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인간의 구성 요소

조직신학 본서       교리성구 사전

                        (2)인간의 구성 요소

서기 1 30
(2) 인간의 구성 요소

  ① 영

  ▪ 재료

  사람의 제일 내부에는 영이 있다. 이 영은 비록 물질계 안에 있지만 영을 만든 재료는 물질계 안에 있는 물질이 아니고 영계의 영물이다. 물질계와 영계를 구별하는 기준은 시간과 공간의 제한 여부다. 물질은 시공의 칸이 나눌 수 있다. 물질은 과거 현재 미래에 제한을 받는다. 또 공간이 너무 좁아도 너무 넓어도 드나 들지 못하며 공간 중에 위치하면서 그 칸을 초월하지 못한다. 영물은 시간과 공간에 제한을 받지 않는다는 면으로 신령하다고 한다. 

  이 땅 위에서는 사람이 물질인 몸과 마음을 가지고 살아 간다. 시공에 제한을 받으며 배우고 자라 간다. 어리기 때문에 그렇다. 이 땅 위에서의 영은 물질인 자기 마음과 몸을 인도하는 연습만 한다. 태어나면 몸은 그대로 형체를 대체로 갖추고 생존의 기능은 정상적으로 움직인다. 마음은 작동이 없다 할 정도다. 영은 그 존재도 없다 할 정도다. 세월이 지나며 물질계에서 가장 먼저 자라 가는 것이 몸이다. 그 몸을 지배하고 움직이는 마음이 그 뒤를 따른다. 그리고 영이 마지막에 등장을 한다. 타락한 상태기 때문에 그렇다. 재료의 차이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런 순서로 기르시려고 사람을 만들 때 영과 육이라는 다른 재료로 만들었다.

영이 필요한 곳은 물질계 세상이 아니라 영계다. 영계에서 활동할 영을 위해 세상에서는 기본적인 준비만 한다. 이 훈련이 끝나면 본격적으로 활동할 곳은 영계인 천국이다. 물질계는 영의 주 무대가 아니기 때문에 물질계 시절의 영은 유약해 보인다. 때로는 없는 존재처럼 인식된다. 약하거나 없어서가 아니라 이 곳을 위해 만든 것이 아니어서 그렇다. 우리의 영은 영계와 영계의 만물을 지배할 총 주인이며, 물질계는 영계와 비교하면 너무 허무하고 작은 범위며 그 물질계의 주인은 마치 마음인 것처럼 맡겨 질 것이어서 영은 물질계에서는 허무해 보이고 그 대신 마음이 물질계에서는 엄청난 존재처럼 활동한다. (창2:7, 롬8:16-17). ‘창2:7’ ‘롬8:16-17’은 p.191 참조

 

  ▪ 위치

  영은 마음 안에 거주한다. 마음 안에서 마음을 다스리고, 마음을 통해서 몸을 다스리며, 몸을 통해서 외부 만물을 다스린다. 사람이 사람인 것은 육체나 마음 때문이 아니다. 사람이 사람 되는 것은 영 때문이다. 몸과 마음과 영을 합해야 인간이므로 나누어 생각할 수는 없지만 그 가치와 위치는 아주 다르다.

  영은 그 사람 내부에서 주격이다. 영이 주인이고 마음과 몸은 각각 차원을 달리하며 영을 보필하며 영이 사용하는 기관이다


(롬8:10, 16, 고전2:13-14).‘롬8:10, 16’은 p.191, ‘창2:7’은 p.188, ‘롬8:1’은 p.190 참조

고전2:13-14 ‘... 오직 성령의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

히7:27 ‘저가 저 대제사장들이 먼저 자기 죄를 위하고 다음에 백성의 죄를 위하여 날마다 제사 드리는 것과 같이 할 필요가 없으니 이는 저가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음이니라’

