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삼분론의 성경 근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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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2.11 16:05
(3) 삼분론의 성경 근거
앞에서 삼분론을 아주 간단하게 소개했다. 일일이 성경 근거를 제시한다면 그 분량이 너무 많을 것이므로 종합 교리서에서 본격적으로 소개할 것이며, 여기서는 총론적으로 성경 근거를 제시한다.
참고로, 백영희 신앙노선은 성경을 해석할 때 원어 때문에 오히려 성경 해석이 오도되는 경우를 대단히 조심하는 편이다. 성경을 원어 단어와 문법적으로만 접근하고 성경 전체에서 사용된 의미를 모른다면 원어 지식 때문에 오히려 성경해석이 막힌다는 입장이다.
성경은 기록될 때부터 원어의 언어적 접근으로는 그 본 해석이 불가능하도록 되어 있다는 것이 백영희 신앙노선의 지적이다. 일반적으로 흔하지 않은 주장이겠지만, 새겨보고 생각하면 이 주장이 바로 성경이고, 그 반대론이 신학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① 히4:12과 살전5:23의 ‘영과 혼’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라고 했다. 사람에게 있어 ‘영’은 마음의 다른 이름이거나 또는 마음의 작용에 관계된 이름이 아니라 실체적 요소임을 가르치는 성구다. 본문에서 ‘관절과 골수’는 신체의 구체적 부분을 예시한 것이고 ‘혼’과 다른 존재인 ‘영’이 있음을 보여준다.
물론 이 성구는, 이분설에서 관절과 골수가 몸인데 둘로 표현했듯이 혼과 영도 마음을 두 가지로 표현한 것이라고 해석한다. 그렇다. 이 성구 하나만을 가지고는 삼분론의 근거도 될 수 있지만 이분설의 반론도 가능하다. 그러나 살전5:23에서 ‘너희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 없이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하신 본문에서 히4:12의 관절과 골수라는 신체 두 부분을 ‘몸’으로 통칭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 보아야 한다.
② 롬8:6의 ‘육신의 생각’
본문은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라고 했다. 본문의 ‘영’은 사람의 영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 곧 성령을 가리켰다. 삼분론과 관련하여 이 성구에서 눈여겨봐야 할 것은, ‘육신의 생각’이다.
이분설은 사람을 영물로 된 영혼과 물질로 된 몸으로만 나누고 있다. 생각을 하는 것은 영물로 된 영혼이지 물질로 된 몸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 원어적 사용이 어찌 되었든지 상관없이 육신에게 생각이 있다는 것이 본문이다. 이분설로는 육신에게는 따로 생각이 존재할 수가 없다. 삼분론이 마음을 몸과 함께 물질로 분류하는 근거가 바로 여기에 있다.
③ 전3:20-21의 ‘짐승의 혼’
‘다 흙으로 말미암았으므로 다 흙으로 돌아가나니 다 한 곳으로 가거니와 인생의 혼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혼은 아래 곧 땅으로 내려가는 줄을 누가 알랴’는 것이 본문이다. 짐승은 창2:19에서 흙으로만 만든 물질 존재다. 짐승에게 물질인 육체 안에 또 다른 존재가 있다면, 그 원어의 단어를 놓고는 아무리 연구해 봐야 해석이 나올 수 없다. 마음이 물질이며, 짐승에게도 마음이 있다는 말씀이다.
④ 창6:3의 ‘육체가 됨이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고 했다. 사람이 타락하면 영은 죽고 육으로만 살게 된다. 육으로만 사는 인간이 가진 것을 두고 여기는 육체라고 했다. 범죄한 사람이 가지고 살 수 있는 것은 현재 안 믿는 사람들이 무엇과 무엇을 가지고 사는지를 보면 바로 성경 해석이 된다.
영적 존재는 죽고 물질로 된 존재만 살아서 움직이고 있는 것이 타락한 후 인간의 구성 요소입니다. 안 믿는 사람도 몸과 함께 마음을 가지고 있다. 안 믿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그 마음, 그것이 바로 물질로 된 것이다. 물질 재료로 된 것만 가지고 사는 것이 타락 후 인간이라는 뜻으로 ‘육체’가 됨이라고 했다.
