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삼위일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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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삼위일체론

서기 1 60
(4) 삼위일체론

  ① 의의

  삼위일체 교리는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령님’은 어떤 분이며 어떤 관계인지를 요약한다. ‘하나님’은 제1위 성부 하나님이다. ‘예수님’은 사람으로 오신 예수님의 신성, 제2위 성자 하나님을 말한다. ‘성령님’은 영이라 기록해 주신 제3위 성령 하나님이다. 삼위일체론이란, 하나님은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으로 존재하는데 이 세 분 하나님은 한 분 하나님이라는 정리다(고전8:4-6).고전8:4-6 ‘... 또한 하나님은 한분 밖에 없는 줄 아노라 ...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았느니라’


  ② 역사

  성경의 기록은 1세기에 끝난다. 초대교회는 성경의 기록 시대를 포함하여 주후 313년까지 로마의 박해가 극심했다. 이 시기의 교회는 말씀으로 살다 죽는 순교에 초점을 맞췄다. 그러다 신앙의 자유가 주어지고 연이어 교회가 로마의 중심에 서게 되자 이제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떤 길로 가는 것이 신앙인지, 성경으로 매사를 냉정히 살펴야 할 시기가 되었다. 이미 66권 성경이 있었으니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을 살피면서 삼위일체 문제가 먼저 난제가 되었다. 논리적으로도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먼저 확정을 해야 하지만 역사적으로도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두고 논쟁은 치열했다.

  교회는 사도행전 15장의 예루살렘 공회를 통해 구약과 신약의 변화 문제를 결정했다. 이 공회는 사도들이 모인 자리였고 또 성경 기록이 진행 되던 시대였고 공회의 기록도 사도행전에 적어 주셨으나, 이후 이어진 역사의 다른 공회들은 이제 각 교회의 진로가 달라지게 된다. 교회의 첫 과제는 삼위일체 문제였다.

고전8:4-6 ‘... 또한 하나님은 한분 밖에 없는 줄 아노라 ...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았느니라’




 성경 기록 시대가 끝나고 교회의 역사 시대가 시작 되면서 교회의 교리적 문제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라는 신론이다. 이 문제를 논하려면 그 판단의 기준이 성경이니 성경이 먼저 확정되어야 한다. 성경은 사도의 기록이니 1세기의 사도시대에 이미 확정이 되었다. 이에 대한 이견은 불신자를 전도할 때 나올 대화이니 신론에서는 성경 자체의 문제는 거론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지금은 ‘삼위일체’ 하나님이라는 단어 한 마디로 요약하고 있지만 이 정리를 위해 사도들이 없던 교회는 격론을 거칠 수밖에 없었다. 조직신학의 논리적 순서로나 중요성으로 볼 때 ‘삼위일체’ 논쟁은 어렵기는 하지만 피할 수가 없다는 점에서 각자 성령의 조명을 따라 소망 가운데 집중할 사안이다.

  백영희 신앙노선도 주후 325년의 니케아공회가 요약한 삼위일체 교리를 그대로 이어받고 있다. 물론 어떤 분야에서도 자라 가는 면은 있지만 삼위일체 교리는 66권 성경에 이어 교회를 교회로 확인하는 교리라는 점에서 백영희 신앙노선에서 더욱 깨닫고 나간 면은 다른 기회에 설명하고 여기서는 역사적으로 삼위일체를 가장 잘 요약하고 있는 벌콥의 조직신학서 ‘A Summary of Christian Doctrine’ 책의 내용을 인용한다.