히9:25-26 ‘대제사장이 해마다 다른 것의 피로써 성소에 들어가는 것 같이 자주 자기를 드리려고 아니하실찌니 그리하면 그가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자주 고난을 받았어야 할 것이로되 이제 자기를 단번에 제사로 드려 죄를 없게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느니라’

히10:1-2 ‘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요 참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든지 온전케 할 수 없느니라 그렇지 아니하면 섬기는 자들이 단번에 정결케 되어 다시 죄를 깨닫는 일이 없으리니 어찌 드리는 일을 그치지 아니하였으리요’



  ▪ 특성

  첫째, 하나님의 형상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는데, 이를 정확히 말하면, 사람의 영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다. 영은 하나님과 같은 속성을 가졌다. 물론 하나님은 창조주 하나님이시고, 영은 피조물이기 때문에 그 속성의 차원은 다르다(창2:7).


  둘째, 단일성의 존재

영은 복합체로 된 물질과 달리 단일성으로 되어 있다. 쪼개고 나누지를 못하고, 이 부분은 병들고 저 부분은 건강할 수 없다. 따라서 죄로 죽을 때도 단번에 죽고, 또 중생될 때도 단번에 중생된다(롬8:1, 히7:27, 9:25-26, 10:1-2).
 

  셋째, 하나님만 전용

  영은 하나님의 형상이요 하나님만 사용하도록 지음을 받았기 때문에 다른 존재가 영을 사용하지 못한다. 악령이 영으로부터 심신을 빼앗아 우리의 심신을 사용했지만, 심신의 주격이 되는 영은 죽이기만 했지 그 영을 자기 소유로 삼아 사용하지는 못하는 존재다. 하나님과 연결이 끊어지면 그 순간 작동을 완전히 멈추게 된다. 영 속에서 영을 움직이고 다스리는 존재는 하나님뿐이다(롬8:16, 고전3:15, 요일5:18).

‘롬8:16’은 p.191, ‘롬8:10-11’은 p.191, ‘고전3:11-15’은 p.179 참조

요일5:18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넷째, 사람의 주격

  사람은 영과 마음과 몸으로 되어 있다. 몸과 마음은 물질이다. 이 몸과 마음을 거느리고 주인 노릇을 하는 우리 속에 주체는 바로 영이다.

  따라서 영이 죽으면 진정한 의미에서 사람이 죽은 것이고, 영이 살아 있으면 진정한 의미에서 사람은 살아 있는 존재가 된다. 이 때문에 한 번 중생된 사람은 육의 사망에도 불구하고 살아 있는 사람으로 분류하고, 그 영이 죽어 있으면 육이 살아 있어도 죽은 사람으로 분류한다(롬8:10-14, 고전3:11-15).



  ② 마음 

  ▪ 재료

  전통 교리는 지금까지 마음을 천사와 같은 영물이라고 알았다. 이는 전통 교리의 역할이 천주교로부터 기본구원을 찾는 데 주력을 했으므로 사람의 인성 구조에 대하여는 집중할 여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마음은 물질이다. 다만 신비한 물질이므로 손으로 만지거나 냄새를 맡을 수 없을 뿐이다. 물질인 피아노를 칠 때 나오는 소리는 만질 수 없고 냄새를 맡지 못하지만 영물이 아니고 물질이다. 물질이라는 가장 확실한 증거는 짐승에게도 마음이 있기 때문이고, 타락한 인간은 영이 죽은 상태에서 마음은 살아 있음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전3:19-21).
   

  ▪ 위치

  마음은 영과 몸 사이에 위치한다. 물질 중에서는 가장 탁월하지만 몸 안에만 위치하지 몸을 벗어나지는 못한다. 영이 마음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과 같다. 영이 마음을 떠나면 그 마음은 신령한 면에서는 죽었고, 마음이 몸을 떠나면 그 몸은 땅에 묻는다. 마음은 위로 영에게 지배를 받고 아래로 몸을 지배한다(눅6:45, 엡2:3).


