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사역과 목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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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2.11 09:34
(2) 하나님의 사역과 목적
① 자존하신 하나님의 작정에 관련된 표현
홀로 계시던 하나님께서 사업을 하나 해보려고 뜻을 정하고 추진하게 된 과정을 순서대로 살펴본다면, ‘목적 - 예정 - 창조 - 섭리’ 순서로 배열할 수 있다. 목적이라는 말은 우선 어떤 사업을 하려고 작정을 하셨는가 하는 문제이고, 예정은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순서를 미리 정해놓았다는 것이고, 창조는 예정대로 모든 것을 없는 가운데서 만드셨다는 것이며, 섭리는 만든 것을 가지고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운영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하나님 사역의 첫 순서인 ‘목적’은 그 표현이 여러 가지로 사용될 수 있다. 하나님의 목적은 다른 말로, 하나님의 ‘작정’, 하나님의 ‘선택’, 하나님의 ‘예택’, 마지막으로는 하나님의 ‘구원’ 등으로 표현하고 있다(롬8:29, 엡1:4-5, 9, 11, 딤후1:9).
롬8: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
엡1:4-5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엡1:9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셨으니 곧 그 기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
엡1:11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자의 뜻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딤후1:9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
‘목적’이라는 말은 자존자의 사업 ‘방향’을 위주로 표현했고,
‘작정’은 이 사업을 자존자가 계획하고 ‘뜻을 정한 것’이라는 말이고,
‘선택’은 ‘택함’이라는 말이니 그 목적 대상으로 ‘선정’했다는 말이며,
‘예택’은 존재가 있기 전 ‘미리 선택’이 결정되었다는 뜻이다.
‘구원’은 이 목적을 이루는 과정에 사용된 방편을 강조했다.
이제 설명 드린 이 표현들은 전부 하나님 사역의 첫 번째 순서에 해당된 것이다. 이 첫 번째 순서를 바로 이해하고 나면 그 다음부터는 외길에 올려 놓은 자동차와 같이 달려가기만 하면 된다. 만일 첫 길을 잘못 잡고 시작하게 되면 그 고생도 말할 것 없지만 대개는 돌아오지도 못하고 그 길에서 끝을 보는 경우가 많다. 위의 표현들은 설명하는 상황에 따라 적당하게 사용되는데 존재의 순서를 설명할 때는 대체로 ‘예택’이라는 표현이 가장 좋다(엡1:4).
② 목적의 방향
하나님의 목적은 하나님과 같이 온전하고 거룩하고 깨끗한 존재를 만드는 것이다. 하나님의 목적은 자존으로부터 발원하여 사역을 시작했지만 그 사역은, 그 사역을 출발시키고 운영하는 자존자 하나님을 향하고 있다. 하나님이 그 사역 방향의 출발이며 그 사역의 종착이다. 그런데 그 하나님이 완전자 무한자이므로 그 만들어진 존재들은 그 하나님을 향한 무궁 무한의 걸음을 시작하는 것이다(마5:48, 롬8:29, 11:36, 갈2:19, 벧전3:21, 엡1:4).
③ 목적의 내용
하나님의 목적은 하나님과 같은 존재를 만드는 것이다. 하나님과 같은 존재라는 말은 어느 일면에서 하나님과 같은 존재라는 말이다. 하나님과 같은 존재이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속성은 우리가 자유성을 가져야 하고 하나님의 속성을 본받아 그 속성을 가진 존재라야 한다(갈5:1, 계3:20, 벧후1:4-8).
마5:48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갈5:1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
계3:20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
벧후1:4-8 ‘...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셨으니 이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 흡족한 즉 너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고 열매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니와’
④ 목적의 대상
하나님의 목적 방향에 따라 그 내용을 다 갖춘 존재는 바로 택자들이다(엡1:4, 벧후1:5-8). 오늘 우리들이다. 오늘 세상에서는 하나님 목적 달성에 필요한 그 출발에서 갖출 것을 종류대로 챙기는 기간이다. 그리고 이제 하나님을 향한 진정한 전진은 무궁세계 영계에 가서 시작된다.
하나님의 목적 대상이 택자라고 할 때는 항상 불택자에 대한 문제도 있다. 불택자는 택자를 귀하게 만드시려고 택자와 존재적으로는 동일하나 다만 택자를 위해 존재하고 택자를 위해 영원히 이용되는 사람이다(사43:3, 유1:4).
오늘 인간의 가치가 인류역사 전체를 통해 가장 귀하게 평가되고 있어 이제 인간의 존엄성은 ‘절대적 가치’라는 것이 상식이 되어 있다. 이런 분위기는 교회까지도 대부분 점령하게 되어 현재 불택자의 개념이 실제 유지되는 교회는 거의 없다. 그러나 진리는 성경 기록에 의하여 결정되는 것이지 인간의 시대적 취향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므로 이곳에서는 언급할 필요가 없다.
