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사역과 자존

조직신학 본서       교리성구 사전

                        (1)사역과 자존

서기 0 34
(1) 하나님의 사역과 자존

  ① 자존과 ‘사역의 순서’
 
  알려 주셔서 아는 것이 우리다. 하나님의 사역에 대하여 성경이 우리에게 알려 주신 것은 하나님 홀로 계시다가 목적을 하나 정한 일이 있으니 이 ‘목적’이 하나님의 모든 사역의 시작이다(엡1:4-5). 하나님의 사역으로 말미암아 생겨진 모든 존재를 순서대로 배열한다면 ‘자존 → 목적 → 예정 → 창조 → 섭리’로 놓을 수 있다.

  ‘자존’과 ‘목적’과 ‘예정’까지는 자존하신 하나님께서 외부에 따로 만들어질 존재들을 준비하는 단계다. 자존의 하나님께서 외부 존재들을 준비하시되 하나님의 그 생각에서 목적을 정하고 예정을 짜놓았으니 이렇게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 진행된 하나님의 사역은 오늘 우리 인간들을 기준으로 본다면 한낱 계획단계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별로 중요성을 느끼지 않을 수 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완전자시며 전지 전능자시므로, 그분의 생각은 우리 인간들이 그냥 한번 생각해 본 것과는 그 차원이 전혀 다르다. 인간의 생각은 이루어진다는 담보가 없기 때문에 단순히 공상일 뿐이고 좋게 말하면 하나의 희망사항일 뿐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생각하신 것이 어떤 착오나 차이도 없이 바로 실존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실제로는 하나님의 의지세계와 현실의 실존은 따로 구별할 필요가 없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사역을 순서대로 살펴보는 것은 그 의미가 적지 않다. 자존에서 목적, 예정, 그다음 창조로 이어지는 것이 하나님께서 역사해 나가신 순서인데 이 순서 중에서 우리 택자들은 ‘자존’하신 하나님 바로 다음에 나타나는 첫 순서인 ‘목적’ 단계에서 존재의 출발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불택자들과 만물들은 목적을 이루기 위해 그 구체적인 전개 과정을 짜놓으신 ‘예정’ 순서부터 존재하게 된다. 우리는 순서적으로 말한다면 자존하신 하나님 바로 다음에 존재했고 또 영계와 우주에 있는 모든 피조물 전체 중에서 첫째로 존재했으며, 우리라는 존재는 만물에 비하여 단순히 그 연대만 오래 된 것이 아니고 우리는 ‘목적’ 자체이며 다른 존재들은 불택자까지 포함하여 이 목적에 쓰이도록 만들어진 이용물들이다.

  물론 이 ‘목적’ ‘예정’ 단계까지는 우리 인간들의 기준에서 본다면 우리와 모든 피조물들이 실제로 존재한 것은 아니다. 이제 자존 바깥 외부로 하나님 외의 존재가 실존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창조’가 처음이고 ‘섭리’가 그 다음이다(창1:1, 엡1:3-5, 롬11:36).

창1: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롬11:36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





  ‘창조’는 자존하신 하나님 외부에 다른 존재들이 존재하게 된 첫 순서다. 모든 만물과 인간들이 이 창조 단계에서부터 이제는 외부 존재를 알게 되고 그 존재들을 접하고 또 그 속에 하나로 살아간다. 그리고 ‘섭리’는 그 창조된 것들의 변화이며 진행 과정이다. 이 섭리는 곧 이 땅 위에서 재림 때까지 전개될 역사 전부이기도 하다.

  섭리를 논할 때 대개 세상 끝날까지만 섭리의 범위로 잡아 설명하고 있지만 재림 이후 영원한 세계도 섭리에 포함을 시켜야 한다. 섭리가 영생에까지 이르게 된다면 그 예정도 영원 후까지가 미리 작정 되었다는 뜻이다(마6:10-13, 단4:17, 6:26, 7:18, 27, 눅1:33).


  ② ‘자존과 사역의 관계’

  하나님께서 목적 사업을 하게 된 것은 자존자로만 계실 수 있는데도 ‘일부러’ 목적을 정하여 일을 시작하셨는지, 아니면, 필연적으로 그렇게 했어야 했는지? 이것을 살피는 것이 ‘자존과 사역의 관계’다.
  하나님께서 사업을 벌인 것은, 강요에 의한 것도 아니고 필요에 의한 것도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고 싶어 시작한 사업이다. 우리 인간이 인간 자기를 생각하면 하나님도 인격자이므로 다른 존재와 교제가 필요했겠다고 생각할 수 있다. 홀로 계신다면 얼마나 적적하시겠느냐는 것이다. 독방에 감금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니다. 그러나 다른 존재와 교제가 있어야 하는 것은 피조물의 근본 속성이지 하나님의 본질 문제와는 상관이 없다.