‘전3:19-21’은 p.191 참조

눅6:45 ‘선한 사람은 마음의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의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

엡2: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

마18:22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게 이르노니 일곱번 뿐 아니라 일흔번씩일곱번이라도 할찌니라’

롬7:21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롬8:5-7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 특성
 
  첫째, 영의 소유격

  마음은 독립하지 못하고 영에게 붙들려서만 움직이도록 지음을 받았다. 따라서 자기 영에게든지 아니면 악령에게든지 그 한쪽에 속하여 명령을 받을 뿐이다. 안 믿는 사람들의 마음은 전적 악령에게 붙들려 있고, 믿는 사람의 마음은 영과 악령 사이에서 오가고 있다(마18:22, 롬7:21 롬8:5-7).



  둘째, 소속 결정권

  비록 독립하고 살지는 못하지만, 마음은 그 대신 자기 주인을 누구로 정할지를 결정할 수 있는 자유성을 가지고 있다. 소속의 자유를 가졌다. 만물과 달리 인간에게 심판이 있는 것도 바로 이 자유성 때문이다. 만물은 강도의 손에 잡힌 칼과 같아서 행동에 대한 심판이 없다. 그러나 인간의 마음은 어느 영에게 속하든지 소속 결정의 자유가 있기 때문에 의와 죄에 대한 심판을 받아야 한다(롬6:12-19, 전11:9).‘롬6:12-19’은 p.190 ‘롬6:12-17’은 p.190,

‘롬8:5-14’은 p.195 참조

전11:9 ‘청년이여 네 어린 때를 즐거워하며 네 청년의 날을 마음에 기뻐하여 마음에 원하는 길과 네 눈이 보는대로 좇아 행하라 그러나 하나님이 이 모든 일로 인하여 너를 심판하실 줄 알라’

롬2:15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송사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

잠4:23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셋째, 복합적 존재

  마음은 물질로 되었기 때문에 여러 요소가 합해서 구성되어 있다. 신비한 물질이므로 몸과 같이 칼로 해부하고 나누지는 못하지만, 마음 차원에서는 그 구성이 인체보다 더 복잡한 구조로 되어 있다. 마음이 행동을 할 때는 인체와 같이 내부 모든 요소가 종합적으로 협력하여 하나로 움직이게 된다(롬2:15).



  넷째, 핵심적 역할

  마음은 비록 영의 소유격에 지나지 않지만 단순히 기계로 사용되지 않고 그 소속을 결정할 수 있는 자유성이 있다. 이 자유성은 인간에게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주신 기본 요소인데, 마음이 가진 이 자유성 때문에 마음은 타락한 우리에게 중생 후 평생의 신앙생활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로 부각된다(잠4:23).

  마음이 누구를 주인으로 모시느냐는 그 횟수와 정도에 따라 심신의 성화의 양이 결정된다. 훗날 영이 영계와 우주의 주인공이 되고 나면 영이 전면에 나서지만, 오늘 세상에서 준비하는 기간은 마음을 통해 심신으로 된 육을 길러가야 하는 시기다. 마치 가출했다 겨우 집에 돌아온 아이를 예전처럼 다시 착한 아이로 만들기 위해서는 온 식구들이 그 아이를 위해 배려하고 가족의 중심에 두려고 노력하는 것과 같다(롬6:12-17, 8:5-14).

창2:7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창1:28 ‘...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

‘롬6:12-17’은 p190, ‘롬8:5-14’은 p.195 참조

딤전4:8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 마음의 내부 구성
굳이 나누다 보니 사람을 몸과 마음과 영으로 구분한다. 구분해야 하고 구분하도록 적어 주셨다. 그렇다고 기계의 부속품처럼 따로 떼어 사용하거나 탈부착하지 못하니 몸은 마음과 끊어질 때, 또 마음은 영과 끊어 지는 순간 바로 사망한다. 존재적 의미가 없어 진다. 동작은 더욱 상관이 없다. 그런데 마음이 몸과 영의 사이에서 몸과 마음과 영을 하나로 만들고 하나 된 사람이다 보니 마음은 몸과 영을 양쪽으로 다 접하고 있다. 이웃처럼 접하는 것이 아니라 인체의 한 몸의 각 부분처럼 하나가 되어 있다.