이 교리를 반대하는 이들은 인간을 어떻게 소모품으로 만드는 반인간적 발상을 가지느냐고 주장을 하지만, 창조주 하나님 앞에 전체 피조물을 한 자리에 놓고 보면 동물을 먹는 인간이나, 식물을 먹는 동물이나, 택자의 구원을 위해 존재하는 불택자나 상호 가치관계는 같다. 만물을 만드신 하나님의 결정이 중심 가치이고 나머지는 이용 가치로만 존재하는 것이다(사45:9, 렘18:2-6, 롬9:19-21).
엡1: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사43:3 ‘... 내가 애굽을 너의 속량물로, 구스와 스바를 너의 대신으로 주었노라’
유1:4 ‘이는 가만히 들어온 사람 몇이 있음이라 저희는 옛적부터 이 판결을 받기로 미리 기록된 자니 ...’
사45:9 ‘... 진흙이 토지장이를 대하여 너는 무엇을 만드느뇨 할 수 있겠으며 너의 만든 것이 너를 가르켜 ...’
렘18:2-6 ‘... 그가 그것으로 자기 의견에 선한대로 다른 그릇을 만들더라 ... 이 토기장이의 하는 것 같이 내가 능히 너희에게 행하지 못하겠느냐 이스라엘 족속아 진흙이 토기장이의 손에 있음 같이 너희가 내 손에 있느니라’
롬9:19-21 ‘...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뇨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드는 권이 없느냐’
계1:5-6 ‘...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그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⑤ 목적의 성격
하나님은 그 사역을 하나님으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한 결과가 되도록 추진한다. 이는 하나님의 본성이 사랑이기 때문이다. 자존자 완전자 하나님께서 가장 많은 것을 줄 수 있는 방법은 그 목적 대상이 하나님으로부터 이탈하여 죽게 하고 죽은 것을 다시 되살리게 되면 하나님으로부터 가장 많은 것을 최상으로 받는다. 천국만 만들어 우리를 천국에서 처음부터 살게 하는 것보다 우리를 타락시켜 하나님 없는 세계를 체험하게 한 뒤에 다시 구원하게 되면, 우리는 하나님의 모든 것을 다 받는 사람이 된다. 타락한 우리를 구원하려면 하나님께서 사람 되어 와야 하고 대신 죽고 부활하는 순서를 거치게 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전부를 다 주실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일부러 타락을 시켜 구원했으니, 목적의 성격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최선과 최상의 작업이다(계1:5-6).
⑥ 목적의 수단
하나님의 목적은 그 사랑이 최선이 되고 최고가 될 수 있도록 택한 사람을 타락시켰는데,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하나님 없이 사는 세계를 만들어야 한다. 하나님 없는 상태를 경험하도록 만든 존재들 중에 가장 대표적인 것이 악령과 죄와 불택자들이다. 이것을 우리 위해 필요하여 만들었다. 일반 만물들은 단순한 무대 배경이요 필요 물품이다. 그러나 악령과 불택자는 목적 대상인 우리를 여러 차원에서 맞서거나 우리 이상의 힘을 가지고 택자를 하나님으로부터 떼어놓는 일을 하는 자유성의 존재들이다.
대개 전통 신학이 불택자와 죄와 악령은 그들이 하나님을 대적하여 그 목적을 방해하는 것은 그들이 자기들 자유의지로 하나님과 맞선 것이며 하나님은 그들의 활동을 허용만 했고 그 죄의 계획과 집행은 그들의 자기 책임과 자유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이는 인간이 자기 차원에서 하나님의 행동을 잘못 본 것이다. 하나님이 그 죄와 악령과 불택자를 목적 달성을 위해 만들고 사용하고 있다(욥1:6-12, 롬8:28). 즉 쇠를 용광로에 넣었다가 끄집어내서 망치로 두드려 원하는 도구를 만들고 있는데, 그 쇠와 그 쇠를 두드리는 망치와 그 쇠를 달군 불까지 전부 대장장이가 자기 목적을 위해 자기 손으로 만든 것이며 사용하는 필수품들입니다.
욥1:6-12 ‘... 사단도 그들 가운데 왔는지라 ... 내가 그의 소유물을 다 네 손에 붙이노라 오직 그의 몸에는 네 손을 대지 말지니라 ...’
롬8:28 ‘...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눅12:6-7 ‘참새 다섯이 앗사리온 둘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하나님 앞에는 그 하나라도 잊어버리시는 바 되지 아니하는도다 너희에게는 오히려 머리털까지도 다 세신바 되었나니 ...’
