부터 해결이 되는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기본구원론에 대하여는 정통교리도 이렇게 깨닫고 있었으나 인성 구조를 이분론으로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믿는 사람 속에 어느 부분이 다시는 죄와 상관없이 중생되었는지를 찾지 못하게 된다.
따라서 삼분론은 위에 제시한 성구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마음은 영적 존재일 수 없으니 마음 안에 영적 존재가 따로 있다는 것을 확정지을 수 있고, 또한 구원론에서도 기본구원으로 받은 중생은 마음과는 전혀 상관이 없으니 마음 안에 영적 존재가 따로 있다는 것을 확정지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 두 교리가 연결되면, 중생된 영은 범죄하지 않는다는 교리가 도출되므로, 사람이 처음 믿을 때 그 영이 중생하게 되고, 이 영은 다시는 범죄하지 않는 대속이 입혀졌으므로 이를 기본구원이라 한다. 이 기본구원을 입은 사람이 자기 마음과 몸을 평생 회개시켜 성화시키는 과정이 건설구원이라고 정리할 수 있게 되었다.
▪ 두 교리의 중요성
모든 교리는 사실 우리 신앙생활에 있어 보이지 않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러나 구원론은 바로 우리 매일 생활에 늘 나가야 할 방향을 잡아주고 또 모든 행동의 기준이 되고 있다.
초대교회로부터 오늘까지 교회 교리의 발전사는 신앙의 기준으로 성경에 대한 확립이 주후 1세기 기간에 먼저 있었고, 그 다음 4세기까지 성경으로 섬길 하나님을 신론으로 확립했다. 그 다음 5세기까지는 타락한 우리를 구하러 오신 예수님에 대한 교리를 신인양성일위로 확립했고, 이 예수님이 만든 구원을 받아 천국 가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16세기에 이르러 루터와 칼빈이 해결을 했다. 이제 마지막 남은 단계는, 사람이 믿고 나면 중생과 함께 천국이 확정되는데, 왜 평생토록 말씀대로 살아야 하는가? 라는 의문이 제기 되었다. 그 숙제가 바로 건설구원교리로 해결이 되었다.
즉, 사람이 중생되는 것은 마음이 아니고 영이니, 영은 중생되는 순간 다시는 죄와 상관없이 중생되고, 중생된 이후 평생은 마음과 몸을 회개시켜 깨끗하게 만드는 성화의 건설이 우리가 평생 노력할 일이다. 이를 요약하면, 중생된 영은 범죄하지 않고 마음과 몸만 범죄하는 것이니, 믿는 사람은 자기 심신의 성화를 위해 회개하고 말씀대로 열심히 사는 것이다.
그리고, 이 교리체계는 정통교리가 그 동안 구원론의 미진으로 난해절로 남겨둔 부분을 전부 해결하는 열쇠다. 건설구원론을 이렇게 확립하지 않고 오늘까지 교회가 루터와 칼빈의 구원론으로만 성경을 대하여, 천국 가는 기본구원은 확정을 지워놓고도 믿은 이후에 노력할 건설구원을 혼동하여 무수한 의문만 가져왔으나, 백영희 교리체계로 그 모든 어두움이 걷히게 되었다. 총공회의 신앙노선과 교리체계를 소개하는 의미는 바로 여기에 있다.
오늘 말세지 말에 나타나는 헤아릴 수 없는 모든 종류의 죄와 타락을 두고, 백영희 교리체계가 아니라면 신앙 길을 바르게 걸어가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보는 것이 공회의 시각이다. 또한 교계가 교권으로 타락하는 것을 막는 것은 백영희 행정노선이 아니면 불가능하다고 보는 것이 공회의 시각이다. 백영희 신앙노선을 간단하게라도 소개하는 이유는 교단 홍보가 아니라 신앙노선 때문이다.
칼빈은 기독교강요에서 영적 생명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아담이 그의 창조주와 연결되어 있던 것이 그에게 영적 생명이 되었던 것과 같이, 창조주에게서 멀어진 것은 영의 죽음이 되었다."
여기서 "멀어진 것"이라 표현된 부분은, 앞서 "연결되어 있던 것"에 대비하여 생각해볼 때, "연결이 끊어진 것"으로 이해해도 만무하다. 간단히 말하면, 영은 "하나님과 연결되면 생명, 하나님과 끊어지면 죽음"이라는 단순성을 지닌다는 의미이다. 이것은 백영희 삼분론의 영에 대한 설명과 동일하다.
"아담이 그의 창조주와 연결되어 있던 것이 그에게 영적 생명이 되었던 것과 같이, 창조주에게서 멀어진 것은 영의 죽음이 되었다."
여기서 "멀어진 것"이라 표현된 부분은, 앞서 "연결되어 있던 것"에 대비하여 생각해볼 때, "연결이 끊어진 것"으로 이해해도 만무하다. 간단히 말하면, 영은 "하나님과 연결되면 생명, 하나님과 끊어지면 죽음"이라는 단순성을 지닌다는 의미이다. 이것은 백영희 삼분론의 영에 대한 설명과 동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