마음 안에도 몸을 직접 움직이거나 몸에 영향을 끼치고 영향을 받는 몸과 가까운 부분이 있고, 영에게 가까운 부분도 있다. 음식에 대한 애착이나 눈과 귀를 자극할 때 호응하는 마음이 그렇다. 이런 것을 물질에 대한 욕심이나 물질에 반응하는 감성이라고 한다. 이 부분은 둔탁한 물질로만 된 몸이 자라 가다가 절정을 거치고 그 다음에 쇠락해 갈 때 비록 꼭 같이 등락하지는 않으나 등락을 함께 한다. 어릴 때는 음식의 맛을 잘 모른다. 자라 가면서 잘 알아 가고 식탐도 있고 음식에 대한 편식도 생긴다. 그러나 중년이 되고 노년에 접어 들면 육체와 직접 관련 된 욕심들은 모두가 쇠락한다. 그러나 영을 접한 마음은 갈수록 밝아진다. 영을 접한 마음을 심령이라 한다. 심령은 타락으로 어두워 질 수는 있지만 육체의 쇠락에 따라 낡아 지고 헐어 지지 않는다. 몸이 늙어 가고 몸에 가까운 육체의 생의 본능적인 감성이나 욕심들이 쇠락해 지게 되면 심령은 오히려 밝아 진다. 말씀과 성령으로 관리를 하면 갈수록 총명해 지고 강해진다. 구름이 태양을 가리듯 몸과 생의 본능적 마음이 강할 때는 심령이 없는 듯이 또는 있어도 허무한 듯 했다.

몸은 갈수록 낡아진다. 마음 중에 몸에 가까울수록 뒤따라 가며 쇠락해 진다. 마음 중에 영에 가까운 마음일수록 세월 속에 또는 몸과 몸에 붙은 마음들이 쇠락해질수록 더욱 밝아 지게 된다. 그래서 겉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 라고 했다. 겉사람을 몸으로 또 속을 마음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겉사람은 몸과 몸에 가까운, 속은 영과 영에 붙들리고 가까운 우리를 말한다.


  ▪  영의 존재론적 증명은 원어의 세상 사전적 단어가 아니라 성경의 사용으로 접근해야 한다.
사람의 구성 요소를 셋으로 나누어 영, 마음, 몸이라고 해야 하는 이유는 원어의 단어 때문이 아니라 성경의 흐름과 연결 때문이다.

롬8:10,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영은 의를 인하여 산 것이니라' 중생으로 살아 난 것이 있다 하셨다. 중생이 된 것은 '영'인데 이 실체가 무엇인지를 두고 '마음'인가, '양심'인가, '심령'이라고 하는가.. 이렇게 단어로 찾아 들어 가면 성경의 원문 단어는 같은 단어가 사용 되는 문맥에 따라 아주 달라 지는 수가 많아서 알기 어렵다. 불신자로 살다가 믿게 되면 우리 속에는 '거듭' 난 것이 생긴다. 딛3:5,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이렇게 중생이 된 것은 요일5:18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다시는 죄를 짓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는 중생 후에도 몸과 마음으로 수 없이 죄를 짓는다. 그렇다면 중생 후에 죄를 짓지 않는 부분과 죄를 짓는 부분이 따로 있으니 우리의 마음은 죄를 짓기 때문에 일단 배제하고 우리 속에 있지만 죄를 짓지 않는 것을 찾아야 한다. 찾을 수밖에 없다.