  ③ 벌콥의 삼위일체론 요약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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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삼위일체의 교리 개관

  ⑴ 이 교리의 진술

  성경은 가르치기를 하나님은 본질상 한 분이시나 이 한 분 안에 성부, 성자, 성령이라 불리는 삼위가 존재한다고 말씀한다. 이 삼위는 보편적 의미로서의 세 분이 아니다. 즉 그들은 세 개체가 아니라 오히려 신적 본질이 그 안에 존재하는 세 가지 양상이요 형태이다. 동시에 이들은 서로 인격적 관계를 확립할 수 있는 성질을 각각 가지고 있다. 성부는 성자에게 말씀하실 수 있으며, 반대로 성자는 성부에게 말씀하실 수 있으며, 성부와 성자는 성령을 파송할 수 있다. 삼위일체 교리의 오묘한 신비는 삼위 중 각 위가 신적 본질의 완전성을 소유하고 있으며, 삼위의 테두리를 벗어나 밖에서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존재의 순서에 있어서나 그들의 사역에 반영된 순서에 볼 때 삼위 중 성부가 제 1위요, 성자가 제 2위요, 성령이 제 3위라고 말할 수는 있지만, 이 3위는 본질상 그 어느 한 위가 다른 위에 종속되는 일이 없다.

  ⑵ 삼위일체 교리의 성경적 증명

  a. 구약의 증거

  구약에는 하나님께 한 위 이상이 존재함을 지적해 주는 성구들이 있다. 하나님은 자신을 복수로 나타내시기도 했으며(창1:26, 11:7), 여호와의 천사는 한 신적 위로 나타났으며(창16:7-13, 18:1-21, 19:1-22), 여호와의 영도 또 다른 하나의 위로 표현되었다(사48:16, 63:10). 이외에도 메시야에 대해 말하고 있으며 다른 두 인격에 대하여도 언급하고 있는 구절들이 있다(사48:16, 63:10).

  b. 신약의 증거

  계시가 진전되면서 신약은 더욱 명백한 증거들을 갖는다. 가장 유력한 증거는 구속의 사실에 잘 나타나 있다. 성부는 성자를 세상에 보내시고, 성자는 성령을 보내신다. 이에 대한 명백한 증거는 몇 개 더 있다. 즉 예수님의 명령(마28:19)과 사도의 축복(고후13:13)과 그 외 눅3:21,22, 1:35, 고전12:4-6, 벧전1:2에 잘 나타나 있다.

  c. 삼위일체 교리에 대한 그릇된 견해

  이 교리는 종교개혁시대에는 쏘시니안 학파들에 의해 부인되었고, 오늘날에는 유니테리안 파와 현대주의자들에 의해 논박을 받는데, 그들은 삼위일체를 성부 하나님과 인간 예수와 하나님의 영이라고 칭하는 신적 영향력이라고 그릇된 주장을 한다.

  2. 삼위의 개별적 고찰

  ⑴ 성부 하나님

  “아버지”란 말은 만물의 창조자(고전8:6, 히12:9, 약1:17)요, 이스라엘의 아버지요(신32:6, 사63:16), 성도들의 아버지(마5:45, 6:6, 9, 14, 롬8:15) 되시는 삼위 하나님께 적용되는 말이다. 더 깊은 의미로 보면 성부란 말은 제2위와의 관계를 표현하기 위해 삼위일체의 제1위에 적용되는 용어이다(요1:14, 18, 8:54, 14:12, 13). 이것은 본래부터 아버지 격이므로 지상의 모든 아버지는 이것의 희미한 반영에 불과한 것이다. 성부의 독특한 특성은 그가 영원으로부터 성자를 낳으신다는 것이다. 특별히 그의 사역은 구속사업을 계획하시며, 창조하시며, 섭리하시며, 삼위일체를 구속의 계획 속에서 나타내는 일이다.

  ⑵ 성자

  삼위 중 제2위는 성자 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불린다. 그러나 성자가 이러한 명칭을 가지게 된 것은 그가 성부의 독생자(요1:14, 18, 3:16, 18, 갈4:4)일 뿐 아니라 하나님의 선택된 메시야가 되기 때문이며(마8:29, 26:63, 요1:49, 11:27), 성령의 작용으로 말미암은 그의 특별한 탄생에 의한 것이다(눅1:32,35). 삼위 중 제2위인 성자의 특별한 특성은 그가 영원 전부터 성부에게서 출생했다는 것이다(시2:7, 행13:33, 히1:5). 영원한 출생에 의해서 성부는 신적 존재에 있어 성자의 인격적 존재의 원인이 되신다. 특별히 성자의 사역은 중재의 사명이므로, 그는 창조의 사역을 중재하셨고(요1:3, 10, 히1:2, 3), 또 구속의 사역도 중재하신다(엡1:3-14).