엡3:11 ‘곧 영원부터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정하신 뜻대로 하신 것이라’
① 자존하신 하나님의 작정에 관련된 표현
홀로 계시던 하나님께서 사업을 하나 해보려고 뜻을 정하고 추진하게 된 과정을 순서대로 살펴본다면, ‘목적 - 예정 - 창조 - 섭리’ 순서로 배열할 수 있다. 목적이라는 말은 우선 어떤 사업을 하려고 작정을 하셨는가 하는 문제이고, 예정은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순서를 미리 정해놓았다는 것이고, 창조는 예정대로 모든 것을 없는 가운데서 만드셨다는 것이며, 섭리는 만든 것을 가지고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운영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하나님 사역의 첫 순서인 ‘목적’은 그 표현이 여러 가지로 사용될 수 있다. 하나님의 목적은 다른 말로, 하나님의 ‘작정’, 하나님의 ‘선택’, 하나님의 ‘예택’, 마지막으로는 하나님의 ‘구원’ 등으로 표현하고 있다(롬8:29, 엡1:4-5, 9, 11, 딤후1:9).
롬8: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
엡1:4-5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엡1:9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셨으니 곧 그 기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
엡1:11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자의 뜻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딤후1:9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
‘목적’이라는 말은 자존자의 사업 ‘방향’을 위주로 표현했고,
‘작정’은 이 사업을 자존자가 계획하고 ‘뜻을 정한 것’이라는 말이고,
‘선택’은 ‘택함’이라는 말이니 그 목적 대상으로 ‘선정’했다는 말이며,
‘예택’은 존재가 있기 전 ‘미리 선택’이 결정되었다는 뜻이다.
‘구원’은 이 목적을 이루는 과정에 사용된 방편을 강조했다.
이제 설명 드린 이 표현들은 전부 하나님 사역의 첫 번째 순서에 해당된 것이다. 이 첫 번째 순서를 바로 이해하고 나면 그 다음부터는 외길에 올려 놓은 자동차와 같이 달려가기만 하면 된다. 만일 첫 길을 잘못 잡고 시작하게 되면 그 고생도 말할 것 없지만 대개는 돌아오지도 못하고 그 길에서 끝을 보는 경우가 많다. 위의 표현들은 설명하는 상황에 따라 적당하게 사용되는데 존재의 순서를 설명할 때는 대체로 ‘예택’이라는 표현이 가장 좋다(엡1:4).
② 목적의 방향
하나님의 목적은 하나님과 같이 온전하고 거룩하고 깨끗한 존재를 만드는 것이다. 하나님의 목적은 자존으로부터 발원하여 사역을 시작했지만 그 사역은, 그 사역을 출발시키고 운영하는 자존자 하나님을 향하고 있다. 하나님이 그 사역 방향의 출발이며 그 사역의 종착이다. 그런데 그 하나님이 완전자 무한자이므로 그 만들어진 존재들은 그 하나님을 향한 무궁 무한의 걸음을 시작하는 것이다(마5:48, 롬8:29, 11:36, 갈2:19, 벧전3:21, 엡1:4).
③ 목적의 내용
하나님의 목적은 하나님과 같은 존재를 만드는 것이다. 하나님과 같은 존재라는 말은 어느 일면에서 하나님과 같은 존재라는 말이다. 하나님과 같은 존재이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속성은 우리가 자유성을 가져야 하고 하나님의 속성을 본받아 그 속성을 가진 존재라야 한다(갈5:1, 계3:20, 벧후1:4-8).
마5:48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갈5:1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
계3:20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
벧후1:4-8 ‘...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셨으니 이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 흡족한 즉 너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고 열매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니와’
④ 목적의 대상
하나님의 목적 방향에 따라 그 내용을 다 갖춘 존재는 바로 택자들이다(엡1:4, 벧후1:5-8). 오늘 우리들이다. 오늘 세상에서는 하나님 목적 달성에 필요한 그 출발에서 갖출 것을 종류대로 챙기는 기간이다. 그리고 이제 하나님을 향한 진정한 전진은 무궁세계 영계에 가서 시작된다.
하나님의 목적 대상이 택자라고 할 때는 항상 불택자에 대한 문제도 있다. 불택자는 택자를 귀하게 만드시려고 택자와 존재적으로는 동일하나 다만 택자를 위해 존재하고 택자를 위해 영원히 이용되는 사람이다(사43:3, 유1:4).
오늘 인간의 가치가 인류역사 전체를 통해 가장 귀하게 평가되고 있어 이제 인간의 존엄성은 ‘절대적 가치’라는 것이 상식이 되어 있다. 이런 분위기는 교회까지도 대부분 점령하게 되어 현재 불택자의 개념이 실제 유지되는 교회는 거의 없다. 그러나 진리는 성경 기록에 의하여 결정되는 것이지 인간의 시대적 취향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므로 이곳에서는 언급할 필요가 없다.