일단 성경에 '영'으로 표시 된 부분을 중생 후 죄 짓지 않는 우리 내부로 지칭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영에 대하여 롬8:9,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라 하신 하나님과 비교를 해 보면 성부와 성자의 영, 성부나 성자의 생각이 아니라 '영'을 성령이라고 한다. 롬1:4,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인간의 내면은 하나님의 삼위일체와 같지는 않으나 그런 모형으로 그런 성향으로 그런 모습으로 만들어 두셨다. 영은 마음의 일부나 마음의 측면이나 활동을 본 것이 아니라 마음과 몸이 한 사람이듯이 영도 마음과 몸과 함께 한 사람을 구성하면서 몸이 아니고 마음도 아니며 그냥 영이다. 이를 알기 어려운 것은 몸보다 마음을 파악하기 어렵고, 마음보다 영의 세계가 더 신령해서 우리의 어두운 눈이 잘 파악하지 못하는 바람에 오랜 세월 없는 것으로 취급해 왔다. 교리 교회의 발전과 성장에 따라 이제는 잘 알 수 있는 시대이다. '영'의 원어 단어로 볼 것이 아니라 성경이 인간이 세상을 살면서 사용하는 단어를 사용하여 성경을 기록했고 그 단어들을 가지고 진리를 가르쳤다. 그런데 그 단어를 국어나 원어 사전에서 찾아 세상에서 사용 되는 방향으로 가져 나가면 아주 딴 세계가 된다.

원어의 단어는 힌트로, 깨달음의 시작으로, 왜 그 단어를 사용했는지를 살피면서, 그 단어의 정확한 의미는 성경 전체로 그 단어를 다시 읽어야 세상의 단어가 비로소 성경 안에서 성경의 단어, 하늘의 언어, 진리의 표현이 되어 진다.



 ③ 몸

  ▪ 재료

  몸은 마음과 함께 물질로 된 존재다. 몸은 인간이 만물의 주인공 노릇을 할 때 가장 외부에서 만물을 직접 접촉해야 하는 실무자이므로 만물과 꼭 같은 재료로 만들어져 만물과 교통하기 좋게 되어 있다. 비록 만물과 같은 재료지만 만물을 다스려야 하기 때문에 만물 중에 가장 정교하고 탁월한 기능을 가지고 있다(창2:7, 1:28).


  ▪ 위치

  몸은 위로 마음에게 지배를 받고, 아래로 만물을 접촉하며 만물을 다스리는 위치에 있다. 만물을 다스리는 현장 공무원과 같다. 그 위치가 인간의 일부이기 때문에 비록 재료는 만물과 같은 저급의 물질로 되었지만 그 값은 만물 중에 으뜸이다. 일반 만물과는 비교를 할 수 없다. 마음에 붙들려 움직이는 인체는 의의 기능을 가질 수 있는 존재이기도 하다(롬6:12-17, 8:5-14, 딤전4:8).


  ▪ 특성

  첫째, 타락의 선봉

  몸은 영과 마음으로 더불어 인간의 일부분이다. 그 위치는 마음의 지배를 받는 가장 하찮은 존재이지만, 그 대신 몸이 사람의 일부이므로 이 몸이 행동한 것은 그 사람 자체가 책임을 져야 한다. 몸은 만물을 직접 다스리는 실무자이므로 만물과 접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는데, 이 몸이 그 기회를 타고 가장 만물에게 영향을 많이 받고 있다. 즉, 악령이 만물을 통해 몸을 타락시키고, 이 육체를 붙들고 마음을 흔들어버리는 것이다(마5:28). 현재 타락한 이 세상 기간 동안은 육체가 천하 모든 죄를 접하고 그 죄를 자기 속으로 끌어들이는 타락의 선봉에 있다(마18:9).