  ⑶ 성령

  쏘시니안파와 유니테리안파와 현대주의자들은 성령을 단순한 하나님의 능력이나 영향력이라고 말하지만, 성령은 분명히 하나의 인격이라고 성경은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다(요14:16, 17, 26, 15:26, 16:7-15, 롬8:26). 성령은 지식(요14:26)과 감정(사63:10, 엡4:30)과 의지(행16:7, 고전12:11)를 가지신다. 성경은 말하기를 성령이 말하시며, 탐구하시며, 증거하시며, 명령하시며, 계시하시며, 노력하시며, 중재하시는 분으로 표현한다. 또 그는 분명히 자신의 능력과는 구별되신다(눅1:35, 4:14, 행10:38, 고전2:4). 성령의 특별한 특성은 그가 성부와 성자로부터 발생된다는 것이다(요15:26, 16,7, 롬8:9, 갈4:6). 성령의 사명은 창조와 구속을 완성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창1:3, 욥26:13, 눅1:35, 요3:34, 고전12:4-11, 엡2:22).

  [기억할 말씀]

  ⑴ 삼위일체

사61:1,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

마28: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고후13:13,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⑵ 영원한 출생

시2:7, ‘내가 영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

요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⑶ 성령의 발생

요15:26,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 하실 것이요’

- 벌콥의 삼위일체론 인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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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④ 삼위일체론에 대한 보충 설명

  ▪ 목적 이전 자존세계의 하나님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세상을 창조하기 전인 영원 전부터 삼위일체였다는 것은 정통 교리의 상식이다. 그런데 하나님이 창조하신 시공의 창조 이전에 목적을 먼저 정하셨으니 그 목적을 정하기 이전 홀로 계실 때도 삼위일체 하나님이셨느냐는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목적 이전에도 삼위일체 하나님이셨기 때문에 목적을 정한 뒤 삼위의 하나님께서 각각 맡고 나설 일이 있었다고 해야 하나님은 변치 않는 하나님이라는 논리가 선다. 그렇다면 자존하신 하나님은 필연적으로 우리를 목적 대상으로 삼아야 했고 또 그 일을 위해 삼위의 하나님으로 활동을 하셔야만 했느냐는 반문을 할 수 있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그 삼위일체의 관계도 영원 전부터 변치 않은 본질로 계셨지만 삼위일체라는 표현과 활동을 우리에게 표시한 것은 하나님이 목적을 정하신, 그 목적 때문에 필요한 표시였다.

  목적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셔서 그렇게 정하신 것이다. 목적을 정하지 않으면 안 되는 강요나 하나님 자체의 필요로 목적한 것은 아니다(엡1:5). 하나님은 목적을 정하시게 되면서부터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자신을 나타내실 수도 있었지만 그 이전에는 삼위일체 하나님이라는 형식으로 하나님을 파악할 필요가 없는 상태로 존재했다. 즉, 앞으로 필요하면 삼위일체 하나님이라는 형식으로 존재하면서 자신을 그렇게 나타낼 수 있는 하나님께서 목적을 정하기 이전 자존 상태로만 계실 때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형식으로 계실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삼위일체 하나님이라는 개념은 하나님의 첫 사역에 해당되는 그 목적 세계에서부터 생각하는 것이 옳다(창1:26).엡1: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창1:26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마28: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요15:26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


엡1: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창1:26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마28: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요15:26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




그렇다면, 하나님은 자존하신 완전자였는데 우리를 하나님 닮은 존재로 만드시려고 목적을 하나 세우시고 이 목적을 위해서 한 분 하나님께서 삼위의 하나님으로 그 역사를 각각 나누어 맡으셨으니 이를 삼위일체 하나님이라고 한다. 이렇게 설명을 해도 영원 전부터 하나님은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계셨다고 표현할 수 있다. 영원 전이라는 기준이 창조 이전인가 아니면 목적 이전인가로 나눈다면 나눌 수 있기 때문이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우리 구원을 두고 최종 계획 성취의 책임을 지신 성부 하나님과 그 실행의 중심에 있는 성자 하나님과 그리고 성자 하나님의 모든 작업을 실제 우리에게 이루어지게 하는 성취를 맡은 성령 하나님으로 그 역사가 나타나게 된다(마28:19, 요15:26).