⑤ 창3:1-4, 엡2:1의 ‘타락과 중생’
창2:17에서 선악과를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하나님은 말씀하셨고, 창3:1-4에서 뱀은 죽지 않으리라고 했다. 선악과를 먹은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에 의하여 반드시 죽은 부분이 있다. 엡2:1에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라고 했다.
그렇다면 범죄한 아담이 범죄 후에도 계속 살아 움직이다가 930년에 죽게 되는데, 그 아담 속에 죽은 것은 무엇인가? 몸은 아니고, 마음도 아니다. 마음 안에 있는 영적 존재다. 그 이름을 혹 잘못 부를 수는 있을지라도 몸과 마음은 범죄로 죽지 않고 마음 안에 다른 존재가 죽었으니 그것이 바로 영적 존재라는 것은 확정할 수 있다. 그 이름을 이 삼분론에서는 ‘영’으로 부르고 있다.
⑥ 롬8:1에서 ‘결코 정죄함’이 없는 것
중생 된 사람에게는 다시는 죄를 짓지 않는 부분이 있다. 또 중생 된 사람에게는 다시는 하나님과 끊어지지 않고 사는 부분이 있다. 죄와 상관이 없기 때문에 본문에서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라고 했다. 또한 요일3:6, 9, 5:18에서 주 안에 있는 자마다 ‘범죄하지 아니하나니’라고 했다.
믿고 중생 된 사람에게는 다시는 범죄하지 않는 부분이 있지만, 우리 몸과 마음은 죄를 짓는다. 또 죽는 날까지 회개를 하고 산다. 우리 안에 몸과 마음을 제외하고, 중생이 된 부분, 그리고 중생이 된 후에는 다시는 죄와 상관이 없는 부분, 이 부분은 물질로 만들어진 심신이 아니라 영적 존재이니, 곧 영이다.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하신 이 부분은 사람을 영혼과 신체 둘로만 나누는 이분설로서는 해결할 수 없는 난해절이다.
앞에서 삼분론을 아주 간단하게 소개했다. 일일이 성경 근거를 제시한다면 그 분량이 너무 많을 것이므로 종합 교리서에서 본격적으로 소개할 것이며, 여기서는 총론적으로 성경 근거를 제시한다.
참고로, 백영희 신앙노선은 성경을 해석할 때 원어 때문에 오히려 성경 해석이 오도되는 경우를 대단히 조심하는 편이다. 성경을 원어 단어와 문법적으로만 접근하고 성경 전체에서 사용된 의미를 모른다면 원어 지식 때문에 오히려 성경해석이 막힌다는 입장이다.
성경은 기록될 때부터 원어의 언어적 접근으로는 그 본 해석이 불가능하도록 되어 있다는 것이 백영희 신앙노선의 지적이다. 일반적으로 흔하지 않은 주장이겠지만, 새겨보고 생각하면 이 주장이 바로 성경이고, 그 반대론이 신학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① 히4:12과 살전5:23의 ‘영과 혼’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라고 했다. 사람에게 있어 ‘영’은 마음의 다른 이름이거나 또는 마음의 작용에 관계된 이름이 아니라 실체적 요소임을 가르치는 성구다. 본문에서 ‘관절과 골수’는 신체의 구체적 부분을 예시한 것이고 ‘혼’과 다른 존재인 ‘영’이 있음을 보여준다.
물론 이 성구는, 이분설에서 관절과 골수가 몸인데 둘로 표현했듯이 혼과 영도 마음을 두 가지로 표현한 것이라고 해석한다. 그렇다. 이 성구 하나만을 가지고는 삼분론의 근거도 될 수 있지만 이분설의 반론도 가능하다. 그러나 살전5:23에서 ‘너희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 없이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하신 본문에서 히4:12의 관절과 골수라는 신체 두 부분을 ‘몸’으로 통칭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 보아야 한다.