마5:28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마18:9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한 눈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 불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고후4:17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빌3:21 ‘그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
 


  둘째, 영광의 외모

  오늘 우리 인체는 타락한 세상에서 천하 죄악을 다 끌고 오는 창구가 되고 있지만, 이 세상이 끝나고 모든 것이 제자리를 잡게 되면 우리는 영계와 우주의 주인공으로 모든 피조물 앞에 서게 된다. 그때 우리 인체는 만물을 직접 상대하는 가장 외부의 존재로, 영광스런 하나님의 아들의 외모로 나타난다. 그날의 우리 인체는 만물에게 가장 귀하고 아름다울 존재지만, 오늘은 그 반대다. 그리고 그 반대 모습을 가진 이 육을 영광의 외모로 만들어가는 기간이다(고후4:17, 빌3:21).
담당 2024.04.18 09:46  
* 영과 영혼
성경의 '영'은 영물로 되었고 마음의 주격이며 범죄하지 않는 존재이고, 성경의 '영혼' '심령' '양심' 등은 존재적으로는 물질인 마음으로서 마음의 기능 역할 활동 위치 요소 등을 표현한 것이다. 마음은 기본적으로 죄를 짓는다. 애1:16에서 '내 영을 소성시킬 자가 멀리 떠났음이로다' 영에게 대한 이런 표현은 영의 범죄가 아니라 영이 마음을 인도하고 지도하고 목격하며 책임지는 과정에 나온 마음을 기준으로 적은 것이다. 창6:6에서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신 여호와의 상황은 하나님이 보신 절대 기준의 '한탄'과 '근심'의 죄를 지은 것이 아니라 사람의 표현이다. 성경에 '영'에 대해 죄를 짓는 것처럼 표현된 것도 그렇다.

창6:6의 표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죄를 짓지 않는다고 단정하는 것은 하나님이 완전자며 절대자며 불변이시니 죄를 짓지 못한다는 교리로 결론내는 것처럼,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존재가 사람 속에 있고 그 존재는 하나님만 사용하시니 죄를 지을 수 없다는 교리로 나가기 때문에 성경에 '영'에 대한 표현이 마치 죄를 짓는 상황처럼 보일 때는 하나님에 대한 비교 또는 성경에 모순처럼 보이는 여러 표현과 같이 봐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영'과 '영혼' '심령' 등은 같은 원어인데도 한글 번역에서 달리 사용한 흔적이 많다. 20세기 초의 성경 번역자들이 지금처럼 인터넷으로 검색을 하지 못하다 보니 3만 개가 넘는 단어를 확인할 수 없어서 원어는 동일하나 한글 단어 중 비슷한 것을 사용하다 최종적으로 달라 졌다. 그렇다 해도 번역자들이 앞뒤의 문맥을 보면서 번역을 했고 현재 우리의 언어와 성경 파악의 수준에서는 '영'이라고 번역된 것만 영물의 영으로 보고, 그 외의 표현은 마음에 속한 것으로 보는 것이 가장 원문에 가깝다.

혹 원문의 영이 영혼 등으로 번역 되었거나 원문의 영혼으로 번역될 것이 영으로 번역이 된 사례가 있다 해도, 성경은 단어의 원문 원어가 또는 원어로만 최종 판단을 하는 것이 아니라 원문의 원어 단어가 문장과 주변과 성경 전체에 사용 된 것을 모두 맞춘 다음에 확정해야 한다. 그리고 이 최종적이며 불변의 결론은 성경의 원본 자체를 감추심으로 역사 교회 우리에게는 결론을 내지 못하게 해 놓았다. 예수님의 형상과 흔적을 남겨 놓지 않았기 때문에 그 형상과 흔적을 따로 연구하지 못하게 막은 것과 같다. 각자의 신앙과 시대 별로 그 교회에 맡긴 위치와 사명과 역할에 따라 자기 할 수 있는 것만 하면 된다. 이제 믿는 사람이 교리 전부와 성경 전부를 다 알 필요는 없다. 당장에 필요한 하나를 가지고 실행하고 그리고 자라 가면서 지식과 역할과 행위를 늘려 나간다. 어디까지 갈 것인가? 신학교에서 미리 가르치는 것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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