 ▪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이해와 설명

  삼위일체 하나님은 그 교리 형성 과정에서부터 일반사람이 이해할 수 없도록 어려워 보인다. 이는 초대교회의 교리 학자들이 그리스 철학에 영향을 받아 학문적으로 고상하게 표현하려는 면도 보인다. 그러나 이단의 여러 논리를 대응하다 보니 표현을 극히 조심했다고도 보인다. 어쨌든 신앙 현장에서 일반 교인을 가르치는 일에는 삼위일체 교리의 설명은 지나치게 어려워 보인다.

  어떻게 이해를 하고 또 어떻게 가르쳐야 삼위일체 하나님을 어린 사람에게도 잘 깨닫도록 할 수 있겠는가? 이미 2천 년을 이어 온 정통 교리의 설명을 기초와 뼈대로 삼고 또 그 설명을 이해 시키는 목적을 둔 상태에서, 한 사람이 세 가지 역할을 맡는 설명이 우선 시도 된다. 천국과 세상 나라는 다르지만 세상 나라와 임금을 가지고 설명을 시작하는 것과 같은 방식이다. 볼 수 없는 마음을 표현하려다 보니 볼 수 있는 색깔이나 잣대로 설명을 시작하는 것과 같다. 넓은 마음, 좁은 마음, 시꺼먼 마음, 하얀 마음이라는 표현은 마음의 세계에 아예 해당이 되지 않는다. 해당이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오히려 마음을 설명할 때 이런 표현을 쉽게 사용한다. 이런 표현으로 마음의 세계를 조금이라도 설명하려는 것이다. 하나님이라는 존재, 삼위일체라는 개념을 인간이 이 땅 위에서 따로 설명할 길은 없다. 그렇다고 설명하지 않을 수도 없다. 그래서 보이는 이 세상의 이런 면과 저런 면으로 소개를 시도하는 것이다. 그 소개가 전부라고 단정을 한다면 바로 이단 정죄로 나갈 수 있다. 다만 이런 면이 있다는 하나를 설명하면서 그 시작에 불과하다면 여러 면으로 두루 살펴 보는 것이 삼위일체 교리를 알아 가는 노력일 수는 있다.

  하나님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 세 분 하나님으로 계시면서 동시에 이 세 분은 한 분 하나님이다(마28:19, 고전8:4).고전8:4 ‘... 우리가 우상은 세상에 아무 것도 아니며 또한 하나님은 한분 밖에 없는 줄 아노라’
여기서 한 분, 세 분이라고 표현한 ‘분’은 인격이라는 뜻이다. 언어의 변화로 ‘인격’이라는 표현에 불편이 있어 그렇다.

  우선 삼위일체라는 개념은 세 분 하나님 즉 삼 인격이 한 인격이 되고, 한 인격이 셋 인격으로 온전하게 분리될 수 있다는 것이니 이런 설명은 물질계 인간세상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개념이다. 그런데 그 외부 모습을 세상 속에서 찾는다면, 한 사람이 아들에게는 아버지로 또 아내에게는 남편으로 또 부모에게는 자식으로 존재할 수 있으니 이 것을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최종 결론이 아니라 어린 신앙이 하나님을 배우는 시작으로 삼을 수는 있다. 이 비유를 삼위일체의 본질로 설명하면 양태론이라는 이단이 된다. 삼위일체의 각 하나님이 본질 본체적으로 하나님은 아니지만 역할이 3가지라고 결론을 내면 이단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본체가 아니라 그 나타난 외부 모습으로 그렇게 비교해서 설명한 것이다.