마6:10-13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혹 인간은 하나님을 닮았기 때문에 인간에게 느껴지고 필요한 것은 하나님께도 그런 면이 있지 않겠느냐는 반론도 예상할 수 있다. 물론 그 만들어 놓으신 만물이나 인간 스스로를 살펴보면 볼 수 없는 하나님의 세계를 짐작을 할 수 있지만 피조물에서 관찰되는 것이 창조주에게 전부 다 해당된다고 생각하면 잘못이다.
  피조물은 ‘만들어졌고’ 또 ‘불완전’의 존재이므로 그를 만든 창조자와 분리되어 존재할 수 없습니다. 피조물은 자존하신 완전자가 아니면 독존의 상태를 유지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피조물이 아니고 불완전자가 아니기 때문에 독존에 아무 문제가 없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든 것은 자존이 독존의 상태로부터 벗어나야 하거나 또는 독존을 유지하기 어려운 다른 이유가 있어 그런 것이 아니라, 그냥 뜻을 세워 사업을 시작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들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만든 것이 아니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만드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우리의 감사는 더욱 큰 것이다(엡1:5).


엡1: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요6:57 ‘살아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사는것 같이 ...’

요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③ 사역과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그 목적을 위해 사역을 시작하게 되면서, 하나님은 그 사역을 위해 자신을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나타내고 계셨다. 목적을 정하기 이전에는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자신을 나타낼 필요가 없었는데 이제 자존하신 하나님께서 자존자 외에 피조물을 만들어 만물이 존재하게 되고 그 만물을 만든 목적이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만드는 것이므로 하나님은 특별히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우리들에게 보이시게 된다. 하나님의 역사를 두고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그 일을 맡고 나선 삼위 하나님의 역할은, 우선 성부 하나님이 최종 책임과 지휘를 맡고(요6:57), 성자 하나님은 작업 현장에 실무 책임자로 나섰다(요1:14). 그리고 성령 하나님은 모든 지원과 마무리를 맡았다(요14:26). 따라서 삼위일체라는 표현은, ‘영원 전’ 하나님께서 구원 목적을 위해 한 분 하나님으로 계시다가 시간도 존재하기 이전, 곧 영원 전에 이제 세 분으로 그 일을 분담하게 된 하나님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이렇게 단정할 수 있는 것은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성경의 명칭 때문이다(마28:19). 한 분 하나님으로 계시던 하나님께서 한 분 하나님의 단일성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세 분 하나님으로 해야 할 일이 생겼다. 이 하나님 본체의 변화는 우리에게는 변화로 보이지만 하나님께는 본체적 변화가 아니고 다만 하지 않고 있던 일을 하게 되는 과정에서 그 하게 되는 일에 관련하여 우리에게 쉽게 알 수 있도록 알리는 표현이라는 점을 더 주의해서 살펴야 한다. 목적을 정하기 전에도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존재할 수 있는 분이 목적을 정하기 전에는 그렇게 할 필요가 없을 뿐이었고, 이제 목적을 정하게 되면서부터는 그 목적을 위해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자신을 나타내신 것이다.



마28: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한 분 하나님께서 성부와 성자 하나님으로 역할을 분담하고 또 성령 하나님이 이를 지원하는 삼위 하나님으로 나타난 그 배경과 각각의 맡은 직책 직임을 볼 때, 이 삼위 하나님의 상호 관계는 우리를 자녀로 만들어 하나님을 닮게 하기 위해 하나님 자체적으로 하나님 내부에서 맡은 역할이다. 그렇다면 이는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시작한 일, 즉 목적 사업 때문에 필요에 의하여 삼위일체로 존재하게 된 것이지, 그 목적 사업에 상관없이 자존자로만 계실 그때만을 생각한다면 그 이름과 그 직책은 그렇게 존재할 필요가 없다. 만일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나타나신 그 모습이 목적 사업 이전 자존 세계에서부터 원래 그렇게 계셨다면 우리는 또 하나의 질문을 하게 된다.

  오늘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기록해 주신 하나님의 이 목적 사업 외에 별도로 추진하는 목적 사업이 있든지 아니면 우리가 알지 못하는 별개의 세계가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이는 성경 기록 범위를 넘어서는 것이므로 알 수도 없고 알 필요도 없다. 알려 주는 것만 알아야 한다는 원칙에 의하여 우리를 자녀로 택하신 목적 사업이 우리가 아는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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