이 교리를 반대하는 이들은 인간을 어떻게 소모품으로 만드는 반인간적 발상을 가지느냐고 주장을 하지만, 창조주 하나님 앞에 전체 피조물을 한 자리에 놓고 보면 동물을 먹는 인간이나, 식물을 먹는 동물이나, 택자의 구원을 위해 존재하는 불택자나 상호 가치관계는 같다. 만물을 만드신 하나님의 결정이 중심 가치이고 나머지는 이용 가치로만 존재하는 것이다(사45:9, 렘18:2-6, 롬9:19-21).
엡1: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사43:3 ‘... 내가 애굽을 너의 속량물로, 구스와 스바를 너의 대신으로 주었노라’
유1:4 ‘이는 가만히 들어온 사람 몇이 있음이라 저희는 옛적부터 이 판결을 받기로 미리 기록된 자니 ...’
사45:9 ‘... 진흙이 토지장이를 대하여 너는 무엇을 만드느뇨 할 수 있겠으며 너의 만든 것이 너를 가르켜 ...’
렘18:2-6 ‘... 그가 그것으로 자기 의견에 선한대로 다른 그릇을 만들더라 ... 이 토기장이의 하는 것 같이 내가 능히 너희에게 행하지 못하겠느냐 이스라엘 족속아 진흙이 토기장이의 손에 있음 같이 너희가 내 손에 있느니라’
롬9:19-21 ‘...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뇨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드는 권이 없느냐’
계1:5-6 ‘...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그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⑤ 목적의 성격
하나님은 그 사역을 하나님으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한 결과가 되도록 추진한다. 이는 하나님의 본성이 사랑이기 때문이다. 자존자 완전자 하나님께서 가장 많은 것을 줄 수 있는 방법은 그 목적 대상이 하나님으로부터 이탈하여 죽게 하고 죽은 것을 다시 되살리게 되면 하나님으로부터 가장 많은 것을 최상으로 받는다. 천국만 만들어 우리를 천국에서 처음부터 살게 하는 것보다 우리를 타락시켜 하나님 없는 세계를 체험하게 한 뒤에 다시 구원하게 되면, 우리는 하나님의 모든 것을 다 받는 사람이 된다. 타락한 우리를 구원하려면 하나님께서 사람 되어 와야 하고 대신 죽고 부활하는 순서를 거치게 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전부를 다 주실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일부러 타락을 시켜 구원했으니, 목적의 성격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최선과 최상의 작업이다(계1:5-6).
⑥ 목적의 수단
하나님의 목적은 그 사랑이 최선이 되고 최고가 될 수 있도록 택한 사람을 타락시켰는데,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하나님 없이 사는 세계를 만들어야 한다. 하나님 없는 상태를 경험하도록 만든 존재들 중에 가장 대표적인 것이 악령과 죄와 불택자들이다. 이것을 우리 위해 필요하여 만들었다. 일반 만물들은 단순한 무대 배경이요 필요 물품이다. 그러나 악령과 불택자는 목적 대상인 우리를 여러 차원에서 맞서거나 우리 이상의 힘을 가지고 택자를 하나님으로부터 떼어놓는 일을 하는 자유성의 존재들이다.
대개 전통 신학이 불택자와 죄와 악령은 그들이 하나님을 대적하여 그 목적을 방해하는 것은 그들이 자기들 자유의지로 하나님과 맞선 것이며 하나님은 그들의 활동을 허용만 했고 그 죄의 계획과 집행은 그들의 자기 책임과 자유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이는 인간이 자기 차원에서 하나님의 행동을 잘못 본 것이다. 하나님이 그 죄와 악령과 불택자를 목적 달성을 위해 만들고 사용하고 있다(욥1:6-12, 롬8:28). 즉 쇠를 용광로에 넣었다가 끄집어내서 망치로 두드려 원하는 도구를 만들고 있는데, 그 쇠와 그 쇠를 두드리는 망치와 그 쇠를 달군 불까지 전부 대장장이가 자기 목적을 위해 자기 손으로 만든 것이며 사용하는 필수품들입니다.
욥1:6-12 ‘... 사단도 그들 가운데 왔는지라 ... 내가 그의 소유물을 다 네 손에 붙이노라 오직 그의 몸에는 네 손을 대지 말지니라 ...’
롬8:28 ‘...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눅12:6-7 ‘참새 다섯이 앗사리온 둘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하나님 앞에는 그 하나라도 잊어버리시는 바 되지 아니하는도다 너희에게는 오히려 머리털까지도 다 세신바 되었나니 ...’
엡3:11 ‘곧 영원부터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정하신 뜻대로 하신 것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