고전8:4 ‘... 우리가 우상은 세상에 아무 것도 아니며 또한 하나님은 한분 밖에 없는 줄 아노라’






  마치 하나님과 성도의 결합은 인간과 인간의 육적 결합인 부부와 같을 수가 없는데, 볼 수 없는 하나님과 신령하게 변화된 성도가 하늘나라에서 영원히 하나 되어 살 그 모습을 이 세상에서 달리 설명할 길이 없어 육적 부부제도를 만들어 놓고 그 육체적 결합을 보면서 신령하게 결합될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유추하게 했다(엡5:22-33). 하나님과 우리를 부부사이로 표현하면서 인간의 육체적 부부 차원으로 본다면 이단이다.엡5:22-23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라’


  하나님은 육체도 영체도 없는 완전 무형의 완전자이고 우리는 피조물이다. 그런데 이 둘 사이에 연결성 결합성 일체성이 마치 인간의 부부제도에서 부부와 같다고 ‘설명’을 하는 것이라면 이 설명은 인간의 말로 인간이 설명할 수 있는 최상 최선이다. 알 수 없는 하나님을 어린 우리에게 알려 주시려고 세상에 부부제도를 만들었다.

  삼위일체 하나님도 그 본체는 완전자 하나님이므로 세 분이 한 분 하나님으로, 한 분 하나님이 세 분 하나님으로 계시는데, 인간에게 인간 차원으로 설명하되 그 설명이 삼위일체의 실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삼위일체의 외부적 이해를 돕되 그 이해를 하나님께서 미리 내놓으신 ‘일인다역’의 현상으로 설명하면 어린 우리가 우선 한 가지라도 알게 되고, 우리의 신앙이 자라가면 그 다음 단계를 알아 갈 수가 있다. 이해를 위해 설명의 방법으로서 여러 시도는 해볼 수 있다.


엡5:22-23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라’




  ▪ 세 분 하나님의 주 역할과 그 상호관계

  삼위일체론의 성부 하나님은 구속 사업에 대한 계획 창조 섭리를 맡고, 성자 하나님은 중재의 사명을 중심으로 구속의 실무에 전면을 맡고, 성령 하나님은 성화를 맡아 성부의 창조와 성자의 구속이 목표하는 그 완성을 맡는다고 설명한다.

  이 설명을 더 자세하게 설명을 한다면 성자 하나님을 중심에 둘 수 있다. 성자 하나님은 볼 수 없는 성부 하나님을 우리에게 보여 주는 역사를 맡았으니 이를 요한복음 1장에서 ‘말씀’이라는 이름으로 표시를 했다. 우리의 아버지 되시며 우리가 닮아 가야 하는 성부 하나님은 피조물인 우리가 상대할 수 없고 접촉할 수 없다. 인지할 수도 없다. 그런데 하나님 자존의 내부 세계를 성자 하나님이 예수님으로 오셔서 그 내부를 보여 주셨다. 그렇다면 목적을 정하고 예정 섭리 창조 구속 및 성화 이후 영원무궁의 모든 하나님의 역사 전체를 통해서 성부는 보이지 않게 또 성자는 볼 수 없는 하나님을 보여 주는 일에 실무를 맡았고(요14:9-13), 성부 하나님은 그 성자 하나님께 이 모든 일을 맡기고 지휘하는 아버지이고(요6:57), 성령 하나님은 그 모든 일을 감화와 감동으로 마무리하는 역할이라 할 것이다(요14:26).


요14:9-13 ‘...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요6:57 ‘살아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사는것 같이 ...’
요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즉 한 분 하나님께서 ‘구원’으로 표현할 수 있는 목적을 정하시고 그 목적을 위해 삼위 하나님으로 각각 일을 분담하시되 그 분담은 분담을 해야 일을 이루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분담한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여러 존재가 하나의 목적을 위해 분담을 해야 하는 이치를 보여주기 위해 그렇게 하신 것이다. 이 일에 최종 책임과 전체 진행은 성부 하나님이고 그 실무 실행은 예수님이며 그 일이 실제 우리에게 이루어지도록 맡아 나선 분이 성령 하나님이다.