② 롬8:6의 ‘육신의 생각’
본문은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라고 했다. 본문의 ‘영’은 사람의 영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 곧 성령을 가리켰다. 삼분론과 관련하여 이 성구에서 눈여겨봐야 할 것은, ‘육신의 생각’이다.
이분설은 사람을 영물로 된 영혼과 물질로 된 몸으로만 나누고 있다. 생각을 하는 것은 영물로 된 영혼이지 물질로 된 몸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 원어적 사용이 어찌 되었든지 상관없이 육신에게 생각이 있다는 것이 본문이다. 이분설로는 육신에게는 따로 생각이 존재할 수가 없다. 삼분론이 마음을 몸과 함께 물질로 분류하는 근거가 바로 여기에 있다.
③ 전3:20-21의 ‘짐승의 혼’
‘다 흙으로 말미암았으므로 다 흙으로 돌아가나니 다 한 곳으로 가거니와 인생의 혼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혼은 아래 곧 땅으로 내려가는 줄을 누가 알랴’는 것이 본문이다. 짐승은 창2:19에서 흙으로만 만든 물질 존재다. 짐승에게 물질인 육체 안에 또 다른 존재가 있다면, 그 원어의 단어를 놓고는 아무리 연구해 봐야 해석이 나올 수 없다. 마음이 물질이며, 짐승에게도 마음이 있다는 말씀이다.
④ 창6:3의 ‘육체가 됨이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고 했다. 사람이 타락하면 영은 죽고 육으로만 살게 된다. 육으로만 사는 인간이 가진 것을 두고 여기는 육체라고 했다. 범죄한 사람이 가지고 살 수 있는 것은 현재 안 믿는 사람들이 무엇과 무엇을 가지고 사는지를 보면 바로 성경 해석이 된다.
영적 존재는 죽고 물질로 된 존재만 살아서 움직이고 있는 것이 타락한 후 인간의 구성 요소입니다. 안 믿는 사람도 몸과 함께 마음을 가지고 있다. 안 믿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그 마음, 그것이 바로 물질로 된 것이다. 물질 재료로 된 것만 가지고 사는 것이 타락 후 인간이라는 뜻으로 ‘육체’가 됨이라고 했다.
⑤ 창3:1-4, 엡2:1의 ‘타락과 중생’
창2:17에서 선악과를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하나님은 말씀하셨고, 창3:1-4에서 뱀은 죽지 않으리라고 했다. 선악과를 먹은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에 의하여 반드시 죽은 부분이 있다. 엡2:1에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라고 했다.
그렇다면 범죄한 아담이 범죄 후에도 계속 살아 움직이다가 930년에 죽게 되는데, 그 아담 속에 죽은 것은 무엇인가? 몸은 아니고, 마음도 아니다. 마음 안에 있는 영적 존재다. 그 이름을 혹 잘못 부를 수는 있을지라도 몸과 마음은 범죄로 죽지 않고 마음 안에 다른 존재가 죽었으니 그것이 바로 영적 존재라는 것은 확정할 수 있다. 그 이름을 이 삼분론에서는 ‘영’으로 부르고 있다.
⑥ 롬8:1에서 ‘결코 정죄함’이 없는 것
중생 된 사람에게는 다시는 죄를 짓지 않는 부분이 있다. 또 중생 된 사람에게는 다시는 하나님과 끊어지지 않고 사는 부분이 있다. 죄와 상관이 없기 때문에 본문에서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라고 했다. 또한 요일3:6, 9, 5:18에서 주 안에 있는 자마다 ‘범죄하지 아니하나니’라고 했다.
믿고 중생 된 사람에게는 다시는 범죄하지 않는 부분이 있지만, 우리 몸과 마음은 죄를 짓는다. 또 죽는 날까지 회개를 하고 산다. 우리 안에 몸과 마음을 제외하고, 중생이 된 부분, 그리고 중생이 된 후에는 다시는 죄와 상관이 없는 부분, 이 부분은 물질로 만들어진 심신이 아니라 영적 존재이니, 곧 영이다.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하신 이 부분은 사람을 영혼과 신체 둘로만 나누는 이분설로서는 해결할 수 없는 난해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