요14:9-13 ‘...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요6:57 ‘살아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사는것 같이 ...’
요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⑤ 삼위일체 부인 이론들

  이 교리서는 옳은 것을 위주로 소개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렇다 해도 대표적인 이단의 몇몇 주장은 최소한의 상식으로 알아야 할 것이 있다.

  ▪ 삼신론

  삼위일체 하나님을 부인하되, 세 분 하나님의 삼 위가 성경에 너무 뚜렷하다는 점만 집착한 이단이다. 이들은 하나님은 세 분이라는 것만 주장을 하고 세 분 하나님이 한 분이라는 것을 부인한다.

  하나님은 한 분이라는 것을 부인하고 성부와 성자와 성령 하나님을 각각 독립적인 별개의 하나님이라는 면만 지나치게 강조하게 되면 삼위‘일체’ 하나님을 부인하고 ‘삼위’하나님만 가르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삼위 하나님이 아니고 다신교로 가는 삼신 하나님을 주장하는 것이 된다. 다신교는 미신으로 가는 길목이다. 쉽게 설명하다 방심하면 자신도 모르게 이렇게 될 수 있다.

  역사적으로 또 현재도 유명한 이단 전문가들이 삼위일체 교리의 이단을 공박하다가 자신이 삼위일체에 이단에 빠지거나 그런 오해를 받는 경우는 흔하다. 논점 하나에 집중하고 논쟁에 이기려 하다 교리의 전체와 기본을 잊어버린 결과다(고전8:4). ‘삼위’를 강조하든 ‘일체’를 강조하든, 또는 삼위를 무시하든 ‘일체’를 무시하든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면 바로 이단으로 나갈 수 있는 면을 조심하지 않았던 것이다.


  ▪ 일신론

  하나님은 오직 한 분이며 삼위로 나뉠 수 있는 하나님은 아니라는 이단설이 일신론이다. 이 일신론을 주장하는 방법으로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양태론이고 하나는 양자론입니다. 양태론은 한 분 하나님이 3가지 모습으로 나타나 보인 것이라고 하나님을 설명하고, 또 양자론은 성자 예수님을 원래 하나님으로 보는 것이 아니고 피조물인데 하나님과 같은 존재로 변화가 되었다고 설명하는 이단설이다(고전8:4, 마28:19).고전8:4 ‘또한 하나님은 한분 밖에 없는 줄 아노라’
마28:19 ‘...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여호와의 증인이 ‘일신론’ 이단 중에서 ‘양자론’을 잇는 가장 대표적인 이단이다.






  2. 하나님의 사역

  ▪ 하나님의 본체와 하나님의 사역

  신론을 크게 둘로 나누어본다면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하는 그 본체 문제가 하나 있고 또 하나님은 어떤 일을 하시는가 하는 그 사역 문제가 하나 있다. 앞장에서 하나님의 본체를 살펴보았다면 이번에는 하나님의 역사(役事)를 살펴본다. 하나님의 역사는 그 역사의 전개 순서를 중심으로 살펴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 구원중심의 하나님 사역

  자존으로만 계시던 하나님께서 자존의 존재만으로 계시지 않으시고 그 외부로 일을 하나 하기로 작정을 했으니 이를 하나님의 사역이라고 한다. 하나님의 사업은, 여러 목적을 가지고 여러 사업을 따로 추진한 것이 아니고 단 하나의 목적을 세우고 그 목적을 위해 모든 일을 시행했다. 단일의 하나님께서 단일의 목적을 세우시고 그 목적을 위해 모든 활동을 시작한 것이다(엡1:3-6).



고전8:4 ‘또한 하나님은 한분 밖에 없는 줄 아노라’
마28:19 ‘...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따라서 하나님 외의 모든 존재와 활동은 전부가 하나님의 사역이며 그 사역은 하나님의 목적 하나만을 위한 것이다. 시간으로 본다면 영원 전 목적을 정했을 때부터 시작해서 오늘과 내일 그리고 무궁세계의 영원 후까지가 다 포함되었다.

  그렇다면 그 목적은 무엇인가? 바로 우리를 하나님 자녀로 만드는 일이다. 하나님 자녀로 호적에만 올리는 것이 아니다. 자녀가 출생 때는 아버지께 생명만 받아 나오지만 세월이 지나가면서 모든 면으로 아버지를 닮게 되고 훗날에는 그 모습과 실력까지도 아버지와 같은 아들이 되는 것을 우리에게 모형으로 보이고 있다(갈4:1-7, 엡1:4-5).


엡1:3-6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

갈4:1-7 ‘내가 또 말하노니 유업을 이을 자가 모든 것의 주인이나 어렸을 동안에는 종과 다름이 없어서 그 아버지의 정한 때까지 후견인과 청지기 아래 있나니 ... 네가 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이을 자니라’

히12:7-9 ‘...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비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 ’

롬8:29-30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육의 부모와 자녀가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그대로 다 반영하지는 않지만 오늘 세상에 존재하는 것 중에서는 모든 면으로 가장 쉽고 정확하게 유추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일부러 부모와 자녀라는 제도를 우리에게 주셨다(히12:7-9). 이렇게 우리가 하나님을 닮아가는 이 모든 과정을 ‘구원’이라고 한다.

  구원이라는 표현을, 죄에 빠져 죽은 자리에서 되살려 내는 것으로만 생각하기 쉽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택하시고 세상에 나게 하시고 또 천국에서 영원히 당신을 닮아가게 하는 하나님의 목적 성취 전체를 다 포함하여 이를 ‘구원’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 전체 과정 중에서 범죄 했던 우리를 되살려 내고 천국으로 들어가게 하는 바로 그 순간만을 따로 떼어서 또 ‘구원’이라고도 한다(롬8:29-30). 구원이라는 단어의 범위를 한 가지에만 국한하면 성경 전체에 오해가 많아진다.



엡1:3-6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

갈4:1-7 ‘내가 또 말하노니 유업을 이을 자가 모든 것의 주인이나 어렸을 동안에는 종과 다름이 없어서 그 아버지의 정한 때까지 후견인과 청지기 아래 있나니 ... 네가 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이을 자니라’

히12:7-9 ‘...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비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 ’

롬8:29-30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그렇다면 하나님의 사역은 하나님 본체 외의 모든 것이라고 범위를 정할 수 있고, 또 하나님의 사역은 하나님께서 세운 목적과 그 목적을 성취하는 모든 과정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 목적의 내용은 우리를 하나님과 같은 존재로 만드는 것이며 또 그 목적은 다른 말로 구원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데 그 ‘구원’이라는 표현은 하나님은 당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우리를 하나님과 같은 존재로 만드는 과정 중에서 우리를 타락하도록 한번 시켜놓고 그 다음 다시 원 위치로 올려놓는 것이 필요하다. 그 원 위치로 돌아오게 된 것이 우리에게는 가장 큰 일로 보이기 때문에 ‘구원’이라고 한다.
 
  하나님의 사역을 살피는 이 곳에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기로 목적을 정하신 그 목적을 중심으로 살펴 그 목적이 어떻게 결정되고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를 알아보는 것이 필요하다.
정동진 2023.12.09 23:46  
참고) 니케아 신경(325년)
 우리는 한 분이신 하나님을 믿는다.
 그분은 전능하신 아버지이시며, 유형무형한 만물의 창조주이시다.
 그리고 우리는 한 분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
 그분은 하나님의 외아들이시며,
 아버지에게서 나셨으며,
 곧 아버지의 본질에서 나셨다.
 하나님에게서 나신 하나님이시며,
 아버지와 본질에서 같으시다.
 그분으로 말미암아 만물이,
 하늘에 있는 것들이나 땅에 있는 것들이 생겨났다.
 그분은 우리 인간을 위하여,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내려오시어 육신을 취하시고, 사람이 되셨으며,
 고난을 받으시고,
 사흗날에 부활하시고,
 하늘로 올라가셨으며,
 산 이와 죽은 이들을 심판하러 오실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성령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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